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느티나무 서재) &gt; 만나기 어렵도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category/4559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불의에 물들지 않는 사람으로 살되, 불의한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다만 불의한 사람을 긍휼히 여겨라.[前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 이대규 교수]</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5 May 2012 12:09:42 +0900</lastBuildDate><image><title>느티나무</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83902183702004.jpg</url><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category/4559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느티나무</description></image><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승리의 2012년에 본 영화 '세 얼간이' - [세얼간이 - 인도판]</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63372</link><pubDate>Wed, 18 Jan 2012 0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633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06450656&TPaperId=536337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25/71/coveroff/93064506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06450656&TPaperId=53633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얼간이 - 인도판</a><br/>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 마드하반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12월<br/></td></tr></table><br/>&lt;네 재능을 좇아가면 성공이 따라온다&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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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방금 세 얼간이라는 발리우드 영화를 봤다. 작년에 이 영화 보고 좋았다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꽤 있었으나, 정작 나는 영화에 그다지 취미가 없는지라 건성으로 '기회가 되면 봐야지'하는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가 책읽기가 가끔씩 지겨워지는 요즘, 저녁에 컴퓨터로 내려 받아서 볼 만한 영화가 없나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또 누가 '세 얼간이'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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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강추'를 받고도 당장 영화를 보지 못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며칠 동안 이런저런 일이 있기도 했었지만, 인도 영화에 대한 나의 선입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 또래의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을 텐데 1990년대 중반이었나 우리나라 극장에 거의 처음으로 인도영화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제목은 '춤추는 무뚜'. 줄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상영시간 내내 끊임없이 (인도스러운(?)) 흥겨운 춤과 노래, 과장된 대사와 몸짓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이 영화가 재미있다는 사람도 많았으나, 나로서는 낯설다는 느낌 이외에는 헛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내용 전개 때문에 실망만 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인도 영화라고 하면 이 '춤추는 무뚜' 이미지가 떠올라 인도 영화는 뭔가 줄거리는 엉성하고, 내용 전개가 과장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래도 아무튼 ‘강추’하는 사람 덕분에 세 얼간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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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우려와는 달리 세 얼간이는 무척 재미있었다. 물론, 세 얼간이에도 인도 영화 특유의 흥겨운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이야기는 과장된 전개가 계속되니, 이에 따라 낭만적인 해피엔딩의 결론도 당연한 듯 했지만, 영화 '세 얼간이'의 주요 배경이 되는 인도 대학(의 현실은 우리나라의 문제와 비슷한 점도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공대(ICE)의 학장에게 대학을 '공장'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주인공 '란차다스(이하 란초)'의 항의는 마치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의 현실을 두고도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흥겨운 장면에 몰입하다가도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는, 나에게는 소위 말하는 개념 찬-게다가 재밌기까지 한-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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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영화는 대학 시절 늘 어울려 다녔으나, 졸업 후에 어디론가 사라져서 지금껏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란초'라는 친구가 만나러 가면서 그를 회상하는 줄거리이다. 란초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연락을 받은 '파르한'과 '라주'는 '란초'가 있는 곳을 찾아간다. 이후 이들은 란초와 함께 보낸 대학 시절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란초와 파르한, 라주는 한 방을 쓰게 되면서 금세 친해진다. 이들이 세 얼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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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인도의 명문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은 대학의 불합리한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데 별다른 이의가 없지만, 오로지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대학에 들어온 '란초'는 이 불합리한 체제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또한 지적 성취를 위해 공부를 하는 태도와 사회적 성공보다는 자기 재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란초'의 생각은,&nbsp; '란초'와 어울리는 두 친구에게 조금씩 영향을 준다. 결국 아버지의 반대로 사진작가의 꿈을 접었던 파르한은 '란초'의 도움으로 사진작가가 되고,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라주'는 '란초'의 영향과 도움으로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또 정직하고 당당한 태도로 면접시험을 보고 나서 원하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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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이들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란초가 있는 곳을 찾아갔는데, 란초는 어느 시골에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의 란초를 떠올린 이들은 재능을 좇아 큰 성공을 거둘 것 같았던 란초가 초라한 시골의 초등학교의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의아했지만, 사실 란초는 본명이 푼스크 왕두라는 이름의 유명한 공학자- 특허가 400개나 되고, 일본 정부가 그의 실력을 두려워하는-라는 사실이 이내 밝혀진다. 결국 란초는 대학 시절의 자기 말대로 자기의 재능을 좇아 살았고, 사회적인 성공이 그를 따라온 것이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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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사실, 영화를 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것인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은 우리나라 청춘들의 고민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일치한다면야 더 없이 행복하겠지만, 그런 복 받은 사람은 그리 흔치는 않을 것 같고, 그렇다면 대부분의 청춘은 자신의 꿈과 성공 사이에서 갈등할 수&nbsp; 밖에 없다. 어쩌면 청춘에 이런 고민이야 당연한 일이 아닐까도 싶고! 그런데 사실, 꿈과 성공을 두고 갈등하는 정도라면 적어도 그리 불행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는 경우니까. 그런 고민과 불안과 방황의 시간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 주니까. 그게 청춘 시절의 과업이기도 하니까. 그런 통과의례를 거쳐야 더 성장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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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진짜 안타깝고 불행한 경우는 아예 하고 싶은 일이 없거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는 때이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아직 고등학생-대학생이라고 크게 달라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이라 더 그런 것이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내 꿈은 무엇이다, 라고 말하거나,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대부분이 평범한 인간인지라 꼭 어떤 부분에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또 모두가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는 건 아닌 듯하다. 그냥 다 고만고만하지 않나?) 나의 꿈이냐 사회적 성공이냐를 선택하고 싶어도 우선 내 꿈이 무엇인지를 자신도 모르는 상황이니 이보다 답답한 노릇이 어디 있을까? 그러면 우리는 정작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미친 듯이 공부에만 매달려 있을까? 왜 학교에서는 오직 공부만, 성적만을 강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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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학생들도 이미 성적이 잘 나오면 대학도 학과도 골라서 갈 수 있다는 교사들과 부모들과 사회의 감언이설(감언이설)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그러니까 이제는 모두 무엇을 잘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뒤를, 옆을, 보려는 순간 경쟁에서 탈락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한번 경쟁에서 탈락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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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내가 볼 때는 언제부턴가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의 유령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서서히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이젠 공포가 내면화되어 있다.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따라서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의 근거는 무엇인지, 그 근원은 무엇인지, 무엇보다도, 그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찾아보려는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 기능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러니 공포에 감염된 우리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무작정 남들이 달리는 만큼 달려야만 마음이라도 편해지는 것이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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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는? 영화 세 얼간이에서 가장 주체적인 삶을 살고 주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란초는 친구들에게 두려운 상황에 맞딱뜨리면 "알 이즈 웰"을 외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마음은 원래 겁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을) 속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알 이즈 웰’이라고 외치는 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문제를 해결해 나갈 용기를 주기 때문이란다. &lt;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gt;이니 미리 겁먹지 말고, &lt;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하면 가볍게 마음을 속이고 외쳐&gt; ‘알 이즈 웰’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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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세상이 영화처럼 쉽게 풀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래도 두려움이나 불안함도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한 번쯤은 그 마음을 속여 볼 필요도 있겠다. 이 영화를 본, 모든 청춘들에게 ‘알 이즈 웰’을 외쳐볼 것을 권한다. 혹시,&nbsp;불안한 우리 마음이 속을 지도 모르지 않는가?&nbsp;그 때 우리는 현실에 맞서는 용기를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청춘들의 건투를 빈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25/71/cover150/9306450656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06450656</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길은 여기 있다. 한 걸음 더 앞으로! - [교육 불가능의 시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00858</link><pubDate>Fri, 23 Dec 2011 2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008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03414&TPaperId=530085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44/13/coveroff/89966034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03414&TPaperId=53008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교육 불가능의 시대</a><br/>오늘의 교육 편집위원회 기획, 엮음 / 교육공동체벗 / 2011년 10월<br/></td></tr></table><br/>&nbsp;0. 먼 길을 가는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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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이 리뷰는 약간 길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잘 쓴다고 누가 칭찬해 주는 글도 아닌데 싶어 아무렇게나 쓰고 말지 싶다가도, 이런 글쓰기를 내 생각의 조각들을 이어붙이고 쟁여두는 기회로 삼으려는 욕심에 이왕 쓰는 글, 좀 다듬어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읽은 책도 좋다. 교사인 내 가슴을 한동안 먹먹하게 만든 책, 교육공동체 벗에서 나온 &lt;교육 불가능의 시대&gt;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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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면해 온 교육에 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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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때때로 부침이 있긴 했지만, 나름 틈나는 대로 지난 20년 동안 책읽기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뭐 취미 삼아, 놀기 삼아 해 온 책읽기라 처음부터 발전이라는 개념이&nbsp; 있을 리 없다. 별로 분야를 한정하지도 않았고, 책 읽는 수준도 대체로 교양 입문서 수준에서만 수년 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그래도 별로 아쉬움이 없으니 천상, 영혼이 게으른 탓이다.) 다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내 책읽기의 큰 졸가리는 시, 소설 같은 문학책, 사회과학 입문서나 인문학 교양서, 그리고 교육에 관한 책으로 묶어 볼 수는 있겠다. 내 직업(고등학교 국어교사)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책을 읽을 때면 갈래 자체에 재미가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마음의 힘을 덜 들이고 읽을 수 있어 한결 편하다. 인문 사회과학 도서는 말 그대로 취미로 읽는 것이라 쉽게 읽히면 좋고, 어려우면 밀쳐두고 다른 책으로 건너뛰고, 이도저도 아니면 안 읽어도 그만일 때가 많으니 문학책보다도 더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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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그런데 교육학 책을 고르고, 또 읽을 때는 마음이 좀 다르다. 이런 종류의 책들이 주로 비판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부정적 교육 현실에 내 책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 현장에서 몸으로 때우는 나 같은 사람이 볼 때 저자들의 현실 인식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좀 있었다. 아마도 교육에 관한 책을 읽는 내 태도는, 책의 내용을 ‘나와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읽는 동안 긴장감도 높아지고,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머릿속으로는 계속 저자의 허점만 찾으려고 든다. 그러니 책을 읽어도 마음이 불편한 거야 당연하다. 그래도, 초임 교사 시절에는 이런 교육학 관련 책을 부러 찾아 읽기도 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부터 교육학 관련 책은 더 이상 찾아 읽지는 않게 되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왜 그럴까, 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해 본 적도 없는데, 글을 쓰면서 찬찬히 생각을 해 보니, 한마디로 교육학 책은, 재미가 없다,로 답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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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내가 생각할 때 교육학 책이 재미가 없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대체로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나누어 말할 수 있다. 먼저, 저자가 교육 현장에 있는 경우에는 다음의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자신의 교육활동을 실천한 사례를 소개하는 경우이거나, 둘째, 자신이 본 학교(교육) 현실의 어느 한 면만을 부각시켜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내용의 책은 나 같은 게으른 사람에겐 몹시 부담스럽다. 선생님의 넘치는 열정이야 훌륭하지만, 이미 제 분수를 잘 알게 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다. 두 번째 내용의 책을 읽을 땐 마음이 몹시 답답하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학교도 부정적인 면이 많이 있긴 하지만, 결국 그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학교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나는 눈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는 적당한 핑계거리와 반론 찾기에 더 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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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반대로 저자가 (중등) 교육 현장에 있지 않은 경우는 문제점의 진단이나 대안 제시 등에서 아무래도 현장 감각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항상 그들의 주장은 옳지만-그건 나도 안다-, 그 쪽으로 가기 위한 실천의 내용은 빈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나마나한 소리, 너무나 이상적인 결론, 누구도 이르는 길을 모르는 ‘신세계’를 읽고 나면, 오히려 읽기 전보다 더 마음이 힘들다. 물론 현장 밖의 관찰자는 교육 현장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도 있으면서도 현장 전체의 상황을 점검하면서 문제를 파악해 갈 수도 있는 입체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읽은 교육 관련 책들은 대체로 그런 장점보다는 앞서 지적한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내가 억세게 운이 나빴거나, 책을 고르는 안목이 아직도 형편없는&nbsp;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는 시나브로 조금씩 교육에 관한 책에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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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런데, 교육 불가능의 시대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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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거의 1년쯤 전이었나 싶은데, 오늘의 교육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교육공동체 운동의 출발을 알리는(함께 하자는) 메일이 나에게도 왔었다.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해지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내 열정과 수년 째 학교 현장에서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던 내가, 제 무능력은 보지 못하고, 한동안 참여할까를 두고 제법 고민을 했었더랬다. 무엇보다도 이름을 올린 선생님들의 면면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살면 나는 행복할까? 아, 명단에 올라온 저런 선생님들과 함께 배우고 공부할 수 있다면, 나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교사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거기에서도 교육 운동의 취지를 알리는 이계삼 선생님의 글을 얼핏 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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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며칠을 고민 끝에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내가 답장을 보내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만들자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국은 이대로 현실에 안주하고 싶다’로 귀결될 수 있겠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그래서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나’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지금의 이 안온한 일상이 깨어지는 것도 불안했다. 다시 불편한 마음으로, 새로 시작하는 교사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내 마음 한편으로는 강렬한 유혹이 되어 나를 기웃거리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강력한 장벽이 되어 나를 되돌아서게 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다시 한 번 운이 나쁜 결정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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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그렇게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다 알라딘에서 ‘교육 불가능 시대의 교육’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됐다. 책 한 권 읽는 것쯤으로 안온한 일상이 흔들릴 여지가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주저 없이 책을 사서 읽었다. 첫 번째 글부터 읽는다. 제목이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다. 이계삼 선생님의 글이다. 이 선생님의 책은 작년에도 읽어 본 적이 있다. 녹색평론사에서 나왔던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으로 교사로 살아간다면, 좀 불행하게 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작년에 주변 선생님들 중에 이계삼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이 계셔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이계삼 선생님도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좋아한다고 하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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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교육 불가능의 시대,에서 세 분의 글을 특히, 집중해서 읽었다. 이계삼(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 이미연(아이들은 실패할 권리가 있다), 안준철(이계삼 선생님께) 선생님의 글이다. 세 편의 글을 읽는 동안 가르친다는 것의 본질적 의미를 회의하는 선생님의 글에 내 가슴을 먹먹해지거나, 그래도 순정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거나나, 무려 30년 동안 아이들과 사랑에 빠져 있는 노(老?) 선생님의 편지글에 따뜻함을 느끼면서, 앞으로 나도 어떤 교육 철학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아마도 교육 불가능성을 말씀하시는 한 선생님과 교육 희망론을 실천하는 다른 두 선생님의 생각, 그 어디쯤에서 여전히 서성대고 있을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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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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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글은 잘 읽히는데 책갈피를 넘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읽은 곳을 곱씹어 다시 읽기 때문이다. 쉽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가 없는 글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의 불가능성을 이렇게 전면적으로 단언하는 주장을 내가 읽은 적이 있었나 싶다. 아마 내 기억에는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모임이나 강연에서 귀동냥으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교사들의 습관 같은 상투적인 푸념 같은 것이기도 했고, 속내를 터놓은 친구끼리 술김에 할 수 있는 말이지-그래 놓고는 또&nbsp; 내일 수업해야 한다면서 일찍 들어가려고 한다-, 이렇게 단도직입으로 정색하며 교육의 절망감에 대해, 또 교육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글을 읽으며 마음이 답답하지 않을 독자는 별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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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이제 그저 껍데기뿐인 학교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국가는 학교에 교육비를 내려 보낼 것이고, 교사들은 월급을 받아야 하고, 부모는 아이들 맡겨야 하며, 아이들은 그래도 졸업장은 받아 두어야 하니깐.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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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이 부분은 날마다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학교의 모습을 정리하면서, 학교가 왜 이렇게 살풍경한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를 짚어본 후에 저자가 오늘날 학교의 미래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런 현실을 두고도 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어설픈 희망가는 오히려 이런 절망적 현실이 유지되는데 도움만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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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적당히 썩은 상태면 그 제도는 적당히 썩은 상태로 완전히 썩기 전까지 유지된다. 썩은 상태를 개선하려는 대부분의 시도는 썩은 상황을 지연시킬 수는 있으나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난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이런 시도 때문에 썩은 상태는 썩은 채로 더 오래 계속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기에 현실을 외면하는 희망가의 당위론은 썩은 구조의 유지에 봉사하는 것일 뿐이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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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그러니, 오히려 우리는 절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더디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학교’라는 존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저자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학교는 인문학과 농업이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학교로 홍성의 풀무학교나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덴마크의 사회 경제적 구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국민고등학교의 모델을 우리나라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공부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말처럼, 교육의 불가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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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 이 책을 읽고 난 다음날, 우울한 상태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모두 엎드린 채로 나를 맞이한다.(?) 하긴 이번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잠든 아이들을 깨우는 것이 수업의 첫 번째 일이다. 이 책에서 말했던, 오늘날 고등학교는 ‘여관’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기말시험이 끝났기 때문일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생각해 보니 시험을 치기 전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이랬다. 단지,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왔을 것이라는 짐작만 바뀌었을 뿐!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 더욱 더 내가 교실에서 슬퍼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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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벌써 10년도 훨씬 더 지난 옛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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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이미연 선생님의 글을 읽고,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났다. 내 첫사랑들! 야생의 본능적인 에너지로 자신을 순치시키려던 세상에 맞서 싸운 친구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요컨대, 이건 내 첫사랑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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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1999년의 3월, 나는 어느 공업계 고교로 발령이 났다. 과별 정원을 채우기 위해 1월말까지 입학생을 추가로 모집했던-한 반에 복학생이 무려 12명이나 되었던- 그 반이 나의 첫 ‘우리 반’이었다.(기존에 그 학교에 있던 교사들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고, 신규 교사 중에 군필한 남자교사가 온다는 정보를 듣고 학교는 덜컥 나에게 담임을 맡겼다.) 나는 새내기교사였다. 의욕은 넘쳤으나 멈출 줄을 몰랐고, 사랑도 넘쳤으나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교사였던 셈이다. (지금도 별로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아직 교사가 아니었던 교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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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그래도 나는 그 녀석들을 따라 2학년, 3학년 담임을 맡았다.(학교에서는 내가 예상 외로 2학년, 3학년 담임을 연거푸 신청하자 웬 횡재냐! 싶었을 것 같다.) 내가 녀석들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는 그 3년 동안 치열하게 싸웠다(고 믿는다). 나는 아이들을 길들이려고 했고, 아이들을 내가 만든 울타리 안에 가두려고 했다. 그게 그 때 당시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녀석들은 한 번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野性)’ 그대로였다. 그것으로 세상과 맞서 온전히 자신을 지켜온 녀석들이라 순치시키려는 나에게 저항했고, 갇힌 울타리를 뛰어넘으려고 했다. 나는 그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나는 더 철저한 교사가 되어갔고, 그들은 나를 애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어정쩡한 학생이 되어갔다.[글이 좀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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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내가 그들을 달리 보게 된 것 그들이 3학년이 되어서였다. 해마다 학기 초가 되면 여느 때처럼 반복되는 운동장 아침 전체 조례를 하다말고 나는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조례 준비를 위해 어정쩡하게 기다리는 아이들을 줄 세우기 위해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 소리는 ‘교사’의 말이 아니었다. 마치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짐승을 다루는 듯 한 말투와 습관적으로 내뱉는 ‘이 XX', '저 XX', 'XX' 등이 아이들을 향해 던지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는 나에게 던지는 말 같았다. 나는 그 길로 교무실로 올라와 버렸다.(이 때부터 전체 조례에는 잘 안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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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nbsp;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와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것에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전체 조례에 대해서만 해도 그랬다. 정기적으로 전체 조례가 있는 것에도 문제의식이 없었다. 부임 첫해에는 질서의식이라곤 없고, 단체행동에 대한 개념도 없는 우리 반 애들이 정말 답답하고 한심해 보였다. 부임 둘째 해에는 대충 줄만 잘 서고, 죽은 듯이 입만 다물고 있으면 15분이면 끝날 전체 조례를 45분으로 만드는 녀석들도 한심하지만 학교도 저런 애들 데리고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싶어서 의아하고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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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그런데 그 어느 조례 시간에 나는 깨달아 버렸다. 수 십 년이 지나도 학교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이 말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학교는 안 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학교가 자기 학교의 학생들을 먼저 사람으로, 인격체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그것을 간파하고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아는 사실을 교사들은 저들의 행동을 직접 보고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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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아무튼 우리가 같이 3학년이 되자 서로의 관계는 조금 더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우여곡절이야 많았지만, 결국 함께 보낸 3년의 시간이 쌓인 덕에 서로를 조금은 더 알게 됐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언어에서 악의(惡意)를 지울 줄도 알았고, 그들은 나의 말에서 진심을 엿보기도 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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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3학년 1학기가 끝났다. 드디어 녀석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현장실습 기간이었다. 이때부터는 취직하면 학교는 졸업식 때까지 안 나와도 된다. 녀석들은 지긋지긋하던 학교에서 해방될 수 있고, 저희들은 꽤 크게 느낄 법한 돈도 벌수 있는 지라 실습을 많이 기다린다. 처음엔 별 마음이 없더라도 교실에 하나둘 자리가 비기 시작하면 덩달아 들뜨기 시작해서 대부분 현장실습(취업)을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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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nbsp;3학년 2학기는 취업을 나가지 않는 소수의 학생만 데리고 수업을 하고, 실습 나간 학생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격려와 부탁, 그리고 허위 취업이 아닌지 감시(?))를 알아보기 위해 현장방문만 1-2번만 하면 된다. 우리 반은 상대적으로 실습생이 적어서 다닐 곳이 많지는 않았기에 아이들에게 2-3번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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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nbsp;대체로 실습생을 받아주는 기업은 영세 중소기업이 많았다. 주로 대도시 공단지역에서 밀려나 임대료가 더 싼 반촌반도 지역의 중소 공단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주소를 보고 찾아가면, 녀석들이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 시골 논밭 주변의 덩그런 공장에서 청춘들이 땀 흘리기엔 동네가 너무 심심하고 따분하게 느껴진다. 나도 이런 분위기가 무척 낯선데, 녀석들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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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내가 공장 마당 한 쪽에 차를 대고 허름한 사무실을 찾아가면 대체로 낯선 사람들을 몹시 경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에서 왔다고, 실습생들 현장 점검 나왔다고 하면 그제야 얼굴이 조금 풀리면서 보통은 일하러 나온 학생들을 칭찬한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녀석(들)이 나온다. 내 눈에는 녀석이 입고 있는 작업복이 영 낯설었다. 녀석이 수줍게, 그러나,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이후 잠깐 우리끼리만 있을 수 있는 시간공이 허락된다. 녀석은 학교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더 어른스러워야 하는데, 담임에게 시시콜콜 일러바치는 고자질쟁이가 돼 버렸다.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반신반의하면서 녀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녀석들은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가 가장 궁금한 모양이다. 안부를 묻는 친구들의 소식은 전해줬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끝에 녀석들이 차를 타러 나오는 나를 배웅한다. 나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인 것만 같아서 좀 죄스럽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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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분노’에 치를 떨었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듣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단어는 “착취”였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지만, 머릿속은 ‘착취’라는 단어만 둥둥 떠다녔다. 다시 한 번, 녀석들의 때에 절은 헐렁한 작업복과 낡은 작업화와 땀투성이 얼굴이 떠올라서 먹먹했다. 실습생이라고 부르고, ‘현대판 노예’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알고 보니 ‘신참’이라는 이유로 온갖 허드렛일은 다 시키면서도, 실습생이니까, 어리니까, 일을 잘 못하니까, 몇 달 안 있을 거니까,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는 기업이 태반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면 다른 학교의 실습생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음 해 실습생을 받아서 메꾸면 된다는 생각했을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안 주고도 잡역부를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좋은 제도가 바로 ‘현장실습’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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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그 때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처음으로 내 아이들과 온전히 한 편이 되었다고 믿었는데, 학교로 돌아와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갔다. 물론 내가 일했던 학교는 더욱 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실습생을 요청하는 회사의 팩스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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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학생들이 일하러 나간 현장에서 학교로 돌아올 경우 학교는 이유를 불문하고 ‘징계’를 했다. 이런 경우를 처벌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무단이탈 사례가 속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다음해 그 기업으로 후배들이 일하러 가기 힘들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학생들이 못 버티고 뛰쳐나올 공장이라면 사실 관계를 먼저 파악해 보고, 다음 해에는 안 보내는 것이 더 옳은 것이 아닐까?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할 문제였는데, 학교란 존재는 도대체 머리가 없는 괴물인지 지난해에 썼던 공문을 꺼내 와서 날짜만 바꾸고 다음 해에도 바보 같은 짓을 그대로 하고 있다.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올해도……이럴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법보다 무서운 게 관례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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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그랬거나 말았거나 시간은 또 어김없이 흘렀고, 아이들은 졸업을 했다. 눈물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녀석들이 졸업하는 날, 난 의외로 담담했다. 준비했던 영상편지를 보여주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을 땐, 살짝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들이 떠난 오후, 교실에 앉아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는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 나는 녀석들을 사랑했던 것일까? 그 때는 희미하게나마 그렇다, 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내 사랑에 대한 생각도 잊었던&nbsp; 어느 날, 나는 문득 책상에 앉아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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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방학입니다. 
&nbsp;&nbsp; 날도 무척 찌는데, 오늘은 학교에 일찍 출근했습니다. 8시 30분쯤에 학교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교무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창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에어컨 없이 하루를 지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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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좀 지나니까 아이들이 까불락거리며 올라왔습니다. 모두 다 까맣게 탄 얼굴인 거 있죠! 저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서로 생글거리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물어봤습니다. 역시 저나 아이들 모두 학교-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를 벗어나고 보니 한결 여유도 있고,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학교가 저나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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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모처럼 만난 얼굴들과 반가운 인사를 하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만 나눠서 청소를 하는데, 여학생이 한 명이라 여직원화장실 청소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조금 툴툴거리더니만 곧잘 하고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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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아이들이 청소할 때 저도 자동판매기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매일 운영을 해야 하니까 그냥 재료를 넣고, 물을 받아서 채우고, 겉이나 컵이 나오는 입구를 중점적으로 청소하는데, 방학이기 때문에 전원을 끄고 자판기 속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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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자판기엔 커피와 프림, 그리고 설탕이 각각의 통에서 한 곳으로 모이는 깔때기 같은 곳이 있고, 거기에서 섞여 다시 물과 만나게 되는 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열기와 불순물을 빨아들이는 흡입관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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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각각을 떼어 내어 교무실 세면대에 담가서 엉겨 붙어서 굳어있는 커피 가루를 씻어냈습니다. 그러나 워낙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것이라 잘 풀리지 않더군요. 처음에는 딱딱한 물건의 모서리에 탁탁 쳐서 그 충격으로 딱지들이 떨어지도록 했습니다. 어떤 것은 쉽게 떨어지지만 그래도 효과는 적었습니다. 그래서 건조기에 굴러다니는 젓가락을 이용해서 커피가루가 굳어진 딱지를 떼기도 했는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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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그냥 물에 담가두었다가 나중에 보면 자연스럽게 녹겠구나’는 생각이 든 건 한참 후였습니다. 그 물이 따뜻하면 더 잘 딱지를 떼 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딱지가 떼 지는 게 아니라 어쩌면 흔적도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버릴 수 있겠죠. 정수기의 물을 받아 세면대에 부속품을 놓고 돌아서는 순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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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우리 아이들의 상처도 따뜻한 물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평범한 사실을 말입니다. 제가, 오랜 세월동안 상처받은 우리 아이들의 상처 딱지를 강제로 떼어 깨끗하게 만들려고 모서리를 치고 젓가락을 휘둘렀던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nbsp;&nbsp; 자판기 부품들이 충분히 담길 수 있는 물처럼 저나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 주변의 삶과 생활에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그 아이들이 바람직하게 행동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아이들의 상처도 스스로 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물에 자연스럽게 풀려버리는 커피가루처럼, 넉넉하고 지속적인 그런 관심과 애정이 아이들의 응어리진 상처들을 흔적을 남기지 않고 고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이 차갑지 않고 따뜻하면 더욱 좋은 것처럼, 우리가 쏟는 관심이나 애정이 따뜻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적당한 눈높이라면 더욱 좋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nbsp;
&nbsp;&nbsp; 평범하지만-누구나 다 머릿속으로 알고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실천하기 정말 어려운- 사실을 오늘 또 한 번 깨우친 날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깨우치고 마음을 다잡아 가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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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정도가 없는 여행길에 오른 느낌입니다. 날마다 깨우치는 보람으로 아이들과 함께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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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첫날에 / 느티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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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생뚱맞은 말이겠지만, 나와 아주 질기고도 찐한 ‘사랑’을 나누었던 그 녀석들이 졸업하고 나서야 문득 저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글을 썼던 2002년 8월은 녀석들이 졸업하고 6개월이 지났을 때다. 글을 쓸 당시에는 아직 한참 어려서 잘 몰랐지만, 가끔 읽게 되는 지금은 자꾸 그 때 아이들이 생각나서 미안해진다. 그 때 젊은 선생이었던 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가? 이건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지금의 내가 다시 그 아이들을 만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도 정직하게 말한다면, 아닐 수도 있다, 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아직 갈 길이 먼데, 항상 일상에만 안주하려는, 게으름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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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길은 두 선생님의 사이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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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어떤 존재를 30년 동안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쩌다 가끔 보는 존재들이 아니라 하루에 잠든 시간을 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을 늘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한 만큼 오롯이 그 사랑을 나에게 되돌려 주는 존재들도 아니고 자꾸 내 품을 벗어나 딴 곳으로 한눈을 파고드는 사람을 그렇게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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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예전에-벌써 7,8년 전이로구나- 안준철 선생님을 직접 뵙기 전에는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 ‘아무리 교사는 이렇게 생각해도 그 반 아이들의 생각은 좀 다를 거야’ 라는 생각을 했었다. 외람되지만 아이들에게 잔잔히 스며들어 있는 선생님의 일상을 보면서 좀 ‘가식적’인 거 아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선생님이 책으로 펼쳐 놓으신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모든 교사들이 꿈꾸는 유토피아 같았으니까. 너무나 이상적이었기에 척박한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는 결코 생겨날 수 없는 세계 말이다.
<BR>
&nbsp;&nbsp; 그 때 우리 동네 전교조지회에서 강연을 부탁드렸더니 순천에서 달려 오셨더랬다. 늦은 시간 뒤풀이 자리까지 여전하시던 소박한 웃음, 따뜻하게 건네는 이야기…… 겸손하게, 어떤 질문에도 조곤조곤히 말씀하시던 모습을 보면서, 아마 학교의 아이들에게도 이 모습 그대로 대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비로소 혼자 했던 오해(?)가 풀렸다. 만나는 아이들을 제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게 하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선생님이 진정으로 부러웠다. 지금 교육 불가능을 말하는 학교 교육에서 선생님은 소중한 ‘희망의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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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정년이 5년 밖에 안 남은 늙은(?) 남교사가 여전히 열일곱 여덟, 여학생들과 연애(?)을 한다. 그것도 그냥 해 보는 장난 같은 게 아니라, 자기의 전 생애를 건, 순정을 다 바치는 연애다. 연애를 할 때 사람이 변한다. 부족한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고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어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둘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물리적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에너지이다. 어쩌면, 교사도 학생도 그럴지 모른다. 학교가, 교사가, 공부가, 취업이, 세상이…… 어떠니 저떠니 떠들어도 제 갈 길을 묵묵히 가는 선생과 먹머루빛 눈망울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만나고 있는 한 쉽게 절망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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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한 교사는 교육 불가능성을 말하고, 다른 교사는 교실 희망론을 몸으로 ‘증거’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은, 두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이 같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방향에 대해 말하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 그러니, 그것이 절망이라고 말하든 희망이라고 말하든,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금과는 다른 학교를 상상해야 하고, 그런 학교를 현실에서 짓기 위해 모색하고 실천하고 연대하는 노력도 필요할 뿐 아니라, 오늘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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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이게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이다. 길은 여기 있다. 게으름을 떨치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44/13/cover150/899660341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03414</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그의 예언이 다시 한 번 적중하려는가? -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283459</link><pubDate>Fri, 16 Dec 2011 19: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2834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8685&TPaperId=528345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21/46/coveroff/897184868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8685&TPaperId=52834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a><br/>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br/></td></tr></table><br/>&nbsp;&nbsp; 난 김어준을 사진(화면)으로 볼 때마다-실제로 본 적은 없다- 지상렬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nbsp;자기애가 무척 강한 지상렬!(지상렬은 개그맨이지만, 원래 성격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처럼 보인다.) 약 한 달전쯤의 이 책을 사서 며칠동안&nbsp;정독했다. 대체로 심각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다가, 맨 끝에는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nbsp;그러나 그는&nbsp;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생각되던 책의 표지 디자인이 다시 한 번 보게 됐다. 분명 이런 책표지 디자인은 저자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nbsp;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봤다. 흠, 조금 더 잘생긴, 자기애가 강한 지상렬로 수정해야겠다.&nbsp;
&nbsp;
&nbsp;&nbsp;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상담글을 묶어서 낸, '건투를 빈다'를 재미있게 읽었었다. 연재할 때부터 신문에서 챙겨 읽었는 주요 기사였으니, 책이 나오고 나서&nbsp;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권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남자 한동안 한겨레 지면(紙面)에선 뜸하더니, '내가 만난 여자' (제목이 정확하지 않다.)라는 글을 띄엄띄엄 연재하길래 또 반가웠다. 황수정, 신정아 등 우리&nbsp;사회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 여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nbsp;담았다.
&nbsp;
&nbsp;&nbsp;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지난&nbsp;7월부터 꾸준히 들었다. 특히 여름 밤에 걷기 운동을 할 때 지루해서&nbsp;그 전까지는 MP3로 음악을 들었는데, 나꼼수를 알게 되면서부터 평균 2번씩 반복해서 들었다. 어떤 날은 내가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나꼼수를 듣는가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나꼼수를 듣는 재미를 위해 운동하러 나서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nbsp;
&nbsp;&nbsp; 그리고 다시 한참 후,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라는 책이 나왔다.&nbsp;'나꼼수'에서 다 했던 이야기라는 평이 들려 살까 말까 망설이기 했지만, 그래도 듣는 것과 읽는 것은 또 다른 것이겠지 싶어서-사실 인터뷰 녹취록이니 글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다-&nbsp;사서 읽었다.&nbsp;예상대로&nbsp;나꼼수에서 말했던 내용이 많아서, 그 특유의&nbsp;말투가 생각나서 혼자서 킬킬거린다. '명랑시민 정치교본'이라는 부제가 딱 맞는 말이다. 그래도 내용도&nbsp;하나도 놓칠 수 없는 법! 나는 정독(精讀)했다.&nbsp;그리고 그 결과 희미하나마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다. 
&nbsp;
&nbsp;&nbsp;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랬다. (아마 4월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nbsp;&nbsp; 후배 선생님과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년 대선은 어떻게 될까요?" 나한테 이렇게 묻길래, "지금 이대로라면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럼 야권에서는 누가 나올까요?" "지금으로서는&nbsp;손학규가 유력하겠지만,&nbsp;그가 나오면 대선에서는 정동영 정도의 표를 얻는데 그치지 않을까? 만약 손학규가 민주당으로 나오면 진보진영에서는 후보 단일화의 압력은 더 적어질테니 완주는 할 것 같은데"&nbsp;"문재인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nbsp;자신이 권력의 최정점에 서야겠다는 강한 욕망(의지)를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잖아? 게다가 아직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로 내 놓은 게 없으니까... 정말로 정치를 시작하려는지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는 걸" 뭐 대충 이런 뻔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말하는 나도 기운이 쑥 빠지곤 했다.
&nbsp;
&nbsp;&nbsp; 그런데 이 책 이후로 조금씩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워낙&nbsp;역동적인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이 최근엔 확&nbsp;달라지기도 했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nbsp;예언이 아주 빠른 시간에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결과로 확인하면서,&nbsp;이 책을 본&nbsp;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하지만, 이 불의한 시대를 살아야하는&nbsp;평범한 사람들&nbsp;각자는&nbsp;대체 어떻게 해야할 바를 잘 모르던- 뭔가 큰 욕구들이 이들의 '쫄지 마, 씨바'라는 외침에 따라&nbsp;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nbsp;
&nbsp;&nbsp; 이 책은 5월 6일부터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우리 정치의 현실과 전망에 대해 묻고&nbsp;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이에 대답한 녹취록을 글로 옮긴 것이다.&nbsp;김어준은 이 책에서&nbsp;자신만의 철학으로 좌우파의 구분부터 시작해서 '가카'의 주요 재테크 꼼수를 폭로하기도 하고, 진보 진영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인물 비평,&nbsp;보수주의의 본질과 박근혜에 대한 인물 비평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야기 전개 과정의 필요성&nbsp;때문에 곳곳에 말한 그의 '예측'이 어느새&nbsp;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nbsp;'문재인의 부상'과 '안철수의 등장'(이건 안철수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안철수가 정치판에 등장하면 기존 정치권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지지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nbsp;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 체제'와 '나꼼수의 대박'이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
&nbsp;
&nbsp;&nbsp; 책을 뒤적이다가 이&nbsp;질문에 답할 수 있는 김어준의 말을 찾아보았다. 먼저, 진보 보수를 나누고 세계를 이해하는 스탠스를 찾는 걸 설명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nbsp;
&nbsp;&nbsp; "내가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면서 순간순간 경험으로 터득한 건데, 그러니까 근본은 없어. 어쨌든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내재적 속성을 직관과 통찰로 발견한 거라고 난 주장하는 거지, 일방적으로"(33쪽)
&nbsp;
&nbsp;&nbsp; "정치를 이해하려면 결국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으로는 안 된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 그 모두를 동시에 같은 크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섭해야 한다. 나는 통섭한다."(292쪽)
&nbsp;
&nbsp;&nbsp; 그가 표현한 대로 말하면, '좀 재수없긴'하지만, 일단 예측의 결과는 그의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아무튼 '잘난' 사람이라니까!)&nbsp;그런데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다시는 그 사람 책은 안 볼 것 같은데, 김어준이니까 이런 게 좀 밉지가 않다고 해야 하나.(본인은 싫을라나? -귀엽다.)&nbsp;아무튼 잘난 사람이 나 잘났어, 라고 하는데, 뭐 어때? 쿨하게 넘어가야지. 
&nbsp;&nbsp; 마지막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하나만 더 기억해야 할 단어는, 바로 '사람'이다. 김어준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도 말하고 있듯이&nbsp;자신의 직관과 통찰력은 타고난 균형감각 덕분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가 만난 사람들&nbsp;사이에서 순간순간 경험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nbsp;
&nbsp;
&nbsp;&nbsp; 그럼 이제 내가 본&nbsp;희망의 한 대목에 대해서 말해 보려고 한다. 
&nbsp;
&nbsp;&nbsp; 구조와 프레임을 통찰하지 못하고 구체적 삶과 인간이 없는 균형 감각이란 그렇게 허망한 거야. 이건 그나마 숫자로 제시하니까 그의 균형이란 게 얼마난 웃긴 줄 아는 거야.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구체적 삶을 충분히 겪지 않아 생기는 한계는 자명해. 그래서 구체적 삶이란 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어떤 구체적 삶을 살아왔는가가 결국 그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박근혜는 그런 과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69쪽)
&nbsp;
&nbsp;&nbsp; 여기서 한창 유행하던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북한은 못 하는 게 없고, '가카'는 안 해 본 게 없고, 박근혜는 할 줄 아는&nbsp;게 없다." 여기서 할&nbsp;줄 아는 게 없다는 것이 어떤 큰 정치적 결정이나 판단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구체적 삶을 겪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한계가 자명하다면? 일말의&nbsp;희망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보진영이 늘 지적해 왔던 '이미지만 있'다, '수첩 공주'다, '3분 이상 발언하지 못한'다, '컨텐츠가 없'다,는 지적의 변종일까?&nbsp;

&nbsp;
&nbsp;
&nbsp;&nbsp; 결국 이번 대선과 관련해 보수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인물은 박근혜밖에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우리의 이명박이 있다. 정확하게는 퇴임 이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이명박의 생존 본능이. 이 두 가지의 큰 힘이 앞으로 1년 반 동안 한나라당을 매우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빠뜨릴 것이다. 특히 이명박의 생존 본능은 정상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한나라당에게조차 해가 되는, 희한한 복마전을 펼쳐낼 것이다. 두고 봐라.(291-292쪽)
&nbsp;
&nbsp;&nbsp; 그러나, 박근혜의 한계-이 책에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분명 박근혜는 아직도 가장 유력한 차기대통령이 아닌가-만으로는 진보 진영이 다시 집권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김어준은&nbsp;X 맨이 한 명 더 있다고 말한다. 바로 '가카'다. 아마 박근혜의 한나라당은 우리 '가카'의 생존 본능 때문에 더 망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강력하게 예언한다. 지금(2011.12.15.) 그의 예언이 현실이 되어 가는 것일까, '가카'의 친인척들로, '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 문제'와 '한나라당 쇄신책'을 둘러싸고 몹시 시끄러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가 드디어 전면에 나선다.
&nbsp;
&nbsp;&nbsp; 지금까지 대체로 적중했던 그의 예언이 이 마지막 예언에서 다시 한 번 적중할 것인가? 
&nbsp;&nbsp; 나에게 이런 기대감이 생긴 것만으로도 이 책에&nbsp;들인&nbsp;값이 아깝지&nbsp;않다.&nbsp;아니 너무 싸다.
&nbsp;
&nbsp;
사족
&nbsp;
"소설을 쓰고 있네", "여기까지는 팩트고 지금부터는 소설입니다." 흔히 듣는 말이다. 앞에 말은 대체로 비하의 의미가, 뒤에 말은 자기 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nbsp;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이란 무엇인가? 바로 그럴 듯한, 현실에서 있음직한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또, 소설의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nbsp;사건과 사건의 인과성이다. 그러니 대체로 좋은 소설은 현실의 '데자뷰'일 수 있다. '나꼼수'의 더 멋진 소설 쓰기를 기대해 본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21/46/cover150/897184868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8685</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당신과 똑같군요" - [나의 서양음악 순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270480</link><pubDate>Sun, 11 Dec 2011 02: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2704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2127&TPaperId=527048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87/67/coveroff/89364721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2127&TPaperId=52704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서양음악 순례</a><br/>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1년 11월<br/></td></tr></table><br/>&nbsp;......만만치 않았던 역사적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한 재일 조선인이 서양미술이라는 도구를 훌륭하게 써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다듬어낸 이 책이 내 마음을 울렸다.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책과 인물,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던 기억이 새롭다. 더구나 내가 읽었던, 서경식 씨의 앞에 두 책(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유려한 문체도 조금은 맛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의 다음 미술 순례가 기다려진다. 
&nbsp;
&nbsp;&nbsp; 위 글은 2006년 여름에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고 내가 쓴 감상문의 끝부분이다. 이후에도 꽤 여러 권 그의 미술 순례기를 읽었다. 그런데, '서양미술 순례' 만큼의 감동이 없었던 탓인지, 글쓰기에 대한 내 게으름이 더욱 깊어진 탓인지 그의 순례기를 읽고도 흔적 한 번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갓 나온, 미술이 아닌, 음악 순례기를 읽고 다시 내 마음이 흔들거렸다.
&nbsp;
&nbsp;&nbsp; 처음 책이 나왔다는 광고를 봤을 때는 음악 순례라고 해서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다가, 책을 사고 나서는&nbsp;반신반의하다가, 책을 읽으면서는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책을 덮고는 꼭 리뷰를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nbsp;이 리뷰를 쓰기 전에 물론, 내가 서양미술 순례를 읽고 쓴 리뷰를 읽어 봤는데, 내가 썼던 글에서 미술을 음악으로, 고흐를 말러나 윤이상으로 바꾸면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대신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밝혀두지만, 이 책이 '서양미술 순례'에서 살짝 사고의&nbsp;도구만 바꾼 그런 태작(怠作)이 아니다.)
&nbsp;
&nbsp;&nbsp;&nbsp;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그의 생각은 지난&nbsp;30년의 시간 동안 전혀&nbsp;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nbsp; 서양미술을 찾아 방황 같은 순례를 혼자서 다녔던 30대 때나&nbsp;아내와 여름이면 잘츠부르크음악제를 다니며 서양음악에 듣는 예순을 앞둔 그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30대의 그와 지금의 그가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평생을 붙잡아 둔 '재일조선인'이라는&nbsp;정체성 문제가 여전히 그에겐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어쩌면 변할 수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투표하기/포토리뷰/밑줄긋기/마이리스트 --><!-- 투표 기간 --><BR clear=all>
&nbsp;&nbsp; 당연히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음악, 그&nbsp;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작곡가, 연주가, 청중 등),&nbsp;문화, 사회, 정치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nbsp;이 책에서 꽤 길게 소개하고 있는 윤이상의 경우나, 특히 유대인인 작곡가 말러의 경우가&nbsp;특히 그렇다.&nbsp;
&nbsp; 
&nbsp;&nbsp; 내게는 삼중의 의미에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인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이어서, 독일인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어서, 지상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대인이어서.
&nbsp;
&nbsp;&nbsp; 잘 알려져 있는 말러의 말이다. 와인의 취기가 약간 오른 나는 이 말을 F에게 해주면서 "그런 그가 분열된 존재인 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고 덧붙였다. "당신과 같군요....." F가&nbsp;바로 말을 받았다. 그녀도 약간 취한 걸까. (257-258쪽)
&nbsp;
&nbsp;&nbsp; 이미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저 구절이 저자&nbsp;자신이 평생 동안 짊어지고 걸어왔던 분열된 자기 존재에 대한&nbsp;고백이라는 것을. 게다가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내려놓을 수 없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사실을. 길게는 태어나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짧게는 자아의식이&nbsp;생기면서부터 스스로에게 던진,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지금&nbsp;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그 질문을 안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nbsp;그러니 그는 운명적으로&nbsp;변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nbsp;
&nbsp;&nbsp; 일본에서도 이름난 에세이스트답게 늘 그의 문장은 정확하면서도 단정하다.&nbsp;그러나, 나는 그의 글을 읽는 동안 제법 힘든 시간을 보낸다. 이 책뿐만 아니라 그의 책은&nbsp;늘 그랬다. 책을&nbsp;덮고 나면 글쓴이의 깊은 고뇌가&nbsp;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그의 고뇌는 좋은 문장에서 나온 예민한 감성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더 날카롭게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아릿한 아픔 같은 통증을&nbsp;남긴다.&nbsp;통증으로 내 마음이 출렁거린다.&nbsp;이 출렁거림이 평온해지려면 적어도 며칠은&nbsp;걸린다. 그러다가 통증은 가라앉고 평온해진다.&nbsp;파문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영원하다. 언젠가는 다시&nbsp;그의 책을 다시 펼치는 날, 그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는 날이면&nbsp;어김없이&nbsp;평온한 마음이 다시 출렁거리는 날이 올 것이다. 더 자주, 더 많이 그런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nbsp;
&nbsp;
* 사족 같은 나의 클래식음악 이야기
&nbsp;
&nbsp;&nbsp; 이 책에 나온 저자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나도 똑같이 느낀 적이 있다. 또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처음 만나게 되는 계기나 환경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몇 가지 적어 두고 싶다. 서경식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일반적 편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기에, 그리고 스스로 그 음악 속으로 걸어 들어갔기에 그 음악을 이해하고 자기 인생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일반적 편견에 머물렀기에, 그래서 그 음악에 다가갈 생각이 없었기에 지금은 이 음악에 무지하고 인생의 좋은&nbsp;벗을 사귀지 못한 느낌이다. &nbsp;
&nbsp;
1. 어느 날 갑자기 꽤 큰 전축이 거실에 들어앉았다. 아마 1층 슬라브 집에다가 2층을 올려서 우리가 살면서 부모님이 사 놓으신 듯하다.&nbsp;당연히 부모님은 클래식은 고사하고 그 때만 해도 겨우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트로트만 흥얼거리셨는데, 거금 200만원-지금 생각해도 거금인데, 그 때가 80년대 말이었으니-을 들여서 양쪽 스피커가 내 허리까지 오는 전축을 장만하신 거였다.
&nbsp;&nbsp; 시커먼 전축에서&nbsp;세상의 모든 노래가 들을 것 같은 기세등등한 날도 잠시였고, 곧 버튼식 유리문 틈으로 먼지만 켜켜이 쌓여 있는 듯 없는 듯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nbsp;그래도&nbsp;내가 제일 많이 전축문을 많이 여닫은 사람이었다. 대중가요 LP를 사기도 했지만, 국악 LP(황병기의 '미궁'을 샀었다), 클래식LP(그래봐야 피아노 소품집이나 베토벤 소나타곡)도 사서 들었다. 물론 동생들은 아직 어렸고 그런 LP를 듣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nbsp;
2.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음악 시험으로 클래식 음악을 듣고&nbsp;그 음악의 제목을 쓰는 게 있었는데, 그 시험 때문에 골랐다가 하이든의 현악 4중주에 빠져서 카세트 테이프를&nbsp;닳도록 들었다. 물론, 비발디의 '사계'도 열심히 들었다.&nbsp;물론, 그 때도 우리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은커녕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작은 관심도 보인 사람은 없었다. 물론 우리 집 거실에 전축은 있다는 사실도 잊혀진지 오래였다.
&nbsp;&nbsp; 그 때 우리나라에서 제법 유명해진 '리차드 클레이더만'이라는 피아노 연주가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 사람의 피아노 연주곡도 듣게 되고, 문화적 기반이라고는 전무한 대도시 변두리 학교 환경에 한 반에 한두 명이 될까 말까하는 연주곡을 듣는 그런 특이한 취향의 친구들에게 피아노 연주곡에 대해 귀동냥을 하기도 했다. 그 때는(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술술 얘기하는 친구들이 부럽다기보다는, 놀라웠다. (아쉽게도 고등학교 때 기타 말고 다른 악기를 다루는 친구를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nbsp;
3. 대학의 1학년 2학기 예술 분야의 교양수업으로 고른 과목이 서양 음악의 이해, 였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 과 교수님들이 가르치시는 영화나 연극에 대한 이해 같은 수업을 골랐는데, 나 혼자서만 그 수업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업에 대한&nbsp;기억은 없고, 기말고사로 지금까지 들었던 음악을 들려주고 음악의 제목을 써내는 시험만 기억이 난다.(그 때 답을 제대로 써내지 못해서&nbsp;장학금-그 때 당시엔 사범대생들은 재학생의 70% 정도가 장학금을 받았다-을 받는 게 위태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수업은 제대로 안 들었으면서 시험 문제만 탓했던&nbsp;못난 기억과 함께 1학년 2학기 교양수업이 끝났다.&nbsp;
&nbsp;
4. 그 이후로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접해 본 적이 없다. 음악이 나를 찾아온 적도, 내가 그 음악의 매력에 끌려서 다가간 적도 없다. 그러니 나는 서양음악에 대해선 백지다. 어떤 대상에 대해 무지는 상태는 대체로&nbsp;그 대상에 대한 편견을 낳는다. 내가 서양음악에 대해 가진 편견과 똑같은 생각을 이 책은 이렇게 정리해 놓았다. 
&nbsp;
&nbsp;&nbsp;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중산층 이상이 아니면 클래식음악을 즐길 수 없고, 악기를 구입하거나 어릴 적부터 전문가에게 배우고 음악학교에 진학해서 해외유학을 가기도 하는, 음악가가 되기 이한 문화적 투자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산층의 세계와 클래식음악의 세계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죽이 잘 맞는다. 중산층의 계급성을 부정하는 건 클래식음악에 대한 동경도 부정하는 셈이 된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62쪽)
&nbsp;
&nbsp;&nbsp;나는&nbsp;사회과학적 지식이나 사회적 인식이 지극히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클래식에 대한 내 감정은 막연히 저 정도였다.&nbsp;난 지금도 여전히 저 정도의 인식 수준에 머물고 말았는데, 서경식 씨는 이미 오래 전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nbsp;
&nbsp;&nbsp; 그 무렵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중산계급의 세계와 클래식음악의 세계는 죽이 잘 맞는다. 하지만 양자를 등식으로 묶을 순 없다. 예컨대 모짜르트는 궁정과 귀족의 비호를 받았기에 수많은 명작을 작곡할 수 있었지만 그 곡들은 귀족사회의 가치관을 훨씬 뛰어넘는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음악은 어쩐지 불가사의하지 않은가.(69쪽)
&nbsp;
&nbsp;&nbsp; 결정적으로 그는 음악의 힘을 꿰뚫어 보았으며 음악을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음악과 평생의 좋은 친구가 된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부럽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87/67/cover150/893647212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2127</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너에게 '백석'을 권한다. - [정본 백석 시집]</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253299</link><pubDate>Sat, 03 Dec 2011 02: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2532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272X&TPaperId=525329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8/48/coveroff/895460272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272X&TPaperId=52532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정본 백석 시집</a><br/>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 문학동네 / 2007년 02월<br/></td></tr></table><br/>&#160;&#160; 언젠가 어느 분의&#160;페이퍼에서 "너에게 수영을 권한다"라는 제목을 보고 따라 들어갔었다. 그 때 한창 수영(水泳)을 배우려던 때라 눈에 번쩍 띄였다. 그런데, 수영이 시인 김수영일 줄이야! 어쨌든 그 페이퍼 때문에 김수영 시집까지 새로 사게 되었다.(예전에 샀던 정지용시전집, 김수영시전집(민음사)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손으로 흘러 들어간 지가 10년이 넘었다.)&#160;
&#160;&#160; 다시 펼쳐든 김수영의 시집. 그러나, 숱한 시인들의 격한 찬사와 칭송을 받고 있는 김수영의 시집은 내가 읽기엔 아직 문턱이 높았다. 흔히&#160;모더니즘 경향이라고 불리는 초기 시들은 더 읽기가 힘들었다. 몇 차례 건너 뛰며 읽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러니 더욱 시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160;어느새 불탔던 독파의 욕구는 금방 식어버렸고, 날마다 조금씩 책을 펼치는&#160;시간이 줄어들다가, 다음에는 책을 펼치는 날이 적어지다가, 어느 날은,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며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는 서가 한 귀퉁이에 '멋있게' 꽂았다.&#160;꽂혀 있다, 지금도!&#160;
&#160;&#160; 김수영을 펼쳤던 비슷한 시기, 그 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160;백석시집도 읽으려고 정본 백석시집을 사서 학교에&#160;들고 다녔다.(읽는 책은 늘 들고 다니며 학생들에게&#160;자랑 겸 소개한다.) 사실, 백석 시집이야 집에도 두어 권 꽂혀 있지만, '정본'이라는 말에 끌려서 다시 서점에서 샀다. 제법 익숙한 시집을 야금야금 읽어가면서 평소처럼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소개도 하고 그랬었는데, 어느 날인가 책이 없어졌다. 분명 수업시간에 들고 갔다가 교탁에 둔 것 같은데,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몰라서 애가 탔다. 며칠이 지나도 책이 돌아오지 않자&#160;부끄러움을&#160;무릎 쓰고&#160;교내 메신저를 이용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으나 결국 소식이 없었다.&#160;&#160;
&#160;&#160; 그리고는 한 동안 백석 시집을 잊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잃어버린 시집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을 했는데, 잊을만하면 꼭 한 편씩 백석의 시가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160;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여우난 골족'이니 '여승'이니 '고향'이니 하는 시는 차치하고서도 적어도 대여섯 편은 넘을 것 같다. 그러니&#160;잃어버린 시집이 머리에서 잘 지워지지가 않았다.(잡았다가 놓친 물고기가 가장 크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160;할 수 없이 다시 '정본 백석시집'을&#160;샀고, 며칠 동안 자기 전에 시를 읽었다.&#160;시집을 읽는 밤이 모처럼&#160;행복했다. 그리다가, 맨 마지막 구절에서 울컥!&#160;&#160;
&#160;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160;
&#160;&#160;&#160;&#160;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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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올해 1년 동안 문제풀이용 지문으로 나온 백석의&#160;시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시렸다가 뜨뜻해지곤 했다. 그래서 유독 백석의 시를 읽을 때면 내 목청이 커지곤 했다. 가르치는 내가 아무리 핏대를 세웠어도 녀석들은 시인이 말하는 가난함이,&#160;외로움이, 또, 쓸쓸함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를 것이다. 왜, 내가 백석의 시를 읽을 때 더 큰 목소리를 냈는지도 모를 것이다. 아니,&#160;내가 그랬다는 사실도, 심지어 저희들이 백석의 시를 읽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것이다.&#160;그래도 먼 훗날 어느 한 때,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어느 날,&#160;우연히 어쩌면 운명처럼 이 시와 조우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그 날이 오면, 그 녀석도 오늘의 나처럼 백석의 시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옛날에 멀뚱하던 내가 오늘 이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올해 읽은 시 몇 편을 백석시집에서 골라 기록해 둔다. 
&#160;&#160; 이미 익숙한 구절인데... 처음 백석의 시집을 읽었을 때도 여기서 울컥, 했는데. 그 때가 이미 10년 전인데...&#160;나는&#160;여전히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짧은 시 구절에서 만금(萬金)에 값하는 위로를 받는다.&#160;나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대목에 잠시 기대서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160;그래야 다시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이 삶을 견뎌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굳센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가난하고&#160;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휴식은 주어져야 공평한 일이라고 믿는다.
&#160; <br />



&#160;&#160; 선우사(膳友辭)<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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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160;&#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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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16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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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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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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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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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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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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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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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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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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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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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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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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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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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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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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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세상 같은 건 밖에나도 좋을 것 같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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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반찬 친구(에 대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시. 화자는 마음 맞는 친구, 나와 닮은 친구만 같이 있으면 세상 밖으로 나가 살아도, 아니면 세상의&#160;눈 밖에나더라도 나더라도 좋다고 한다. 이런 친구와 함께 있으면 '가난해도 서럽지 않'고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고 한다. 매일 먹는 밥이나 반찬 같이 늘 내 같이 있으면서 나를 닮은 친구,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나는 그런 친구가 있나? ...... 화자가 부럽다. 비록 반찬 친구일지라도!&#16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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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북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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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서행시초 2<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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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거리에는 모밀내가 났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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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부처를 위한다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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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어쩐지 향산(香山)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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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국수집에는 농짝 같은 도야지를 잡어 걸고 국수를 치는 도야지 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믄드믄 백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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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러미 바라보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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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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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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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소수림왕(小獸林王)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을 생각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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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나라는 망했지만, 그 나라의 백성들은 여전히 오늘도 그 땅에서 살아간다. 이는 일제에 강제병합된 '조선'이라는 나라뿐만 아니라, 오랜 옛날에 망한 나라 고구려의 유민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비록 또 다시(?) 나라 잃은 백성이 되었지만, 그 옛날 만주 벌판을 내달리며 씩씩한 기상을 뿜던&#160;조상들의&#160;후손이 여전히 이 땅에 살고 있음을 이 시는 보여준다. 이들은 털도 안 뽑은 고기를 한 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160;화자는 이 백성들을 보며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는 것이다. 나라의 이름과 상관 없이 우리 민족-조상-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사는 사람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으리라. 그러면서 그 지역(북신)에 있었던&#160;고구려의&#160;전성기 시절의&#160;왕들을 생각한다.&#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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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적막강산&#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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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오이밭에 벌배채 통이 지는 때는
&#160;&#160; 산에 오면 산 소리
&#160;&#160; 벌로 오면 벌 소리&#160;

&#160;&#160; 산에 오면
&#160;&#160;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160;&#160;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br />

&#160;&#160; 벌로 오면
&#160;&#160;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160;&#160; 갈밭에 갈새 소리<br />

&#160;&#160;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160;&#160;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160;&#160; 정주 동림 구십여 리 긴긴 하룻길에
&#160;&#160;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160;&#160;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160;&#160; 화자는 산길을 혼자 걷고 있다. 오늘은 정주 동림으로 가고 있다. 이 길은 오가는 사람이 없는 산길이다. 그러니 '적막강산'이라고 했다. 화자가 이런 적막한 산길을 걷고 있는데&#160;그런데 의외로 산 속에서 온갖 새소리들이 들려온다. 산길을 조금 벗어나 들판으로&#160;나와도 다시 새소리가 들려온다.&#160;적막하(다고 생각했)던 산속길이&#160;이런 새소리 때문에&#160;들썩거린다. 그러나 화자 자신은 주변의 이런 들썩거림 때문에 오히려 '나 홀로' 있음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주변 상황과 반대로 화자의 외로움이 심화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는&#160;'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라는 말로 끝을 맺는데, 나는 저 구절이 어쩐지 '내 마음이 무척 적막하노라'로 읽힌다.
&#160;&#160;

&#160; 멧새소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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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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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명태(明太)는 꽁꽁 얼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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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명태(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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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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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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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明太)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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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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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160;&#160;&#160;해가 저물고 날은 차가운 겨울 저녁에 어느 집 처마 끝에 매달아 둔 명태가 꽁꽁 얼었다. 이 명태를 본 화자는 이 명태가 자신과 무척 닮았음을 느낀다. '길다랗고 파리한' 모습과 '길다란 고드름'이 달린 처지가&#160;같기 때문이다. 아마도 화자 자신도 추운 겨울 같은 세상을 고드름을 잔뜩 매달고 꽁꽁 언 채로 살아가고-아니면 명태처럼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160;그러니 명태를 보면서 더욱 '서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제목은 멧새 소리일까?
&#160;








南新義州 柳洞&#160; 朴時逢方&#16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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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160;&#160;
<br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br />
<br />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br />
<br />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br />
<br />

바로 날도 저물어서, <br />
<br />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br />
<br />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br />
<br />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br />
<br />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br />
<br />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br />
<br />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br />
<br />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br />
<br />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br />
<br />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br />
<br />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있다. <br />
<br />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br />
<br />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br />
<br />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160;&#160;&#160;
<br />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br />
<br />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br />
<br />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br />
<br />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br />
<br />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br />
<br />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br />
<br />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br />
<br />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br />
<br />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br />
<br />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br />
<br />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br />
<br />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br />
<br />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br />
<br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160;

&#160;
&#160;&#160; 지금도 내 책상의 유리판 밑에 고이 모셔져 있는 이 시. 언젠가 알라딘의 페이퍼에도 옮겨 놓은 시다. 살다가 기운이 없을 때면 늘 펼치게 되는 시가 또 바로 이 시다. '굳고 정한 갈매나무'로 살고 싶다는 다짐을, 그렇기에 바위 옆에 외로이&#160;눈을 맞고 서 있을 수 있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도록 해 준다. 다른 길은 없다. 굳고 정하게 살려는 모든 것은 외로이 눈을 맞으며 서 있을 수 밖에 없다.&#160;&#160;
&#160;
&#160;&#160; 그러니까 나는 다시 이 어설픈 리뷰를 쓰게 된 계기가 된 그 구절로&#160;돌아가 곱씹어 본다.&#160;&#160;
&#160;


&#160;-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160;&#160;<br />
&#160;&#160;&#160;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8/48/cover150/895460272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272X</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답이 안 나오는 현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 [갈보 콩]</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451943</link><pubDate>Thu, 20 Jan 2011 01: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4519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6371&TPaperId=445194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32/15/coveroff/89392063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6371&TPaperId=44519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갈보 콩</a><br/>이시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06월<br/></td></tr></table><br/>&#160;&#160; 우연히 이시백의 전작, 누가 말을 죽였을까,를 읽고 실컷 웃었던 적이 있었다. 현재의 농촌 현실을 맛깔난 충청도 사투리로 슬쩍 찌르고 눙치는 솜씨가 압권이었다.&#160;읽는 내내 킥킥거렸고 책을 덮고 나서는 마음이 착 가라앉아서 자꾸 생각을 나게 하는 소설이었다. 당연히 주변의 지인들에게 멋진 소설이라고&#160;여러 번 권하기도 했다.&#160;&#160;
&#160;&#160; 그런 작가가 새로운 소설집을 냈다. 야릇한 제목의 갈보 콩. 사실 소설집이 나온 지도 몰랐는데, 알라딘에서 놀다 보니 우연히 알게 됐다. 이번 소설에서도 전작에서처럼&#160;충청도 사투리의 맛은 농익은 감칠맛이 난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자꾸&#160;소리내서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사투리 표현력에 있어서는 권정생 선생님의 '한티재 하늘'에 나오는 경북 사투리와 함께 최고다. 경북 사투리가 인물의 생각을 단선적이고 직선적으로 표현해서 아주 효율적인 느낌이라면, 충청도 사투리는 의뭉스럽고, 능청을 떨면서도 상대방의 헛점을 찾아 정확하게 찌르는 느낌이다. 아마튼 이시백 소설에서 충청도 사투리 표현은 단연 최고의 미덕이다.&#160;(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데, 충청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이 소설가는 정작 충청도에 산 적은 없다고 한다. 기억이 정확한가, 모르겠다.)&#160;
&#160;&#160;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읽는 재미가 무척 뛰어나다. 책을 넘기면서 낄낄거릴 수 있는 대목도 여러 곳이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곳도 있으며, 나도 같이 한시름 다 잊고 소설 속 사람들과 어울려서 신나게 놀고 싶은 장면도 있다. 또 이러 장면들을 글로 옮겨 놓을 때는 마치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써 온 것 같은 농촌 생활이 반영된 탁월한 표현이나, 상황에 적절한 해학과 풍자가 곁들여 져서 읽는 내내 싱글거리게 된다. 흠, 나도 이런 표현을 기억했다가 어디 써 먹을 때가 없을까? 싶은 생각이 계속 들 정도였으니까... [갈보 콩이라는 작품을 보면, 여든이 다 된 할머니가 아들이 하는 식당의 손님 눈길을&#160;사로잡기 위해 맷돌을 돌리는데, 날이 너무 더워 "이젠 더 못하겠다. 기생 말년에 거시기 큰 놈 만나서 고생한다더니" 이런 표현이 나오던데, 읽다가 속된 말로 빵, 터졌다. 근데 이 분은 어디서 저런 표현을 배웠을라나?]&#160;
&#160;&#160; 이시백의 소설에 나타나는 농촌의 현실은 도시인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아름다운' 농촌은 없다. 이곳에도&#160;4대강 사업이다,&#160;농촌체험마을 조성이다,&#160;골프장 건설이다 해서&#160;개발의 광풍이 불고, 이에 따라 시골 사람들도 이런 개발 열풍을 빌려 한 몫 잡으려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 떄를 틈타 어떻게든자기 몫(?)을 챙기고자 이런 저런 일들을 벌여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되는 인물들이다. (단편, 두물머리가 그렇고, 물레방아 노래' 역시 그렇다.) 이들이 맞서야 하는 농촌의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은 셈이다.&#160;
&#160;&#160; 작가는 오늘의 이런 농촌 현실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하다.&#160;대표적인 경우가 쌀 직불금 파동을&#160;다루고 있는 '송충이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라는 작품을 보면, 그 당시 뉴스에서는 단순히 직불금 부정 수급 문제만 줄기차게 다뤘지만, 사실은 이 문제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학교는 못 다녔지만 세상 이치에는 누구보다도 밝은 농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기 있다. 그렇기 때문에&#160;' 직불금'로 상징되는 농정의 무능함과 정책의 허구성이 여지 없이 드러난다. 이런 농민의 목소리는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짜낸다고 해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놀라웠다.&#160;
&#160;&#160; 소설의 내용과는 별로 상관 없지만, 책 뒷면의 해설에서 '민중 서사' 같은 말은 이물감이 든다. '민중 서사'라고 하면 왠지 도식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은가?(나만 그런가?) 이미 있는 말로 이 소설을 끼우려다 보니까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딘지 내용에 안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다.&#160;또 하나, 이곳저곳에서 자꾸 이문구의 빈자리를 채운다, 라는 표현도 거슬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이시백은 이시백일 뿐! 이것 역시 그냥 내 생각일 뿐이지만... 
&#160;&#160; 아무튼&#160;그리 많은 소설을 읽어 본 건 아니지만, 최근에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멋진 소설이다.&#160;지인들에게&#160;알려주고 싶은 책이고,&#160;아마도 좋은 책 권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책이다. 이제 작가의 다음 작품은 미리 챙겨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32/15/cover150/893920637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6371</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유태인판 빨치산 투쟁기 -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185847</link><pubDate>Tue, 12 Oct 2010 01: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1858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94521&TPaperId=418584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56/8/coveroff/89917945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94521&TPaperId=41858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a><br/>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08월<br/></td></tr></table><br/>&#160;&#160; 언제부턴가 리뷰를 쓰지 않았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단순히 마음이 게을러서 그렇다. 아무리 하찮은 글이라도 나에게 글쓰기는 힘들다. 힘드니까 점점 미루다가 어느 순간부터 손을 딱 놓고 말았다. 꼭 써야 하는 글이라면 마감 전날에 밤을 새워서라도 썼겠지만, 리뷰근 그야 말로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 아닌가!&#160;
&#160;&#160; 그러다가 최근에 'B 급 좌파 : 세 번째 이야기'를 읽다가 "글을 씀으로써 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며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다시 내 일상의 에피소드에 전적으로 반영된다. 내 삶과 내 글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19쪽)&#160; 이런 구절을 읽고는, 내가 무척 게으른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끊임 없이 일어나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반추하며 내 생각의 틀을 만들어 내는 일은, 결국 글을 써야 해결된다고 생각이 들었다.&#160;
&#160;&#160; 내가&#160;책을 읽고 리뷰를 쓰려다가 막힌&#160;책이 바로, 서경식&#160;선생이 쓴 '시대의 증언자 :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서경식,&#160;창비)'였다. 책을 덮고 바로 컴퓨터를 켜고 무엇인가를 끄적거렸으나 결국 다 지우고 말았다. 내가 몇 줄이나마 쓰면 쓸수록 책에서 받은 감동이 오히려&#160;스러지는 것 같아서,&#160;먹먹한 내 마음과 글이 자꾸 어긋나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은 책 목록을 만들어 두기도 했지만 아주 몇 번 예외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책은&#160;손도 대지 못 했다. [리뷰를 쓰고 싶은 책 목록에는 프리모 레비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도 있었다.]&#160;
&#160;&#160; 최근에 나온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책은 내가 읽은 프리모 레비와 관련이 있는 네 번째 책이다. (주기율표가 세 번째 책이고, 휴전, 이 다섯 번째 책으로 지금 책장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레비의 어떤 면이 계속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일까? 아마도 그가 끊임 없이 시대의 비인간성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그는 우리 시대라는 '잠수함의 토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악의&#160;'고장난 잠수함' 같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온 '토끼'이다.&#160;아마도 그의 경고-지금도 파국의 잠수함이 아닌가?-가 어떤 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계속 내 마음을 붙잡아 흔든다. 그래서 이번 책도&#160;얼른 사서 읽었다.&#160;&#160;
&#160;&#160; 이 책은 레비가 무솔리니의 인종차별 정책을 피해&#160;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 만났던&#160;많은 유태인 빨치산들로부터 들었던&#160;이야기들과 해방 이후 이탈리아에 정착해서 친구로부터 들었던 인상적인 동유럽 빨치산 이야기를 엮어서 만들었다.&#160;&#160;
&#160;&#160; 유태인 빨치산들은&#160;두 전선에서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특히 어려움이 많았다.&#160;명시적인 적인 나치군과 싸워야 했으며, 그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는 대부분의 유럽인들과도 암묵적인 전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160;이 책은 이런 상황을,&#160;국적은 다르지만 나치에 항전하는&#160;다국적군 유태인 빨치산 부대인 게달레 대장이 이끄는 부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160;이들은&#160;벨라루스,&#160;우크라이나, 폴란드, 독일 곳곳에서 게릴라 활동을 펼치며 이동하다가 종전과 함께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있는 유태인 구제기관의 보호하에 들어가는 것으로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160;&#160; 작가의 분신이자 끊임 없이 전쟁과 실존의 의미를 묻는 멘델, 전쟁터에서 만나 인연을 맺게 되는 시슬과 라인, 총과 바이올린을 함께 메고 다니는 대장 게달레와 그의 연인, 벨라. 그리고 언제나 유쾌한 말솜씨로 부대원의 시름을 덜어주던 파벨, 칼솜씨가 놀라웠던 모텔. 그리고 소년에서 용맹한 전사로 자란 피오트르,&#160;숲에서 우연히 만난&#160;멘델과 함께 유태인 부대를 찾아가는 레오니드 등.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의 삶의 궤적과 나치와의 전쟁, 연합군의&#160;전후 처리 과정이 교묘하게 결합하면서 결국, 이들 유태인들은 디아스포라가 될 수 밖에 없는 속사정을 아프게 드러낸다.&#160;
&#160;&#160; 이 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태백산맥'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태백산맥'과 비슷하다는 느낌보다는 아, 참 다르구나, 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160;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야 책의 분량이 있으니 차이나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쳐도,&#160;이 책은 역사적 현실에서 '승리'한 투쟁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유럽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특수성이 빨치산 투쟁에도 반영된 것인지는 몰라도 이들의&#160;투쟁이 '태백산맥'에서처럼 처절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160;물론 전쟁의 참혹함이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의 상상 너머에 있을 테지만, 태백산맥 같은 책에&#160;단련된 우리들은 '저 동네 사람들은 좀&#160;점잖게 싸우는군' 이렇게&#160;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160;&#160;
&#160;&#160;&#160;또 하나 말해 두고 싶은 것 한 가지. 오늘의 이스라엘의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고 있자면 저들의 지난한 투쟁이 결국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를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발표된 것이 1982년, 이 해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해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160; 책장에 꽂힌 '시대의 증언자 :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뒤적이니,&#160;레비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철수를 요구하는 요구서에 서명했다가 지인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하고, 반이스라엘측으로부터는 친이스라엘적이라고 비난받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상처 입은 레비는 이후 공식적인 발언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시대의 증언자 : 프리모 레비 256-261쪽)
&#160;&#160;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소개하며 짧은 리뷰를 마감하려고 한다. 게달레 대장이 부대원들 앞에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며 부른 노래 가사인데,&#160;나치친위대에 붙잡힌 유태인 사형수가&#160; 죽기 직전 30분간의 말미를 얻어서 지었다는 시로, 소개되어 있다.&#160;
&#160;&#160;&#160;&#160;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160;/&#160;&#160;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160;&#160;
&#160;&#160;&#160;&#160;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160;/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160;&#160;
&#160;&#160;&#160;&#160;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160;/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160;
&#160;&#160;&#160;유태인의 진혼곡으로 불린 이 노래 가사가 책 내용의 전후 맥락과는&#160;아무런&#160;상관 없이&#160;책을 덮은 후에도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다만 이 아름다운 노랫말이&#160;내 마음 속에서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자, 다른 사람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자, 그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지금 당장 시작하자..."&#160;는 밋밋한 말로 바뀌었지만, 앞으로 내 행동의 중요한 규범으로 남을 것 같다는 예감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160;
&#160;&#160; 하나마나한 이야기겠지만, 프리모 레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보시길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56/8/cover150/899179452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94521</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 [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3845339</link><pubDate>Wed, 23 Jun 2010 10: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38453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3939&TPaperId=384533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90/52/coveroff/89843139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3939&TPaperId=38453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a><br/>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04월<br/></td></tr></table><br/>가. 8,280,000명&#160;&#160;&#160;
나. 123만원&#160;&#160;&#160;
다. 4110원&#160;&#160;&#160;&#160;
라. 2010년 6월 29일&#160;&#160;&#160;
마. 1000원 VS 9원<br />

가. 2010년 3월 현재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의 수. 비정규직 비중은 전체 임금 노동자의 49.8% 수준으로 경기침체 등의 요인으로 점차 하락하는 추세이다. <br />
<br />

나. 2010년 3월 현재 비정규직이 받고 있는 평균 임금. 이 돈은 정규직 임금의 46.2% 수준이다. 임금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후에도 비정규직 차별은 개선되지 않고, 갈수록 고용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br />
<br />

다. 2010년 최저임금액. 이 금액을 적용하면 8시간 기준 일급은 3만2880원, 44시간의 월급은 92만8860원이다. 참고로, 4900원인 맥도널드 빅맥 세트 먹으려면, 1시간 12분을 일해야 한다.<br />
<br />

라. 노, 사, 공익위원 각각 9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 심의위원회가 2011년 최저임금을 심의 의결해야 하는 날. 지난 6월 4일, 노동계 심의위원들은 경영계 심의위원들이 최저임금 동결 주장을 굽히지 않는데 항의해서 농성에 들어가는 등 현재 진통을 겪고 있다.<br />
<br />

마. 1000원은 노동계의 2011년 최저임금 인상 요구액. 그래서 원하는 최저임금액이 시급 5180원이다. 반면 계속 동결 주장을 고집하던 경영계가 내놓은 인상액은 딱 9원. 그래서 시급 4120원이다. <br />

&#160;&#160; 대안이 아니라 현실을 보여주고자 뛰어들었던 용감한 기자들의 노동체험기를 읽고, 이렇게 딱딱한 숫자들과 무미건조한 설명으로 일관하는 서평은, 정작 써 놓은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이후로는 계속 이런 숫자와 통계들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br />
<br />

&#160;&#160; 이 책은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 ‘일기’ 같은 글이라 텔레비전이 켜진 거실에서, 옆에서 아기가 놀아달라고 칭얼대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다. 물론 결정적인 문제는, 편하게 읽을 때와는 달리 다 읽고 나서는 마음이 조금 불편해진다는 것이다.<br />
<br />

&#160;&#160; 마음의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용기 있는 선생님, 순진무구한 눈빛을 가진 우리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선생님들께서는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싶다.&#160; 
&#160;&#160;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문제와 최저 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이것이다. 노동자는 앞으로 1년 동안 사용자가 되어 그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살펴보고, 사용자는 앞으로 1년 동안 시급 4120원으로 철야하면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편하게 사는지 느껴보면 된다. 그러면 적어도 비정규직, 최저 임금 문제는 저절로 풀린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90/52/cover150/898431393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3939</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재미도 있고, 공부도 되는 책! -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 피렌체편 - 김태권의 미술지식만화]</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903249</link><pubDate>Sat, 13 Jun 2009 1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9032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3351&TPaperId=290324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75/3/coveroff/89843133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3351&TPaperId=29032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 피렌체편 - 김태권의 미술지식만화</a><br/>김태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05월<br/></td></tr></table><br/>재미도 있고, 공부도 되는 책!
&#160;&#160;&#160;6월 10일, 오후 6시 40분. 학교에서 서둘러 저녁을 챙겨 먹고 서면으로 출발. 난&#160;평소에는 시위하러 잘 안 나갔는데, 이번에는 이날이 무척 기다려졌다. 요즘은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어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부산 6.10대회'(문화제)가 어디서 열리는 지 계속 검색해 보기도 했으니까 이번엔 나도 몸이 좀 달았나 보다. 꼭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당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 이걸 억울하다, 고 해도 될지? 아무튼 6월 10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면으로 나가서 힘을 보태야겠다는 굳은 결심.&#160;벌써 며칠 전부터 하고 마음을 먹었다.(역시, 난, 이런 걸 마음 먹고 나가야 하는 아주, 아주&#160;소심한 사람이다.)&#160;
&#160;&#160;&#160;멍하게 가는 게 싫어서 지하철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을 열고 책 한 권 꺼냈다. 원래 읽고 있던 책도 있지만, 지하철에서 읽으려고 가벼운 책을 챙겨 넣었다. 김태권의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명색이 '미술지식만화'라는 이 책을 ‘가벼운 책’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래도, 지하철이 역을 지나치는 속도만큼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빠르다. 그만큼이나 빨리 내 마음도 피렌체가 가 있는 것 같다.<br />
<br />

&#160; &#160;시위를 하러 나서는 마음은 착잡한데, 그나마 이 책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르네상스 시대의 중세 도시, 피렌체의 풍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책을 펼친 우리를 예술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이끄는 사람은 바사리라는 재능 있는 화가이자 꼼꼼한 미술사학자. 이 바사리라는 인물이 잡아 끄는 대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피렌체의 역사, 정치, 문화의 대강을 알게 되고,&#160;이 작은&#160;도시 국가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엮어 낸 피렌체 예술-미술과 조각, 건축-의 찬란한 결과물들을 만날 수 있다. <br />
<br />

&#160;&#160;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복잡하고도 어려웠을 것 같은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추천사에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작가의 ‘재구성’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좋아 ‘재구성’이지, 재구성은 ‘창조’와 다를 바 없다.(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재구성을 하려면 재구성하려는 대상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으로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조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160;
&#160;
&#160;&#160; 이 책 곳곳에는 바사리가 쓴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에서 내용이 발췌되어 있어 바사리의 책을 만화로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하지 쉽지만, 바사리의 책의 내용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작품의 구상 상황에 적절한 내용을&#160;골라, 읽는 사람이 이렇게 알기 쉽게 전달하기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160;만화가들이야 원래부터 재구성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160;딱 있어야 할 곳에 가장 적절한 내용을 배치하는 작가의 작품 구성 능력은 여느 만화가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것 같다.(이건 십자군 이야기 1,2에서도 마찬가지였다.) <br />

&#160;
&#160;&#160;&#160;다음으로는 만화 속에서 세계 명작들을 여러 편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와 함께 등장하는 회화, 조각, 건축 등의 그림이 오히려 화집으로 볼 때보다 훨씬 친숙하게 느껴진다. 당연히 만화의 내용 전개에 꼭 필요한 예술품들이기도 하고. 만화 속 작품은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배경 상황을 자세하게 풀이해 주는데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 물론 작품 전체를 다 볼 수 없다는 점과 어쩔 수 없이 작품의 화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 작품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더구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속속들이 파헤져 주니 -그것도 알기 쉽게- 지식만화라는 분류가 허명은 아닌 듯싶다.&#160;&#160;
&#160;
&#160;&#160; 또 하나 더 들고 싶은 것은 작가의, 여전한, 촌철살인의 현실 풍자! 가령, “고-소-영 장관들하곤 질이 다른데……”(112쪽) 라든가, “지지율 역대 최저”, “거의 대운하 수준인데?(123쪽)”, “저 놈 머리는 저용량임에 틀림없어….”(128쪽) 등 이야기 곳곳에 상황에 딱 들어맞게 날려주는 코멘트는 정말 경이롭다.(십자군 이야기 1,2에서도 역시 그랬다.) 또 인터넷 용어라든지, 누리꾼들의 속어들이 내용 전개에 자연스럽게 잘 녹아들어가서 (나 같은 경우엔) 책을 읽는 내내 키득거리게 된다. <br />
<br />

&#160;&#160;&#160;책의 이런 장점들 때문에 조금은 가라앉은 마음으로 서둘렀던 퇴근길이 결과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지하철이 서면역에 닿았을 땐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었으니까. 그 아쉬운 마음이 도리어 힘이 되어,&#160;전경들이&#160;보호해 줘서 아늑하기까지 했던, 서면 8차선 대로에 씩씩하게 앉아 주먹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돌아왔다.&#160;현실은 이렇게 갑갑하지만 그래도 가끔 책을 보며 키득거릴 수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런 책이라도 없었다면 내 생활이 참 건조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 봤다.
&#160;
&#160;&#160; 百聞不如一讀이다.&#160;&#160;
&nbsp;
&#160;
&#160;걱정 하나와 불만 하나!&#160;&#160;
&#160;1. 걱정 : 설마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가 피렌체 편으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다음 권이 한 2년 있다가 나오면, 다시 피렌체부터 읽어야 하니 곤란한데... 내 걱정이 기우杞憂이기를 빈다.&#160;
&#160;2. 불만 : 앞의 걱정과 비슷한 내용이긴한데, 십자군 이야기 2권 이후는 더 이상 안 나오는 건가? 곧 나온다고 2권 마지막에 써 있었던 거 같은데, 그래서&#160;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십자군 이야기 계속 만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 배신감의 정체는 뭔가? 음... 미술에 빠지셨네(?). : 참,&#160;서울대 미학과 나오셨다니까 생각 나네. 그 대학 먼저 다닌, 변 모씨 좀 말릴 수 없나?<br />

&#160;]]></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75/3/cover150/898431335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3351</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나는 당신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합니다. -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293334</link><pubDate>Tue, 09 Sep 2008 23: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2933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656&TPaperId=229333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28/33/coveroff/89901066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656&TPaperId=22933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a><br/>권성현 외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06월<br/></td></tr></table><br/>&#160;
&#160;읽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책! 
&#160;&#160;&#160;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를 얼마 전에 읽었다. 책을 읽고 짤막한 느낌을 적어두는 이곳에 ‘감동적이다’, ‘무심했던 나를 반성한다’, ‘몰라서 미안하다’ 는 상투적인 말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이 책에는 그런 말조차 사치스러워서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늘 책 읽고 나서 써 두는 그런 말을 흘리고, 또 어제처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을 읽고 나서 몇 마디 적어두는 건 혹시나, 혹시나 나의 이 몇 마디 때문에라도 이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160;
<br />
&#160;&#160;&#160;다만, 이 책에 대한 찬사로 가장 어울릴 만한 구절을 요즘에 읽고 있는 책에서 찾았기에 내 짧은 표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대신해서 덧붙여둔다. 
&#160;


&#160;&#160;&#160;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누가 권 선생한테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가?”하고 물었을 때 그분 말씀이 이랬다. <br />

&#160; &#160;“읽고 나서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 <br />

&#160;&#160; 그렇다. 이 책에는 당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많을 것이다. 특히 당신이 평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br />


&#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 &#160;&#160;허영철,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보리, 2006, 추천사(윤구병) 중<br />



&#160;
&#160;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이 필요할까?&#160;&#160;
&#160;
&#160;&#160;&#160;&#160;벌써 400일을 넘겼다. 아직도 파업 중인 그들 스스로도 이렇게 오래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처음엔 이랜드 그룹의 비인간적인 노조 관리 실태와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기업에 맞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시작된 이 파업은 조합원들이 대다수가 중년여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파업에 참여했고, 사람들의 일상 공간인 대형마트를 점거하는 파업 방식의 과격성(?) 때문에 여론의 관심을 뜨겁게 받았다. 최근의 사회의 보수화 흐름 속에서는 드물게 이랜드 그룹의 몰상식한 노무 관리에 대한 비판 여론은 드높았고, 노조원들의 파업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도 널리 퍼져 있었다. 
<br />

&#160;&#160;&#160;&#160;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상황이 조금씩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노조원들의 매장 점거가 길어지자 이제는 새로운 이슈가 아닌 이랜드노조의 파업이 언론의 관심권에서 밀려났고, 이 때다 싶었던지 경찰은 강제 진압에 들어왔고, 파업에 참가한 사람들은 연행되었다가 풀려나고, 파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두 차례나 더 매장 점거에 나섰지만 그리 길게 가지는 못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온 시간이 벌써 400일이다. 아직도 더 해야할 일이 남아 있을까? 아직도 더&#160;시간이&#160;필요한 것일까?&#160;(하기야 1000일도 넘긴 파업장에서 단식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려고 하는데도 꿈쩍도 않는 대한민국이니 아직도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 바로 여기가 야만국이다.) <br />

&#160;
&#160;&#160; 그네들의 거창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차별해서 대우하지 말라는 것, 일정 기간 동안 계약직으로 일을 하면 그 이후엔 고용불안 없이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파업 과정에서 일어났던 고소 고발 사건을 취하해달라는 것.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로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소박한 꿈을 위해 시작한 파업이 길어지면서 그네들이 눈물을 흘리는 날도 늘어났다.&#160;<br />
<br />
&#160;&#160;&#160;제대로 된 수입이 없어서 아이들이 지내는 집에 전기와 가스가 끊겼을 때는 마음이 찢어지고, 가족이나 친구들의 몰이해에 상처도 받고, 죽을힘을 다해서 싸우고 있는데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세상을 볼 때면 억울한 생각도 들고, 함께 파업에 동참했던 동료들이 하나 둘 파업현장을 떠나면서 기운도 빠지고, 여전히 제대로 된 협상에 미온적인 회사의 태도에는 분노하고. 그럴 때마다 그네들은 자신들의 소박한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울었다. 돈이 아니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울었다.&#160;<br />
<br />
&#160;&#160;&#160;인터뷰에 응한 사람 모두[지금의 길어진 파업에 회의적인 사람일지라도]가 이랜드 파업이 해결될 것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생각이 같았다. 다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건 느긋한 자세나 긍정적인 태도와는 다른 목소리다. 굳이 생각해 보자면 이랜드 파업의 해결은 ‘역사적 당위’의 문제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을 해결해 줄 열쇠인 시간이 너무 늦게 찾아온다면 기다리는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모쪼록 그네들의 삶과 영혼을 다치지 않도록 해결의 시간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그네들의 눈물은 지금까지 흘린 것만으로도 족하다. <br />

<br />

나는 당신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합니다. 
<br />

&#160;&#160;&#160;내가 그네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하는 이유가 단지 그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네들이 이 말을 들으면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운다고 하겠지만, 그들이 지금 당장 겪고 있는 현실이 나와 내 가족, 내 친구, 내가 가르친 학생들의 곧 닥쳐올 미래이기 때문이다. 허술하고 허울뿐인 비정규직 보호법(?)을 능구렁이처럼 교묘하게 피해가는 기업의 횡포 앞에 더 이상 노동자들의 안전지대는 대한민국에 없다. 그러니까 이건 내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응원이라도 해야 한다. <br />
<br />

&#160;&#160;&#160;나는 복잡한 이론이나 법률적인 논쟁에 대해서는 별로 잘 알지 못하지만, 8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받는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고,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과 단지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60% 정도에 불과한 임금을 받아야 하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도록 계약기간이 비어있는 계약서가 횡행한다면 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도 아니다. 이건 우리 모두가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하는 사이에 만들어진 사회적 괴물인 것이다. <br />
<br />

&#160; &#160;늘 기업들은 어렵다고 말한다. 툭하면 해외로 공장을 옮긴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월급을 올려주면 회사가 다 망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몇 년째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임금상승률보다 훨씬 높았다는 사실이나, 수 년 사이에 제품의 원가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낮아졌다는 객관적 자료는 늘 외면한다. 어쩌면 이들이 너무 영악한 자본가들이든가, 우리가 너무나도 착하고 바보 같은 노동자들인지 모르겠다. 이런 순해 빠진 우리와 자아를 성찰할 줄 모르는, 앵무새 같은&#160;저들에게 단 한 번의 경험이 꼭 필요하다. 
<br />



&#160;&#160; 한국의 지배층은 어지간해서는 정신 차릴 줄 모르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게으른 극우파들이다. 웬만해서는 반성하거나 성찰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 상식적 우파나 건전한 보수와 아주 거리가 먼, 그저 틈틈이 거짓말이나 하고 논리가 밀린다 싶으면 ‘민족의 영광’ 혹은 ‘미국의 번영’에나 기대는 극우파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여전히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총파업이다. 이들과 상식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총파업이 한 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중략)……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정책들이 있는데 정부가 전혀 하지 않고 지배층이 이것을 막아서고 있을 때, 사회가 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 총파업이다. 기껏 정례적으로 연봉을 결정하기 위해 자본주의 역사가 총파업이라는 제도를 만들어낸 게 아니다. <br />
<br />

&#160;&#160; 물론 사실상 총파업이 물리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총파업이 가능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순간, 정말로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의 테이블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는 총파업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극우파들이 생각할 때에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는 불행한 일이 생긴다. 이건 간단한 게임의 법칙이다. <br />
<br />

우석훈, 촌놈들의 제국주의, pp.272-273 <br />


&#160;

추석 재정사업에도 변함없는 성원 부탁합니다!! 
http://www.elandilban.ba.ro/ 
<br />

&#160;&#160; 이랜드일반노조 홈페이지다. '우소꿈'을 읽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싶어서 들어가 보니, 추석 재정사업을 하고 있다는 공지가 올라있다. 책에도 나왔던 그 재정사업이었다. 나는 이랜드일반노조 덕분에 이번 추석에 본가와 처가에 배 한 상자씩을 선물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랜드일반노조 재정사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좀 빨리 써서 서재에도 걸어놓고, 직장의 동료들에게도 ‘추석 재정사업’에 대한 홍보도 해보려고 했는데, 나의 게으름 때문에 이렇게 늦어버렸다. 미안하다. 앞으로도 가끔씩 홈페이지에라도 들어가서 응원해야겠다. 음... 누군가가 던지는 응원의 한 마디가 이때처럼 절실한 경우도 없다는 걸 나도 잘 안다. 
<br />



추석 재정사업에도 변함없는 성원 부탁합니다!! 
<br />

이랜드투쟁이 400일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러나 뚝심의 아줌마들은 질기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장기투쟁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투쟁 승리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게 바로 생계비와 투쟁기금입니다. <br />

이에 이번 추석에도 지난 설날에 이어 선물세트 재정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추석 때 필요한 여러 물품들, 이왕이면 이랜드노조에서 구입해주시고 
주위에도 널리 홍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br />

특히 이번에는 단 하나를 주문하셔도 정성껏 원하시는 곳으로 무료 배송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br />
<br />

※ "우소꿈" 책판매는 계속됩니다. 지속적인 사랑 부탁드립니다. 


&#160;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 여러분! -투쟁해서 꼭 이기시도록 응원할게요.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28/33/cover150/899010665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656</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지금은 이게 다에요. -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 "선택은 없다! 햇빛 에너지에 열광하라"]</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237623</link><pubDate>Tue, 12 Aug 2008 02: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2376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74710&TPaperId=223762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02/21/coveroff/89010747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74710&TPaperId=22376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 "선택은 없다! 햇빛 에너지에 열광하라"</a><br/>강양구 지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12월<br/></td></tr></table><br/>
&#160;&#160;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는 청소년, 일반 독자들이 지구 에너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만만하지 않다. 더구나 대부분의 책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생각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려고 한다면 더욱 더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그런 책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데, 행동이 쉽게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br />
<br />
&#160;&#160;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간디의 물레’를 읽고 그랬나, 아니면 ‘녹색평론 선집1’을 읽고 그랬나, 아무튼 그 책을 읽고 나서 자동차를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래봐야 내가 조금이라도 필요하다고 느낄 땐 아버지의 낡은 자동차를 서슴지 않고 빌린 적도 많았기 때문에 내 결심은 ‘눈 가리고 아웅’했던 것이 되고 말았다. 
&#160;&#160; 그러나 지금은 ‘눈 가리고 아웅’조차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의 그 낡은 자동차로 요즘 나는 매일 출퇴근을 한다. 요즘이라고 말하기엔 솔직하지 못하다. 벌써 1년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 자전거를 사야지, 걸어 다녀야지, 좀 심심하다 싶으면 이런 결심이 불쑥 솟구치고 하지만 며칠 후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내 몸은 편리한 자동차에 이미 중독이 되어 버려 자동차를 내버려두지 못한다. 
&#160;&#160; 작년부터는 집에 어린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에어컨도 사다 놓았고, 조금만 더워도 문을 꽁꽁 걸어놓고 이 여름을 지낸다. 무신경한데다가 귀찮다는 이유로 쓰지 않는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뽑아두는 경우도 거의 없다. 전등이나 컴퓨터, 냉장고, 선풍기, 가스레인지…… 어느 것 하나 생활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풍족함을 누리며 산다. 
&#160;&#160;&#160;지난 며칠 동안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를 읽고 다시 한 번 내가 누리는 에너지의 풍족함에 대해 생각한다. 책을 덥고 되짚어 이제 3년 남았다는 강양구 기자의 경고가 머릿속을 맴돈다. 3년이라…그런데 정말 3년 후엔 세상이 확 달라져 있을까?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기자가 계속 경고했듯이 유독 에너지 위기에 천하태평인 우리나라에 사는 무신경한 독자의 한사람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 위기가 너무 코앞인 3년 후라는 점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한다.
&#160; ‘고유가, 앗뜨거’ <br />
&#160; 정부, 원전 비중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늘리기로&#160; <br />
<br />
&#160;&#160; 정부가 2030년까지의 원자력 발전설비 비중을 애초 37~42%에서 36~41%로 1%포인트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대신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은 2030년까지 애초보다 2%포인트 높은 11%로 늘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원전도 9∼13기에서 7∼11기로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원전 추가 건설에 따른 안전성과 부지 확보 문제로 논란이 예상된다.

&#160;&#160;&#160;에너지경제연구원(이하 에경연)의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안’은 2030년 원전 설비 비중을 지난해 기준 26.0%에서 2030년까지 36~41%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에경연은 지난 6월 1차 공개토론회에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지난해 말 작성한 2030년 유가전망(배럴당 100.1달러)을 토대로 원전 설비 비중을 37∼42%로 제시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초고유가로 에너지정보청이 유가 전망을 배럴당 118.7달러로 상향 조정하자 이날 토론회에서는 원전 비중을 36∼41%로 수정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고유가가 지속되면 에너지 총수요가 줄어들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게 된다”며 “이에 따라 원전 비중이 낮아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br />

&#160;&#160; 에경연은 1차 토론회에서 2030년까지 신고리 3, 4호기(140만㎾급) 수준의 원전이 9∼13기가 더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으나, 이번 수정안에 따르면 필요한 추가 원전은 7∼11기다. 추가 원전 건설을 위해서는 신규 부지 조성과 사용 후 연료 임시저장시설이 더 필요하다. <br />
&#160; &#160;이에 대해 환경단체에서는 원자력 비중 확대보다 에너지 수요관리 강화와 신재생에너지 확충 등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불가피하다.<br />

&#160;&#160; 정부는 13일 공청회를 거쳐 이달 말께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용인 기자, 2008.08.08, 한겨레신문｣<br />

&#160;&#160; 며칠 전에 신문을 뒤적이다 발견한 기사에 평소와는 달리 눈길이 갔고 잠시나마 생각이 머물렀다. 평소 같으면 잘 읽지도 않고 넘겼거나, 읽어도 그런가 보다 했을 기사인데, 이번에는 ‘아톰의 시대에서……’를 읽은 덕분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11%로 늘리려는 목표는 여전히 미흡(알고는 있었지만, 11%라고 읽었을 때는 ‘겨우?’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방향은 옳다는 생각이다. 
&#160;&#160; 문제는 이러한 ‘당위’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데,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말엔 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기존 에너지기업들의 외부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저평가되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소규모 재생에너지의 생산만으로는 재생에너지의 보급과 확대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을 높여 대규모의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누리는 에너지 소비의 혜택은 조금도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한 당위만 강조하는, 나 같이 평범한 시민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할 때 에너지 위기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해 본다.<br />
<br />
&#160; 왜 우울한 예측이냐고? 몸은 이기적이어서 쉽게 편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니까! 그날 읽던 신문에 저 아래의 만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건강해야 되는데[홍승우, 2008. 08.08, 한겨레신문]
&#160;&#160; 저 만큼 실천하기란 어렵다. 그래도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해야 하니까 굳이 희망적인 징후를 좀 짚어보자면,<br />
<br />
1. 얼마 전에 ‘환경스페셜’(KBS1)에서 다룬 에너지 자급자족 실험을 했던 민들레마을 편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힘들겠지만 저런 실험이 있다면 재미있겠다고, 참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기도 했다.
2. 요즘 들어서 낮에 전등이 켜진 것에 조금 신경을 쓴다. 아울러 냉장고 문이 오래 열려 있어 ‘삐’ 소리가 나면 마음이 아주 초조해진다. 전화기 충전기라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빼놓으려고 애쓴다. 
3. 자동차 문제가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당장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조금씩 사용을 줄여 보자는 결심은 섰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일이 제법 잦아졌다.<br />
<br />
&#160;&#160; 그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이다. 남들은 보잘 것 없다 하겠지만 나는 그래도 지금은 이게 다에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참, 가야할 길이 멀다. 이 책이 좋은 길잡이에, 먼 길을 함께 가는 좋은 벗이&#160;되었으면 좋겠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02/21/cover150/890107471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74710</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1990년 OO고 3학년 4반, 아이들 -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212414</link><pubDate>Mon, 28 Jul 2008 16: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2124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8469&TPaperId=221241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96/coveroff/89320084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8469&TPaperId=22124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두 아름다운 아이들</a><br/>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br/></td></tr></table><br/>&#160;&#160; 1990년이었고, 난 그 때 고 3이었다. 정신없이 공부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두 달 앞으로 다가온 학력고사를 앞두고 선지원(先支援)할 대학교를 고르기 위해 일주일 간격으로 네 번 치는 배치고사는 한 달도 남지 않았기에 내 마음에도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해는 수험생도 역대 최다라고 떠들어대서 수험생들 모두가 다른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160;
&#160;&#160; 나는 10월 9일로 기억하는데(아니면, 10월 3일이었을 것이다.), 휴일이었지만 학교에 나와 자습한답시고 교실에 앉아 있었는데 그 날은 여느 휴일과 분위기가 확 달랐다. 고등학교 정문 근처에 전투경찰부대가 한동안 쫙 깔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고 3이던 그해는, 6월 항쟁이 있던 그 다음해였으니까 전투경찰이야 텔레비전 속에서 익숙했지만, 이런 변두리 고등학교에서 전투경찰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얼마 있다 전투경찰 부대가 사라지자 술렁였던 학교도 이내 아무 일 없는 듯이 평온해져서 나는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던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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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다음날, 등굣길도 여느 날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우리 반 교실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모두들 모여서 웅성웅성. 내 자리에 가방을 던지고 앉기도 전에, 아이들의 어깨 너머로 들리는 소리 -- OO이가 잡혀갔다더라. 아니다, OO이는 집에 있는데 학교를 못 나온다고 하더라. 학교에서 못나오게 했단다. 교육청에서 퇴학, 아니 제적시키라고 학교에 요구했대. -- OO이는 우리 반 반장이었고, 나와는 단짝은 아니었지만, 꽤 친했던 친구였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린가? 아니, 왜? -- OO이가 부고협(부산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 활동을 했는데, 어제 부산대 도서관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대. 교육청에서는 고등학생이 (허락 없이) 집단행동을 하고 또 ‘성명서’의 내용도 문제 삼아서 징계하기로 했다더라. 어제 전경이 우리 학교에 온 건 그 ‘성명서’ 발표를 우리 학교에서 하기로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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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이날부터 ‘OO이 징계 반대’를 내걸고 수업 거부 돌입. 전교생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첫날 오전은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였다. 오후가 되자 1,2학년은 교실로 들어가서 수업을 받았다. (총학생회에서 들여보내기로 결정했는지, 선생님들 때문에 아이들이 들어갔는지, 당시에 평범한 학생이었던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루를 3학년만 운동장에 남았던 거 같다. 다음 날이 되자 3학년 이과 반도 수업을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문과 반 네 반만 그렇게 하루를 더 버텼다. 사흘째가 되자 우리 반만 빼고 세 반은 수업을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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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우리 반은 책상을 뒤로 돌려놓고 앞문을 잠그고 교실에 앉아서 자습을 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미리 알고 우리 교실로 올라오시지 않았다. 어쩌다 오신 분들은 ‘이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으나 이미 상처받은 우리 마음엔 그 말씀이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책상을 돌리고 일주일을 더 버텼다.(그러니까 우리는 열흘 동안 ‘파업’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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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그 사이에 형사가 자주 학교를 다녀간다는 무서운 소문도 들리고,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교무회의에서 ‘OO이 징계’가 부당하다는 의견을 내시면서 학교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고, 그사이 ‘OO이의 제적’이라는 징계가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란 우울한 소문도 바람을 타고 교실 문턱을 넘어왔다. 조금 더 자세하게, 학교는 교육청에서 결정한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교육청은 학생의 징계는 학교장의 권한이라는 뻔한 소리로 ‘나 몰라라’한다는 소문도 이내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치를 떨고 분개했던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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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아니, 우리는 누가 만들어내는지 알 수 없는 그 소문이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그 때마다 아이들이 난상토론을 벌였고, 열흘 째 되는 날 오후에 학생들의 투표로 다음날부터 수업 복귀를 결정했다. 수업에 찬성한 학생이나 반대한 학생이나 아무도 수업 복귀 결정에 대해서 좋아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냥, 부당한 힘에 졌다는 생각에 억울하고 분했다. 나도 학교와 선생님이 싫어졌다. 그때는 세상 모든 게 그냥 싫었던 것 같다.
&#160;&#160;&#160;나는 이 싸움을 통해 학교 밖 세상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옳고 그름이 너무나 분명한 싸움에서도 이렇게 지는구나, 하는 그 쓰라린 경험은 어린 나에게 적개심을 넘어 공포감, 그 자체였다. 단 한 번의 싸움에서 진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기운을 잃어버렸다. 변명 같지만, 그 이후로 대학을 다닐 때 자주 일어난 시위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우리가 분명 옳은데도, 싸움에서는 질 수 밖에 없다는 그 절망감을 피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나는 사소한 싸움이라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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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다음 날부터 수업은 시작되었으나 그 어느 선생님도 그 열흘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일로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 담임을 그만두셨고, 우리 반 아이들은 진학 상담을 낯선 선생님과 해야만 했다.(사실, 선지원시험제도라 입시 상담이 아주 중요했는데 다들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담임선생님으로선 그게 최선의 길이었다고 믿는다.) 그래도 우리는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고, 입학하기 전에 딱 한 번 담임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 댁을 찾아간 기억은 또렷하나 다른 내용은 흐릿한 것으로 보아, 그 자리에서 'OO이‘ 이야기는 거의 안 나왔지 싶다. 그만큼 우리에겐 상처가 깊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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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졸업을 하게 된 우리는 더 이상 그 얘기를 하지 않았고, 그렇게 모든 게 잊혀진 것처럼 보였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냥 잊고 살았을 것이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사범대에 진학했던 내가 몇 년 전에 모교에 발령을 받았다. 모교에 발령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기억이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0년 10월의 어느 가을날의 그 사건이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그 때 싫었던 그 학교의, 싫어했던 그 선생 노릇을 하며 지내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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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그 때 친구들에게 미안했던 기억이 계속 남았던 것일까? 난 해마다 아이들에게 최시한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읽기를 권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우리 반 아이들! 어디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과 관련해서 남은 이야기 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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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이 책, 아름다운 아이들을 처음 만난 게 벌써 10년 전이지 싶다. 대학 동기였던 OO이랑 도서관 서가를 훑다가, 녀석이 ‘우리의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라며 권해준 책이다. 며칠 후에 그 책을 사서 읽고, 난 앞에 쓴 글처럼 고등학교 때 우리 반 아이들을 떠올렸고, 한동안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렸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왜냐 선생’처럼 멋있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꿈도 꾸었다.(지금 생각하면 정말 ‘꿈’같은 이야기이다.)&#160;
&#160;&#160;&#160;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해마다 나는 마음을 나누고 싶은 동료교사를 만나면 늘 이 책을 선물로 건넸고, 이제는 같이 책읽기 모임을 하는 아이들에게 여름방학 캠프에 가서 읽고 토론하는 책으로 정해 두었다. 이번 여름도 예외는 아니어서, 얼마 전에 캠프에서 이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네 안의 구름그림자는 어떤 것인가? 허생과 왜냐 선생, 선재와 윤수의 관계는 어떠한가? 반성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들!
둘) 이번 동아리 캠프를 가기 위해 교장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내가 평소에 ‘어떤 책’을 통해서 학생들을 ‘의식화’시키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는 투로 얘기하셨다. 이번 캠프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시길래 이 책,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을 읽고 토론할 거라고 했더니, 책 내용이 어떤 거냐고 묻고, 이 책을 쓴 작가의 다른 작품도 물으셨다. 이럴 땐 정말 황당해서 말도 잘 안 나온다. 자신 있게 책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했다. 교장실을 나오면서&#160; 학교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160;&#160;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교육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우리 교육 현실의 문제점을 담아내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소설이 그리고 있는 현실과는 10년 정도 지난 1997년 즈음이었다. 그 때는 10년 정도 지났으면 좀 나아졌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오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학교의 현실은 그 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고, 20년 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아니, 오히려 입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풍경한 모습이나 아이들을 옥좨는 풍경은 그때보다 더욱 잔혹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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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내가 아직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다. 내가 좋아하는 동료 교사들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는 이유다. 빨리 이 책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기를……!<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96/cover150/893200846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8469</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명료함, 간소함, 간결함, 인간미 - [글쓰기 생각쓰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102589</link><pubDate>Thu, 22 May 2008 01: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1025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2956&TPaperId=210258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01/79/coveroff/89719929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2956&TPaperId=21025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글쓰기 생각쓰기</a><br/>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br/></td></tr></table><br/>
&#160;&#160; “어휴! 도저히 못 쓰겠어요.” <br />
&#160;&#160; “선생님, 이거 안 하면 안 돼요?”<br />
&#160; &#160;교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불평 소리. 기껏 네 다섯줄이나 될까 하는 짧은 문장을 적어 보라는데 금세 터져 나오는 아우성이다. 그래도 이런 불평이나 터트리면 좀 나은 편이다.&#160;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몰라 멍하게 앉아 있는 학생들이 더 많다. 시간이 좀 지나도 멍한 표정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처럼 손도 못 대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에 끙끙대던 녀석들도 손을 놓아버리고 만다. <br />
&#160;&#160; 요즘 내 수업시간에 자주 벌어지는 풍경이다. 2학년 문학 수업 시간에 문학작품의 수용 과정이라는 단원을 배우고 있는데, 이 단원의 맨 마지막 수업 내용이 작품의 창조적 재구성과 내면화를 연습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교과서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 내용을 재구성해 보거나 시를 읽고 자신의 느낌을 곁들여 비평하는 짧은 글짓기 시간이 주어지면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가 이내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다.<br />
&#160;&#160; 그러면 나는 숫제 하소연이다. 자기 생각을 글로 써 볼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슬쩍 수능 공부에 실제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말도 보탠다. 이걸로도 통하지 않으면, 기말고사에 오늘 쓴 글쓰기도 시험 문제로 나올 수 있다는 점을 흘린다. 이 말이 끝나도 교실의 반 정도 학생은 멍한 상태, 그대로이다. <br />
&#160;&#160;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경력 10년차. 신임 국어교사 티를 벗어나고 있는 나는 아직도 아이들의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시간이 한참 더 지나도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나부터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익숙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글쓰기 과제는 꼭 피하고 싶은 청소구역 당번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다.-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이런 생각을 하니 도대체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br />
&#160;&#160; 그러니까 글쓰기 수업을 할 때 글의 시작은 어때야 하는지, 마무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실제 글을 가지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학생들이 실제로 연습해 보도록 가르치기가 아주 어렵다. 아울러 자신들이 쓰려는 모든 글에 일관되게 담겨야 할 글쓰기의 자세나 태도를 가르치거나, 여러 가지 형식의 글을 쓸 때 꼭 필요한 각각의 특징을 이해하게 하고, 기능을 연마하게 하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br />
&#160;&#160; 그렇지만, 꼭 이런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고른 건 아니었다. 제법 오래 전에 내 서재이웃인 ‘순대선생’님께서 이 책을 극찬했던 리뷰를 읽고 나서 당장 이 책을 샀었다. 그렇지만 내 머리의 말을 잘 듣는 내 손이 그때 같이 샀던 읽기 편한 책들을 항상 먼저 골라 들어서, 이 책은 내 책장 한 곳에 꽂혀있기를 벌써 몇 달!(그런 책이 꽤 많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올해는 책장에 묵혀둔 책을 좀 읽자는 결심으로 펼친 책이다.<br />

&#160;＊

<br />
&#160;&#160;&#160; 3월 중순부터 거의 두 달 동안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를 띄엄띄엄 읽었다. 내가 쓰고 나서보니 이 첫 문장은, 혹시나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전혀 놀라움을 줄 수 없는 죽은 문장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탓이라고 해야 할까,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앞 문장에서 어떤 단어를 골랐든, 앞으로 내가 어떤 글을 쓸 때마다 이 책의 내용이 가물거려서 내 둔한 머리 수준을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다.<br />
&#160;&#160; 윌리엄 진서의 이 책을 통해 나는 좋은 글쓰기의 핵심 요소가 명료함, 간소함, 간결함, 인간미(154쪽)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글쓰기에 있어서 명료함이란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이 이 글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간소함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글쓰기 자료를 자기가 쓰는 글에 쏟아 부어 만들어나가지 않는 것이다. 또한 어떤 영역의 글이든 작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글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간결함은 모든&#160; 문장에서 가장 분명한 요소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걷어내어서 표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미. 인간미는 아무리 딱딱한 글이라도 결국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일 수밖에 없는 작가의 목소리가 글의 문체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는 거다.<br />
&#160;&#160; 이 책은 또 우리에게 이런 깨달음을 전해준다. 앞에서 말했던 글쓰기의 이런 기능을 익히는 것보다 진짜 글쓰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쓰는 글의 내용에 대해 관심과 흥미, 애정을 갖는 것이 더 좋은 글을 쓰는 데 더욱 필요한 자세라는 것을 말이다.<br />
<br />
&#160;&#160; 중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쓴 책은 아니지만, 교사들이 이 책을 곁에 두고 글쓰기 지도에 활용한다면 학생들이 어떻게 글을 시작하고 내용을 채워 넣고, 마무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학생들이 쓴 글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를 내리고, 평가 결과에 대해 일관되고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도 가능하다. <br />
<br />
｢뱀발｣
&#160;&#160; 교사 자신이 글쓰기를 좋아하고, 평소에 자주 글을 써보는 것보다 좋은 글쓰기 수업 준비는 없다는데, 나는 리뷰 한 편 쓰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니, 참……! (선생 노릇 제대로 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그러니 수 백 편의 리뷰를 쓴 사람들이 부럽다고 해야 하나, 두렵다고 해야 하나?<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01/79/cover150/897199295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2956</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신갈나무 투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 - [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089589</link><pubDate>Tue, 13 May 2008 20: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0895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8890539&TPaperId=208958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0/51/coveroff/897889053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8890539&TPaperId=20895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a><br/>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1999년 09월<br/></td></tr></table><br/>&#160;&#160;&#160;두 번째 읽은 신갈나무 투쟁기! 나는 책을 정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어떤 책을 한 번 읽고 난 후 책장에 꽂아두고 돌아서면 책의 내용이 캄캄해질 때가 잦다. 거기다가 읽은 지 좀 오래되기라도 했다면 정말 아! 저 책, 읽었지, 하는 것만 남아있지 구체적인 내용은 다 날아가 버리고 없다. (그러면서도 대충 읽은 걸 가지고 아는 티를 팍팍 내고 다닌다.)<br />
<br />

&#160;&#160; “이 책은 철저하게 나무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라는 말이 그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아니 눈으로는 읽었으되, 내 마음에까지 가닿지는 않았나 보다. 이번에 새로 읽으면서 나무의 관점으로 씌어졌다는 걸 충분히 이해했다. (마음으로 느꼈다, 고 쓰고 싶었지만 왠지 너무 나간 거 같아서 이해했다,로 고쳤다.)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려는 과학책에 이처럼 독특한 형식의 글을 쓰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또 글 잘 쓰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더구나 신갈나무의 일생을 소개하는 동안 그때그때, 숲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있어서 식물의 생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br />
<br />

&#160;&#160;&#160;이 책을 통해 본 신갈나무는 일생동안 투쟁을 하며 살아간다. 어미로부터 떨어져 나온 열매가 낙엽더미 속에서 겨우내 잠을 자다가 새봄을 맞아 싹을 틔우고 뿌리를 뻗기 위해 죽을&#160; 힘을 다해서 발버둥 친다. 열매 속에다 떡잎을 만들고 나면 생존을 위해 다시 새잎을 만들고 햇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미 잘 자라서 햇빛을 가리고 있는 주변의 나무보다 높이 줄기를 뽑아 올린다. 이후에도 신갈나무는 쉼 없이 제 몸집을 키우고, 추위와 맞서 싸우며 열매를 만들어 퍼트린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넘어서야 신갈나무는 서서히 우리 숲의 주인이 되어가는 것이다.&#160; <br />
<br />

&#160; &#160;이 과정은 온 생명체와의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숲에는 처음부터 좋은 이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죽 했으면 신갈나무의 동지(同志)는 여분의 공간이라고까지 했을까? 이것은 신갈나무뿐만이 아니다. 뭇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숙명이다. 자연의 생명체가 투쟁의 삶을 불평해도 소용없다. 자연의 삶은 그 불평마저도 안고 도도한 강물처럼 정해진 운명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br />
<br />

&#160;&#160; 그러나 나는 호기심 가득한 자연과학도도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영역의 교양을 쌓기 위해 이 책을 골라든 평범한 국어 교사일 뿐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신갈나무의 성장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견주어 보고 배울 게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철저하게 나무의 관점으로 씌어졌다는 이 책이 내 생활을 되짚을 수 있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br />
<br />

&#160;&#160; 이 책을 통해 배운 신갈나무의 치열한 삶은 물론 읽는 사람의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편안하고 평탄하게만 보였던 나무의 일생에도 처음부터 어린 열매에게 주어진 것이란 없고, 나무로 일생을 살면서 공짜로 얻은 것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지금껏 나무처럼 치열하게 내 삶을 붙들고 살아 왔나, 하는 반성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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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그러나 인간의 삶은 나무의 삶과는 또 다른 삶이다. 나무의 치열한 생존 경쟁과 인간의 삶은 그 근본에서부터 다르다. 나무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야만 결국 ‘더불어숲’을 이룰 수 있다. 신갈나무는 뭇 생명들과 치열하게 투쟁하며 성장하지만, 이는 더 많은 생명체와의 연대와 번영을 위한 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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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는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이기적인 마음과 절제되지 않은 경쟁은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갈 뿐이다. 인간의 삶은 치열한 경쟁만으로는 ‘더불어숲’을 이룰 수 없다. 오히려 독립된 개체들이 서로 다른 존재의 차이를 인정하고 연대할 때라야 자연이 투쟁을 통해 이룩한 ‘더불어숲'이 가능한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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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신갈나무의 후덕함과 의연함은 본받되, 그 치열한 생존경쟁의 의미는 가려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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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신갈나무 투쟁기, 좋아하는 사람에게&#160;일독을 권해 줄 수 있는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0/51/cover150/8978890539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8890539</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억압의 시대를 건너 온 사람들 -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684600</link><pubDate>Wed, 07 Nov 2007 22: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6846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2875&TPaperId=168460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8/42/coveroff/89719928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2875&TPaperId=16846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a><br/>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09월<br/></td></tr></table><br/>&#160;&#160;&#160;기억은 약한 자의 마지막 무기라는 구절을 어디서 읽었더라?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라……. 육신이야 ‘영원’이란 말과는 애초에 끈이 닿지 않는 말일 테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이 책의 제목인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듯,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바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들의 삶이 살아있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이들은 비록 소수일지라도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어떤 식으로든 이들의 행동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기에 그들의 삶은 그들이 죽은 후에도 계속 사라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서경식 씨가 소개하고 있는 책 속의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는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은 무서운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의 흐름은 많은 사람들의 희망, 싸움, 고뇌, 환희를, 다시 말해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빠르게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그것만큼 인간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한국어판을 내면서, 6쪽), 라는 구절이 들어 있는 책의 앞머리를 볼 때, 저자는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통해 현재의 우리 삶을 성찰하지 못하는, 그래서 한갓 그들의 삶을 과거의 일로 치부해 버리는 우리들의 태도가 못내 안타깝고 그 결과로 빚어질 현실이 무서운 모양이다.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야 할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든 것은 결국,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 때문이고, 불행한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그들의 불행한 과거가 우리의 미래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미 이들 중 다수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지금 필요한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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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이 책의 인물들은 처음에는 일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음에도 지금은 대부분의 일본인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나는 스페인이나 독일에서 일어난 전체주의에 대항한 사람들의 이름 몇은 그래도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에 저항한 사람들은 정말 낯설었다. 특히나 일본인들의 이름은 이상하게도 기억하기가 더욱 어렵다. 하기야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다른 책에서 이 인물들과 마주친다고 해도 그 이름마저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 아쉽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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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이 책에서 소개된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가 만들어낸 그림자이자 영웅들이다. 시대에 맞서 온몸으로 살아야 했던 이 사람들이 살았던 20세기는 어떤 시대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파시즘, 나치즘, 군국주의, 군부독재, 외세강점, 전체주의 등으로 집단의 광기가 개인(인간)의 이성을 억압하던 시대였다. 책을 읽으며 앞에 떠오른 낱말을 묶을 수 있는 단어로 나는 ‘억압’이라는 말을 고르겠다. 사람이 살았던 시대치고, 어느 시대인들 억압이 없던 적은 없었겠지만, 에릭 홉스봄의 평가를 살짝 빌려 나타낸다면, 20세기는 ‘극단적인 억압의 시대’라고 불러 마땅하다.(영국의 역사가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평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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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이 책은 시대의 억압에 저항한 인물들의 짧은 기록물이다. 부제처럼, 온몸으로 살아간 사람들에게 대여섯 페이지는 너무한 것 아닌가 싶다가도 원래 20세기 천 명의 인물, 이라는 책의 일부분을 분담해서 집필하게 된 저자가 일관된 주제 아래 고른 대상자를 소개한 글이라 길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도 남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한 권의 평전으로 엮어도 모자랄 인물의 생애가 턱없이 짧게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이름도 처음 듣는 인물도 여럿이고, 이름만 들어 본 인물은 더욱 많은데, 이 사람들을 이렇게 그냥 스치듯 지나치고, 내 기억에 흔적을&#160;남기지 못하는 이런 책읽기도 괜찮을 지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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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이런 제한적인 지면(紙面) 때문에 각 인물편의 구성은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간략하게나마 인물의 생애가 정리된 형식을 띄고 있다. 그 뒤에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물의 행적이 주는 시대적 의미와 역사적 의의를 짤막하게 서술하였다.(쓰고 보니 전통적인 평전 형식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각 인물마다 뒷장에는 출판사의 수고로 인물의 생애와 가장 관련이 깊은 참고자료도 실려 있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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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아무래도 각 인물에 대한 내용 소개가 짧아서 인물들의 생애를 파악하는데 약간 헐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면 참고 도서를 바탕으로 새로운 책을 읽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군데군데 깊은 생각을 퍼 올려서 고운 채로 거른 듯한 서경식 특유의 문장이 좋다. 서경식의 글은 한 문장을 읽고 호흡을 멈춰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의미를 더듬어 본 다음, 다음 문장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평범한 듯 보이는 문장 속에 붙어 있는 예리한 인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 을 읽으면 의미가 더욱 풍성해지는 글이라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난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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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저자나 편집진의 의도였겠지만, 이 책은 편의상 3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제1부는&#160; 스페인의 시인으로 프랑코 정권에 암살된 페레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서 미국의 게이 운동가인 하비 밀크를 다룬 부분까지이고. 제 2부는 일본적인 것에 도전한 화가 사에키 유조부터 실존 인물이 아니라 야마구치 히토미의 소설 속의 인물로 양심적인 소시민의 전형인 에브라 만 부분까지이며, 제 3부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에서부터 한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독재정권에 체포된 두 형(서승, 서준식)의 감옥생활을 뒷바라지했던 저자의 어머니인 오기순까지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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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제 1부에는 주로 1930-1940년에 준동했던 독일의 나치즘, 스페인의 파시즘에 저항했던 인물,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혁명을 주도하거나 보수 반동의 군사 쿠데타에 저항한 인물, 아메리카의 억압적 상황에 맞선 인물,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고난(苦難)한 삶을 문학으로 표현한 인물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들은 억압자들에 맞서 들었던 무기는 문학과 예술, 총, 그리고 자신의 온몸이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20세기를 피와 땀으로 얼룩지게 했던 그 이름들은, 페레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파블로 네루다, 잭 시라이, 파블로 카잘스, 사코와 반제티, 에른스트 톨러, 카임 수틴, 바실리 칸딘스키, 에리히 케스트너, 숄 남매, 안네 프랑크, 살바도르 아옌데, 빅토르 하라,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폴 니장, 프란츠 파농, 프리모 레비, 갓산 카나파니, 하비 밀크 등이다.
&#160;&#160;&#160;제 1부에서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는 구절은 나치의 탄압을 피해 숨어살면서 나치체제의 야만성과 나치하의 유태인이 겪은 고통을 일기로 쓴 안네 프랑크의 말이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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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나는 전쟁의 책임이 위대한 사람들과 정치가, 자본가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책임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정말 전쟁이 싫었다면 너도나도 들고 일어나 혁명을 일으켰어야지요.”(84쪽) 어린 소녀의 눈으로 억압의 시대에 침묵했던 우리 모두의 비겁함을 질타하는 절규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마음을 울린다. 만약, 지금 안네가 살아있다면, 왜 우리를 기억하지 않느냐고 되묻지 않을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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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제 2부에는 주로 일본의 군국주의, 천황제에 저항했던 인물들이 소개된다. 당연히 일본인들이 대다수지만, 일부는 일본인들과 관련이 있는 외국인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이들은 주로 세계대전으로 치닫는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를 견디거나 적극적으로 저항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화가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저널리스트로서 불길한 억압의 시대에 진입한 일본 사회를 증언했다. 그러나, 문제는 저자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금의 일본인들조차도 이들을 기억하고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일본이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 나와 있는 “참화의 기억과 파국의 예감에마저 편안하게 익숙해져버려 이를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병들어 있는 것이다. ‘유일한 피폭국 일본’이라는 상투적인 문구가 있다.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히로시마와 나사사키에는 적지 않은 수의 조선인, 중국인들도 희생되었다. 게다가 핵물질에 오렴된 남태평양의 섬들이 있으며, 체르노빌에서도 방사능 유출로 인한 엄청난 재해가 있었다. 그 후로 반세기……. 사람들은 하라 다미키를 기억하고 있을까? 상투어만이 저 홀로 활보하고 있지만, 미일안보체제의 공고화, 비핵3원칙의 형해화, 그리고 평화주의 헌법을 내던져버리려는 최근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전후 일본의 현실은 하라 다미키가 고통스럽게 예감했던 대로 수많은 희생자들의 기원을 계속 배반하고 있다.”(180쪽) 에서 보듯이 지금의 일본인들에겐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인식’, ‘참화의 기억과 파국의 예감에마저 편안하게 익숙해진’ 일본의 현실에서는 군국주의와 천황제에 반대하고 저항한 이들을 잊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일본인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인물들은, 사에키 유조, 아이미쓰, 가모이 레이 ,마키무라 고우, 오구마 히데오, 하라 다미키, 가네코 후미코, 하세가와 데루, 리하르트 조르게, 오자키 호쓰미, 아그네스 스메들리, 가와카미 하지메, 에브리 만 등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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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제 3부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에 저항하거나 해방 이후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한 우리나라의 인물, 재일(在日) 조선인으로 살면서 일본의 조선인차별에 저항했던 인물을 주로 다루고 있다.&#160;안중근, 김구, 홍범도, 김산, 양징위, 이극로, 조문상, 김사량, 윤동주, 김지하, 박노해, 윤이상, 이진우, 양정명, 오기순 등이 그들인데,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인물들은 독립운동가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해방이후에는 문학가를 다루고 있다. 재일 조선인으로서는 제국주의 전쟁의 전범이 된 인물도 있고, 일본 내 차별이 발단이 되어 저항하다가 자신과 일본 사회 전체에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인물도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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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그 중에서도 저자가 20세기를 겪어 온 조선 민족을 상징하는 인물로 내세운 이는 바로 자신의 어머니 오기순이다.&#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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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오기순은 재일조선인 1세 여성으로서 차별과 빈곤을 겪었다. 40년이 지나 재회한 조국은 군사독재의 암흑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고통으로 가득했던 그 60년의 생애는 금세기 조선민족이 경험한 식민지배와 민족분단을 온몸으로 체현한 듯하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군사독재시대의 학대받고 멸시당하는 민중들, 특히 그 어머니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뜻하지 않는 때에 예측을 뛰어넘어 빛을 발하는 저 민중들의 강인함과 지혜는 오기순의 것이기도 하다. (327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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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이쯤되면, 말 그대로 온몸으로 살아낸 20세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억압의 시대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했으며, 때로는 이 저항이 당사자에게 비참한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비참한 결과를 통해서라도 역사는 진보하여 우리는 오늘,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다. 이미 역사가 우리에게 수많은 사례를 통해 알려줬듯이,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기억하지 못할 때 우리는 다시 우리가 지나왔다고 생각해 온 질곡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 오늘에 되새겨야 하는 것은 더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 꼭&#160;필요한 일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8/42/cover150/897199287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2875</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야" -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662310</link><pubDate>Mon, 29 Oct 2007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6623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3165&TPaperId=166231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5/44/coveroff/897275316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3165&TPaperId=16623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a><br/>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04월<br/></td></tr></table><br/>제 1편. 책으로 바뀐 인생<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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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소설 동의보감(이윤성, 창작과비평)-그 때는 학력고사 시절이었으니까 고3겨울 방학에 들어가면서 읽었던 책.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세 권짜리 책을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가 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작고한 것이 왜 그렇게 허전하고 아쉽던지…&#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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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임꺽정(홍명희, 사계절)-‘소설 동의보감’ 이후에 내 돈으로 한 권씩 사서 읽기 시작했던 열 권짜리 책. 낯선 단어들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대강의 줄거리만 더듬어가도 흥미진진해서 ‘얼른 돈을 모아서 다음 권 사러 가야지’ 하는,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든 첫사랑의 책. 돈 들고 서점에 가는 게 참 뿌듯했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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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 마땅히 겪어야 할 청소년기 자아의 성장이라는 통과 의례를 대학입시 이후로 미루는 게 당연시된다. 그러니까 덩치는 커지고 나이는 먹었어도, 사고 능력이나 자아 인식은 어린애 수준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 자아의 성장에는 자아 탐색, 자아 발견, 자아 확립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 사색과 독서와 체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독서는 사색의 계기나 내용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체험과는 달리 무제한의 간접 경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아 성장의 핵심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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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지금은 책을 읽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지만, 나 역시도 출발은 꽤나 늦었던 것 같다.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달리 말해서 자아 성장의 출발은 내 스스로 책을 골라 읽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랬다. 나의 책읽기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분명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진행형이라 아직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책을 통해 나만의 알에서 껍데기를 깨고 나와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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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대학에 진학해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도 했으나, 이내 책을 사 보는 것으로 습관이 바뀌었다. 빌렸던 책을 돌려주고 나면 내 머리 속에 들어온 내용이 책과 함께 내 머리에서 빠져나가는 느낌 때문이었다. 두 번 보지 않을 책이라도 내 방에 있어야 그런 느낌이 덜했으니까 책을 사 모으지 않을 수 없었다.&#160;&#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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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지금 나의 책읽기는 직업에 필요한 기본활동이자 중요한 취미활동이다. 책읽기를 통해 직접 만나지 못하는 낯선 세계와 만나고 있으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간접적인 만남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책을 통해 성장한 내 경험을 들려줄 때, 잠깐이라도 반짝거리는 눈빛을 던지는 아이들을 보는 게 좋고, 가끔은 고단하고 힘겨운 내 일상을 책 속에서 고통 받는 인물의 삶으로 대치시켜 감정을 정화시키기도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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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내가 그 때 소설 동의보감이나 임꺽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책읽기에 흥미가 생기지&#160; 않았더라면, 지금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겉으로는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 생활보다는 조금 더 단조롭고 지루했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지금보다 더 흐릿할 것이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배려와 여유가 부족했을 것이며, 내가 의식하며 살고 있는 세계의 범위는 턱없이 좁아졌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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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나는 꽤 오랫동안 알라딘의 ‘플래티넘’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고,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무엇보다도 기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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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내가 새삼스럽게 이 기억을 떠올린 것은 책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한 소녀를 만났기 때문이다. 재봉사의 딸이었던 바느질처녀. 산골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예쁜 이 처녀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재교육을 받기 위해 농촌으로 내려온 소년들과 친하게 지낸다. 소년들은 당시에 금서였던 ‘발자크의 소설’을 구해 처녀에게 들려준다. 이후에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고, ‘발자크의 소설’을 통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처녀는 산골마을을 떠나게 된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은(여기서는, 들은) 처녀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산골 처녀가 아니다. 책이 한 사람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렇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달라지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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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그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제 2편. 책이 없는 세상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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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두 번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군대라는 곳은 가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군인으로 길러지는 첫 과정인 훈련소 시절에도 몸은 힘들었지만 의외로 재미도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니까 오히려 속은 편했다. 오히려 나는 새로 초등학교를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군대의 훈련소는 어른이 다니는 초등학교. 비록 남녀공학이 아니라 슬펐지만. 초등학교처럼 모든 게 낯선 환경이니까 몰라도, 틀려도, 죄가 되지 않는 독특한 상황! 그러나, 단 한 가지, 머릿속을 텅 비우게 만드는 그런 상황은 괴로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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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명령대로 행동하는 인간으로 만들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걸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과 거리를 주지 않는다. 하루 일과는 아침 여섯시 기상부터 저녁 열 시 점호할 때까지 아주 빡빡한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며, 이후에도 책이나 잡지 등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재료는 차단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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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이미 어느 정도 책을 읽는 것에 길들여진 나는 훈련소에서는 읽을거리를 구할 수 없다는 게 아주 괴로웠다. 책은커녕 신문 한 장도 구경을 못 했으니까. 그 때 내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글은 편지였다. 그래도 입소하고 보름이 지나서야 쓸 수 있는 내 편지에 다시 답장이 오려면 너무 기간이 오래 걸려서 마음이 급했다. 그 때 친구에게 쓴 편지에 좋은 시를 좀 베껴서 답장으로 보내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허겁지겁 답장을 챙겨서 읽었던 그 순간이 짜릿함이란. 편지지 몇 장에 빼곡하게 담겨 있는 시를 밤마다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새삼 새롭다. 그 중에 한 편,<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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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 3<br />
-십오척 담장 밑을 거닐다 우연히 발견한 꽃. 나팔꽃보다 가는 줄기에 촘촘히 핀 붉은 꽃송이들. 누군가 일러준 그 꽃의 이름은 별꽃.......<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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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여 물어보지 않아도 / 난 네 이름을 금방 / 알 수 있었다
별꽃<br />

아름다운 것만 보면 / 불안한 시절에<br />

더 이상 / 아무것도 감출 것이 없다는 듯 / 가는 줄기에 촘촘히 / 박힌 붉은 / 꽃<br />

당신의 핏줄 한 올 뽑아 널면 / 이토록 붉고 선명한 꽃 / 피울 수 있나요<br />

아직 / 가슴에 달린 붉은 수번 하나조차 / 힘겨운 내게 / 묻는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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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것만 보면 / 가슴이 뛰던 시절에<br />

별꽃<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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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 그러나 아주 친숙한 얼굴로 너는 / 날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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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 문부식, 푸른숲, 1993)<br />

&#160;&#160;&#160;군대에 있던 나에게 이 시가 주었던 감동은, 지금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고 할까? 그랬다. 시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아도, 시 한 편이 사람 마음에 꽉 들어차면 그날부터 그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나마 알았다. 편지가 온 날부터 문부식의 ‘꽃들3’을 외면서 아침을 먹고, 제식훈련을 하고, 행군을 하고, 휴식을 하고, 뺑뺑이를 돌고, 점호를 하고… 그 때 훈련소 안에 핀 들꽃을 보면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군대니까 처음부터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어떻게든 견뎌 나갔겠지만, 친구가 보내준 시가 아니었다면 훈련 기간이 무척 더디게 느껴졌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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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내가 새삼스럽게 이 기억을 떠올린 것은 책을 읽는 것이 금지된 시대를 살아가는 두 소년을 책에서 오늘 만났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부르주아 계급의 아들인지라 농민에게 재교육을 받기 위해 시골에서 지내는 두 소년은 언제 도시로 갈지 기약도 없는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가 이들은 우연히 당시에 금서였던 ‘발자크의 소설’을 구하여 읽게 되고, 이를 계기로 점차 새로운 사건이 펼쳐지게 된다. 이들에게 ‘발자크의 소설’은 하방 운동 당시의 불안한 현실을 더욱 위협하는 요인(금서를 읽다가 들키면 중국 공안부에 고발당한다.)인데다가, 현실의 절망적인 삶을 뒤바꿀 수단도 아니었지만, 새로운 의욕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게 하고, 삶의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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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군대시절의 시(詩)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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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편. 책의 효용에 대한 헌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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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우리나라 작가들이 ‘전쟁’이나 ‘독재’에 대해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작가들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아주 뿌리 깊이 박힌 듯하다. 중국 소설의 문외한이지만 몇 권 읽어 본 중국의 현대소설들은 대체로 문화대혁명 기간에 겪었던 부조리한 상황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기야 ‘문화대혁명’으로 불리는 그 잔혹한 코미디의 최대 피해자가 바로 부르주아 지식인들이었으니, 작가들의 그 공포감이 전혀 근거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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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이 소설도 문화대혁명 기간에 부르주아 계급(의사)의 아들로, 젊은 지식인인 나와 ‘뤄’는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기 위해 ‘하늘긴꼬리닭’이라는 산 아래 마을로 오게 되었다. 이곳에 사는 농민들은 내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뤄’가 가진 자명종을 처음 보고 신기해할 만큼 문명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도시에서 재교육을 받기 위해 내려와 마을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은 나와 ‘뤄’의 순간적인 기지로 헤쳐 나가지만, 나와 ‘뤄’는 산골마을에서의 재교육이 끝나고 도시로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3/1000)라서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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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이들이 이런 산골 생활의 절망감을 벗어나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발자크’가 쓴 소설들을 구하고 나서부터다. 온 세상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어 읽을 책이 없던 문화대혁명의 시기에 이들은, 옆 마을에서 이들처럼 재교육을 받고 있던 ‘안경잡이’가 금서였던 ‘발자크의 소설’을 가지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고, 이들은 ‘안경잡이’가 재교육이 끝나 도시로 떠나기 전날 밤, 그 책을 훔쳐 그들의 손에 넣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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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내 친구 ‘뤄’는 이 책을 자기가 좋아하고 있던, 마을 재봉사의 딸인 바느질하는 처녀에게 읽어주기로 결심하면서 “이 책들로 나는 바느질 처녀를 딴사람으로 만들어놓겠다. 그 애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산골처녀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고 선언한다. ‘뤄’는 남들의 눈을 피해 밤마다 처녀의 집으로 가는데, 처녀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빨간부리까마귀’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낭떠러지를 지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매일 밤 힘겹게 낭떠러지를 건너 가 책을 읽어주던 ‘뤄’는 바느질 처녀와 깊은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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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뤄’가 촌장의 치아를 치료해준 덕에 휴가를 얻어 도시로 잠시 떠났을 때 바느질 처녀는 나에게 ‘뤄’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렸고, 나는 ‘용징’이라는 소읍의 병원을 찾아가 만난 산부인과 의사에게 ‘발자크’의 책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바느질 처녀의 낙태수술을 도와주었다. ‘뤄’는 다시 마을로 돌아왔지만, 석 달 후 바느질 처녀는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도시로 떠나버렸다. 바느질 처녀는 뒤늦게 알고 쫓아간 나와 ‘뤄’에게 발자크를 통해서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 깨달았다면서 가던 길을 가버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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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산골처녀에게 ‘책’은 자신을 변화시킨 원동력이었고, 자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책이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건강한 믿음을 가진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요즘처럼 책이나 문학이 무가치하게 취급받는 시대에도 이런 책이 꾸준히 읽힌다는 것은 묘한 역설이다. 만약 이것이 역설적 상황이 아니라면,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는 달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는 책에서 지친 삶을 위로받거나, 책의 힘으로 자기 내면의 변화를 꿈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었을 아름다운 책이다.<br />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5/44/cover150/897275316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3165</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우리 동네 사람, 여기 다 있었네. - [브라보 내 인생 - 손문상 화첩산문집]</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653005</link><pubDate>Wed, 24 Oct 2007 22: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6530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235232&TPaperId=165300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8/6/coveroff/89922352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235232&TPaperId=16530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브라보 내 인생 - 손문상 화첩산문집</a><br/>손문상 지음 / 산지니 / 2007년 09월<br/></td></tr></table><br/>
‘구포시장’의 추억<br />

&#160;&#160;&#160;초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살아계실 때는 가끔 텃밭에서 키운 부추며, 호박을 구포시장에 내다 팔고는 하셨다. 할머니 옆에 딱 붙어서 싸움 같은 흥정과 고도의 심리전 끝에 가격을 정하는 그 방식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고, 할머니께서 받은 그 돈이 아이스크림으로 변해 곧 내 입으로 들어오리란 생각에 마냥 신나기도 했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시장 근처에 산다고 하면 개를 도살해서 도소매로 팔아넘기는 것으로 유명한 동네 시장 탓에 아이들에게 가벼운 놀림의 대상이 되고는 했다.&#160;&#160;&#160;<br />
&#160;&#160;&#160;구포시장. 대부분의 재래시장이 백화점, 대형마트에 밀려나는데도, 아직 구포시장은 사람들로 복작거려서 아직 시장다운 맛이 있다. 비록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라, 후줄근한 모습 그대로지만서도. 물론 더 활기찼던 예전만 못하겠지만, 지금도 구포시장은 늘 앞에 가는 사람을 살피며 걸어야 할 만큼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으로 복잡한 곳이다.&#160;<br />
&#160;&#160;&#160;나는 오래전부터 시장 근처에 살아서 어디나 이런 시장이 있는 줄 알았는데, 구포시장처럼 큰 시장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진짜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시장의 매력까지 알게 된 것은 더 오래된 이후였지만.&#160;<br />
&#160;&#160; 오늘 나는 책 속에서 비릿하면서도 세련되지 못해 들큼한 사람냄새 가득한 시장 냄새를 맡았다. 손문상 화백의 ‘브라보 내 인생’의 표지 그림이 바로 낯익은 우리 동네 시장, 구포시장 풍경이다. 
결코 '브라보'일 수 없는, 인물-청소 아줌마.
&#160; &#160;제일 앞부분의 영도 해녀 편은 읽고 나면 웃음이 슬며시 떠오른다. 물론 고통스러운 현실을 웃음으로 눙쳐온 저 이면에는 얼마나 눈물바람이 잦았을까, 생각을 하니 웃음 뒤끝에 마음이 애잔해진다. 그래도 이제는 일흔 하나. 강해춘 할머니는 앞으로는 더 웃을 일이 많으실 것 같아서, 그림을 보는 마음이 따습다.<br />

&#160;&#160;&#160;그러나 결코 브라보일 수 없는 인물로 고심 끝에 청소 아줌마 편(43쪽)을 골랐다. 물론 청소 아줌마의 인생이 ‘브라보’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냥 그림 속의 아줌마의 삶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브라보 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줌마가 얼마나 될까? 아니,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브라보일 수 없다’는 내 표현은 청소 아줌마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대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살만한 세상이 가능하다는 내 소박한 연대감의 표현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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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청소 아줌마 편. 한 아주머니의 웅크린 모습이 그림의 가운데. 밑에는 연필로, ‘닦고 닦자 한 세상’이라고 적혀 있다. 형광등이 환히 켜진 복보 바닥은 이미 깨끗하게 닦여져 있고 아줌마는 그림 속의 복도 끝으로 계속 청소를 해 나가느라 몸을 웅크린 채로 뒤돌아서 앉아 있다. 아마 그림 속 아줌마의 등 뒤에, 보이지는 않지만 ‘비정규직’, ‘파견’, ‘저임금’, ‘차별’, ‘가난’ 이런 단어들이 주홍글씨처럼 박혀 있을 것이다. 그림 속 아주머니의 바람? 월급 좀 올라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랑 단풍놀이 다녀오는 것이란다. (지금이 바로 10월말. 단풍놀이 철이다.)
결국 '브라보'일 수 밖에 없는, 인물-김진숙 씨<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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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사실, 얼마 전에 소금꽃나무(김진숙, 휴머니스트)를 읽었다. 집회 현장에선 언제나 스스로는 아주 순박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연대사나 투쟁사를 읽었지만, 그 연대사를 듣던 나는, 아니, 우리는, 집회참가자의 본분을 잃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느라 민망하게 만들었던&#160; 그 목소리가 검정색 글씨로 변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160;
&#160; &#160;손문상 화백의 그림 속에서 그이는 연대와 희망의 이야기꾼답게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늘 짧은 커트머리는 변함이 없고, 한 손에는 마이크를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매직펜을 들고 있다. 그는 아마 오늘 강연에서도 나 같은 사람을 여럿 울렸을 것이다. 나는 그림 속의 김진숙 씨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그이 특유의 말투가 금방 머릿속에 되살아나서 책 속의 글자들을 빨아들인다.&#160;&#160; 
&#160;&#160;&#160;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 20년도 더 전에 한진중공업에서 해고 되어서 아직 현장에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 김진숙 씨는 이제 현장보다 집회장에 더 많이 다녔을 텐데도 여전히 복직을 이야기한다. 그는, 늘 연대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노동자들끼리의 단결과 연대를 말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인 연대를 말한다. 그런 다음에야 노동운동에 새로운 희망이 있음을 말한다. 노동자들에게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 사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어떻든, 누가 뭐라고 하든, 이 사람의 인생은 ‘브라보’ 일 수 밖에 없는 거 아닐까?<br />

뚝심으로 만든 귀한 책!
&#160;&#160; 손문상 화백이 부산일보에 연재했던 ‘화첩인터뷰’를 묶어낸 이 책은 신문으로 나왔을 때나 책으로 만들어졌을 때나 한 사람의 뚝심으로 만들어낸 신문이나 출판시장에서 아주 희귀한 사례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론적으로 신문은 새로운 정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매체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가 없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아무리 흔해도 신문에 날 일은 없다. 신문쟁이가 딱히 그 사람을 만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소설가 김곰치와의 대담을 읽으니 ‘계기’가 없다, 라는 표현이 나오더라.) 그러나 ‘사람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손문상 화백은 이런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고, 그들의 모습을, 아니 그들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을 그림으로 그려 신문에 실었고 이번엔 책으로 펴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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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사실, 따지고 보면 잘난 사람들의 특별한 삶 말고, 너무 평범해서 이름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가 모여 세상살이의 근본을 이루는 것 아닌가? 이 당연하고도 자명한 이치에 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적은 것인지, 귀해서 더욱 손문상 화백의 이 책이 반갑다. 더구나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동네(부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어쩌면 이 사람들과 길에서 가볍게 스치기도 했을 뿐, 단 한 번도 주목하지 못했던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우리 동네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애정을 보내준 책이 있어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기분이 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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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8/6/cover150/899223523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235232</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교원평가제라는 '신화'를 비판한다. -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625423</link><pubDate>Fri, 12 Oct 2007 16: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6254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02097&TPaperId=162542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1/73/coveroff/899140209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02097&TPaperId=16254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a><br/>이철호 외 지음 / 메이데이 / 2007년 05월<br/></td></tr></table><br/>&#160;&#160;&#160;조금은 엉뚱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먼저 책에서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측면을 떠올리면, 현재 내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담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내가 너무 내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하는 책에 인색한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나와 다른 주장을 펴는 그런 책은 읽으면서도 심리적으로 불편하니까 더욱 멀리 하게 된다. 그 밑바탕에는 내 생각이 옳다는 ‘독선적’인 사고방식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틀린(혹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계속 읽는 것은 취미활동도 아니고, 아예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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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다음으로 책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측면을 떠올리면, 굳이 내 생각과 다른 책들을 읽어가면서 마음이 불편해 지고, 답답해 할 필요가 있나 싶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마음에 맞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듯이 책도 그러면 되는 게 아닐까? 읽으면서 즐겁고, 책을 통해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른 어떤 취미 활동보다도 건전하고 의미 있는 놀이다. 그래서 대부분 내 생각의 결론과 비슷한 주장을 담은 책으로 마음의 즐거움을 즐기고, 이를 통해 내 생각이 사회적 다수의 생각과 비슷함(비록 현실에서는 소수일지라도!)을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아닌가 싶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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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나 교육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과 대안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현직교수와 교사, 교육운동가 등이 글쓴이로 참여하고 있어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면서 막막한 현실이 답답할 때, 우리 교육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큰 방향과 함께 교육 현안에 대한 쟁점을 주로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담론을 정리한 글을 읽으면 기운도 나고, 새로운 의욕도 생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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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너무 개괄적으로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 짧은 분량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고 이해하면서도 열 쪽 이내로 정리된 각각의 주제들은 어쩌면 책 한권 정도로도 정리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민감하고, 갈등의 연원이 깊고, 다수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고,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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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그래도 교육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나 우리 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안이 궁금한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의외로 이 정도로 정리된 글도 읽어보지 않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파괴하려는 사이비 언론의 새장에 갇혀 사는 앵무새가 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현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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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밑에 덧붙이는 글은, 이 책을 읽던 중에 나와 신문 읽고 논평하는 글쓰기를 하는 학생이 마침 신문에 난 교원평가제에 대한 내 생각을 물어왔기에 적었던 글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 이 책의 ‘리뷰’로 옮겨두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고 본다.&#160;&#160; <br />



교원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네 물음에 답하며 
&#160; &#160;네가 쓴 공책을 받고나서도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거기에다가 네 생각을 차곡차곡 써내려간 하늘색 공책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좀 묵직했다. 앞으로 교사가 되고 싶다는 네 삶과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내 삶에 직접 맞닿아 있는 주제인 교원평가제를 문제를 앞두고 내 마음속의 결정은 이미 내려졌는데, 이 마음을 어떻게 진실 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진실 되게’, 라는 표현을 썼다. 항상 타당한 논지를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논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내가 ‘논리적으로’, 라고 말하지 않고, ‘진실 되게’, 라는 말을 쓴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사안만큼은 내 생각을 오롯이 잘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주면 좋겠다.<br />
<br />

&#160; &#160;네가 스크랩한 기사를 보니, 전 국민의 80%가 교원평가제에 찬성한다고 되어 있더구나. 이 결과를 보면서 처음에 바로 들었던 생각. ‘교원평가제’를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 국민이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 교원평가제에 대한 여러 경로의 정보를 받아들여서 이해하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모든 제도나 일은 완전히 옳거나 전부 그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과연 저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들은 교원평가제의 단점을 하나라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언론에서 무수히 말하는 좋은 점 말고 단점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교원평가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우리 국민들에게 제공되는지 의심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정보에 접근하는 구조가 편향되어 있는데, 찬성 비율이 99%가 안 나오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 싶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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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교육인적자원부나 언론은 교원평가제의 장점으로 교원평가를 통해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과 무능력하거나 부적격 교원을 걸러낼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아울러, 교원평가제를 시행함으로써 교직 사회에 긴장감을 불러와서 교단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도 꼽는다. (물론 교육부는 공식적으로 교원평가제를 통해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고 자기 계발을 도모한다는 공자님 말씀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나,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나, 비공개적인 생각은 아마도 앞에서 내가 말한 대로 교원평가제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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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먼저 그 두 가지를 정리해 보면 교원평가를 통해서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 것 같다. 교사의 1년간의 수업활동에 대한 관리자, 동료교사, 학부모와 학생들의 평가를 통해서 교사에게 보다 질 높은 수업을 기대하는 것은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아주 소박한 바람일지 모른다. 그러나 교원평가를 위해 참관 수업을 1년 동안 매일 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고, 특정한 날이나 기간에 공개 수업의 형태로 하게 될 텐데, 이게 실제 학교현장에서는 정말 문제가 많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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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지금도 교과별로 1년에 한두 번 정도 있는 연구수업을 한 번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연구수업은 말 그대로 교사의 자율적인 (교과) 연구에 의한 수업이다. 그런데도 어떤 교사는 일주일 전부터 아이들에게 똑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연습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연구수업은 특별히 승진이나 인사고과와도 관련이 없다.) 이런 수업을 참관하고 있으면 마치 잘 짜놓은 연극을 보는 것과 같아서 ‘수업이 맞아?’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어쨌든 교사가 짜놓은 수업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수업의 내용구조와 형식을 대체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잘 했다는 격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런 수업을 한 교사가 일 년에 서너 차례 해서 교원평가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정상 수업은 온 데 간 데 없고 보이기 위한 평가수업을 연습만 반복될 것이다. 거기다가 학부모까지 와서 참관한다는 것은 더욱 부작용이 심할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을까?) 만약 1년 동안 수업평가자가 내 수업을 전부 참관하면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 형성 정도, 학생의 학습 능력과 수업 태도, 교사의 수업 준비, 수업 상황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때는 교원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 교원평가제로 수업의 질 개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현재 교단의 분위기로 봐서는 어렵다고 본다.(만약 평가시스템이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면 연극 형태의 수업이 극에 달할 것이고 수업이 파행으로 치달을 것이며, 구조조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교사들은 잡무가 늘었다고 불평하면서 어떻게든 문서만 그럴듯하게 꾸밀 가능성이 아주 높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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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두 번째로 교원평가를 통해서 부적격 교원을 걸러낼 수 있지 않다는 점이 교원평가제의 장점으로 거론된다. 학부모나 일반 국민들은 교원평가제를 통해서 성적을 조작하는 교사,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 금품을 수수하는 교사, 성범죄를 일으키는 교사를 교단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교원평가제 도입을 바라는 세력이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어 내기 위해 이치에 맞지 않는 정보를 흘리는 나쁜 방법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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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앞에서 말한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교사는 명백히 범죄행위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원평가제와는 상관없이 일반 범죄 행위로 형사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교원평가제가 시행되지 않는 지금도 저런 범죄를 일삼는 교사들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 징계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원평가는 현재로서는 수업 평가에 한정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이나 학부모들이 바라는 소박한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교원평가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현상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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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물론, 이런 기대감을 이해할 수는 있다. 내 아이를 맡아서 가르치는 교사가 실력이 형편없거나 심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에 교원평가를 통해서 교단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사실, 그 기대감으로 교원평가제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본다. 부모님들의 애타는 심정을 온전하게야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를 통해 그런 교사가 걸러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일 년에 두어 번 수업에 참관하는 것으로, 교사의 무능력을 판단할 수 있을까? 학부모들은 평소 아이의 말만 듣고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는 전문적인 교육활동을 비전문가인 학생과 학부모가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고 옳은 일일까? 설령 무능력한 교사로 지목되어도 실질적으로 교사의 인사권을 휘두르는 관리자에게 미운털이 박힌 교사가 아닌 이상 신분에 변동이 있기는 어렵다. (학부모의 판단과 관리자의 판단은 완전히 다를 수 있고, 아무래도 학부모가 평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관리자나 동료교사의 영향력보다는 적을 것이다.) 따라서 교원평가제를 도입할 때 기대하는 학부모나 학생의 바람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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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그렇다면 왜 이렇게 교원평가제를 도입하려고 애쓰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교육이 부실하다는 신화(근거 없는 믿음이거나 거짓된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의 책임을 교사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교원의 구조조정(학령인구 감소로 앞으로 교원의 구조조정을 필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따라서 교원평가제도의 도입이 선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교육계가 지금과 같은 인사구조 하에서 구조조정을 시도한다면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를 통한 구조조정에는 모든 책임이 ‘무능력한’ 교사 개인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훨씬 쉽게 교원 축소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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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다음으로 교원평가제는 ‘단위 학교의 자율성 신장’이라는 명분으로 교육관료, 혹은 학교장의 교사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교원평가제로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시달리게 될 교사가(그것도 학교장의 입장이 가장 많이 반영될 교원평가제가 시행되고 있다면) 학교장으로부터 최소한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활동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아울러 아직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도 없는 관리자들이 수두룩한 2007년 대한민국의 학교는 교원평가제를 무기로 관리자의 전횡이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이를 적절히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학교 내 조직의 부재로 학교는 더욱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장소로 퇴행할 가능성이 크다.(학교는 지난 20년간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도달한 민주주의적 성과를 전혀 못 따라가고 있다. 아직도 5/18 광주항쟁에 대한 수업을 하려면 ‘수업자료’를 뺏는 곳이 학교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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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이제 내용을 정리할 겸 해서 내 생각을 짧게 말하면, 학부모와 학생의 간절한 바람은 이해하나 교원평가제를 통해 그 바람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교원평가제를 시행해도 좋아지는 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교원평가제가 시행되었을 때, 교사들의 사기 저하와 교원 통제에 따른 자율성의 퇴보 등으로 학부모나 일반 국민이 기대하는 학교 발전은 더욱 더 퇴행할 수&#160; 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교원평가제, 꼭 해야 할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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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소박하게 쓰려던 게 약간 딱딱해졌다. 네 글 덕분에 내 생각이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내 생각을 다시 한 번 성찰하려고 애썼다. 그런 점에서 고맙고, 또한 기쁘다. 낼부터 시작하는 기말시험,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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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날이 차다. 감기 걸리지 않도록 늘 신경을 쓰자. 안녕.<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1/73/cover150/899140209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02097</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희망, 사막을 건너는 법 - [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583184</link><pubDate>Thu, 20 Sep 2007 09: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5831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1252&TPaperId=158318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9/7/coveroff/89364712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1252&TPaperId=15831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a><br/>김상욱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7년 03월<br/></td></tr></table><br/>* 이 책의 내용이 좋아서 책을 바탕으로 제가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써 준 편지글입니다.
느티나무가 보내는 편지 4
&#160; 희망, 사막을 건너는 법<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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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먼저 시 한 편 같이 읽어요.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눈으로 찬찬히, 입으로는 나직히&#160;읽어 봅시다.&#160;
장수산1<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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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벌목정정 이랬거니 아름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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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160;음, 생각이 납니까? 방학 때 수업하면서 읽은 정지용의 詩군요. 시 속의 화자인 사내는 눈덮힌 한밤중의 산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직 산에는 고요만 가득할 뿐이구요. 그 고요함을 배경으로 화자는 달이 훤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화자는 이 길이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 이미 ‘웃절 중’이 걸은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요. 그 중이 번번이 희망을 가지나 그만큼 실망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웃으며 돌아간 길이 아닐까 생각이 아닐까요? 시적 화자는 자신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촐한 사내’가 아니기 때문에 웃을 수도 없는 것을 압니다. 오히려 그는 지금 깊은 시름에 잠겨 있습니다. 시름은 고요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인식되겠지요? 그리고, 끝내 화자는 “견디란다 차고 올연히”라고 스스로 기다림의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현재의 고통에 대한 탄식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오직 견뎌냄으로써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와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다짐하는 것이지요.&#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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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시를 읽고 밑에 곁들인 설명까지 읽어 보니 어떻습니까? 지금의 우리 모습과 한 번 견주어 봅시다. 우리는 힘든 고갯길의 마지막 된비얄을 오르고 있습니다. 함께 가는 친구들은 많지만 결국 그 고개는 혼자서 올라야 하는 길이겠지요? 가장 힘든 지금 이 순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들다는 탄식도 절망도 아닌, 오직 견디는 것, 그것이 아닐까요? 이 시 속의 화자처럼 말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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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60; 시와 밑에 매달린 잔소리가 맘에 들었나요? 그럼 다른 詩도 한 번 더 읽어 보도록 합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작품인데요. 우선, 시를 읽고 나서 다시 얘기할까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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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160;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br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br />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br />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br />
바로 날도 저물어서, <br />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br />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br />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br />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br />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br />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br />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br />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br />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br />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있다. <br />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br />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br />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br />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br />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br />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br />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br />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br />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br />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br />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br />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br />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br />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br />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br />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br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160;
&#160;&#160;&#160;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시가 시작되는 처음에 막혔던 마음이 뒷부분에서야 조금 후련해 지지 않나요? 시의 화자는 갑자기 아내도 집도 다른 가족들과 헤어져 쓸쓸한 거리를 헤매고있지요. 그러니까 화자는 삶의 의욕을 잃고 슬픔과 어리석음에 가득 차서 자신의 존재조차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마침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아프게 느낍니다. 그러나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것”임을 깨닫고는 “외로운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 전환에 힘입어 시는 앞의 누워서 뒹굴던 수평적인 이미지를 벗고, 무릎을 꿇는 수직적인 자세로 어둠 속에 “따로 외로이 서서”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면서 시를 맺고 있습니다.&#160;
&#160;&#160;&#160;이 시의 “눈을 맞고 서 있을 굳고 정한 갈매나무”와 앞의 시에 나온 “오오 견듸란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의 시적 화자는 서로 닮아있지 않습니까? 마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기어이 견디어 내고 말겠다는 굳은 다짐을 선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160;
&#160;&#160;&#160;학생이라면 무릇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앞의 두 시인처럼 지금 이 시름 속에서도, 어떤 슬픔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놓아버리지 않는 존재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여러분들 모두가 힘든 상황을 견뎌내리라 믿습니다. 참고 견뎌내는 것, 바로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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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9/7/cover150/893647125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1252</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조금 슬프고, 무척 놀랐고, 아직 느끼지 못한 책 -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 고종석 시평집]</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106343</link><pubDate>Fri, 27 Apr 2007 13: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1063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690468&TPaperId=110634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8/63/coveroff/89576904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690468&TPaperId=11063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 고종석 시평집</a><br/>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09월<br/></td></tr></table><br/><!--StartFragment-->&nbsp;&nbsp;&nbsp;&nbsp; 조금은 슬펐다,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고종석, 개마고원)를 읽는 내내. 지금은 희미한 기억이 되고 말았지만, 나도 한 때는 참 좋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왜 좋은 사람을 알게 되면,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좋아져서 막 자랑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나는 꼭 그 때가 그랬다. 그를 만났을 때. 헌신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딴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의 참모습을 몰라볼 때는 속상했고, 근거 없이 험담을 늘어놓을 때는 나라도 나서서 공박해 주고 싶은 욕망을 지그시 눌러야했다.&nbsp;
&nbsp;&nbsp; 세월이 꽤 흘러, 이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고 말아, 그와는 꽤 오래 전에 마음을 정리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이미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말하는 것(심각한 표현으로는 ‘환멸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할 때 내 머리와는 별개로 내 마음이 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싫어졌지만, 다른 사람이 욕하는 것도 듣기 싫은 이 애증. 이런 애증을 불러일으키는 그가 바로, 노무현이다.&nbsp;
&nbsp;&nbsp; 고종석의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에 실린 글의 배열은 원래 기고했던 매체에 발표된 시기의 역순이라고 했다. 이 칼럼들의 대부분은 현재 ‘노무현’에 대한 실망과 환멸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의 가벼움, 지지자들을 배반하는 일관된 정책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한 말이나 글은 시중에 이미 차고 넘침으로 내가 달리 덧보탤 말은 없겠다. 나 역시도 그러니까.&nbsp;
&nbsp;&nbsp; 무척 놀랐다,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고종석, 개마고원)를 읽는 내내.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과 비슷하다고 느낄 것이다. 건강한 시민 의식이 갖춘 사람이라면-그러니까 이 정도 책을 읽겠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식’을 말하고 있으니까. 당연하면서도 읽을 때 놀랐던 사실! ‘타고나기를 우파’인 그의 생각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자칭 ‘우파’라는 사람들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보수’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보수’한다고 떠드는 게 말도 되지 않는 소린 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그냥 ‘보수’라고 불러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다가도 진짜 이런 ‘우파’를 만나고 나니 더더욱 그들이 ‘보수 우파’가 아님이 드러나고 만다. 아무래도 이념상 ‘중도 좌파’인(좌파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은 가만히 놓아두고, ‘열린우리당’을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 부르는(그냥 싫고 짜증나서 부른다고 한다.) ‘극우주의자’들의 말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보다 제법 왼쪽으로 치우쳤다.(행동이나 이념은 극우파, 말은 자칭 ‘우파’니까 그들의 말은 그들의 생각보다 더 ‘좌편향’이다.)&nbsp; 
&nbsp;&nbsp;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의 글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고 놀랐다. 언젠가 한겨레신문에 한국의 글쟁이,에 나온 거 같아서 검색했더니, 역시나 만만찮은 독자를 거느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이자, 언어학자라는 소개가 나왔다.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문화전달자,라고 했다던가? 나도 앞으로는 고종석의 책을 구해서 읽게 될 것 같다. 늦게 만났지만, 차분하게 그의 지적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싶다. 퍽 유쾌하지는 않아도 내 생각을 다잡고 자신을 돌아보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nbsp;&nbsp;&nbsp; 
&nbsp;&nbsp; 잘 모르겠다,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고종석, 개마고원)를 읽는 내내. 그의 글에는 대체로 ‘한국어를 가장 정확하게 구사한 글’이라는 찬사가 붙는다. 나는 우리말 지킴이 축에는 전혀 들지도 않지만, 그래도 가르치는 과목이 과목인지라 특히 주의해서 읽게 된다. 그런데, 내 감각이 많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사실 정확한 한국어로 쓴 글이 어떤 글이지 아는 것도 쉽지가 않다. 다만 내 나름대로 소박하게 그의 글을 읽는 느낌을 말해 본다면, 문장을 다 읽은 후에 그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다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게 좋았다. 또 마음속으로&nbsp; 책을 읽을 때 특별히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 없다는 점도 편안했다. 
　한국어를 정확하게 쓴다는 글에 대한 찬사로는 어쩌면 이 정도로 충분한 것일까? 턱없이 소박한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제대로 된 독자를 만나지 못한 그의 책이 정당한 평가를 얻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아둔한 독자를 만난 그의 책을 탓하랴? 원래 타고나기를 이렇게 생겨먹은 나 자신을 탓하랴?
* 뱀발 - 글샘님의 감식안을 늘 존중하지만, 고종석에 대해서 만큼은 선생님의 안이 틀렸기를 빈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8/63/cover150/895769046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690468</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나도 걸었다 - [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72318</link><pubDate>Sun, 04 Mar 2007 0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723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361868&TPaperId=107231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4/89/coveroff/89863618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361868&TPaperId=10723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a><br/>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br/></td></tr></table><br/>&nbsp;&nbsp; 저는 2001년부터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의 지은이처럼 오로지 걷기만 하는 도보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01년에는 부산에서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2002년에는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2003년에는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 2005년에는 목포에서 태안까지 다녔지요. 걸어서 여행한 거리를 정확하게 재보지는 않았지만, 어림잡아 1,500km는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nbsp; &nbsp;그 때마다 여행일기를 꼬박꼬박 쓰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메일로 보내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이 나서 컴퓨터를 뒤적여 보니, 다 있을 줄 알았던 2005년 여행기는 아예 남아 있지도 않고, 2003년 일기도 한 편 밖에 안 남아 있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알라딘에 다 옮겨 두는 건데, 어디 가서 잃어버린 내 글을 찾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nbsp;&nbsp; 여기 부끄럽지만 제가 걸어 다니면서 썼던 여행기를 맛보기로 옮깁니다. 혹, 이 글을 읽고 도보 여행에 약간의 흥미가 생기는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nbsp;혹시 제 글을 읽고 오히려 흥미가 떨어진 분들도 이 책은 제 글보다 100배나 생각이 깊고 잘 쓴 글이기에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사실, 저도 알라딘 대표님의 마이리스트 보고 고른 책이거든요. 좋았어요.)&nbsp; 
&nbsp;&nbsp; 이 책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걸은 한 남자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년 동안 이어진 이 여행을 세 권의 책으로 정리했고, 그 중 제 1권은 아나톨리아 횡단을 하면서 겪은 일을&nbsp;기록하고 있습니다. 
&nbsp; "사는 것이 곧 떠나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시는 분이나,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라는 말이&nbsp;읽으시는 분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켜 도보 여행은 어떨까?하고 한 번쯤 떠올리는 분들이 읽으시면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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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8월 6일 : 부산에서 해남까지 남도횡단 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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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오늘은 평소대로 일어나 바로 문산가는 버스를 탔습니다.[이 때는&nbsp;문산까지 걷고 숙소를 구하기 위해 진주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서 진주에서 잤거든요. 그래서 아침에&nbsp;다시 문산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탄 것이지요.] 문산 터미널 근처의 슈퍼에서 빵과 우유를 하나씩 사 먹고, 진주 시내를 향하여 걸었습니다. 문산읍에서 진주로 넘어오는 국도는 위험해도 무척 예쁜 길이었습니다. 시내 변두리에는 금방 도착했으나 중심지까지 가는 길도 무척 멀어서 둘이서 많이 지쳤습니다. 은행에 앉아서 한 번 쉬고는 계속 걸었구요. 가다가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기에 아예 깃발을 마련하자고 의기투합해서 진짜로 현수막 공장에 들어가서 "부산에서 해남까지" 플랜카드를 만들어 달라고도 했답니다. 아쉽게도 그 집은 실제로 제작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발로 끝났지만… 진주 남강을 끼고 돌아서 망경동으로 빠져 나와 경전선(慶全線)을 나란히 하며 하동 방면으로 걸었습니다. 중간에 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는데, 한 사람당 500원씩 깎아 주셨습니다. 
&nbsp;&nbsp;12시 반부터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저는 계속 잤습니다. (동행자는 뭘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고, 엽서도 쓰고 하는 것 같았는데….) 3시쯤에 일어나 다시 강행군을 했습니다. 3시 좀 넘어서 걷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며, 비가 엄청나게 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마음 졸아서 계속 걸었습니다. 
&nbsp;&nbsp;근데 아무리아무리 걸어도 마을이 안 나오는 겁니다. 한 3시간을 걸어도 마을다운 마을이 안 나오고, 찻길은 넓어져서 차들은 쌩쌩 달리는데, 마을이 있어도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도 많더라구요. 3시간을 넘게 걸어서 도착한 마을이 완사(浣紗). 그곳에서 자고 가기로 마음먹고, 보건소, 복지회관, 초등학교…. 부탁할 만한 곳을 다 돌아다녀도 허탕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더 가기로 마음을 먹고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nbsp;&nbsp;근데 마을을 둘러보니 좀 이상하더군요. 여느 시골 마을과는 다르게 건물들이 모두 양옥집이고, 지어진 시기도 비슷하게 보이고, 문패도 모두 똑같습니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서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이 마을이 진양호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수몰주민들의 집단 이주지역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는 이 마을은 "꿈꾸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녁도 공짜로 먹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그냥 주시더군요. 우리는 작은 돈이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막무가내로 받지 않으셔서 그냥 주소만 적어왔습니다. 부산가면 엽서 한 장 써야지요. 
&nbsp;&nbsp;아,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렀다가 뜻하지 않게 그 동네 아이들의 환영을 무지 받았습니다. 어찌나 OOO샘을 좋아하던지요. 덕분에 OOO샘의 발차기 시범, 마술쇼, 달리기 등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nbsp;&nbsp;저녁 먹고, 교회 담을 타고 널린 포도를 따먹으며 걸었습니다. 한 '1시간 정도 가겠지'하며 나섰는데, 실제로 한 시간쯤 지나니까 마음이 좀 급해집디다. 날은 완전히 어둡고, 잠자리는 아직 마련하지 못했고. 겨우, 사천시 곤양면이라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파출소부터 들어가서 단도직입적으로 "하룻밤 재워 주세요."라는 말씀드리니 돌아오는 건 어이없어 하는 웃음. 숙박은 곤란하다는 말에 난감해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운 숙소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하시자, 냉큼 나와서 차를 얻어 타고 가까운 읍으로 나왔습니다. (여기는 아마도 곤양읍쯤) 별루인 여관이었지만 차들이 많아서 비싸지 않을까 순간, 졸았는데, 아주머니가 25000원 부르시기에 20000원에 하자고 말씀드리니 선선히 승낙하시네요. (에이, 15000원이라고 하는 건데...^*.*^) 
&nbsp;&nbsp;씻고, 빨래하고, 뭘 할까 하다가 3일 전부터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동네 한 바퀴 둘러보자고 나왔다가 피시방으로 들어왔습니다. 한 30분 정도 되었는데, 전 글을 다 썼으니 먼저 가서 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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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내일은 일단 하동까지 갈 예정입니다. 하동까지는 한 30킬로미터 정도거든요. 부지런히 걸으면 도착하겠죠. 그리고 여기 '도솔사'가 근처에 있어서 잠깐 들를 겁니다. 아침에 잠깐. 다음날은 벌교까지 가구요. 다음날은 보성으로 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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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오늘 길가에 가장 흔하게 널린 게 잡초였습니다. ‘잡초는 왜 이름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길가에 숱하게 널려 우리에게 이름을 얻지 못한 잡초와 우리가 흔히 알고 있고 예뻐하는 꽃들이 차이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는 온전한 한 생명으로서 잡초와 꽃에게 제 몫의 삶을 주셨겠지요? 잡초의 생명도 예쁜 꽃의 삶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아시고 계신 생각을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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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저는 우리 아이들의 삶도(특히, 우리학교 학생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잡초처럼 쓸모 없을 지라도 다 그 나름대로 소중한 가치가 있고, 충분히 제 몫을 해나가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이 있는 것이고, 자기 몫은 다른 사람과는 경중(輕重)을 가리는 게 아니라 자기 몫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것과 스스로가 자기 몫의 삶의 살도록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랑 그렇게 많이 싸웠던(?) OO이가 새벽에 술 먹다가 문자로 "샘,뭐 하는데요?"라고 묻고, 제가 "걸어서 여행 다니는데, 힘들어 죽겠다"고 하자, "샘, 화이팅"이라는 메세지를 보내오는 걸 보면서 나름대로는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그래도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술 마시다가도 누군가가 생각나서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적어도 사람에 대해서 실망한 사람은 아니니 크게 나쁜 사람으로 크지는 않겠지요. 제 자랑이 과했습니다. 
&nbsp;&nbsp;앞으로 더 열심히 걷고 힘내서 가겠습니다. 이번 여행은 제가 얼마나 열심히 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 같습니다. 저만 힘들어하고 OOO샘은 무척 잘 걸어가네요. 저는 아무데서나 퍼질러 자고, 일어나지도 않고, 게으름도 많이 부리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계속 꾀만 부리려고 하네요. 내일부터는 아프더라도 좀 열심히 가 보렵니다. 
그럼 늦은 밤! 편안히 주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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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시 곤양에서. 느티나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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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11일 :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길 위에서 보내는 편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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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잡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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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안동시내 한 복판의 여관에서 잠이 깨자 창밖부터 봅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아니, 아직은- 비가 오지 않습니다. 서둘러서 짐을 꾸려 아직 잠이 덜 깬 안동 시내를 걸어 나옵니다. 여전히 아침은 빵과 우유입니다. 
&nbsp;&nbsp;오늘 걷기로 한 길은 안동에서 북쪽으로 난 35번 국도를 따라 도산서원까지입니다. 오늘은 아마도 거대한 안동호가 우리와 함께 걸을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안동호는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로 숨을 고르고 있겠지요. 징그러울 수도 있고, 안쓰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 게걸스러움에 돌을 던질까요? 그 넉넉함에 푸근히 잠길까요? 
안동 시내를 벗어나 서원으로 가는 길 입구는 참 예쁘게 나 있습니다. 안동 북쪽은 전형적인 시골길입니다. 예쁜 길 주변으로는 엄청난 비에도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벼와 포도, 호박, 고추, 수박들이 보입니다. 다들 이제는 비가 그만 와도 괜찮다는 표정들입니다. 
&nbsp;&nbsp;단조롭고, 긴장감이 별로 들지 않는 길을 걸으니 무엇이든 자세하게 보려는 버릇이 생기는 가 봅니다. 주의할 게 적은 길에서는 마음도 풀어져서 한눈도 팔게 되고, 콧노래도 부르고, 도로 주변을 왔다 갔다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은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시선이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점점 눈은 아스팔트 주변으로 고정되고,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nbsp; 이야~! 정말 대단하다!&nbsp; 그곳에는 잡초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습니다.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서 말입니다. 땅을 숨 막히게 덮고 있는 아스팔트 위로 올라와서는 참았던 숨을 내쉬듯 싱싱하게 잡초들이 자랍니다. 
&nbsp;&nbsp;아스팔트를 뚫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잡초뿐인가 봅니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다른 것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아스팔트를 뚫은 잡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요? 정말 그 힘이 대단함과 신기함을 넘어 두려운 생각까지도 들게 합니다. 사실, 잡초는 제가 보는 풍경의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식물의 대부분이 이름을 얻지 못한 잡초들입니다. 우리는 포도, 사과, 고추, 호박, 수박을 보고는 감탄하지만, 흔하디흔한 잡초에게 눈길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잡초를 보며 '우리 모두'의 삶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냥 이름을 얻지 못한 채 열심히 제 몫을 하며 사는 것! 누군가가 알아주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자존감으로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서는 것! 잘난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세상의 허한 구석을 채워야 할 운명 같은 것!(도무지 잡초를 빼고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제가 좀 억지를 많이 부리나요? 히!) 
&nbsp;&nbsp;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중간 중간에 일하시는 분들께 이것저것 여쭙습니다. 일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이 분들의 말씀마다 수줍은 듯이 ‘했니껴’로 끝나는 이 지역 말투가 너무도 순박하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으며 가야할 길을 잊은 것처럼 마냥 퍼질러 앉고 싶은 마음입니다. 
&nbsp;&nbsp;오늘 점심은 아주 특별합니다. 옛날에 살던 마을이 안동호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되어 집단으로 이사 온 마을에 들릅니다. 우연히 들른 식당이&nbsp; 나그네식당 이랍니다. 이 식당에 들고 보니 하나하나가 다 신기합니다. 허름한 간판하며, 가격표하며, 해 주시는 음식하며…. 이렇게도 장사를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nbsp;&nbsp;이 지역에서는 메밀묵을 '메물묵'이라고 하신 답니다. 그리고 노란색 조가 많이 섞인 밥을 내 주시면서 묵밥을 만들어 주십니다. 덤으로 할머니의 구수한 말씀이 곁들여져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점심을 먹습니다. 
&nbsp;&nbsp;도산서원은 그냥 지나칩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한참을 더 북쪽으로 가니 토계면에 숙소를 정하기로 하고, 면사무소에 들러 쉬면서 잠 잘 곳을 여쭈니 이 마을엔 없다고 합니다. 좀 전에 일하시는 아주머니께 여쭈었을 땐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다시 안동까지 돌아가서 자야할 것 같아서 난감합니다. 그래서 서둘러서 마을로 내려가다 보니, 바로 앞에 숙소가 보입니다. 황당해서 헛웃음만 나옵니다. 
&nbsp;&nbsp;바로 숙소에서 짐을 풀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왜냐면 내일 걸어야 할 거리가 만만찮은 까닭에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걸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6km를 더 걸어서 갔다가 옵니다. 
&nbsp;&nbsp;이곳은 떠나와서 처음으로 pc방이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입니다. 오는 길 내내 그 흔한 '여관' 하나 없는 그런 곳입니다. (요즘 국도를 가시다가 큰집을 짓고 있으면 십중팔구는 '러브호텔'이더군요.) 
&nbsp;&nbsp;저번 편지에 안동의 힘! 말씀을 드렸지요? 안동의 힘은 곳곳에 자리 잡은 고택이나 문화재가 아니라 아직은 저질 소비문화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선 논과 밭에서-아직은 러브호텔로 변하지 않은 논과 밭에서, 그리고 그 밭에서 정직하게 땀 흘리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봅니다. 
&nbsp;&nbsp;바로 그것이 잡초의 힘이겠지요. 안동의 힘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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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밤하늘에 별이 총총한 그 날이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늘 함께 해 주시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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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11일 경북 안동시 토계면에서 느티나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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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14일 :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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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어제 밤에는 무척 운 좋게, 깔끔하고 편한 숙소를 구했습니다. 어줍지 않은 글이나마 써 놓고 숙소를 잡았으니 무척 여유도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내일 일정을 정하고 일출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잠도 일찍 잤습니다.&nbsp; 
&nbsp;&nbsp;이른 새벽 저도 모르게 잠을 깨고 창밖을 내다보니 날이 잔뜩 흐립니다. 이것으로 성산봉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어제 잡은 일정은 어그러진 셈입니다. 그래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었답니다. 한참 후에 깨어보니 어느덧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늦어지는 걸 보니 이젠 몸이 제법 피곤한 가 봅니다. 
&nbsp;&nbsp;여전히 빵과 우유로 늦은 아침을 먹습니다. 가방을 챙겨들고 느릿느릿 성산봉 아랫동네를 돌아 성산항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햇살이 따갑습니다. 오늘도 날이 푹푹 찌려나 봅니다. 성상항에서 우도로 가는 배를 타고 우도를 둘러보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nbsp;&nbsp;우로로 들어가는 배에서 보니 일출봉의 모습이 마치 코뿔소가 바닷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인 모습입니다. 먼저 소머리 오름에 올라서 제주도의 모습을 보니, 어느새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 한라산이 수많은 오름들을 품에서 벌려놓은 듯한 모습이 장관입니다. 소머리 오름에서 바라본 바다는 막힘이 없어 보는 이의 눈맛이 시원합니다. 오름의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사진은 찍습니다. 
&nbsp;&nbsp;이후에 그 옛날 고래가 살았다는 동안경굴을 지나 고운 산호모래로 유명한 서빈백사를 둘러봤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우도의 모습은 때가 덜 묻은 순박한 마을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제주도가 원래 모습이 이랬지 싶은 생각이 들어, 뱃길로 15분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 세월의 시간 차이를 느꼈습니다. 
&nbsp;&nbsp;성산읍으로 나오는 배에서는 그냥 드러누워 또 일정을 잡습니다. 배는 야속하게도 금방 닿고 저는 점심을 먹고 움직이려고 어슬렁거렸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이리저리 머뭇거리다가 번잡한 거리를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nbsp;&nbsp;다시 해는 구름 속에서 나왔고, 곧 이어 땀이 쏟아집니다. 그나마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다 바람 덕에 쓰러지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는가 봅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조개잡이 체험장에 들렀는데, 저는 물집 잡힌 발이 걱정이 되어 사람들이 조개 잡는 모습만 구경하다 빠져나왔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동작이 굼뜨는 것 같아 걱정이 슬그머니 들어 이제부터는 발걸음을 좀 빨리 놀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빵빵! 하는 차 소리. 누가 길을 물어보나 싶어 의아해하고 있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선생님”하고 부릅니다. OOO선생님께서 여행하시다가 알아보시고 내리셨더라구요. 일행들 때문에 시원한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금방 헤어졌지만, 이런 곳에서도 반가운 사람을 만난 기쁨으로 또 얼마 동안은 힘내서 갈 수 있을 듯 합니다. 
&nbsp;&nbsp;점심을 제대로 먹기 위해 찾으려니 또 제법 큰 마을이 안 나타나네요. 오후 4시쯤에야 겨우 구좌읍내에 닿았습니다. 일단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학교가 개학을 했는지 하얀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로 좁은 읍내가 무척 활기찹니다. 학생들이 예뻐서 몇 마디 말도 붙여 보았는데, 답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경쾌한지……. 
&nbsp;&nbsp;점심을 먹고 내일 돌아갈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은 아무리 걸어도 더 큰 마을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숙소를 구하려고 했답니다. 발에 물집이 더 심해지고 발목이 시큰거려서요. 하루만 푹 쉬면 좋겠는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 그럴 수도 없고 걸음은 더 걷기 힘들고…… 그러나 지금 숙소를 잡으면 방값이 조금 비싸거든요. 얼마 전에 만난 제주도의 OOO선생님의 추천대로 근처에 있는 ‘다랑쉬오름’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가방은 마을 끝 빵집에 맡겨두고 가볍게 몸만 움직이기로 했지요. 
&nbsp;&nbsp;저 멀리 비자림(榧子林)들 돌아서 다랑쉬오름에 오르려고 하는데 구름이 잔뜩 끼었던 날이 더욱 흐려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다랑쉬오름의 입구를 못 찾아서 여러 번 헤매고 있었으나, 사람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어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앞은 점점 더 안 보이고……. 겨우 찾은 입구는 철망으로 막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되지만 철망의 개구멍을 찾아서 그냥 오르기로 하고 가파른 길을 꾸역꾸역 올라갔습니다. 암팡진 막사발을 엎어 놓은 듯 한 다랑쉬오름의 오르막길을 오르며 얼마나 쉬었는지 모릅니다. 
&nbsp;다랑쉬오름은 이번 제주도 도보여행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다랑쉬오름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의 가장 극적인 한 순간이 아닐까요? 특히, 제주 사람이라면 그 슬픔을 말로 풀지 못했을 뿐이었구요. 가슴에 켜켜이 쌓여있는 한의 상징일테지요. 궂은 날씨에 저 혼자여서 더욱 마음이 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좀 으스스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다랑쉬오름에 올라야, 제주도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관광지만 따라다녀서는 제주도의 한 쪽만 보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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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마음이 무겁습니다. 이곳을 떠나도 쉽게 잊히지 않을 풍경을 담았습니다. 이제는 이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도착해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 말씀드리지 않아도 늘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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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잠드는 제주도의 푸른 밤, 느티나무입니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4/89/cover150/898636186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361868</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내가 읽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 - [나의 서양미술 순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923316</link><pubDate>Thu, 27 Jul 2006 23: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9233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0744&TPaperId=92331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3/14/coveroff/89364707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0744&TPaperId=9233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서양미술 순례</a><br/>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2년 02월<br/></td></tr></table><br/>&nbsp;
1. 먼 길을 돌아와서 다행이다. 
&nbsp;

&nbsp;&nbsp;&nbsp;지금 나는 &lsquo;서경식&rsquo;이라는 사람이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두 번 읽고 책상에 앉았다. 책 표지의「쑤띤」이 처연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한동안 쉬이 잊혀지지 않을 표정이다. 이틀 동안에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집의 책꽂이에 서경식의 다른 책은 없는지 찾게 된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상황이 피상적으로나마 내가&nbsp;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형들의 이야기도 그랬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이야기도 읽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욱 그림을 앞에 둔 글쓴이의 마음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요컨대, 글쓴이가 말하려는 내용이 분명하게 다가왔다고 할 수 있겠다.
&nbsp;&nbsp;&nbsp;우리 집의 책꽂이에서 찾은 책은 &lsquo;청춘의 사신&rsquo;과 '소년의 눈물&rsquo;이다.&nbsp;나는 글쓴이가 20세기 미술가들의 작품을 좇아간 &lsquo;청춘의 사신&rsquo;을 먼저 읽었고, 모국어로 말하고 쓰지 못하는 글쓴이의 안타까움이 인상적이었던 &lsquo;소년의 눈물&rsquo;을 그 뒤에 보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러니까 나는 나온 순서로 따지면 제일 먼저였던 이 책을 맨 끝에 읽게 된 것이다. 다시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니 &lsquo;창비교양문고&rsquo; 시리즈로 나왔던 이 책을 언젠가 한 번 손에 집었다 놓았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nbsp;그런 생각이 떠오른 순간 이 책을 읽은 게 너무 늦은 것인은 아닌가 싶었다.&nbsp;이 책을 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유럽여행도&nbsp;다녀왔고(흔히 유럽여행 가기 전에 미술책 한 두권 쯤은 읽는 거 같던데), 그가 자주 중얼거리던 대로 앞으로 당분간은 이 책 속의 그림을 보러갈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야 이 책을 읽은 나는 오히려&nbsp;늦게 읽어서 더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하다. 
&nbsp;&nbsp;&nbsp;모든 책이 다 그렇겠지만, 그 책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알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진다. 그럼 이 책을 이해하는 데는 어떤 배경지식이 도움이 될까? 제목이 서양미술 순례니 미술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lsquo;서경식&rsquo;이라는 사람의 삶, 특히나 &lsquo;운명이 지워놓은 부당한 무게&rsquo;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 책을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nbsp;&nbsp;&nbsp;그의 둘째형이었던 서승이 지은 &lsquo;옥중 19년&rsquo;과 셋째 형이었던 서준식이 쓴 편지글 &lsquo;서준식의 옥중서한&rsquo;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서경식이 그림을 마주대하고 눌러 쓴 한 문장 한 문장이 깊은 성찰에서 나온 소리로, 호사가의 허투른 말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온전한 자신의 노력이었겠지만, 글쓴이가 영혼에서 진실한 표헌을 길어올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어쩌면 부당한 운명의 무게를 묵묵히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가족사도 한몫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밝음이 어둠을 만들어냈듯, 어둠과 상처가 밝음과 진실을 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nbsp; &nbsp;결국 이 책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nbsp;&lsquo;무서운 정념&rsquo;을 가진 한 인간이었던 그가 그림을 통해 자기 삶의 상처와 가족이 겪고 있는 아픔, 더 나아가 피지배자의 후예로서 지난날의 식민지 지배국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 인간의 영혼의 상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nbsp;그래서 나는&nbsp;&nbsp;역설적이게도,&nbsp;이 책을 만나기 위해 너무 오랫동안 멀리 돌아왔으나, 늦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늦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내가 받은 감동이 더욱 컸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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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림을 보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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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서양미술 순례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이 책은 물론 서양미술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그 글자보다 앞에 &lsquo;나&rsquo;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미술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아니라,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서 들었던 글쓴이(나)의 느낌이나 감정, 생각을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조금 더 바꾸어 말한다면,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글쓴이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의 생각을 더듬어간다는 것은 내 생각을 만난다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nbsp;&nbsp;&lsquo;짜 맞추기&rsquo;식이라는 혐의를 각오하고서라도, 그림 앞에선 글쓴이의 마음의 움직임을 몇 갈래의 가닥으로 나누어 본다면, 피지배자의 후예로서 과거의 식민지 지배국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자신과 가족의 삶에 대한 정체성, 조국의 감옥 안에 있는 형들을 둔 아우로서 감당해야할 운명의 무게에 대한 성찰, 우리 민족의 감당해야 했던 고단한 삶의 흔적과 세계사에 대한 일반적 통찰, 등을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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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자신과 가족의 삶에 대한 정체성 
&nbsp;․ 나는 다만 운명이 누이의 어깨 위에 지워놓은 부당한 무게를 묵묵히 생각할 뿐이었다. 
&nbsp;&nbsp;(수태고지, 37쪽) 
&nbsp;․ 허위에 병든 &lsquo;미의식&rsquo;이 식민지인인 나의 동포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던가를 잊었을 리도 없다.(데셔앙스, 45쪽) 
&nbsp;․ 유람하러 다니는 외국여행에서 당하는 얼마간의 고생 따위는 어머니가 겪은 회한과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데셔앙스, 51쪽) 
&nbsp;․ 만인이 다 아는 명화라 할망정 필요 여하에 따라서는 단속이나 말썽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암우한 감성이 그것에서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니! 그 말은 곧 이 그림에 그려진 살육과 저항 모두가 그곳, 다시 말해서 나의 조국에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nbsp;&nbsp;&nbsp;&nbsp;위대한 예술은 동시에 위대한 선전물이다. 거의 2세기 전에 그려진 한 장의 그림이 그 작가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극동의 한 나라의 관헌들로 하여금 자국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부당하고도 잔혹한 일들을 연상케 하고, 그래서 불안한 기분을 일으키게 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그림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모래에 묻히는 개, 98쪽) 
&nbsp;․ 피지배자의 후예가 절대적 소수자로서 지난날의 지배자들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 &lsquo;생활&rsquo;의 밑바닥이 불안을 품기에 충분하다. 하물며 고국은 두 쪽으로 찢어져 있는 채요, 형들 중의 두 사람은 이미 10년 이상 그 고국의 감옥에 있다. 양친은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화가 누이의 초상, 118쪽) 
&nbsp;․ &hellip;&hellip;버둥거리면 버둥거릴수록 속수무책의 불행을 엮어내고 마는, 그러한 삶이 있는 법이다. (화가 누이의 초상, 126쪽) 
&nbsp;․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위엄이 있었으나 몸차림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고, 피로로 충혈된 눈이 나날의 고뇌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그대로, 일찍이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와 밑바닥 노동에 시달렸던 나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모습이다.(젊은 부르델의 자화상,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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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이처럼 여러 그림 앞에서 글쓴이는 자신과 가족의 처지를 떠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 앞에서 만난 자신과 가족의 처지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 책의 곳곳에 나온 대로 말한다면, 속수무책의 불행에 엮인 삶이고, 마치 운명이 짐 지운 부당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삶인 것이다. 이들의 불행한 삶의 근원은,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왔다가 눌러앉게 되어 절대적 소수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피지배자의 후예로서의 삶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nbsp;&nbsp;그는 &lsquo;소년의 눈물&rsquo;이라는 책으로 묶어낸 자신의 글이 일본의 &lsquo;에세이스트클럽상&rsquo;을 받고 나서 &lsquo;일제가 조선을 식민 지배한 결과 나는 일본 땅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민족 차별 정책 때문에 충분한 &rsquo;우리말&lsquo;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 민족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일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 같은 역사가 나의 &rsquo;빼어난 일본어 표현&lsquo;을 가능케 해주었고 끝내 이런 상까지 안겨준 것이라 할진대,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rsquo; 라고 자조하고 있었다. 이를 볼 때, 그는 외부적 조건과는 상관없이 뼛속까지 자신이 재일(在日)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차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그의 조국은 두 형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자행하고 있으며, 늘상 살육과 저항이 빈번해서, 만인이 다 아는 명화를 보고도 자국의 상황으로 오해해서 불안을 느끼는 그런 곳이다. 그런 곳을 그는 &lsquo;조국&rsquo;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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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lt;테오&gt;와 &lt;서경식&gt;의 경우 
&nbsp;&nbsp;․ &nbsp;노예는 나의 형인 것이다.(거친 하늘과 밭, 60쪽) 
&nbsp;&nbsp;․ 테오의 죽음은 나를 한층 더 애절하게 만든다.(거친 하늘과 밭, 68쪽) 
&nbsp;&nbsp;․&nbsp;&nbsp;(창조자,구도자,혁명가인) 그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자에 대해서도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이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해자들이&nbsp;그 채찍의 아픔을 참고 견뎌주어야 하는 것이다.&nbsp;그것은 짐짝인 것이다.&nbsp;그러므로 &lsquo;슬픔과 고독&rsquo;은 고흐에게뿐 아니라 테오에게도 있었다. 그것을 처절한 색채감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형의 역할이었고, 그것을 말없이 감수하는 일이 아우의 몫이었다.&nbsp;테오는 진실로 그러한 방식으로 형 고흐가 행한 창조의 고투(苦鬪)에 당사자로서 참가했던 것이다. (거친 하늘과 밭, 69-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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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nbsp;만약 나 자신이 &lsquo;고흐&rsquo;가 그린 그림 앞에 섰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이미 그런 적도 있었으니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떠올려 봐야 할 텐데 도무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아마도 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보고 있다는 것에 마냥 들떠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고흐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에 압도당해 무엇이 그리 좋은지도 모르고 그냥 경탄하고 있었거나! 
&nbsp;&nbsp; 서경식은 고흐 형제의 무덤을 둘러볼 때도, 고흐가 그린 그림 앞에서도 &lsquo;정념&rsquo;에 가득 찬 형을 둔 그 아우, 테오의 삶과 마음을 더듬고 있다. 그 동생, 테오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을테니까 말이다. 그에게도 신념을 목숨보다 중요하기 여겼던 집념의 두 형들이 있었으니까. 그 동생 테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 당연했다. 마찬가지로 &lsquo;서경식&rsquo;이 &lsquo;테오&rsquo;의 죽음에 더 애절함을 느꼈던 것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nbsp;&nbsp; 아마도 서경식과 그의 가족들은 감옥에 가 있는 형제를 어떤 의미에서는 &lsquo;창조자, 구도자, 혁명가&rsquo;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lsquo;그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이해자가 되어 운명이 휘두르는 채찍의 아픔을 견디지 않았을까?&rsquo;라고 말하는 것은 테오의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이었던 것이다. 글쓴이는 말없이 아픔을 감수하는 것이 두 형을 감옥에 보낸 동생의 몫이라고 은근히 말하고 있는 듯하다. 테오가 말없이 감수하는 것으로 고흐의 창조에 동참하는 것처럼 그 자신도 바로 노예처럼 감옥에 묶여있지만 불굴의 의지로 창조가가 되려는, 구도자가 되려는, 아니, 혁명가가 되려는 형들의 삶에 그 자신도 묵묵히 동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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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역사를 꿰뚫는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 
&nbsp;․ 프라 안젤리꼬가 그린 화려하고 청순한 종교화의 그늘에도, 처참하기 그지없는 정치와 인간의 드라마가 감춰져 있음에 틀림없으리라고는 확신을 갖게 된다.(수태고지,35쪽) 
&nbsp;․ 이 저열하고 야비한 정신이야말로 아득히 먼 5백년의 전통이 길러낸 군국 스페인의 정화(精華)인 것이다. 
&nbsp;․ 군국주의 스페인 5백년의 전통, 그 중후하면서도 저열하기 이를 데 없는 정신에 대하여 한 사람의 그림장이의 거대한 불기의 정신이 대항하고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마침내 승리하는 모습이다. (게르니까, 88쪽) 
&nbsp;․ 굴욕을 당하고, 수탈을 당하고, 살육을 당해온 우리 민족은 과연 우리들 자신의 「게르니까」를 산출해냈는가. 군국 스페인 5백년의 공포와 중압이 삐까쏘를 낳았다고 할 때, 우리 민족에게 가해지고 있는 고통은 아직 가볍단 말인가.(게르니까, 89쪽) 
&nbsp;․ 민중의 희생과 저항은 &lsquo;외압&rsquo;에 대한 승리를 가져왔으나 그것은 반동을 동반하고 온 것이었다. (모래에 묻히는 개, 104쪽) 
&nbsp;․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가 되지만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을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희생이 가져다주는 열매는 흔히 낯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 
&nbsp;&nbsp;&nbsp;&nbsp;&nbsp; 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모래에 묻히는 개, 108쪽) 
&nbsp;․ 평가나 명성이 정해진 것만을 감지덕지 고마워하며 만족해하는, 뒤집어놓은 공식주의 냄새를 맡는다. 그것은 결국 싸움의 승패가 판가름 난 뒤에야 승자 편에 가 붙는 꼴이 아니고 뭔가.(중략) 그것은 변화나 진보를 긍정하는 정신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변화나 진보를 긍정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변혁하고 극복해야 될 대상으로서의 전통이나 보수를 시대적 조건의 문맥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화가 누이의 초상, 122-123쪽) 
<br />

&nbsp; &nbsp;이 책의 곳곳에 언급되어 있는 그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은 예리하다 못해 섬뜩하다. 청순함 뒤에 감추어진 처참함을 꿰뚫는 그의 인식으로, 다른 나라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스페인의 경우처럼 5백년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진주 같은 &lsquo;게르니까&rsquo;를 아직 만들지 못한 우리 민족의 &lsquo;비극성&rsquo;에 대한 한탄은 마음을 울린다. 정말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보태야 '게르니까' 같은 전쟁과 반동을 거부하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싶다. 
&nbsp;&nbsp;&lsquo;진보와 반동은 손잡고&rsquo; 온다는, 그래서 역사는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는 그의 인식은, 빠르게 보수화 되어가는 최근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진보의 시기를 거치고 나면 오히려 진보가 시작되던 그 지점보다 더욱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불안이 엄습하는 요즘의 우리 모습이다. 
&nbsp;&nbsp;하지만, 진보가 비록 반동이 함께 올지라도, 그런 희생 없이는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점에서 당위로서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시 진보에 대한 희망의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아 마음을 다잡게 된다. 
<br />

3.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읽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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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미술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내가 읽은 내용을 끼적거리는 이 글의 어느 부분도 온전히 미술과 관련된 내용은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글쓴이가 그림을 앞에 두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퍼 올렸다면, 나는 그의 책을 읽고 내 마음대로 그의 마음을 읽어간 것이라고 되먹지 않은 추측을 해 본다. 만만치 않았던 역사적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한 재일 조선인이 서양미술이라는 도구를 훌륭하게 써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다듬어낸 이 책이 내 마음을 울렸다.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책과 인물,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던 기억이 새롭다. 더구나 내가 읽었던, 서경식 씨의 앞에 두 책(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유려한 문체도 조금은 맛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의 다음 미술 순례가 기다려진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3/14/cover150/893647074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0744</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나는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한다.  - [처음 그 설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99971</link><pubDate>Wed, 21 Jun 2006 0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999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20025&TPaperId=89997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8/25/coveroff/89902200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20025&TPaperId=8999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처음 그 설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a><br/>파멜라 심스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2년 10월<br/></td></tr></table><br/>&nbsp; 
이제 교직 생활 8년차. 나는 지극히 평범한 교사라고 스스로를 생각한다. 남다른 인연으로 내가 만난 몇 아이들에겐 괜찮은 선생으로 그려지기도 했겠지만, 내가 담임을 맡았던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학교를 떠난 지금에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그저 그렇고 그런 여러 선생중의 한 명일 것이다. 지겹고 지루하기는 하지만, 학생들이 마냥 무시하고 안 들을 수는 없는 그런 ‘문학 수업’을 하는 국어 선생이 지금의 내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도 가끔씩은 학교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판단할 때도 있는지라 학생들과는 큰 마찰 없이 지내고 있는 점이 내 교직 생활의 작은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인 셈이였는데, 며칠 전에는 수업이 끝나고 잔뜩 화를 내서 내 작은 위안거리마저 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 몇 주 동안(사실은&nbsp;지금껏 계속이었을텐데, 내 눈에 띄인 것이 최근 몇 주 정도)&nbsp;계속해서 수업 시간에 무기력하게 엎드려 있는 녀석이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내가 가서 깨우고, 잠시 후면 녀석은 다시 엎드리기를 반복했다.(내가 몇 번 지적한 후 다른 선생님들께도 여쭤보니 대부분의 수업시간에 그렇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안 되겠다 싶어서 교실 뒤로 나가 서 있게 했다. 수업 시간에 녀석과 얘기를 하면 길어질 것 같아서&nbsp; 수업이 끝난 뒤로 미룬 셈인데, 그 날 녀석과 나의 대화는 이랬다.&nbsp; 
“니는 나한테 잘못한 거 없나?” 
“……” 
“니는 수업시간에 그래, 엎드려 있는 거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잘 모르겠는데요.” 
“니가 한 일인데 니가 모르면 누가 아노?” 
“……”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라, 니 내한테 잘못한 거 없나?” 
“……” 
어느새 내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나 보다. 
“대답을 좀 해봐라, 이 총각아! 답답하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으로 묻는데이, 니 진짜로 잘못했다는 생각 안 드나?” 
“수업 시간에 자는 거는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순간, 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하고 올라와서 내 목소리는 좀 더 커졌다. 
“니 뭐라캤노? 학생의 선택? 니가 착각하나 본데, 수업시간에 공부하는 건 학생의 선택 아니거든. 그거 학생의 의무다. 내 말이 맞는지 니 말이 맞는지 교육부에 한 번 물어봐라.” 
“저, 급식 당번이라 배식하러 가야 하는데요” 
“니는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나? 왜 딴 이야기고? 그리고, 내랑 이야기도 덜 끝났는데 어딜 간단 말이고?” 
“애들이 나 때문에 밥 못 먹고 기다리고 있는데요.” 
“니만 당번하는 거 아니잖아. 오늘은 딴 사람이 좀 보내고 우리 이야기 마무리 하자.” 
“……” 
“니는 나한테 잘못한 거 없나?” 
“……” 
“안 되겠다. 그라믄 점심 묵고 내한테 좀 찾아온다. 다시 얘기하자.” 
“저도 바쁜데요. 화장실도 가야하고…… 쉬는 시간은 학생이 자유롭게 지낼 권리가 있잖아요.” 
“아니, 이 총각아! 내가 니를 아무 이유 없이 부르나? 분명히 해야 할 말이 있고, 아직 지금 이 이야기가 덜 끝나서 부르는데, 니는 니 권리만 얘기하노? 나도 학생을 지도할 권리와 책임도 있거든. 지금 분명히 이야기하는데, 점심시간 지나고 다음 쉬는 시간에라도 꼭 찾아 온나! 알겠제?” 
<BR>
이후 그 녀석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내가 교실로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알량한 자존심 탓인지 올라가기 싫었다. 그러는 내내 내&nbsp;기분은 엉망이었다. '학생의 권리'란 말에 속에서 불길이 확 솟았던 거 같다. 이런데 써 먹으라고 학생의 권리라는 게 있는지 답답했다. 내 스스로는 학생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했던지라 더 화가 났었다. 마음은 점점 무겁고, 침울했다. 다른 반에 수업을 들어가는 것도 평소처럼 즐겁지가 않았다. 
<BR>
그 다음날, 나는 선생님들과의 공부 모임에서 이 사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알렸더니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여러 가지 충고와 조언들이 해 주셨다. 
- 수업시간에 공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검토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다그치는 교사의 태도에 학생이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닌가? 
- 그럼 선생님(나는)은 그 학생이 반듯한 자세로 공부하는 척 앉아 있기를 바라는가? 
- 그 학생이 수업시간에 계속 엎드려 있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 학생이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서 현재의 문제 상황이 달라지리라고 기대하는가? 
- 학생의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에서 교육은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자신이 정한 기준을 벗어난 학생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 학생이 말한 내용보다&nbsp;태도 때문에 이런 충돌이 생기고 갈등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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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는 당연히 내가 옳고, 몰지각한 학생의 태도에 대해 분개해 주리라고 기대했던 내 생각이 여러 곳에서 허점을 드러내어 약간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나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교사들도 많구나! 싶었다. 그것도 바로 내 주변에……. 그러면서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문제의 그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우선 어쩌면 그 녀석을 따끔하게 혼내는 게 내가 덜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벌과 잔소리는 2분이면 충분할 수도 있지만, 그 녀석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차분하게 이유를 묻고,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제로 그 녀석의 학습태도가 나아지는지 지켜보고…… 이런 과정은 분명히 따끔하게 혼내는 것보다는 훨씬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만나면서 나름대로 조심하느라고 하는데도, 내 생각과 행동이 가끔 이렇다. 한동안 그냥 좀 ‘이렇게 하면 되었다’ 싶다가도 어김없이 한 번씩 이런 일이 생겨서 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고, 기운이 쭉 빠져 있던 시기인 이틀 동안에 파멜라 심스의 ‘처음 그 설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늘 책상 위에 두고, 아껴서 읽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학교 생활하다가 언제라도 이번처럼 기운이 빠지는 일이 있을 때면 아무 부분이라도 펼쳐두고 읽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nbsp;이 책이 말하는 ‘진정한 교육’이란 교사와 학생 사이에 강한 인간적 유대 관계를 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단순히 교과목의 내용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교사(good teacher) 보다는, 학생을 온전히 한 인격체로 대하며 가르치는 교사(great teacher)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격체로 대한다는 것의 구체적 의미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교사가 먼저 학생들을 대하라.’것이다. 이러면 규칙이 사라져서 질서가 없어질 것이라고 불안해 하지만,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 교사의 위협으로 생긴 아이들의 마음 속 불안이다. 
교사들이 학생 시절에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선생님들은 어떤 태도와 성향을 지녔는지를 떠올려보는 게 필요하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듯이, 예전의 그 학생들(지금의 교사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처럼 지금의 학생들도 교사의 감시와 위협, 지시와 통제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따뜻하고 다정한 관심과 배려, 긍정적인 자기암시와 적극적인 격려를 통해 학생들의 영혼을 성장시킬 수 있고, 이것이 모든 교육의 출발점이 된다고 말한다. 
학생들의 영혼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일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을 위임받은 우리 교사들의 몫이다. 교사들이 학생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사고와 생각을 보여 준다면,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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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 녀석이 속한 반의 수업이 든 날이었다. 그 반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 녀석이 그렇게 행동할만한 이유를 아시는지 여쭤보았다. 뾰족한 답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내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싶었다. 
약간 긴장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녀석을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왜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역시나 같은 대답! 그러나 내 마음은 저번처럼 심하게 흔들리지는 않은 것 같다. 약간 웃으면서 이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내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언제든지 시간이 나면 꼭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자고 일렀다. 그랬더니 녀석이 다음 시간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도 괜찮다고, 다음 ‘문학 수업’이 든 시간 전까지 아무 때나 찾아오라고 말하고 자리에 앉게 했다. 
&nbsp;
여러 번 배우고, 다른 사람의 책을 읽어도 내 몸에 익숙해지기는 어렵고, 스스로 다짐하고, 굳은 결심을 해도 다시 흐트러지고 쉬워서 며칠 전과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그 전날에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더라면 좀 더 현명하게 행동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된 ‘교사’가 되려면 두고두고 읽고 마음에 새겨야 할 보석 같은 책이다. 
<BR>
마지막으로 우문(愚問) 하나! 
교사는 왜 학생들을 사랑하고, 관심을 보여 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가? 현답(賢答)은 우리의 미래가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8/25/cover150/899022002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20025</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글쓰기가 즐겁다니?  - [글쓰기의 즐거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96045</link><pubDate>Tue, 13 Jun 2006 21: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960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060305&TPaperId=89604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4/21/coveroff/89590603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060305&TPaperId=8960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글쓰기의 즐거움</a><br/>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04월<br/></td></tr></table><br/>&nbsp;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끔, 그것도 지나가는 말투로&nbsp;글을 써보라고 한다. 선생의 말에 혹해서 처음엔 의욕에 가득 찬 녀석들의 눈망울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힘이 없다. 글쓰기가&nbsp;쉽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어쩌다 아이들이 써 온 글을 볼 때, 선생으로서&nbsp;아쉬움이 많이 든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면 고치고 싶은 부분이 금방 눈에 띄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빨간 펜을 집어들고 싶어진다. 역시 내가 쓰는 것보다 남의 글을 읽고 고치는 게 훨씬 쉽다.
나도 가끔씩 쓰는 리뷰를 비롯한 작은 모임의 주제발표문, 편지글을 비롯한 자잘한 일상사를 기록하게 되면서 알았다. 글쓰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내가 좋아서 쓰는 이 짧은 글쓰기만 해도 어쩔 땐 텅 비어버린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자책해 보지만, 그래봐야 내 머리만 아플 뿐, 소용없는 일이다. 그 이후로 한동안 아이들에게 글을 써보라고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내가 쓰는 척이라도 해 보니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렇게 앉아서 지난 주말에 읽었던 '글쓰기의 즐거움'-교수 강준만의 표현대로 말하면 ‘글쓰기로 세상보기’의 즐거움-이라는 글쓰기 방법에 대해 소개한 책을 덮고, 스스로는 이렇게 글쓰기의 괴로움을 절감하며 ‘글쓰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은 내 느낌을 말하려고 하니 모순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괴로운데도 글을 쓰려고 애쓸까?’하는&nbsp;생각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서문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이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는 생각을 만들어내고, 지식을 구성하는&nbsp;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중략) 글은 엉켜진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또 이 생각을 저 생각으로 옮기는 능청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든다. 글쓰기가 논리적 사고, 창조적 사고를 키운다는 말은 그래서 가능하다.” 
내가 쓰는 다른 모든 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알라딘에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답을 이 구절을 바탕으로 정리해 본다면,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처음에는 책을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씩 글을 쓰다 보니, 책을 읽을 때 들었던 생각과 감정보다 조금 더 정리된 사고와 느낌을 표현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도 글을 쓰다보면 그냥 툭 튀어나오는 경우도 많다. 나는 어느새 책을 읽어서 얻는 지식과는 따로, 글을 씀으로써 내가 가지고 있던-그러나&nbsp;생각의 표면으로 떠올리지 못했던-&nbsp;조금 더 깊은 생각을 조직했을 때의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알라딘에서의 글쓰기는 괴로운 일이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예전에도 글쓰기 방법을 다룬 책을 한 두 권 정도는 읽어 보았는데, 그것과 대비해 보면 이 책의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대체로 글쓰기 방법을 다룬 다른 책들은 교과서적인 글쓰기의 틀을 가지고 독자가 얼마나 이해하기 쉽게, 혹은 독자에게 세련되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방향인 것에 비해, 이 책은 마치&nbsp;실전을 코앞에 둔 이종격투기 선수의 연습처럼, 실제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영역을 전략적 사고, 심리적 유혹, 감정의 통제, 수사학과 국어학, 시사 논쟁의 이해라는 장으로 나누고, 학생들의 글로 예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제 1장, 전략적 사고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글쓰기의 다양한 방법을 전략적 사고라고 알려주고, 글쓰기에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로는 글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쌍방향적인 의사소통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법으로 잘된 인용과 정확한 통계를 인용한 글쓰기, 인상적인 도입부 작성하기, 브레인스토밍과 배경지식 넓히기, 전체의 흐름이 논리적으로 잘 연관된 글쓰기 등을 예시 글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제 2장, 심리적 유혹에서는 글쓰기에서 자신의 익숙한 심리상태를 의심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타성이나 관성에 젖은 생각을 관리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법으로 ‘흑백논리’, ‘거대담론’, ‘도식주의’에 빠지는 것과 지나친 구어 중심의 글쓰기를 경계해야 하며 충분히 이해해야 쉬운 글을 쓸 수 있음을 예를 들어 잘 보여준다. 
제 3장, 감정의 통제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엄격히 통제한 글이라야 좋은 글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논쟁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비분강개, 감정의 과잉, 극단적인 어휘선택과 같은 감정에 빠지는 경우는 자제하고, 때로는 ‘억지 주장’도 참으면서 끝까지&nbsp;듣거나, 대상과의 고통스러운 ‘거리두기’를 통해야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제 4장, 수사학과 국어학에서는 글쓰기에서 피해갈 수 없는 수사학 기법과 국어학적 측면을 다루면서, 말하려고 하는 ‘무엇’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도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글쓰기에서 형식과 수사학이 중요한 시대이며 ‘완곡 어법’과 ‘다문화주의 언어 사용법’의 의미와 효과, 모순어법과 사자성어의 묘미에 대한 예가 아주 풍부하다. 문장의 주어와 술어의 호응 같은 문법 사항은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제5장, 시사 논쟁의 이해에서는 배경지식을 갖춘 글쓰기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평소 시사 주제를 대해 많이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시사 논쟁에 대한 학생들의 글을 평가한 예시를 들고, 뒤에 주제별 토론 의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강준만 교수의 여러 책처럼 전체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여느 글쓰기 방법을 다룬 책보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구체적이어서&nbsp;나같은 초보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나에게는 이 책을 통해 글쓰기의 의미를&nbsp;한 번 더&nbsp;생각해 보게 된 점도&nbsp;큰 소득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내 글쓰기의 두려움과 고통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글쓰기에 대해 나에게 손바닥만큼의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언제나 글을 쓸 때 잊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주의 사항들이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알라딘에서 열심히 ‘리뷰’를 쓰시는 분-특히, 논쟁적인 글을 좋아하시는 분-도 한 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글쓰기의 진정한 즐거움을 깨달아 가는 사람이 되고&nbsp;싶다.
&nbsp;
* 뱀발 
‘강준만’ 이라는 이름의 아이콘은 분명한 당파성을 상징하고 있는데도, 이 책의 서문에서는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할 때는 ‘중립’을 지켰다고 하고, 이 책은 좌우와 여야를 초월해 논리전개의 방식만을 평가대상으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 비평의 한 획을 그은 것으로 알려진 강준만 교수의 놀랍고도 눈부신 업적은 여전히 존경의 대상이지만, 이제는 정서적으로 너무 멀어져버린 저자의 ‘중립’적인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만 나도 ‘중립’적으로, 이 책에 기꺼이 나의 별 다섯 개를 달아주고 싶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4/21/cover150/895906030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060305</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가난은 아픈 것이다. - [거미]</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94578</link><pubDate>Sun, 11 Jun 2006 12: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945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2197&TPaperId=89457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7/63/coveroff/893642219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2197&TPaperId=8945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미</a><br/>박성우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2년 09월<br/></td></tr></table><br/>&nbsp;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BR>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소박하게 말하면 남들보다 더 울 일이 많은 삶이거나, 한숨이 더 길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에둘러서 말하면 가난하게 사는 삶이 약간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난은 ‘약한 사람일수록 철저하게 짓밟으려는 야비한 인간’처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그 극한으로 몰아가면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우리가 이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권리를 실제적으로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고, 그 빼앗긴 권리 때문에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래 전에 사 둔 박성우 시인의 ‘거미’를 최근에 읽었다. 알라딘의 독자서평이 좋아서 샀는데 내키지 않아 책장에 그냥 올려두었다가 함께 샀던 책들을 대충 다 읽은 터라 거의 마지막으로 이 시집을 손에 들게 되었다. 책의 안쪽 날개에는 섬세하고 여리지만 단정한 차림의 한 청년이 사색에 잠긴 표정을 짓느라 약간 어색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상투적이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책날개에 적힌 시인의 약력을 훑어보니 또 걱정부터 앞섰다. 71년생. 젊다. 젊은 시인들의 시는 더 어렵다. 
아마도 꽤 여러 종류의 시집을 펼칠 때마다 그랬듯이 이 시집도 시대와 독자를 앞질러간 다른 시인들 때문에, 평범한 독자에 불과한 나 같은 사람의 지적(知的) 능력을 의심하게 되거나, 좌절감만 맛보게 되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시는 무엇보다도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서 작은 울림이라도 만들 수 있는 게 좋다는 소박한 생각을 가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요즘 시집은 대체로 어렵게 느껴져서 읽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전적으로 독자인 나의 무지와 무능을 탓할 뿐, 다른 뜻은 없으니 오해마시라.) 그래도 시집 읽기를 그만두는 것이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느낌이 들어서 가끔씩이라도 읽는다. 
나는 이 시집을 읽고 나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 시집에서 반복해서 다루고 있는 중심 내용은 시인 자신이 체험한 것으로 보이는 ‘가난했던 또는 가난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시인-정확하게 말하면 시작 화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에게 가난은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수렁 같아서 시인 자신의 어린 시절의 가난한 삶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시에 나타난 가난한 삶은 경험이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가난이란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고달픈 삶, 나의 노동(?), 그 밖에 눈물과 실직 등이다.&nbsp;
이 시에서&nbsp;아버지의 부재는 분명히 가난 때문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부재가 가난 때문임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버지는 빚 때문에/그해 겨울도 돌아오지 못했다/ [‘생솔’ 부분]에서나,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인공호흡기를 뽑는 일에 동의했어요/[‘친전-아버지께’] 등에서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손은 두꺼비 손’처럼 우둘투둘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누에고치에게 안방을 내주고’ 가족들은 헛간을 개조한 방에서 여덟 식구가 살아도, 가난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두 번째 가난의 징표로 나타나는 것은 ‘(늙으신) 어머니의 고달픈 삶’이다. 
성냥개비가 되어가는 줄 모르는 어머니는/베틀에 앉아 삼베 품을 팔고 늦은 밤에 돌아오셨다[‘생솔’ 부분]에서 화자가 어린 시절일 때 본 어머니의 모습에서부터 내가 조교로 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청소를 하시다가 사고로/오른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셨다/(중략) 막둥아, 맥주 한 잔 헐텨?/다음주꺼정 핵교 청소일 못 나가먼 모가지라는디[‘찜통’] 오줌을 끓여서 다친 발을 치료하기 위해 화자에게 맥주를 권하는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에서도 가난은 여전한 모습이다. 
이런 상황은 ‘막둥이인 내가 다니는 대학의/청소부인 어머니는 일요일이었던 그날/미륵산에 놀러 가신다며 도시락을 싸셨는데/웬일인지 인문대 앞 덩굴장미 화단에 접혀 있었어요/가시에 찔린 애벌레처럼 꿈틀꿈틀/엉덩이 들썩이며 잡풀을 잡고 있었어요/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어머니,/지탱시키려는 듯/호미는 중심을 분주히 옮기고 있었어요/날카로운 호밋날이/코옥콕 내 정수리를 파먹었어요// 어머니, 미륵산에서 하루죙일 뭐허고 놀았습디요/뭐허고 놀긴 이놈아,수박이랑 깨먹고 오지게 놀았지//’[‘어머니’부분]과 ‘빨강글씨라도 좀 쉬지 그려요/아직꺼정은 날품 팔만 헝게 쓰잘데없는 소리 허덜 말아라/ 칠순 바라보는 어머니 집에 가면/반나절과 한나절의 일당보다도 더 무기력한 내가 벽에 걸릴 때가 있지/’[반나잘 혹은 한나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난한 현실은 화자 자신도 노동을 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노동의 성격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가난 때문에-학교를 다닐 때라도- 일을 해야 하는 건 분명한 상황인 것 같다.(학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든, 생계를 위해 노동자가 되었든 말이다.) 
딱, 5분만 자면 피로가 풀릴 것 같아/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김반장의 시선 피해/미싱 창고로 발을 옮긴다/[‘미싱 창고’부분]에서나 세 시간 동안 꺼져 있었다 나는 자명종 시계보다 10분 늦게 일어났다 현기증이 결근을 유혹했지만 허겁지겁 봉제공장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미싱들이 여성용 내의를 쉴새없이 만들어냈다 나는 포장대 위로 올라온 내의를 여덟 시간 동안 기계처럼 상자에 집어넣은 후 그 것들을 창고로 운반했다 트럭이 오면 제품을 실어보냈다 일과는 늘 그렇게 끝났다[귀퉁이 부분]에서 보는 것과 같다. 
나는 이렇게 정직한 시들이 좋다. 시인 자신의 가난 체험을 표현한 것이야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 소재지만, 여전히 가난함이나 약하고 여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들이 좋고, 거기에서 느꼈던 감정의 섬세한 결을 드러내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조용하게 흔드는 시가 좋다. 이 시집의 대부분의 시들이 가난의 구체적인 징표들인 노동, 눈물, 실직, 죽음의 상황을 당위의 목소리를 높여 외치지 않고, 담담하게 말함으로써 읽는 이들에게 더욱 아릿한 느낌을 준다. 
시집을 읽다가 팽겨 쳐 둔 경험이 있는 독자나,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시집을 읽다가 무안해진 독자가 있다면, 앞으로는 시집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은 독자가 있다면,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이 시집까지는 읽기를 권한다. 
시인의 다음 시집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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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7/63/cover150/893642219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2197</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2%로 부족한 우리나라의 인권 감수성 - [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88529</link><pubDate>Wed, 31 May 2006 2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885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409230&TPaperId=88852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3/3/coveroff/89804092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409230&TPaperId=8885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a><br/>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박영희 외 지음, 김윤섭 사진 / 우리교육 / 2006년 03월<br/></td></tr></table><br/>&nbsp;&nbsp;&nbsp;세상에 ‘길’이라는 말처럼, 사람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나한테 ‘길’은 마치 삶의 온갖 풍상을 다 겪어 이제는 인생의 의미를 터득하고도, 아무에게나 그 속내를 털어내지 않고 무심한 듯 묵묵히 제 할 일만 하고 있는 지혜의 은자(隱者)처럼 느껴진다. 이 무심한 은자(隱者)가 나에게 가만가만히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있는데, 그 때가 언제냐면&nbsp;내가 두 발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걸을 때다. 욕심을 덜어내고, 걸을 때라야 비로소 은자는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것이다. 
&nbsp;&nbsp;&nbsp;어디에서든 은자를 떠올리게 하는 ‘길’이라는 낱말만 나오면 한 번 더 쳐다보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비록 큰 자랑거리는 못 되지만, 나 역시 ‘길을 걸었다.’라는 몇 번의 경험이 내 마음을 잡아끄는 모양이다. 물론 그래봐야, 나는 팔자 편한 여행자일 뿐이지만. 그래도 온전히 두 발로 다니면서 만난 ‘사람 사는 세상’은 자동차로 달리면서 스치듯 본 것과는 분명 달랐다. 내가 읽은 이 책도 그랬다.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裏面)을 보려면 빨리 가려는 마음, 앞서가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해 주는 듯하다. 
&nbsp; ‘길에서 만난 세상’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박영희, 오수연, 전성태 씨는 글로, 김윤섭&nbsp;씨는 사진으로 우리 사회 ‘약자’들의 안타까운 현재 현실과 그들의 소박하지만 소중한 바람을 전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사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멀고 가깝고, 편하고 험한 길을 가리지 않고 나섰을 것이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무엇인가를 향해 급하게 달리려는 마음, 남을 앞질러야 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잠시 접어두었으면 한다. 차 안에서 스치듯 바라본 풍경으로서의 세상이 아니라 지은이들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nbsp;&nbsp;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떤 느낌의 글을&nbsp; 멋지게 쓰더라도(능력도 안 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짧게나마 직접 소개해주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는 것이 이 책을 가장 정확하게 소개하는 글이라고 믿고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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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도 좋으나 그보다 먼저 저는 퇴사 당하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했으면 합니다. 더는 쓰다 버린 소모품 정도로 다뤄지는 그런 인생이 아니었으면 좋겠고요. 인격은 고사하고 인간적인 차별까지 받고 살아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하잖습니까?”[24쪽, 비정규직 노동자, 이상호 씨] 
“(베트남으로 돌아가) 무엇을 해 볼 수 있을 만큼 돈은 모았지요. 그러나 사람을 믿는 마음은 많이 잃었어요.”[39쪽,&nbsp;이주노동자, 투안(베트남)] 
“어느 누가 내가 겪은 슬픔과, 민주 덕에 얻은 기쁨을 알까 싶어요. 아이를 포기하고 비밀을 간직한 채 깨끗한 척하느니, 손가락질을 받아도 내게 찾아온 생명을 책임지기로 했죠. 뭐라도 해서 한 달에 80만 원만 벌면 민주하고 살 수 있지 않겠어요? 겁이 없어졌어요. 이제는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52쪽, 비혼모, 조순화 씨] 
“집 나온 아이쯤으로 보는 건 그래도 웃어넘길 수 있었어요. 학교를 안 다닌다고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 눈이 어떻게 바뀌는지 아세요? 대번에 내가 천박한 사람으로 변하고 몸 파는 아이 취급을 당하고 말아요. 그뿐인 줄 아세요. 우리나라는 쯩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다닐 수 없어요.”[64쪽, 탈학교청소년, 효주] 
“아이들이 더 크면 상급 학교도 보내야 하는데 교육비가 만만치 않아요. 한국 음식이라도 잘 만들면 좋겠는데 그렇지도 못하고요. 아이들이 많이 외로워하는 것 같아요. 이곳은 놀아 줄 친구도 없어요.”[82쪽, 코시안, 로리타비 와드와찬 씨]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렇지만 나는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자리가 없었고, 우리 친정은 너무 가난해요. 아버지는 맹인이고, 어머니는 환자예요. 한국에 오기 전에 어떤 일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내가 버티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이제 너무 지쳤어요”[94쪽, 아시아 여성, 진(가명, 필리핀여성)] 
“여든이라는 나이가 우스운 나이인가? 오래 살기 싫어. 통장에 300만 원 있는데 1년에 100만 원씩 깨서 쓰면 한 3년은 그럭저럭 지낼 수 있겠지. 그거 다 떨어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야. 죽으면 호국 용사에 묻히겠지.”[117쪽, 도시의 노인들, 김 씨 할아버지] 
“우리 남편 좀 병원에 입원시켜 줬으면 좋겠어요. 남편을 앞에 두고 이런 말 하면 죄받을 짓인 줄 알지만 사는 일이 너무 팍팍해서 그래요. 제발 우리 남편 좀 병원에 입원시켜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내 소원이에요.”[131쪽, 진폐증을 앓는 전직 광부 김병태 씨의 아내] 
“이 나이에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학문을 해 온 사람으로 심경을 고백하자면 너무 힘이 듭니다. 전화가 되지 않을 땐 도청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언제 또 구속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내 자신을 검열하느라 병이 날 지경입니다.”[146쪽, 보안관찰대상자, 박창희 씨] 
“김선일 씨의 죽음에 그토록 비통해하던 한국인들이, 왜 하루에도 200-300명씩 죽어 가는 이라크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관심합니까?”[165쪽, 한국에 살고 있는 무슬림, 자말(파키스탄) 씨] 
“감옥이 따로 없지. 남들은 구경하느라 종로통으로 나오지들 않더라고? 근데 난 이 안에 갇혀서 세상 구경 못하고 사니 갑갑해. 30년을 이 속에서 지내다 보니 아픈 몸만 남았어. 발을 제대로 못 뻗으니까 무릎이 성치 않고, 조그만 창으로 손님을 맞아야 하니까 목이 또 안 좋아. 하도 아파서 X-레이 찍어 보니까 목뼈가 좋지 않대”[(177쪽, 0.3평에 사는 사람들, 김형주 씨]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간 것 같아. 바닥난 물고기도 물고기지만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남는 게 있어야지. 한 달 경비 빼고 선주가 반을 가져가 버리는데 뭐 얼마나 남아 있겠어. 그야말로 콩고물이지.”[194쪽, 어부, 서 씨] 
“그러나 같은 행위라도 자신이 선택했느냐 아니냐는 다르잖아요. 학생도 놀 권리가 있고 잠잘 권리와 쉴 권리가 있는 인간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결국 어른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게 문제 아닌가요?”[214쪽, 인문계고등학생, 찬주] 
“왜냐고요? 여기는 희망이 없으니까요. 어른들도 농사짓든지 조그만 장사를 하든지, 이것저것 하다 말든지, 제대로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우리더러 학교만 마치면 얼른 떠나라고 해요. 여기 대학이 생긴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아요. 이런 데서 대학 나와 봤자 뭘 해요? 젊은 사람들한테 나가라, 나가라 하는 데예요.”[230쪽, 농촌청소년, 보라, 주희, 수필] 
“손가락이 없고 발가락이 없다 뿐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닳아지고 없을까. 아무려나 나병이 암보다 더 무서울까. 암은 유전될 수 있지만 나병은 그렇지 않거든. 감염만 해도 그래. 아주 극소수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의사, 어느 간호사가 그것도 몇십 년씩 이곳에 붙어 있겠어?”[243쪽, 한센인, 익명] 
“전에는 죽으면 재라도 되어 부모 계시는 고향으로 가고 싶었지. 근데 지금은 아냐. 아무리 못된 자식이라도 아들들이 있는 이곳에 묻혀야지 왜 가? 한국 사람한테 시집와서 이쪽에서 육십 년 살아오니 이제 못 하는 말도 없고 심지어 욕도 할 줄 알아. 욕도 할 줄 아는데 이제 뭐가 무섭겠어. 여기가 고향이야.”[262쪽, 일본인 처, 아오키 할머니] 
“작년, 재작년보다 경기가 더 안 좋아요. 지금쯤 뺑뺑 돌아가야 하는데. 일감이 떨어지면 먹는 거 줄이고, 아이들 학원비 줄이죠. 지금은 애들 둘 합기도만 보내요. 과외 공부시키는 엄마들도 있지만 한 아이 당 이십여만 원씩이나 하니. 엄마들이 돈을 만지기 때문에, 엄마가 일하는데 따라 아이들이 차이가 확확 나요.”[277쪽, 창신동 미싱사, 최혜주 씨]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3/3/cover150/898040923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409230</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아직은 희망이라고 말하자.  -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86606</link><pubDate>Sun, 28 May 2006 18: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866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184&TPaperId=88660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4/42/coveroff/60001833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184&TPaperId=8866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a><br/>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05월<br/></td></tr></table><br/>&nbsp;&nbsp;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아마 재작년 가을쯤이었나 보다. 우리 노동조합에서 하종강 선생님께 &nbsp;노동교육 강연에 부탁드린 일이 있었다. 이런 강연을 준비하다 보면 강사와 일정을 조정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데, (더구나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강연을 많이 다니기로 소문난 분이라 걱정도 많았는데) 의외로 쉽게 강연 부탁을 승낙해서 준비하는 실무자로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nbsp;&nbsp; 강연이 있던 날, 하필이면 비가 줄기차게 쏟아져서 내심 불안했다. 이미 하종강 선생님의 강연이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소문은 났었지만, 이 빗속을 뚫고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오실까 걱정이 되었다. 한 분 두 분 오신 선생님들로 강연이 시작될 때는 듬성듬성 빈자리는 있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선생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앉았다. (새삼, 소문의 위력을 실감했다.)
&nbsp;&nbsp; 하종강 선생님의 강연이 늘 그런지, 아니면 그날따라 비가 와서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지만,&nbsp; 옆 사람에게 나지막하게 말하는 듯한&nbsp;말투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노동조합 활동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강연은 스스로를 노동자로 여기고 있는 교사들의 ‘이성’보다는 ‘마음’을 조용히 흔들었다. 강연을 듣는 내내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눈가를 훔치다가 나만 그런가 싶어서 뒤를 슬쩍 돌아보았더니 모두들 야단맞는 사람들처럼 의자 깊숙이 얼굴을 묻고(틀림없이 모두들 울고 있었다.) 말없이 강연을 듣고 있었다. 
&nbsp;&nbsp; 그 날, 어떤 이야기를 듣고 나는&nbsp;빗물같은 눈물을 흘렸더라?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은 노동자들의 이기적인 권리지만, 전 세계가 이를 정당한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사례를 통해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을 때, 학교에서 노동조합원인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고, 노동자로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강사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고백을 들었을 때는 더 이상 눈물을 훔치는 것도 그만 두고, 눈물이 흐르게 내버려뒀다. 
&nbsp;&nbsp; 강연이 끝나고 온 선생님들과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강연에 대한 반응을 듣는데, 이구동성으로 지금처럼 ‘노동조합원’이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고, 앞으로 더욱 힘내서 ‘노조활동’도 열심히 하겠다고 하셨다. 나도 속으로 그런 다짐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nbsp;&nbsp; 나는 노조원이면서도 노동교육이라는 대체 무엇인지, 그게 왜 필요한지 그 때까지도 전혀 몰랐다. 아니 노동교육은커녕, 왜 교사에게 노조가 필요한지도 사실 잘 모르고 가입한 엉터리 조합원이었다. 당연했다. 누구도 나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인복(人福)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nbsp;&nbsp; 발령을 받아 첫 직장이었던 고등학교에서 신참 교사인 내가 존경하고 배울 만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모두 노조활동을 하고 있었던 선생님들이었으니까, 좋은 사람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가입하게 되었다.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가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만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nbsp;&nbsp; 노조활동의 방향은 학교를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공간으로 만들고, 학교의 부정하고 부패한 관행과 싸우고,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올바른 인성 교육을 위해&nbsp; 구조적인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제대로 된 선생 노릇을 하려면 노조활동은 기본적인 선택이어야 한다고 본다.(물론, 아주 예외적인 존재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nbsp;
&nbsp;&nbsp; 최근에 나온 하종강 씨의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을 읽는 동안, 비 오던 날의 그 강연이 다시 떠올라 콧등이 시큰했다. 여전히 감성 어린 목소리로 노동조합에 대해, 노동조합 활동에 열성적인 노동자들에 대해, 진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그의 글은 노동조합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노동조합 활동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노동조합 활동이 왜 필요하고, 또 중요한지를 미처 알지 못하고 숫자만 채워주는 노동조합원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nbsp;
&nbsp;&nbsp;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게 조심스럽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한 요즘에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라고 아름답게 말하며 노동조합 활동에 희망을 건다고 애정을 표현하는 하종강 씨가 못내 고맙고, 또 반갑다. 한 사람의 따뜻한 이야기가 이렇게 여러 사람의 마음을 울려, 세상과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할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새삼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희망’이어서 더욱 그렇다.&nbsp; 
&nbsp;&nbsp; ‘아, 위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큰 고통을 당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310쪽) 이 책에서 자신은 거듭 위로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의 말이 나 같은 얼치기 노동조합원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지 그도 아마 짐작은 할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4/42/cover150/600018331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184</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우리 아버지 이야기다. - [허삼관 매혈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2677</link><pubDate>Sun, 07 May 2006 16: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26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7247&TPaperId=87267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90/coveroff/897184724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7247&TPaperId=8726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허삼관 매혈기</a><br/>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06월<br/></td></tr></table><br/>





&nbsp;&nbsp;&nbsp;얼마 전에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살아간다는 것’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이 책이 먼저였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아무튼 누군가로부터 ‘허삼관’은 아주 우습고 진지하고, 재미있고 눈물이 ‘핑’ 도는 이야기라는 말은 듣고 읽었던 것 같다. 
&nbsp;&nbsp; 그러나 ‘살아간다는 것’의 감동에 묻혀서 ‘허삼관’은 상대적으로 내 기억 속에서 금방 묻혀버렸고,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도 그 책 읽어봤는데, 괜찮던데…’라고 말하고는 했지만 줄거리조차 가물가물한, 과시용 책이었다. 
&nbsp;&nbsp;&nbsp;좀처럼 읽은 책을 다시 펼치지 않지만,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기 위한 책으로 이 책을 골랐기 때문에 또 한 번 읽었다. 새롭게 읽으면서 내가 ‘허삼관 매혈기’의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게는 책을 읽었다고 폼을 잡았으니 이제야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 
&nbsp;&nbsp; 남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웃기도 했다는데, 나는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던데, 그 재미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들었으면 좋겠다. 재미야 눈물이 나서일 수 있고, 웃음을 주기도 해서 있고, 교훈을 주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BR>
&nbsp;&nbsp;&nbsp;먼저 평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을 읽고 든 내 생각을 말해 보고 싶다. ‘허삼관’의 판단대로 본다면 지금 우리 나라는 무척 살기 힘든 곳일 거다. 우리 모두가 가난했던 그 때(?)를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때는 ‘허삼관’식으로 본다면 나름대로 평등했던 시대였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조금은 풍요롭게 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오직 죽음 앞의 평등 밖에 남은 게 없을 않을까 싶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야.만. 하는 ‘허삼관’은 분노했을까? 아니, 희죽 웃었을까?
&nbsp;&nbsp;'허삼관'에게 ‘매혈’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책을 덮고 되돌아보면 희미하게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인생’이다. (이 단어는 이 소설을 쓴 작가의 4년 전 소설-살아간다는 것-을 장이모 감독이 영화화한 ‘인생’이라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어딘지 그 작품의 주제와 비슷하기도 하다.) 피를 팔아서 아내를 얻고, 집안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해 하고, 한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고, 아들의 병을 고치고(그것도 자기 자식이 아닌-그런 점에서 보면 일락이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허삼관’이 얼마나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자기희생을 통해 한 집안을 이끌어 가야 했던 우리 아버지의 인생과 닮았다. 
&nbsp;&nbsp;&nbsp;그러다 결국 맨 마지막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매혈을 하려고 할 때는 더 이상 피를 팔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서 ‘허삼관’의 인생의 의미는 막을 내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허삼관’의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이라는 것을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허삼관’의 인생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그저 그런, 보잘 것 없는 삶에 불과할 것이다. 
&nbsp; &nbsp;그러나 이 위화라는 작가의 전작(前作)에서 꾸준히 천착해 온 주제인 살아간다는 것은 눈물의 강을 건너는 것이고, 우리가 고통을 견디고 인생이라는 고통의 강을 건너고 나면, 그 뒤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의 흔적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결국엔 인생이라는 것은 눈물로 고통의 강을 건너는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아니 그런데도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nbsp;&nbsp;&nbsp;글쎄, 그건 우리 스스로가 해답을 찾아야 할 몫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는 위대하다는 것이다. 만약 ‘‘허삼관’이 피를 팔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을 때 ‘허삼관’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허삼관’의 인생에서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BR>
&nbsp;&nbsp;&nbsp;‘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허삼관’이라는 사람을 마냥 우습게 바라보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어느 집마다 나름대로 사연 한 보따리 정도는 없는 집이 있을까? 돌이켜 보면 우리 집도 그런 듯하다. 
&nbsp; &nbsp;아버지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었다. 온 가족들이 달라붙어 맨주먹으로 개펄을 개간해서 겨우 농사지을 수 있는 땅으로 바꾸고 나니, 공항 부지를 확장한다며 나가라고 했다. 그 때는 서슬 퍼렇던 박정희 시절. 온 가족이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쫓겨났다. 당장 먹고 살 거리도 힘든 시절을 견디며, 새로운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아버지는 요즘도 시골로 이사를 가자고 하시는데, 어머니는 지금도 그 때의 일이 끔찍해서 ‘농사’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하신다.) 
&nbsp; &nbsp;아버지 밑으로 다섯 남매가 태어났고, 농사만으로는 살림은 더 어려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여전히 농사를 지었지만, 아버지와 고모들은 일터를 찾아 가까운 도시로 나왔다.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을 받아주는 일터는 역시나 험한 육체노동의 현장! 아버지는 그렇게 첫 직장인&nbsp;주물공장을 십 오년 정도 다녔는데, 어릴 때 나도 몇 번 가 본 적이 있다. 험한 일이라 회사내에 목욕탕이 있어서 어떤 날은 어머니를 통해서 나를 꼭 오라고 하셨는데, 나는 경비실에서 아버지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목욕을 해야했다. 그 음습하고 지저분한 목욕탕과 아저씨들의 격의 없는 농담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근데 목욕하러 가는 날은 정말 싫었다. 갖은 핑계를 다 대지만 어쩔 수 없는 일!) 
&nbsp;&nbsp;&nbsp;예순을 넘기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제 아버지가 집안의 가정이 되었다. 할머니와 고모, 삼촌들도 한 집에서 다 같이 살아서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았고 적은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어머니도 일하러 다녔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언제나 늦지도 않고, 이르지도 않게 8시 30분에 귀가하셨고, 주말이면 늘 큰고모네 댁에 농사를 도우러 가는 분이셨다. 어릴 때 아버지와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는 가끔 나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던 것이다. 
&nbsp;&nbsp;&nbsp;그러다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내에 있던 회사가 진해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이참에 퇴직을 할 지, 회사를 따라 집을 옮길지를 고민하다가, 나이도 있고, 육체적으로 힘에 부치던 때라 퇴직을 택했다. 갑작스러운 퇴직에다가 세상 물정에 어두운 탓에 한 동안 방황하다가 사업이라는 걸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사기꾼’한테 당해서 지금껏 벌어둔 돈에다 빚까지 얻게 되어 집안이 쫄딱 망했다. 
&nbsp;&nbsp;&nbsp;우리가 거리로 나앉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평생을 성실하게 산 증거물이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을 지키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신 건 기억에 분명하다. 결국 부모님은 무서운 빚 독촉을 받을까 봐(지금 생각하면 순박하셔서 그런 것 같다.) 다른 곳에서 거의 숨어 지내셨고 우리 세 남매는 작은 아버지네 가족과 같이 살게 되었다. 그 때 어머니는 한두 달에 한 번 다녀가셨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 그래도 부모님에 대한 제사만은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사시는 곳까지 오라고 하셨는데, 그 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밤길을 달릴 때의 서글픔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아프게 남아있다. 
&nbsp; &nbsp;이후로 한참&nbsp;시간은 한참 흘러 우리 가족은 다시 합쳐서 살게 되었고, 언제부턴가 아버지와는 약간 어렵고, 껄끄럽게 지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허삼관’이 매혈로 가족을 먹여 살린 것처럼 아버지는 한 번도 일하는 걸 멈춘 적이 없다. 끊임없는 육체노동! 오직 그것만이 당신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일해 오신 듯하다. 그런데 지금껏 한 번도 그게 고마운 줄 몰랐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nbsp;&nbsp;이제 세월은 흘러 당신이 낳아 기른 세 자식 중에 둘은 이미 결혼을 해 분가해서 그런대로 살고 있고, 막내도 자신의 일터 가까이에 따로 살고 있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시던 그 집에 두 분만 덩그러니 계신다.(표현이 그래서 그렇지 집은 아주 작다.) 이제야 말로, 아버지는 ‘허삼관’처럼 자신을 위해 ‘매혈’을 하려고 하실지 모르겠다. 그 때 나도 ‘일락/이락/삼락’이처럼 ‘허삼관’의 마음을 모르는 아들이 될까봐 두렵다.
<BR>
&nbsp;&nbsp;자, 우리 아버지 이렇게 살아오신 분이다. 누가 이 인생에 대해 ‘의미’를 따질 수 있을까? 그것은 ‘의미’ 이전에 이미 위대한 무엇이 아닐까 싶다.&nbsp;작가는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nbsp;
&nbsp;&nbsp;&nbsp;내일이 어버이 날이다. 카네이션과 선물을 사기 위해 종종거리는 우리 모두는 기억해 두어야 한다. 모든 자식은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 스크랩 출처 --><!-- 첨부파일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90/cover150/8971847247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7247</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누군가가 당신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 [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2614</link><pubDate>Sun, 07 May 2006 14: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26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548948&TPaperId=87261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0/46/coveroff/89855489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548948&TPaperId=8726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a><br/>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03월<br/></td></tr></table><br/>&nbsp; 
&nbsp;&nbsp;매일 아침 4시 30분, 우리 집에 신문이 배달된다. 출근하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면 현관문 앞에 지역신문 한 부와 중앙일간지 한 부가 덩그렇게 놓여 있다. 두 신문을 가방에 챙겨들고 직장으로 간다. 직장에도 물론 신문이 있고, 책상 위의 모니터만 켜도 세상의 온갖 정보를 다 알 수 있지만, 직장의 신문은 보기 싫고, 모니터로 읽는 정보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들고 직장에 가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일과는 늘 바빠서 정신이 없지만, 간혹 점심시간에 신문을 펴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이라도 생길 때면 이 때야 말로 제법 행복하다는 느낌도 든다. 
&nbsp;&nbsp;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돈을 내고 자신이 보고 싶은 신문을 선택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선택한 신문이&nbsp; 곧 나의 ‘주인’ 행세를 하게 된다. 주인이 된 신문은 ‘당연히’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방식’을 가르친다.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서 우리가 화를 내야할 때와 박수쳐야 할 때,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정해 주는 것이다. 
&nbsp;&nbsp;그러나 신문이라는 ‘괴물’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는 아직도 자신이 주인인 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분노와 박수, 행동과 멈춤이 자신의 주관적 판단의 결과인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신문이 정해준 방식에 따라 사고하고 판단하는 결정하고 행동하는데도 말이다. 
&nbsp;&nbsp;신문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전해 줄 수 없기에 중요한(사실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 신문이 등장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바로 ‘누구에게 중요한가?’와 ‘누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가?’의 문제다. 보통 사람의 상식이라면 ‘다수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모범 답안이 될 테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너무나 모범 답안이기에 신문사의 어느 벽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액자’로 고이 모셔진 글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입장이 수시로 바뀌는 신문사들도 ‘정론직필’이니 ‘불편부당’이라는 액자를 걸어놓고 있다고 들었다.) 
&nbsp;&nbsp;그럼 정답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다. 즉,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일은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일로 받아들이도록 전달한다. 여기서 ‘우리’는 물론, 신문사의 인칭대명사일 것이다. (아니, 조금 더 노골적-본질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신문사의 사주가 아닐까 싶다.)그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본다면, 2000년대 초반에 언론사 세무조사에서 보인 신문사들의 기형적인 편집 형태를 떠오른다. 세금 탈루의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지면(紙面)을 도배해 가면서 ‘언론탄압’을 부르대던 생경스러운 모습에 쓴웃음이 났다. 
&nbsp;&nbsp;그러나, 형식적으로는 신문사의 편집국이 기자가 쓴 기사를 선택하고 크기와 배치를 결정하는 곳인데, 신문사의 어느 기자의 기사라도 이 편집국의 ‘심의’와 ‘검열’(?)을 거쳐야 기사가 실리는지의 여부와 기사의 크기와 배치가 결정된다. 당연히 신문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는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신문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기사는 빠지거나 축소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건이 신문사의 유/불리를 기준으로만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비슷한 편집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는 반드시 신문사의 시각에 따라서 기사의 내용과 배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nbsp;&nbsp;그러나 우리는 이런 신문사의 사정을 잘 모르면 모든 신문이 다 비슷하다고 여기게 된다. 자세히 보면 신문의 논리적 어조에 아주 중요한 차이가 나는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무서움이 있다. 우리가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우리가 신문을 읽는 행위는 ‘여론’으로 포장되고, 거기에 따라 사회적 의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문 하나 읽는 것에도 세심한 주의와 선택이 필요하다. 이렇게 신문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이는 독자를 현명한 독자라고 할 수 있다. 
&nbsp;&nbsp;이 책에서는 우리가 현명한 독자가&nbsp;되어 신문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라고 권유하고 있는데, 독자가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가 읽는 신문에 기사가 실리게 되기까지의 기본적인 과정을 이해하고, 신문 기사가 특정한 기준에 의해서 ‘선택’된 정보임을 파악하고, 신문 기사를 읽을 때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비판적인 수용이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nbsp;&nbsp;이 책은 우리가 매일 읽는 신문 기사가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소식을 신문에서 찾아 볼 수 없을 때나, 갑자기 신문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이 옳다는 근거를 오직 신문에 나왔다는 걸로만 주장하는 사람을 볼 때나, 청소년들에게 신문이 객관적인 진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때 꼭 필요하고도 기본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nbsp;책이다. 
&nbsp;
&nbsp;&nbsp;아울러 언제나 한결같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해 오고 있는 ‘손석춘’님께 존경하는 마음과 아울러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이 보잘 것 없는 ‘리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현명한 신문구독자가 되리라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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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0/46/cover150/898554894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548948</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만나기 어렵도다</category><title>우리도 눈먼 도시에 살고 있지 않은가? - [눈먼 자들의 도시]</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719061</link><pubDate>Sat, 06 Aug 2005 07: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7190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374931&TPaperId=71906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8/89/coveroff/897337493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374931&TPaperId=7190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눈먼 자들의 도시</a><br/>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br/></td></tr></table><br/>&nbsp; 
&nbsp;&nbsp;&nbsp;우리는 흔히, ‘OO에 눈이 멀었다’는 표현을 한다. 그 OO의 대상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자신의 온 관심이 그 OO이라는 것에만 집중되어 다른 주변의 상황이나 사물을 잘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할 때 쓴다. 만약 그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nbsp; &nbsp;이 책은 만약 ‘우리 모두가 눈이 멀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를 상상해 본 소설이다. 대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펼치고 있는 심각하면서도 예리한 주제도 흥미롭지만, 이 책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단문 위주의 문장과 쉼표와 마침표만 있는 문장부호 등이 있어 책을 읽는 것 자체도 만만치 않은 즐거움과 호기심이 생긴다. 
&nbsp;&nbsp;&nbsp;이미 여러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한 좋은 리뷰를 썼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내가 조금 더 보태고 싶은 부분만 기록하고 싶다. 
<BR>
1. 빛나는 아포리즘의 보고(寶庫) 
&nbsp;&nbsp; 이 소설의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은 아포리즘으로 읽을 수 있는 구절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만약에 책에 처음부터 밑줄을 치기 시작했다면 이 책을 다 읽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은 꼼꼼하게 표시를 해 가면서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이런 구절들이 눈에 들어왔다.&nbsp; 
<BR>
- 두려움은 실명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그거야말로 진리로군, 그것보다 더 참된 말은 있을 수 없어,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있을 것이고. 
-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BR>
2. 인간다움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 
&nbsp;&nbsp; 이 글을 통해서 볼 때 인간다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부끄러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자기 속에, 자기 행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할 눈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게 바로 ‘자의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 안의 이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도록 나를 설득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며, 때로는 다그치기도 한다. 결국&nbsp; 이 사람은 내 마음 속에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제가 있어야 활동을 시작하는 불가사의한 존재인 것이다. 언제나 나의 행동을 보고 있다는 가정 안에서 나의 행동을 따라서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자질이다. 
&nbsp;&nbsp; 이 책에서 가정하고 있는 ‘눈이 멀었다’는 표현은 인간이 자기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우리 모두가 눈이 멀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른다고 한 번 가정해 보자. 내 마음 속의 나도 더 이상 나에게 더 이상 ‘인간다움’을 강요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머지않아 소설의 가상 상황이 현실의 공포로 변할 수 있다. 
&nbsp;&nbsp; 눈 먼 자들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볼 수 없다는 확신이 들자 부끄러움을 잃어버린다. 이는 곧 인간다움의 상실이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인간’은 점차 절도, 폭력, 강간, 살인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되며, 그 가운데에서도 폭력에 기반을 둔 권력이 생겨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만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에 무기력하게 당하거나 굴종하게 된다. 
&nbsp;&nbsp; 이제 문제는 결론이 비관적이냐 희망적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이 지금의 현실 상황에 비춰 보아서 얼마나 진실한 것이냐를 따지는 것이다. 
<BR>
3. 우리는 이미 눈이 먼 것일까?&nbsp; 
&nbsp; &nbsp;많은 사람들의 리뷰를 읽으며 모두가 탁월한 지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도 우리는 이미 '눈이 멀었다'는 자각은 이 책의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기에 눈이 멀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눈이 먼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을 가져볼 때, 과연 우리의 어떤 상황을 보고 그렇게 느낀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좀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nbsp; &nbsp;나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사람들이 자기 문제이기도 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두고 생각하는 것을 볼 때, 우리가 눈이 먼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심이 있는 기사들은 어쩌다 포털사이트의 댓글까지 읽어 볼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 수준이 점차 퇴보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거린다. 시민들의 합법적인 시위나 노조의 합법적인 파업 등과 같은 집단행동에 보이는 네티즌들의 과격한(?) 반응은 그들이 과격하다고 욕하는 행동보다 훨씬 더 과격한 수준이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금 나의 상황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에 제도화되고 정당화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어쩔 수 없다고 외면한 나를 차별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옆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차별’하는, 뻔히 보이는 현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는, 벌써 오래전에 눈이 멀었지만 아직 우리가 눈멀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BR>
&nbsp;&nbsp; 독특한 문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서 제기할 수 있는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는 주제 사라마구의 이 소설은 그 명성에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소설이다. 그래서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 읽고,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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