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느티나무 서재) &gt; 이정도면 괜찮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category/45596</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불의에 물들지 않는 사람으로 살되, 불의한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다만 불의한 사람을 긍휼히 여겨라.[前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 이대규 교수]</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5 May 2012 12:09:17 +0900</lastBuildDate><image><title>느티나무</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83902183702004.jpg</url><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category/45596</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느티나무</description></image><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훌륭한 작가가 쓰고, 아둔한 독자가 읽다 - [두근두근 내 인생]</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84209</link><pubDate>Sat, 28 Jan 2012 23: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842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873&TPaperId=538420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90/50/coveroff/89364338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873&TPaperId=53842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두근두근 내 인생</a><br/>김애란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1년 06월<br/></td></tr></table><br/>&nbsp;&nbsp; 김애란, 김애란 참 많이 들었다. 그러니 그 좋다는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사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다시, 침이 고인다를 읽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상상력과 감성이 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하긴 나는 김애란뿐만 아니라, 도통 2000년대의 한국 소설에 적응하지 못하는 박제된 독자인 듯하다. 아마 내가 박제된 독자가 된 데는 소설의 문장에 대한 내 무딘 감수성이 큰 원인일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문장에 대한 심미안이 없다. 그러니 문장이 아름답다는 글에는 난 항상 무덤덤하다.
&nbsp;
&nbsp;&nbsp; 작년(2011년)에 문단의 가장 큰 이변이 황석영, 박범신 등 노장들의 소설과 나란히 걸린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평단과 대중의 관심을 두루 받았다는 것이라는 걸 기사로 본 적이 있다. 그런 기사를 읽으니 소설은 안 읽었어도 김애란이라는 소설가는 이미 내 마음 속에서 대단한 작가로 자리잡고 있었다.(이렇게 귀가 얇다.)&nbsp;그런데 정작, 김애란의 소설 읽기는 연속해서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다가 '결국엔 읽어야 할 책'이라는 어떤 끌림때문에 작년에 거의 마지막으로&nbsp;책을 살 때 슬쩍 끼워 넣었다. 
&nbsp;
&nbsp;&nbsp;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해 쏟아지는 찬사에 비해서는 역시나 좀 덤덤했다. 나빴다는 게 아니라, 폭죽처럼 쉴 새 없이&nbsp;터진 찬사에 나도 모르게 큰 기대를 하면서 소설을 펼쳤나 보다. 그녀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장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이라는 평을 해 놓은 평론가들의 양식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nbsp;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였는데, 이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분명히 나랑 똑같은&nbsp;문장들을&nbsp;읽었을텐데 평론가들은 역시나 허풍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들은 주말에도 바빠서 개그콘서트도 안 보나 봐!
&nbsp;
&nbsp;&nbsp; 소설의 내용은 열일곱에 어쩌다 보니 자식을 낳게 된&nbsp;부모와 그들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부모는 이제&nbsp;서른네 살이니 그 아들은 열일곱 살이다. 열일곱에 낳은 그 아들은 이제 그 옛날 부모가 자기를 낳았던 부모의&nbsp;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 아들은 희귀병인 조로증에 걸려 몸은 이미 여든 살이다.&nbsp;소설은 가장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사람과 가장 빨리 늙는 아들이 나누는 삶과 사랑, 늙음,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잔잔하게 묻는다.&nbsp;
&nbsp;
&nbsp; 소설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점 두 가지를 꼽는다면,&nbsp;소설의 각 장면들이 무척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과 인생에 대한 젊은 작가의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이다.&nbsp;소설의&nbsp;각 장면들이 꼭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데도, 각 장면의 모습이 선명하게&nbsp;머릿속에 떠올려진다.&nbsp;경쾌한 스텝을 밟는 춤꾼을 보고 있는 관객의 마음처럼, 소설의&nbsp;속도감 있는 내용 전개는 독자의 마음을 살짝 들뜨게 만들어준다.&nbsp;또한 나는&nbsp;인간의 삶과 사랑, 늙음, 죽음에 대한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이 젊은 작가의&nbsp;상상력에 놀랐다.&nbsp;&nbsp;
&nbsp;
&nbsp;&nbsp; 예컨대, 다음의 문장들을 뽑아 읽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nbsp;

어머니의 얼굴에는 가임기 여성의 자신만만함과 자랑스러움이 그득했다. 자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라 '진짜 권력'처럼 보이는 청춘의 민낯이었다. (37쪽)
&nbsp;
내 생각에 그녀들은, 아마 미안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nbsp;활달함 혹은 친절함이란 누군가와 무의식적으로 이별을 준비할 때 나오는 태도 중의 하나니까.(41쪽)
&nbsp;
나는 어머니의 짐승 같은 소리를 듣고 마음이 놓였다. '아, 나는 나와 비슷한 울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태어났구나'라는 것과 '아, 내가 어머니께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었구나'하는 안심이 들어서였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어머니의 눈물은 적어도 내가 전혀 무가치한 존재는 아닐 거라는 믿음을 주는 그런 눈물이었다. (45-46쪽)
&nbsp;
미숙한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경험할수록 성숙해지는 부모...... 어딘지 원인과 결과가 바뀐 것 같지만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가장 어리게 사고할수록 가장 지혜로워지는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났으니 말이다. (63쪽)
&nbsp;
진짜 어른. 그런 게 어떤 건지 알 수 없어도, 심지어는 오랫동안 그런 대우를 받고 싶었으면서도, 아버지는 자신이 그걸 진심으로 원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인생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란 단어에서 어쩐지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알았다. (중략) 아버지가 어른이란 말 속에서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그것은 다름아닌 외로움의 냄새였다. 말만 들어도 단어 주위에 어두운 자장이 이는 게 한 번 빨려들어가면 다시는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무엇이었다. (67쪽)
&nbsp;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79쪽)
&nbsp;
고작 열일곱살밖에 안 먹었지만, 내가 이만큼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세상에 육체적인 고통만큼 철저하게 독자적인 것도 없다는 거였다. 그것은 누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누구와 나눠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적어도 마음이 아프려면, 살아 있어야 하니까. (96쪽)
&nbsp;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143쪽)
&nbsp;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 저는...... 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
"실패해 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 (172쪽)
&nbsp;
'이 아이, 모든 연애의 시작엔 반드시 음악이 있다는 걸, 벌써부터 알아차린 걸까?' (189쪽)
&nbsp;
"근데 내가 마흔 넘었을 때 딱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이제 내 몸은 나빠질 일만 남았다, 하는. 몸이 좋아 몸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산 게 지금까지의 삶이었구나, 앞으로는 뭔가 잃어버릴 일만 남았겠구나 하고 말이야." (298-299쪽)
&nbsp;
'쿵...... 쾅...... 쿵......쾅......'
약하고 희미하지만 분명 거기 있는 소리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파동 안에 머물렀다. 그 자장 끝 맨 나중에 그려지는 동심원이 토성 주위의 고리처럼 우리를 오목하게 감쌌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난 그런 박자를, 누군가와 온전하게 합쳐지는 느낌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비로소 알아낸 기분이었다. 그건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320쪽)
&nbsp;
&nbsp;
&nbsp;&nbsp; 이렇게 인생에 대한 예리한&nbsp;상상력이 가득 담긴 문장을 옮겨 쓰고 보니, 이 소설에서는 재미뿐만 아니라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내 엉뚱한 생각의 뒷통수를 치는 내용도 있고, 막연하고 흐릿하던 생각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nbsp;나도 이젠 어느덧 이런 문장들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인생이 뭐 그렇지' 하며 씁쓰레할 나이가 된 것이다. 
&nbsp;
&nbsp;&nbsp; 그러니 굳이 빛나는 문장이 아니어도 좋다. 문장의 미감(美感)에 아둔한 이 독자가&nbsp;'재기발랄한 문장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 이라는 평론가들의 밝은 눈을 따라가지 못해도 굳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이 소설은&nbsp; 또 다른 측면에서&nbsp;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nbsp;앞서 얘기했던 인생에 대한 아포리즘 같은 문장들만으로 소설의 재미는&nbsp;충분하다. (이렇게 쓰고보니 그게 그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nbsp;
&nbsp;&nbsp; 그러고 보니 글의 앞부분에&nbsp;썼던&nbsp;내용은 좀&nbsp;야박하지 않나 싶다.&nbsp;그 야박함은&nbsp;어쩌면 나에게만 쉽게&nbsp;열리지 않는 문장에 대한 심미안을 갖춘 그들에 대한 눈먼&nbsp;질투심일 것이다.&nbsp;하긴 그 질투심의 화살은 과녁을 한참 빗나가긴 했지만!]]></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190/50/cover150/893643387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873</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소설은 독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존재 -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70023</link><pubDate>Sat, 21 Jan 2012 03: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700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709&TPaperId=537002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11/18/coveroff/893643370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709&TPaperId=53700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a><br/>공지영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9년 06월<br/></td></tr></table><br/>&nbsp;&nbsp; 지난 이틀 동안에 도가니를 읽었다. 책은&nbsp;제목과 저자만 알고 있었고, 이 소설을&nbsp;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폭발적인 흥행에 힘입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온 정도는 이미&nbsp;알고 있다. 물론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도. 그 사실이 독자들과 관객들을 분노케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도가니를 읽을 생각은 여태껏 못 했다. 그러다가 대학병원 한 귀퉁이의 가판대에 놓인 도가니를 보고 망설이다가 집어 들었다.(가판대 앞에는 30~70% 할인이라는 광고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으나, 정작 계산할 때는 '신간'은 제외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어쩔까 하다가 이왕 집어든 거 '달려라 정봉주'와 함께 사들고 왔다.)
&nbsp;
&nbsp;&nbsp; 굳이 리뷰를 쓸 생각은 없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도가니'를 어떻게 읽었나 싶어서 알라딘 리뷰를 눌렀는데, 리뷰가 무려 625개였다.(2012년 1월 20일 기준) 베스트셀러를 꼭 찾아서 읽는 편이 아닌 지라, 아마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리뷰가 많이 달린 책일 것 같았다. '와, 리뷰가 엄청 여러 개 달렸네!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할 말이 많았나 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차례차례 리뷰를 읽어 보는데, 아쉽게도 내가 느낀 어떤 감정과 비슷한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nbsp;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썼나, 싶어서 리뷰를 읽어 보고, 내 맘에 드는&nbsp;리뷰가 있으면 추천하고 나는 글을 안 쓴다. 훌륭한-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nbsp;리뷰가 있는데, 굳이 내 글까지 덧붙여서 사족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nbsp;
&nbsp;&nbsp; 이 리뷰는 제목처럼 작품의 훌륭함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책의 내용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쓴다.&nbsp;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엄청난 칭찬 일색의 리뷰를 보면서 '어, 난 좀 아쉬웠는데...'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이 아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뭔가 아쉬움은 있는데 아직 그건&nbsp;지금까지도 잘&nbsp;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쓰다 보면 조금은 그 실체를 드러낼 수도 있겠지!
&nbsp;
&nbsp;&nbsp; 내가 읽은 공지영 작가의 전작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우행시'를 읽고는 작가가 좀 더 용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도&nbsp;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 사형제도에 대한&nbsp;반대 주장을 폭발시켰다. 그야 책을 읽었으면 당연한 생각의 수순이 아닌가 싶었다. 법원의 판결로 사형수로 확정된 사람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에게 사형제에 대한 반대 논리를 의심 없이 전파시킨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사형제에 대해서 회의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nbsp;
&nbsp;
&nbsp;&nbsp; 그런데 만약, 소설의 결론을 윤수가 살인범이라는 것으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 윤수는 살인범이지만, 그도 여느 인간처럼 자신의 지난 잘못을 후회하고 뉘우치고 있으며, 다시 한 번&nbsp;살고 싶다는&nbsp;욕망을 지닌 존재이며,&nbsp;사랑하고 사랑받는 어떤 한 인간으로 그려졌다면 어떤 반향을 불러왔을까?&nbsp;만약에 그랬다면 독자들은&nbsp;사형제에 대해 반대 논리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잖아', '살인자를 똑같이 국가가 살인(사형)하는 건 야만적이야'라는 찬반 논란이 조금 더 거세게 일어났을 것이다. 
&nbsp;
&nbsp;&nbsp; 그런 점에서 보면 작가는 조금 더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nbsp;소설을 자신의 사형제 반대에 대한 신념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 그런 태도가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좀 아쉽다. 나에게 소설(책)은 내 인식의 틀의 경계를&nbsp;넘나들며 '고민'하고 '갈등'하게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내가 분명하게 본 것을 오히려 흐릿하게 만들어 보여 주는 것, 그게 소설을 읽는 이유다.&nbsp;당연한 주장은 내 마음이 편안하게 하지만,&nbsp;내 생각을 확장시켜 주지는 않는다.
&nbsp;&nbsp;
&nbsp;&nbsp; 도가니를 읽은 리뷰랍시고 어줍잖은 글을 끄적거리면서 '우행시' 이야기만 냅다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해서 이제 책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한다.&nbsp;여러 사람들의 찬사와는 달리 나는 도가니를 읽는 내내&nbsp;좀체로 감정이입이 좀 안 됐다. 물론&nbsp;독자를 소설의 상황에 끌어당기는 흥미진진한&nbsp;내용과 이를 속도감 있게 펼쳐나가는&nbsp;전개 솜씨야 이미 정평이 난 데로 훌륭했지만, 나는 소설의 인물들에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nbsp;읽으면 읽을 수록 점점 더 소설의 인물들 감정선 밖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소설의 상황에서 자꾸 격리되는 듯 했다.(희곡에서 말하는&nbsp;'소격 효과'라는 것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어쩜 이럴 수가 있지? 와, 미치겠다, 어떻게 이런 나쁜 놈들이...'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음, 화가 낫겠네. 세상엔 이런 나쁜 놈도 있겠지? 기득권자들의 행태가 원래 저렇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nbsp;
&nbsp;&nbsp; 그러면 왜 나는 몰입이 아니라, 격리되는 느낌이 들었을까?(그것도 제목이 도가니인데...)&nbsp;위에 썼던 그런 '감정'이 아니라,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nbsp;아마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 때문인 것 같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명확하게 선과 악의 두 편으로 갈라져 있다.&nbsp;나쁜 놈들에게는 근원적인 악의 야비함과 야만성'만'이 드러나 있고,&nbsp;정의로운 자의 편에는 진실과 정의에 헌신하는 희생적인 면모만 드러나 있다.(강인호는 예외라고 할 수 있는가?&nbsp;내가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도 온갖 개인적인 불안과&nbsp;어려움을 무릎쓰고 용감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편에 뛰어들었으니까 말이다.)&nbsp;나는 이런 사실이 불편하다. 
&nbsp;
&nbsp;&nbsp; 물론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최대한 사실에 근접한 내용으로 구성했던 것 뿐이라고. 또,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그 '상식... 그런 게&nbsp;없는, 말도 안 되는' 일도 많이 일어난다고. 실제&nbsp;사회에서 나쁜 놈들은 정말&nbsp;소설에 묘사된 것보다 더 야비하고&nbsp;파렴치한 짓을 일삼는 자들이라고.&nbsp;그러니 소설은 단지 그 실체적 진실을 보여주려고 했을 뿐인데, 인물의&nbsp;성격이&nbsp;선과 악이 분명해서 불편하다느니 이런 투정(?)은 너무 한가한 소리라는 타박도 가능하다. 
&nbsp;
&nbsp;&nbsp; 그런데 이 소설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모 정당의 정치가를 소설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도 없는&nbsp;사람이라고 비웃는 게 당연하다면, 소설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nbsp;한편으로는, 소설가가 일부러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nbsp;소설에서 묘사했을 수도 있다.&nbsp;우리 사회에 얼마나 나쁜 놈들이&nbsp;있는(많은)지, 그들이 어떻게 기득권을 유지해 나가는지, 그들의 연결시키는 사회적 고리들의 참모습은 또 어떤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일 수도 있다.&nbsp;
&nbsp;
&nbsp;&nbsp; 자, 여기서 나는 이 소설이 다시 '우행시'의 결론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nbsp;독자들에게 사형제의 찬반에 대해서 조금 더 정공법-윤수가 살인범이라는 결말로-으로 물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처럼, 가해자들과 그들의 편에 선 자들에게서 보이는 '어쩔 수 없음'을 들여다 보거나, 피해자들과 그들의 편에 선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음'도 함께 나타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nbsp;어떤 상황에서도&nbsp;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아름다워서 경외감이 들게 하지만 그만큼 독자의 고민의 영역을 줄인다.&nbsp;반대로 오로지 악마의&nbsp;화신 같은 모습은 추악해서 분노케하지만 그 감정은 즉자적이다.(물론 이 즉자적인 분노가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과 결합해서 이번에는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nbsp;
&nbsp;&nbsp;&nbsp;소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감각한 상황을 고민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비춰보면 도가니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공지영 작가의 현실 인식이나 거침 없는 소신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꼭 소설의 주제까지 그래야 할&nbsp;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읽는 이들에게 별다른 고민의 여백을 남겨두지 않는 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nbsp;
&nbsp;&nbsp; 도가니라는 소설과 영화가 이끌어 낸 현실의 변화를 보면서 새삼 문학(예술)의 힘을 느꼈다. 이를 이끌어 낸 소설가의 집념과 노력에 존경을&nbsp;보내고 있다.(그래서 책 샀다.)&nbsp;그것은 그것대로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그런 소설이다.
&nbsp;
*사족* 원래 재미 있게 잘 읽히는 소설인데, 도가니에 대한 칭찬은 다른 리뷰어들이 무척 많이 해 놓았길래, 나는 그냥 이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것을 알리는 정도로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조금 더 나간 점도 있는 것 같다.&nbsp;워낙 재주가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지만!&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11/18/cover150/8936433709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709</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승리의 2012년에 본 영화 '장미의 이름' - [장미의 이름 - The Name of the Rose]</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65700</link><pubDate>Wed, 18 Jan 2012 23: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657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M602435164&TPaperId=536570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12/70/coveroff/m6024351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M602435164&TPaperId=53657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장미의 이름 - The Name of the Rose</a><br/> / 영화 / 0001년 01월<br/></td></tr></table><br/>&lt;권력과 웃음의 상관성&gt;
&nbsp;
&nbsp;&nbsp; 승리의 2012년을 시작한 지 열흘 째! 몸은 감기로 계속 고생중이지만, 초저녁에 잠깐씩 들었다가 깨는 잠 때문에 한밤 중에도 깨어있는 일이 요즘 잦다. 책을 읽기도 하지만, 그것도 시들해지는 날이면 가끔 '다음'에서 영화를 다운받아 보게&nbsp;된다. &lt;루키&gt;라는 영화를 보려고 했으나 다운로드 목록에 없어서 결국 고른 영화가 &lt;장미의 이름&gt;이다.
&nbsp;
&nbsp;&nbsp; 움베르토 에코의 &lt;장미의 이름&gt;은 예전에 읽었지만, 내가&nbsp;예전에 읽어 온 책이 대부분 그랬듯이 &nbsp;스릴러 넘치는 소설이었다는 정도만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영화를 보다 보니까 조금씩 줄거리가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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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 수도원 수사들의 죽음의 원인을 알아 낸 윌리엄 수사와&nbsp;호르헤 수사와의 논쟁이었다. 호르헤 수사는 수도원의 장서관에 보관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편'에 관심을 보이는 수도사들을 죽인다.&nbsp;'시학 제 2편'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에 대한 이야기인데, 호르헤 수사는 종교(기독교)는 인간의 두려운 마음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데, 바로 웃음이 그 인간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떄문에&nbsp;이 책을&nbsp;읽었던, 또는, 읽으려던 수사를 죽이는 것이다. 웃음은 종교(권력)의 가장 큰 적으로 생각했다. 결국 호르헤 수사는 장서관에 불을 지르고 수많은 책들과 함께 죽음을 선택한다.&nbsp; 
&nbsp;
&nbsp;&nbsp; 이 장면의 대사를 듣는 순간 번개 같이 머릿속에 떠오른 한 구절은 한나 아렌트가 했던&nbsp;"권위의 가장 큰 적은 경멸이며, 권위를 훼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웃음이다."&nbsp;라는 말이다.&nbsp;확실히 웃음에는 두려움을 없애는 극복하는 에너지가 있다. 또한 웃음의 전파력은 강력한 것이라 현실의 권력은 웃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이를 증명하는 실례가 바로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아닐까?&nbsp; 
&nbsp;
&nbsp;&nbsp; 사람들이 나꼼수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나꼼수가 전달하고 있는 내용이&nbsp;거대 보수 언론이 외면하던 사실인 까닭도 있지만,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태도나 방식에 있다. 이들은 현실과 소설-합리적 추론-의 영역을 넘나들지만, 언제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태도는 거침 없이 당당하다. 소위 말해서 '쫄지 않는다'. 여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웃음이 더해지면, 뭔가 조마조마하던 청취자도 그 순간 어느새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nbsp;사라진다. 그러면서&nbsp;스스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눅들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nbsp;
&nbsp;
&nbsp;&nbsp; 결국 나꼼수의 힘은, 이 웃음에 있다. 이 나꼼수의 웃음은 이제 공공연히 전파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권력의 눈치를 안 보게&nbsp;되었다. 나꼼수의 웃음이 사람들에게서 두려움을 없애버린 것이다.&nbsp;'쫄지마, 씨바',는&nbsp;이제 내 친구가 새해 문자 메시지로&nbsp;보내기도 하는&nbsp;상황이 되었다. 답장으로, '그래 씨바!'로 답장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승리의 2012년'을 기대하고 있다. (1년 전을 생각해 보면 정말 상전벽해가 아닌가 싶다.) 이 모든 게 가카 때문이 아니라, 그 웃음 때문이다. 2012년 말에, 웃음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12/70/cover150/m60243516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M602435164</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기다려달라,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 개정판]</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25641</link><pubDate>Mon, 02 Jan 2012 2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256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656&TPaperId=532564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47/37/coveroff/89902746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656&TPaperId=53256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 개정판</a><br/>다카기 진자부로 지음,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04월<br/></td></tr></table><br/>&nbsp;&nbsp; '세계적 반핵운동가이자 시민과학자인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의 유언적 저서'라는 부제가 붙은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은 내가&nbsp;2011년에&nbsp;마지막으로&nbsp; 읽은 책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한 해를 돌아보는 기사에는&nbsp;원자력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사고가 양념처럼 등장하지만,&nbsp;올해는&nbsp;일본의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에 특히 더 원자력발전소에 대해&nbsp;세계적인 관심이 모아지기도&nbsp; 했다. 아마도 먼 훗날, 역사가들은&nbsp;2011년을 원전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이 전환되는 해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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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그런데,&nbsp;2011년을 마무리하는 12월의 중순에, 세계적인 탈원전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우리나라는 영덕과 삼척 인근에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nbsp;계획을 밝힌 것이다. 원전의 안전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인데도, 항상&nbsp;'한국 원전은 (일본과)&nbsp;다르다, 안전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물론 이 말을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테지만, 어쨌든 원자력발전소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단 우리 동네만 빼고!)&nbsp;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우리 정부의 오랜 홍보전략이 효과적이라는 방증이다.&nbsp;아울러 우리들은&nbsp;여전히 원자력에너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도 하다.&nbsp;&nbsp; 
&nbsp;
&nbsp;&nbsp; 우리 학교에 토론논술 교육 전문가이신 선생님이 계신데, 겨울방학 중에 고등학교&nbsp;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논술 특강을 해 보자는 제안을 하셨다. 배운다는 자세로&nbsp;얼른 참여하기로 했고,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논술 특강의 주제를 생각해 보기로 했는데, 대체로 &lt;원자력 시대, 이대로 괜찮은가?&gt;라는 주제가 시의적절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nbsp;
&nbsp;&nbsp; 각자 역할 분담을 했는데, 학생들에게 읽힐 책 선정은 내 몫이었다. 나도 원자력 분야에 대해서는 읽어본 책이 없는지라 알라딘을 돌아다니며 눈대중으로 고른 책이 세 권이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에너지 현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있는&nbsp;(것 같은)&nbsp;&lt;기후 변화의 유혹, 원자력&gt;을 주 텍스트로 삼았고, 원자력발전을 옹호하는 입장의 &lt;원자력, 대안은 없다&gt;, 원자력발전의 효용성을 부정하는 &lt;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gt;을 부텍스트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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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우연히 주문한 부텍스트인 &lt;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gt;이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읽기 시작한 책인데 가벼운 마음으로&nbsp;시작했다가 점점 집중력이 생기면서&nbsp;며칠에 걸쳐서 천천히 읽었다.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라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막연했던 믿음-신화-이 구체적인 사실로&nbsp;바뀌는 재미도 함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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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이 책은 한 평생을 일본의 원자력에 대해서&nbsp;문제를 제기해 온&nbsp;다카기 진자부로(이름은 낯설었으나 저서 목록을 보니, &lt;시민과학자로 살다&gt;는 책은 이미 알고 있는 책이었다.)의 주장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글이다. 일반 시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문제 의식을&nbsp;고취시키기 위한 성격의 책답게 전문적인 용어는&nbsp;거의 없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여졌다. 책의 성격에 맞게 내용도&nbsp;원자력의 개념과 역사를 개괄하고, 우리가&nbsp;원자력에너지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무한하다, 깨끗하다, 안전하다, 우수하다, 경제적이다' 라는 이미지가 사실과 다른 거짓된 믿음이라는 뜻의 '신화'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를 비롯한 원자력 옹호 세력들이 어떤 전략을 쓰는지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한 원자력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nbsp;늘 보여주는 정부의 무능한 대처도 함께 꼬집고 있다.(이 책 보면서 느낀 건데, 일본 정부와 우리나라 정부가 원자력발전 정책에 대처하는 방식이 어쩌면 그리도 똑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이렇게 하라고 누가 가르쳐주나?)&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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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이 책에 따르면 원자력은 다른 에너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성 배경(화학반응이 아니라 핵반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처음 핵분열 현상을 발견하고는 이를 원자폭탄&nbsp;같은 무기로 활용하기로 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종전 이후, 핵의 평화적 이용이 강조되었으나 초기에는 누구도 평화적(상업적) 이용에 회의적이었지만, 1960년대 이후 적극 도입을 주장하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뒷받침을 받아 원자력 발전소가 처음 건설되기 시작했다. 
&nbsp;
&nbsp;&nbsp; 처음엔 원자력에너지를 '발전'뿐만 아니라&nbsp;다양한 분야에 이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그 희망섞인 기대에도 불국하고 결국 그 생산과정에서의 위험성 떄문에 '발전' 분야로만 제한되고 말았다고 한다.&nbsp;이후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한 정부의 강력한 후원 아래, 1980년대말까지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신화'는&nbsp;그 양상을 달리하면서&nbsp;지속적으로&nbsp;강화되어 갔으나, 원자력발전의 잇단 사고와 함께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력을 보면서 국민들이 서서히 그 신화를&nbsp;의심하게 되었고,&nbsp;이때부터 산업으로서의 원자력 시대는 서서히 사양화의 길을 걷게 된다고 주장한다.&nbsp;
&nbsp;
&nbsp;&nbsp;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nbsp;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nbsp;막연히 경제적일 거라는 생각을 해 왔다.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nbsp;생활 수준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은&nbsp;'필요악'이라고&nbsp;믿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당장은 대안 에너지-아직은 주류가 될 수&nbsp;없는-&nbsp;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을 과장하는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했다. 전체 에너지 생산량에서&nbsp;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의 원자력발전소의 비중에 버금가려면 아직도&nbsp;많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원자력에너지의 위험성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이 내가 내린 막연한 결론이었다. 
&nbsp;
&nbsp;&nbsp;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게 설명한다. 앞으로 더욱 전력자유화 추세가 본격화된다면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데다가 원자력 발전의 난제인 핵폐기물 문제(처리 비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를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전력회사도 원자력 발전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따라서 이익을 위해선&nbsp;지옥에라도 찾아가는 기업이 포기하는 사업이 원자력발전 사업이기 때문에 이 분야는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nbsp;현존하는 매장자원의 경제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곧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도 엄밀히 계산하면 지금의 원자력에너지의 경제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nbsp;
&nbsp;&nbsp; 이 책을 읽고 나면 원자력 에너지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사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는 하지만) 왜 원자력의 시대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에 따르면 원자력 에너지 도입은 경제성이든, 안전성이든, 지속가능성이든 모든 측면에서 문제가 많은데 왜 일본 정부는 이를 고집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1960년대 초반 일본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지원으로 발전회사에서 원자력 발전을 시작하게 되었다는데, 일본 정부가 재벌에 엄청난 특혜를 베풀면서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짓도록 해야할 어떤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nbsp;더구나 일본은 원자폭탄의 피해당사국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원자력에너지를 서둘러 도입하려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nbsp;
&nbsp;&nbsp; 오히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반대편의 주장, 즉 원자력을 옹호하는 세력의 논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의 말처럼 원자력에너지에 대해 이렇게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결론이 내려진다면 전 세계에 원자력발전소는 당장 가동을 중지해야 할 것인데, 독일 등 일부 국가는 가동중단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원전 강국인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들은 원전 계속 정책을 밀고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들의 원전 옹호&nbsp;논리는&nbsp;무엇일지 궁금해졌다.&nbsp;
&nbsp;
&nbsp;&nbsp; 어쩌면 다른 분야에서처럼 과학계에서도 같은 현상을 두고도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거나,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필요한&nbsp;자료와 통계를 이용해서 필요한&nbsp;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 한 권의 책으로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는 않겠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타당한 주장도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이라면 그 또한 거짓된 믿음인 '신화'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은&nbsp;서로의 주장을 더 비교하고 검토해봐야겠다. (어째 결론이 좀 어정쩡하다.) 그러니 기다려달라, 아직은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147/37/cover150/899027465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656</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훌륭한 문제 의식, 안타까운 현실 인식 -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 배움이 있는 수업만들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461062</link><pubDate>Sun, 23 Jan 2011 1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461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92826&TPaperId=446106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7/48/coveroff/89955928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92826&TPaperId=4461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 배움이 있는 수업만들기</a><br/>사토 마나부 지음, 손우정 옮김 / 에듀케어 / 2006년 12월<br/></td></tr></table><br/>&#160;&#160; 수업이 바뀌면 학교를 바꾼다를 읽었다. 아마, 순대선생님이 쓴 리뷰를 본 게 기억에 남아있어서 고른 책이 아닐까 싶다. 230쪽 정도의 두껍지 않은 분량, 게다가 책의 크기도 보통 책보다 적고, 또 직업이 직업인지라 작심하고 읽으려 했다면-더구나 요즘엔 더더욱- 한 이틀 정도면 충분했을텐데 적어도 일주일은 걸린 것 같다.&#160;
&#160;&#160; 그만큼 확 와 닿지는 않았단 얘기. 그러면서도 끝까지 읽은 걸 보면 뭔가 마음에 흔적이 남았단 얘기도 되겠다. 간단하게 내용을 정리하면서 마음에 닿은 이야기와 내 마음을 비켜간 이야기를 기록해 보려고 한다.&#160;&#160;
&#160;&#160; 우선 내용 정리부터, 이 책은 학교라는 조직은 '외부에서 쉽게 바꿀 수 조직이 아니'라는 걸 전제로 한다. 그럼, 학교를 바꾸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라는&#160;질문이 따를텐데,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 정답을 일러주고 있는데, 바로 수업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학습만 이뤄지고 있는 교설 수업을 진정한 '배움' 이 있는 수업으로 바꿔야 한다.(1부) 수업 공개를 상시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공개연구회를 개최한다.(2부)&#160;국가나 교육청 단위의 주어진 교육과정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배움'의 과정에서 파생할 수 있는 총합학습을 중심으로 일상적 교육과정을 구성한다.(3부). 주장을 담은 내용은 여기까지고 4부에서는 1,2,3부의 학교 개혁의 성과가 있는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160;
&#160;&#160; 먼저 내 마음에 닿은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첫 번쨰로 1부에서 교실 수업에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 의식에 공감이 갔다. 그러면서 무엇이든 배우기면 하면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기 보다는 '배움'에 대한 교사의 방향성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160;그러면서 '수동적 능동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적절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160;&#160;
&#160;&#160;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자기주도적'학습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름은 그럴싸한데, 이게 뭐 새로운 개념은 아니고,&#160;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 는&#160;옛말의 최근 유행 버전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결정적으로 '무엇'을 배울 것이냐, '어떻게' 배울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학생들의 배움에 '무엇'과 '어떻게'에 대한&#160;길잡이 역할을 교사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160;이런&#160;'배움'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관계'이다. 교사가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일제식학습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160;교사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아이들의 목소리까지도 거기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이런 수업이야 말로 진정한 '배움'이 싹트는 수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160;
&#160;&#160;&#160; 두 번째로 '말하기'보다는 '듣기' 활동에 대한 강조도 인상 깊었다. 나도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소모임 활동을 몇 년째 해 오면서 항상 강조하는 게 '듣기'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앉아서&#160;듣기만 한다는데,&#160;동아리 활동을 해 보면 모두들 자기 이야기만 하려고 하지, 남의 이야기에 정성껏 귀를 기울이는 학생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모든 '배움'의 출발은 '듣기'이고, '듣기'야 말로 사실, '배움'의 주된 활동이 아닌가? 정말, '말하고 쓰는' 시간은 아무리 상호소통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수업시간이더라도 그 비중이 '듣기'보다 많을 수는 없을 것 같다.(어쩌다 1~2시간 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160;
&#160;&#160; 세 번째는 연간 수업 공개를 상시적으로 운영하자는 데도 공감이 간다.&#160;수업 공개를 통한 학교의 변화는 아마 비용과 효율&#160;측면에서는 아마 최고의 제도가 될&#160;것이다. 우리나라도 지금의 수업 공개 방식이나 제도가&#160;1회적이고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건 두번 말하면 입 아픈 사실! 그래서 수업공개를 교과&#160;동료교사들끼리 상시적으로 열어두고 모든 교사들이 수업 공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하자는 제안은 좋다. 사실, 최근에 들어서 현장에서는 점점 이런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160;유명무실한 경우도 있지만 전 교사 수업공개(동교과 교사 참석)는 기본이고, 학부모 수업 참관 주간 설정에다가 작년에 도입된 교원능력개발평가를 위한 수업공개까지... 이젠 적어도 수업 공개 활동이 교사들에게 '왜?'라는 의문을 품어야 하는 낯선 활동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160;&#160;
&#160; 네 번째는 총합학습에 대한 관심도 좋았다. 총합학습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와 닿지는 않은데, 교사나 학생이 관심을 가지게 된 특정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깊이 연구해 보는 교육활동 정도로 이해하는 정도다. 주제 중심의 교육활동이라고 해야하나? 예를 들어, 초등 저학년 정도의 수업이라면 연필을 주제로 정했다면, 연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연필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연필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이런 것들을 범교과학습으로 묶어서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부터 고등학교 1학년들을 대상으로 '창의적체험활동'이라는 과정을 한 주에 4단위(주당 4시간) 개설된다. 이 창체시간 안에다가 계발, 자치, 행사, 적응활동을 포함시키서 운영한다. 이 시간을 학교현장에서 새로운 수업 모델로&#160;운영할 수 있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총합학습이 운영대로 저자의 기대대로&#160;교과학습의 변화까지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160;&#160;
&#160;&#160; 나도 이 책에서 말한 '총합학습'이라는 개념이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새학기에 계발활동으로 지역사회탐구반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지역내 여러 공공, 사회단체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으로 계발활동 1시간으로 운영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뒤에 이어지는 보충수업시간을 함께 묶어서 운영해 볼 결심을 했다. 학교에서는 진학공부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일에 튀는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이제는 그 정도 눈치주기는 슬쩍 외면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니까. 결심이 섰을 때 자신감 있게 한 번 시도해 보자.&#160;&#160;
&#160;&#160; 이제는 이 책의 내용 중에서 내 마음을 비켜간 이야기를 한 번&#160;떠올려 본다면 대부분의 사례가 초등학교 중심이고 중학교의 사례도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일본의 사정도 우리와 비슷할텐데, 초중학교는 대학입시의 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니까 다양한 형식의 수업모델의 개발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본다.&#160;&#160;
&#160;&#160;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특히 고등학교는 모든 수업 방법이나 내용이 입시를 떠나서는 유명무실해 지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은 개별 교사의 책임도 있겠지만 제도의 책임이 더 크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입시 체제를 그대로 두고는 다른 어떤 처방이나 아무리 좋은 선진 시스템을 도입해도 학교 현장에 처방과 시스템이 적용될 때는&#160;왜곡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교육개혁의 실패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160;
&#160;&#160; 수업 공개를 연간 운영한다고 할 떄 어쨌든 교사들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 관건일텐데...일반&#160;학교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책에서 소개된 소규모 학교거나 정말 학교의 변화해야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라면 모를까?) 단순히 수업의 공개 운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수업을 통해 자신의 수업 상황도 함께&#160;반성적으로 성찰해서&#160;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럴려면 모든 교사들이 이 수업 공개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할 것이다.&#160;이는 어떻든 구성원 모두가 간절히 필요하다고 느껴야 가능한 일이다. 역시나, 어려운 문제!(물론 책에서는 교사들이 수업 공개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 교장이 교사의 '잡무'를 다 없애버리는 혁명(?)이 일어난다. -이것이야 말로 혁명이다.)&#160;
&#160;&#160; 마지막으로, 총합학습의 '배움'이 교과학습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총합학습은 기본적인 시수가 교과학습에 비해 훨씬 적지만, 이 수업방법을 통해 일반 교과학습에도 총합학습의 방법이 적용되어 실질적인 교육과정&#160;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인데, 내 경험상으로는 실제 결과는 그&#160;반대가 되지 않을까&#160;싶다.&#160;&#160;주당 2시간 정도의 수업으로 전체 30시간&#160; 교과학습의 변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다. 교과학습의 틀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총합학습도 교과학습의 구태를 답습하다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160;&#160;
&#160;&#160; 사실, 지금까지의 내 지적들이 이 책을 쓴 의도와는 한참 벗어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전제에서 말한 것처럼&#160; 수업(배움)을 통해 학교를 바꾸고,&#160; 다시 학교를 통해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는 듯 하고,&#160;내 지적은 기본적으로 지금과 같은 학교 틀에서는 어떤 일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몹시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160;&#160;
&#160;&#160; 이제 마무리를 해야할 시점, 매끄럽지 못한 번역문이 좀 거슬리나 얇은 책이 던지는 시사점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이 책이 주로 다루는&#160;대상이 초중등학교에 한정되어 있을지라도 교직에 있거나&#160;교육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160;&#160;
&#160;&#160;&#160;덧붙임 -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교사들을 중심으로 시도하고 있는 학교모델이 '혁신학교'라고 알고 있다. 이제&#160;변화가 시작되었는가? 어쨌든 그 변화의 바람이 공교육의 벽을 뚫고 들어오기를 빈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7/48/cover150/899559282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92826</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한국 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 -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88922</link><pubDate>Sat, 06 Jun 2009 16: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889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8111&TPaperId=288892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59/81/coveroff/89718481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8111&TPaperId=28889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쿠오바디스 한국경제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a><br/>이준구 지음 / 푸른숲 / 2009년 04월<br/></td></tr></table><br/>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 경제

&#160;&#160; 1년 반전에 우리-우리,라고 말을 하니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죽어가는(?) 우리나라 경제를 확실히 살릴 수 있다며 출마했던 어느 대통령 후보에게 ‘묻지마’식 투표로 표를 몰아주었다. 그가 내건 공약은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었고, 그의 지난 언행에는 수많은 도덕적, 법적 결점이 있었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 값을 올려주고, 내가 내는 세금도 덜 내고, 거기다가&#160; 내 월급도 올려 줄 비상한 실력이 있다는 말에 혹해서(결코 ‘속아서’가 아니다.) 선택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지난 10년의 ‘좌파’(진짜 ‘좌파’들은 이 말 들으면 가소로워서 웃는다.) 정권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자칭 ‘보수(진짜 ’보수‘들은 이 말 들으면 서운해서 운다.)’ 언론에 세뇌당한 국민들은 지난 5년 평균 4.2%의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 종합주가지수 2.3배로 성장한 경제를 두고 죽었다, 고 생각해서 그 대체자로 고른 인물이 건설업자 출신의, 경제를 살린다는 이명박 후보였다. 
&#160;&#160;&#160;온갖 폼을 잡으며 경제를 살리겠다던 그 후보의 실력이 제대로 드러나는 데는 채 몇 달이 걸리지 않았다. 인수위원회 시절의 ‘어륀지’ 사건 이후로, 온통 자기 삶의 이력을 닮은 ‘고․소․영, 강․부․자’들로 구성된 내각의 출범을 출범시켜 자신의 출신 배경을 맨얼굴로 드러내었다. 더구나 자신 있다던 경제 분야에서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일으킨 ‘올드 보이’의 컴백, ‘MB식 물가 관리’, ‘고환율 정책’ 등을 통해, 자신의 사고방식이 과거의 어느 순간(그것도 오래 전 어느 순간. 아마, 1970년대쯤?)에서 멈춰 버렸음을 단적으로 드러내었다. 
&#160;&#160;&#160;굴욕적인 쇠고기 수입 협상이나 미국발 금융위기의 엉성한 대처만 보더라도 과연 그가 말한 ‘프로’의 실력은 언제쯤 발휘되는 것인지 궁금하다.(아직도 그 놈의 ‘좌파 타령’이다. 아마, 임기가 끝난 다음에도 큰소리 칠 것 같긴 하지만…… 그에 앞서서 남의 머리를 빌려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김영삼을 보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뻔뻔함은 그네들의 주요 자질이다.) 기껏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서는 것이, 전 국민이 그렇게 반대하고 있는 ‘대운하’를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꺼내는 것이나 ‘녹색 성장’이라는 이름의 형용 모순 정책을 아무 사업에나 갖다 붙이기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얼마 전에 자전거 축제에 참여하셔서 한 말씀 하셨단다. 우리나라가 곧 3대 자전거 생산국이 될 것이라고. 그런데 역시나, 그 주장이나 전망의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번에도 역시 그냥 그 자리에서 기분이 ‘업’ 되어서 아무렇게나 한 번 해 본 말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이 글의 전체 맥락과 상관없을지 모르겠다만, 아, 또 마음에 진짜 안 드는 게 하나 있다. 제발,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도 뭐 했네, 이런 얘기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가난한 시절’은 이제 그만~!
&#160; &#160;내가 느끼기에 이 정부는 정책의 결정에 아무런 논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고, 그냥 ‘아무렇게나 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말은 조금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몰상식한 태도’까지 보인다. 더군다나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들을 적대적으로 대하면서도 성찰의 기미가 안 보인다.(하기야 ‘성찰’이라는 단어는 이들에게 너무 품격 높은 단어라고 느낌이다. 그러니, 혹시나 저들의 입에서 ‘성찰’이라는 말이 나온다면 앵무새의 목소리가 연상될 것이다.) 
&#160;&#160; 나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거의 무지한 편이지만, 경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부의 경제 정책은 내가 보기에도 너무 엉성하고 허술한 것 같다. 항상 추상적인 전망만 난무하고, 어디에도 전망의 근거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답답함을 넘어 이젠 이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을 지경이다. ‘경제’라는 말만 들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나 같은 사람한테도 이 정부의 능력이 들통났으니, 경제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 보기엔 이 정부의 경제 정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습게 생각될까? 
&#160; &#160;그러나 이 정부에 대한 한 터럭의 기대도 없었던 나 같은 사람 말고, 이 정부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이 정부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던 소위 말하는 ‘보수 우익’의 사람들은 과연 지금 이 정부의 정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싶었다. 더군다나 자신 있다던 경제 분야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어떨까? 그들은 내가 사사건건 짜증스럽게 느끼는 이 정부의 정책을 정말 환호하고 있을까? 매번 여론조사를 하면 적어도 25-35%는 지지한다니까 그런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은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 중에 이 정부의 정책으로 덕 보는 부자가 그리 많단 말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160;&#160;&#160;그런데, 우연히 이번에 우리나라의 주류 경제학자로서 ‘보수 우익’ 성향이라는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를 읽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참여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몇 편 읽었던 적이 있어(물론 인터넷 포털에서다.) 이준구 교수의 이름이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는 포털에 이 교수의 글이 오르는 주기가 훨씬 짧아지고, 글의 내용도 정부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이전보다 훨씬 쎄서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160; &#160;예전에 이준구 교수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역시 ‘수구 꼴통’이로군, 이었다. 작은 허물을 트집 잡아 새로운 개혁 정책을 흔들어 보려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누구는 이걸 이념적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만, 나에게 이념이 무슨 소용이랴?)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이 교수의 글이 더 자주 올라왔다. 그리고, 기사에 소개될 때는 이준구라는 이름 앞에 꼭 ‘보수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달리곤 했다. 내가 일부러 찾아 읽은 건 아니지만, 이 분이 쓴 몇 편의 글을 읽어보면서, 이 정도면 진짜 보수라고 할 만하군.(난 역시 직업 특성상 칭찬에 인색하다.) 
&#160;&#160; 그러면서 의아스러웠다, 보수를 표방한 정부가 보수주의 경제학자에게 비난받는 현실이. 이 책을 읽고 이준구 교수의 도움을 받아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정부의 경제 정책은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들 보수주의 경제 정책의 핵심은 시장 기능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하는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이 정부는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쓰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엔 시장 기능에 대한 믿음과 신뢰보다는 개발주의 시대의 ‘관치’의 냄새가 더 짙다.(미분양 아파트 사태 해결에 쏟는 정책들을 보라.) 반대로 그들이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책들은 사실, 우리나라에서 시장 기능이 왜곡되어 정상적인 시장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 한정적인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공공 부문 민영화 계획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160;&#160; 또한 이 정부는 보수를 표방하는 정부(아, 물론 자기들은 ‘실용주의’ 정부라고 말했다만, 실용은 방법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을 받고 국정이념을 수정했다고 들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강변해봐야 이명박 정부를 ‘보수주의’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은 없지 싶다. 아, 가스통 할배들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답지 않게 정책의 변화가 너무 급진적이다. 모름지기 보수란 지켜야 할 가치를 고수하면서 점진적인 변화, 안정된 변화를 추구하는 이념이 아니었나?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규제 완화’라고 해서 지금껏 학교에 있었던 200여 가지 규제(규제에 대한 오해도 있다. 규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회 환경의 변화를 따라 가지 못해서 불필요한 규제도 있지만, 그 규제가 생겨나게 된 배경을 꼭 생각해 봐야 한다.)를 ‘오늘’부터 싹 다 없애버린다는 정책을 발표하는 정부가 안정 속에 변화를 추구하는 ‘보수’ 정부라고 할 수 있나? 그렇기 때문에 이준구 교수는 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몹시 근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바꾸려고 달려드는 폼이 곧 초가집을 홀라당 태워 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160;&#160; 그럼 저들의 황당무계한 계획을 밀어붙이는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귀를 막고 일방적인 정책만 펴는 이유를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외부적 요인은 너무도 싱겁게 선거가 끝날 정도로 압승을 했다는 점이고, 내부적 요인은 국민에게 선택 받은 것으로 자기의 공약을 마음대로 실행할 백지수표를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요인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아무리 국민들이 바꾸라고 비판해도 ‘소귀에 경 읽기’ 마냥으로 밀고 나간다. (이준구 교수도 이젠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이라는 기사를 읽은 것도 같다.)
&#160;&#160; 이 책은 지금까지 비판해 온 글을 묶은 것이다. 대운하를 비롯한 부동산 문제, 종부세 폐지, 교육 개혁…… 이 모두를 조금씩 엮어서 아마추어 정부의 1년이라는 장에 참여 정부의 문제점과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두 정부의 정책에 대한 간접적인 비교도 가능한데, (나의 오독誤讀일지도 모르겠지만)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교육 정책)은 대체로 큰 줄기의 방향은 옳았으나 ‘과욕’이 앞선 탓에 투박한 채로 그대로 밀고 나갔다가 기득권층과 수구 언론의 저항의 빌미로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교육 정책)은 오직 부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낡은 사고방식으로&#160; 문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일갈하고 있다.
&#160;&#160; 이러한 주장의 단적인 사례는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둘러 싼 논란에서 확인할 있는데, 참여정부가 도입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부동산 광풍을 잠재울 수 있는 바람직한 제도였으나, 종부세 부과 기준을 지나치게 낮게 정해서 기득권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는 종부세를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과세 기준을 상향하고, 세율도 대폭 낮추어서 가진 자들이 내야할 세금을 대폭 깎아주어 다주택 소유의 길을 터준 셈이다.(다주택 소유자에게 이런 부담을 덜어주면, 주택의 공급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겨서 결국 주택 가격의 상승을 불러온다.) 여기다가 헌법재판소의 세대별 과세에 대한 위헌 판결까지. 
&#160; &#160;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 경제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유능한 보수주의자의 걱정스런 경고에도 귀를 닫고 있는 이명박 정부. 그러면서도 ‘경제’는 자신 있다는 큰소리는 여전한데…… 그 공허한 큰소리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말하기엔 그들의 무능이 너무 도드라진 지난 1년 4개월이었다. 아울러 이준구 교수도 독자를 생각하며 건필하시길!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59/81/cover150/897184811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8111</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 [한비야의 중국견문록]</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270802</link><pubDate>Sat, 30 Aug 2008 09: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2708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4779&TPaperId=227080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9/28/coveroff/89718432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4779&TPaperId=22708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비야의 중국견문록</a><br/>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08월<br/></td></tr></table><br/>&#160;&#160;&#160;내가 아주 좋아하는 어떤 선생님께서 한비야 씨(이런 경우 뭐라고 불러야 하지, 한비야 씨?, 한비야 선생님?, 한비야?, 한비야 님?, 딱 마음에 드는 호칭이 없네.)가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하시면서 이 책을 말씀해 주셨다.(음, 책은 내 돈 주고 샀다.) 나도 한비야 씨의 책은 그가 세계 일주를 마치고 냈던 책 덕분에 한창 유명세를 탄 이후에 펴낸 ‘… 우리 땅에 서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땐 설렁설렁 책을 넘겨서 그랬나, 굳이 한비야 씨의 다른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그러면서도 괜히&#160;한비야 씨에 대해서 좀 안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160;&#160;&#160;굳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다 보니 신문이나 온라인 서점, 심지어 텔레비전의 요란한 (간접) 광고에도 끄떡 없이 한비야 씨의 책을 무심하게 넘겼는데, ‘저런 훌륭한 선생님께서 닮고 싶은 모습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역시 홍보는 구전(口傳)이 힘이 세다. 한비야 씨의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들었던 내 생각은 - 부러움!<br />

&#160;
&#160;&#160;&#160; 부럽다. 글쓴이가 저렇게 어디든 마음먹은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몸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말이다. 늘 반복적인 일에다 평온하다 못해 무덤덤하기까지 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내 처지-물론 내 상황이 부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에서는 가끔은, 부럽다. 물론 글쓴이가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살게 되기까지는 남이 모를 많은 시련과 인내를 거쳐 온 것이겠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裏面)을 잘 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그냥 지금의 그 모습이 부러울 뿐이다. ‘뭐,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일상의 매너리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아니다, 인생은 그렇지 않다’고 온몸으로 실증해 주고 있는 글쓴이의 존재가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160; &#160;또 부럽다. 어떤 사람은 저렇게 자기 사는 이야기를 술술 잘도 풀어내고, 1년 동안 살아가는 이야기를 토막토막 글로 쓰기만 해도, 글이 묶여서 뚝딱 책이 되고, 또 그게 먹고 사는 벌이(?)가 될 수 있다는 게 또 부럽다.(이런 걸 문화자본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언젠가 술자리에서, 어느 선생님께서 글 쓰는 사람들은 목숨 걸고 쓴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던 내가 그 사이에 그 말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책을 읽는 내내 또 부럽다,는 말을 입에 줄줄 달고 있었다.&#160;<br />
&#160;&#160; 그런데, 진짜 부럽다. 글쓴이의 열정에 가득한 삶이야말로 내가 진짜 부러운 부분이다. 삶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수 있고, 그 기회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삶이 곧 글이 되기도 하고, 그가 쓴 글을 읽어주는 독자도 많아지는 것이다. 
&#160;&#160; 견문록 곳곳에 글쓴이의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 넘친다. 이 삶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한비야 씨를 진정 한비야 씨답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는 글쓴이의 삶에 대한 열정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160;아니라, 스스로 피나는 노력의 결과일 것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따라서 누구나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으로 마냥 부러워하기만 한다. 진짜 부럽다.
&#160;
&#160;&#160; 정작 중국에서의 유학 생활 1년을 담은 책의 내용은 평이한 편이었다. 글쓴이의 말처럼 학생 신분이니까 당연히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책의 여기저기엔 이방인으로서 중국(베이징)에 살면서 보고 듣게 되는 중국의 다양한 사회와 문화에 대한 주관적 인상, 또 유학생 신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그 상황에서도 언제나 생기를 잃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글쓴이의 씩씩한 모습이 나타나 있어 이&#160;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160;
&#160;&#160; 그러고 보니,&#160;내가 좋아하는 그 선생님이 참 멋있다,고 느낀 점이 바로 한비야 씨의 저런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비야 씨의 모습과 그 선생님의 모습이 묘하게 겹친다. 그 선생님은 이미 자신의 롤 모델과 충분히 닮은 것 같다.(본인은 별로 인정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160;나도 나만의 '롤 모델'을 찾아서 닮으려고&#160;애쓰다 보면 조금은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 일단 역할 모델부터&#160;한 번 찾아보자.&#160;자, 누구 있을까?.............ㅠㅠ<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9/28/cover150/897184327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4779</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OO아, 이젠 학교에 와라! - [들꽃학교 노교사, 교육 희망을 보다 - 이원구 선생님의 교육에세이]</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76892</link><pubDate>Sun, 11 Mar 2007 00: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768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406282&TPaperId=107689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5/85/coveroff/89804062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406282&TPaperId=10768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들꽃학교 노교사, 교육 희망을 보다 - 이원구 선생님의 교육에세이</a><br/>이원구 지음 / 우리교육 / 2006년 11월<br/></td></tr></table><br/><!--StartFragment-->&#160;1. 안준철 선생님의 &lt;들풀&gt;

들풀 

- 안준철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이름으로 불러 준 적 없는 아이들 
마음으로 읽고 
눈빛으로 알고 
따스히 흘러 
빗장을 열게 하는 사랑 
나눠 준 적 없는 아이들 
그런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더 가슴 태웠을 것을 
더 다가오고 싶었을 것을 
들풀을 보니 생각난다. 
화사하지 못하여 
키에 가리워 
먼발치로만 서성이던 아이들 
한 번 더 다가섰으면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br />

안준철, &lt;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gt;

&#160;&#160; 한동안 이 시가 좋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여러 선생님들께 나눠주기도 했다. 들풀 같은 우리 아이들, 많이 사랑해 주십사는 의미였다. 어느 순간, 산에 들에 피어난 들꽃의 이름을 외우려고 애쓰는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들꽃의 이름을 알려는 노력을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 강박관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160;&#160; 그런데 시간이 다시 한참이나 지난 후, 지금은 이 시가 참 좋다. 이 시를 쓴 안준철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뵌 게 이유기도 하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인이 그런 것처럼, 들풀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들풀 같은 우리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 아닐까? 이 시를 읽을 때 마음의 울림이 오는 사람이라면 들꽃의 아름다움만 취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참모습에도 따스한 눈길을 전하는 감성이 함께 있다고 믿는다. 
&#160;&#160; 들꽃 학교 노교사, 교육희망을 보다, 라는 책은 들풀의 아름다움에 빠진 한 교사의 교단생활 이야기다. 아니, 들꽃 같은 우리 아이들의 풋풋한 아름다움에 취해 살아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기라고 말해야 의미가 더 정확하게 전달될 듯 싶다. 생각은 많지만 행동은 머뭇거리는 교사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온 ‘교육운동가’답게, 아름다운 들풀을 학교 구석구석에 옮겨 심고 가꾸는 과정을 통해 다른 교사들과 아이들에게 들풀의, 교육의, 나아가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조근 조근 말해주고 있는 책이다. 새 학기가 되면 새 학교로 옮겨 온 새싹 같은 아이들과 한 평생을 살아온 이야기가 넉넉하게 담겨있으니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함께 하고픈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책이리라고 믿는다.

2. 주말 농사 실패하다.
&#160;&#160; 한 4년 전인가 보다. 그 때는 나도 여러 선생님들 틈에 끼여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부산에서 가까운 김해에 노는 땅을 얻으셨고, 그 때 노조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끼리 주말 농사를 지어보자며 희망하는 분들에게 그 밭을 두 고랑씩 분양해 주신다기에 앞 뒤 재보지도 않고 덜컥 분양을 받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160; 사람이 느끼는, 도시 생활에 대한 어떤 결핍감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싶다. 
&#160;&#160; 그 밭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 자가용이 없는 나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동안은 들뜨고 기쁜 마음이 계속되었다. 밭에는 종묘상에서 산 상추와 쑥갓의 씨를 심었고, 고추와 방울토마토는 어린 모종을 옮겨다 심었다. 씨와 어린 모종에다가 거름도 주고, 물을 흠뻑 뿌려 주면서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서너 달 후에 제대로 수확을 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내가 키운 고추라며 한 봉지를 슬쩍 내놓을 수 있으리라는! 
&#160;&#160; 그러나, 해도 해도 끝이 없던 학교 업무와 노조의 일에 밀려서 겨우 주말에나 가서 얼굴만 내밀던 일도 점점 뜸해지고 말았다. 나중에는 내 고랑의 어린 새싹들이 어떤 상태로 있을 지 뻔히 눈앞에 보이는 듯 해서 밭을 찾는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당연히 그해 주말농사는 완전 망했다. 무참하게도 다른 건 한 번도 수확하지 못 했고, 물만 주면 자란다는 상추만 겨우 두어 번 뜯어서 집에 가져왔을 뿐이다. 
&#160;&#160; 다음해엔 텃밭을 분양받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미련이 남아서 조금 넓었던 아파트 베란다에 고추와 상추를 다시 심었으나, 그것도 제대로 수확 한 번 못했다. 아내에게 큰소리를 쳤던 나는 다시 무안했다. 
&#160;&#160; 텃밭을 일구려고 했던 나는 안다, 들꽃 학교의 텃밭에서 채소를 심고 그것을 가꾸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는 안다, 아이들이 잘 자라려면 교사의 온 정성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패를 해 보니 더욱 잘 알겠다. 농사나 교육은 농부나 교사의 꾸준한 관심을 거름 삼아 그 대상이 본바탕을 꽃피운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자명한 진리를 이 책에서 다시 배운다. 

3. 나도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까?
&#160;&#160; 2007년 3월, 올해로 학교에 들어온 지 9년차이다. 아직도 많은 것이 서툴기만 한데 벌써 꽤 시간이 지나버렸다. 처음 발령을 받고 학교에 출근하던 날의 기억도 또렷한데, 내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것이다. 이럴 때 ‘시간, 참 빠르다’라고 하는가 보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갈수록 경험이 쌓여 안정감이 드는 것이 아니라 늘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함이 든다. 
&#160;&#160; 교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지만, 나는 요즘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중요하고도 특별한 한 시기(‘질풍노도기’라는 말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에 있는 인간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전문가라고 말하고 싶다. 
&#160;&#160; 그런데, 이 불안함의 원인은 바로 이 소통의 문제 때문에 온다. 교사의 나이가 적을 때는 전문성에 대한 훈련만으로도 특별한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소통이 가능하지만, 물리적인 나이가 들고, 경험을 통한 자신의 생각이 굳어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보았다. 심지어는 아이들과 수업하기 힘들어서 승진 준비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것이 학교의 현실이기도 하다. 
&#160;&#160; 아직 과문한 탓이겠지만, 후배 교사가 보기엔 참 아름답게 늙어가는 선배 교사를 그리 많이 보지 못 했다. 승진 욕심에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까 머릿속에서 ‘교육’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린 사람들도 많고, 무욕(無慾)한 듯 보이는 분들도 따분한 일상에 무기력하게 반응하거나, 모든 일들에 오직 자신의 ‘나이 먹었음’만이 논리의 모든 근거가 되어 학생들은 고사하고 후배 교사와의 소통마저 힘든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160;&#160;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나는 불안하다. 나도 저렇게 늙어갈까 봐 말이다. 지금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분들도 내 나이 때는 선배 교사를 보면서 나처럼 생각했을 테니까. 
&#160;&#160; 누구나 초임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워질 때 교단에서 내려오기를 꿈꾼다. 그러나 세월은 살 같이 흐르고, 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꿈을 실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신 정년 때까지 평교사로, 교실을 지키는 이름 없는 노병(老兵)으로 사는 꿈을 꾸었다.(늙으면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두려움이 아직도 많다.)
&#160;&#160;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오늘 나는 거기에 다른 꿈을 새로 꾼다. 내가 학교에서 늙은 교사가 되었을 때 후배 교사가 스스럼없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 말이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볼 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만,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마음속에 오롯이 큰 꿈을 품어 본다.

&#160;&#160;그런데, 나는 요즘 내 큰 꿈에 등불을 밝혀 준 이를 책에서 만났다. 그 분이 바로 들꽃 학교 노교사, 이원구 선생님이시다. 
&#160;&#160;정녕 아름답게 늙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5/85/cover150/898040628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406282</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오만한 남자와 편견에 찬 여자의 사랑이야기!  - [오만과 편견]</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717944</link><pubDate>Wed, 03 Aug 2005 23: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7179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882&TPaperId=71794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3/68/coveroff/89374608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882&TPaperId=7179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만과 편견</a><br/>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09월<br/></td></tr></table><br/>&nbsp;&nbsp; 얼마 전까지 내가 읽어 본 외국소설이라고는 대학 다닐 때, 친구들이 읽으면서 감동했다는 말에 솔깃한 ‘데미안’ 정도였다. 그런데 다 읽고도 그 소설이 감동적이라는 말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이후 ‘호밀밭의 파수꾼’과 ‘위대한 개츠비’에도 손이 갔지만 그리 탁월한 선택은 아니었던 듯싶었다. 아무튼 나에게는, 배경을 잘 알 수 없는 외국소설은 친구가 맛있다고 권하는 낯선 음식을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르면서 계속 먹어야하는 것처럼 곤혹스러운 일이다. 
<BR>
&nbsp; &nbsp;지금에야 고백하건데, 나는 오만과 편견이라는 책은 소설책이 아니라 문학이론서나 두꺼운 사회과학 서적인 줄 알았다. 내가 이런 오해를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책의 제목이 주는&nbsp; 중압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처음 오만과 편견이라는 말을 들었던 건,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지만, ‘너에게 나를 보낸다’라는 영화에서 바지 입은 여자로 나온 정선경 씨가 비빔밥을 다 먹고 그 그릇에다 물을 부어 마시면서 하는 대사 중에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라는 책을 보면…’ 이라는 말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 때 오만과 편견이라는 단어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이 결국 며칠 전에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일 것이다. 
<BR>
&nbsp;&nbsp;&nbsp;이 책은 훌륭한 귀족 가문을 배경으로 모든 것을 다 갖춘 듯한 한 남자-손꼽힐 만큼 많은 재산과 뛰어난 지적 능력,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다아시 씨와 평범한 가문에서 자랐지만 재기발랄하며 똑똑하고 재치가 넘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한, 엘리자베스 베넷 양의 사랑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nbsp;&nbsp; 다아시 씨는 앞에서 말한 모든 장점도 있지만 ‘오만’한 성격 탓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 주변의 천박한(?) 인물들-특히,&nbsp;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상업을 하는 친척들-&nbsp;때문에 사랑을 망설이고 있으며 또, 그래서 쉽게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지 못한다. 
&nbsp;&nbsp;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가 진실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면서 그의 오만한 듯한 모습과 다른 사람의 잘못된 평가만을 믿고, 다아시 씨가 성격적 결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nbsp;&nbsp; 하지만 이 둘은 두 사람 사이에 얽힌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게 된다.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천박하다고 생각했던 엘리자베스의 가족을 이해하려고 하고 자신의 오만한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총명함 뒤에 있던 다아시 씨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애쓰면서 둘의 사랑은 완성된다. 
<BR>
&nbsp;&nbsp; 흥미로운 사건들이 이어져서 지루하지 않고, 젊은 여자들의 심리 묘사도 탁월했고, 전부 다 느낀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 가득 찬 유머와 풍자 등도 책을 읽는데 즐거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다른 무엇보다도,&nbsp; 나는 이 소설에서 결혼과 연애에 대한 엘리자베스-아마도 제인 오스틴의 생각이 투영된-의 생각이 나타난 부분이 재미있었다. 
&nbsp; &nbsp;이 소설에서는 모두 네 쌍이 결혼을 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 자기(엘리자베스)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한 후 사흘 만에 자기의 친구에게 청혼을 한 콜린스 씨와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 성사된 샬롯의 결혼에 대해서는 
<BR>
&nbsp;&nbsp;&nbsp;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함께 있기에 즐거운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도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남편을 갖게 될 것이었다. 남자나 혼인 관계 그 자체를 중요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은 언제나 그녀(샬롯)의 목표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이제 마침내 그 예방책을 손에 넣은 것이니 스물일곱의 나이에 한 번도 예뻐 본 적이 없는 여자로서는, 이번만큼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느꼈다.(177쪽) 
<BR>
&nbsp;&nbsp; “너도 알지만 난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야.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지.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안락한 가정이야. 그리고 콜린스 씨의 성격과 집안 배경,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볼 때, 내 생각엔 우리에게도 다른 어느 커플 못지않게 행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181쪽) 
<BR>
&nbsp;&nbsp; 콜린스 씨가 사흘 동안에 두 사람에게 청혼을 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는 했지만, 그건 샬럿이 실제로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결혼에 대한 샬럿의 견해가 자기와 꼭 같지만은 않다는 건 그녀도 언제나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도 그녀가 세속적인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한 다른 것들을 희생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콜린스 씨의 아내인 샬럿, 정말로 창피스러운 그림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창피스러운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것도 가슴이 아팠지만, 마음을 더 무겁게 한 건 샬럿이 자기 스스로 선택한 운명 속에서 웬만큼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181쪽) 
<BR>
&nbsp;&nbsp; 엘리자베스는 그 두 사람이 애정 없이, 조건에 따라 선택한 결혼이기에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을 내리고 있다. 리지는 콜린스 씨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그의 청혼을 단호히 거절하는데, 그에게는 조금도 애정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애정 없는 결혼도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리지는 회의적이다.
<BR>
&nbsp;&nbsp; 두 번째는 한 때 리지도 호감을 가졌던 민병대의 장교, 위컴과 그를 따라 다른 지방의 친척집으로 갔다가 결국 위컴과 함께 가출하여 베넷 집안을 근심과 걱정 속에 몰아넣었던 동생 라디아와의 결혼에 대해서도 역시 부정적인데, 위컴이라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고, 리디아는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도 없을뿐더러 사랑에 눈이 멀어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당시에는 가문의 허락 없는 결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집안의 망신을 막기 위해서 그나마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결혼 생활도 리지가 보기에는 행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생활이 된다. 
<BR>
&nbsp; &nbsp;“정말 결혼을 하게 되다니!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이따위 일에 우리가 감사해야 하니 말이야. 행복할 가망이 거의 없는데도 결혼해야 하고, 남자의 성격이 형편없는데도 우린 기뻐해야 한다는 거지! 에이, 리디아 계집애!”(417쪽) 
&nbsp; &nbsp;불쌍한 리디아의 처지는 그야말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만 했다. 그녀는 그렇게 느꼈다. 비록 앞을 내다보면 당연히 동생에게서 정상적인 행복도 세속적인 번영도 기대할 수가 없었지만, 단 두 시간 전에 자신들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돌이켜보면, 그나마 이렇게라도 된 것이 어디냐고 감지덕지하는 기분이었다. (421쪽) 
&nbsp;&nbsp;&nbsp;반대로 이어지는 두 번의 결혼은 여러 번의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지지만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먼저 옆집에 살았던 빙리 씨와 천사 같은 리지의 언니 제인과의 결혼은 두 사람이 현실적인 근거에 기반을 둔 사랑을 하고 있고, 두 사람의 성품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BR>
&nbsp; &nbsp;엘리자베스는 그가 사랑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에 대한 그의 온갖 기대가 튼튼하고&nbsp; 현실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인의 탁월한 이해심, 탁월이라는 말로는 모자랄 성품, 그리고 그녀와 빙리 사이의 감정과 취향이 전반적으로 비슷하다는 점 등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76쪽) 
<BR>
&nbsp;&nbsp;&nbsp;나머지 한 번의 결혼은 엘리자베스 자신과 다아시 씨와의 결혼인데, 이 둘의 결혼은 나무랄 데 없이 이상적이고 훌륭한 것이라 더 이상의 설명을 불필요한 듯하다. 
<BR>
&nbsp;&nbsp;&nbsp;애정 없이 조건을 보고 결혼하는 현실파나 애정에만 목을 매는 낭만파 모두를 비판적으로 보았던 제인 오스틴. 현실에서의 제인 오스틴은 과연 ‘다아시’ 씨를 만날 수 없었던 것일까? 샬럿이나 리디아와 같이 불행이 뻔히 보이는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독신으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편견’에 사로잡힌 느낌이지만 오스틴이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었다면 200년이나 더 지난 후, 그가 살았던 땅의 반대편에서까지 읽히는 이런 소설은 아마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3/68/cover150/893746088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882</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교육공화국에서의 새로운 학습 방법 안내서 - [언어사중주]</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28887</link><pubDate>Sun, 05 Sep 2004 01: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288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92773&TPaperId=52888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0/37/coveroff/89101004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92773&TPaperId=5288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언어사중주</a><br/>김재준 외 지음 / 박영사 / 2004년 07월<br/></td></tr></table><br/>&nbsp;&nbsp; '입시대한민국'답게 서점가에는 대입성공수기나 '공부 방법'에 관한 책은 굳이 입시철이 아니어도 넘쳐난다. 그러나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런 책은 늘 공부로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보통 학생들'에게 소박한 꿈을 주는 미덕에도 불구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성공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책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쓰여진 것도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개인의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공부 방법'에 관한 책은,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보편적인 방법으로 소개하거나 합리적인 근거나 과학적인 검증 없이 '성공의 신화'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뭔가 특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이 특별한 경험이 보편적인 방법으로 소개되는 것이 현실이다. <BR>&nbsp; <BR>&nbsp;&nbsp; 얼마 전에 우연히 대학교수들이 언어와 창의성을 주제로 고등학생을 위한 책을 냈다는 광고를 보고 망설이다가 책을 사서 보았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입시 관련 책과는 무엇인가 다르겠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는데, 대학교수들이 고등학생을 위한 책을 썼다는 점과, 수학을 논리적 언어라며 언어의 영역으로 포함시킨 것이 참신한 발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내 느낌을 미리 말한다면, 이 책은 지금까지의 책들과는 분명히 다른 참신한 점을 보여주고 있으나 실제로 교육현장에,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겠다. 
&nbsp;&nbsp; 이 책은 읽기와 토론(주경철), 영어(김종면), 수학=생각하기(김재준), 글짓기(신광현)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일단 나는 창의성과 언어 능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책들과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공부하는 방법으로써 제시하는 이 책의 일관된 전제는 '스스로 생각하기'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는데, 이 책을 통해서 고등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고 싶다. 
&nbsp; &nbsp;그러나 교수와 교사간의 인식의 차이는 이렇게도 큰 것일까? 교사인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이 주요 독자로 삼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얼마나 이해하며 읽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학습 방법은 현재 우리 나라의 고등학교 학생이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더욱 힘들 것이다. 교수님들이 생각하고 있는 고등학생은 어떤 수준의 학생들인지 잘 모르겠으나 내가 만나고 있는 대다수의 고등학생은 어려움을 느낄 것 같다. 
&nbsp;&nbsp; 예를 한 번 들어보면, 대다수의 고등학교 수준의 학생들은 생활 영어 단어 익히기(익히기), 기본 문장 읽기, 일상적인 대화 상황 듣기와 표현하기-사실, 교실에서 '표현하기'가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지는지 알 수 없지만- 정도도 힘들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영어로 사고하기, 입으로 말하기, 다양한 영어 표현 익히기, 개성 있고 세련된 표현 만들기, 영어의 강약 리듬 느끼기의 순서로 영어 학습법을 설명하고 있다. 현실은 기본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정도의 수준인데, 자기만의 개성 있는 문장 만들기를 주문하고 있으니 그 간극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nbsp;&nbsp; 이것이 같은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고 문제를 내더라도 대학 교수들은 다른 방향에서 생각을 하는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집필진의 선의(善意)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다수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읽힐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그 원인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nbsp; 이 책을 보면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런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입시 공화국', '교육 열풍'의 허울좋은 구호 속에 대한민국의 교육 분야 콘텐츠는 얼마나 살풍경한가? 이 책을 발판으로 제대로 된 학습 방법 안내책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0/37/cover150/891010040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92773</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이정도면 괜찮지</category><title>소외받은 영혼들의 친구 - [프란츠 파농]</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27829</link><pubDate>Thu, 02 Sep 2004 23: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278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4263&TPaperId=52782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4/12/coveroff/893920426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4263&TPaperId=5278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란츠 파농</a><br/>알리스 셰르키 지음, 이세욱 옮김 / 실천문학사 / 2002년 03월<br/></td></tr></table><br/>&nbsp;&nbsp; 누구 말처럼, 지금은 혁명에는 냉소적이면서도 혁명가에게는 열광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체 게바라'에서부터 시작된 이 혁명가들에 대한 열광은 그들의 실천적인 삶과는 거리를 둔 관심이라는 점에서 이미 한계점이 분명하다. 또한 독자의 현실 세계 속에서의 안온한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순진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탈출구가 없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대리만족으로 혁명가를 '영웅'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시대의&nbsp; '혁명가 읽기'는 가늠할 수 없는 유행처럼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또 그 유행이 일회적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상품'인 것 같다.<BR>&nbsp;&nbsp;&nbsp; 책 속의 혁명가들은 그들의 꿈을 실현 여부와는 상관없이 아주 멋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책 속에서 꿈을 이룬 혁명가는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혁명에 실패한 혁명가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다가 현실의 벽에 막혀 멋지게 좌절하는 인물이 된다. 책 속의 상황은 '가상'의 공간이며 멋진 인물에다가 읽는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투사해서 그와 '생각과 행동'을 함께 하다 보면 책을 읽을 때마다 책 속의 혁명가는 게임의 내가 설정해 둔 하나의 캐릭터가 되는 것 같다.
&nbsp;&nbsp; 괜히 그런 상품과 캐릭터의 이미지가 싫어서 혁명가에 관한 책을 멀리했지만, 이번에는 우연히 프란츠 파농을 읽게 되었다. 사실, 프란츠 파농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파농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조심스럽다. 파농이라는 사람이 누구냐를 말하려고 한다면 그의 다양한 모습 중에서도 '흑인', 프랑스의 '마르티니크 출생', '작가', '정신과 의사', '혁명가'일 것이다.&nbsp;<BR>&nbsp;&nbsp;&nbsp;파농은 2차 대전에 자유 프랑스를 위해 2차 대전에 참전했으며, 블리다의 정신 병원에서는 당시로서는 아주 혁명적인 정신과 치료방법이었던 '사회요법'을 실시한 정신과 의사였고,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책에서 "한 언어를 말하는 것은 한 세계와 그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다.…… 백인이 되고 싶어하는 앤틸리스 사람은 언어라는 문화적 도구를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 더욱 쉽게 스스로를 백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라며 지배자의 담론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쳐 주체의 무의식 형성에까지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는데, 이는 당시에 흑인의 문제를 흑인이 설명하려고 애썼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저작이었다.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통해서는 알제리 해방의 의미와 해방 이후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해방의 조건에서는 식민지배의 상처를 씻기 위해서 식민통치의 폭력을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선언해서 프랑스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탁월한 작가이기도 했다. <BR>&nbsp;&nbsp; 그리고 그 자신은 프랑스령 알제리의 해방을 위해서는 줄곧 프랑스와의 협상이 아니라 줄곧 무장투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으며, 실제로 튀니스에서 무장투쟁의 대오에 합류하기도 했던 전사이자 혁명가였다.<BR>&nbsp; &nbsp; 한편으로는 알제리의 독립투쟁의 과정을 자신이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일부 군인들의 태도에 실망감을 나타내며, 해방 이후의 알제리 사회의 모습을 끊임없이 모색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아프리카 순회대사 시절에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단결을 통해서 '아프리카합중국'을 꿈꾸었던 '이상주이자'이기도 하다. <BR>&nbsp; &nbsp; 이런 파농의 비타협적이고 이상적인 태도를 여러 사람들에게 비난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그의 놀라운 열정과 사심 없는 태도, 그리고 탁월한 예지력 등은 알제리 해방 운동의 정파를 초월해서 신망을 받게 된다. 그는 결국 알제리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떠났던 미국에서 삶을 마치게 되었지만-그는 유럽의 식민주의를 아주 싫어했고, 미국은 그런 유럽보다 더 심한 식민주의 정책을 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의 주검은 '해방된' 알제리-당시 무장투쟁군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에 묻히게 되었다.
&nbsp;&nbsp;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쉬운 점도 좀 남는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약점은 파농의 모습이 읽은 이에게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파농의 삶에 집중해서 읽을 수 없게 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서술자와 인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서술자의 주관적인 개입이 잦은 것 아쉽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그는 과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 후 파농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런 그렇지 않다고 나에게 말했다'는 식의 문장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또 '파농'의 행동 반경이 일생 동안 여러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데-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프랑스와 알제리 등의 지도가 책의 앞뒤에 소개되어 있지 않아 파농이 어디에서 어디로 갔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점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지적한다면, 각주의 설명이 너무 길거나 복잡해서 본문을 읽을 때의 흐름이 자주 끊어지는 단점이 있다. <BR>&nbsp; &nbsp; 그래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덜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한 인물을 역사 속에서 만났고, 책표지에 있는 그의 서늘한 눈매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4/12/cover150/8939204263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4263</link></image></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