숲노래 책노래. 다시


1996.1.6. “다시 하겠습니다!” “뭘 다시 해? 이 ○○○○○야! ○○○○ ○○○가 어디에서 말대꾸야!”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한 사람은 이 한겨울에 더욱 차가운 내무반 바닥에 대가리를 쿵쿵 소리를 내며 박고 버티면서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하고 외치고, 다른 한 사람은 머리박기를 하는 사람을 군홧발로 있는 힘껏 걷어차면서 갖은 막말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다시 하겠다는 데에도 그토록 두들겨패야 할까. 너희가 이등병이나 일등병일 적에 그렇게 얻어맞고 살아서 너희가 병장이란 작대기를 넷 달면 그렇게 죽도록 두들겨패야 할까. 그런데 있잖아, 너희들, 다시 살고 싶지 않니? 발길질도 막말질도 따귀질도 없는 고요하며 사랑스러운 나라에서 다시 살고 싶지 않니?


2009.3.8. “다시 빨면 돼.” 새로 빨아서 보송보송 말린 이불에 아이가 쉬를 신나게 누어 주셨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 마디 “다시 빨자.” 신나게 이불빨래를 한다. 오줌쟁이 아이는 아버지가 뭘 하나 갸웃갸웃 구경하더니 저도 발로 복복 이불을 밟으면서 물놀이를 하고 싶은 눈치이다. 그래, 이불빨래가 아니라 물놀이란다. 이불을 빨래한다는 핑계로 아직 물이 꽤 차가운 이 삼월에도 즐기는 물놀이란다.


2013.12.14. 꼭 마흔 살 먹은 그림책을 다시 장만한다. 일본에서 1973년에 처음 나오고 한국에서 2008년에 처음 옮긴 그림책인데, 몇 해 앞서 한 자락 장만했는데, 도무지 어디에 두었는지 못 찾아서 다시 장만하기로 한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그림책 하나 다시 장만한 줄 모른다. 그동안 찾던 책이 짠 하고 나타나니 반가울 뿐이다. 어디엔가 있는 책을 다시 산다면, 같은 책을 집에 두 자락 건사하는 셈일 텐데,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책이라면 두 자락 아닌 석 자락이나 넉 자락이 있어도 즐겁다고 느낀다. 아이들과 살아가며 새롭게 느낀다. 하나는 예쁘게 건사하는 책으로 삼아, 아이들이 자라 어른 되어 저희 아이를 낳을 적에 물려주거나 선물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닳고 낡도록 신나게 들여다보는 책으로 삼을 수 있다. 예전에는 ‘같은 책 다시 살 돈’이 있으면 ‘새로운 다른 책을 하나 더 사자’고 여겼지만, 이제는 굳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다른 책을 장만할 돈은 언제라도 새롭게 벌어서 누릴 수 있다고 깨닫는다. 스스로 돈이 없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책을 장만하지 못한다고 깨닫는다. 나한테는 내가 즐겁게 읽고픈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살림이라고 생각할 때에 비로소 책을 장만할 만하다고 깨닫는다. 왜냐하면, 한 달에 오백만 원이나 천만 원을 번다 하더라도 이것 하랴 저것 하랴 한 달에 책값 만 원조차 못 쓰는 사람이 있다. 한 달에 천만 원 벌면서 이웃돕기에 만 원을 못 쓰는 사람이 있다. 한 달에 이십만 원이나 오십만 원 벌면서 이웃돕기에 만 원을 잘 쓰는 사람이 있지. 우리 집 살림을 돌아보면 한 달에 십육만 원 벌던 신문배달부 적에도 다달이 구만 원을 적금으로 부으면서 남은 돈으로 책을 사서 읽곤 했다. 돈이 아니라 마음에 걸린 일이 책읽기라고 할까. 마음이 있을 적에 책을 장만한다. 마음이 있을 적에 책을 펼쳐 읽는다. 마음이 있을 적에 책에 서린 넋을 즐겁게 받아안는다. 마음이 있을 적에 책 하나 읽으며 삶을 새롭게 가다듬어 스스로 거듭난다. 마음이 없을 적에는 책을 장만하지 않는다. 마음이 없을 적에는 책을 펼칠 틈이 없다고 여긴다. 마음이 없을 적에는 애써 책을 읽어도 책에 서린 넋을 제대로 맛보거나 살피지 못한다. 마음이 없을 적에는 책 하나 읽으며 스스로 삶을 새롭게 가꾸지 못한다. 둘레 이웃들 누구나 마음 느긋하고 넉넉하며 아름답게 하루를 누릴 수 있기를 빈다. 마음이 느긋하고 넉넉하며 아름다울 적에 비로소 책을 읽으며, 다른 이웃한테 사랑스레 손길을 건넬 수 있고, 이 지구별을 푸르게 가꾸는 빛을 베풀 테니까.


2014.1.4.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헌책집 〈소소책방〉에 들렀는데, 마침 《스타가 되고 싶어?》 1권과 2권이 있다. 아, 강경옥 님 옛날 만화책이네. 고등학생 때 읽은 만화책인데 아주 새삼스럽다. 아무 망설임 없이 장만한다. 숱하게 읽은 만화책이고, 우리 책숲에도 갖춘 만화책이지만 다시 장만한다. 차근차근 읽는다. 고등학생이던 지난날 느낌을 떠올리고, 마흔 살 오늘날 느낌을 되새긴다. 아름답구나. 예쁘구나. 이런 이야기를 그무렵 푸름이는 얼마나 두근두곤 설레면서 읽었던가. 강경옥 님 만화를 놓고서 얼마나 오랫동안 신나게 수다를 떨었던가. 그런데 1993년에서 스무 해가 흐른 2013년에 강경옥 님 만화책 가운데 《설희》를 표절한 연속극이 공중파에서 흐른다. 적잖은 사람들은 표절이고 아니고를 안 따지면서 공중파 연속극을 즐긴다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은 표절인 줄 아닌 줄 하나도 모르면서 공중파 연속극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아름다움을 사랑스러운 빛으로 선보인다. 꿈씨앗을 마음밭에 심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제도 오늘도 꿈씨앗을 스스로 가꾸고 돌보면서 하루를 맑게 빛낸다.


2019.8.7. 달포쯤 앞서부터 몇 해 만에 다시 쓰는 글이 있다. 전국 곳곳 헌책집이 눈에 뜨이게 사라지면서 ‘헌책집 이야기’를 글로 쓰기가 몹시 힘들었다. 어느 곳은 미처 다시 찾아가지 못했는데 그만 문을 닫아서 끝절을 못하기도 했고, 어느 곳은 헌책집지기가 조용히 눈을 감으면서 문을 닫기도 했다. 이밖에 다른 아픈 일이 있어서 몇 해 동안 ‘헌책집 이야기’를 안 썼다고도 할 텐데, 나로서는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데에 온힘을 쏟느라 한동안 못 썼다고도 할 만하다. 전남 고흥이란 두멧시골에서 살며 어찌 헌책집으로 마실을 다니고 이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겠는가. 한 해에 고작 서너 곳조차 가까스로 다니면서 헌책집 이야기를 쓰기 어렵더라. 그런데 아이들을 낳고 돌보면서 못 쓰고 미룬 글이 많다. 2008년에 다닌 헌책집을, 2012년에 다녀온 헌책집을, 2014년에 다녀온 헌책집을, 또 2018년에 다녀온 헌책집을 그저 미적미적하면서 그때 그곳 이야기를 안 쓰고 지나갔다. 이제 이 해묵었다 싶을 이야기를 하나씩 틈을 내어 써 놓으려고 한다. 비록 이제 아무도 다시 찾아갈 수 없는 사라진 헌책집 이야기라 하더라도, 어쩌면 그만 사라지고 만 헌책집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헌책집이 책을 사랑하고 꿈꾸던 맑고 밝은 숨결을 새롭게 살려서 쓰고 싶다. 속이 저리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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