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31. 아무



  어릴 적부터 몸이 매우 여린 터라 아무 밥이나 먹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저를 보며 ‘가려먹는다’며 나무라기 바빴고, 밥상맡에서는 꿀밤에 지청구를 먹으며 눈물로 밥을 삼켜야 했습니다. 저는 왜 김치나 동치미처럼 삭힌 곁밥을 못 먹는지 모르는 채 얻어맞고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타고나기를 이런 몸인걸 어떻게 하라고, 그야말로 아무 길이 안 보였습니다. 그저 밥을 안 먹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인 몸으로 살아가는 이제서야 제 몸을 스스로 바라보며 살짝 느긋합니다만, 어릴 적에는 무엇을 먹는 일이 두려움투성이였어요. 어머니나 아버지는 어린 나를 헤아려서 값진 먹을거리를 애써 장만해 주셨는데, 또 처음 보는 먹을거리라며 저더러 맛보라고 힘써 들고 오셨는데, 또 이 먹을거리를 입에 넣자마자 게운다든지 며칠 동안 배앓이를 하면 어쩌나 걱정이었어요. 그리고 이 두려움하고 걱정 그대로 어릴 적에는 툭하면 게우고 배앓이를 했습니다. ‘가려먹는다’고 쉽게 말하지만, 몸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줄 살갗으로 느껴 처음부터 가로막는 셈은 아닐까요? 아무 밥이나 먹지 못하는 몸이지만, 어느 책이든 받아들여서 배우자는 마음을 키웠습니다. 몸은 못 받아들이는 일이 수두룩하지만, 마음으로는 모두 받아들이고 싶다는 꿈을 키웠어요. 어쩌면 거꾸로 간 셈일 텐데, 거꾸로인 마음이 싫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아무’ 꿈이나 꾸기보다는 ‘어떤’ 꿈이든 시나게 꾸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어 오늘 하루를 노래합니다. ㅅㄴㄹ



아무


네 선물이라면

언제나 반가워

아무 책이나 주지 않잖니

눈부신 이야기 사랑스러워


네 노래라면

한결같이 기뻐

아무 가락이나 흐르지 않으니

시원한 소리 아름다워


네 길이라면

어디라도 환해

아무 꿈이나 품지 않더라

의젓한 발걸음 힘차


네 말이라면

오늘이 새롭네

아무 뜻이나 펴지 않는구나

이 바람 먹고 눈뜬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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