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쓰다



여느 날보다는 늦은 새벽 네 시에 눈을 뜬다. 여느 날이라면 밤 두 시에 눈을 뜬다. 어제 하루 어울린 이웃님을 돌아보면서 오늘 새로 할 일을 가다듬는데, 하루를 열며 어떤 이야기를 먼저 글로 남기려는가 하고 문득 바라본다.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우리 보금자리에서라면 우리 사랑님하고 어우러지는 길이 먼저라, 글보다는 세 사람을 으레 먼저 본다. 새벽에 일어나면 하늘을 먼저 보고, 밤에 눈을 감을 즈음에는 마음자리에 흐르는 별빛을 먼저 느끼려 한다. 가만히 따지면 글은 으레 맨끝이라 할 만하다. 삶이 꽃등이요, 살림이 꽃등이며, 사랑이 꽃등이라 할까. 내 손에서 피어날 글은 언제나 꽃다운 글인 꽃글이기를 바란다. 스스로 꽃글을 쓰자면 꽃눈으로 둘레를 볼 노릇이요, 꽃손으로 삶터를 가꿀 노릇이며, 꽃걸음으로 사뿐사뿐 다닐 뿐 아니라, 꽃치마이든 꽃신이든 꽃다이 차려입고 바람처럼, 아니 꽃바람처럼 휘휘 노래를, 아니 꽃노래를 읊을 노릇이겠지. 그러고 보니, 꽃글을 쓰고 모아서 꽃책을 엮어서 꽃이웃한테 살포시 건네면, 이 꽃책은 우리 살림자리에, 아니 우리 꽃살림에 꽃돈으로 돌아오겠구나 싶다. 스스로 꽃이 되기, 그렇구나. 먼저 쓸 이야기란 마음 가득 꽃넋을 채우기로구나. 꽃넋으로 꽃마음을 돌볼 줄 아는 꽃생각이기에 글 한 줄 한 줄에 포근한 숨결을 담을 수 있구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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