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9.6.19.


《2230자》

 김인국 글, 철수와영희, 2016.6.20.



잼을 졸이는 길은 여럿인데, 우리 집은 여러 날에 걸쳐 찬찬히 졸이는 길로 한다. 첫날에는 오디이든 들딸기이든 무화과이든 설탕에 재워서 차게 둔다. 이튿날에 여린불로 천천히 끓여 보글거릴 적에 끄고는, 뜨거운 기운이 가시면 하루를 다시 차게 둔다. 이다음날 다시 여린불로 천천히 끓여 보글거릴 적에 끈 다음, 비로소 병으로 옮긴다. 이렇게 오디잼을 한 솥 졸이고는 읍내로 볼일을 다녀오고는, 해질녘에 마을 어귀로 가서 빨래터 물이끼를 걷는다. 물이끼를 걷고는 곁님 신 두 켤레를 빨래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지어 차린다. 밥보다는 물이 좋아 물을 실컷 마시고 자리에 누워 《2230자》를 편다. 신부님이 매우 뾰족뾰족 꼼꼼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누구한테는 뾰족할는지 몰라도, 누구로서는 찔러야 할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한 이들이 있기에 자꾸 뾰족뾰족 말꽃을 지펴야 하기도 하겠지. 글종이로 열 쪽 남짓인 2230 글씨로 어떤 삶을, 어떤 이웃 눈물을, 어떤 벗 웃음을, 어떤 자리 노래를 적을 만할까. 우리 삶터는 고운 길을 걷겠지. 우리 배움터는 슬기로운 길을 가겠지. 우리 보금자리는 사랑터나 꿈터나 놀이터나 숲터로 거듭나겠지. 한 걸음씩 나아간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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