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든 안 하든



  나한테 손쉬운 일이 그대한테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대한테 수월한 일이 나한테 빠듯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쉽게 읽어내어 헤아리는 책이 그대한테는 골이 아플 수 있습니다. 그대가 재미나게 읽으며 웃거나 우는 책이 나한테 따분하거나 밍밍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보다 잘하다 보니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일이 있습니다. 그대가 누구보다 훌륭히 하다 보니 늘 고스란히 이루어내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보다 즐기면서 곁에 잔뜩 쌓아 두는 책이 있습니다. 그대가 더없이 아끼면서 둘레에 한가득 쟁여 두는 책이 있습니다. 한다면 할 뿐이고, 안 하거나 못 한다면 안 하거나 못 할 뿐이겠지요. 하기에 더 뛰어나지 않고, 못 하거나 안 하기에 덜 떨어지지 않아요. 이 책을 읽어내거나 장만했거나 거듭 새긴대서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책을 손에 쥐든, 어떤 살림길을 걷든, 스스로 즐겁게 하면서 이웃 곁에서 너그럽고 푸진 마음이 되도록 하루를 다스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2018.7.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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