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마스터

참여연대에서 만든 ‘아름다운 가게’가 있다. 이곳에서는 헌 물건을 버리지 말고 널리 쓰는 운동을 펼친다. 숱한 자원봉사자들이 헌 물건을 매만지고 손보아 깔끔한 가게에 놓는다. 이렇게 놓은 헌 물건은 퍽 싼값에 살 수 있다. 이름난 사람부터 여느 사람까지 집에서 쓰다가 내버려두거나 오랫동안 내버려둔 물건을 가지고 온다. 어떤 이는 뜻이 있어서 좋은 물건을 들고 오기도 하고. 어쨌든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헌 물건을 잔뜩 다루다 보니 헌책도 다룬다. 그런데 이 헌책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다른 물건과 다른 일이 일어난다. 우리 삶터는 책 읽는 사회가 아니고 책을 느끼는 사회가 아닌 터라 ‘아름다운 가게’에서 제대로 헌책을 다루고 보고 느끼며 팔고 사는 눈과 생각과 머리가 없는 것. 책이라면 다 책은 아니다. 책 모습을 띄고 있으나 책답지 못한 책이 많으며, 얼추 보기에는 걸레 같은 책이지만, 그 어느 책보다 애틋하고 소알찬 책도 많다. 그러나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라든지, ‘아름다운 가게’를 꾸리는 간부들은 헌책집 살림을 잘 모르기 마련이고, 한 달에 한 걸음이라도 제대로 헌책집에 가서 헌책을 뒤지고 찾으며 책을 누리지 않는다고 느낀다. 자원봉사자나 간부 가운데 이만큼이라도 헌책을 느끼고 찾으면서 책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이 헌책 매장을 꾸리는 일이 어렵지 않겠지. 어제 낮 ‘아름다운 가게’ 일을 맡은 간부가 전화를 걸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말하며 나더러 “헌책방 마스터”가 되어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어느 자리에서 윤xx, 송xx에게 추천을 받았단다. 그런데 나는 다른 일을,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는 사람이다. “헌책방 마스터”라면 거기에 푹 빠져서 매달려야 할 노릇이겠지. 가만가만 듣다가 묻는다. “전업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맞단다. 그래서 나는 도움은 줄 수 있지만 전업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곳에서 헌책방 마스터가 있어야 할 곳은 파주라고 한다. 파주출판단지에 꽤 넓게 헌책을 다루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쉽지 않은 일이라 한다. 조금 더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헌책을 팔아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그런데 파주출판단지라면 그곳 헌책 독자는 ‘고급’ 독자라 할 수 있다. 책 짓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책 짓는 이들이기에 좀더 책을 알고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나라 책마을을 헤아려 보면, 책 한 권을 제 돈 주고 제대로 사서 읽는 이를 찾기가 어려운 터. 책마을 사람들조차 술 마시고 옷 사 입고, 자동차 굴리고 영화 보고 차 마시는 데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지만, 참 좋은 책 한 권을 제값 다 주고 사는 데에는 참으로 깍쟁이요 구두쇠인데, 그런 깍쟁이와 구두쇠가 참말로 없다. 더구나 책 짓는 이들은 스스로 책을 짓는 길에 도움이 되는 책 아니면 잘 안 보는 사람이라, 여느 사람보다 책을 더 모르고, 더 속좁게 책을 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인 줄 헤아린다면 파주출판단지에 열 ‘아름다운 가게’ 헌책칸은 무척 아슬하거나 어려울 수 있을 테고, 외려 남다르게 해볼 만한 자리이기도 하다. 어쨌든. 내게 한 달에 천만 원을 준다 한들, 일억 원을 준다 한들 그 일을 할 수는 없지만 도움이야 줄 수 있겠지. 그리고 헌책 하나를, 헌책집 한 곳을 보는 눈을 배우고 생각하고자 한다면, 나 같은 사람한테 묻기보다는 헌책집에 몸소 가 보면 된다. 헌책집 열 곳만 몸소 가 보고 말씀을 여쭙고, 책을 사 보고 그러면 이레 만에 웬만큼 느낄 수 있고, 한 달만 되어도 꽤 넓게 알 수 있다. 다만 속 깊이까지는 모르리라. 다만, 이분들이 적어도 그쯤은 해야 나 같은 사람하고 말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하고 무슨 말이 되겠나. 그건 그렇고. 이름이 그게 뭔가? “헌책방 마스터”라니? 그 “마스터”라는 어줍잖고 엉성한 말은 집어치우기 바란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할 줄 몰라 “마스터”인가? 한국사람이라면 한국사람답게 이름을 붙이기 바란다. 가게이름은 ‘아름다운 가게’로 하면서 “마스터”가 무엇인가? “마스터”라는 이름을 쓰고 싶다면 가게이름도 ‘뷰티풀 샵’이라고 해라. 2004.3.19.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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