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느티나무 서재) &gt; 기억보다 기록을</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category/321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불의에 물들지 않는 사람으로 살되, 불의한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다만 불의한 사람을 긍휼히 여겨라.[前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 이대규 교수]</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5 May 2012 12:07:09 +0900</lastBuildDate><image><title>느티나무</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83902183702004.jpg</url><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category/321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느티나무</description></image><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2012년 1-2 오늘의 교육</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72406</link><pubDate>Mon, 23 Jan 2012 00: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537240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521372&TPaperId=537240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71/25/coveroff/600052137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nbsp; 며칠 전 오늘의 교육 잡지를 받았다. 보내 주신다는 기자님의 메시지는 받았지만, 정작 받고 보니 더욱 기분이 좋다. &lt;오늘의 교육&gt;은 현직 교사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꾸린 교육공동체 벗, 이라는 단체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잡지이다. 그런데 이번 호를 받고 보니, 평소에 보던 &lt;잡지&gt; 답지 않고, 책 같다.(참고로 개인 정기 구독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nbsp;조합원으로 가입하고 활동해야 잡지와 회지를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단다.)
&nbsp;

&nbsp;&nbsp;&nbsp;이번호 특집은 교육 불가능 시대, 교사는 가능한가,라는 주제이다.&nbsp;작년에 지금까지 발행했던 이 잡지글을 묶어 펴낸 책의 제목이 '교육 불가능의 시대' 였으니 그 연장선상에서 '교사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여러 선생님들께 던지는 듯 하다.&nbsp;핵심은, 지금은 교육 불가능의 시대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교육 방식-'방식'이라는 말 속에는 지금껏 교육이라고 말할 때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개념들-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반어적인 인식이 드러나 있는 것 같다.&nbsp;

&nbsp;
&nbsp;
&nbsp;&nbsp; 앞으로 잡지는 차차 더 읽어봐야할 것 같고, 기획 기사로 &lt;교육 불가능의 시대&gt;라는 책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반응을 다룬 리뷰 두 편이 실려 있다. 그 중에 한 편, 길은 여기 있다, 라는 글이 얼마 전에 내가 쓴 글이다. 지면의 한계 탓에 앞부분의 내용이 좀 잘려나가 아쉽기는 했지만, 어쨌든&nbsp;인쇄되어 나온&nbsp;내 이름과 책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일은 기쁜 일이다.&nbsp;(사실, 글의 내용이야 한없이 초라한 수준인데다가, 또 혹시 그걸 읽는 사람들이 전부 교사들이라는 생각이 들면&nbsp;정말 부끄러울 따름이다.) 부끄럽다면서 또 이렇게 알라딘에 떡 하니, 자랑질을 하는 걸 보니, 참말로 사람이 아직 덜 여물었다. 갈 길이 멀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71/25/cover150/600052137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521372</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강원 인제 - 태고의 신비, 아침가리골</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179349</link><pubDate>Fri, 08 Oct 2010 22: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179349</guid><description><![CDATA[&#160;&#160; 아침가리골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160;1990년대 중반이다. 물맛 좋다는 인제 방태산 방동약수를 찾았다가 산으로 이어진 길이 궁금해 차를 몰았다. 산길은 SUV도 설설 길만큼 험했다. 마음 같아서는 돌아서고 싶었다. 그러나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싶은 호기심이 산을 넘어 계곡을 따라 가게 했다. 그렇게 20분쯤 갔을까. 홀연히 아담한 학교가 나왔다. 방동초등교 조경분교였다. 오래 전에 폐교된 곳에 화가 혼자 살고 있었다. 그때 판자로 지은 그 분교의 아담한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됐다. 적막강산의 깊은 오지에 오롯이 있는 폐교라니…. 게다가 계곡물은 어찌나 맑았던지, 그 물을 손으로 움키어 마시기도 했다. 그날 이 계곡은 나 혼자만 아는 비밀로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15년 후,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오지의 대명사였던 이곳이 KBS 예능 프로그램 &lt;1박2일&gt;에 소개된 것이다.&#160;
&#160;

숨어살기 좋은 삼둔오갈의 땅&#160;
&#160;&#160; 강원도 인제군과 홍천군 경계에 자리한 방태산에는 삼둔오갈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은 옛부터 난리를 피해 숨어들던 오지를 일컫는다. 삼둔은 월둔·달둔·살둔 등 숨어 살기 좋은 마을을 가리킨다. 오갈(오가리)은 아침가리·적가리·연가리·명지가리·곁가리 등 방태산 일대의 깊은 계곡을 가리킨다.&#160;&#160;
&#160;&#160; 아침가리골은 오가리 가운데서도 가장 길고 깊다. 이 골짜기는 아침나절에만 밭을 갈 수 있다 해서 아침가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워낙 산이 높고, 계곡이 깊은 곳에 자리해 점심 숟가락 놓기 무섭게 해가 저문다. 아침가리골로 드는 계곡도 험하기 그지없다. 까마득한 협곡에 싸인 계곡이 열 세 번을 굽이진 후에야 아침가리골에 닿는다. 계곡이 너무 험해 방동약수에서 산을 넘어가는 길을 닦아야 했다. 그렇게 들고나는 길이 험하지만 일단 계곡 안으로 들면 의외로 넓다. 마치 입구만 꽁꽁 동여매 놓은 모양이다. 이곳에 한때 20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화전민의 후예들이 이곳에서 밭을 일구고, 약초를 캐며 살았다. 그들이 모두 떠나고, 한때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한 두 가구가 다시 들어와 살고 있다.&#160;<br />
&#160;&#160;

맑은 물이 흐르는 아침가리골의 계곡. 물 속에 있는 조약돌이 선명하게 보일만큼 투명하다.&#160;<br />
&#160;
진동산채가에서 물을 건너다&#160;
&#160;&#160; 아침가리골 트레킹의 시작점은 점봉산 가는 길에 있는 진동산채가다. 이곳에서 아침가리골을 빠져나온 물과 점봉산에서 발원하는 진동계곡이 합류한다.&#160;계곡은 처음부터 망설이게 한다. 징검다리가 없어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한다. 대부분 등산화를 벗어 손에 들고 위태로운 걸음으로 계곡을 건넌다. 그러나 신발을 신고 건너는 게 정석이다. 그 이유는 계곡 트레킹을 하면서 차츰 알게 된다.&#160;&#160;
&#160;&#160; 아침가리골의 첫인상은 온순하다. 길은 낙엽송 조림지 사이로 부드럽게 나 있다. 그 길의 끝에 계곡을 막아 만든 보가 있다. 이 보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진짜 아침가리골과 만나는 것이다. 길은 계곡이 깊어질수록 조금씩 희미해진다. 그러나 계곡에서 정확히 10m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160;&#160;

정해진 길 없어 계곡을 따라 걸으면 그뿐&#160;
&#160;&#160; 아침가리골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발길 가는 데로 가면 된다. 계곡을 따라 첨벙첨벙 걸어도 되고, 숲 그늘에 숨어서 걸어도 된다. 가끔 나타나는 험한 바위와 소(沼)는 돌아가면 그만이다. 길이 끊긴다 싶으면 계곡 건너에서 길을 찾으면 된다. 중간에 깊은 소가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이 맘 놓고 건너다닐 수 있는 곳들이다.&#160;&#160;
&#160;&#160; 계곡은 단 한 번도 속 시원하게 트인 곳이 없다. 계곡이 휘어지면 하늘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품지만 착각으로 끝나고 만다. 계곡 끝에 또 장벽처럼 까마득한 협곡이 서 있다. 길은 쉼 없이 계곡을 건너다닌다. 계곡을 건너면서 길을 잃을 때가 많다. 표지기도 많지 않은데다, 그 표지기 또한 정확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트레커들은 현재의 위치를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저 물이 흘러내려오는 곳만 따라 가면 된다. 계곡이 험한 편이지만 위협적이지 않고, 길이 없는 듯하면서 분명히 길이 있는 것, 그게 아침가리골의 매력이다.&#160;&#160;
&#160;
아침가리골로 물을 보태는 작은 계곡에서 급류가 흘러내리고 있다.&#160;&#160;
아침가리골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기운이 물씬하다.&#160;&#160;

&#160;&#160; 계곡 초입에서 1시간쯤 가면 깊은 소(沼)와 마주한다. 뚝발소다. 아침가리골에서 가장 깊은 소다. 계곡 안에 지명이 존재하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 이곳도 특별한 이정표가 없다. 다만 계곡에서 보았던 곳 중에서 소가 가장 깊다면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물속에서는 쉬리와 갈겨니가 한가하게 유영을 즐긴다. 꺽지란 놈은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ᄅ’자 행보로 재빠르게 몸을 숨긴다. <br />

&#160;&#160; 뚝발소를 지나서도 계곡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길이 끊겼다는 것은 계곡을 건너간다는 의미. 그러나 징검다리가 제대로 놓인 곳은 없다. 알아서 계곡을 건너야 한다. 이 때문에 등산화가 젖는 것이 싫어 몸을 사리던 트레커들도 결국은 물에 첨벙 뛰어들어 계곡을 건너게 된다. 등산화가 물에 흠뻑 젖는 것이 거슬리지만 물을 건널 때의 시원한 기분은 놓치기 아깝다.<br />
&#160;
화전민의 고단한 삶을 느낄 수 있는 귀틀집&#160;
&#160;&#160; 뚝발소에서 1시간쯤 오르면 하늘이 조금씩 열린다. 협곡이 끝나가는 증거다. 그러나 길은 여전히 야생의 느낌이 강하다.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버들가지와 넝쿨을 헤치며 걷기도 한다. 그러다가 불쑥 시멘트 포장다리가 나타난다. 조경교다. 아침가리골 트레킹의 분기점이다. 계곡을 따라 걷는 게 좋으면 계속 계곡을 따라간다. 이제 부드러운 흙길을 걷고 싶다면 도로 위로 올라서면 된다.&#160;&#160;
&#160;&#160; 조경교를 건너면 왼쪽에 첫 번째 농가가 있다. 깊은 산 아래 자리한 전형적인 강원도 산촌집이다. 한때 버려졌던 것을 최근에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다. 조경교에서 조경분교까지는 걷기 좋은&#160;흙길이 이어진다. 1km쯤 가면 두 번째 농가가 있다.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나무를 격자모양으로 어긋 쌓고, 그 사이에 황토를 채운 귀틀집이다. 그러나 귀틀집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은 왼켠에 자리한 화장실이다. 삼각형 모양의 판자로 지은 이 건물은 자연미의 극치이자 이곳에 살던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다.&#160;
&#160;&#160; 두 번째 농가에서 500m쯤 더 가면 조경분교다. 35년 전에 폐교됐지만 건물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폐교는 아침가리골을 찾는 이들의 쉼터다. &lt;1박2일&gt;도 여기서 촬영했다. 부잣집 정원만한 운동장과 등걸이 굵은 전나무, 벌통 몇 개가 전부인 풍경이 쓸쓸하다. 한때 이곳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넘쳐났을 것이다. 이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160;&#160;&#160;
&#160;&#160; 조경분교에서 다리쉼을 하고 나면 이제 돌아갈 일이 남았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똑같은 거리의 길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분명히 다르다. 이제부터는 거침없이 계곡물을 따라갈 것이다. 어느 곳에서는 웃통을 훌쩍 벗고 물놀이도 즐길 것이다. 계곡 트레킹의 진정한 묘미를 즐길 시간이 된 것이다.&#160;
가는 길<br />
&#160;&#160;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이용 동홍천IC로 나온다. 인제로 가는 44번 국도를 따라 가다 철정 삼거리에서 우회전 451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홍천~상남을 잇는 31번 국도와 만난다. 상남을 지나 현리에서 우회전, 418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방동리 방태산자연휴양림 입구다. 아침가리골 초입은 진동리 방면으로 4km 더 가면 된다. 방동약수~조경분교로 가려면 방동리로 들어선다.&#160;<br />
&#160;
별미<br />
&#160;&#160; 아침가리골 초입에 있는 진동산채가(033-463-8484)는 산채비빔밥과 산채정식을 잘 한다. 산채 정식은 점봉산을 비롯해 인근에서 나는 산나물과 더덕구이, 황태구이, 계란찜 등 20여가지 반찬이 나온다. 산채가 나는 제철만 맛볼 수 있다. 반면 산채비빔밥은 언제나 맛볼 수 있다.&#160;<br />
&#160;
여행하기 좋은 시기&#160;: 봄~가을 <br />
<br />

주소&#160;: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진동1리 (지도보기)&#160;&#160;
총&#160;소요시간 : 약 6시간(왕복) 
문의 : 인제군청 문화관광과(033-460-2080)<br />
<br />

&#160;&#160; 아침가리골은 물이 많이 불면 트레킹을 나서지 않는 게 좋다. 특히, 비가 올 때는 트레킹 금물이다. 아침가리골은 숲이 우거진 곳이 많아 모자와 긴소매가 필수다. 또 계곡을 수없이 건너다녀야 하기 때문에 등산화와 옷이 젖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아침가리골 일부만 보려면 방동리에서 고개를 넘어가는 게 좋다. 단, 길이 험하기 때문에 승용차는 어렵다.&#160;

&#160;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624/글∙사진 김산환]]></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3902183596868.jpg</url><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179349</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나의 문장론(김규항)</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162822</link><pubDate>Sun, 03 Oct 2010 00: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416282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6018X&TPaperId=416282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75/17/coveroff/899176018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160;&#160;&#160;그러나 간결함, 리듬, 그리고 쉬움 같은 문장에 대한 내 모든 태도들은 오로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나는 이오덕 선생이 말씀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믿는다. 모름지기 글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글을 씀으로서 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며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다시 내 일상의 에피소드에 전적으로 반영된다. 내 삶과 내 글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br />
&#160;
B급 좌파 : 세&#160; 번째 이야기(김규항, 리더스하우스, 2010년) 19쪽&#160;
&#160;&#160; 김규항의 B급 좌파 : 세 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읽는 내내 예의 마음 속에 불편함은 그가 주로 비판하고 있는 '나쁜 사람'의 모습이 꼭 내 사는 꼴이기 때문이다.&#160;그러면서도&#160;책을 계속 그의 책을 읽는 이유는,&#160;이렇게 좌 편향된(?)-이 말을 그는 좋아할 것 같다-&#160;자극이라도 있어야&#160;그나마 양심이라도 건사하고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160;
&#160;&#160; 그의 책이 말하는 내용은 새삼스러울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겹다거나 고리타분하지는 않다. 예수전을 읽었을 때 뭔가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고,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읽었을 때는 그에게 궁금한 몇 가지가 떠올랐고, 이번에는 그 궁금함이 구체적으로 몇 가지 떠올라 메모해 두었다. 앞으로 이 책에 리뷰를 쓰게 된다면 그 질문을 중심으로 써보고 싶다.&#160;
&#160;&#160; 그건 그렇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남은 글은 다름아닌 책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나의 문장론'이었다. 그 중에서도 위의 밑줄 부분. 생각해 보면 언젠가부터 일기장 같은 알라딘에도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늘 그대로일텐데, 글로 정리하지 않으니 김규항의 지적처럼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그냥 흘러가 버린다.&#160;&#160;
&#160;&#160; 나의&#160;걱정-이대로 정체 상태가 계속된다면 교사로서의 내 미래가 없을 것 같다는 사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75/17/cover150/899176018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6018X</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 </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97248</link><pubDate>Wed, 10 Jun 2009 16: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97248</guid><description><![CDATA[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
한겨레 21, 2009,06,12&#160;
&#160;&#160; 순결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이미 많아서 누추한 말 보태기가 버겁다. 그러나 아니 할 수가 없다. 고인을 ‘미화’하지 말라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있다. 미화는, 없는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부여하는 일이지만, 고인은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마음들은 이해할 만한 마음들이다. 고인의 잘잘못을 냉철하게 따지지 않고서는 고인을 추모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일정 부분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잘못을 범했으니 무작정 감상에 젖지들 말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옳다. 그들은 늘 옳다. 그래서 싫다. 그저 내가 아는 바와 믿는 바를 쓰겠다.&#160;&#160;
&#160;&#160; 고졸 출신 변호사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정치판에 나가 자신을 내던져가며 지역구도와 싸웠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어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들과 싸웠고, 권력을 국민에게 넘겨주고 권위마저 잃어버려서는, 그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비판을 모조리 감내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자신이 지켜온 가치가 무너지자 뒷산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그렇게 살았고,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죽어야 하는지를 마침내 알게 되어 그렇게 죽었다. 나는 늘 문학은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에 맞서 ‘몰락’의 의미를 사유하는 작업이라고 믿어왔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간 노무현의 몰락이 내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문학적이다. 
&#160;&#160; 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개의 인간에게는 그의 삶을 떠받치는 척추 같은 것이 있다. 고인의 그것은 ‘깨끗함’이었을 것이다. 권력은, 한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 바로 그 척추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을 잡아들였고 가족들을 소환해 목을 졸랐다. 가족과 측근이 돈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그의 말을 나는 믿는다. 억울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목을 조였을 것이다. 억울함을 해소하려면 주변이 고통받는 것을 묵인해야만 했고, 죄책감을 덜려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진퇴양난이었을 것이다. 억울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해결하는 길은 자살뿐이라고, 5월23일 새벽에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 밤이 나는 아프다. <br />

&#160;&#160; “아마 그는 그 밤에 아무도 몰래 울곤 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말했지만/ 세상은 이제 그가 조용히 울던 그 밤을 기억하려 한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흐느껴본 자들은 안다/ 자신이 지금 울면서 배웅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울음이라는 사실을/ 이 울음으로/ 나는 지금 어딘가에서 내 눈 속을 들여다보는 자들의 밤을/ 마중 나가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고.” 시인 김경주가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 발표한 추모시 ‘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의 전반부다. 이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 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 <br />

&#160;&#160; 아마 많이들 그러했으리라. 5월23일 저녁이 되어서야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하다가 ‘누가 그를 죽였을까’로 생각이 바뀌면서였다. 비열한 권력과 그 하수인들이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러워서, 그들 밑에서 백성 노릇 하는 일이 수치스럽고 서러워서 울었다. 그날 내가 마음속으로 조문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욕할 자격이 내게 있는지 모르겠으나 무릅쓰고 말하거니와, 그날 죽은 것은 머리가 없는 이명박 정부와 영혼이 없는 검찰과 심장이 없는 언론이다. 그날 하루 동안, 나는 그들을 내 안에 잔혹하게 장사 지냈고 조문하지 않았다. 역사가 그들을 부관하고 참시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 각자가 하나씩의 정부, 하나씩의 검찰, 하나씩의 언론이 되어야만 하나. <br />

신형철 (문학평론가)
&#160;

&gt;&gt; 접힌 부분 펼치기 &gt;&gt;


    
        
            
            <h3 class="sub_title01">
            
            <h3 class="sub_title01">아마 그는 그 밤에 아무도 몰래 울곤 했을 것이다<br />
            어느 시인은 세상이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br />
            말했지만<br />
            세상은 이제 그가 조용히 울던 그 밤을 기억하려 한다<br />
            <br />
            <br />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흐느껴본 자들은 안다<br />
            자신이 지금 울면서 배웅하고 있는 것은<br />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울음이라는 사실을<br />
            이 울음으로<br />
            나는 지금 어딘가에서 내 눈 속을 들여다보는 자들의 밤을 <br />
            마중 나가고 있다고<br />
            <br />
            <br />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br />
            이 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고<br />
            <br />
            <br />
            아마 그는 자신의 그 밤을 떠나지 않기 위해<br />
            스스로 끝없는 약속을 하곤 했을 것이다<br />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br />
            나는 살았다고<br />
            세상은 마중과 배웅의 사이에 있는<br />
            무수한 주소들이었다는 사실을 <br />
            떠올리고 있다고<br />
            <br />
            <br />
            우리는 그가 조용히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br />
            흐느꼈던 그 밤을 기억해야 한다<br />
            배웅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선<br />
            입을 틀어막고 울어본 자들이<br />
            더 많이 필요한 세상에<br />
            <br />
            <br />
            그 밤을 생각하면<br />
            눈물이 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br />
            <br />
            <br />
            - 김경주<br />
            </h3>
            
            </h3>
            <!--bodyend-->
        
    

&lt;&lt; 펼친 부분 접기 &lt;&lt;

<br />

]]></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우리반 일기장] 사랑니를 뽑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17577</link><pubDate>Fri, 01 May 2009 09: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17577</guid><description><![CDATA[2009.04.29&#160; OOO&#160;
&#160;&#160; 얼마만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오랜 만에 일기를&#160;다시 쓰게 되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매일 일기를 써서 하루하루 일기 쓰는 것이 고통이였는데 이렇게 오랜 만에 쓰니까 은근히 일기 쓰는 날이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것 같다. 한 달 동안의 기분 같은 것도 정리가 조금 되는 것도 같고 말이다.&#160;&#160;
&#160;&#160; 나는 어제 오늘 이틀 동안 보충수업에 참여하지 못 하였다. 어제는 사랑니를 뽑으러 가서이고, 오늘은 어제 뽑은 사랑니가 잘못되었나 검사하고 소독하러 갔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주는 사랑니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거 같다. 어제 사랑니를 뽑을 때는 알게 모르게 참 무서웠었다. 그리고 뽑고 나서도 좀 많이 아팠다. 그리고 지금도 쪼끔 아프다. 어제 사랑니를 뽑고 느낀 기분은... 음... 차마 내 손으로 뽑기는 두렵고 무서웠지만 막상 뽑고 나니깐 일단&#160; 지금까지 걱정하던 고민거리가 하나 없어진 기분!&#160;&#160;
&#160;&#160; 또 다른 사랑니가 나기 전까지는 맘이 좀 편할 거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 신체의 일부를 뽑아갔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맘이 이상하고 쫌 그렇다. 그냥... 그리고 어제 사랑니를 뽑으면서 느꼈다. 우리 인생에도 사랑니가 난다는 것을. 계속 생각하면 아픈데 차마 내 손으로 정리하기는 무섭고 하기 싫은 거... 아무튼 그런 거...ㅋㅋ&#160;&#160;
&#160;&#160; 그리고 나한테도 그런 게 있었던 거 같다. 언제부터인가는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일이 막 꼬여 갔다. 그리고 거기에 대하여 고민하고 생각한 시간이 너무 지나쳤던 것 같다. 공부도 안 되고 말이다. 고민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였지만, 내 맘대로 조절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한 며칠 전에 누군가가 내 사랑니 같은 걱정거리를 단번에 뽑아 주었다. 비록 내가 의도한 것과는 많이 달랐지만.&#160;&#160;
&#160;&#160;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그래서 첨에는 기분이 쫌 많이 그랬었다. 사랑니도 뽑고 나서는 아프고 피도 많이 나고 그러나 조금 있으면 괜찮아진다. 나도 아마 그런 거 같다. 그 땐 좀 그랬지만(?) 지금은 괜찮다. 그리고 조금만 더 있으면 사랑니를 뽑아준 누구한테도 고맙다고 느낄 날이 올거다. 지금은 아니지만...&#160;&#160;
&#160;&#160; 그리고 이제 고민거리를 하나 더니까 맘도 좀 홀가분하다. 앞으로는 공부에 더 전념할 거 같다. 그러고 보니까 수능이 이제 200일도 안 남았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군. 기대 반 걱정 반인 거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내가 미래를 가정한다고 해서 그 미래가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최악의 경우로까지 가는 것을 많이 겪어 보았기 때문에...&#160;&#160;
&#160;&#160; 아무튼 오늘 일기 쓴 이후로는 새출발을 해야 하겠다. 
&#160;]]></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우리반 일기장] "thank you, 외국인"</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16765</link><pubDate>Thu, 30 Apr 2009 1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16765</guid><description><![CDATA[2009.04.22&#160; OOO&#160;
&#160;&#160; 야자를 안 하고 집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거지만 솔직히 학교에 있을 때보다는 고 3이라는 느낌이나 공부를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160;&#160;
&#160;&#160; 그런데 집으로 온 지 일주일 쯤 후인가 아무튼 화요일에 전화벨이 울렸고, 별 생각 없이 "여보세요"라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수화기에서 들리는 건 "Hello"라는 영어였다. 처음에 딱 듣는 순간 그냥 장난 전화인 줄 알고 "뭐, 임마" 이러고 끊어 버렸다.&#160;&#160;
&#160;&#160; 그런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고, 다시 "Hello"라고 상대방이 말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외국인 같았다. 그래서 나도 "Hello"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외국인은 뭐라고 막 말을 했다. 순간 당황해서&#160;걔가 뭐라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선영이라는 사람을 바꿔 달라고 하는 거 같았다. 나는 전화 잘못 걸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좀처럼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고 입도 떨어지지 않아서 그냥 "음......음......."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고 외국인은 한참 기다리더니 마치 이해한다는 듯이 "Sorry"라면서 전화를 툭 끊었다.&#160;&#160;"헐~" 어의 없고 짜증이 났다. 진짜로 다시 전화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국인이 짜증나서 전화 잘못 걸었다는 영어를 알아내서 내 책상에 적어 놓았다.&#160;
&#160; &#160;그런데 정말로 이틀 후 목요일에 전화벨이 울렸고 마침 또 내가 받았다. "여보세..." "Hello?" 또 외국인이었다. 나도 Hello라고 했고, 이번에도 역시 김선영인가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미리 적어놓았던 한 마디 말을 했다.&#160;
&#160;&#160; &#160;"You have a wrong number"&#160;&#160;
&#160;&#160; 그게 내가 한 말의 다였다. 외국인이 뭐라고 말하는지 떠들어댔는데, 또 다시 "음... 음..." 이라는 말만 했고, 당황해서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도 몰랐다. 아, 나, 진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인터넷과 사전을 뒤져서 통화시에 하는 영어 대화를 쫘악 찾고 프린터로 뽑았다.&#160;&#160;
&#160;&#160; 진짜로 다시 전화가 올 줄은 몰랐지만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전화가 왔고 이번에는 좀 더 많이 통화할 수 있었다. 뭐, 자기는 눈높이 선생님인데 중1짜리 김선영이라는 애와 하루 30분 동안 전화 수업을 한다고 했다.&#160;아무튼 외국인이 전화를 잘못 걸어서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었다.&#160;&#160;
&#160;&#160; 대화를 마치고 뭔가 그래도 뿌듯함과 성취감, 뭐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전까지 내가 몇 년 동안 했던 영어 공부가 엄청 작게 느껴졌다. 내가 해 왔던 것은 너무 형식적이고 어영부영 대충했던 공부였다. 그래서 난 진짜로 내 꿈을 위한, 나를 위한 공부를 진심으로 해야겠다는 것을 느꼈다.&#160;&#160;
&#160;&#160; 그 통화는 그동안 해이해졌던 마음을 다시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고 3 수험생 생활을 성공적으로 끝내든 성공적이지 못하게 끝내든 간에 다시 그 외국인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잘못 건 당신의 세 통의 전화 덕분에 내가 새로운 마음을 먹을 수 있었고 그 단 세 통의 통화는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160;&#160;
&#160;&#160; "&#160;Thank you, 외국인"
]]></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우리반 일기장] 거짓된 노무현, 그러나 이제는 비난하지 않는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04198</link><pubDate>Fri, 24 Apr 2009 14: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04198</guid><description><![CDATA[4월 21일 OOO&#160;
&#160;&#160; 오늘 너무나도 서둘러서 나오는 나머지 시험기간이 아니고는 언제나 들고 나왔던 신문을 들고 나오지 못했다. 습관의 동물이라서 그런가? 그 습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니 나도 모르게 답답함과 짜증이 느꼈다. 언제나 들고 나오는 신문이었는데... 내가 신문을 고등학교에 들고 와 읽기 시작하면서 변한 게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도 한쪽으로 몰려 확고하게 변해버렸다는 것이다.&#160; 비문학 독해에서 필요한 글의 구조를 파악하고, 주제를 정리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논술에 대비하리라 하던 게, 어느새 보수 우파 할배들과 똑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으니 완전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다.&#160;&#160;
&#160;&#160; 나의 관점이 변했다고 느낄 때가 언제였는가 하면&#160; 그 시초는 광우병 파동 때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전문가들이 오히려 말도 못 하고, 어리숙하고 미숙한 아이들과 사람들이 이상한 망상(미국산 소고기가 우리 머리에 구멍을 만듭니다! 하는 개소리 등등)에 사로잡혀 정권 퇴진까지 부르짖었던&#160; 촛불 부대를 보며 한심함에 분노가 일었다. 이런 내 생각에 주변 사람들은 신문이 아이를 망쳐놨다는 말만 지껄일 뿐. 그 순간이었지만, 아, 내가 아이들과 혹은 좌파적 입장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시선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160;
&#160;&#160; 아버지도 회사의 노동조합을 옹호하는 입장인데, 나의 발언(노동조합은 투쟁을 수단과 목적으로 삼고 있다.)에 신문을 보지 말라고 하셨고, 작년에는 한겨레를 찬양하던 OOO선생님이 신문으로 길러진 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려된다고 하셨으니... 휴!&#160;
&#160;&#160; 그렇게 나의 성향을 숨기고 올라온 3학년.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의 행동이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파악해 보니 '아, 나와는 반대되는 성향을 가지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2학년 때 선생님처럼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는 이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좌파니 우파니 하는 성향들은 서로 대립되어야 한다고 배워 왔으니.&#160;
&#160;&#160; 하지만 2개월 정도 지난 지금 생각에 변화가 왔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다른 성향이라는 자체만으로 대립되고 충돌해야 할 이유가 없고, 또한 서로와의 다름이 증오가 아닌 서로 다름으로 인한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점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샘이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ㅋㅋ)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 또한 꿈틀꿈틀 살아 숨쉬는 사회에 옥죄는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얼마나 다양하고 활기 넘치는 사회인데, 이것을 단지 두 부분으로만 나누려 한다는 건지... 나, 원, 참ㅋㅋ&#160;
&#160;&#160; 나의 보수적인 시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을 만나 변한 게 있다면 급진에 상대되는 보수가 아닌 다양성 위에 존재하는 한 부분으로서의 보수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160; 신선한 변화, 앞으로 남은 7개월이 기대되는 점이다.&#160;&#160;
&#160;&#160; P.S 일기의 제목이 가볍게 읽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160;OOO아, 내가 아무리 생각이 보수적이라도 기회주의자 주광수라고 하진 말아다오. 가문을 욕보이긴 싫어!]]></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삶과경제] 전교조 죽이기와 살리기 / 김기원</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02416</link><pubDate>Thu, 23 Apr 2009 16: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802416</guid><description><![CDATA[<!-- ### news option END ### --><!--ⓘ AD kisa top banner include ST --><!--ⓘ AD kisa top banner include END -->&#160;&#160;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개혁 후보가 승리했다. 참으로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린 듯하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완 달리 이번엔 전교조가 뒤로 빠져 있었다. 법률적 고려도 있었겠지만 전교조가 공공연하게 지지하면 득표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수구 정권이 재벌과의 유착을 숨기듯이 개혁 후보도 전교조의 지지를 자랑하기 힘들어진 셈이다. 꽤 많은 국민들이 전교조에 대해 별로 탐탁잖게 생각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br />

&#160;&#160; 여기엔 물론 거대 수구 신문들의 ‘전교조 죽이기’가 크게 작용했다. 전교조가 ‘빨갱이 교육’을 한다든가, 전교조 교사는 아이들을 공부시키지 않고 놀리기만 한다면서 국민을 세뇌해왔다. 그러나 그 탓만은 아니다. 근래 전교조 노선에도 문제가 있었다. &lt;학교 개조론&gt; 등을 집필한 이기정 교사 말대로 ‘신자유주의 교육 반대’라는 돈키호테식 목표 아래 ‘네이스 반대’ 따위의 헛발질을 계속하고 마침내 ‘교원평가 반대’로 국민과 등을 돌리는 과오까지 범했다. <br />

&#160; 하지만 전교조는 헝클어진 학교 교육에 대한 책임이 제일 작은 집단이다. 정권, 교육 관료, 언론의 책임이 훨씬 크다. 교육 현장을 바로잡으려고 온갖 희생을 무릅써온 게 전교조다. 전교조 설립 당시엔 1500여명이 해직당했고, 최근엔 학생과 학부모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을 줬다가 여러 명이 또 쫓겨났다. 전교조 활동을 위해 승진상의 불이익도 감수한다. 그냥 편하게 살 수 있는데도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 집단이 어디 또 있는가. <br />

&#160;&#160; 전교조에 돌 던지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 전교조의 희생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그래도 전교조에 더 많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런 전교조를 살려야 우리 교육이 살고 나라가 산다. 전교조의 앞날에 대해선 소속 교사들이 가장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참고삼아 몇 가지 바라는 바를 제시해보고 싶다. <br />

&#160;&#160; 첫째로 진보파의 고질병인 ‘신자유주의 타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도한 점수 경쟁이나 억압 교육은 개발독재의 유산이지 신자유주의 병폐가 아니다. 그리고 인성 개발을 도외시한 학력(성적) 만능주의는 배격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학력 신장 자체를 신자유주의라면서 무시해선 곤란하다. 시장 만능주의와 달리 시장의 긍정적 효과는 인정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학력도 암기력보다는 창의력에 중점을 두는 게 선진화다. <br />

&#160;&#160; 둘째로 촌지 사절처럼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예컨대 정부로부터 성과급은 받더라도 학생들로부터 받은 보충수업비는 전교조 차원에서 모아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건 어떨까. 그리고 불필요한 교육청 지시와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사무직원을 늘려 교사가 교육에 몰두할 수 있게끔 하는 운동을 벌이면 다른 교사들의 호응도 얻을 것이다. 정부의 쓸데없는 토건 사업비 중 일부만 돌리면 가능한 일이다. <br />

&#160;&#160; 셋째로 교원평가에 대해선 수세적 자세가 아니라 “교원평가 제대로 한번 해보자”라고 적극적 자세를 천명해야 한다. 교장에 의한 기존의 관료적 평가보다 학생과 학부모도 참여하는 평가가 더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또 이미 상당수 조합원과 일부 전교조 지부는 새로운 교원평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br />

&#160;&#160; 적어도 전교조의 참교육 정신엔 공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기에 개혁 후보가 경기도 교육감에 당선되었다. 지금부터라도 그런 초기의 자세로 돌아가 방향을 올바로 세우면 전교조는 국민에게 다시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과 나라의 미래가 밝아진다. 전교조 내부의 반성과 생산적 토론을 기대한다.&#160;
한겨레신문, 2009년 4월 23일]]></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여러분의 박수로, 제발 우리, 사람부터 살립시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239924</link><pubDate>Wed, 13 Aug 2008 14: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239924</guid><description><![CDATA[&#160;&#160; 북경 올림픽에 사람들이 시선이 가 있는 동안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박수치고, 자랑스러워하고, 금메달을 보듬는 동안 구로공단 한 구석에서는 두 사람이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br />
&#160; <br />
&#160;&#160; 사건의 발단은 몇 년 전으로 올라가고, 60일이 넘은 단식은 몇 달 전의 일이지만, 단식 중인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껏 섭취하던 효소와 소금을 끊은 것은 이번 주의 일입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파업, 단식, 일반 국민들이 듣기만 해도 고개를 돌릴만한 칙칙한 단어들은 모두 모은 사건이지만, 여기에는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생명'이 걸려있는 사건입니다.<br />
&#160; <br />
&#160;&#160; 하다하다 힘이 들었던지, 나같이 힘없고 결정권 없는 사람에게까지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얼마나 저 스스로가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또 지금의 한국의 모습이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행복도 아닙니다. 그저 예전처럼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고, 법원이 판결한 대로, 그리고 법률이 정한 대로 불법파견 문제를 해소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사소한 얘기를 하는데 생명을 걸어야 하는지도 의아한 일이지만, 과연 한국 경제처럼 이렇게 큰 규모에서 이런 작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절차가 없다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br />
<br />
&#160;&#160; 청와대, 총리실, 국회, 한나라당과 같이 국정의 총괄 조정기능들을 가지고 있는 곳 어디 한 곳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작은 일이고, 노동부나 하다못해 행정자치부나 기획재정부도 하고자 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의 수많은 국장들 아니면 담당 과장들이라도 최소한의 인도주의 정신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br />
&#160; <br />
&#160;&#160; 넓게 본다면, 기륭전자 사건은 KTX 여승무원 사건, 이랜드 사건 그리고 코스콤 사건 등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수 있고, 한국 노동정책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매우 민감하고 시급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상위 5%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은 언제라도 비정규직의 문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2008년도를 분기점으로 더욱 심각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br />
&#160; <br />
&#160;&#160; 그러나 이 문제를 다 풀고, 정책적 방향을 급선회해야 기륭전자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측은지심'이라고 부르는, 맹자가 세상이 좋아지기 위해서 출발점이라고 제시했던 바로 그런 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도 현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만족할만한 답변을 완벽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최소한 OECD 국가 중에서,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기륭전자와 같이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그렇게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회적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붙이지는 않습니다.<br />
&#160; <br />
&#160;&#160; 정치적 문제와 정책적 방향에 대해서는 훨씬 긴 시간을 가지고 사회적 논의를 해도 좋고, 스웨덴식 '사회적 대타협'이 되었든, 아니면 또 다른 그 어떤 이름을 가진 절차를 통해서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지금 한국 사회에 던져진 기륭전자 문제는, 그런 정책적 방향에 우선하여,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던져진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br />
&#160; <br />
&#160;&#160; 대통령이 되었든, 총리가 되었든, 혹은 그 어떤 장관이 되었든, 권한을 가진 누군가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나서는 것이, 가장 빠르고도 건전한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포퓰리즘이 되었든, 아니면 또 다른 인기영합책이 되었든, 일단은 사람은 살리지 않아야할까요?<br />
&#160; <br />
&#160;&#160; 관대한 8.15 대사면에 어쨌든 영어의 몸이 되었던 많은 사람이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 8.15날에 저는 기륭전자에서 열리는 조그만 간담회에 참석합니다만, 이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또 그날까지 지금 단식하시는 분들이 버틸 수 있으실지에 대해서도 자신하지 못합니다. 너무 비극적인 8.15가 아닙니까?<br />
&#160; <br />
&#160;&#160;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관대로움으로 특별사면을 혜택을 받는 이 순간에, 아무런 관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저 비정규직 절차에 대한 법적인 절차를 밟아달라는 사람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이 순간이, 저로서는 제 정신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조국의 슬픔 같습니다.<br />
&#160; <br />
&#160;&#160; 연극 &lt;피터팬&gt;에 팅거벨이 죽어가던 순간 관객들의 박수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정성과 박수가 기적을 만들 수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기륭전자의 두 여성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박수가 아닐까 합니다. 8.15를 무대로 우리가 거대한 연극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br />
&#160; <br />
&#160;&#160; 저의 둔한 머리로는, 도대체 어떻게 국민들이 박수를 쳐야 기적이 일어나게 될지, 그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금번 8.15가 '두 개의 대한민국'의 출범식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자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앞세우고 환호성을 치며, 모든 가난한 사람들과 비정규직 국민들은, 기륭전자의 부고를 받게 되는, 그런 절망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의 연극은 클라이맥스를 향해서 달리고 있고, 누군가 오늘 내일 움직이지 않는다면, 금번 8.15는 대단히 비극적인 흐름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br />
&#160; <br />
&#160;&#160; 북경 올림픽 금메달에 국민들이 보내는 박수와 지지의 딱 1/10만 기륭전자의 두 여성들에게 보내면, 우리는 기적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도 우리 안의 힘 없고 돈 없는, 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살리는 것, 그것이 '행복한 대한민국'의 첫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게 저의 개인적 믿음입니다.<br />
&#160; <br />
&#160;&#160; 여러분의 박수로, 제발 우리, 사람부터 살립시다.&#160;&#160;<br />
&#160;&#160;&#160;
&#160;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프레시안, 2008.08.13<br />
<br />
&#160;<br />
]]></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오마이뉴스에는 승주나무님의 기사가 떴군요.</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147241</link><pubDate>Fri, 20 Jun 2008 09: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147241</guid><description><![CDATA[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30316&amp;PAGE_CD=N0000&amp;BLCK_NO=3&amp;CMPT_CD=M0009&amp;NEW_GB=]]></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이명박 정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121802</link><pubDate>Tue, 03 Jun 2008 17: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2121802</guid><description><![CDATA[- 권력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160;&#160; 정부와 소위 보수세력이 사태파악을 너무나 못하고 엉뚱한 뒷북만 치고 있어 판단에 도움을 주는 조언을 하나 하고자 한다. 우선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 보수세력이 한 일부터 되돌아보라. 그리고 현재로 다시 돌아와 자신들을 보기 바란다.<br />
&#160;&#160;<br />
&#160;&#160;보수세력이 쌓은 금자탑(?)<br />
&#160;&#160;<br />
&#160;&#160; 노무현 정부 시절 보수세력의 대정부 비판 단골메뉴 중 하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수호하란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및 좌파세력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권위주의와 정경유착, 권언유착 등 정실자본주의에 익숙했던 세력이 특별히 뼈를 깎는 노력도 없이 순식간에 민주주의와 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체화시켜 버린 듯 했다.<br />
&#160;&#160;<br />
&#160;&#160; 그들은 인권에 대해서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인권 존중은 권위주의와 반비례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있어서, 또한 공동체를 꾸려나가는데 있어서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지고의 가치이기도 하다. 평생 권위주의만 보고 자란 사람이 순식간에 인권을 존중하는 인권운동가가 되기는 신의 계시를 받아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권력이 가져다주는 우월의식과 특권의식이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br />
&#160;&#160;<br />
&#160;&#160; 한국의 보수세력은 어떻게 신의 계시를 받아 다시 태어났는지 전혀 밝혀진 바 없지만 지난 10년간 순식간에 치열한 인권운동가가 되어 있었다. 이들은 북한이 주제가 되면 언제나 인권문제에 정열을 쏟는다. 보수세력에게 인권관련 교과서나 고전 등이 필독서가 되었거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특히나 아동과 장애인 등의 권리는 이들에게 인권의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지만, 신의 계시를 받았는지 순식간에 이들은 세계무대에서 인권운동가가 되어 있었다.<br />
&#160;&#160;<br />
&#160;&#160;&#160;또 있다. 정치지도자의 도덕성과 공적인 책임감, 준법정신 등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가치다. 지도자는 능력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민주사회에서 강요되지 않는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이러한 가치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상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지만 존경을 받지 못하는 정치지도자는 모래위에 지은 성에 사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능력과 운이 따르지 않으면 바로 국민들이 등을 돌리게 되어 있다.<br />
&#160;&#160;<br />
&#160;&#160;&#160;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의 보수와 보수 언론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수준의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 그리고 준법정신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위장전입, 표절, 음주운전 등의 기준에서 고위 공직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와 도덕성이 서구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구나 싶어 기뻤고,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갖고 있는 정당이, 그리고 수많은 부패로 점철되었던 보수가 지난 10년 안에 이렇게 깨끗해질 수 있었구나 싶어서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br />
&#160;&#160;<br />
&#160;&#160;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적으로 책임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가 되는 사회적 신뢰를 만든다.(이를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이라고도 한다) 앞에서 한 말 다르고 뒤에서 한 말 다르면 도대체 그 지도자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언제 생각을 바꿀지,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고는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신뢰할 수 없다.<br />
&#160;&#160;<br />
&#160; &#160;지난 10년간 한국의 보수 세력은 지도자의 신뢰성에 매우 중요한 비중을 두고, 지도자가 국내에서 한 말과 해외에서 한 말의 차이, 후보자 시절 했던 말과 당선 이후 한 말의 차이, 지지층들에게 한 말과 국민 앞에서 한 말의 차이 등을 밝혀내 지도자가 가져야 할 사회적 신뢰에 대하여 가열차게 강조해 왔다. 사회적 투명도가 높아진 사회에서 공적인 신뢰를 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터인데, 통제에 익숙한 한국의 보수가 어느덧 신뢰의 문제에 이렇게 자신을 갖게 된 것을 보고 적잖은 기우도 갖게 되었다.<br />
&#160;&#160;&#160;<br />
<br />
&#160;&#160;친박세력만 포용하면 민주주의가 완성되나?<br />
&#160;&#160;<br />
&#160; &#160;그랬던 보수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민이 들고 일어났다.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20%가 안 된다. 보수는 이상하다고 놀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 이유를 진보와 좌파세력의 준동에서 찾고 싶은 모양이다. 누가 그런 조언과 분석을 해 주는 것인지, 잃어버린 10년 동안 책사도 많이 잃어버린 모양이다.<br />
&#160;&#160;<br />
&#160; &#160;보수여, 한번 잘 생각해 보시라. 위에서 말한 네 가지에서 과거 정부보다 잘 하는 게 단 하나라도 있는지. 아니 질문이 잘 못되었다. 위에서 말한 네 가지에 대해 지금 뿌리부터 망쳐놓고 있지 않은 게 단 하나라도 있는지. 국민은 단순히 실망하고 있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와 국민들에게 반하는 정부에 분노하고 있고, 쉽게 말해 꼴도 보기 싫은 것이다.<br />
&#160;&#160;<br />
&#160;&#160;&#160;국민들은 새로운 보수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준다고 해서, 국민의 살림살이가 모두 나아질 것 같아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찾아준다고 해서, 그리고 그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지고의 가치를 찾아준다고 해서 못 미더웠지만 한번 지켜보았다. 인수위 시절은 한참 정신없이 인수인계하는 시절이고 아직 정권이 다 넘어온 것도 아니니까 조금 시원치 않아도 참아 주었다. 처음 100일은 허니문 기간이니 그래도 한 두 달은 지켜보고 싶었다.<br />
&#160;&#160;<br />
&#160; &#160;그러나 보수세력이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열을 올려 지켜야만 한다고 외쳤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불과 100일도 안 되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br />
&#160;&#160;<br />
&#160; &#160;언론은 통제되기 시작하고, 시민을 지켜야 할 경찰이 시민을 두들겨 팼다. 국민이 먹거리로 불안한데 니들은 무식하다고 깔보기 시작했고, 배후와 주동자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비밀리에 협상을 하고, 한반도를 다 파헤치는 대형공사도 은밀히 추진한다.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한다고 어린 학생도 조사하고 위협한다. 그리고 아무리 국민이 앞날을 걱정하고, 얻어터져도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는 친박세력과 영남보수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완성시킨다고 생각하고 있다.<br />
&#160;&#160;<br />
&#160; &#160;어느 순간 보수는 공정경쟁이 시장경제의 기본이 아니라 그냥 시장만 있으면 시장경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강자가 이기면 그게 경쟁의 결과고, 약자는 경쟁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나마 '약한 놈 다 죽일 걸, 한 둘이라도 건져주는 것이 시장이니 찍소리 말라'고 한다.<br />
&#160;&#160;<br />
&#160;&#160; 독점을 방지하고, 시장의 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규제와 감독 기능을 마냥 풀어주면 대기업과 재벌이 독점을 만들 것을 다 알면서도 그게 바로 '자유로운 시장경제'라고 주장한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게 바로 이러한 무정부상태의 정글에서의 경쟁이라고 주장한다.<br />
&#160;&#160;<br />
&#160;&#160;일관성이 없는 게 아니라 거짓말이 문제<br />
&#160;&#160;<br />
&#160;&#160; 순식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침을 뱉는 것을 보고 국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통제 당하기 시작했고, 무시 당하기 시작했고,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시장도 서민이 아니라 대기업을 위한 시장이 되었고, 누가 봐도 뻔한 몇 사람만 좋아지는 대형공사, 민영화를 밀실에서 그러나 무지막지하게 추진하고 있다.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수호신이라고 선전했는데, 물론 믿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파괴하니 어떤 국민이 가만히 있겠는가?<br />
&#160;&#160;<br />
&#160;&#160; 인권에 대한 자발적 존중은 바랄 수조차 없다. 증거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외국의 눈과 국제적인 인권단체의 눈이 없으면 언제라도 자국민의 인권을 짓밟을 것 같다. 지금 국가의 최고 지도자와 공권력 집행의 책임자가 인권에 관한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국민에 대해 불법적 폭력행사를 용인하는 책임자의 문책과 사과없이 인권침해에 침묵하고 있다. 이들에겐 북한의 인권만 있고 국민의 인권은 없나보다.<br />
&#160;&#160;<br />
&#160; &#160;그들이 도덕성과 청렴도의 기준을 그야말로 선진국의 수준으로 높여 놓았건만 알고 보니 그 기준에 맞는 사람들은 자신들 중에서는 정말 눈을 씻고 찾아야 할 정도다. 아예 처음부터 높이지를 말거나, 아니면 그 만큼 자신있게 스스로를 추스렸어야 했는데 정권을 잡으니 완전 안면몰수다.<br />
&#160;&#160;<br />
&#160; &#160;위장전입, 표절 정도는 '청렴'한 것으로 존경받을 만한 수준이다. 웬 의혹이 그렇게 많고, 웬 불찰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위에서 준법을 못하고 법치주의를 무시하니 국민에게 영이 서질 않는다. 존경받지 못하면 경제를 살리는 능력으로라도 승부해야 하는데, 1970년대의 능력으로 21세기 경제를 대하고 있으니 능력 발휘는커녕 모래성이 무너지고 있다.<br />
&#160;&#160;<br />
&#160; &#160;말의 앞뒤가 맞는 일관성과 신뢰의 문제는 불과 100일이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 일관성과 신뢰의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거짓말의 빈도를 줄이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즉,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속이려는 것이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인수위 때 했던 발언도 한 적이 없다느니, 무슨 말만 하면 오해라느니,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도 계속 위증만을 일삼아 결국 거짓말이 탄로났다.<br />
&#160;&#160;<br />
&#160; &#160;강경진압도 안 들키게 하면 된다. 이상하면 언론에 엠바고를 걸고, 상대가 생트집 잡는다고 한다. 괴담과 유언비어가 돌아다녀서 그런 것이고, 좌파와 배후가 준동한다는 3류 소설을 쓴다. 안 되면 다 지난 10년 동안의 무게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고 한다. 왜 그렇게 모르는 것이 많은지, 왜 이렇게 스스로의 능력을 자백해야 하는지 측은하기까지 하다.<br />
&#160;&#160;<br />
&#160; &#160;보수 신정권의 이 모든 한심함은 하나로 요약된다. 그건 바로 '아무렇게나 한다'이다. 말도 아무렇게나 했고, 분석도 아무렇게나 했고, 일도 아무렇게나 했고, 인사도 아무렇게나 했다. 이 모든 것이 권력만 있으면 가려진다고 생각한 것이다.<br />
&#160;&#160;<br />
&#160; &#160;보수언론에게도 묻고 싶다. 그들도 보수 정치세력에 속았던 것인지? 정녕 이 '아무렇게니즘'에서 가장 자유롭지 않은 세력이 누구인지? 이번 정부의 대응과 보수언론의 시대를 못 따라가는 사고를 보면서 참으로 앞날이 걱정된다. 물론 야당도 별로 희망이 없다. 보수세력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다. 
이근(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프레시안, 2008.06.03]]></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왜 ‘경제’에 표를 던지는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771891</link><pubDate>Wed, 19 Dec 2007 23: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771891</guid><description><![CDATA[<!-- AceCounter -->왜 ‘경제’에 표를 던지는가?

<br />
<br />
&#160;조계완 기자

&#160;&#160; 지난 11월26일 대통합민주신당의 김근태 공동선대위원장은 말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사건, 아들 위장취업 등 숱한 의혹에도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이 노망든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국민 노망’ 발언이다. <br />
&#160;&#160; 이명박 후보는 시종일관 40% 안팎의 지지율을 달리며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 민주개혁 세력의 무능 등 여러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 후보의 견고한 지지기반이 특정한 지역·계층·연령대를 초월하고 있고, 특히 ‘수도권 40대’가 핵심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지지율의 실체’를 둘러싼 관심이 높다. 수도권 40대라면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잘 알고 한국의 장래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어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흔히 평가받기 때문이다.&#160;<br />
&#160;&#160; 대다수 여론분석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표심을 형성하는 최대 변수가‘경제’라고 말한다. 경제 쟁점을 둘러싸고 후보들 간에 치고받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견고한 지지율의 실체는 경제라는 얘기다. 이 후보 쪽은‘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면서 일찌감치 경제 담론을 장악한 데 이어 최근‘서민의 함박웃음, 국민성공 시대’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대세를 굳히고 있다. 곽창규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부실장은“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사실만으로도 경제성장률 1%포인트 추가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br />
<br />
“과연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 고통 겪나” <br />
<br />
&#160;&#160; 물론 이번 대선에서 표심을 가르는 변수는 경제가 아니라 ‘집권세력 교체 요구’라는 주장도 있다.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관계자는 “민심은 꼭 이명박이 아니라도 누가 됐든 집권세력을 바꿔야 한다는 욕구가 큰 국면이다”고 말했다. 2004년 4월 총선 당시 한국갤럽의 ‘국민 정치의식 조사’를 보면 20·30대의 경우 민주노동당 지지도가 한나라당을 제칠 정도로 국민의 ‘정치 성향’은 왼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유권자의 의식이 완전히 바뀐 것일까? 일각에서는 “국민이, 과거에 고생한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어떤 부채감이나 의무감 때문에 김대중·노무현에게 두 번 표를 찍어줬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으로 공동체 시민으로서 어떤 책임을 다한 것이고,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사회 공동체보다는 개인적인 욕망과 이해에 따라 투표 행위를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br />
&#160;&#160;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이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DJP 지역연합으로 탄생했고, 노무현 정부는 세대 간 대결을 거쳐 탄생한 것이지 국민이 민주화 세력에 대한 어떤 책임의식 때문에 표를 찍어준 건 아니다”라며 “이런 논리는 ‘민주화는 다 지난 일이다. 부담 없이 투표하라’는 보수언론의 꼬드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노무현에 대한 등돌림만으로는 이 후보의 압도적 지지율을 설명하기 어렵다. 문국현이 도덕성을 무기로 내세우면서 ‘노무현 대안’으로 나왔지만 전혀 힘을 못 쓰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br />
&#160;&#160; 한나라당 쪽에서 외쳐온 ‘잃어버린 10년’이란 말도 경제 담론과 섞이면서 유권자들에게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김종엽 교수는 “과연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 사람들이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가”라며 “김대중 정부 때 경기부양을 통해 어느 정도 먹고살았고, 노무현 정부 때도 잠재성장률을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이 후보 쪽은‘잃어버린 10년’이란 교묘한 말을 동원해 지난 정부 동안 경제가 엉망이었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br />
&#160;&#160; 다시 돌아와, 이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의 근거가 경제(또는 ‘국민성공 시대’)라고 할 때 개별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표방하는 경제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과연 이 후보의 경제 비전인 ‘대한민국 747’(연 7% 성장·소득 4만 달러·세계 7대 부국)에 대한 지지일까. 근대화가 절박했던 60·70년대라면 몰라도 국민소득 2만달러에 이른 한국에서 이런 거시경제 성장 구호에 공감하는, 그것도 합리적인(?) 수도권 40대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 법하다. 소시민 대부분은 관심조차 없을 가능성도 높다. <br />
<br />
자기 이익 극대화만 생각 
&#160;&#160; 이 때문에 오히려 이 후보의 ‘경제’에 표를 던지는 개인들의 행동 밑바닥에는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돈벌이’가 깔려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후보한테 열광하는 ‘경제’의 실체는 ‘더 많이 성장해 다 함께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저마다 투자해놓은 아파트값이 더 오르고 주가도 올라 펀드 수익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심리가 ‘국민성공 시대’에 대한 압도적 지지율의 본질이란 것인데, 서민들까지 포함해 너나 할 것 없이 가계자산을 온통 주택이며 펀드에 넣어두고 있는 현실은 이런 해석에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곽창규 한나라당 부실장은 “(이 후보가 집권하면) 부동산 가격은 최소한 물가상승률 정도는 오르는 것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물론 한나라당이 집권해 주가를 띄우겠다는 건 아니지만 친기업적·친시장적 환경이 조성되면 자연히 기업가치가 오르고 주가와 펀드 수익률도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br />
&#160;&#160; 물론 이 후보가 한나라당의 전통적 구호인 ‘안정’을 버리고 대신 ‘성공시대’ 등 변화를 앞세워 국민한테 어필하는 측면은 있다. 한나라당 쪽은 “이 후보의 성공신화가 보여주듯 힘들어도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게 국민성공 시대의 메시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승자 독식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수성가형 성공신화는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따라서 여러 부패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끄떡없는 이유를 해명하려면 미시적 관점에서 개별 유권자들의 투표 행위를 들여다봐야 한다. <br />
<br />
&#160;&#160; 이해영 교수는 “이 후보에 대한 견고하고 높은 지지율은 정치·사회적 행동을 할 때 자기 이익의 극대화만 생각하는 ‘합리적 원숭이들’에 빗댈 수 있다. 나중에 그 기대가 정말로 실현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어떤 비합리적인 충동과 열망이 (높은 지지율에) 농축돼 있을 것”이라며 “이 후보의 부패 의혹에 대해 ‘마, 개안타’(괜찮다)는 게 영남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이 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율의 뿌리에는 개혁 피로감도 아니고, 이 후보가 땅값 하나만큼은 올려놓을 것이라는, 즉 내 부동산과 금융자산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치사한, 숨겨진 욕망구조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이번 대선은 속내를 다 알면서 온 국민이 공모하는 음침한 선거이고, 결국 이기적인 원숭이의 놀음판”이라고 규정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양극화가 만들어놓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재산증식 욕구가 이 후보에 대한 지지표로 투영되고 있으며, 각자 이명박이란 성공신화로 자신들의 욕망을 포장하고 있을 뿐이란 얘기다. <br />
<br />
이명박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 <br />
<br />
&#160;&#160; 이런 점에서 유권자들은 얄밉도록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이 후보를 둘러싼 부패 의혹들이 불거졌지만, 사람들이 ‘솔직히 지배층이고 어디고 한국 사회 곳곳이 부패해 있다는 건 다 아는데, 의혹이 사실이라해도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표심 뒤편에 모종의 ‘도덕성 봐주기’ 공모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br />
&#160;&#160; 이 후보의 ‘경제’를 보면 노동이나 서민은 뒤로 밀려나고 온통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규제를 풀고 법인세를 깎아주고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등 친기업 환경을 만들어주면 기업이 투자를 늘려 경제가 성장하고, 그래야만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득과 소비가 증가해 자영업자도 먹고살기 좋아진다는 논리다. 곽창규 한나라당 선대위 부실장은 “우리는 분배, 복지보다는 시장경쟁 탈락자들에게 재도전 기회를 한 번 더 마련해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경제가 성장해야 좋은 일자리도 늘어나고 비정규직 처우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급증과 일자리 감소 등 경제적 불안과 양극화 심화를 초래한 주체는 바로 기업과 고삐 풀린 시장이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고 해서, 또 경제가 7% 성장한다고해서 시장이 건전해지고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까? <br />
&#160;&#160; 이 후보를 지지하는 쪽은 “물론 우리도 이 후보가 비정규직 고용 안정을 보장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내 집값은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기대조차 실현되기 어려운 환상은 아닐까? 한나라당 쪽은 “‘747’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고용 창출이든 자영업자 소득 증가든 7% 성장이 기본적인 전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잠재성장률이 4%대인 경제인데 7% 성장을 약속하고, 규제를 풀면 성장률이 1%포인트 오르고, 법 지배를 확립하면 또 1%포인트 올라간다니 말이 되느냐”며 “이 후보 본인의 성공신화와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 등이 맞물려 ‘그래도 저 사람은 뭔가 할 것 같다’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br />
&#160;&#160;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이 후보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도 아니고, 대형 유통업체를 규제해 영세상인들이 먹고살게 해줄 사람도 아니다. 대중이 선택해주더라도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 후보가 7% 성장 달성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땅 파는 건설경기 부양을 통해 돈이 돌게 하는 것일 텐데 한나라당은 지금 식은땀이 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 의혹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높은 가장 큰 이유가 ‘먹고살게 해줄 후보’라면, 나중에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빠르게 레임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깨끗한 척했던 사람이 부패가 터지면 곧장 위기에 몰리듯, 단기간에 경제 살리기에 성공하지 못하면 불만이 터지면서 의외로 빨리 주저앉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br />
<br />
사람들 스스로 타협하고 있는 상황? <br />
<br />
&#160;&#160;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데만 몰두하는 경제 인간을 가리켜 ‘합리적인 바보’(rational fools)라고 말한 바 있다. 김종엽 교수는 “사람들의 투표 행위를 비합리적이라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주주의하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듯해도 사실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기 마련이다”라며 “특히 선거처럼 찍어야 할 후보군이 주어져 있고 모든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중이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상환 교수는 “사람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 기득권층의 저항을 뚫고 분배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가정하면, 비록 마땅치 않고 또 헛된 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차라리 이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개인한테 유리할 것이라고 유권자들 스스로 타협하고 있는 상황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한겨레21, 2007년12월13일 제689호var NL_ag='0'<BR>var NL_id=''<BR>var NL_mr='unknown'<BR>var NL_gd='unknown'<BR>var_NL_inc='0'<BR>var NL_loc=''<BR>var NL_qut='0'<BR>var NL_iul=''<BR> PL_sv=11 ; ]]></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이 땅의 교사는 분노를 모르는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668169</link><pubDate>Wed, 31 Oct 2007 18: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668169</guid><description><![CDATA[이 땅의 교사는 분노를 모르는가
&#160;&#160; 어린 학생들의 가슴 아픈 죽음이 있었던 학교조차도 아무 일 없었던 듯 경쟁의 일상을 보낸다. 아이들의 설렘과 열정을 용납하지 않는 어른들의 주도면밀한 노력도 바뀌지 않았다. 간간이 들리던 교사의 탄식과 자책도 바쁜 일정에 밀려났다. 눈물어린 조사를 읽던 친구와 책상에 놓인 꽃의 잔상만이 이 사회의 반성을 대신할 뿐이다. <br />

&#160;&#160; 대부분이 자신을 안정적인 직업인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땅의 교사들은 분노할 줄 모른다. 그리고 ‘교수’ 아닌 ‘교사’라는 명칭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지식인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래서 사회와도 자신과도 긴장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더욱 가혹한 경쟁구조에 내몰겠다는 유력한 대선 후보의 목소리에 이처럼 무덤덤할 수가 없다. <br />

&#160;&#160;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아주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부자를 위한 교육정책을 내놓았다. 교육현장이 계급 투쟁의 현장이고, 교육과정이란 계급 계층의 재생산을 합리화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평준화 기조를 허물고 자립형 사립고를 100개로 늘리고, 자율성의 이름으로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주겠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부자-승자 독식’ 체제를 구조화하겠다는 것이다. <br />

&#160;&#160; 교사들이 자신의 삶의 소중함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물음이다. 교사들이 만나는 아이들의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크기와 잣대가 바로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자신을 당당한 자유인으로 바라볼 때 학생들을 당당한 자유인으로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교사들은 교사회가 법제화되어 있지 못해 학교 운영상 토론에서도 주체가 되지 못한다. 교무회의에서 교장과 교감의 전달사항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 일상에 길들여진, 대부분이 자유인의 상상력을 잃어버린 존재에 머물러 있다. 기존 체제와 질서에 이처럼 순응하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자유인의 상상력과 꿈의 날개를 펴도록 돕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교사들이 학원 강사보다 못하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눈길에 순응하며 행정처리 업무에 쫓기고 있는 현실 …. 안정된 직업인으로 만족하고 있는 듯한 교사들의 자화상이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br />

&#160;&#160; 자유인이기를 스스로 거부한 교사들은 사회모순에 맞서 싸우지도 않지만 솔직하지도 않다. 20 대 80으로 양극화된 사회,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사회에서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각개약진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에서 구성원을 지배하는 것은 불안이다. 가난한 집안 자식들도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 없는 돈에 사교육비를 들여야 하는 것도 이 불안 때문인데, 교사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계층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는 듯 종용함으로써 그들이 ‘88만원 비정규직’을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젠 솔직히 말할 때가 되었다. 이 후보가 솔직했듯이 말이다. 가난한 서민일수록 로또복권에 매달리듯 엷은 가능성에 절망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해법은 다른 데 있다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계층 상승의 기회가 닫혀 있다면 그런 사회구조를 혁파하는 길밖에 없다고. 학부모의 불안을 자양분 삼아 안정된 직업인으로서 그 알량한 위치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젠 정녕 분노할 줄 아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br />

홍세화 기획위원, 한겨레신문, 2007년 10월 31일자.<br />

<!--ⓘ AD kisa banner include 시작-->]]></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호소드립니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391078</link><pubDate>Sun, 08 Jul 2007 23: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391078</guid><description><![CDATA[&quot;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호소드립니다&quot;<br />
&nbsp;&nbsp;&nbsp;<br />
&nbsp;&nbsp; 힘겹게 파업투쟁하고 있는 이랜드노동자들이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호소드립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우선 4월에 속절없이 해고된 500여명이 넘는 이랜드그룹 근무 용역노동자분들과 지금도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에 해고되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계약직 노동자분들께 함께 투쟁해서 막아내지 못한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마침내 오늘 7월 8일(일) 민주노총이 선언했던 '이랜드그룹 점포 매출 0 투쟁'이 시작됩니다.&nbsp;이 투쟁은 130억 십일조를 교회 헌금하면서도 월급 80여만원밖에 못 받는 800여명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가차없이 자르는, '골리앗' 거대 유통자본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에 대한 '다윗'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입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이 투쟁은 앉은 자리에서 주식배당금으로만 82억을 벌고도&nbsp;노동자들의 임금은 사정없이 동결하는, 자린고비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에 대한 피울음 섞인 항의입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이 투쟁은 어제까지 걱정없이 웃으며 함께 일하다가 그 빌어먹을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눈물 떨구며 떠나간 동료들을 다시 찾아오는 투쟁입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이 투쟁은 OECD 국가들 중 자살 증가율 1위, 출산율 꼴찌의 조국, 노동자에게 재앙인 나라 대한민국에서 유통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quot;살려달라!&quot;고 절절한 목소리로 외치는 투쟁입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정규직은 그림의 떡인 세상, 비정규직 차별로 가슴에 피멍이 들어도 참아야 하는 세상을 더 이상 자식들에겐 물려주지 않겠다고 작정한 못나고 평범한 엄마 아빠들의 투쟁입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이 투쟁은 무엇보다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고객들 때문에 화장실조차 제 때 못 가면서 퉁퉁 부은 발을 주무르며 자정 너머까지 일하고 그 꼭두새벽에도 귀가하면 집안일까지 해 왔던 유통서비스 여성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입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quot;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미소로 고객을 맞고 싶습니다&quot;<br />
&nbsp;&nbsp;<br />
&nbsp;&nbsp; 저희들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미소로 고객을 맞고 싶습니다. 저희들도 퇴근하고 쇼핑 가면 시민이고 소비자입니다. 근심 없이 활짝 웃으며 고객들을 맞고 싶은 마음 정말 간절합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그런데 저희들은 지금 웃을 수가 없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최소한 1000명 이상 잘려나간 동료들을 보면서 저희들은 웃음을 잃어버렸습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quot;소중한 월급 80여만원을 일한 만큼 올려달라!&quot;<br />
&nbsp;&nbsp; &quot;2년 이상 일했으면 법대로 정규직화해 달라!&quot;<br />
&nbsp;&nbsp; &quot;부당하게 해고된 동료들을 복직시켜라!&quot;<br />
&nbsp;&nbsp; &quot;더 이상 함부로 자르지 마라!&quot;<br />
&nbsp;&nbsp; &quot;강제로 용역이나 파견으로 전환하지 말라!&quot;<br />
&nbsp;&nbsp; &quot;폭력적인 인사이동을 즉각 중단하라&quot;<br />
&nbsp;&nbsp; &quot;비인간적인 모니터링을 철폐하라!&quot;<br />
&nbsp; &nbsp;<br />
&nbsp;&nbsp; 저희들의 소박한 요구에 회사는 임금동결로 답했습니다. 아예 대량해고로 소중한 저희 동료들을 잘라버렸습니다. 교회 장로가 회장인 이랜드그룹에서 교회 집사가 부당해고 되는 웃지 못 할 일도 생겼습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quot;막강한 힘을 가진 회사는 막무가내였고 우리는 더 이상 기댈 곳도 없었습니다&quot;<br />
&nbsp;&nbsp;&nbsp;<br />
&nbsp;&nbsp;&nbsp;막강한 힘을 가진 회사는 막무가내였고 우리 노동자들을 위한다는 정부도 알고 보니 우리 편이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기댈 곳도 없었습니다.<br />
&nbsp;&nbsp;<br />
&nbsp; &nbsp;저희들도 인간이기에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점거농성은 특히 저희 주부 조합원들에게는 마지막 방법이었습니다. 떨리는 심정으로 1박2일 농성하면 회사가 좀 달라지겠지 기대하고 들어온 농성이었습니다.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예상치 못한 농성이었습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결국 조합원들 모두가 분노하면서 회사가 합당한 안을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결의하면서&nbsp;장기농성으로 상황이 일변했습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여론이 들끓고 저희들의 결의도 점점 높아져가자 그제서야 그렇게 오만하던 회사도 조금 움직였습니다. 교섭을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또 동결이랍니다. &quot;노조가 임금동결에 사인할 때까지 교섭하겠다&quot;고 비아냥댑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저희는 하루 하루 피말리면서 피같은 일당(하루 임금)을 날리는 투쟁을 하고 있는데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작심하고 농성을 하고 있는데, 호의호식하고 있는 박성수 회장과 경영진은 팔짱을 끼고 &quot;해 볼 테면 해 봐라&quot;며 마지막 남은 저희들의 자존심마저 무너뜨렸습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솔직히 저희 파업 조합원들 모두 이제 '이랜드'라고 하면 신물납니다. 이랜드로 인수되기 전 까르푸, 뉴코아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최소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사람을 자르는 일은 없었습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기독경영'이라기에 믿었습니다. '윤리경영'으로 유명한 회사라 믿었습니다. &quot;인수합병 후 100% 고용안정하겠다&quot;고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대서특필한 회사이기에 정말로 믿었습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지금 저희들의 심정은 무참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이렇게 아프게 찍히다니요.<br />
&nbsp;&nbsp;<br />
&nbsp;&nbsp; 마지막 방법은 같은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는 것 외엔 없었습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그래서 저희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나섰습니다. 저희는 민주노총이 너무 고맙습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오늘 저희들은 철저하게 비폭력, 평화 기조를 유지할 겁니다. 경찰과 구사대, 설사 용역깡패가 저희들을 자극하더라도 참을 겁니다. 차라리 맞을 겁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갖은 차별과 설움을 지금까지 참아왔고 이렇게 예상조차 못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회사가 도발해서 만들어내는 몸싸움으로 일을 그르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quot;국민 여러분, 지지해 주십시오&quot;<br />
&nbsp;&nbsp;<br />
&nbsp;&nbsp; 국민 여러분, 저희 투쟁을 지지해 주십시오. 오늘 하루만큼은 인근의 홈에버, 뉴코아, 2001, 아울렛을 이용하지 말아 주십시오. 거대한 자본에 맞서 너무 힘겹게 투쟁하는 저희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혹 홈에버나 뉴코아를 찾아오신다면 투쟁하는 저희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너무나 심각하게 확산되고 심화된 비정규직 문제 이제 국민 모두가 나서서 바꿔야 합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저희들 그저 억울해서 시작한 이 투쟁 여기서 그칠 수 없습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 도와주십시오! 무릎꿇고 호소드립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br />
&nbsp;&nbsp;<br />
&nbsp;&nbsp; 더 이상 고용불안과 차별에 신음하지 않고 웃으며 고객들을 맞을 수 있도록 오늘 하루 민주노총의 홈에버, 뉴코아 '매출 0 투쟁'을 적극 지지해 주십시오.<br />
&nbsp;&nbsp;<br />
&nbsp;&nbsp; 저희들 이 투쟁 반드시 승리하고 기쁘게 활짝 웃으며 국민 여러분들과 반갑게 인사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br />
&nbsp;&nbsp;<br />
&nbsp;&nbsp;2007. 7. 8<br />
]]></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노동절'과 '근로자의 날'</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108356</link><pubDate>Tue, 01 May 2007 09: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108356</guid><description><![CDATA['노동절'과 '근로자의 날'
&nbsp;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nbsp;
&nbsp;&nbsp; 5월1일은 전세계 노동자들이 기념일로 지키는 '노동절(May Day)'이다. 1889년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서 미국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 쟁취 투쟁을 전세계 노동자들과 함께 기억하기 위해 매년 5월1일을 세계 노동자들의 기념일로 결정한 지 올해로 벌써 117주년이 됐다.
&nbsp;&nbsp; 우리나라의 노동자들 역시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23년부터 세계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절 행사를 열어왔다. 경성전차종업원회 등 직업별 노조와 소작단체 등 13개 단체, 2만여 회원을 한데 묶어 1922년에 창설된 조선노동연맹회는 1923년 5월1일 우리나라 최초로 전국 규모의 노동절 행사를 열었고 그 전통은 해방 뒤까지 계속됐다. 
현행법상 여전히 '근로자의 날'
&nbsp;&nbsp; 미군정이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불법단체로 간주하고 1946년 설립된 대한노총(총재 이승만)을 지원하기 시작한 이래 1948년부터 10년 넘는 세월동안 노동절 행사는 정치인과 자본가들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정권은 "잔인무도한 공산도당과 같은 날에 기념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날짜를 3월10일(대한노총 설립일)로 바꾸었고 박정희 군사정권은 그 명칭마저 '노동절'에서 '근로자의 날'로 바꿔버렸다.
&nbsp;&nbsp; 대한민국 정부가 그 날짜를 다시 5월1일로 되돌린 것은 1994년이었으니,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전세계의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절을 지키게 되기까지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5월1일의 명칭은 아직도 '근로자의 날'이다.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만 필요했던 박정희 정부의 개발독재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그렇게 깊다. '참여정부'가 그 작은 흔적조차 지우지 못한 데에는 우리 사회에 그릇되게 만연된 '노동'에 대한 몰이해 현상이 한 몫 했을 것이다. 방송 진행자와 아나운서들도 대부분 '노동절'이라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마당에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이유는 없다.
&nbsp;&nbsp; 노동절 행사에 수만 명의 노동자가 모이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무노조 경영'을 '일류 경영'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의가 끝난 뒤 "삼성이 무노조 경영으로 일류 기업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라고 당당하게 묻는 학생들이 거의 매번 있다. 이번 기회에 밝히자면, 무노조 경영을 통해 일류기업이 된 것이 아니라, 일류기업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한시적으로 무노조 경영이 가능한 것뿐이다. 무노조 경영 원칙은 그 회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동종 업체보다 월등히 나은 경우에만 유지될 수 있다.
'무노조경영=일류경영' 착각 언제까지 <BR><BR>&nbsp;&nbsp; 형식상 그룹에서 분리되었지만 무노조 경영이라는 전근대적 경영방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한 백화점에 노동조합이 설립됐을 때, 그 백화점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동기를 "경영진은 직원들의 자긍심에 먹칠을 했다. 경쟁업체 백화점에는 체불임금 발생이 없었지만, 우리 백화점에서는 경영 사정을 이유로 상여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던 사실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의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은 결국 다른 노동조합 활동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nbsp;&nbsp; 복수노조가 합법화되면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노동조합 활동 경험을 쌓지 못한 기업의 노사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경영계 일각에서조차 "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17번째 노동절을 맞아, 무노조 경영을 아직도 훌륭한 경영 방식인 양 착각하는 부끄러운 일이 우리 사회에서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야만의 시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85762</link><pubDate>Sat, 24 Mar 2007 22: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85762</guid><description><![CDATA[-한겨레신문, 2007년 3월 24일 &lt;사설&gt;
&nbsp;&nbsp; 내일 나라 곳곳에서 1980년대 흔하던 일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위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려는 이들을 경찰이 막으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거나, 서울 한복판에서 숨바꼭질식 시위가 펼쳐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의 대규모 집회를 경찰이 금지하기로 한 탓이다. 한-미 협상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기에 범국본도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nbsp;&nbsp; 국가인권위원회는 그제 범국본 집회를 금지하거나 원천봉쇄하지 말라고 경찰에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런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해 11월22일 집회 때처럼 무리하게 상경 시위대를 단속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심지어 인권위의 요청에 대한 경찰의 반응은 “범국본이 인권위에 준법 평화집회를 약속했다고 하지만, 인권위의 말만 믿고 실험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nbsp;&nbsp; 이런 지경에서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내세워 경찰을 비판하는 건 구차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이 나라가 경찰국가가 아닌 바에야 신성한 기본권의 보장은 경찰의 허가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의 의무다. 그래서 자유무역협정 반대집회 봉쇄의 책임은 결국 정부에 물어야 한다. 설마 경찰이 정부의 의지를 거스르면서 집회를 막고 있다고 하겠는가? 
&nbsp;&nbsp;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가 정당한지, 이런 목소리에 호응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따위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범국본이 폭력 시위를 벌일지, 평화 시위를 벌일지 예상하는 것도 나중 일이다. 과거 독재정권들은 집회를 막을 때마다, 과격한 주장으로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느니, 폭력 시위가 예상된다느니 하는 따위의 핑계를 댔다. 하지만 이런 핑계로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부에 대한 저항이 폭력적인 양상을 띤다 하더라도 일차적인 책임은 저항에 있는 게 아니라 정부에 있다. 
&nbsp;&nbsp; 요즘 시중에는 탄핵반대 대규모 집회로 힘을 얻은 노무현 정부가 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는 철저히 막는 이중성을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유무역협정에 매진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편의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이는 행위다. 정부는 범국본의 집회를 허용해야 한다. <BR><!--ⓘ AD kisa banner include 시작-->]]></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우리는 이런 세계에 살고 있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38268</link><pubDate>Thu, 11 Jan 2007 2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38268</guid><description><![CDATA[
석가 편1<BR>
&nbsp;

석가 편2<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3902183262812.jpg</url><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38268</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lt;조선&gt;, 교총은 안 보이고 전교조만 보인다? </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34458</link><pubDate>Sat, 06 Jan 2007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1034458</guid><description><![CDATA[&lt;조선&gt;, 교총은 안 보이고 전교조만 보인다? <BR>'빨치산 추모제' 인솔교사 6명 가운데 5명 교총 소속... 조선 "중요하지 않다"&nbsp;
&nbsp;&nbsp;&nbsp; 윤근혁(bulgom) 기자<BR>&nbsp;
&nbsp;<BR>&nbsp; 지난달 초 이른바 '빨치산 추종 보도'로 전북 임실 관촌중학교 재학생들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일부 신문과 정치권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통해 학생들을 '빨갱이'로 취급했다. 
&nbsp;&nbsp; "전교조 교사, 중학생 180명 데리고 '빨치산 추모제' 참석" (&lt;조선일보&gt; 2006년 12월 6일자 기사 제목) 
&nbsp;&nbsp; "전교조 소속 현직 교사가 중학생 180명을 빨치산 추모제에 참석시켰다고 한다. … 친북좌파 사상주입이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2006년 12월 6일자 한나라당 논평)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눈에는 전교조만 보이나&nbsp;<BR>&nbsp; <BR>&nbsp;&nbsp; 이처럼 일부 보수언론과 정치권의 주장은 빼닮았다. 전교조 교사가 친북좌파 사상주입을 위해 시골 학교 중학생들을 동원했다는 게 핵심 뼈대다. 하지만 &lt;조선&gt; 등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전교조 교사의 '빨치산 추종 교육'으로 몰아붙인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면 이들의 주장과 다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nbsp;&nbsp; 지난 2005년 5월 28일 열린 '남녘통일열사 추모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학생을 인솔한 교사는 6명이었다. 이들 인솔교사 가운데 전국교직원노조(아래 전교조) 소속은 사실상 단 한 명이었으며, 나머지 5명의 교사들은 모두 보수언론이 호의적인 보도태도를 보이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아래 한국교총) 소속 교사(이 가운데 한 명은 전교조와 중복 가입)였던 것으로 확인했다. 
&nbsp;&nbsp; 이에 대해 전화 인터뷰에 응한 관촌중 교사들은 모두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 학교 교무부장, 연구부장, 학생생활부장 등 한국교총 소속 5명의 학교 간부급 교사들이 학생들을 인솔했다는 것이다. 이 교사들 가운데는 전북 임실지역 한국교총 사무국장을 맡은 이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관촌중의 한 교사는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전체 교사들 가운데 한국교총 교사들이 훨씬 많았는데 마치 전교조 소속 교사 한 명이 학생들을 인솔한 것처럼 언론에 보도돼 한편으로는 안심하는 교사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nbsp;또 다른 교사도 "그날 참석 교사 5명은 학교에서 중책을 맡은 한국교총 교사들"이라며 사실을 인정하면서 "&lt;조선일보&gt;가 왜 1년 반이나 지난 일을 보도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lt;조선&gt; 기자 "나머지 교사가 교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nbsp;&nbsp; &lt;조선&gt;은 지난해 12월 6일 "전교조 교사, 중학생 180명 데리고 '빨치산 추모제'"란 제목의 보도에서 "K중학교 도덕교사 김모(48)씨는 작년 5월 28∼29일 회문산에서 열린 빨치산 추모행사인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에 학생 180여명과 함께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nbsp;&nbsp; 이 기사를 쓴 &lt;조선&gt;의 박아무개 기자는 3일 전화통화에서 '그 당시 인솔 교사 가운데 한국교총 교사가 5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물음에 "전교조 소속인 김형근 교사가 모든 것을 주도해서 그날 행사에 참가한 것이기 때문에 (동행한) 5명이 교총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 기자는 "현장에 내려가 모두 취재했고 기사에 보도된 내용이 모두 팩트"라고 덧붙였다. 
&nbsp;&nbsp; 이에 반해 김형근 교사는 "그날 행사를 내가 제안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학생들이 자체 토론을 통해 산행 일정을 잡아 결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진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은 "전교조 교사가 한 명이라도 참가하면 모두 전교조가 꾸민 일이란 논리는 언론의 공정성은 물론 정도에도 벗어난 일"이라면서 "이번 사태는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전교조를 빨치산 교육이나 하는 집단으로 매도하기 위해 짜 맞추기 한 인상이 짙다"고 강조했다. 
&nbsp;<BR>&nbsp;"그럼 경실련, 흥사단도 빨치산 숭배집단이냐?"&nbsp;&nbsp; <BR>&nbsp;문화제 주최한 곳은 장기수 모임 아닌 전북 82개 시민단체&nbsp; <BR>&nbsp;<BR>&nbsp;<BR>&nbsp;&nbsp; 지난해 12월 6일자 &lt;조선일보&gt; 보도와 달리 학생들은 2005년 5월 28일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 문화제'에만 참석했다는 게 행사에 참석한 이들의 증언이다. 다음날(2005년 5월 29일) 열린 추모제엔 전혀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날 문화제의 주최자 또한 &lt;조선&gt;이 보도한 장기수 모임인 '통일광장'이 아니라 '전북통일연대'가 주축이 된 이 지역 시민단체인 것으로 밝혀졌다. 
&nbsp;&nbsp; 이 같은 사실은 &lt;조선&gt;이 지난해 12월 6일자에 보도한 행사 사진(위 사진 참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속 현수막 글귀에는 '주최: 전북 재야 및 시민단체'라고 적혀 있다. 전북통일연대엔 이 지역 경실련과 흥사단, 여성연합, 전주YMCA 등 중도적인 시민단체를 비롯해 82개의 지역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2005년 문화제를 주최하던 당시에도 이들 단체가 소속되어 있었다.
&nbsp;&nbsp; 정관영 전북통일연대 조직부장은 "&lt;조선&gt;의 논리 대로라면 경실련이나 흥사단 YMCA도 모두 빨치산 추종 세력이 되는 것 아니냐"면서 "사실 관계에서 맞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고 밝혔다. 이어 정 조직부장은 "'빨치산 추모제'라고 보도된 행사는 29일에 열렸는데 이 자리엔 정작 관촌중 학생들이 참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nbsp;&nbsp; 학생들을 인솔한 교사들도 "&lt;조선&gt; 등이 (행사에) 참석 학생이 180명이라고 보도했지만 100명이었다"고 말했다. 80명이 더 부풀려졌다는 얘기다. / 윤근혁 기자&nbsp;&nbsp;&nbsp;<BR>&nbsp;<BR>
&nbsp;&nbsp; "조선일보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nbsp; 
&nbsp;&nbsp; 2007년 1월 6일, 오마이뉴스(윤근혁 기자)에서 가져왔습니다. ]]></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교육의 얼굴을 한 시장’ 원하는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934452</link><pubDate>Wed, 16 Aug 2006 1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934452</guid><description><![CDATA[&nbsp; 학교 위에 국가가, 국가 위에 시장이 있으니 학교는 국가정책보다 시장의 이윤 여부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해진다. 교사도 학생도 학교도 상시 구조조정의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마당에 ‘지속가능한 교육’이 발붙일 여지가 어디 있는가.
&nbsp; 교육부가 교사 성과급을 굳이 차등해서 지급하겠다는 건 긴 서사의 서장이다. 그 끝은 ‘교육의 소멸’이다. 왜 그런가? 
&nbsp; 교사의 성과를 계량화하기 위해 현재는 수업시수, 담임, 보직, 수상경력 등이 나열돼 있지만 이는 ‘미끼’일 따름이다. 곧 시행된다는 교사평가는 교장, 교감, 동료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하도록 돼 있는데 이 역시 문제가 많아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차피 교사에 대한 ‘평가’로 성과급을 ‘차등’해야겠다면 저항이 덜한 숫자로 기준을 삼을 수밖에 없다. 가장 분명한 숫자는 학생들의 학업성적이다. 즉 이 모든 혼란은 결국 ‘학교별 학생성적 평균’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이후는 뻔한 수순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미 학교를 시장화한 미국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nbsp;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부임하자마자 ‘낙오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을 시행했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쉼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목표한 학업 수준에 이르지 못한 학교는 교장·교사 해임, 학생들이 사립학교로 옮길 수 있도록 학비지급(바우처 제도), 자율경영의 차터스쿨 전환, 아예 사기업이 학교를 맡는 위탁경영 등 ‘시장화 구조조정’을 겪게 된다. 해당 학교는 망하고 교사는 학교를 떠난다. 낙오학생방지법이 시행된 후인 2003년, 5년차 교사의 46%가 학교를 떠났다. ‘퇴출’이라기보다 ‘이직’에 가깝다. 교직은 ‘더 나은 연봉’을 잡기까지의 비정규직, 혹은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추락한다. 그래도 시장주의자 눈에는 46%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니 성공으로 보인다. 
&nbsp; 더 중요한 건 다음이다. 학생들 학업성취를 측정하기 위해 객관적인 평가 기관이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걸 민간에 맡긴다. 낙오학생방지법 때문에 미국 각 주는 6년 계약에 19억달러(객관식 유형)에서 많게는 53억달러(에세이나 자유주제 글쓰기)의 돈을 써야 한다. 간접비용까지 합하면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초국적 거대기업들이 이 ‘엄청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학력평가업체를 차렸다. ‘하코트 교육평가’, ‘시티비(CTB) 맥그로 힐’, ‘리버사이드 출판사’ 등 3~5개 업체가 학력평가시험 시장의 메이저들이다. 흥미로운 건 이 중 맥그로 힐이 부시 대통령 가족과 3대에 걸친 친분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2002월 1월 〈네이션〉 보도). 그렇다면 이는 ‘시장→로비→정책’으로 이어지는 시장국가 미국의 전형적 모습이기도 한 셈이다. 가히 ‘교육의 얼굴을 한 시장’이라 할 만하다. 
&nbsp; 이쯤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2차 협상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쪽 대표가 “교육평가 시스템에 관심이 있다”고 한 말이 새삼 생생하게 들리지 않는가? 국경의 문턱을 없애면 이들 평가업체가 물밀듯 몰려들 것이다. 학교 위에 국가가, 국가 위에 시장이 있으니 학교는 국가정책보다 시장의 이윤 여부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해진다. 기업들이 학생과 교사와 학교 평가의 전권을 가지고 우리 교육을 쥐락펴락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도 학생도 학교도 상시 구조조정의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마당에 ‘지속가능한 교육’이 발붙일 여지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교육은 자연스레 소멸한다. 이것이 ‘교사 성과급 차등지급’으로 비롯되는 서사의 종막이다. 우리가 이런 세상을 원하고 있는가? 
&nbsp; 경쟁, 효율, 평가, 구조조정으로 순환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시스템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것은 약인 동시에 독인 파르마콘(pharmakon)이며 ‘비시장 시스템’인 학교에서는 단연코 독으로 작용한다. 학교는 무엇인가? 경쟁하는 곳인가, 협력하는 곳인가. 계층분리하는 곳인가, 계층화합하는 곳인가. 완벽하게 승리하는 곳인가, 실패를 통해 성숙하는 곳인가. 먼저 이런 기본들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진짜 교육 경쟁력이라 본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이석범 /소설가·서울 신원중 교사 
&nbsp;
한겨레신문, 2006년 8월 10일, [왜냐면]에서 가져왔어요.<!--ⓘ AD kisa banner include 시작-->]]></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물레방아처럼 울어본 적이 있나 </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903509</link><pubDate>Tue, 27 Jun 2006 00: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903509</guid><description><![CDATA[물레방아처럼 울어본 적이 있나 
<BR>성장에는 고통이 뒤따른다는 사실이, <BR>인간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필히 물레방아처럼 <BR>많은 눈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게는 여전히 달갑지 않지만 <BR>이제는 볼멘소리로 그냥, 예, 하게 되었습니다. <BR>그러나 가끔 저 자신에게 묻기도 합니다. <BR>정말 그렇게 울어보았나, <BR>정말 물레방아처럼 온몸으로 울어 보았나, <BR>설사 그것이 고귀한 것이 아니라 <BR>그저 나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BR>그렇게 온 몸으로... 온 몸으로....<BR><BR>- 공지영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중에서 - <BR><BR>



* 우리가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BR>&nbsp;&nbsp; 그러나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울어본 적이 있었나, 고통을 이겨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BR>&nbsp;&nbsp; 한번쯤은 나도 그렇게, 내 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물레방아처럼 온몸으로 울어보고 싶습니다. <BR>
*고도원의 아침편지(2006년 6월 24일)]]></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전교조 비판의 전제</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900171</link><pubDate>Wed, 21 Jun 2006 1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900171</guid><description><![CDATA[전교조 비판의 전제
홍세화[한겨레신문 시민편집인]
&nbsp;
&nbsp;&nbsp; 김진경 전 대통령 교육문화비서관은 “지금의 전교조는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교조가 교육 낙후 지역 학생 등 교육 소외 계층을 위해 한 게 뭐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바로 이튿날(6월16일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전교조 창립투사도 꾸짖는 오늘의 전교조”, “‘전교조가 교육 걸림돌’이라는 전교조 원조”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nbsp;&nbsp; 그 다음날 〈한겨레〉도 “전교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전교조 내부자의 잇따른 비판을 보는 심정은 서글프다”로 시작된 사설은 “‘전교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학생인가 교사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전교조로선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끝맺고 있다. 전교조가 모든 종이신문들에게 동네북이 된 형국인데, 한겨레가 여기에 가담하게 된 데는 김 전 비서관의 발언과 함께, 보직형 교장공모제가 교육 혁신위에서 부결된 것과 관련하여 ‘교장 선출 보직제와 학교자치 연대’(교선보연대)가 전교조 집행부에 그 책임을 물은 것이 배경이 되고 있다. 
&nbsp;&nbsp; 한겨레의 비판에서 벗어나는 성역은 있을 수 없다. 특히 이번처럼 전교조 내부의 노선상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를 사설로 다루고자 할 때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사설은 “전교조가 말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란 교원평가, 방과 후 학교, 차등 성과급제, 교장 공모제를 뜻하는 듯하다. 실제 전교조가 지난 12일 4대 교육현안 해결 집중 투쟁을 ‘선언’하면서 혁파대상으로 꼽았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교조의 4대 현안과제는 성과급 차등지급 저지, 표준 수업시수 법제화, 입시 중심의 방과후 학교 저지, 학교자치와 교장 선출 보직제 실현이다. 
&nbsp;&nbsp; 사설이 시사하듯이 전교조는 과연 ‘학생 중심의 헌신성’이라는 초심에서 벗어났는가? 한겨레가 나서지 않아도 전교조는 걸핏하면 사면초가에 직면한다. 그래도 암담한 교육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희망을 논하고, 참교육 수업을 연구·토론하고, 휴일을 반납하며 부모와 함께할 수 없는 아이들과 체험학습을 운영하는 교사들은 전교조 조합원들이다. 한겨레는 이 점을 놓쳐선 안 된다. 오늘 한겨레가 전교조에 제기해야 할 것은 초심에 대한 질문보다 내부 노선과 관련된 토론이다. 
&nbsp;&nbsp; 가령 김진경 전 비서관이 말하듯이 “제도가 달라진다고 해도 교육부부터 시·도 교육청, 지역 교육청, 단위학교 교장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쌓인 관료들에 의해 제도 자체가 내용적으로 변형 왜곡될 수밖에” 없는 교육 현실 앞에서 교장 공모제는 그래도 관료주의의 폐해를 효과적으로 줄이면서 교육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 아니면, 개혁의 알리바이만 제공할 것인가? 또는 현 전교조 집행부가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모두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환원시키는 신자유주의 근본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지, 그래서 결국 아무런 변화도 일궈내지 못하는 ‘수구성’으로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구호가 의도와는 달리 교사집단 이기주의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전교조를 초심을 잃은 이기주의 집단인 양 몰아간 것은 옳지 않다. 일선 현장 교사들의 형형한 눈빛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다.
2006년 6월 21일, 한겨레신문]]></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지단과 시어러, 은퇴마저 아름답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86809</link><pubDate>Mon, 29 May 2006 00: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86809</guid><description><![CDATA[지단과 시어러, 은퇴마저 아름답네<BR>
한겨레21(2006년 5월 11일) 
▣ 신윤동욱 기자

&nbsp; 
“선배 머리가 점점 지단 닮아가네.” 
‘컨추리 꽃미남’의 질투가 분명했다. 일찍이 ‘시사넌센스’를 통해 컨추리 꽃미남으로 명명한 류이근 기자가 화창한 봄날, 모처럼의 회식에서 괜스레 잠자는 선배의 머리털을 건드렸다. 뭔가 우아하게 복수를 해야 하는데 약간 생뚱맞은 말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알았니? 나랑 지단이랑 같은 날 태어났단다.” 

&nbsp; 
이주자들의 저항에 가슴아파한 지단 

정말이다. ‘본인’은 지단과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났다. 지단의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공개하면, 그날은 1972년 6월23일. 물론 프랑스와 한국의 시차를 생각하면, 반드시 같은 날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숫자로 표시되는 날짜는 똑같다. ‘네이버’ 지식인이 거짓말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그렇다. 아직도 ‘창창한’ 지단이 4월26일 은퇴를 선언했다. “독일 월드컵이 선수로서 마지막 무대”란다. 축구신사는 은퇴 이유도 신사스럽게 “레알 마드리드의 리빌딩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자신의 연봉으로 젊은 선수들을 수혈해서 지구 방위대의 면모를 되찾으라는 말씀. “청년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던 루쉰 선생의 말씀을 실천하는 결단이다. 박수칠 때 떠나는 지단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아무리 머리가 빠져도. 
&nbsp;



△&nbsp;중원의 지혜자 지단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 이주노동자의 아들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누군가 마르세유를 프랑스의 울산이라고 했던가. 이주노동자 밀집지구에서 성장한 지단은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성공한 뒤에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올해 프랑스에서 이주자들의 집단 저항이 벌어졌을 때, 지단은 “그들의 행동(방화와 파괴)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며 가슴 아파했다. 2000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 르펜이 본선에 오르자 “나는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르펜에게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고 발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단은 수줍고 겸손한 사람으로 유명해서 그의 한마디는 더욱 울림이 컸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지단이 우연히 안드레 아가시와 같은 호텔에 머물게 됐는데, 아가시를 틈틈이 지켜보았지만 수줍어서 차마 말을 걸지 못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겸손한 지단의 성격은 그라운드의 플레이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선수였지만, 그라운드의 독재가가 아니라 중원의 지휘자였다. 유벤투스 시절 스승이었던 리피 감독은 지단에 대해 “지난 20년간 최고의 선수였다”고 최고의 상찬을 했지만, 리피의 더욱 아름다운 칭찬은 “그는 언제나 프리마돈나가 아니라 팀의 일원이었다”는 말이었다. 지단은 훌륭한 선수일 뿐 아니라 좋은 남편이다. 지단이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옮긴 이유 중 하나는 향수병을 앓는 스페인 출신 아내를 위해서였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신사의 면모를 잃지 않는 지단을 프랑스인들은 ‘지주’(Zizou)라는 애칭으로 부르면서 사랑했다. 어디 프랑스인뿐이랴. 1998년, 2002년 그리고 2006년, 세계의 축구팬은 4년마다 월드컵을 통해 지단의 이마가 점점 넓어지고, 이마의 주름이 차츰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프랑스에 수줍은 지단이 있다면, 영국에는 성실한 시어러가 있다. 지난 4월에는 앨런 시어러가 은퇴를 선언했다. 1972년생 지단이 프랑스 이주민의 상징이라면, 70년생 시어러는 영국 노동계급의 대표선수처럼 느껴진다. 시어러는 94~95 시즌부터 3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유로2000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은퇴하기 전까지, 9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삼십 줄에 접어든 뒤에도 꾸준히 10골 이상, 때때로 20골 가까이를 기록하면서 녹슬지 않는 기량을 과시했다. 그는 잉글랜드의 ‘캡틴’이었고, 뉴캐슬의 영웅이었다.&nbsp; 
&nbsp;





&nbsp;
△&nbsp; 뉴캐슬의 영원한 주장 시어러.
시어러는 뉴캐슬에서 태어났고, 가족은 뉴캐슬 서포터였다. 시어러는 뉴캐슬의 유니폼을 갈망했지만, 유스팀 입단 테스트에서 떨어졌다. 소년 시어러는 좌절하지 않고 사우스햄프턴에서 축구의 꿈을 키웠고, 마침내 17살에 잉글랜드리그 사상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을 세웠다. 소년은 명문구단에 영입되는 안전한 길을 마다하고, 당시 1부리그에 갓 올라온 블랙번 로버스에 입단하는 모험을 선택했다. 시어러의 블랙번은 94~95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시어러는 같은 해 35골을 터뜨리면서 잉글랜드를 넘어 세계 정상의 스트라이커로 떠올랐다. 역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유럽 각국의 명문구단에서 영입 제의가 쏟아졌지만, 청년 시어러의 선택은 고향팀 뉴캐슬 유나이티드였다. 

‘뉴캐슬 사나이’의 변함없는 클래스 

뉴캐슬 사나이는 우승의 영예도 거액의 연봉도 마다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06년 2월 마침내 뉴캐슬 클럽 사상 최고 득점 기록을 세웠다. 통산 201골을 고향팀에 바쳤다. 뉴캐슬 사나이는 최고 기록을 바꾸고 나서야 비로소 은퇴 의사를 밝혔다. 시어러는 지난 3월 인터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도 입단하고 싶었지만, 꿈에도 그리던 고향팀 뉴캐슬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시어러는 언제나 침착한 선수, 슈팅을 남발하지 않는 선수, 팀의 대들보가 되는 선수로 유명하다. 변치 않는 클래스를 유지하는 그의 꾸준한 플레이를 보면, 성실한 노동계급의 묵묵한 일상이 주는 감동이 밀려든다. 
지단은 은퇴 이유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들어지는 나이”라고, “더 이상 축구를 즐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나도 기자생활을 이어가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더 이상(아니 한 번도) 기사쓰기를 즐기기도 어렵다. 더구나 올해는 직장생활 10년째를 맞았다. 정말 이제는 은퇴하고 싶다. “나도 은퇴할래!” 나의 투덜거림을 듣고 있던 구둘래 기자가 일갈한다. “지단만큼 벌었으면!” 팬은 스타와 함께 늙어가지만, 스타처럼 은퇴할 자유는 없다. 쳇! 
]]></description><image><url>http://img.hani.co.kr/section-kisa/2006/05/11/021119000120060511609_38_1.jpg</url><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86809</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더 많이 사랑하기 </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82051</link><pubDate>Mon, 22 May 2006 0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82051</guid><description><![CDATA[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 받는 거 그거 창피한 거 아니야.
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하는 법이야.<BR><BR><BR>-&nbsp;공지영의《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중에서 - <BR>

<BR>* 한 영화의 대사처럼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nbsp;할지라도 마음을 다해 더 많이 사랑하세요.<BR>비록 사랑 후에 남는 것이 상처투성이일지라도 덜 사랑하고 강자로 사는 삶보다는 더 아름답고 후회없는 삶이니까요. 
고도원의 아침편지(2006년 05월 20일)<BR>]]></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전태일 평전' 중에서</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9737</link><pubDate>Thu, 18 May 2006 00: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9737</guid><description><![CDATA[&nbsp;&nbsp;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런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기 중에서, 56쪽)
&nbsp;&nbsp;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이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끝없는 가난과 질병, 중노동과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평생을 통하여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밑바닥 인생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57쪽)
&nbsp;&nbsp;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nbsp;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nbsp; 인간상을 증오한다. (일기 중에서, 125쪽)]]></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지금 학교에선] 착한 '도망자'를 위한 '스승'의 다짐</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9703</link><pubDate>Wed, 17 May 2006 23: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9703</guid><description><![CDATA[착한 '도망자'를 위한 '스승'의 다짐
정순영선생님
&nbsp;&nbsp; 늦은 밤,감기에 걸려 잠을 뒤척이는 세 살배기 딸아이를 재우느라 누워 있는데 휴대전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다. 순간 '아차' 싶었다. 휴대전화 액정 화면에는 역시나 우리 반 아이,유진이의 이름이 떠 있다. 우리 반 아이 네 명에게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라는 '벌'(?)을 주고 집에 와서는 아픈 딸 아이 신경 쓰다 보니 학교 일을 '깜빡' 해버린 것이다. 
&nbsp;&nbsp; "그래, 유진이니? 공부 잘했어? 아직 학교야?" "예~ 선생님! 헤헤헤헤…." 
&nbsp;&nbsp; 유진이 혼자 소리가 아닌 합창이다. 연이어 유쾌한 웃음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터져 나온다. 담임에게 벌을 받은 아이들이 저렇게 기분이 좋을까? 나도 전화를 끊으면서 한마디 외쳤다. 
&nbsp;&nbsp; "얘들아,사랑해~." "선생님,사랑해요~." 
&nbsp;&nbsp; 여기까지만 얘기하고 보니 내가 봐도 이상한 선생과 제자들 같다. 
&nbsp;&nbsp;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오늘 전화를 건 네 명의 주인공들은 이른바 '도망자'다. 소풍가기 전 날,소풍의상 준비 목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도망을 친 것이다(사실 논리적으로 자율학습과 도망이 어울리기나 한 말인가? 하지만 자율학습에 담임의 허락이 전제되고,'자율학습감독'까지 있으니 학교에서는 통하는 말이다). 소풍을 앞두고 들뜬 아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현실'의 선생은 단지 담임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 정규수업을 다 마치고 나간 그들을 '도망자'로 선언하고 게다가 벌까지 주었다. 아이들과 얘기한 끝에 벌은 일찍 간 시간만큼 더 공부하고 가는 것으로 정했다(학교에서는 밤 11시까지 자습이 가능하다). 아이들은 늦게까지 학교에 남겨 두고 담임인 나는 제시간에 먼저 퇴근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그만 학교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것이다. 마치고 연락하라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약속을 지킨 '도망자'들은 확인 전화까지 해주었다. 정말 '착한 도망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럼 난 어떤 선생인가? 
&nbsp;&nbsp; 교단에 선 지 10년이 넘어서고 있지만,아이들과의 관계 속에 설정되어 있는 내 모습을 반추해보면 '이건 아닌데…' 할 때가 많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야'라고 강조하면서 정작 아이들의 '자율적 학습권'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교육적 신념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힘들어 하고 때로는 타협도 하는 평범한 교사이지만,그래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바로 설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아이들'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담임의 벌을 받아준 오늘의 착하고 고마운 '도망자'(?)들처럼. 
&nbsp;&nbsp;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했다. 더 이상의 '도망자'를 만들지 말자고. 이제는 내가 아이들을 지켜줘야겠다. 아이들의 권리를 하나하나 찾아 보장해 주는 것,교사의 당연한 책임이고 스승의 도리다. '감독'이 아닌 '스승'이 되자. 어디서부터,뭐부터 해야 할까? 나도 즐겁게 고민해 보리라. 아이들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므로.
부산일보, 2006년 5월 12일]]></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두발규제·체벌 반대” 동성高 오병헌군 1인시위</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3651</link><pubDate>Mon, 08 May 2006 23: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3651</guid><description><![CDATA[&nbsp;&nbsp;&nbsp;“빼앗긴 학내인권을 돌려주세요.”<BR><BR><!--imgtbl_start_1-->



<!--imgsrc_start_1--><!--imgsrc_end_1-->

<!--cap_start_1--><!--cap_end_1-->
<!--imgtbl_end_1-->&nbsp;&nbsp; 한 고교생이 두발규제, 체벌에 반대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 2004년 학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1인시위에 나서 파장을 일으켰던 강의석씨(20·당시 대광고 3년)를 연상케 한다.<BR><BR>&nbsp;&nbsp; 서울 동성고 3학년생 오병헌군(18)은 8일 등굣길 학교 앞에서 강제적인 0교시 수업, 엄격한 두발규제와 체벌 등에 반대하며 1시간가량 1인 시위를 벌였다.<BR><BR>&nbsp;&nbsp; 오군이 시위에 나선 것은 학생들에 대한 학교의 통제가 심각하다는 판단 때문.<BR><BR>&nbsp;&nbsp; 오군은 “0교시에 조금 늦거나 주번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해서 수차례 따귀를 맞는 등 비상식적 수준의 폭력행위가 벌이지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는 “두발검사에 걸리면 단체로 운동장에서 얼차려 등의 ‘제식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BR><BR>&nbsp;&nbsp; 오군은 “‘학생회장 출마 규정에 성적 제한을 두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글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학교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삭제당한 적도 있다”면서 “담임선생님이 사회과학 서적을 읽지 말도록 강요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BR><BR>&nbsp;&nbsp; 오군은 “학교 게시판이나 학생회를 통해 문제제기를 해 왔지만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다”며 “무섭지만 이대로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BR><BR>&nbsp;&nbsp; 학교측은 오군의 주장에 대해 “체벌이나 지나친 폭언은 조사를 해서 시정하겠지만 두발규정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이고 보충수업은 담임 교사의 재량에 달린 문제로 학교가 규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BR>
2006년 5월 8일, 경향신문/이윤주 기자



&nbsp;&nbsp; 학교측의 주장은 터무니 없어 보인다. 두발 규정은 학운위가 결정하지만, 저 지경에 이를 정도의 학교라는 학운위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모르긴 몰라도 학교에서 왕처럼 군림하려고 드는 교장의 충직한 '시종' 노릇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결정은 학운위에서 하니 학교는 어쩔 수 없다니? 학교에 있어 본 사람은 다 안다.&nbsp; 보충수업은 담임 재량이라 규제할 수 없다? 그런 재량권 많은 학교는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아주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진 학교인데, 왜 1인 시위까지 해서 언론에 소개까지 되었을까? (물론 담임과 아이들이 보충수업을 놓고 직접 대화를 하지만, 결정은 담임이 한다고 볼 수는 없다.&nbsp;보충수업 희망 조사서에는 분명히, 희망하지 않음도 표시되어 있는데 실제로 그런 용감한 학생은 드물다. 왜? 그래봐야 피곤해진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상황인데, 결정권은 담임에게 있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g.khan.co.kr/news/2006/05/08/6e0925a.jpg</url><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3651</link></image></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까딱하면 총으로 쏘겠다는 거야, 뭐야?</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3070</link><pubDate>Mon, 08 May 2006 02: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73070</guid><description><![CDATA[&nbsp; 윤 장관은 이날 오후 경기 분당 국군수도병원을 찾아 지난 5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 내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이전 반대를 주장하는 범대위측과의 충돌로 부상해 입원한 장병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불법 폭력시위 주동자는 공권력을 활용해 색출할 것이며 단호히 대처하겠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BR><BR>&nbsp; 윤 장관은 "폭력시위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자위 도구를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이번 일로 부상자가 발생했다"며 "장병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보호장구를 지급하는 등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BR>연합뉴스,2006년 5월 7일




&nbsp;&nbsp; 이 기사를 보고 있자니 기가 막힌다. 알라딘에서는 대체로(?)-내가 즐겨찾는 서재들만 그런가-&nbsp;'폭력 진압'을 성토하는 분위기라 그냥 눈팅만 하고 말았는데, 방금 국방부장관의&nbsp;말을 옮긴 기사를 읽으니 정말&nbsp;어이가 없다.
&nbsp;&nbsp; 이젠&nbsp;까딱하면 총으로 쏘겠다는 거야, 뭐야? 하기야 주인(=미국)에게 고용된 머슴(=한국정부)의 하수인(=장관)이라니 오죽 답답하겠냐만, 그래도 개념은 있어야지!
&nbsp; * 이러고도 우리는 같은 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언제부턴가&nbsp;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외치는 소리가&nbsp;듣기&nbsp;싫어졌다. 저 소리만 들으면 모두 집단 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과대망상증이 아닐까 싶은데. 그&nbsp;외침을 살벌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건 나만&nbsp;그런가?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04818</link><pubDate>Sat, 21 Jan 2006 11: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04818</guid><description><![CDATA['아이들과 읽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미치 엘봄, 세종서적)&nbsp;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글!
<!--StartFragment-->&nbsp;첫 번째 화요일 


내가 고통을 당하고 보니, 이전보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거야.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사랑이야 말로 가장 이성적인 행동이다. 

두 번째 화요일 


필요하면 한바탕 시원하게 울지. 하지만 그 다음에는 내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네. 

하루에 자기 연민을 느끼는 시간을 두면 얼마나 유용할까. 몇 분만 눈물을 흘리고 그날의 나머지는 즐겁게 산다면. 

세 번째 화요일 


신비롭게도 죽음에 당면해서 생각이 투명해지는 것. 
네 번째 화요일 


모두들 죽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어. 

죽음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접근해 보자구. 죽으리란 걸 안다면, 언제든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둘 수 있네. 그게 더 나아. 그렇게 되면, 사는 동안 자기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살 수 있거든. 

어떻게 죽어야 좋을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되니까. 

나무가 어떻게 변하는지, 바람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알아차린다네. 그것은 시간이 창틀을 지나치는 것을 아는 것과 비슷하지. 내 시간이 거의 끝났음을 알기에, 처음으로 자연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에 마음이 끌린다네. 
다섯 번째 화요일 


사랑이 가장 중요하네. 위대한 시인 오든이 말했듯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네.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여섯 번째 화요일 


세상 것에 매달리지 말아라, 영원한 것은 없으므로. 

감정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면, 그래서 스스로 그 안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면, 그래서 온몸이 쑥 빠져들어가 버리면, 그 때는 온전하게 그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네. 고통이 뭔지 알게 되지. 사랑이 뭔지 알게 되네. 슬픔이 뭔지 알게 되네. 그럼 그때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좋아. 난 지금껏 그 감정들을 충분히 경험했어. 이젠 그 감정을 너무도 잘 알아. 그럼 이젠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이라고 말이야. 

감정을 풀어놓고 눈물을 흘리고 충분히 느껴라. 

그녀가 원했던 것은 자기가 거기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일곱 번째 화요일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그 시절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네. 무조건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받던 그 시절로 말일세. 

(나이 드는 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구. 
여덟 번째 화요일 


물질이 사랑이나 용서, 다정함, 동료애 같은 것을 대신할 수 없는데.... 

(만족은) 자네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 

존경은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줌으로써 받기 시작하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바쳐라. 자기를 둘러싼 지역 사회에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자신을 바쳐라.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하라구. 그런 일들을 하게 되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질투심이 생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도 않게 되지. 오히려 그들에게 베풂으로써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들에 압도당할 거야. 
아홉 번째 화요일 


사랑이란 우리가 이 세상을 뜬 후에도 그대로 살아있는 법이지.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이.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땐,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애쓰네. 
열 번째 화요일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진실이라고 할 만한 몇 가지 규칙은 있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그들 사이에 닥칠지도 모른다.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가 서로 다르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야. 
열한 번째 화요일 


대개 사람들은 위협당할 때 형편없어지네. 그런데 우리 문화가 사람을 위협하거든. 

사람은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 자기만 생각하기 시작하네. 돈을 신처럼 여기기 시작하는 거야.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 줄기가 큰 것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자기가 사는 곳에서 자기의 문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해야지. 

아이 때와 죽어갈 때 외에도, 즉 그 중간 시기에도 사실 우린 누군가가 필요하네. 
열두 번째 화요일 


죽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 

화해하게. 자기 자신과 주위의 모두와... 
열세 번째 화요일 


죽어간다는 생각과 화해하는 것.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죽어가면서 평화로울 수 있다면, 마침내 진짜 어려운 것을 할 수 있겠지.

- 살아가는 것과 화해하는 것.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자기 상황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황에도 마음을 쓸 때 바로 그게 진정한 사랑이지. ]]></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재계는 인권에 관심없다고 고백하라</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04764</link><pubDate>Sat, 21 Jan 2006 06: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804764</guid><description><![CDATA[&nbsp;* 오마이뉴스(2006년 1월 20일)에서 가져왔습니다. 
<BR>
재계는 인권에 ‘관심 없다’고 고백하라 
<BR>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 
<BR>
&nbsp;&nbsp;한마디로 황당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행동계획'(이하 NAP) 권고안을 발표하자, 보수적인 언론과 재계가 똘똘 뭉쳤다.&nbsp;<BR>&nbsp; 이들은 '현 국가인권위원회 해체', 'NAP 권고안 전면 재검토', '국가인권위는 무국적 집단이며 교과서만 외우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집단', '헌법 파괴적 발상', '인권위 구성은 시민단체 출신이 장악'이라는 말들로 현란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NAP 권고안을 비판했다. 일부 언론들은 아예 NAP권고안을 발표하기도 전에 논란거리를 정리하고 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인권단체(?)를 찾기에 바빴다.&nbsp;<BR>&nbsp; 또 행정부를 책임지는 국무총리가 한 재계 단체 행사에서 한 연설에서 '권고안 내용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이행계획에 재계의 입장을 반영하겠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재계는 전면적인 국가인권위 흔들기에 성공한 셈이다.&nbsp;<BR>&nbsp; 그러나 나는 이런 재계와 일부 언론의 반응이 여전히 당황스럽다. NAP 권고안은 한마디로 국가정책 전반을 인권으로 바로 잡아 나가자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일부 언론들은 '그러니까 NAP가 교과서이고 현실을 도외시한 것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nbsp;<BR>&nbsp;&nbsp;하지만 이렇게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다. NAP는 유엔이 회원국에 대해서 인권 이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제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이행계획을 제출할 의무가 있다. 인권정책 이행계획을 수립할 주체인 정부에 대해서 인권전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NAP 권고안을 마련하는데 인권 이상의 잣대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국가가 가입·비준·동의한 국제인권규약 내용이 중심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nbsp;<BR>&nbsp; 처음에는 이런 상식이 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가에 대해서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비판의 핵심은 ‘인권적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NAP권고안의 주요 정책에 대한 내용을 곁들이며, 기득권을 누려오고 지금도 사회적인 힘의 우위에 있는 천민적인 재계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격렬한 비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직권중재 사업장의 파업권 유보 조치를 해소하고 약 84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강화하라는 내용이 재계를 분노(?)케 한 것이다. <BR><BR>재계 주장은 인권의 '인'자도 모르는 몰상식한 주장 
&nbsp; 여기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이상이자 국제적인 합의인 인권을 무시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나라 재계의 저질적인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nbsp;<BR>&nbsp; 재계는 차라리 "인권에 대한 관심도 없고 중요하다고 인식하지도 않는다"고 전제하고 오로지 경제현실론자(?)임을 고백하든지, "노태우 정권 때 가입 비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8조를 유보시켜 사실상의 노예노동을 인정해야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또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정당한 보수를 받아 생활할 권리를 규정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6조와 제8조를 이참에 유보하라고 주장했어야 한다.&nbsp;<BR>&nbsp; 유엔은 2000년부터 초국적인 기업과 기업시민단체와 더불어 '지구협약'(글로벌 컴팩트, global compact)을 본격 추진해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분야의 10대 원칙에 합의, 전 세계 기업 활동에서 이 원칙을 주된 지향으로 삼게 하고 있다.&nbsp;<BR>&nbsp;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공공성이 강한 한국전력과 토지공사만이 작년에 가입했을 뿐이다. 이는 프랑스 374개, 브라질 121개, 캐나다 27개, 영국 59개, 독일 47개, 미국 80개, 인도 101개, 멕시코 19개, 중국 49개, 태국 18개, 러시아 19개, 일본 6개 기업이 이 협약에 가입하여 인권과 노동 분야의 국제기준 및 국제규약을 지킬 것을 서약하고 자율적인 준수를 약속하고 있다.&nbsp;<BR>&nbsp;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이미 101개 기업이 이 협약에 가입하고 있는 이 때, 경쟁력 운운하며 NAP 권고안을 비판하는 재계가 과연 현재의 추세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nbsp;<BR>&nbsp; 청년 실업과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협박과 매수 그리고 노동자 파업 때마다 위장폐업 및 업무방해 명목의 고발과 소송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생존권을 짓밟았던 재계가 오히려 반성해야 하지 않는가?&nbsp;<BR>&nbsp; 70년대 전태일이 몸을 불살라 외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 기업들이 근로기준법만이라도 잘 지켰다면 생리휴가나 출산휴가 내려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태클만 걸지 않았어도 인권단체들이 이렇게 분노했을까!&nbsp;<BR>&nbsp; 재계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해체하고 이른바 덕망 있는 인사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재계가 말하는 덕망 있는 인사는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답해 봐라. 공개 검증을 해 보자! 선동도 이런 선동은 없다.&nbsp;<BR>&nbsp;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호민관으로서 어떠한 외압에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서 법에도 국가인권위원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사퇴하지 않는다고 명문화 되어 있다.&nbsp;<BR>&nbsp; 재계의 주장은 기초적인 상식도 없고 그저 주장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인권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 '노사관계'에 관여한다고 비판하고, 정치적인 공민으로서 공무원과 교사의 지위를 회복할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권고내용을 30년 전과 똑같은 이유인 안보와 질서를 이유로 반대했다.&nbsp;<BR>&nbsp; 인권의 '인'자도 모르는 몰상식한 발상이다. 이것은 '소수의 인권' 또는 '진보세력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어서 '다수의 인권'과 '보수 세력의 주장'을 무시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BR><BR>퇴행적 기득권 지키고자 인권을 속죄양으로 만들지 말라<BR>&nbsp; 인권에는 다수와 소수가 있지 않다.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있다면 '사회적 소수자'가 있을 뿐이다. 사회적으로 소수자는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권리를 실현하는데 힘이 적거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집단이나 개인이다. 힘으로 사회적 다수를 차지하는 일부 기득권층이 인권을 주장할 때 이것은 특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특권은 인권의 반대편에 있는 논리이다.&nbsp;<BR>&nbsp; 말하고 떠들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계와 일부 언론들이 NAP 권고안을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기득권만을 주장하는 것이지 국민을 위한 것 혹은 국가발전과는 무관한 것이다.&nbsp;<BR>&nbsp; 퇴행적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재계와 일부 언론들의 정치연합을 강화하기 위해 인권을 속죄양으로 만들지 말라. 차라리 "우리는 인권을 모른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잘라 말하라. 제발 인권을 갖고 편 가르기 하지 마라. 인권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키고 보장할 것인가 하는 지점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문제다.&nbsp;<BR>&nbsp;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어떠한 선진국을 지향할지, 즉 국가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고 인간으로서 존중되느냐 하는 문제를 숙고해야 할 시기다. NAP 권고안은 그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nbsp;<BR>&nbsp; 2011년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아직도 천민적 발상으로 경영하겠다는 기업은 퇴출 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더 엄밀하게 말해서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자신들의 공헌을 선전하고 비난을 모면하려는 꼼수 경영은 이제 없다. 인권이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인 21세기에 기업은 분명하게 인권에 답해야 한다. ]]></description></item><item><author>느티나무</author><category>기억보다 기록을</category><title>비겁한 사회, 비겁한 정부</title><link>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785158</link><pubDate>Fri, 16 Dec 2005 0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ppyteacher/785158</guid><description><![CDATA[한겨레신문, 홍세화 기획위원,&nbsp; 2005-12-07
&nbsp;&nbsp;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정직성에 대한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의혹 제기 여파로 사회가 시끄럽다. 그러는 사이, 비정규직 법안에 관한 토론의 목소리도, 농업개방에 따른 농민들의 절망스런 외침도 잘 들리지 않는다. 또 8·31 후속 부동산 조처도, 평택기지 문제·의료개방·교원평가제라는 중대한 현안들도 묻히고 있다. 
&nbsp;&nbsp; 민중의 생존권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들이 실종되고 파묻힐 만큼, 이 사회는 황우석 박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의 입원 사실이 언론에 크게 실리는 한편으로, 논문사진 중복 등 의혹의 실마리는 풀리는 대신 더욱 엉키고 있는데, 진실은 아직 말하지 않고 있고 또 곧 말할 태세도 아니다. 
&nbsp;&nbsp; 과학자의 자존심이 언론에 의한 검증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피디수첩 팀과 디엔에이 2차 검증을 약속하기까지, 그리고 그 약속을 파기하기까지, 언론의 장에서 벗어나 연구에 전념하지 못했는지, 연구자로서 언론 앞에서 늠름하지 않았는지 국외자로선 잘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언론이 과학자의 연구 업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의 탐사보도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가며 충분히 가능하며, 언론의 진실 추구엔 그 어떤 성역도 있어선 안 된다. 
&nbsp;&nbsp;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한 여론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치우쳐 있다. 피디수첩 팀이 취재 윤리를 어긴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실제로 그들은 사회적 왕따를 당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제기한 문제의식까지 왕따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nbsp;&nbsp; 실상 그것은 행동이 있기 전에 생각을 품은 것만으로도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앞으로 한국인을 먹여 살린다’는 생명공학 신화의 주인공에게, 그 주인공에게 환호하는 사회에, 피디수첩 팀은 감히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적어도 비겁하진 않았다. 제보자에 의해 자신에게 던져진 물음에 충실한 것으로도 그들은 이미 왕따를 당해야 할 처지에 있었다. 마침내 그들에게 과오가 있었음이 밝혀졌고 사람들은 환호하고 있다. 
&nbsp;&nbsp; 그러나 실은 놀랍지 않은가? 진실은 아직 말하고 있지 않은데, 물음 자체가 불온하므로 왕따당해야 한다니 …. 또 놀랍지 않은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명제를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 연구팀의 난자 편법 사용에 대해선 간단히 용인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것에 비해, 피디수첩에 대한 여론재판은 광고 해약사태까지 불러오고 있다. 또 놀라운 일은 사회가 이렇게 들끓으면서 극우적 양상마저 보이고 있는데, 정부가 무책임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nbsp;&nbsp; 물론 예단하여 의혹의 시각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애국주의에 눈이 멀어, 진실을 추구하려는 것 자체를 불온시하는 일은 더욱 옳지 않고 위험한 일이다. 
&nbsp;&nbsp; ‘진실만을, 오직 진실만을’ 추구해야 하는 언론의 일부가 가당찮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볼테르의 말처럼,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쳐야 빛이 난다.” 서로 다른 견해가 부딪칠 때 진실은 스스로 드러나는 법이다. 왜 그것을 기피하는가? 다수의 견해를 따르지 않는 소수를 무릎 꿇린다고 다수의 견해가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 AD kisa banner include 시작--><!--ⓘ AD kisa banner include 시작--><!--ⓘ AD kisa banner include 끝--><!--ⓘ AD kisa banner include 끝-->&nbsp;&nbsp; 그 점에서 정작 무릎 꿇은 것은 피디수첩팀이 아니라 다수 여론 앞에 비겁한 이 사회이며, 특히 정부다. 정부는 이러한 사회환경을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관철하려는 호기로 여기고 있지 않다면, 비겁하게 시간 끌기를 할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야 한다. ]]></description></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