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5

군대에서 휴가를 받아 헌책집에 가서 책을 사읽었다고 하니 중대장이며 소대장이며 행보관이며 분대장이며 아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본다. 지오피 수당이며 담배값이며 알뜰히 모았지. 왜 모았느냐 하면, 군대에서 글 한 줄 읽을 수 없이 지낸 내 머리가 썩지 않도록, 바보가 되지 않도록, 짧은 휴가라 하더라도 이때에 헌책집에 파묻혀 마음을 새롭게 북돋울 책을 만나고 싶었다. 군인옷을 입고 헌책집에 가서 책을 읽었다. 단골로 드나들다가 반 해 넘게, 때로는 거의 한 해 만에 찾아온 젊은이를 본 헌책집 아저씨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면서 반긴다. “군인이 무슨 돈이 있다고 책을 사러 와?” 하시면서 책값을 안 받으시기도 한다. 몇 아름 장만한 책을 짊어지고 인천집으로 돌아가는 전철길. 책을 펴서 얼굴을 가린다. 헌책에 눈물자국이 흥건하다. 1996.9.19.


헌책 6

군대를 마치기 앞서 ‘열 해 앞그림’을 그렸다. 이 가운데 하나는 “헌책방 사랑누리”라는 모임을 새로 여는 일이다. 바깥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면서 시끄럽다. 그런데 그럴 만하지 않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루는 책이란 으레 베스트셀러 빼고 없잖은가? 아름답고 알찬 책이 아닌, 잘 팔리는 책만 소개하고 다루는데, 그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책은 한때 반짝일 수는 있으나 두고두고 마음에 씨앗으로 깃들 만하지는 않다고 느낀다. 이제는 ‘책 읽히는 운동’이 아니라 ‘책을 새로 보는 길’을 마련하고 이야기할 노릇이지 싶다. 책을 책답게 바라보는 길이란, 껍데기 아닌 줄거리를 바라보는 길이다. 공공도서관이며 대학도서관은 해마다 책을 엄청나게 버리는데, 이렇게 버려지는 책은 대출실적이 적은 책이다. 아무리 알차거나 훌륭한 책이라 하더라도 대출실적이 없으면 그냥 버린다. 헌책집을 다니다 보면 출판사나 신문사나 공공기관에서 버린 엄청난 책을 꽤 쉽게 만난다. 고작 스무 해밖에 안 된 책이어도 ‘낡았다’면서 그냥 버리더라. 한국에는 자료조사부라고 할 만한 곳을 영 못 두는 출판사이자 신문사라고 느낀다. 그래서 “헌책방 사랑누리”라는 모임을 열려고 한다. “헌책방 소식지”도 낼 생각이다. 이레마다 하나씩 내려고 한다. 이레마다 “헌책방 소식지”를 낸다고 해도 한 해에 고작 쉰네 가지밖에 안 된다. 고작 쉰네 곳밖에 안 되는 헌책집을 알리니 터무니없이 적지만, 헌책집 길그림을 그려서 뿌리고, 헌책집 소식지를 찍어서 나누려고 한다. 그리고 모임사람을 이끌고 서울 시내를 비롯해 전국 여러 헌책집을 찾아다니려고 한다. 눈을 틔우고 생각을 깨우며 사랑을 속삭이는 책은 바로 헌책집지기가 먼지구덩이에서 땀흘려 캐낸 헌책 하나에 있다는 뜻을 펴려고 한다. 1998.1.6.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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