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싸다


책길을 걷는 책벗이 있다. 손위 언니라 할 책벗이고, 홀로 야무지게 책살림을 짓는 이웃님이다. 책살림을 짓는 자리를 옮기면서 묵은 책을 치우려 하는데, 이 묵은 책을 우리 책숲집에서 물려받기로 했다. 책벗은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크게 다쳤고, 책꽂이 열 칸에 이르는 책을 내가 싸야 한다. 오랜만에 책더미를 끈으로 묶으면서 흘리는 땀이 새삼스럽다. 내가 읽은 책도 있고, 아직 안 읽은 책도 있다. 책을 한창 묶다가 숨을 돌려 볼까 싶은데, 막상 한 다발만 더 묶고 쉬자는 생각을 하느라 삼십 분이 한 시간이 한 시간 반이, 이렇게 더 흐른다. 왜 못 멈추고 못 쉴까. 아무래도 글쓰기를 하는 재미 못지않게 책싸기를 하는 재미가 크니까. 이 알뜰한 책을 건사한 책벗이 책마다 담은 숨결을 느끼고, 이 책을 우리 책숲집으로 데리고 와서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면서 배울 숨결을 그린다. 쓴다. 싼다. 또 쓴다. 또 싼다. 땀방울이 구슬이 되어 이마를 타고 볼을 거쳐 턱에서 똑 떨어져 책다발에 꽃처럼 맺힌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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