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모자를 벗으세요. 여기 천재가 등장했습니다!”

 

독일의 음악가 슈만(Schumann)쇼팽(Chopin)을 음악평론에 소개할 때 한 말이다. 이 말은 쇼팽을 언급할 때 널리 회자하고 있다.

 

 

 

 

 

 

 

 

 

 

 

 

 

 

 

 

 

 

훌륭한 책, 특히 손에 넣기 어려운 훌륭한 책을 만나면 경외감이 느껴진다. 그럴 때, 나는 슈만의 말을 빌려 애서가들 앞에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여러분,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덮으세요. 여기 전설의 책이 등장했습니다.”

 

 

 

 

 

《토탈호러 1》(서울창작 · 1993), 《환상특급》(서울창작 · 1994)은 ‘전설의 책’이다. 두 권의 책에 대한 평이 요란한 호들갑으로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이 책들의 정체가 뭐기에 ‘전설’이라고 하는 걸까.

 

《토탈호러 1》은 ‘공포’를 주제로 한 단편 선집이다. 이 책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썰렁한 괴담집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부분이 있었다. 괴담을 담은 공포물은 단순히 무서움만을 안겨줄 뿐 문학성이 떨어져 있다. 작가들이 쓴 ‘무서운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모았다는 사실이 그 당시에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토탈호러 1》은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겨냥한 공포소설 단편 선집이었다. 《토탈호러 1》의 역자는 지금도 활발히 장르문학 번역 활동을 하는 박상준 씨다.

 

 

 

《토탈호러 1》 목차

 

 

 

 

 

 

 

《토탈호러 1》에 열두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빅 네임’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이 포진되어 있다. 고마쓰 사쿄(小松左京)는 일본 SF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은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된 《일본 침몰》(범우사 · 2006)이다. 《토탈호러 1》의 첫 번째 수록작 『흉폭한 입』은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먹는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지금도 《토탈호러 1》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흉폭한 입』을 직접 읽고 싶어서 《토탈호러 1》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사실 내가 그 사람 중 한 명이다)

 

르네 레베테즈 코르테스(Lene Rebetez-Cortes)『새로운 선사시대』도 『흉폭한 입』 다음으로 충격적인 설정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기괴한 형태의 집단’으로 변신하는 설정이 그로테스크하다. 작품 속 세상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불가사의한 힘에 이끌려 줄지어 행렬해야만 하는 괴물의 부분체가 된다.

 

 

 

 

 

 

 

 

 

 

 

 

 

 

 

 

 

 

조지 R. R. 마틴(George R.R. Martin)『샌드킹』은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상(Hugo Award)과 네뷸러상(Nebula Award)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조지 R. R. 마틴은 SF, 공포, 환상 등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작품을 쓴 작가지만, 우리나라에선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원작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샌드킹』은 《조지 R. R. 마틴 걸작선 : 꿈의 노래 2》 (은행나무 · 2017)에 수록되어 있다.

 

 

 

 

 

 

 

 

 

 

 

 

 

 

 

 

 

* 《SF 명예의 전당 1 : 전설의 밤》 (오멜라스, 2010)

아서 C. 클라크의 『90억 가지 신의 이름』 수록

 

* 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황금가지, 2010)

『도시』 수록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 로버트 셰클리(Robert Sheckley),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등은 말할 것도 없는 유명한 작가들이다. 로버트 블록은 앨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영화 《사이코(psycho)》의 원작자이며, ‘공포소설의 할아버지’ 러브크래프트(Lovecraft)로부터 문학적 영양분을 얻기도 했다. 『지옥으로 가는 열차』는 1959년 휴고상 수상작이다.

 

 

 

 

 

 

 

 

 

 

 

 

 

 

 

 

* 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차일드》 (비채, 2016)

 

 

 

커트 보니것과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는 최근 국내에 주목받고 있는 미국 작가이다. 요즘 알라딘 서재에 커트 보니것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독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해리슨 버거론』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미래 사회를 어둡게 그린 소설이다. ‘평등’에 단호히 반대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인용할 만한 글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블러드차일드』도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외계인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토탈호러 1》을 소개할 때 ‘책 표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표지는 양반이다. 책을 펼치면 소름 끼치는 그림들이 나온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약 빨아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오해가 있을까 봐 책은 친절하게 ‘약 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정체를 알려줬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H. R. 기거(Hans Ruedi Giger).

 

 

 

 

 

 

 

 

 

 

 

 

 

 

 

 

 

* 《기거》 (아트앤북스, 2003)

* 《H. R. 기거》 (마로니에북스, 2010)

 

 

 

 

그는 ‘에일리언의 아버지’라 불리며 영화 <에일리언(Alien)> 디자인을 창조한 스위스 출신의 화가이다. 기거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은 그의 기괴한 그림을 ‘공포소설 선집에 어울리는 쌈마이한 그림’으로 취급했을 것이다. 지금은 기거의 그림을 실컷 볼 수 있는 화보집 두 권이 있다. 기거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고 싶으면 화보집을 보면 된다. 단, ‘19세 미만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아도 할 말 없는 에로틱하고, 잔혹한 그림이 있다. ‘안구 테러’를 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이 정도 소개만 봐도 여러분들은 《토탈호러 1》이 ‘전설의 책’이라는 내 평가에 수긍할 것이다. 《토탈호러 1》의 성공(?)에 힘입어 1996년에 《토탈호러 2》도 나왔다. 그런데 2권이 구하기 힘들고, 중고가가 비싼 편이다.

 

 

 

 

 

 

 

 

 

 

 

 

 

 

 

 

 

 

 

 

 

 

 

 

 

 

 

 

 

 

 

 

 

 

 

 

* 《SF 명예의 전당 1 : 전설의 밤》 (오멜라스, 2010)

톰 고드윈의 『차가운 방정식』 수록

 

*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 (현대문학, 2015)

『금빛 연, 은빛 바람』, 『태양의 금빛 사과들』 수록

 

*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53-1960》 (황금가지, 2009)

『동방의 별』 수록

 

*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아작, 2016)

『마지막으로 멋지게 할 만한 일』 수록

 

 

 

 

《환상특급》은 《토탈호러 1》에 비하면 무게감이 조금 떨어져 보인다. 《환상특급》에 수록된 작품들도 《토탈호러 1》에 못지않게 문학성이 뛰어나다. ‘장르문학 단편 선집’의 주요 단골 작가이자 SF 문학의 ‘빅 네임’인 아서 C. 클라크, 레이 브래드버리,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James Tiptree Jr.) 등의 작품이 있다. 이 책이 ‘무게감이 떨어진 책’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빅 네임들의 작품이 최근에 다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 있는 걸작’이다.

 

 

 

 

 

 

배리 롱이어(Barry B. Longyear)『적과 나』는 휴고상, 네뷸러상 2관왕 수상작이며 볼프강 페터젠(Wolfgang Petersen) 감독이 만든 영화 <Enemy Mine>의 원작이다. 팻 머피(Pat Murphy)『사랑에 빠진 레이첼』 은 1987년 네뷸러상 수상작이다. 아서 C. 클라크의 『동방의 별』도 1956년 휴고상 수상작이며 제입스 팁트리 주니어의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1986년 휴고상 후보작이다.

 

 

 

 

 

 

 

 

《환상특급》의 표지도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기거의 그림을 사용한 《토탈호러 1》보다 낫다. 《환상특급》 디자인을 만든 사람은 영국 출신의 화가 패트릭 우드로페(patrick woodroffe). 그는 동화에 나올법한 상상의 세계를 묘사한 환상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그밖에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정규 2집 앨범 표지 디자인을 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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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2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일본 갖다 온 거니?
다시 보니 반갑네.^^

cyrus 2017-08-26 14:34   좋아요 0 | URL
네. 어제 귀국했어요. ^^

stella.K 2017-08-26 14:39   좋아요 0 | URL
여독이 아직 풀리기 전일텐데
이런 글을 쓰다니...
그동안 글 쓰고 싶어 어찌 참았누?ㅎㅎ

cyrus 2017-08-26 14:43   좋아요 0 | URL
일본으로 가기 전에 글 앞부분을 미리 작성했어요. 뒷부분은 오늘 썼어요. ^^;;

겨울호랑이 2017-08-2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한동안 cyrus님께서 활동이 뜸하셨던 이유가 있었군요. 여름의 마지막 즈음. 드디어 공포물을 소개하셨네요^^:

cyrus 2017-08-27 20:21   좋아요 1 | URL
운이 좋았습니다. 구하기 어려운 책 두 권이 싸게 팔고 있길래 바로 주문했어요. ^^;;

서니데이 2017-08-2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잘 다녀오셨나요.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7-08-27 20:22   좋아요 1 | URL
제대로 먹고 놀았습니다. 휴가 한 주 금방 지나가버렸네요. ^^;;

카스피 2017-08-26 20: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본 다녀오셨나봐용,넘 부럽습니당 ㅜ.ㅜ
하지만 저도 cyrus님한테 자랑할것이 있는데 90년대 서울 창작에서 나온 위 단편집들(총 6권인지 7권인지 좀 가물가물하네요.모두 박스속에 쳐박혀 있어서 말이죠)을 몽땅 가지고 있답니다.ㅎㅎ 그중에는 비싸게 구한것도 상당수 이지만요^^;;;

cyrus 2017-08-27 20:24   좋아요 0 | URL
이미 전설의 책들을 구입한 분들의 블로그 글을 봤어요. 글을 볼 때마다 부러웠습니다. 돈, 적립금 열심히 모아야겠습니다.. ^^;;

AgalmA 2017-08-2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 또 어떤 레어템을 수집하신 건지 궁금ㅎ/

cyrus 2017-08-27 20:26   좋아요 0 | URL
다음에 또 일본에 가게 되면 서점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긴자 거리에 가고 싶어요. 이번에 일본 여행이 처음이라서 그냥 주전부리, 술만 샀습니다. ㅎㅎㅎ

2017-08-27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7 20:29   좋아요 0 | URL
대단한 일 아니에요. 카스피님처럼 희귀 책을 소장하신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했던 걸 똑같이 따라했을 뿐입니다. ^^

transient-guest 2017-08-27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레어템을 얻으셨네요.ㅎ 책을 읽고 사들이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쾌감이죠..ㅎ

cyrus 2017-08-27 20:30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만 봤던 책을 실제로 가지게 되니까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

zombie 2017-08-3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러 애서가로서 놓칠수없는 책이죠. 3만원 가격대가 훌쩍 넘기도해서 SF소설은 재테크가 가능하다는 말이 이책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었습니다. 토털호러는 2권도 있는데 할란 엘리슨의 단편으로 유명하죠. 그래도 1권보다는 못한편입니다. 좋은책을 구하셨다니 기쁘네요.

cyrus 2017-09-04 09:10   좋아요 0 | URL
미안합니다. 좀비님. 댓글을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토탈호러 2》의 수록작을 확인해봤는데, 역시 전작보다 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2권이 제일 구하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제국과 낭만 - 19세기 화가는 무엇을 그렸을까?
정진국 지음 / 깊은나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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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22, 나폴레옹 1(Napoléon I)의 대관식이 열렸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동원됐다. 대관식 장면을 꼼꼼히 지켜보고, 하객들의 얼굴과 장신구도 일일이 확인한 끝에 1년이 넘어서야 그림을 완성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을 이렇게 해서 우리도 볼 수 있게 됐다. 황제는 대관식이 끝난 후 다비드에게 최고의 화가라는 영예를 수여했고, 다비드는 그의 그림을 통해 나폴레옹을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으로 만들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을 선전하는 데 관심이 많았고, 특히 미술을 잘 이용했다. 당시 그림은 현실의 인물을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였다. ‘나폴레옹 영웅 만들기의 주역은 물론 다비드이다. 그러나 주연에 가까운 조연도 있었다. 그가 바로 궁내부대신 탈레랑(Talleyrand)이다. 탈레랑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격변기에 활약한 탁월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다. 그는 코르시카(Corsica island)의 하급 장교인 나폴레옹을 왕좌에 앉히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다비드와 탈레랑. 이 두 사람은 한때 프랑스 혁명의 지지자였고, 나폴레옹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그들은 권력의 곁에 착 달라붙을 줄 아는 처세의 달인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권력의 앞잡이가 된 미술이 좋은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제국과 낭만(깊은나무, 2017)을 참고해도 좋다. 미술작품은 지배자들의 정치적 권력을 그대로 반영한다. 권력의 장식품이 된 그림은 시각적인 정치 선전 도구이다. 이런 그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고,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권력을 미화한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 숨겨진 사실을 읽어낼 수 있다. 제국과 낭만은 화가들이 주목했던 18~19세기 유럽의 모순과 부조리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자유와 평등의 정신이 반혁명 분위기와 정부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으로 서서히 퍼져 나갔다. 시민들은 왕권의 몰락으로 점차 무너져 내리는 현재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상상 속의 미래 사이의 간격으로 인하여 불안하기도 하였으나, 그들 내부에는 새로운 문화의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구체제를 그리워하는 권력자들은 보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준비했고, 시민들은 급속히 보수화되고 있었다. 혁명과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급속히 확산됐다. 보수적인 소시민들은 전쟁의 고통을 잊기 위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선호했다. 문화사에서 이른바 비더마이어 시대(Biedermeier Zeit)가 열린 것이다.

 

한편 유럽인들은 바다 건너세계에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바다 건너에 있는 유럽의 식민지는 관광지로 전락했다. 식민지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문화를 향유하는 풍토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문화재들을 약탈했다. 프랑스인과 영국인 들은 각각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을 인류문화의 보고라고 치켜세우지만, 과거 문화재 약탈행위를 합리화하는 변명일 뿐이다. 유럽 정부는 이집트, 인도, 아프리카 대륙 등 식민지 정벌에 나설 때마다 종군화가를 반드시 파견했다. 종군화가는 식민지를 정복하는 군인들의 용감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의 이국적 풍경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종군화가의 이국적인 그림은 유럽인들에게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환상을 심어주었고,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행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더마이어 시대,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급속한 팽창으로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모든 면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황금기를 구가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터지게 될 제1차 세계대전을 생각한다면, 유럽의 아름다운 시대는 부풀려진 풍요의 열정에 도취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시대였다. 19세기의 풍요는 새로운 차원의 예술과 문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풍요로운 시대의 이면에는 개인을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검열이 행해졌다. 정복의 야욕을 부추기는 제국주의의 향수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무색무취의 전운(戰雲)에 대해 둔감하게 만든다. 제국주의의 풍요에 도취할수록 전쟁의 위험성은 자신과 별개 문제로 간주한다. 제국과 낭만에 나오는 비더마이어 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배부른 자의 권태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시대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서 칙칙해진 세상을 좋게 보려고 애썼다. 시대를 미화한 그림 속에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 상실감을 숨기려는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름다운 시대의 맨얼굴은 결국 공허의 시대였다.

 

 

 

 

 

Trivia

 

* 이 책에 수록된 도판 목록은 있으나 정작 제일 중요한 색인이 없다.

 

* 105쪽에 빈 회의(나폴레옹 실각 이후 유럽 질서 재편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회의)를 이끈 오스트리아 정치가를 메테르니히(Metternich) 왕자라고 적혀 있다. 메테르니히는 왕족 출신이 아니다. 저자는 왜 그를 왕자라고 불렀을까.

 

* 217: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프로스트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 “만찬 자리는 정책을 선전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문인들이 단골 초대손님이었고 페니실린으로 인류를 구한 파스퇴르 박사도 단골이었다.” (223)

페니실린을 발견한 사람은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한 공로로 1945년에 노벨 생리 · 의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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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8-1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 좋아요 후 감상입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제국주의 본질을 숨길 수가 있나요 그래.

cyrus 2017-08-19 17:2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레삭매냐님이 읽었던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가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제국과 낭만》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우주, 시간, 그 너머 - 원자가 되어 떠나는 우주 여행기
크리스토프 갈파르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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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답을 몰라도 상관 없다. 그런데 이 질문만 봐도 현기증이 인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태초에 빅뱅(Big bang)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1백50억 년 전쯤 일어난 대폭발의 여파로 오늘의 우주가 생겼다. 빅뱅 이후 팽창해온 우주는 무한대의 공간이다. 우주에는 3천억 개의 별들이 모여 사는 은하가 있다. 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단지 도심의 불빛과 대기오염 때문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별은 얼마나 될까. 앞으로 소개할 책의 저자는 별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려고 별을 ‘모래알’로, 은하를 ‘정육면체 상자’로 비유한다. 이 문장만 봐도 우주가 얼마나 큰지 짐작된다.

 

 

은하수는 우주의 거대도시라고 할 수 있다. 3000억 개의 별들이 모여 사는 이 번창하는 도시에서 우리 태양은 그저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일 뿐이다. 마분지로 만든 1미터 높이의 정육면체 상자를 가져와 바닷가의 모래로 그 상자를 가득 채우라고 하라. 그렇게 모래로 가득 채운 상자를 300개나 만든 뒤, 그 안에 든 모래알의 숫자를 모두 합해야 비로소 우리 은하에 있는 별들의 개수가 된다. (56~57쪽)

 

 

크리스토프 갈파르(Christophe Galfard)《우주, 시간, 그 너머》(RHK, 2017)는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는 정신체가 된 저자가 들려주는 우주와 과학의 광대한 역사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와 그 원리의 실체를 밝혀줄 수 있는 최신 과학 이론을 동시에 알려준다.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그림과 도표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으로 우주와 과학 법칙을 설명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에 ‘E=mc2’를 제외한 공식이 단 한 개도 나오지 않는다.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그림 없는 과학책’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우주, 시간, 그 너머》는 과학상식이 빽빽하게 채워진 그저 그런 과학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우주의 실체를 보여준 여행기다. 저자는 정신체가 되어 우주라는 거대한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다. 한 번 빨려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black hole) 근처에 가보기도 한다. 까마득한 태초의 우주 공간에 나타난 최초의 별부터 블랙홀까지 우주를 넘나드는 저자의 탐사는 풍부한 상상력과 과학적 사실로 증명해내는 기교를 보여준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호킹 복사’를 문장으로만 쉽게 설명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블랙홀이 발생하는 원리와 그 실체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 갈파르의 설명만 봐도 호킹의 이론을 알 수 있다. 호킹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까치, 1998)를 안 봐도 된다. 사실 갈파르는 호킹의 제자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하나같이 사멸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이 함께 공존해 있는 지구, 더 나아가 별과 우주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의 경우는 신생아의 몸무게로 그 아이의 수명을 알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별의 세계에서는 태어날 때의 질량으로 그 별의 수명을 알 수 있다. 별의 질량이 커질수록 별빛이 밝아진다. 질량이 커지면 중심의 온도가 높아져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별은 죽을 때가 되면 점점 부풀어 오르게 된다. 태양보다 큰 별들은 ‘초신성’이라고 하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이 폭발에서 나오는 별의 분해 물질들이 우주로 퍼지게 되고, 그 물질들이 모여 지구와 같은 행성을 만들게 된다. 우주에는 잉여라는 것이 없다. 별은 그저 반짝거리기만 하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생성을 위해 사라지는 별들의 장엄한 최후. 별의 소멸은 우주에서 빛나는 부고(訃告)인 동시에 새로운 별의 탄생을 알리는 축복의 신호다. 그래서 우주는 경이롭다.

 

태양도 앞으로 약 50억 년이 지나면 그 수명을 다해 별로서의 일생을 마친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증발해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을 수 있다. ‘우주의 먼지’ 지구 안에서 사는 인류는 미세먼지에 불과하다. 이 미세먼지들은 우주가 점점 늙어가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지구 속 미세먼지는 자신보다 몇억 배나 큰 우주를 ‘정복’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벌인다. 실컷 일을 벌여놓고 자연을 파괴한 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 지구가 태양보다 일찍 멸망해도 할 말 없다. 우주에서 가장 쓸모없는 유일한 잉여, 그리고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미세먼지는 바로 인간이다.

 

 

 

 

 

 

 

※ Tr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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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7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18 20:51   좋아요 0 | URL
지금 인류의 욕망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언제 크게 터질지 모릅니다.. ^^;;

꼬마요정 2017-08-1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와 닿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미세먼지는 바로 인간이다.

오탈자 지적하신 부분.. 너무 재밌습니다. ㅎㅎ

cyrus 2017-08-18 20:53   좋아요 0 | URL
만약 외계인이 진짜로 있다면 그들도 우주의 먼지겠죠? ㅎㅎㅎ

나와같다면 2017-08-1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은 우주의 크기, 공간에 대해서 생각하실 때 공포감 느껴본적 없으세요..?
전 그 공간과 시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온 적이 있었어요..

cyrus 2017-08-18 20:54   좋아요 0 | URL
제가 우주 공포증 약간 느낍니다. 우주 사진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
 

 

 

 

 

 

 

 

 

 

 

 

 

 

 

 

 

 

 

 

 

 

 

*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 (창해, 2000)

* 노성두 외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 :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들》 (아트북스, 2005)

* 김성진 엮음 《인물로 보는 서양미술사 : 바르비종 미술》 (서림당, 2016)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는 ‘농민 화가’로 알려질 정도로 농민 생활을 즐겨 그렸다. 『만종』『이삭줍기』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명작으로 꼽힌다. 밀레는 파리 교외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에 정착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농민의 삶과 노동의 신성함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아주 평화스럽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밀레가 『이삭줍기』를 선보였을 때 극성스러운 비평가들은 확대 해석을 하면서까지 비난했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올랭피아』를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했던 보수적인 평론가 폴 드 생 빅토르(Paul de Saint- Victor)는 그림 속 여인들을 ‘빈곤을 관장하는 세 여신’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림 속에서 민중 폭동의 분위기를 감지했다면서 떠벌리기도 했다. 밀레와 비평가들의 악연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보수주의(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시대, 즉 왕정복고 체제를 지향하는 세력), 사회주의 진영의 비평가들은 『이삭줍기』 이전에 완성된 『씨 뿌리는 사람』을 놓고 저마다의 해석과 반응을 보였다. 보수주의자들은 농부를 ‘폭동을 일으키는 건달’의 모습이라고 해석했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밀레를 ‘진정한 사회주의자’라고 옹호했다. 그러나 정작 밀레는 정치에 무관심했고, 그림에 정치적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넣지 않았다.

 

 

 

 

 

 

 

 

 

 

 

 

 

 

 

 

* 알프레드 상시에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곰, 2014)

 

 

 

밀레의 그림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비난하는 상황을 참을 수 없었던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는 밀레 전기(傳記) 집필 작업에 착수했다. 상시에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이다. 그는 밀레뿐만 아니라 바르비종파에 속하는 화가들도 옹호했다. 상시에가 쓴 밀레 전기는 밀레의 삶과 예술 세계가 집약된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시에는 전기를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미술사가 폴 망츠(Paul Mantz)는 상시에가 남긴 초고와 각종 자료를 참고하여 전기를 완성했다.

 

상시에는 농촌을 주제로 한 밀레의 그림들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밀레가 바르비종에 정착하기 이전에 파리에서 그린 초기작들을 상시에는 ‘새로운 화풍’이라고 크게 칭찬했다. 밀레 전기 번역본인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곰, 2014)를 처음부터 10장까지 읽어보면(11장부터 폴 망츠가 집필했음) 밀레의 그림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상시에의 의견을 단 하나라도 찾아볼 수 없다. 상시에는 전기를 통해 밀레를 ‘명실상부한 농촌화가’로 알리려고 했다. 밀레 전기 번역본에 보면 상시에를 ‘미술사가, 미술평론가’라고 소개했는데, 사실 상시에는 전문적으로 미술 평론을 썼던 사람이 아니라 밀레와 바르비종파 그림을 좋아하는 수집가다. 그의 원래 직업은 관료였다. 밀레와 바르비종파 그림들을 가치를 알아볼 정도로 상시에가 훌륭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상시에는 ‘미술과 자본’의 밀접한 관계를 파악한 화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하는 밀레와 바르비종파 그림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밀레와 테오도르 루소(Théodore Rousseau) 전기를 썼다.

 

루소는 밀레와 친분을 맺은 바르비종파 화가이다. 그는 여러 번 살롱전(Salon de Paris)에 그림을 출품했으나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래서 동료 화가들은 그를 ‘낙선 대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상시에는 ‘뜰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뜨지 못하는’ 밀레와 루소의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사람들은 밀레가 소박한 농촌 풍경을 좋아해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즐겼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밀레는 고단하고 궁핍한 상황 속에서 그림을 그렸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활비를 아껴가면서 생활했다. 밀레는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믿을 만한 친구에게만 표현했고, 경제적으로 힘들 때마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보게, 제발 내 그림으로 돈 좀 융통해보게나. 값을 따지지 말고 팔아보게. 100프랑이든, 50프랑이든 정 안 되면 30프랑이라도 보내주게.”

 

(밀레가 상시에에게 보낸 편지 일부,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165쪽)

 

 

상시에는 밀레를 돕기 위해 파리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수집가들을 만나 그림을 팔았다. 밀레의 궁핍한 처지를 잘 알고 있던 상시에는 자본의 논리를 순순히 따랐다. 상시에의 노력은 끝내 빛을 보게 되었다. 밀레 사후에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기 시작했고, 소박한 농촌 풍경을 묘사한 밀레의 그림은 자본을 가진 자들이 선호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다.

 

상시에는 밀레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밀레는 없었다. 물론, 밀레를 도와주고 지지해준 상시에의 활약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점이 몇 가지 있다. 상시에의 전기는 밀레를 ‘농촌 화가’라는 인식에 갇히게 했다. 실제로 상시에는 밀레의 농촌 그림이 수집가들이 선호하는 그림이라는 걸 알고, 밀레에게 농촌 그림을 그려 달라고 재촉했다. 밀레의 또 다른 작품들(특히 판화)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밀레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화가’로 오해할 수 있다. 상시에는 밀레 전기 머리글에 ‘아무것도 지어내거나 꾸미지 않았다’고 썼다. 글쎄, 독자는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밀레 전기를 다시 읽었을 때 예전에 썼던 리뷰도 봤다. 나는 2014년에 작성한 밀레 전기 번역본 리뷰에서 이 책을 ‘밀레의 그림을 홍보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라고 썼다.

 

 

※ [파리의 미생, 밀레] (2014년 11월 30일)

http://blog.aladin.co.kr/haesung/7238764

 

 

최근 밀레 전기와 밀레의 예술 세계를 객관적으로 소개한 책들을 동시에 읽고 난 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밀레 전기는 밀레의 그림을 홍보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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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 - 5개의 시선으로 읽는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
김응빈 외 지음, 송기원 엮음 / 동아시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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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류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 게놈 지도 완성 이후 개별 유전자의 역할을 분석하고 있으며, 이것이 성공하면 유전병이나 암 등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생명공학 기술을 통해 아이가 잘생긴 얼굴과 예술적 재능까지 갖고 태어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트랜스휴머니스트(transhumanist)’가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미래에 태어날 새로운 인간을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고 부른다. 포스트휴먼은 ‘슈퍼 인텔리전스(superintelligence, 초지능)’를 갖고 있으며 병에 걸리거나 늙지 않는 존재이다.

 

생물학자들이 궁극적으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자기 손으로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욕구가 바탕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말 그대로 생명체의 기본 단위인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합성해 새로운 기능을 갖게 만드는 분야다. 요즘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과학 성과 중 하나가 바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이다. 크리스퍼는 본래 박테리아의 유전체에서 특이하게 반복되는 염기서열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박테리아는 이전에 침입했던 바이러스의 DNA를 자기 유전체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바이러스 침입 때 저장해둔 DNA 정보를 확인해 바이러스 DNA를 찾아 절단하는 방어 시스템을 작동하는데, 이것을 ‘크리스퍼’라고 말하며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것을 응용한 것이다. 유전자가위만 있으면 유전자의 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해 원하는 부분을 잘라낼 수 있다. 모든 세포는 자가 복구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는 자신이 원하는 변이를 만들어서 특정 유전자 기능을 없앤 실험용 동물을 만들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의 기능을 없애 질병 치료에도 응용할 수 있다.

 

합성생물학은 질병의 치료방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이에 관한 연구는 단순히 호기심 차원을 넘어서 산업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는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것으로 찬사를 받는 합성생물학의 빛과 어둠을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은 합성생물학에 관한 전문지식을 일반 독자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저술됐다. 이 책의 과학 부문 집필을 맡은 송기원, 김응빈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합성생물학의 유전자가위 기술의 장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무엇보다 전문적이고 어려운 생물학 지식을 쉽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에 대한 독자들의 거부감을 상당 부분 불식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공학기술과 윤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합성생물학의 발전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합성생물학은 난치병 치료, 신약 개발 등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생명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책에 나오는 합성생물학에 반대하는 관점들은 주로 과학적 사실 자체보다는 윤리, 법, 사회적 관점 등에 근거한 가치 판단에 따르고 있다. 방연상 교수는 신학자의 입장에서 합성생물학을 바라보는데, 그는 오늘날의 합성생물학이 인문학적 성찰을 배제한 채 독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탐욕스런 인간들이 우생학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고,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가 생물학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합성생물학을 상업적으로 악용하는 걸 어떻게 막을까 하는 것이다. 생명공학 반대론자들은 연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원하지만, 잘못하면 연구를 음성화시켜 악용하는 길만 터주는 터무니없는 결과만 초래할 수도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면, 독자는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과학기술의 발전 자체가 문제일까, 아니면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욕망이 문제일까. 오리무중인 해답을 독자가 제각기 판단해볼 수 있게끔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해주는 배려가 이 책의 최대 매력이다. 나날이 관심받는 합성생물학의 발전에 있어 좀 더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우리 인류는 예상치 못한 문제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신학, 철학, 윤리학 등으로 연구 성과를 바라본다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비인간적인 상황들을 대처할 수 있다고 본다. 과학자들은 실험의 의미와 자신이 수행하는 연구의 파급효과를 윤리적 측면에서 검토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합성생물학을 ‘연구실 속 학문’으로 남겨둬선 안 된다. 과학이 연구실 밖으로 나와야 시민들 사이에서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과학 소비자인 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한 생명공학은 발전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노력도 필요하다. 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오늘날의 과학이 어떻게 발전되고 있는지 선행 공부를 하고 나서 따져도 늦지 않다. 과학적 접근 없이 과학 자체를 불신하는 것은 무지와 오류에 기반을 둔 비이성적인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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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6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17 12:36   좋아요 0 | URL
과학자들의 책임감도 정말 중요합니다. 윤리의식이 없으면 실험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집니다.

transient-guest 2017-08-1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인간복제실험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을거란 의심을 합니다 돈이나 군사목적의 욕망은 무제한이니까요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cyrus 2017-08-17 14:46   좋아요 0 | URL
비밀 실험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험에 대한 제재의 강도가 커질수록 과학자들은 숨어서 실험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