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한테 왜 ‘패러디 동시’를 시키지?


어린이하고 동시를 즐기는 동시놀이는 언제나 새롭겠지. 어린이는 어른이 시키지 않아도 놀이를 하듯이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어린이는 ‘동시’란 이름을 몰라도 신나게 글놀이를 한다. 그러나 적잖은 어른·동시인·교사는 으레 아이들한테 “동시 베껴쓰기”나 “동시 흉내내기(패러디)”를 시키고 만다. 그들도 어린이로 살았으면서 정작 어른이란 몸을 입고서는 어린이 숨결을 잊은 셈이다. 어린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짓고 빚으면서 활짝 웃는데, 어른 흉내나 시늉을 하도록 내몰면서 어린이 날갯짓이나 활갯짓을 송두리째 꺾는 셈이다. 생각해 보라. 어른 흉내를 내면서 ‘패러디 동시’를 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글을 쓸까? 잘 쓰든 못 쓰든 스스로 제 삶을 제 나름대로 엮어서 이야기로 꽃피운 아이가 아니라, ‘잘 썼다는 추김질’을 받는 ‘어른 동시’를 고스란히 베껴서 쓰다가 흉내를 내야 한다면, 이 아이들 마음에 새로운 눈길이 싹트기 좋을까? 어른이나 어버이로서 아이들하고 글놀이를 할 적에는 꼭 하나만 하면 된다. 아이들이 어떤 글을 쓰든 모두 받아들일 노릇이다. 가끔 띄어쓰기나 맞춤법을 알려주면 되는데, 이마저도 거의 안 알려주면 된다. 아이 스스로 나이가 들며 스스로 다 알아차릴 테니, 일찌감치 띄어쓰기나 맞춤법을 가르쳐 줄 일도 없다. 그저 어깨동무하면 된다. 그저 어른이나 어버이 스스로 하루를 이야기 짓는 살림으로 누리면서 웃으면 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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