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일까



  경기 시흥에 있는 대교HRD센터라는 곳에서 사흘 동안 배움마당을 누렸는데, 이때 이 건물 한켠에 ‘신입사원 연수’를 온 새내기 일꾼이 잔뜩 있더군요. 그런데 이들 새내기 일꾼은 남녀라는 모습으로 다를 뿐, 옷차림이 몽땅 같습니다. 사내는 위아래 까만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 가시내는 까만 치마에 흰 블라우스. 머리카락조차 사내는 사내대로 가시내는 가시내대로 모조리 같습니다. 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이분들을 얼핏 스쳐 지나가면서 ‘다 똑같은 사람들이네’ 하고 느꼈어요. ‘누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가슴에 이름표를 달지 않고서는 이름을 알기 어려울 테고, 가슴에 단 이름표 없이는 어느 누구한테서도 ‘다른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는 학교하고 감옥하고 군대에서 똑같이 마주하는 모습입니다. 학교·감옥·군대는 사람마다 다 다른 모습인 개성을 죽여서 똑같이 다룹니다. 옷을 똑같이 입히고 밥을 똑같이 먹이며 터를 똑같이 맞춥니다. 이러면서 모두 똑같은 이야기(교과서나 설교나 훈련)를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요. 여기에 회사라고 하는 곳도 똑같은 얼거리로구나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나라에서 학교·감옥·군대·회사는 한통속입니다. 더 살피면 학교·감옥·군대·회사에다가 정부(공공기관)까지 틀에 가두는 한통속이 되겠지요. ‘나’라고 하는 숨결이 흐르지 못하는 곳에서 저마다 다른 꿈이나 사랑을 키울 수 있을까요? ‘나’라고 하는 넋을 스스로 찾지 못하도록 가두거나 지우는 곳에서 일하거나 배우는 이들이 ‘나’를 참답게 바라보도록 북돋우는 책을 손에 쥐기 쉬울까요? 우리 삶터는 ‘똑같은 지식’을 담은 ‘똑같은 책’을 ‘똑같은 눈’으로 읽어서 ‘똑같은 줄거리’로만 외우게 다그치는구나 싶습니다. 옷을 맞추려면 틀이 아닌 삶에 맞출 노릇입니다. 삶맞춤 아닌 틀맞춤으로 나아간다면, ‘읽는눈’이 쪼그라듭니다. 2018.7.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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