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서 떼쓰기



나고 자란 고장인 인천에 모처럼 느긋하게 와서 오랜 동무한테 전화를 했는데 고등학교 적 여러 동무하고 얽혀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어쩜 이렇게 그 나이에도 철이 없이 살아가려 하는지, 한숨보다는 눈물이 나왔다. 얘들아, 그 나이에 그렇게 놀면서 무슨 돈을 얼마나 거머쥐고 싶어서 그러니, 하고 묻고 싶더라. 이러다가 고등학교 적에 같이 교지편집부로 일하던 동무가 인천에서 사서 일을 한다는 말을 얼핏 들었고, 속으로 ‘그래 맞아, 예전에 그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하고 떠올렸다. 아, 우리 오랜 동무 가운데 인천에 고스란히 남아서 참하게 삶을 짓는 씩씩하고 멋진 녀석이 있구나! 인천에서 사서로 일하는 동무한테 오늘 아무리 늦게 일이 끝나더라도 내가 묵는 길손집 언저리로 와 달라고 살짝 떼를 써 보았다. 보름쯤 앞서 새로 낸 책을 줄 테니 꼭 와 주기를 바랐다. 안 오거나 못 올 수 있을 테지만 이렇게 말을 넣었는데, 저녁 열 시가 되도록 딱히 대꾸가 없어서 길손집에서 까무룩 잠들었는데 열한 시 넘어서야 닿을 수 있다고 한다. 기다리다가 또 잠들었지만 만났고, 짤막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기운을 얻는다. 어쩌면 이 기운은 스스로 길어올린다고 할 만할 텐데, 나는 우리 동무님이 시장이나 군수나 장관이나 대통령으로 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즐겁게 하루를 짓고, 기쁘게 살림을 노래하며 상냥하게 사랑을 꿈꾸고 따스하게 서로 안고 토닥일 줄 안다면 서로 하느님과 같다고 느낀다. 다만, 그래도 인천에서 이 밤하늘에 별은 안 보이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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