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화장품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였을 때, 엄마는 내게 '사람의 몸에는 원래 나는 빛깔도 광택도 있어, 자꾸 가리면 사라져버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서 아빠랑 온천에 갔거든. 따로 탕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만나기로 했지. 목욕하고 화장하면 화장 잘 받거든. 그래서 곱게 화장하고 나갔더니 아빠가 뭐랬는지 아냐? 도대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했냐는 거야. 뭐, 그래서 그 다음부터 화장 안 했지, 뭐.'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두 분이 천생연분이네, 좋네, 그랬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전하자, 그 사람은 '아마 아빠가 화장품 값이 아까워서 그랬을 거'라고 말했다. 에? 엄마가 막 꾸미고 싶어한 사람이 아니어서, 둘 사이의 대화가 해피해서 다행인 건가,라고 생각했다. 

동양과 서양은 다르고(https://blog.aladin.co.kr/hahayo/10530930), 많은 여성억압의 장치들이 근대화와 함께 들어왔다고(https://blog.aladin.co.kr/hahayo/11198936) 생각하고 있어서, 자신의 삶에 비추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걱정스럽다. 

너는 어땠어?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에게 만약 억압이 있었다면 그건 나나 내 또래집단의 것이었다. 여자친구들이 모여서 웅성웅성 하던 이야기. 중학교 체육대회에 열심으로 뛰던 여자선생님이 얇은 브래지어 때문에 젖꼭지가 도드라진다고 흉보던 순간,이나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옷 못 입는다고 사모님 흉을 보던 순간 같은 거다. 자유가 폭발하던 풍요의 마지막 시기였기 때문에(X세대라고들-_-;;) 남들이 뭐라던 신경 안 쓴다는 애들 천지였다. 화장을 하기에는 게으른 인간이었고,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여자들이 많은 공간에서 더 많이 벌어지는 그런 미에 대한 강박을 왜 여기서 지금 말하면서 남 탓을 하는지 의아한 순간들이 많다. 

친구가 한복처럼 성적이지 않은 옷이 없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중국의 악명높은 전족과 화양연화를 다시 보니 고문같은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와 달리 한복은 허리도 가슴도 강조하지 않는다. 이 땅의 여자들은 훨씬 강하고, 허리춤을 바짝 묶고 뛰고 도망가고, 혹은 호랑이를 쫓은 강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는 거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강한 존재이면서, 왜 약하기 짝이 없는 여자들의 한심한 말들을 그대로 받아 듣는가.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고, 그걸 억압할 만큼 구분하는 사회가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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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1-04-30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페미니즘 찬양을 계속하고 있는 분이 쓴 댓글에서 남성 성기의 비속어를 여과없이 사용하고, 젊은 남성에 대한 성적 표현을 당당히 쓰는걸 보고 경악했습니다. 얼마 전 일인데, 수정했더군요...

별족 2021-05-01 05:38   좋아요 1 | URL
그 댓글은 못 봐서 제가. 그렇지만, 지금의 페미니즘이 뭔가 자신의 말들로 자신을 비추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멀어지게 됩니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스트를 나쁘다, 아니다 평가하지 마라. 나도 그 심정 안다. 알지만, 위험하다. 

내용보다는 제목이 슬로건이 더 많은 걸 말해주는 때가 있다. 

내게 페미니즘은 물리학에서 불확정성이론으로 넘어가는 단계나, 문화에 대한 상대주의 같은 것이었다. 절대적인 옳음은 없어,라는 태도. 권위에 저항하는 태도, 어쩌면 지금도 다르지는 않은 것도 같다. 나의 답을 내가 찾겠어. 너무 내게 강요하지 마. 

그런데, 지금의 나는 공동체를 위한 좋은 것과 나쁜 것,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페미니스트의 어떤 태도가 지향이 없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원해서? 라는 질문이 생긴다. 

유명한 페미니즘 슬로건 중에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가 있다. 나도 좋아했던 거 같은데, 한겨레21에서 웬디 덩,에 대한 기사(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874.html) 를 읽었다. "깨지 못할 가정은 없다, 단지 노력하지 않는 '샤오싼'만 있을 뿐이다"라는 유머로 맺는 그 기사를 읽고는, 아, 저 슬로건의 현현인가 싶었다. 슬로건의 현현을 눈 앞에서 보고, 슬로건 자체를 회의한다. 법이 정의하지 않는 도덕심, 법으로는 심판할 수 없어도 사람들이 하는 심판,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나 일부일처제, 가족의 허상에 대해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래도 되는가,에 대해 회의하는 거다. 저런 삶을 누구에게 권할 수 있지. 나조차도 싫고, 내가 아는 누구라도 싫었다. 아무런 불법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웬디 덩은 누구보다 나쁘고,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고, 페미니스트인 나를 나쁘네, 나쁘지 않네 평가하지 말라,고 한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타인을 평가하는 건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무언가 타인에게 권하고자 하는 주의나 주장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주의나 주장에 대한 평가를 수용해야 하지 않나. 나를 평가하는 건 안 되지만, 나는 너를 평가하겠다,고 하면 비난받는 건 당연하다. 너의 이 말은 너의 이 행동과 일치하지 않아,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저 '여자'이기만 하면 변호하겠다는 태도가 '페미니즘'인가. 그저 '페미니즘'이라고만 하면 평판에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게 좋은 태도인가. '나쁘다'는 말이 가지는 추상성 때문에, 오히려, 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게 되어 버리고, 그러지 말라는 말은 모두 배척당한다. 결국 나는 '페미니즘'을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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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01-30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생각보다 이 책 저는 괜찮었어요. 꽤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 책 괜찮다라는 기억이 남아 있는 책입니다. 한번 읽어 보심이...

별족 2021-01-30 09:34   좋아요 2 | URL
^^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겠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슬로건‘에 대한 거였어서. 그래도 역시 이 책을 넣을 거 같아요.
 

친구들과 함께 하는 밴드에 한 친구가 '낙태죄 완전폐지를 위한 국민청원'에 서명을 해달라고 했다.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AE67727ABE9934EDE054A0369F40E84E

1.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법의 관점을 여성의 성, 재생산권으로 전환하라.

- 모자보건법 제14조와 임신중단 여성 및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전면 폐지하라.

- 모자보건법을 여성아동건강법으로 법률의 관점을 전환하라.

- 모자보건법 제1조 ‘모성’을 ‘여성’으로 변경하라.

- 법률과 공식 문건에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는 ‘낙태’ 대신 ‘임신중단’ 혹은 ‘임신중지’로 용어를 변경하라.  

2. 인공임신중단 의료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보장하라. 

- 가짜 피임약 판매자 처벌 강화를 위해 경찰의 함정수사를 허용하고 가짜 약 판매 적발 시 생명 위협과 동일한 수준의 처벌을 받는 법안을 제정하라.

- 임신중단 유도약(미프진) 수입허가를 위한 식약처 안전성 검사를 시행하여 국내에 미프진을 도입하고 국내 피임약 가격 수준으로 보급하라. 

- 국민건강보험 보장 범위에 인공 임신중단 수술을 10% 자부담 항목으로 포함하라. 

- 소파법 이외의 안전하고 비용 부담이 적은 임신중단 수술 방법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라. 

- 인공 임신중단 의료 시 안전성 관련 상세 내용에 대한 고지 의무를 법제화하라.)


나는 그 청원에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가운뎃줄로 지운 부분이다)이 있고, '임신중단 가능' 주수를 법에 명시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어서 서명하지 못하겠다고 댓을 달았다. 법의 관점은 '여성'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관점이어야 하고, 용어를 '임신중단'으로 바꾸려면, '임신중단'의 정의에 그 '가능 주수'가 명시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10주에 하는 행위나 32주에 하는 행위를 동일하게 '낙태'라고 부르는 건 나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저 청원의 주장처럼 모자보건법에서 아이를 모두 지우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그게 과연 여성에게 좋은 것인가도 의문이다. 청원이 가지는 단순성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동의할 수 있는 부분보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은 청원이다. 서명하지도 않았고 또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야기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공연히 일없는 책을 하나 걸고는 이렇게. 

법은 모순 위에 올라간 탑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태아와 여성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고 태아가 중요하니 여성이 권리를 포기하라고 물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술은 나아지고 있고, 사회는 더 엄격해지고 있고,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정의할 필요는 없다. 자가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라서, 여성에게 완전히 종속된 존재인 주수와 아닌 주수를 알 수 있다면, 그걸 기준으로 '임신중지'가능 주수를 말하는 게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기술이 미진하고, 사회가 좀 더 난폭할 때, 엄마 몸 안에 있을 때는 독자성이 없어서 권리도 없는 존재라는 정의를 그대로 적용해서 10주나 32주나 동일하게 낙태라고 부를 필요는 없는 거니까. 불가피한 상황은 법이 있을 때에도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왔고, 지금 명문화시키려고 할 때는 지금의 법 수준에서 인공임신중지가 가능한 주수를 당연히 말해야 하지 않나.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존재기 때문에 법적으로 생명권이 없는 존재라는 태아,라는 말은 일면 맞고 또 틀린데, 그럼 막 태어난 아이를 엎어놓는 건 뭔가요? 모순들이 삶에 얼마나 많은데, 아직 엄마 뱃속에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주수가 있다니까. 산부인과 의사들의 의견(https://www.youtube.com/watch?v=tuFRGarPT0w)도 찾아서 본다.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 말하고, 낙태죄가 불합치 판정을 받기 전에 나는 불합치 판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때도 나는 동일한 사안을 죄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인도나 중국의 여성운동에 대해 듣고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합리의 언어가 아닌 언어로,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생각했다. 

물론 나도 법이 죄책감을 덜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법이 어느 정도의 가이드이고, 그게 바로 공동체가 가지는 합의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법에서 죄가 아니라고 해도, 죄라고 생각할 수 있고, 죄라고 해도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문화되었던 법이 명문화되려 하면서 지금 기술 수준에서 재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생각하면서 만약 지금이라면 나는 태어날 수 없는 아이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할머니는 엄마를 마흔아홉에 가지고는 아이를 지우려고 안 한 일이 없다고 하셨었거든. 

그리고 나는 딸 셋에 막내가 아들인 집에 둘째 딸이니까. 

정말 여성인 나에게 저렇게까지 법을 고치는 게 좋은가, 생각하는 거지. 

인공임신중지가 피임보다 좋은 선택지가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남자에게 아이를 가졌으니, 나를 책임져,라고 말할 수도 없는 거잖아? 

여성이 누리는 많은 특혜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기르기 때문에 주어지는 건데 왜?

살아가는 모순 가운데 법이라는 공동체의 규율이 어디까지 얼마나 나를 통제하는 걸 수용할 것인가? 통제가 있기 때문에 누리는 혜택은 또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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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1-01-31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법만능주의는 국가가 개인에 간섭할수 있는 영역을 확장시키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의 영역을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매우 위험하지요(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겉으로 나타나는 소위 진보적 레토릭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사실상 신-신보수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별족 2021-02-01 05:34   좋아요 1 | URL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음 무섭습니다.

추풍오장원 2021-02-07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별족님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낙태죄 폐지 주장 이면에 법적 책임을 면하면 사회적 책임, 나아가 인간이 가져야할 책임까지 면한다는 생각이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읽지 않을 거라서, 질문하기 그렇지만, 왜 이 제목으로 정했을까? 묻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나치에 반대하다 죽어간 사람에 대한 고전을 내가 아는데, ‘자‘ 대신 ‘개‘를 넣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극심한 인간혐오의 표현은 아닌가, 싶어서. 질문만 하면서 별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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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토리 2018-04-2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무슨 인간혐오예요; 책은 읽지도 않을거면서 쓸데없는데서 불편함을 느끼시는군요

별족 2018-04-20 14:27   좋아요 0 | URL
혹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읽으셨나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나치 하 독일에서 나치에 끝까지 저항하던 젊은이들에 대한 책입니다. 그래서, 첫번째 별 하나 댓글,이 나치치하 독일에서 맨처음 동물보호법이 만들어진 것이나 서양인이 식민지인과 흑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한 걸 겁니다.
제목이 어쩔 수 없이 연상시키니까요. 히틀러가 굉장한 애견인이었다는 것과, 그가 유대인을 멸종시키려 했다는 것을 함께요. 동물권이 높은 곳에서 인권도 높을 거라는 것은, 히틀러치하 독일에서는 진실이 아니었으니까요.
제목이 불러오는 연상은 꼬리를 물고 ‘나의 정의만이 정의다‘처럼도 들리네요.

고라니 2018-04-24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가만히 계세요... 읽지도 않은 책 평은 왜 답니까? 그 책 제목 알아서 신난 건 알겠는데요 걍 속으로 생각하세요;

별족 2018-04-24 14:10   좋아요 0 | URL
????

박원빈 2018-04-24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심한 인간혐오‘. 글쎄요. 정확히는 지독한 인간중심주의, 인본주의자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지않았을까요.

별족 2018-04-25 06:14   좋아요 0 | URL
그걸 알고 이렇게 지었을까요?

ㅇㅇ 2018-05-1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별족님... 작가와 기획자, 편집자들은 책 제목을 분간없이 막 갖다 붙일 정도로 바보가 아닙니다. 게다가 달을 보라고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보시다니요. 그렇게까지 제목에 대해 의문이 드신다면 직접 읽어보심이 어떤가요? 간만에 이런 주제의 책중 괜찮아 보여서 서평보다 웃퍼서 댓 남기고 갑니다ㅠㅠㅋㅋ

별족 2018-05-12 08:24   좋아요 1 | URL
스스로 인간을, 동족을 혐오하는 걸 자각하기는 매우 어렵답니다. 제일 후진 병원은 내가 사는 동네 병원이고, 제일 답없는 인간은 가까운 사람이라고들 쉽게 말하지 않나요? 저는 아래 달린 백자평이 왜 나왔는지를, 어쩌면 설명해주고 싶었던 거죠. 읽지도 않고 별하나 단 백자평,이 왜 달렸는지를-그 분은 아예 대화상대로 보지 않고 설명하고 싶어하지 않으신 것 같아서요.

ㅇㅇ 2019-09-26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생하십니다. 반려견이니 동물권이니 뭐 소중한건 다 이해하지만, 제목은 정말 저도 마음에 안듭니다. 이건 일종의 모독인거 같아요. 가끔 보면 심하다 싶을 정도의, 병적으로, 특히 ‘개‘ 나 ‘고양이‘의 권리 운운에 심취하신 분들을 보는데... 이런 분들에게 ‘인간‘이야기를 꺼내면 보통 감정싸움으로 몰아세우거나 논리를 회피하시더라구요. 타인은 모두 사라지고, 본인과 개들만 살아가는 세상이라도 원하는건지.

별족 2019-09-30 15:45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