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21. 꽃



  《우리말 동시 사전》을 쓴 숲노래한테 글을 하나 써서 주기로 합니다. 저 스스로 주는 글꽃이요, 우리 책숲집하고 보금자리숲한테 주는 꽃글입니다. 별이 돋은 밤에 책숲집을 다녀오는 길에 큰아이가 “아버지, 나무는 있잖아, 꽃이 지고 잎이 져도 꽃이 있어. 그게, 나무는 언제나 속에 꽃을 품고 살거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말꽃을 가만히 새기고서, 이 말꽃 한 마디에 살을 붙여 열어섯 줄을 빚었어요. 나무처럼, 할머니처럼, 열매처럼, 책처럼, 바람처럼, 무지개처럼, 빗물처럼, 흙덩이처럼, 해님처럼, 별빛처럼, 모두 속에 품은 고운 꽃이 있구나 하고 느끼는 살림길입니다. 언제나 서로 꽃이 됩니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는 꽃동무입니다. 꽃길만 걷는대서 꽃내음을 맡지 않아요. 가시밭길을 걷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흐르는 꽃을 헤아리면 언제나 꽃걸음으로 사뿐사뿐 나아가지 싶어요. 수렁길이나 늪길에서 헤매더라도, 벼랑길에서 아슬아슬하더라도, 고비길에서 갈팡질팡하더라도, 구석길에서 숨이 막히더라도, 다시금 마음속 꽃송이를 떠올리면서 두 다리에 힘을 내어 봅니다. 눈앞에 핀 꽃만 꽃이 아니라, 씨앗에 깃든 숨결도 꽃이요, 앞으로 자라나고 무럭무럭 퍼지면서 눈부시게 흐드러질 모든 노래도 꽃이지 싶어요. 오늘도 꽃마음이 되자고, 꽃손길로 꽃살림을 짓자고, 제 손에서 흐르는 모든 글이 꽃노래로 거듭나도록 하자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나무는 꽃 지고 잎 지며

겨울을 맞아 앙상해도

속으로 꽃을 품어

곱게 푸른 숨소리


할머니는 이 빠지고 주름지며

허리 꼬부랑 느릿걸음이어도

가슴으로 별을 담아

밝게 널리 숨빛


열매는 냠냠 짭짭 꿀꺽

우리가 맛나게 먹어도

작고 단단히 남기는

야물게 깊이 숨씨앗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 샅샅 꼼꼼 읽어도

마음으로 이야기 심어

새롭게 방긋 숨꽃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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