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서럽다
김수업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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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43


《우리말은 서럽다》

 김수업

 나라말

 2009.8.3.



흥정은, 파는 쪽에서 받겠다는 값을 내놓아야 손님 쪽에서 사겠다는 값을 내놓아야 시작할 수 있는데, 파는 쪽에서든 사는 쪽에서든 흥정을 해 볼 수 있도록 내놓는 값을 ‘금’이라 한다. (37쪽)


센 힘으로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앟도록 굵고 튼튼하게 만든 줄은 ‘바’다. 흔히 ‘밧줄’이라고 ‘줄’과 겹쳐 쓰지만, 씨름꾼의 샅에 매는 ‘샅바’는 그냥 ‘바’로 쓰는 보기의 하나다. (56쪽)


‘삶꽃’은 이른바 ‘예술’이라는 낱말을 버리고 바꾸어 쓸 만한 토박이말로 새로 만들어 본 것이다. ‘문학’을 버리고 ‘말꽃’으로 바꾸어 쓰니까 ‘예술’이 저절로 목에서 걸렸다. (95쪽)


‘우리 아버지’ 또는 ‘우리 마누라’ 하면 나와 아버지 또는 나와 마누라가 둘이면서 떨어질 수 없이 서로 깊이 사랑하여 하나를 이루어 살아가는 ‘아버지’ 또는 ‘마누라’가 되지만, ‘내 아버지’ 또는 ‘내 마누라’ 하면 그것은 곧장 아버지 또는 마누라를 내가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며 내 손 안에 쥐고 살아가는 소유물로 만들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171쪽)


국어사전이 ‘겨레’를 ‘민족’이라 하니까 사람들이 우리말 ‘겨레’는 버리고 남의 말 ‘민족’만 쓰면서, 남녘 한국에서는 ‘한민족’이라 하고 북녘 조선에서는 ‘조선민족’이라 한다. (265∼266쪽)



  태어난 아이가 말을 익히려면 둘레에서 말을 슬기롭고 올바르게 잘 써야 합니다. 둘레에서 엉성하거나 엉망으로 말을 한다면, 아이는 엉성하거나 엉망인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제 마음이나 뜻을 펴기 마련입니다. 학교라는 곳에서 엉성한 교과서를 쓰거나 엉망인 교사가 있다면 어찌 될까요? 아무리 엉성한 교과서에 엉망인 교사가 있더라도 배우는 이 스스로 슬기롭게 배울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엉성한 교과서에 엉망인 교사를 바꾸지 않으면, 엉성한 줄 모르거나 엉망인지 모르면서 그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냥 배워서 쓰는 말이란 없습니다. 그냥 배울 수 있는 길은 없어요. 아이가 수저질을 솜씨있게 하는 데에도 꽤 긴 나날이 걸려요. 아이가 안 넘어지고 걷기까지도 퍽 오래 걸립니다. 아이가 손수 밥을 짓기까지는 얼마쯤 걸릴까요? 손수 바느질을 하고, 손수 씨앗을 심어 논밭을 가꾸기까지 또 얼마쯤 걸릴까요?


  《우리말은 서럽다》(김수업, 나라말, 2009)를 읽다 보면, 글쓴이가 이런 이름으로 책을 쓴 마음을 헤아릴 만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삶은 참으로 오래도록 힘을 쏟아서 익힐 노릇인데, 정작 모든 삶에서 바탕이 되는 말을 제대로 익히려는 흐름이 매우 얕거든요. 더욱이 학교나 마을이나 나라에서도 말을 말답게 가꾸는 길에는 마음도 힘도 돈도 품도 안 쓰기 일쑤입니다.


  문학을 하려 해도 말을 익혀야 하고, 만화를 그리든 영화를 찍든 노래를 부르든 말을 익혀야 합니다. 수학이나 과학을 하려 해도, 정치나 행정을 하려 해도, 말이 없이는 못해요. 무엇보다도 배우고 가르치는 길은 늘 말로 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국말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말은 어디에서 어떻게 배울 만할까요? 사전다운 사전이 제대로 나온 적 있을까요? 중국 한문 말씨, 일본 말씨, 번역 말씨, 어려운 말씨, 자랑하는 말씨를 넘어, 삶을 가꾸며 짓는 바탕이 되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우며 즐거운 말씨로 가야겠지요. 이제부터라도.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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