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해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한 달 동안은 모처럼 얻은 휴가 덕분에 집에서 푹 쉬었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새봄을 위해 겨울 잠을 자는 곰처럼 집에서 책만 읽으려고 애썼는데, 정작 1월말에 결산을 해보니 어쩐지 빈약한 느낌이 든다. 작년에는 1월에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던 거 같은데...(그래놓고 뒷심이 달려서 연말까지 몇 권 읽지도 못 했는데, 올해는 어떨까?)

 

   그래도 1월엔 괜찮은 DVD를 네 편이나 봤고,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이것저것 기웃거린 책들도 좀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은 덜하다. 또 지금 읽고 있는 책도 연작이라 다 읽은 다음에 목록에 올려야겠다. 1월에 읽은 책을 보니 소설 책이 세 권, 만화가 한 권이다. 그리고 논술특강 준비로 읽었던 원자력 관련 서적이 두 권(12월에 읽은 책을 포함해서 원자력 관련 서적은 세 권이다.), 그리고 얼떨결에 사게 된 달려라, 정봉주까지! 합쳐서 모두 일곱 권을 읽었다. (지금 보니 리뷰를 썼던 건 달랑 소설만 두 권!)

 

 

 

 

 

 

 

 

 

 

 

   두근두근 내인생은 나에게 문체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소설이다. 워낙 문체에 둔한 사람인지라 처음 읽을 땐 잘 몰랐다가 리뷰 정리를 위해 슬금슬금 책을 뒤적거리다가 다시 읽으면서 보니까, 의외로 글이 좋았다. 젊은 작가의 인생에 대한 상상력도 재기발랄한 문체와 함께 빛났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잘 읽힌다.

 

   도가니는 소설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한 소설이다. 소설이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가, 소설에 작가의 신념(?)은 어떻게 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던져 주었다.(물론 내가 소설을 쓴다는 건 아니고, 그냥 독자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지영 작가가 조금 더 유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도 느낀 아쉬움을 도가니에서 비슷하게 느꼈다.(자세한 건 리뷰에 써 두었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최규석이 만화로 쓴 우화이다. 최규석은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젊은 만화가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 책은 짧은 이야기 속에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는데, 주로 우리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빗대서 풍자하고 있는 내용이다.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읽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고, 분량도 짧아서 1-2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금방 잊히는 그런 내용은 또 아니다. 두고두고 음미하거나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여전히 어려운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떠오르는  한 인물은 박정희였다. 그런데 조원장처럼 박정희도 진정성이 있었던 것일까? 이 대목에서 완전히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문둥이들의 성격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문둥이=민중, 처럼 읽혔다. 이청준의 본심은 이랬던 것일까? 아무튼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천국은 '나'에게는 '지옥'일 수 있다는 말,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내가 맡은 반 아이들에게 천국을 강요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2011년의 올해의 인물을 꼽는다면 정봉주,여야 하지 않을까? (오세훈이나 박원순이나 나경원과 경합해야 하려나?) 사실, 달려라 정봉주는 살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게 되었다. 음, 읽은 느낌은 살 생각이 없었던 것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았다. 흠, 다른 건 모르겠고, 그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 그것으로 사람들을 각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 정치인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본인에겐 슬픈 일이겠지만!)

 

   원자력, 대안은 없다는 책은 특강 준비만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내용의 방향이 문제가 아니라 내용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 특히나 한국어판 해설이나 감수를 하신 분들이 북한의 핵문제에 침묵하면서 핵발전소를 비판한다는 소리는 유치하고 황당하다. 그런 수준으로 비판론자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책의 내용은 핵발전소 강국인 프랑스의 클로드 알레그르라는 지구화학자와 도미니크 드 몽발동이라는 기자와의 인터뷰 글이다. 핵심은 핵발전소는 현존하는 에너지 생산 수단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며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도 별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논의하고 있어서 의아스러웠다.

 

   기후 변화의 유혹, 원자력도 특강 준비로 읽은 책이다. 우리나라의 젊은 학자들이 최근 부쩍 강조되고 있는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수단으로서의 원자력의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진단하는 짧은 논문 형태의 글이다. 비판의 핵심은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원자력에 대한 논의만 풍성하지 실질적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새로 짓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과는 무관하게 울진 삼척에 추가로 발전소를 짓겠다고 선언해서 큰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더욱 답답해지는 시절이다.



 
 
느티나무 2012-02-02 00:52   댓글달기 | URL
혼자 노는 밤, 잠은 덜 오고... 숙제처럼, 이달의 책읽기 목록을 올려둔다. 이대로 꾸준히 12월까지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무탈하게 한 해가 가고, 다시 새해가 오고... 다시 또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모든 게 참 좋은 시절이다.(이상한 세상만 빼고는)

꿀이 2012-02-02 21:17   댓글달기 | URL
엇,, 저랑 겹치는 책이 두 권 있어요.^^ 저도 1월 달에 최규석 우화랑 이청준 소설을 읽었거든요.

당신들의 천국은 저에게도 어려운 소설이었어요. 주제가 상당히 무겁기도 했구요! 이 책을 읽으며 박정희를 떠올리셨다니, 저도 좀 공감이 가는 부분^^;; (아마 조원장을 박정희로 생각하셨겠지요??) 저는 소록도 섬을 보며 제가 속해있는 학교라는 공간을 떠올렸어요.. 넓게 보면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두..이렇게 정리해서 페이퍼를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읽은 책 목록만 줄줄 나열해놔서..;; ㅋㅋ 1월달에 이어 2월달에도 쭈욱, 열심히 독서하고 서재에 흔적을 남기려고 해요^^ 좋은 책은 꾸준히... 추천해 주세용~ㅋㅋ

2012-02-04 2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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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4 10:22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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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6 0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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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21:48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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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동기들을 처음 만난 지가 올해로 20주년이 된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면서 정을 쌓고 있는 우리 네 명의 남자 동기들. 모두 시내 중고등학교에 교사로 발령을 받아 나름 멋지게 살고 있는 동기들이다. 만나면 늘 20년 전, 처음 만나던 그 때로 돌아가 시덥잖은 얘기로 낄낄거려도 난 이 친구들이 늘 좋다. 각자 바쁘게 살다가 이번 겨울에 서로 마음을 내서 함께 '히말라야'를 다녀오려고 준비를 했었는데,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2박 3일로 울릉도에 다녀왔다.(내년에 다시 해외여행을 추진하기로 했다.) 마침 넷 모두 울릉도는 초행길. 출발부터 설레고, 여행 내내 신났고, 돌아와서는 여운이 남는 멋진 여행이었다. 

 

 

 

 포항-울릉 쾌속선 썬플라워호

 

   저 배를 타고 울릉도에 도착했다. 별로 커보이지는 않는데 승선 정원이 920명이라고 한다. 원래는 포항에서 울릉까지 3시간 정도 걸리는데 우리가 가는 날은 파고가 높아서 4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덕분에 멀미엔 자신 있다던 김공이 배멀미로 꽤 고생했다는 후문. 미리 겁을 잔뜩 먹은 나는 멀미약을 먹고 일찍 잠들어버렸으니 무탈했다. 드디어 울릉도에 도착하니, 여기는 눈천지!

 

 

 

도동항 전경

 

    여객선이 들어오는 울릉군의 주요 항인 도동항이다. 지금 울릉도는 한 마디로 눈천지라고 할 수 있는데 항구 주변만 해도 10-20cm의 눈이 쌓여 있고 산으로 가면 1m 가 넘는 곳도 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내려온 항구의 모습이다. 울릉도에 늦게 도착했던 여객선이 다시 포항으로 떠나버린 항구는 무척 평온하고 고요하다. 이 날은 앞바다의 파고가 3m 정도였는데 울릉도의 내항은 저렇게 잔잔하다.

 

 

 

행남산책로 1

 

   행남산책로는 도동항에서 출발해서 저동항 근처까지 가는 해안산책로이다. 거대한 바위산 밑 바닷가에 한 사람이 지다나닐 정도의 좁은 길이 구불구불 나 있었다. 며칠 동안 파도가 심해서 1월 25일이 나흘만에 섬에 도착하는 배였지만, 극심한 비수기 시즌이라 함께 내린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아마 이 날은 섬 전체에 관광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을 것이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없어서 눈길에 새 발자국을 찍는 재미를 느끼며 파도소리만 귀에 담아 왔다.

 

 

 

행남산책로 2

 

   산책로는 중간중간에 해안 동굴 사이를 빠져 나가게 되어 있다.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엄청난 크기의 바윗덩어리 사이를 지나다 보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절로 든다. 이, 억만년 동안 섬을 향해 달려들었던 파도를 생각하고, 그 영겁의 시간 동안 파도를 온전히 받아들였던 섬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파도와 섬이 만나는 길이 그들의 지난한 투쟁의 시간을 떠올리게 해 준다. 부수려는 파도와 버티려는 바위산! 

 

 

 

행남산책로 3

 

   지나온 곳을 돌아보니 제법 멀리 왔다. 늦게 출발한 탓인지 벌써 산책로에는 가로등이 켜 져 있고, 눈발은 점점 굵어진다. 인적이 드문 곳에 눈은 소리 없이 내리니, 파도소리도 살짝 섬에 왔다 간다는 표시만 낸다. 고요와 평화가 함께 하는 길이다.

 

 

 

저동항 전경

 

   겨울 저동항의 모습이다. 도동항은 여객선터미널이 있어서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저동항은 사람보다 고깃배들이 주로 정박하는 곳이다. 여름이면 오징어잡이 배가 200-300척이 모여서 출항하는 곳인데, 지금은 겨울이라 대부분 출항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항구는 드문드문 갈매기들만 날고 있다. 항구 앞에 보이는 바위가 촛대봉이라고 하는데, 갈매기들도 신성하게 여겨서 저기엔 똥을 싸지 않는다고 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사실, 확인은 불가했다.)

 

 

 

울릉읍 시내 전경

 

   온통 바위덩어리 산으로 이루어진 울릉도의 중심가이다. 저곳에 주요 행정기관들이 다 모여 있고, 관광객을 위한 숙소며 편의시설 같은 것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물론 주민들이 살기 위한 가게들도 모두 저곳에 모여 있다. 현재 울릉도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은 약 8천명이라고 한다. 울릉도의 다른 마을로 이동할때는 무조건 저기 보이는 산들을 넘어가야 한다. 산 한 개 넘으면 다른 마을, 또 산을 넘어야 다른 마을이 나온다. 울릉도에 제법 넓게 평평한 곳이라고는 옛날 화산 분화구에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나리 분지 밖에 없다고 한다.

 

 

 

나리분지로 가는 길에 본 외딴집

 

   도동에서 나리분지로 올라가는 입구인 천부까지는 버스로 1시간 10분이 걸린다. 천부에서 나리분지까지 버스가 다니지만, 겨울 비수기라서 아예 운행을 멈춘 것인지 아니면 이 때가 마침 눈이 많이 내려서 못 올라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리분지까지 걸어가야 했다. 분지까지 오르는 길은 1시간 정도. 차가 다니는 넓은 길이 아니라 지름길을 택해서 오르는 길에 본 외딴집 한 채가 눈에 파묻혀 있었다. 눈은 이미 40-50cm가 쌓였는데 하늘에서는 또 눈이 내리고 외딴집에는 사람이 있는지 굴뚝으로 하얀 연기만 피어올랐다.

 

 

 

나리분지에서 바라본 울릉도의 산군(山群)

 

   나리 분지에 올라 주변 산들을 바라보니 정말 대단했다. 예전에 히말라야의 ABC에 올랐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360도 시야 전체가 눈덮힌 산으로 둘러싸여서 인간 세상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나리 분지는 눈이 거의 1m 가 쌓였다. 분지에 도착해서 이곳저곳 구경하니 점심 때가 지났는데 딱 두 군데가 있는 식당이 모두 영업을 하지 않았다. 한 곳은 아예 사람이 없고, 다른 한 곳은 밥이 없다길래... 사정 사정해서 라면이라도 얻어 먹기로 했다. (와, 찬이 없다면서 울릉도 특산 명이나물과 묵은지를 내 주셨는데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일정의 목표로 삼은 성인봉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를 못 찾아서 잠깐 헤맸는데, 그 이유는 입구에는 바람에 몰려서 거의 가슴께까지 눈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나간 발자국은 하나도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어쨌든 좀 올라가 보자고 해서 넷이서 허벅지와 허리 근처까지 쌓인 눈에 발자국을 내가면서 올라갔다. 한 300m쯤 갔을까, 눈길을 뚫고 가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작은 운동장 같은 곳을 발견하고는 모두 거기에서 아이처럼 뒹굴며 놀았다.

 

 

 

나리분지의 너와집

 

   나지분지에 살았던 사람들의 전통가옥, 너와집이다. 저 집은 1940년대에 지어진 집인데 아직까지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너와집 높이의 거의 반이 이미 눈으로 덥혀 있다. 눈길을 뚫고 들어가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택시기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몇 년 전에 이곳에 2m 50cm의 눈이 왔었다고 한다. 눈이 이미 지붕에 닿아서 집이 없어질 정도였단다.  닭이 울어서 아침인 줄 알았는데 밖을 봐도 깜깜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단다.)

 

 

 

내 친구들 <김공><장공><곽공>

 

   내 친구 김공, 언제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항상 유머러스하고 여러 방면에 재주가 많은 친구다. 특히, 해외여행에 일가견이 있으며, 인도와 중국을 사랑하는 여행 전문가이다. 늘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마인드 컨트롤에 열중하고 있다.

 

   내 친구 장공, 아직도 순수한 열정이 가득하며 가슴 속에 뜨거운 꿈을 간직하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학생들과 잘 노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부산놀이교사모임에 열성적이다.) 집안 일을 잘 하고, 박학다식하며 늘 친구들의 우스개 소리도 넉넉하게 받아주는 마음이 따뜻한 친구다. 나랑은 오랫동안 여러가지 일을 같이 해 본 사이.

 

   내 친구 곽공, 요즘도 시를 쓰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시를 쓰고 있으리라.(물어도 빙그레 웃기만 한다.) 학교에서 능력종결자이다. 모두들 이 친구를 스카웃하고 싶어서 난리다. 정작 본인은 피해다닌다.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다닌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운동 잘 하는데, 정말 가정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2012-01-29 11:46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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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9 1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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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9 15:52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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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9 1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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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1-30 08:40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근사한 여행입니다. 갑자기 저도 대학동창들과 다시 함께 여행을 가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한 명이 지난해 마흔둥이를 낳았으니, 졸업 20주년 기념으로 2014년에 도전해볼까요.

느티나무 2012-01-30 14:07   URL
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동기들 넷이서 떠난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 그 때마다 늘, 몇 년 동안 두고두고 이야기거리가 남더라구요. 앞으로는 제대로 여행도 좀 다니자고 의기투합도 했습니다.^^ 졸업 20주년 기념도 좋네요.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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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 김애란 참 많이 들었다. 그러니 그 좋다는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사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다시, 침이 고인다를 읽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상상력과 감성이 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하긴 나는 김애란뿐만 아니라, 도통 2000년대의 한국 소설에 적응하지 못하는 박제된 독자인 듯하다. 아마 내가 박제된 독자가 된 데는 소설의 문장에 대한 내 무딘 감수성이 큰 원인일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문장에 대한 심미안이 없다. 그러니 문장이 아름답다는 글에는 난 항상 무덤덤하다.

 

   작년(2011년)에 문단의 가장 큰 이변이 황석영, 박범신 등 노장들의 소설과 나란히 걸린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평단과 대중의 관심을 두루 받았다는 것이라는 걸 기사로 본 적이 있다. 그런 기사를 읽으니 소설은 안 읽었어도 김애란이라는 소설가는 이미 내 마음 속에서 대단한 작가로 자리잡고 있었다.(이렇게 귀가 얇다.) 그런데 정작, 김애란의 소설 읽기는 연속해서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다가 '결국엔 읽어야 할 책'이라는 어떤 끌림때문에 작년에 거의 마지막으로 책을 살 때 슬쩍 끼워 넣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해 쏟아지는 찬사에 비해서는 역시나 좀 덤덤했다. 나빴다는 게 아니라, 폭죽처럼 쉴 새 없이 터진 찬사에 나도 모르게 큰 기대를 하면서 소설을 펼쳤나 보다. 그녀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장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이라는 평을 해 놓은 평론가들의 양식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였는데, 이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분명히 나랑 똑같은 문장들을 읽었을텐데 평론가들은 역시나 허풍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들은 주말에도 바빠서 개그콘서트도 안 보나 봐!

 

   소설의 내용은 열일곱에 어쩌다 보니 자식을 낳게 된 부모와 그들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부모는 이제 서른네 살이니 그 아들은 열일곱 살이다. 열일곱에 낳은 그 아들은 이제 그 옛날 부모가 자기를 낳았던 부모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 아들은 희귀병인 조로증에 걸려 몸은 이미 여든 살이다. 소설은 가장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사람과 가장 빨리 늙는 아들이 나누는 삶과 사랑, 늙음,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잔잔하게 묻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점 두 가지를 꼽는다면, 소설의 각 장면들이 무척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과 인생에 대한 젊은 작가의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소설의 각 장면들이 꼭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데도, 각 장면의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려진다. 경쾌한 스텝을 밟는 춤꾼을 보고 있는 관객의 마음처럼, 소설의 속도감 있는 내용 전개는 독자의 마음을 살짝 들뜨게 만들어준다. 또한 나는 인간의 삶과 사랑, 늙음, 죽음에 대한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이 젊은 작가의 상상력에 놀랐다.  

 

   예컨대, 다음의 문장들을 뽑아 읽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가임기 여성의 자신만만함과 자랑스러움이 그득했다. 자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라 '진짜 권력'처럼 보이는 청춘의 민낯이었다. (37쪽)

 

내 생각에 그녀들은, 아마 미안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활달함 혹은 친절함이란 누군가와 무의식적으로 이별을 준비할 때 나오는 태도 중의 하나니까.(41쪽)

 

나는 어머니의 짐승 같은 소리를 듣고 마음이 놓였다. '아, 나는 나와 비슷한 울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태어났구나'라는 것과 '아, 내가 어머니께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었구나'하는 안심이 들어서였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어머니의 눈물은 적어도 내가 전혀 무가치한 존재는 아닐 거라는 믿음을 주는 그런 눈물이었다. (45-46쪽)

 

미숙한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경험할수록 성숙해지는 부모...... 어딘지 원인과 결과가 바뀐 것 같지만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가장 어리게 사고할수록 가장 지혜로워지는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났으니 말이다. (63쪽)

 

진짜 어른. 그런 게 어떤 건지 알 수 없어도, 심지어는 오랫동안 그런 대우를 받고 싶었으면서도, 아버지는 자신이 그걸 진심으로 원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인생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란 단어에서 어쩐지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알았다. (중략) 아버지가 어른이란 말 속에서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그것은 다름아닌 외로움의 냄새였다. 말만 들어도 단어 주위에 어두운 자장이 이는 게 한 번 빨려들어가면 다시는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무엇이었다. (67쪽)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79쪽)

 

고작 열일곱살밖에 안 먹었지만, 내가 이만큼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세상에 육체적인 고통만큼 철저하게 독자적인 것도 없다는 거였다. 그것은 누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누구와 나눠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적어도 마음이 아프려면, 살아 있어야 하니까. (96쪽)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143쪽)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 저는...... 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

"실패해 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 (172쪽)

 

'이 아이, 모든 연애의 시작엔 반드시 음악이 있다는 걸, 벌써부터 알아차린 걸까?' (189쪽)

 

"근데 내가 마흔 넘었을 때 딱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이제 내 몸은 나빠질 일만 남았다, 하는. 몸이 좋아 몸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산 게 지금까지의 삶이었구나, 앞으로는 뭔가 잃어버릴 일만 남았겠구나 하고 말이야." (298-299쪽)

 

'쿵...... 쾅...... 쿵......쾅......'

약하고 희미하지만 분명 거기 있는 소리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파동 안에 머물렀다. 그 자장 끝 맨 나중에 그려지는 동심원이 토성 주위의 고리처럼 우리를 오목하게 감쌌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난 그런 박자를, 누군가와 온전하게 합쳐지는 느낌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비로소 알아낸 기분이었다. 그건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320쪽)

 

 

   이렇게 인생에 대한 예리한 상상력이 가득 담긴 문장을 옮겨 쓰고 보니, 이 소설에서는 재미뿐만 아니라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내 엉뚱한 생각의 뒷통수를 치는 내용도 있고, 막연하고 흐릿하던 생각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도 이젠 어느덧 이런 문장들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인생이그렇지' 하며 씁쓰레할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니 굳이 빛나는 문장이 아니어도 좋다. 문장의 미감(美)에 아둔한 이 독자가 '재기발랄한 문장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 이라는 평론가들의 밝은 눈을 따라가지 못해도 굳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이 소설은  또 다른 측면에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던 인생에 대한 아포리즘 같은 문장들만으로 소설의 재미는 충분하다. (이렇게 쓰고보니 그게 그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글의 앞부분에 썼던 내용은 좀 야박하지 않나 싶다. 그 야박함은 어쩌면 나에게만 쉽게 열리지 않는 문장에 대한 심미안을 갖춘 그들에 대한 눈먼 질투심일 것이다. 하긴 그 질투심의 화살은 과녁을 한참 빗나가긴 했지만!



 
 
2012-01-28 23:57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9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2 21:18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4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며칠 전 오늘의 교육 잡지를 받았다. 보내 주신다는 기자님의 메시지는 받았지만, 정작 받고 니 더욱 기분이 좋다. <오늘의 교육>은 현직 교사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꾸린 교육공동체 벗, 이라는 단체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잡지이다. 그런데 이번 호를 받고 보니, 평소에 보던 <잡지> 답지 않고, 책 같다.(참고로 개인 정기 구독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활동해야 잡지와 회지를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단다.)

 

   이번호 특집은 교육 불가능 시대, 교사는 가능한가,라는 주제이다. 작년에 지금까지 발행했던 이 잡지글을 묶어 펴낸 책의 제목이 '교육 불가능의 시대' 였으니 그 연장선상에서 '교사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여러 선생님들께 던지는 듯 하다. 핵심은, 지금은 교육 불가능의 시대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교육 방식-'방식'이라는 말 속에는 지금껏 교육이라고 말할 때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개념들-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반어적인 인식이 드러나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잡지는 차차 더 읽어봐야할 것 같고, 기획 기사로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는 책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반응을 다룬 리뷰 두 편이 실려 있다. 그 중에 한 편, 길은 여기 있다, 라는 글이 얼마 전에 내가 쓴 글이다. 지면의 한계 탓에 앞부분의 내용이 좀 잘려나가 아쉽기는 했지만, 어쨌든 인쇄되어 나온 내 이름과 책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일은 기쁜 일이다. (사실, 글의 내용이야 한없이 초라한 수준인데다가, 또 혹시 그걸 읽는 사람들이 전부 교사들이라는 생각이 들면 정말 부끄러울 따름이다.) 부끄럽다면서 또 이렇게 알라딘에 떡 하니, 자랑질을 하는 걸 보니, 참말로 사람이 아직 덜 여물었다. 갈 길이 멀다.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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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이틀 동안에 도가니를 읽었다. 책은 제목과 저자만 알고 있었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폭발적인 흥행에 힘입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온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물론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도. 그 사실이 독자들과 관객들을 분노케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도가니를 읽을 생각은 여태껏 못 했다. 그러다가 대학병원 한 귀퉁이의 가판대에 놓인 도가니를 보고 망설이다가 집어 들었다.(가판대 앞에는 30~70% 할인이라는 광고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으나, 정작 계산할 때는 '신간'은 제외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어쩔까 하다가 이왕 집어든 거 '달려라 정봉주'와 함께 사들고 왔다.)

 

   굳이 리뷰를 쓸 생각은 없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도가니'를 어떻게 읽었나 싶어서 알라딘 리뷰를 눌렀는데, 리뷰가 무려 625개였다.(2012년 1월 20일 기준) 베스트셀러를 꼭 찾아서 읽는 편이 아닌 지라, 아마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리뷰가 많이 달린 책일 것 같았다. '와, 리뷰가 엄청 여러 개 달렸네!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할 말이 많았나 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차례차례 리뷰를 읽어 보는데, 아쉽게도 내가 느낀 어떤 감정과 비슷한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썼나, 싶어서 리뷰를 읽어 보고, 내 맘에 드는 리뷰가 있으면 추천하고 나는 글을 안 쓴다. 훌륭한-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리뷰가 있는데, 굳이 내 글까지 덧붙여서 사족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제목처럼 작품의 훌륭함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책의 내용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쓴다.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엄청난 칭찬 일색의 리뷰를 보면서 '어, 난 좀 아쉬웠는데...'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이 아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뭔가 아쉬움은 있는데 아직 그건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쓰다 보면 조금은 그 실체를 드러낼 수도 있겠지!

 

   내가 읽은 공지영 작가의 전작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우행시'를 읽고는 작가가 좀 더 용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 주장을 폭발시켰다. 그야 책을 읽었으면 당연한 생각의 수순이 아닌가 싶었다. 법원의 판결로 사형수로 확정된 사람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에게 사형제에 대한 반대 논리를 의심 없이 전파시킨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사형제에 대해서 회의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소설의 결론을 윤수가 살인범이라는 것으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 윤수는 살인범이지만, 그도 여느 인간처럼 자신의 지난 잘못을 후회하고 뉘우치고 있으며, 다시 한 번 살고 싶다는 욕망을 지닌 존재이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어떤 한 인간으로 그려졌다면 어떤 반향을 불러왔을까? 만약에 그랬다면 독자들은 사형제에 대해 반대 논리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잖아', '살인자를 똑같이 국가가 살인(사형)하는 건 야만적이야'라는 찬반 논란이 조금 더 거세게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작가는 조금 더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소설을 자신의 사형제 반대에 대한 신념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 그런 태도가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좀 아쉽다. 나에게 소설(책)은 내 인식의 틀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민'하고 '갈등'하게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내가 분명하게 본 것을 오히려 흐릿하게 만들어 보여 주는 것, 그게 소설을 읽는 이유다. 당연한 주장은 내 마음이 편안하게 하지만, 내 생각을 확장시켜 주지는 않는다.

  

   도가니를 읽은 리뷰랍시고 어줍잖은 글을 끄적거리면서 '우행시' 이야기만 냅다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해서 이제 책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한다. 여러 사람들의 찬사와는 달리 나는 도가니를 읽는 내내 좀체로 감정이입이 좀 안 됐다. 물론 독자를 소설의 상황에 끌어당기는 흥미진진한 내용과 이를 속도감 있게 펼쳐나가는 전개 솜씨야 이미 정평이 난 데로 훌륭했지만, 나는 소설의 인물들에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점점 더 소설의 인물들 감정선 밖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소설의 상황에서 자꾸 격리되는 듯 했다.(희곡에서 말하는 '소격 효과'라는 것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어쩜 이럴 수가 있지? 와, 미치겠다, 어떻게 이런 나쁜 놈들이...'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음, 화가 낫겠네. 세상엔 이런 나쁜 놈도 있겠지? 기득권자들의 행태가 원래 저렇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왜 나는 몰입이 아니라, 격리되는 느낌이 들었을까?(그것도 제목이 도가니인데...) 위에 썼던 그런 '감정'이 아니라,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아마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 때문인 것 같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명확하게 선과 악의 두 편으로 갈라져 있다. 나쁜 놈들에게는 근원적인 악의 야비함과 야만성'만'이 드러나 있고, 정의로운 자의 편에는 진실과 정의에 헌신하는 희생적인 면모만 드러나 있다.(강인호는 예외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도 온갖 개인적인 불안과 어려움을 무릎쓰고 용감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편에 뛰어들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런 사실이 불편하다.

 

   물론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최대한 사실에 근접한 내용으로 구성했던 것 뿐이라고. 또,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그 '상식... 그런 게 없는, 말도 안 되는' 일도 많이 일어난다고. 실제 사회에서 나쁜 놈들은 정말 소설에 묘사된 것보다 더 야비하고 파렴치한 짓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그러니 소설은 단지 그 실체적 진실을 보여주려고 했을 뿐인데, 인물의 성격이 선과 악이 분명해서 불편하다느니 이런 투정(?)은 너무 한가한 소리라는 타박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소설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모 정당의 정치가를 소설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웃는 게 당연하다면, 소설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편으로는, 소설가가 일부러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소설에서 묘사했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나쁜 놈들이 있는(많은)지, 그들이 어떻게 기득권을 유지해 나가는지, 그들의 연결시키는 사회적 고리들의 참모습은 또 어떤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일 수도 있다. 

 

   자, 여기서 나는 이 소설이 다시 '우행시'의 결론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사형제의 찬반에 대해서 조금 더 정공법-윤수가 살인범이라는 결말로-으로 물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처럼, 가해자들과 그들의 편에 선 자들에게서 보이는 '어쩔 수 없음'을 들여다 보거나, 피해자들과 그들의 편에 선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음'도 함께 나타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아름다워서 경외감이 들게 하지만 그만큼 독자의 고민의 영역을 줄인다. 반대로 오로지 악마의 화신 같은 모습은 추악해서 분노케하지만 그 감정은 즉자적이다.(물론 이 즉자적인 분노가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과 결합해서 이번에는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소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감각한 상황을 고민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비춰보면 도가니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공지영 작가의 현실 인식이나 거침 없는 소신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꼭 소설의 주제까지 그래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읽는 이들에게 별다른 고민의 여백을 남겨두지 않는 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도가니라는 소설과 영화가 이끌어 낸 현실의 변화를 보면서 새삼 문학(예술)의 힘을 느꼈다. 이를 이끌어 낸 소설가의 집념과 노력에 존경을 보내고 있다.(그래서 책 샀다.) 그것은 그것대로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그런 소설이다.

 

*사족* 원래 재미 있게 잘 읽히는 소설인데, 도가니에 대한 칭찬은 다른 리뷰어들이 무척 많이 해 놓았길래, 나는 그냥 이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것을 알리는 정도로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조금 더 나간 점도 있는 것 같다. 워낙 재주가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2012-01-22 19:22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2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꿀이 2012-01-23 00:19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 님~~새해복 많이 받으세요..^0^ 새해 첫 손님이에요. 선물 없어요??ㅋㅋ

느티나무 2012-01-23 02:19   URL
조금 특별한 방학이지요? 인생에서 이런 좋은 시간들이 다시 올까요?ㅋㅋ 멋진 시간, 행복한 기억 많이 만들길 바래요...선물? 음, 다음에 학교에 오면 이모 친구랑 같이 제 자리로 찾아 오세요. 선물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