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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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입니다. 일본에서는 2001년도에 발간된 책이니 20년 정도 지난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내에서도 2003년 7월에는 <짝사랑>으로, 2006년 5월에는 <아내를 사랑한 여자>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외사랑>으로 3번째 발간이 되겠네요. 같은 소설이 이름을 세 차례 바꾸어서 재 발매된 걸 본 적은 처음이네요. 한국 독자들의 히가시노 게이고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혹은 출판사의 상술이라고 해야 할까요?) 세 가지 버전의 표지 중에 저는 <짝사랑> 버전이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이 소설은 2017년 WOWOW 라는 일본의 채널을 통해 6부작 드라마화가 되었는데요. '드라마화 결정은 쉬운 일이었겠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만큼 이 소설은 대화체만 발췌 독해도 감 잡을 수 있는 이야기의 진행, 가치 중립적인 주인공을 통한 정의 실현, 자극적인 소재 선점 같은 영상화에 유리한 요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1985년 소설 <방과 후>로 데뷔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이 발간될 즈음, <백야행>(1999년), 가가 형사 시리즈 <거짓말, 딱 한 개만 더>(2000년), 갈릴레오 시리즈 <예지몽> (2000년) 등으로 상업 소설의 주류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추리소설 작가로 나름 인정받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야행>부터는 사회파 추리소설가로 돋움 하게 되었고, 이후 민감한 이슈에 대한 메시지를 가진 소설을 연속해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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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정신적 성별과 생물학적 성별이 서로 다름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얽히고설키어 형성한 사건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 정체성'이라는 이슈를 다루게 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고, 기피하고, 어두운 것으로 여기는 화제에 대하여 이야기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건 이 소설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반면 이슈를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기보다는 극중 인물의 발언을 통해서 이곳저곳에 심어 놓더군요. '노련함'보다는 '열심히 하는' 느낌이었는데요. 지금까지 발표된 전설의 사회파 소설을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세련되다기보다는, 둔탁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들은 일상에서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세련되게 전달하는 편은 아닙니다.

이 소설의 단점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대부분과 비슷합니다. 일상에서 시작된 가벼운 변화가, 살인 사건의 배경으로 이르는 면에서 주요 등장인물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예를 들면, 대학 동창들에게 살인을 고백한 미쓰키에게, 자수를 권유하기보다는 너도나도 숨겨주려고 한다든지). 총 890페이지로 책의 볼륨은 두툼한데 반해, 소설의 중반까지는 흐름에 변화가 적고, 지나치게 대화체만으로 구성되는 진행을 유지하는지라, 유행이 지난 고전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소소하게 부족한 측면들이 한 개 두 개 쌓이면서, 폭포수 같은 감동, 머리카락이 삐쭉 설 정도의 독창성을 구사한다기 보다는, 어딘가 부족한 공장장의 장르소설로 회자되기에 적당해 보였습니다.

다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을 통해 성 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고, 또 심도 있는 지적을 하는데요.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군요. 사건의 흐름과 소설적 재미를 초월해서, 소외된 자들에 대한 지지를 확고히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의 결과 또한 (살인사건의 내막으로 밝혀지는 이는 시신 훼손으로 인해 신원 미상의 변사체로 처리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을 통해 줄 곳 나타내고자 했던 메시지와 한계점을 내포한 것으로 여겨지더군요. 개인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결말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면서 야한 장면이 등장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유난히 자세한 성교 혹은 성충동 장면에 대한 묘사가 많이 이루어져서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출판사에서는 'S 파트너' 같은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홍보에 사용하는 것 같지만, 성적 묘사 자체는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극의 진행과 메시지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 중 장점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국내에서의 인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정말 꾸준히 읽고 있지만, 최근에 발표된 여러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에 비해 이 소설은 사회파 소설 특유의 '성실함'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물론, 이 소설이 '죽기 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소설'의 범주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질문이라면 물음표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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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스타 1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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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작, 영어로는 트릴로지(Trilogy)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이 그 시작점이라고 하지만, 더 멀리 올라간다면 그리스 시대의 희곡까지 그 기원을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장르 소설에서는 좀 묘한 일이 있는데, '무명의 작가가 여러 에이전트에게 소설을 거절당한 후 어렵게 데뷔한 소설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승승장구한다.' 같은 데뷔 스토리를 가진 소설은 대체로 3부작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수잔 콜린스(Suzanne Collins)의 헝거게임 시리즈, 에리카 조핸슨(Erika Johansen)의 티어링 시리즈, 스테프니 메이어(Stephenie Meyer) 의 트와일라잇도 초기에는 3부작이었던 것 같군요.

위의 소설 대부분이 대중적으로 흥행한 시리즈입니다. 반면 권수를 거듭해 갈수록 점차 확장되는 세계관을 잘 추스르지 못하고 비판이 늘어난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제가 접한 대부분의 삼부작들이, 비판이 타당할 만큼 후반부로 갈수록 급속도로 망가졌습니다. 이런 일들은 세계관의 연장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시작된 삼부작으로 인한, 작가의 상상력 결핍(혹은 능력 부재)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인 '피어스 브라운'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레드 라이징 시리즈>가 원래 3부작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었다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시리즈를 완독한 시점에서 저는 레드 라이징(Red Rising) 시리즈가, 3부작으로 구상 되었다는 작가의 인터뷰를 믿는 편입니다. 긴 호흡을 예상하고,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구상을 미리 계획하지 않았다면, 3편 격인 <모닝스타>에서 이 정도의 가독성이나 재미는 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네요.

대로우의 아내, 그리고 내 아버지는 서로를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시체 위로 세워진 세상이 아닌 희망 위에 세워진 세상, 우리를 분열시키는 증오가 아니라 단합시키는 사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다.

우리는 많은 이들을 잃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패배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워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죽는 이들의 복수를 하러 싸우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을 위해, 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카시우스 오 벨로나는 내 아버지를 죽였다. 하지만 나는 그를 용서한다. 왜냐고?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을 보호하기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며, 그가 두려워하고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들에게 앞으로 갈 길을 제시할 거라면 그야말로 더 나은 길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나는 세브로 오 바르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본문 2권 335페이지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소사이어티를 파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관습들을 와해시키고 사슬을 깨부수면 그 재 속에서 뭔가 새로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이 그냥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 절충된 승리는 인류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이다. 변화는 천천히 찾아오겠지만 무정부의 대가 없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바란다.

본문 2권 500페이지


작가는 전작을 통해 상류층인 골드 계층이 기타 계층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 차례 드러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의 거의 대부분의 비극이 그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3편 격인 이 소설에 들어서는, 주요 골드 계층들이 각성이라도 한 듯 '계층 간 차별'이라는 커다란 벽을 너무 쉽게 뛰어넘어 버리더군요. 1950년대와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 이후, 백인의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흑인 지도자나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는지를 생각해 볼까요? 1편에서 3편까지는 시기적으로 공백이 있기는 해도 극적으로 짧은 시간입니다. 세계관 속 '계층 간 차별'에 대한 허들이 균형적이지 않다는 단점은 3편에서 두드러지더군요.



단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태양의 부재에서는 오직 어둠만이 있을 수 있다." 군주는 몸서리친다. 이제 추운 것이다. 나는 그녀의 몸 위로 무언가를 덮어주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는다" 같은 유아적 감정 표현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측면이나,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미사여구의 활용이 지나쳐서 세련되지 못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뒤쪽으로 갈수록 자연스럽지 못한 번역이 등장하는데 이 또한 나쁜 흐름에 영향을 주더군요.


저는 한편으로는 이 책이 2권보다는 나은 단행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레드 라이징(Red Rising)에서 직관적 동기부여로 작동했던, 아내 '이오'에 대한 복수심이 대부분 희석된 '대로우' 의 동기 부재가 2권의 주요 문제였습니다. 반면 이 책 <모닝스타>에 접어들면서, 동기 부여에 대한 문제들이 대부분 해소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를 통해 왕좌에 도전하는 여러 개인들이 '복수심'보다는 '올바른 가치'를 장착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더군요. 장르물에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 난해한 흐름을 보여주었지만, 여러 가치관에 좌우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모습은 '반전의' 결과를 훨씬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물론 권력을 가진 개인의 올바른 가치관 장착이란, 또한 판타지로서 가능한 일이겠지요.


Iron Gold (2018) - 모닝스타이후 10년 뒤 사건을 다룸, Red Rising 연대기의 후속 3부작 중 첫 번째 소설

Dark Age (2019)

Light Bringer (2023)

위의 세 소설은 작가의 후속작입니다, 작가는 <Red Rising>연대기의 성공을 기반으로, 세계관의 확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2023년으로서 두 번째 3부작이 마무리되더군요. 신작의 한국어판 출간는 Tv show ( 드라마화) 제작이 완료되었을 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기사에 따르면 2019년도에는 '유니버설'의 영화화 작업은 엎어진 건 확실해 보이고, 가장 최근의 확인되지 않는 몇몇 루머에 의하면 드라마 제작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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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아틀라스 - 생두에서 커피가 되기까지 커피를 탐구하고 설명하고 음미하다
제임스 호프만 지음, 공민희 옮김 / 디자인이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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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커피와 술(특히 와인)에 관한 언급은 되도록 자제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참견러가 너무 많은 것이 그 이유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고, '나도 전문가'가 많은 분야입니다. 커피에 관련된 관련 서적도, 관련 동영상도, 관련 제품도 모두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커피에 관한 책이라면 꽤 꾸준히 읽었는데요. 전문가이기 때문은 아니고요. 커피에 관련된 책의 발간이 많은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겠고, 커피의 역사며 커피의 소비, 커피의 원리 등 흥미로운 소주제가 많은 분야인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 <커피 아틀라스>는 지금까지 접한 커피에 관련된 인문서 중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책이었습니다.


아메리카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들 입에는 에스프레소가 너무 진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와 뜨거운 물을 같이 달라고 하거나 고향에서 마시던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희석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이렇게 나온 음료는 '카페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이 붙었다. 필터 커피와 비슷하지만 아메리카노가 더 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장비를 따로 갖출 필요 없이 필터 커피의 강도로 브루잉하면 되니까 카페 주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필자가 추천하는 아메리카노의 레시피는 간단하다. 신선하고 깨끗한 뜨거운 물을 따르고 더블 에스프레소를 내려서 붓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에 스팀 보일러가 있다면 뜨거운 물을 활용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에 아주 뜨거운 물을 넣으면 안 되고, 뜨거운 물 위에 에스프레소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나온 커피가 더 깔끔하고 좋아 보인다는 점 말고는.

에스프레소를 희석하면 쓴맛이 살짝 높아지는 단점이 있다. 아메리카노를 브루잉하자마자 커피에 뜬 크레마를 없애면 해결된다. 크레마는 보기에 좋을 뿐 그 속에 작은 원두 조각들이 갇혀있어 커피에 쓴맛을 더한다. 크레마를 제거하고 저어 마시면 아메리카노의 풍미가 한층 높아진다. (또한 크레마를 제거하고 에스프레소를 마셔보라. 맛의 차이가 상당하다. 필자는 크레마가 없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추가로 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것보다 그 자체로 행복하다. 단 아메리카노는 추가 작업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본문 117 페이지




커피 역사서, 커피 레시피북을 통틀어서 아메리카노를 맛있다고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저자를 만난 것은 드문 일입니다. 정통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독특하거나, 후진 문화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특히 국내 저자들), 이 책의 저자는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만들기 위한 소소한 팁까지 이야기해주더군요. 이런 면들은 지금까지 일반적인 커피에 관한 책보다는 훨씬 다양하고 트랜디한 정보를 기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이토록 한없이 너그러운 저자라고 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2015년도에 1st Edition 으로 국내 발간되었고, 2022년도 말에 발간된 이 책은 2nd Edition으로 영국에서는 2018년 출간된 책의 번역본입니다. 작가 'James hoffmann'의 홈페이지에 가면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음식의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또, 본인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도 소개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주제에 관련된 재미있는 영상이 다양하게 업로드되어 있었습니다. 동영상을 몇 편 훑어 보면, 그가 뛰어난 학자일 뿐만 아니라, 유머러스하고 창의적인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걸 잘 알 수 있습니다.



책에 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자면, 커피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을 다루면서도, 치우치지 않는 설명을 기반으로 하고, 난이도 하에서부터 상에 이르기까지 커피에 관련된 지식을 넓은 범위에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또, 'Atlas(지도책)'라는 제목에 걸맞게, 주제에 꼭 맞는 적절하고 큼직한 사진을 같이 볼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더군요. 커피 전문점에 한 권씩 구비해 두고 바리스타가 읽어도 좋고, 손님들이 심심할 때 한 장 한 장 읽는 것도 가능한 책입니다.

총 274페이지의 페이지 중 앞부분은 커피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을 하고 있었고요, 120 페이지가 넘어가면 커피를 재배하는 나라를 분류하고, 각국의 원두의 특징에 관한 설명하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여러 정보가 농축된 표가 함께 실려있어 얼핏 부담스러워 보이지만 한번 읽어보면 그 나라의 커피 작황의 역사며, 재배되는 커피의 특징,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히더군요.

단점이라면 사악한 가격입니다. 274 페이지에 달하는 하드커버 양장본이니 비쌀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만 정가가 무려 350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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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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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소개를 제공하는 신뢰도 높은 사이트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더군요. 그의 인터뷰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서 대학교에서 암에 관한 연구를 한다거나, 양자 물리학과 관련 있는 활동을 할 수도 있겠다는 단서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의,과학계열에 종사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반물질이나, 기억 복제와 같은 과학적인 소재와 그의 발달 과정이 이야기를 끌고 가기도 하는데요, 어색하지 않은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더군요. 과학적인 기반이 없었다면 생각해 내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와는 관계없었지만 (인류의 테라포밍이 실패한 사례들이나, 사이코패스 사업가 '매니코바'로 인해서 무절제한 익스팬더블이 범죄로 취급받게 된 사연) 같은 세계관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요,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이렇게 극의 주요한 전개와 상관없이 독립적인 구성으로 흘러가는 여러 이야기는 이 소설이 다양한 세계로 확장될 여지를 남겼습니다. 또 적당한 반전도 가지고 있는데요. 이런 반전은 극 후반부에서 가독성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다소 뻔하기는 해도, 몽환적인 주인공의 꿈이 결국 스토리의 주요한 부분과 맞닿는 이야기 방식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상상력이 자극되는 순간이 있었고, 여러모로 단행본으로 즐기기 좋은 SF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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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큰 약점도 있는 소설입니다.

첫 번째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깊이를 들 수 있겠네요. '기억과 육체를 복제해서 영생을 사는 주인공이 자신과 똑같은 복제 인간을 만난다.'라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에서 좀 더 심오한 철학이나 질문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소설의 어느 부분을 통해서도 이런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두 번째로는 '미키7' 의 복제 인간인, '미키 8'의 존재 비중이 너무 적게 느껴지는 부분이겠네요. '미키 7'의 시점에서 주도되는 이야기의 영향도 있겠지만, '미키 8'은 거의 배고픔만 호소하다가 험한 일을 당하는 운이 안 좋지 않은 친구 정도로 묘사됩니다. 두 캐릭터 간 비중이 균형적이지 못한 점은 '두 명의 인간, 같은 자아'라는 콘셉트와 동떨어지게 느껴졌습니다. 세 번째는 결말을 통해서도 해소되지 않는 흐름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미키 7'과 '캣' 사이에서 잠깐 흘렀던 썸은 왜 등장한 건지, 잠시 등장하는 토마토의 작황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본인과 본인 복제품을 포함한 세 명의 성관계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작가는 여러 자잘한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어떤 친절한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이 연달아 등장하고, 이 상황들이 큰 줄거리에 정체를 불러일으키는 건 심각한 문제 아닐까요? 마치 '아이유의 콘서트에 갑자기 등장한 국회의원'같은 상황이 번번이 벌어지는 거죠. 국회의원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겠지만, 관객은 아이유를 보러 왔잖아요? 결과적으로는 내가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닐까 의구심만 불러일으킨 채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작가니까, 삼부작 정도로 나왔다면 좋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저는 이 책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의 뼈대를 통해 무엇을 하든지 가치 있는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잘생긴 뼈대이기 때문에 뭘 바르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더군요. 2024년에 '로버트 패틴슨'과 '스티븐 연'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 개봉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무려! 봉준호 감독이 연출을 맡게 됩니다. 제목은 '미키 17'이라고 하네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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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멜라이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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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벤더 작가가 2010년에 발표한 소설로, 국내에서는 2011년 4월 동명의 소설로 한차례 발간된 이후, 2023년 3월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습니다. 작가는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여러 단편소설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더군요.

주인공 로즈의 어린 시절에는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하던 작가의 글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판타지적인 흐름을 취하게 되는데, 종반부로 갈수록 현실적이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설은 일정한 시차를 돌연히 뛰어넘어가며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이 소설에서 연령은 소설의 흐름에 중요한 이벤트가 있는 해를 나타내더군요. 어느 날 음식을 통해 음식을 만든 이의 감정을 느끼게 된 로즈(9살), 엄마가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을 알게 된 로즈 (12살), 오빠의 실종을 마주하게 된 로즈(17살) 같이 다양한 연령대에는 로즈의 일상을 기복케 만드는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이런 가족의 변화를 통해 로즈의 성장도 진행하게 되고요. 작가는 주인공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하는 이벤트를 엮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합니다.

책의 모든 부분들이 디테일하게 구상되었음을 알 수 있더군요. 9살 때는 어머니에 관한 서술 위주로 등장하지만, 12살 때는 가족 한 명 한 명에 대한 서술로 로즈의 세계가 점차 넓어지는 부분이라든지, 처음에는 거의 비중 없이 등장하는 아빠가 로즈의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로즈의 삶에서 영역을 넓혀 가는 부분이라든지, 여러 과정을 통해 가족의 비밀을 조금씩 알게 되는 로즈를 표현하는 문장들은, 마치 수학 공식처럼 꼭 알맞은 정도의 문장이 늘어나거나 빠지면서 완성되었습니다. 오빠가 자꾸만 사라지는 미스터리, 아빠를 존중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엄마의 불륜, 아빠 가족이 가지고 있는 의문스러운 초능력같이 주인공 세계의 외연은 점차 선명하게 변하지만, 마찬가지로 불행의 원인이 더 다양해지는 것을 보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더 깊숙이 이입하게 되더군요.

독자의 감정을 우려내는 방식이 기가 막히게 뛰어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12살 로즈의 초능력을 통해 알 수 있는 엄마의 불륜 장면을 보면서, 꼭 그 정도 나이에 보았던 주말의 명화를 떠올렸습니다. 그 영화는 '남편을 버리고 바람을 피우는 아내'에 대한 영화로 어린 시절의 저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소설을 통해서 현재가 아닌 어린 시절 제가 가졌던 감정을 소환할 정도면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꾼인가요?

저는 이 소설이 일본의 여성 작가 몇몇과 상당히 유사한 감정을 우려내는 느낌을 읽는 내내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생각나는 건 '에쿠니 가오리'였습니다. '에쿠니 가오리'를 보면, 그럴듯한 문장 몇 개를 이용해 감정을 자아내고 그 감정을 책을 읽는 내내 유지하게 만드는 소설을 쓰곤 합니다. 소설 입문자였던 시절을 제외하고 그녀의 소설이 꼭 맞게 느껴진 적은 없었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분위기를 덜어내고 이야기의 구성에 힘썼다면 이 소설의 한 챕터 정도를 완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모로 '에쿠니 가오리'의 진화형 작가 같은 느낌입니다.

이 책을 첫판이 발행된 2011년도에 접했다면 몇 장 읽다가 책장에 소중히 보관만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행복함이 머물러 있는 듯 보였지만 이면은 행복하지 않은 가족이나, 바람을 피우면서도 가족을 유지하고 싶은 어머니 같은 캐릭터는 이해하지 못했을 테고 지나치게 스타일만 추구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당시의 저와 같이 '선, 악이 또렷한 자존감 강한 20~30 대 남성'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입니다. 또, 이 소설은 열린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극의 흐름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시원한 전개에 이은 깔끔한 결말을 원하는 독자분이라면 지양하는 것이 좋겠더군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뛰어난 소설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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