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4.26.


《이누야샤 14》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학산문화사, 2002.6.25.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이누야샤》를 고이 건사하려고 깨끗한 새책으로 하나씩 다시 장만해서 천천히 새겨서 읽는다. 어느덧 열여섯째 이야기까지 건사했고, 곧 열일곱째 이야기로 갈 텐데, 열넷째 이야기는 예전에 보았을 적에도 요즈막에 새로 보았을 적에도 새삼스럽다. 이누야샤 언니인 셋쇼마루가 ‘숨을 살리는 칼’을 처음으로 휘두른 대목은 셋쇼마루가 스스로 한 가지를 새로 깨달으며 배우는 삶을 보여준다. 타카하시 루미코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 만화처럼 대단하지 싶은데, 바로 《이누야샤》 열넷째 이야기에서 이를 더 짙게 느낀다. 바늘 아닌 칼에 푹 찔려서 죽을 고비에 이르러도 한결같이 차갑기만 한 셋쇼마루를 움직이는 힘이란 무시무시한 칼힘이나 주먹힘이 아니다. 따스하며 보드라운 손길이다. 철이 덜 든 이누야샤를 일깨우며 스스로 배우도록 북돋우는 힘도 언제나 따스하며 보드라운 손길이다. 카고메가 동무랑 이웃을 살리는 힘도 늘 따스하며 보드라운 손길이다. 키쿄우가 처음에 마을을 지키며 품을 수 있던 힘이었으나 스스로 잃은 힘도 노상 따스하며 보드라운 손길이다. 어떤 힘이나 재주도 ‘따스하며 보드라운 손길’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를 누가 어떻게 알아차려서 어떤 삶을 짓느냐를 이 만화가 밝힌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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