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두 애지시선 51
박승자 지음 / 애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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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1


《곡두》

 박승자

 애지

 2013.9.5.



  ‘게릴라성 호우’가 일본말인 줄 아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2019년에서야 이 말씨가 일본에서 스며든 줄 알아차렸습니다. 그렇다고 일본말이라서 안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갑자기 퍼붓는 비라면 예부터 ‘소나기·소낙비’라 했어요. 이런 말을 젖히고 굳이 ‘게릴라성 호우’라 해야 했을까요? 요새는 ‘물폭탄’ 같은 말을 쉽게들 쓰는데, 눈이 쏟아지면 ‘눈폭탄’이라 하려나요? 눈이 쏟아질 적에 ‘함박눈·큰눈’이라 했듯, 비는 ‘함박비·큰비’예요. 《곡두》를 읽으면서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은 자리를 되새깁니다. 이 땅에서 가시내라는 몸을 입고서 살아가는 이들이 으레 겪으면서 빠져들거나 잠겨야 하는 고단한 눈물자국이 곳곳에 번집니다. 그럴 만하다고, 이렇게 읊을밖에 없다고, 노랫가락을 펴는 말에서도 이런 근심이며 걱정이 묻어나겠다고 느낍니다. 이제 이 나라는 좀 달라질 만할까요. 글을 마음껏 쓰는 가시내가 하나둘 늘면서, 집일뿐 아니라 바깥일을 거뜬히 해내는 가시내가 차츰 늘면서, 비로소 이 나라에 따스한 손길이 퍼질 만할까요. 목숨을 품는 마음일 적에 나라살림도 마을살림도 집살림도 살뜰히 건사합니다. 우리 손이며 다리가 싱그러운 숨결인 줄 알아차리는 하루일 적에 모든 말은 노래가 되겠지요.



버스 문이 열렸다 / 아무도 내리거나 타지 않았다 / 열려 있는 문으로 / 무슨 이유인지 / 한 번도 이 고장을 떠나 본 적 없는 바람이 / 긴 망토를 펄럭이고 / 버스 안을 천, 천, 히 둘러보고 / 다시 내렸다 (시월/8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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