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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Gauguin 디스 이즈 고갱 This is 시리즈
조지 로담 지음, 슬라와 하라시모비치 그림 / 어젠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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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젠다출판사의 ‘This is’ 시리즈는 재미있는 일러스트를 곁들인 미술책이다. 출판사 소개에 의하면 그래픽 아티스트 평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번역된 아티스트는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잭슨 폴록, 폴 고갱이다. 평전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내용 중간에 화가의 작품들을 설명하기도 한다. 미술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예술가의 일화도 볼 수 있다. 시공사, 마로니에북스, 예경, 한길아트 같은 출판사에서 만드는 화가 시리즈들을 읽으면 마치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 화가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공부하려는 독자들이라면 참고하면 좋은 책이지만, 미술 비전공자에게는 딱딱한 서술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This is’ 시리즈는 미술 비전공 독자들이 읽기에 아주 적합한 책이다. 또 책값이 착하다. 그러나 《디스 이즈 워홀》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리즈들의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는 낮다. 디스 이즈 시리즈 중에서 가장 낮은 세일즈 포인트를 기록한 책은 《디스 이즈 고갱》이다.

 

고갱은 워홀, 달리, 폴록과 비교하면 국내에서 인기가 낮다.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전시회에서 고갱의 타히티 그림들이 선보였지만, 한때 절친한 동료였던 반 고흐의 인기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고갱도 반 고흐처럼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뒤늦게 인정을 받아 가장 비싼 화가의 대열에 올랐다. 반 고흐를 이해하는 데에 고갱의 존재감을 그냥 넘길 수 없다. 반 고흐는 고갱과 함께 노란 집에 머물었을 때 고갱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려고 했다. 또 르누아르, 피사로, 모네 등이 활동하여 근대 유럽에 맹위를 떨쳤던 인상주의의 위력이 떨어지고 있을 때, 인상주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넘어서려고 한 사람이 바로 고갱이다. 타히티의 원시적인 자연을 묘사하고자 했던 고갱의 정신은 훗날 피카소와 마티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인상주의(근대미술)에서 야수주의, 표현주의(현대미술)로 이어지는 회화의 흐름의 중간 지점에 고갱이 있었다.

 

 

 

 

 

 

 

 

※ 이 책에 고쳐야 할 내용이 있다. 이 그림은 고갱이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한 「누드 습작」 (1880년)이다. 누드모델은 고갱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 쉬잔이다. 그래서 이 그림을 ‘바느질하는 쉬잔’이라는 제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벌거벗은 쉬잔의 몸 전체를 감싸는 밝은 색의 흔적은 인상주의 회화에서 빛의 효과를 강조할 때 쓰는 기법이다. 그런데 《디스 이즈 고갱》의 12쪽에 보면 누드모델의 이름이 ‘쥐스탱’으로 소개되었다. ‘쥐스탱’(Justin)은 프랑스 남자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누드 습작 또는 바느질하는 쉬잔」의 프랑스어 작품명은 ‘Etude d'une Femme Nue, Suzanne entrain de Coudre’이다. ‘쥐스탱’(Justin)이 아니라 ‘쉬잔’(Suzanne)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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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15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를 노란 집도 원래 고갱 집 아니었어요? 기억이 가물가물.. cyrus님이 소개하는 명화들 잘 보고 있습니다^^

cyrus 2015-07-16 17:05   좋아요 0 | URL
반 고흐가 노란 집에 있는 방을 얻었습니다. 방을 마련하고 난 뒤에 반 고흐는 고갱에게 아를에 있는 노란 집으로 오라고 초청합니다. ^^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많은 자화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자화상이라고 해서, 거울에 비추듯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외부에 비치고 싶은 이미지, 오래 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거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미 큰 명성을 얻었던 렘브란트 역시, 자화상 속의 자신이 좀 더 거장답게 보이길 원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렘브란트의 자화상에는 어두운색과 그늘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제 젊은 날의 모습은 없고 늙고 볼품없는 노인이 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주목하면서 평생 자신을, 아니 영혼까지를 화폭에 담아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을 철저하게 살펴봤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점점 늙어가는 삶에 대한 초탈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반 고흐의 자화상은 극도의 불안감에 대한 적극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자화상에는 일관되게 심각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강렬한 시선이 있다. 절망하는 한편에 도전의식이 자리 잡고, 불완전하고 불안해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항상 무언가를 갈구한다.

 

이름난 화가 중에는 유독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많다. 반 고흐와의 악연으로 알려진 고갱 또한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고갱의 인기는 반 고흐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반 고흐의 그림은 꾸준히 복제되고, 그의 이름이 들어간 노래는 지금도 라디오에 흘러나온다. 반면, 고갱의 이름은 반 고흐가 일으켰던 귀 절단 사건을 소개할 때에만 언급될 뿐이다. 이 이야기에서 고갱은 반 고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최악의 파트너가 된다. 고흐의 자해 소동이 신문에 보도되어 동네 전체에 퍼지게 되자, 고갱은 아무 말 없이 노란 집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귀는 그 자신이 자른 것이 아니라 펜싱을 했던 고갱이 잘랐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었다. 올드한 세대라면 반 고흐의 치열한 삶을 그린 영화 ‘열정의 랩소디’에서 고갱 역으로 분한 앤서니 퀸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반 고흐의 엄청난 인기에 밀리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고갱은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 고갱의 자화상이 반 고흐와 렘브란트의 자화상 못지않게 흥미로운 그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알고 보면 고갱도 반 고흐처럼 불행한 일을 많이 겪었다. 반 고흐와 렘브란트처럼 고갱도 기쁨과 슬픔이 느껴지는 자화상으로 자신이 처한 주변 상황을 이야기했다. 

 

 

 

 

 

폴 고갱 「이젤을 앞에 둔 자화상」 (1885년)

 

 

 

고갱이 1885년에 그린 자화상을 보라. 인상주의 회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초창기 때 제작한 것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냥 평범한 느낌을 주는 자화상이다. 그렇지만, 자화상에 묘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그림 속 고갱은 뭔가 쫓기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고갱이 앉은 공간이 비좁아 보인다. 고갱의 한쪽 손은 이젤로 향해 있지만, 붓을 확실하게 쥐어지지 않고 있다.

 

이 자화상의 제작 시기는 고갱이 화가가 되려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3년 차로 접어든 해이다. 원래 고갱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먹고 살기에 충분했던 주식중개인이었다. 이때 당시만 해도 고갱에게 미술은 취미였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분을 맺었지만, 모네와 르누아르는 고갱을 독창성이 부족한 아마추어 화가로 여겼다. 1882년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고갱은 실직자 신세로 전락했다. 고갱 가족들에게는 실직자가 된 가장의 모습에 절망했으나 고갱 본인은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할 중대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 덴마크 사람 부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림에 전념하기로 했다. 곧 마흔을 앞두는 남편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아내는 탐탁지 않았다. 아내의 냉정한 태도는 외로이 그림을 그리는 고갱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대중과 평론가들은 고갱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이 있는 보금자리와 화가들의 세계, 둘 중 한 곳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고갱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만족스럽고, 그림에 대한 내적 고민이 많았다. 「이젤을 앞에 둔 자화상」은 그림에 열중하는 화가의 모습이 아니라 불투명한 미래 앞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가장의 모습이다. 좁게 느껴지는 공간은 고갱의 열악한 삶을 보여준다.

 

 

 

 

 

 

폴 고갱 「레 미제라블」 (1888년)

 

 

 

「이젤을 앞에 둔 자화상」을 그리고 난 뒤, 3년이 지나서야 동료 화가들은 고갱의 능력을 인정했다. 고갱은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이라는 시골 마을에 머물면서 친분이 있는 화가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토론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퐁타방 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화가 모임이 만들어지면서 고갱은 퐁타방 파를 이끄는 대표 화가로 인정받았다. 이때가 고갱의 첫 번째 전성기였다. 1888년에 제작된 「레 미제라블」은 성공대로를 걸으면서 한결 여유로워진 ‘화가’ 고갱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1885년에 그린 자화상에 비하면 색채가 상당히 밝아졌다. 고갱은 자신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으로 묘사했다. 그림 오른쪽 하단에 ‘레 미제라블, 빈센트, 그리고 고갱’이라는 사인이 있다. 고갱은 이 자화상을 반 고흐에게 선물로 주었다. 친분이 있는 화가들은 자신의 모습이 있는 자화상을 서로 주고받았다. 반 고흐가 먼저 자신의 자화상을 고갱에게 주었고, 이에 대한 답례로 고갱은 「레 미제라블」 자화상을 제작한 것이다. 서명 위에 있는 사내의 옆모습이 그려진 그림은 퐁타방 파 소속 화가였던 에밀 베르나르의 초상화이다. 베르나르는 고갱과 반 고흐와 친했다.

 

하지만 고갱은 여전히 자신이 대중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그가 주도한 ‘퐁바방 파’는 새로운 기법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화파였으나 인상주의파의 영향력만큼으로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외면 받은 장발장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반 고흐와 베르나르에 비하면 고갱은 이들보다 좀 더 앞선 화가임은 분명했다. 고갱이 아무리 장발장 코스프레를 했어도 고갱 특유의 매서우면서도 생기 있는 눈빛은 그대로다. 고갱은 눈빛으로 자신이 반 고흐와 베르나르보다 한 수 더 위라는 점을 은근히 과시한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 있는 자화상」 (1890년)

 

 

「황색 그리스도 있는 자화상」은 고갱의 자화상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왼쪽에는 1889년에 완성된 「황색 그리스도」가, 오른쪽에는 자신의 얼굴을 그로테스크하게 형상화한 도자기 병이 놓여 있다.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상을 그리는 장르라서 예수의 얼굴이 오른쪽 아래로 향해 있다. 이 자화상에서 예수는 예술가의 고뇌를 상징한다. 고갱은 예술에 대한 외로운 투쟁을 경건하게 묘사하기 위해 예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그림 왼쪽에 배치했다. 항아리 병은 고갱이 그토록 동경했던 '야만', '원시'를 상징하는 페르소나다. 그는 문명의 때에 묻지 않은 고귀한 야만인이 되고 싶은 문명인'이었다. 파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타히티로 가서 '야만'의 가면을 써서 타히티 사람이 되었고, 다시 파리로 돌아올 때는 '야만'의 가면을 벗고 문명인이 되었다. 고갱의 세 가지 얼굴을 그린 작품으로, 화면 안에서 화가는 자신의 다양한 인격적 측면을 보여 준다.

 

 

 

 

 

 

폴 고갱 「골고다 근처의 자화상」 (1896년)

 

 

 

「골고다 근처의 자화상」에서 고갱은 예수로 변신했다. 그러나 고갱의 표정은 침울하다. 검은색으로 가득한 골고다 언덕은 고갱을 집어삼킬 듯하다. 예수라기보다는 늙고 지친 병자처럼 보인다. 말년의 고갱은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해 다시 열대의 섬으로 돌아가서 초라한 여생을 보낸다. 파리는 고갱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고, 가족과 동료 화가들은 그의 곁을 떠났다. 매독과 피부병은 노쇠한 고갱을 더 지치게 하였다. 이제 고갱을 기다리는 것은 바로 죽음.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 저승사자가 고갱을 노려본다. 고갱은 목덜미에 스치는 저승사자의 눈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생기 잃은 고갱의 눈빛에는 삶에 대한 미련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예술가의 자화상은 더 이상 단순한 인물화에 머물지 않는다. 화가의 얼굴은 저마다의 경험과 세상의 풍파에 의해 음영이 달라진다. 자화상은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림이다. 우리는 저만치 떨어진 거리에서 캔버스 안에 남아있는 한 사람의 인생 드라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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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14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6펜스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죠. 자유로운 영혼이여.. 첫번째, 세번째 자화상만 봤었는데요.. 렘브란트 자화상을 보면 당시 그가 앓았던 질병도 짐작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cyrus 2015-07-15 18: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최근에 고흐의 자화상을 통해서 고흐의 병명을 추정하는 연구 결과도 나왔어요. 몸의 소설은 아직 안 읽어봤습니다. 고갱 책을 더 찾아봐서 읽은 뒤에 소설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

yamoo 2015-07-1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고갱이군요!! 고갱에 관계된 미술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그의 자서전 격이 책도 봤습니다. 근데, 아직달과 6펜스는 완독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관심있는 화가를 보니 반갑네요...데이비드 호크니도 함 다뤄주세요. 저 완전 좋아하는 화가입니당~ㅎ

cyrus 2015-07-15 18:16   좋아요 0 | URL
저도 몸의 소설은 안 읽어봤습니다. 그래도 고갱의 실제 삶 자체가 드라마틱합니다. 그가 처한 상황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족을 외면하고 타히티 소녀들을 자신의 성적 욕구를 푸는 대상으로 여기는 고갱의 모습이 불편했습니다. 나중에 호크니의 책을 다시 잃어봐야겠어요. ^^

바람향 2015-07-1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갱보다는 <달과 6펜스>를 먼저 읽었는데요. 주인공이 이제 자신만의 삶을 살겠다며 가족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렸는데, 그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 주인공이 실제 화가인 고갱이었다는 것을 알고 고갱의 삶이나 작품들을 찾아보기도 해서 제게는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책과 화가네요^^ㅎㅎ cyrus님~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ㅎㅎ

cyrus 2015-07-16 20:05   좋아요 0 | URL
어렸을 적에 위인전으로 반 고흐와 고갱이 누군지 처음 알았어요. 두 사람의 삶에 관한 책을 읽으니까 위인전에서 봤던 것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어요. 특히 고갱이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도 원주민 소녀들을 정부로 삼은 사실은 충격적이었어요.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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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이 저에게 양말을 줬어요! 도비는 자유로운 집요정이에요"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도비가 하는 말)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올해도 고객의 구매 기록을 수치화한 통계 내역을 공개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알라딘 홈페이지 위에 ‘당신의 총 구매 금액은 얼마일까요? 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가 보인다. 알라딘 구매 고객이라면 그동안 구매한 책이 총 몇 권이며 월평균 구매 금액은 얼마인지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많이 구매한 작가가 누구인지, 거주지에서는 몇 번째로 책을 많이 구매했는지 등 다양한 구매 관련 통계도 확인할 수 있다. 서비스 오픈 16주년 기념 이벤트 기간 중 이벤트 대상 도서를 포함해 5만 원 이상 구매하면 책 표지로 만든 북 스탠드를 받는다. 알라딘 측에서는 구매 고객을 위한 16주년 특별 선물이라고 하는데 이 선물을 받으려면 지갑을 과감히 여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구매 과정에서 선택한 증정품에 따라 구매 마일리지가 차감된다. 도서정가제의 최대 할인 폭인 ‘정가의 15%’를 넘지 않기 위해서다.

 

 

 

 

 

알라딘은 구매 고객의 눈에 속삭인다. 당신은 16년간 알라딘과 함께했다고. 그러면서 당신의 구매 기록을 보여준다. 램프의 요정 지니(genie)는 알라딘의 소원을 다 들어주는 신령이다. 알라딘은 디지털화로 탈바꿈한 거대한 지니다. 일명 ‘디지털 지니’다. 알라딘 홈페이지를 접속하는 구매 고객이 지니에게 명령하는 알라딘이다. 그래서 알라딘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알라디너’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부터는 구매 고객을 ‘알라디너’로 부르겠다) 디지털 지니는 알라디너가 가지고 싶은 것을 보여준다. 알라디너는 매달 디지털 지니가 선보이는 증정품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책을 주문한다. 디지털 지니는 책을 구매한 알라디너에게 선물을 준다. 5만 원 이상 책을 사지 않은 사람은 선물을 받을 수 없다. 디지털 지니는 16가지나 되는 알라니더의 기록들을 상세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알라디너에게 지금과 같은 독서 패턴을 쭉 유지하면, 80세까지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자신의 구매 기록을 타인에게 공개하도록 권유까지 한다. 알라디너는 자신의 구매 기록에 흡족해하면서 수치화된 독서량을 블로그나 SNS에 공개한다. 16가지의 맞춤형 기록을 다 보여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디지털 지니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알라딘과 함께해 주세요!”

 

심리정치 시대에 사는 대중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착각한다. 신자유주의는 대중에게 자유를 허용한다고 약속을 하나, 현실은 자유를 얻으려면 자본이 필요하다. 즉, 자유를 누리기 위해 열심히 일해서 얻은 자본을 지불해야 한다. 자유를 얻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노동에 투입되다 보니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자유마저 희생하는 상황을 감수한다. ‘디지털 지니’ 알라딘이 운영되는 방식은 디지털 심리정치의 원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하고 싶다’라는 욕망을 창출하고 자발적으로 착취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심리정치라고 한다면, 알라딘의 디지털 심리정치는 알라디너에게 ‘책을 사고 싶다’라는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메피스토펠레스다. 독서를 권장하는 세련된 악마는 알라디너의 지갑과 구매 마일리지를 담보로 증정품을 준다. 알라디너는 매년 달라진 게 없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알라디너는 알라딘에서 읽고 싶은 책을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제한적이다.

 

‘알라딘 추천마법사’는 알라디너의 구매 내역, 클릭 내역, 블로그 활동 등을 기반으로 고객의 취향을 분석해 그에 맞는 최적의 도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이다. 추천마법사는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 영향을 수집하는 빅테이터를 기반으로 한 추천 시스템이다. 알라디너의 구매 성향이나 관심사 등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알라디너에게 책을 추천한다. 최고의 책을 투표로 선정하는 ‘제6회 독자 선정 이 분야 최고의 책’ 이벤트에 알라디너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최고의 책을 뽑을 수 있다. 추천마법사에 근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빅데이터는 우리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행동패턴, 무의식적 욕망까지 읽어 낸다. 한병철은 인간의 행동을 정량화하는 빅데이터가 자유의지의 종언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북플의 마니아 지수는 북플 내 모든 활동을 수치화한 것이다. 관심 있는 책에 별점을 주거나, 서평을 작성하면 누구나 특정 분야의 마니아가 된다. 결국, 지수를 높여서 어떤 분야의 첫 번째 마니아가 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책을 구입하고,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알라딘의 스마트 권력은 소통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무제한의 자유를 허락하고 있지만, 알라디너는 '자유'라고 착각한 채 글이나 사진을 블로그에 채움으로써 스스로 노출하고 전시한다. 자기 노출의 정보는 더 많은 구매욕을 생성한다. 북플은 마니아 지수가 높은 알라디너와의 소통을 유도하여 마니아가 소개한 책을 읽도록(구매하도록) 장려한다.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디지털 파놉티콘’ 안에 욕망을 창출하는 심리정치가 작동된다.

 

한병철은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벗어나려면 내면을 비우는 백치 상태가 되라고 말한다. 지폐를 가지고 놀다가 찢어버린 그리스의 아이들처럼 자유를 착취하는 대상을 멀리하자는 의미인 셈인데 대안이 현실적인 면에서 떨어진다. 돈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 속에 자본의 속박을 벗어나서 해탈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글에서 나는 알라딘의 마케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심리정치의 손아귀에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적으로 여유 있게 살아야지” 하고 큰소리를 치지만, 어느새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게 나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멀리하여 디지털 문맹으로 살겠다는 현대판 러다이트 족이 되고 싶지 않다. 디지털 사회를 거부할 수 없지만, 냉정하게 손익계산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신을 차리려면 이런 중심 잡기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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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7-1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적 사유룰 알라딘 데이타에 비유하셧군요 ...이주 적절한....

cyrus 2015-07-13 18:49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쓰느라고 억지로 끼워 맞췄습니다. 논리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7-1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그 선물 받고싶지 않아요~~ 근데 자꾸 받아가래요~~

cyrus 2015-07-13 18:50   좋아요 0 | URL
신간도서보다는 선물의 유혹 때문에 많이 흔들립니다. ^^;;

:Dora 2015-07-1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지름신은 나에게 유일신

cyrus 2015-07-13 18:51   좋아요 0 | URL
저도 책지름신의 교리를 신봉하는 1인입니다.

조선인 2015-07-1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알라딘은 나빠요. 그래도 알라딘을 못 버리겠어요. 유혹에 진 어리석은 이의 고백이랍니다.

cyrus 2015-07-13 18:5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지금은 참고 있지만, 마음에 드는 증정품이 있으면 바로 구매하려고요. ㅎㅎㅎ

해피북 2015-07-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5만원 이상이라고 해도 이벤트 도서가 포함되지않으면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없어요.그리구 알라딘 앱을 구동할 때 보여지는 추천 도서 책장 목록을 살펴보면 이미 구입한책과 전혀 관심이 없는 책들이 많아 그닥 활용성도 없는거 같더라궁노 그냥 컴퓨터 메인 화면 처럼 다양한 정보가 한눈에 들어오면 좋겠다는 푸념을 하게 되더라구요 ㅋㅂㅋ

cyrus 2015-07-13 18:55   좋아요 0 | URL
첫 번째 문단에 ‘이벤트 대상 도서를 포함해 5만 원 이상 구매하면’이라고 썼어요. 제 생각이지만, 추천마법사 서비스가 알라디너들에게는 환영받지 않는 서비스인 것 같아요. 나름대로 알라딘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을 서비스 같았는데, 저도 해피북님이 겪었던 것처럼 추천마법사에 소개되는 책들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굳이 알라딘이 읽으라는 권하는 책은 읽고 싶지 않았어요. ㅎㅎㅎ

stella.K 2015-07-13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너의 리뷰는 나날이 진화하는구나!
모르긴 해도 다음 달 이달의 당선작이 되지 않을까 싶네.ㅋ

솔직히 난 이 빅 데이터가 싫어.
지난 16년 동안의 기록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이런 식으로
감시 당하고 있었구나 해서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
물론 그렇다고 안 들춰 볼 수도 없고 해서 보긴 봤다만
무엇을 근거로한 수치일까 의문스럽기도 하더군.
솔직히 난 요즘 알라딘에서 책을 거의 사지 않거든.
개인 중고샵이나 예스24에서도 사는데 이것을 포함시킨 수치는 아닐 것 아냐?
그래놓고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몇 권을 읽을 거다란 게
장난하나 싶더군.
뭐 이런 건 알라딘만 하는 짓은 아닐테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이렇게 사람을 수치화하고, 5만원에 현혹시키고 그럴 줄 알았으면
알라딘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거다.
예전에 알라딘은 참 인간적이었는데...ㅠ
언제 적 옛날 추억담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알걸?
옛날과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ㅉ
그런데 책 검색은 알라딘이 좋더군. 중고샵하고. 아직은...ㅋ

cyrus 2015-07-13 18:57   좋아요 0 | URL
몇 년 전부터 알라딘에서 활동 내역을 수치화하는 서비스가 많이 생겼어요. 어찌 보면 16주년 기록을 공개하는 서비스도 정말 잘 만든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저도 결과를 완전하게 믿지는 않아요. 또 활동 내역을 공개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북다이제스터 2015-07-1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병철 책 다신 안 읽는다고 하셨으면서... 또 속으신거예요? ^^

cyrus 2015-07-13 18:59   좋아요 0 | URL
사실은 상반기 베스트 도서 서평을 작성하면 하반기 기대작 한 권을 선물로 준다기에, 일단 분량이 얇은 한병철 씨의 책을 선택해서 읽었어요. 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5-07-13 22:02   좋아요 0 | URL
어쩔수 없이 저처럼 이벤트에 약하시군요. 실망입니다. ㅠㅠ

cyrus 2015-07-14 21:22   좋아요 0 | URL
제가 서평 이벤트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요. ^^
 

 

 

나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다. 일 년 동안 봤던 영화를 세어보면 가까스로 10편을 넘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다 집에서 보는 걸 더 좋아한다. 《고양이의 서재》(유유출판사, 2015)의 저자 장샤오위안은 영화 DVD를 모으는 영화광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 감상법을 ‘디스크파’라고 말한다. 디스크파의 장점은 보고 싶은 영화 장면을 되돌려 보는 것이다. 비록 나는 장샤오위안처럼 영화 DVD를 모으지 않지만, 합법적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영화를 내려받아 본다. 이쯤 되면 나는 ‘다운로드파’다. 한 번은 영화 서평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 3년 전에 알라딘 블로그에 영화 서평 한 편을 작성하려면 내려받은 영화의 특정 장면을 두세 번 이상 돌려 봤다. 영화를 한 번만 봤는데도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제대로 정리할 수 없었다. 이런 방식이 익숙해지다 보니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편해졌다. 그러나 영화 서평 작성을 목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은 무척 지루한 일이다. 봤던 영화 장면을 여러 번 돌려 보는 것도 귀찮다. 서평을 작성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화는 그저 재미있게 즐기는 영상이다. 언제부터인가 영화 서평을 쓰지 않아서 이제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 흥행 영화 감상문을 종종 보곤 한다. 내가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글이라면 아예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영화를 본 척하려고 감상문에 ‘좋아요’를 누르고 싶지 않다. 댓글에 짤막한 의견도 남기지 않는다. 술자리 대화를 하다가 영화 얘기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보지 않은 영화가 대화의 소재가 된다면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그냥 듣기만 할 뿐이다. 괜히 아는 척하려고 대화에 끼어들다가 밑천이 드러나면 쪽팔린다. 그래서 영화를 좀 봤다는 사람의 영화평에 반박하지 않는다.

 

 

 

 

 

인터뷰 전문은 '여기'에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다르다. 영화를 좀 본다는 강신주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모 남성패션잡지에 강신주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어는 영화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취향이 대중의 평균적인 수준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서 강신주는 <어벤져스>를 보는 것은 생각 없이 술집에서 여자랑 노는 것과 같고,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은 연애를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실 인터뷰어의 진행이 만족스럽지 않다. ‘대중의 평균적인 수준’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개인적 감정을 전체의 감정과 동등하게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터뷰어의 말 같지 않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영화에 관한 입장을 피력하는 강신주의 모습도 답답하다. 강신주가 생각하는 ‘영화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벤져스>의 어떤 장면이 강신주의 마음에 안 든 것일까?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미가 모호하다. <어벤져스>를 보는 것에 대한 문제점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를 제대로 보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은근슬쩍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사람의 감정을 무시한다. 혹시 ‘영화를 제대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신 분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그리고 ‘술집 가서 여자랑 노는 것’의 의미도 명확하지 않다.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서 노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아니면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의 줄임말, 연인 관계가 아닌 친구 사이로 지내는 여자)과 술집에서 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강신주는 전자의 의미에 염두를 뒀을 가능성이 있다. 술집에서 노는 일은 생각 없이 시간을 허투루 쓰는 부정적 행동으로 봤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벤져스>를 보는 것도 생각 없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과 동등한 의미가 된다. 영화 한 편을 재미있게 본 사람은 영화 관람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신주 본인이 <어벤져스>를 안 좋게 봤더라도,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타인의 감정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는 수준 이하의 취향으로 말해선 안 된다. <어벤져스>를 한 번도 보지 않은 나조차도 불쾌하게 만드는 독선적인 발언이다.

 

강신주가 후자의 의미를 생각해서 말했어도 논리성이 떨어진다. 학창 시절 동창이었던 여사친과 오랜만에 술집에서 만나서 놀 수 있다. 사소한 만남을 연애와 거리가 먼 저급한 만남으로 보는 것은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워 상대방을 비난하는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연애를 하면 생각을 한다’는 말의 의미가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생각’이라는 단어를 적절히 사용하면 자신이 마치 ‘생각하는 철학자’라도 된 것처럼 여긴다. 인터뷰 전문을 보면 강신주는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 같다. 결국, 이 인터뷰는 젠체하는 바보들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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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7-12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군요. 남자 강신주. 인간 강신주이면 좋았을건데..
어벤져스 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취향의 문제이니까요~~ 그것도 여자를 예를 들어서..... 굳이 왜 저런 비유를 했을까요~

cyrus 2015-07-12 21:11   좋아요 0 | URL
작년인가요? 강신주가 칼럼에 노숙자를 ‘좀비’라고 비유해서 비인격적 존재로 표현하는 바람에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죠. 강신주는 비유하는 표현 능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도 문장 하나를 쓸 때 신중하게 생각해야겠습니다.

파트라슈 2015-07-13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벤저스 보더라도 연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텐데요..

cyrus 2015-07-13 20: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벤져스> 나 <매트릭스 >같은 SF 영화도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반 고흐 : 고독 속에 피워낸 노란 해바라기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3
엔리카 크리스피노 지음, 정지윤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데생(소묘 혹은 드로잉)은 화가의 미적 표현이 구체화하여 나타난 최초의 조형표현이다. 이 때문에 거칠기는 하지만 생생하고 원초적인 작가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장르이다. 앵그르, 드가, 피카소 등 서양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가들도 데생을 통해 작품의 아이디어를 수정해나갔던 것을 보아도 데생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데생은 유화의 그늘에 가려진 채 밑그림의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흐는 100점이 넘는 유화를 남겼다. 우리는 고흐를 멋진 유화를 남긴 화가로만 기억할 뿐, 그가 1000점 이상의 데생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고흐의 그림이 컬렉션들에 주목받으면서 그의 데생 또한 값어치가 제법 상승했다. 만약에 고흐가 유명해지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데생은 홀대를 받았을 것이다.

 

 

 

 

 

고흐  「삽질하는 사람」 (1882년)

 

 

극빈했던 고흐에게 데생은 최고의 화가가 되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목사의 꿈을 포기하고, 무작정 전업 화가의 길로 뛰어들었던 고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목사였던 아버지와 갈등을 더욱 깊어져만 갔고, 고흐를 위한 경제적 지원도 줄어들었다. 미술도구를 살 돈이 없어서 마음껏 유화를 그릴 수 없었던 고흐는 데생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881년에서 1885년 사이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동안 상당히 많은 데생을 남겼는데, 고흐의 작품 연보를 논할 때 이 기간을 네덜란드 시기라고 말한다.

 

 

 

 

 

고흐  「손수레 끄는 여인」 (1883년)

 

 

 

색채의 효과를 처음으로 알기 시작했던 파리로 이주하기 전이라서 네덜란드 시기의 고흐 작품들은 화려하지 않다. 1880년대 유럽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활력 넘치는 도시사회로 빠르게 변화하던 반면, 시골은 마치 정지한 듯 거의 변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고흐는 가난한 농민과 광부, 직조공들의 생활상을 그렸다. 특히 인물화는 고흐가 특히 매력을 느꼈던 장르였다. 가끔 보이는 어설픈 인물처리나 묘사는 입문 초기 표현기법의 미숙함에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투박한 모습을 꾸밈없이 묘사하려는 정직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고흐는 한때 종교에 심취했었던 시절에 성경과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탐독했으며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비록 목사의 꿈은 접었어도 고흐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종교적 감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 남아 있었다. 고흐는 도덕적 신념을 예술에 반영했다. 밀레를 흠모했던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십여 차례나 반복적으로 모사하며 그를 닮아가고 싶어 했다. 네덜란드의 고흐는 밀레처럼 소박한 그림을 그리는 농촌화가가 되고 싶었다.

 

 

 

 

 

고흐  「잡초를 태우는 농부」 (1883년)

 

 

 

반 고흐 : 고독 속에 피워낸 노란 해바라기는 고흐의 데생 작품을 비중 있게 소개한다. 사실 초창기 작품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고흐 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 고흐의 예술적 황금기라고 일컫는 아를 시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고흐의 데생은 그의 삶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데생을 고집하는 이유를 밝혔다.

 

 

내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데생을 한다는 점을 네가 알아주기 바란다. 첫 번째 이유는 보다 정확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싶어서고, 두 번째 이유는 유화와 수채화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야.” (18927, 44쪽 인용)

 

 

고흐는 모델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사진과 같은 정확한 묘사를 싫어했다. 하지만 타고난 성정(性情)에 의해 세상을 도덕주의자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고흐는 그림의 대상을 인생이라는 상징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취급했다.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이름 없는 농촌 이웃들, 가난하게 사는 광부들의 모습을 담아놓았다. 그래서 고흐의 데생은 차분하게 감정을 드러낸 캐리커처에 가깝다.

 

반 고흐 : 고독 속에 피워낸 노란 해바라기에서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내용으로 귀를 자른 고흐의 자해 사건과 자살 사건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고흐가 잘린 귀를 창녀에게 주는 이유를 고흐가 소의 귀를 잘라 미녀에게 선사하는 투우사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 고흐의 광기 이미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칼 야스퍼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다. 야스퍼스는 고흐가 정신분열증에 앓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자해 소동 이후에도 비판적 분별력이 남아있었던 고흐의 정신 상태를 고려한다면 야스퍼스의 주장이 모순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고흐가 보리밭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 겨누었던 사건의 당시 정황을 설명하면서 가셰 박사를 의심하기도 한다. 고흐와 친분이 있었던 가셰 박사가 총상을 입은 고흐에게 어떠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고흐와 가셰 박사의 우정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고흐는 박사의 능력을 의심했고, 그 이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했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싸고 완벽한 자살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학계에서도 밝히지 못한 상황이다.

 

 

 

 

※ 저자는 고흐의 그림을 ‘예술 작품과의 완전한 합일과 예술의 삶의 융화로 표현되는 독특한 상징주의’(110쪽)라고 말하면서도 그다음 문장에서 고흐가 상징주의 미술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후 문장의 의미가 상반된다. 저자는 고흐를 독특한 상징주의자로 평가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고흐는 자신이 상징주의자로 소개한 평론을 읽고 나서 평론가에게 편지를 보내어 반박했다. 

 

※ 37쪽은 고흐에게 영향을 준 헤이그파를 소개한 글이 있다. 여기서 헤이그파 화가들을 소개하는 과정에 ‘야코프 형제(1837~1899), 마테이스 마리스(1839~1917), 빌렘 마리스(1844~1910)’이라고 적혀 있다. 마리스 삼 형제 중 장남인 야코프 마리스를 ‘야코프 형제’라고 잘못 적었다.

 

※ “태양이 내 방의 노란 커텐을 스쳐 지나갈 때 이 꽃들은 금빛으로 넘치고...” (76쪽) ⇒ ‘커텐’을 ‘커튼’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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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7-1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 하신것 처럼 고흐에게 초기 중기 데생은 실력 향상과 유화의 비쌈을 피해갈 수 있는 안식처 같더군요. :) 그리고 농민들과 광부들의 투박하고 정감가는 모습들이 배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

cyrus 2015-07-12 20:16   좋아요 0 | URL
고흐가 남긴 데생 작품들도 훌륭한데 유화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 때문인지 책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페크pek0501 2015-07-1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 고흐에 대한 글 시리즈네요. 흥미롭게 잘 읽었어요.
한때 제가 고흐의 그림을 흉내 내고 싶어서 그의 스케치를 따라서 연필화를 그린 적이 있어요.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때이기도 했고 그림을 그릴 때의 화가의 정서를 알고 싶었던 이유도 있어요. 아직도 그 연필화를 가지고 있는데 우습답니다. 엉터리라서 말이죠.ㅋ

cyrus 2015-07-12 20:19   좋아요 0 | URL
고흐는 모델을 구하기 힘들어서 길을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바로 스케치를 했다고 합니다. 페크님처럼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기도 했고요. 페크님은 화가의 정서를 근접하게 이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5-07-1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님의 글들이 다 좋은데 말이죠. 특히 이렇게 그림 관련, 화가얘기... 깊이와 애정이 느껴져서 더 좋아요~^^

cyrus 2015-07-12 20:20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고흐 책 한 권만 봐도 고흐를 다 아는 느낌이었는데, 관련 책을 더 찾아보게 되니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화가의 삶에 대해서 더 애정이 느껴졌어요. 고흐의 편지를 읽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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