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까닭



  일본에서 하루를 묵은 어제 볼펜 한 자루가 사라지고, 머리핀 하나가 사라집니다. 파란병에 물을 담아 햇볕일 쪼일 적에 쓰려던 스텐잔 넷도 함께 사라집니다. 이 아이들이 어디로 왜 사라지는지 알 길이 없지만 감쪽같이 사라지더니 오늘 세 아이가 어디에선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등짐이며 길손집 곳곳이며 몽땅 뒤질 적에 안 나오더니, 틀림없이 없던 곳에서 얌전히 고개를 내밀어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런데 세 아이가 나타나더니 글막대가 새삼스레 자취를 감춥니다. 낮에 스미노에공원에서 무릎셈틀을 쓰고 나서 틀림없이 천주머니에 넣었는데, 이 아이는 또 어디로 숨었을까요? 여러 살림이 숨바꼭질을 놀듯이 이리 숨었다가 짠 나타나고 저리 숨었다가 짜잔 하고 나타나는군요. 놀자는 뜻으로, 즐겁게 삶을 바라보자는 뜻으로, 그리고 더 마음을 기울여서 상냥하게 살림을 짓자는 뜻으로, 조용히 숨었다가 깜짝 놀래키듯 나타나리라 여기면서 바라보기로 합니다. 2018.7.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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