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치기

2019.6.2. 고흥읍에 나와서 볼일을 보고 고흥군립도서관 옆에서 책을 읽는다. 마침 아는 이웃님이 여덟 살 아이하고 지나가려다가 나를 알아본다. 아이가 학교에서 시킨 숙제 때문에 도서관에 왔다고, 학교에서 읽고 독후감을 쓰라 하는 책이 목록에는 있으나 막상 책꽂이에 없단다. 더군다나 도서관 일꾼이 ‘밥을 먹어야 하니 나가’ 달라 해서 도서관에서 나온단다. 말씀을 가만히 듣는데 어처구니없다. 열린도서관이요 나라돈을 받는 이곳에서 도서관지기는 서로 갈마들면서 자리를 지키지 않나? 도서관지기가 밥을 먹어야 하니 책을 찾아서 읽던 사람더러 밖에 나가서 도서관지기가 밥을 다 먹고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비워야 하나? 이런 도서관 얼거리는 여태 어디에서도 들은 일이 없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여덟 살 어린이가 아직 읽기가 안 익숙한데 학교에서 담임이 ‘독후감 숙제’를 시켰단다. 책을 못 읽는 어린이더러 책을 읽고, 더구나 한글을 아직 못 쓰는 어린이더러 손수 느낌글을 써서 내라더라.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흥초등학교 교사는 초시계를 손에 쥐고서 ‘20초 만에 다 읽기’를 시켜서 점수를 매긴단다. 초치기를 해서 읽기를 해내지 못하는 아이는 놀림을 받고 ‘왕따’까지 된단다. 이야, 참, 고흥이라는 고장, 고흥군립도서관이라는 곳, 고흥초등학교라는 데, 참 대단하다. 2019년 대한민국 모습이 맞나? 어린이한테 나긋나긋 차근차근 또박또박 책을 읽어 주어 소리가 익숙하도록 해야 할 학교가 아닌가? 영어를 처음 배울 어린이더러 영어책 못 읽는다고 닦달을 하나?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초시계를 들고서 들볶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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