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81 | 182 | 183 | 184 | 18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영국의 작가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의 단편소설 포인터 씨의 일기장은 책 수집가에게 일어난 기이한 현상을 섬뜩한 분위기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제임스 덴턴은 고서를 모으는 책 수집가다. 그는 윌리엄 포인터라는 사람이 쓴 오래된 일기장을 주문한다. 덴턴과 같이 사는 고모는 조카의 고서 수집벽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고모님의 잔소리를 한 번 들어보자. 덴턴이 처한 난감한 상황이 남 일 같지가 않다.

 

 

 

 

 

 

 

 

 

 

 

 

 

 

 

일요일 오전, 교회에 다녀온 다음 그의 고모가 서재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서탁에 놓인 네 권의 묵직한 갈색 가죽 장정 서적을 보고는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다. 이게 대체 뭐니?” 그녀는 의심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새로 산 거지? ! 이것 때문에 내 꽃무늬 커튼을 잊은 거니? 그럴 줄 알았어. 끔찍하구나. 여기에 대체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궁금하구나. 10파운드가 넘는다고? 제임스, 이건 죄악이야. 그래, 이따위 물건에 낭비할 돈이 있으니 우리 생체 해부 반대 모임에도 꽤나 많은 돈을 기부해 줄 수 있겠구나. 정말이야, 제임스. 네가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기분이 나쁠…‥ 잠깐 누가 썼다고? 애크링턴의 포인터 씨? 그래, 이웃의 고문서를 모아들이는 일 자체야 흥미로울 수도 있지. 하지만 10파운드라니!” 그녀는 조카가 든 것 말고 다른 일기장 한 권을 집어 들고는 아무 쪽이나 펼쳐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책장 사이에서 집게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기겁하여 책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덴턴 씨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책을 집어 들었다. 불쌍한 일기장! 고모님은 포인터 씨에게 너무 가혹하게 구시는 것 같네요.” “그랬니, 얘야? 미안하지만 나는 저런 끔찍한 벌레들은 견딜 수가 없단다. 어디 책이 망가지기라도 했는지 한번 보자꾸나.” (391~392)

 

 

덴턴처럼 고서를 수집하지는 않지만, 헌책방에 있는 오래된 책을 좋아한다. 헌책방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책들의 상태는 온전치 못하다. 종이 색깔이 누렇게 변색하였고, 퀴퀴한 곰팡내를 풍긴다. 그렇다 보니 이런 책을 사 오면 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내 동생은 간혹 내 서재를 구경하다가 오래된 책을 발견하면 이런 책을 왜 샀어? 재미있어?”라고 묻는다. 나는 재미있으니까 샀지.”라고 짧게 대답만 한다. 어머니는 내 방 안에 가득한 책들을 볼 때마다 그만 사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잘 안하셔서 그렇지 눈치 빠른 어머니는 아들이 야금야금 생활비로 책을 사는 것을 알고 있다.

 

 

 

 

 

 

 

책 주문할 때마다 가족들 눈치받기 싫어서 편의점 픽업 서비스또는 중고매장 픽업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 퇴근할 때 편의점이나 중고매장에 도착한 택배를 받으러 간다. 그러면 가족들 모르게 책을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중고매장 픽업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게 되니까 또 다른 문제점이 생겼다. 중고매장에 진열된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택배 물품 찾으러 매장에 가면 책을 더 사게 된다. 택배 물품만 들고 매장 밖으로 나간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이러한 소비 습관이 안 좋을 줄 알면서도 중고매장에 택배 물품 찾으러 가는 날이면 에코백을 챙긴다…‥. 나란 놈은 스튜핏이다.

 

책을 사 모으는 일, 알라딘 서재에 글 쓰는 일 모두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 나의 독서 행위가 공개되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알라딘/북플, 책 관련 온 · 오프라인 커뮤니티(출판사 공식 카페, 독서모임 등)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책 좋아하는 취향을 밝혀서 남들한테 좋은 소리 들은 적이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내게 놀 줄 모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 절대로 내가 먼저 책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독서는 혼자 즐길 수 있는 유희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유희에 익숙한 사람들은 혼자 즐기는 유희의 즐거움을 잘 모른다. 책을 많이 사도 스튜핏!, 책을 읽어도 스튜핏! 스튜핏 소리 계속 듣더라도 내 갈 길 가련다. 개썅마이웨이!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19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9 17:34   좋아요 0 | URL
오래된 책들도 도서관에서 만날 수만 있다면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온 지 십년이 채 안 된 책들은 도서관 창고로 향합니다. 한 달마다 새 책들이 도서관에 들어오기 때문에 먼저 도서관에 온 책들은 양로원 같은 창고에 머물게 되는 거죠.

syo님이 빠르면 연말에 대구를 떠난다고 합니다. 유레카님이 괜찮으시다면 syo님도 뵙으면 합니다. ^^

2017-12-19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9 17:36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도 책 구입을 자제하고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

stella.K 2017-12-19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 책 좋아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따 시키는지 모르겠어.
그 사람이 뭐 피해주는 것도 없는데 말야.
책 읽는 사람은 접근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나 봐.
놀자고 그러면 얼마든지 놀아줄 수도 있는데 말야.ㅋ

사실 궁금하긴 해. 넌 다달이 사는 책 어떻게 두고 있나?ㅋ

cyrus 2017-12-19 17:39   좋아요 0 | URL
저는 조용하게 노는 것을 좋아해서 남자들이 성인이 되면 꼭 가는 곳(19금 관련)에 한 번도 가지 않았어요. 그런 곳에 가서 돈 낭비하기 싫어요.

서재에 더 이상 써야 할 글이 없으면 제 방 전체 내부를 사진으로 공개하겠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17-12-19 18:18   좋아요 0 | URL
아니 누가 뭐랬니? 묻지도 않는...ㅋㅋㅋㅋㅋㅋ

아하, 보통 남자들은 그렇게 노는구나.
당연하지. 그런데다 돈 쓰느니 책 사 보는 게 훨씬 낫지.
너를 순수 건전남으로 인정! 그뤠잇~!ㅋㅋ


cyrus 2017-12-19 18:26   좋아요 2 | URL
저는 내 친구들은 19금 장소에 가서 놀지 않을 거라고 순순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자가 아이가 성인이 되면 변하긴 변해요. 저보다 순둥순둥한 친구들도 성인이 되기 위한 어둠의 경험(?)을 한 적이 있는 거 보면 ‘착한 남자’는 절대로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2017-12-19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9 17:45   좋아요 1 | URL
책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지만, 사람과 같이 만나고 어울리는 것도 중요해요. 개인적 시간, 공적 시간 둘 다 균형 잡는 일이 어렵지만, 너무 책만 몰입하게 되면 사람과 사람 간에 만나면서 느낄 수 있는 정에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잘난 척하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좁은 심성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찔레꽃 2017-12-19 1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마누라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여보 내 취미가 뭐냐구 물어 봐! 취미가 뭐야? 책 사는 것! 마누라가 말했어요. 여보 내 취미가 뭐냐구 물어 봐! 취미가 뭐야? 고양이 키우는 것! 제가 말했어요. 어휴 둘 다 벼랑 아닌 취미일세... Cyrus님은 사는만큼 읽으시니 괜찮지만, 저는 잘 읽지도 않으면서 왜 그리 책을 사는지... 저야말로 스튜 핏! 입니다. 하하하.

cyrus 2017-12-19 17:47   좋아요 0 | URL
저도 사 놓고 안 읽은 책이 엄청 많습니다. 언젠가는 읽을 거라고 생각해서 샀는데, 그 ‘언제‘를 기약할 수 없어서 문제입니다. ^^;;

짜라투스트라 2017-12-19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읽는 게 취미라고 해도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와서 아주 글이 흥미롭게 여겨지네요^^

cyrus 2017-12-19 17:48   좋아요 0 | URL
주변에 책 좋아하는 친구 한 두 명만 있으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습니다. 진짜 제 주변에 책 읽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은 스튜핏이 아니라 열정입니다. 사이러스 님은 독서를 정말 좋아하시는 듯...

cyrus 2017-12-19 17:51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커뮤니티에 저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 제가 외향적인 성격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놀 줄 알았으면 책과 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하게 됐습니다.

레삭매냐 2017-12-19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다이어트는 그래서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늘어나는 장서를 보관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 꼭 갖고 싶은 책들만 추려 내고
나머지들은 혹독하게 정리를...
맨날 말로만 이러고 있답니다. 오늘도 세 권
샀네요.

cyrus 2017-12-19 18:21   좋아요 1 | URL
반전의 댓글이군요.. ㅎㅎㅎ 북플 알림으로만 봤을 땐 레삭매냐님이 책 다이어트를 제때 하자는 내용의 댓글인 줄 알았어요. 지름신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매일 퇴근할 때마다 괴롭습니다. 퇴근하면 대형서점이 있는 번화가를 꼭 지나가야 합니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다가 단순하게 책을 사고 싶어서 번화가에 내린 적이 많습니다. ^^;;
 

 

 

유령귀신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유령과 귀신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두 단어의 의미에 약간은 차이가 있다. 국립국어원의 설명[1]에 따르면 귀신은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 넋’, ‘사람에게 화()와 복()을 내려주는 신령이다. 유령은 죽은 사람의 혼령’, ‘죽은 사람의 혼령이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 ‘이름뿐이고 실제는 없는 것이다. ‘신령으로서의 귀신은 무속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상숭배의 대상이 되는 조상신을 제외하고 온갖 잡귀와 잡신은 어르거나 달래고 혹은 위협해서 축출해야 하는 존재이다. 기독교가 보는 유령은 일반적인 귀신 개념과는 다르다. 기독교인들은 신과 대립하는 악마, 마귀를 유령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성령의 힘을 받은 기독교인은 몸에 깃들인 악령을 퇴치하는 엑소시스트(exorcist)로 활동하기도 했다.

 

 

 

 

 

 

 

 

 

 

 

 

 

 

 

 

 

 

* 로저 클라크 유령의 자연사(글항아리, 2017)

 

 

 

피터 언더우드(Peter Underwood)라는 영국의 고스트 헌터(ghost hunter)는 유령을 여덟 가지 존재로 분류했다.[2]

 

 

1) 엘리멘탈(elemental)

2)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3) 전통적 유령

4) 역사적 유령

5) 정신적 각인의 구현

6) 위기유령 또는 생사유령

7) 타임 슬립(time slip)

8) 생자의 유령

 

 

엘리멘탈은 묘지를 떠도는 유령이다. 폴터가이스트는 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나 비명이 들리거나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거나 파괴되는 현상이다. 여기서 잠깐,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상식 하나를 알려주겠다. 폴터가이스트는 독일어인데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독일 종교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이다.[3] 전통적 유령은 죽은 자의 혼령이다. 전통적 유령은 살아있는 자의 존재를 인식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들과의 영매(channeling, 귀신과의 대화)가 가능하다. 역사적 유령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의 혼령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백악관에 출몰했다는 링컨(Abraham Lincoln)의 유령이다. 링컨의 영부인은 링컨의 유령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 정신적 각인의 구현정신적 에너지가 특정한 장소, 특정한 날짜에 방출되어, 극단적 상태의 정신이 심령 존재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위기유령 또는 생사유령은 가까운 지인이 죽음 또는 생명의 고비를 넘기고 있는 순간에 그들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는 현상이다. 타임 슬립(시간 여행)은 어떤 이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는 현상이다. 타임 슬립을 통해 만난 과거의 사람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땐 이미 죽은 자들이며 그들의 정체는 유령이라 할 수 있다.

 

 

 

 

 

 

 

 

 

 

 

 

 

 

 

 

 

 

* 최기숙 처녀귀신(문학동네, 2010)

 

 

 

우리나라 귀신은 딱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남자 귀신과 여자 귀신.[4] 전설 또는 야담에 등장하는 남자 귀신은 조상신에 속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자 귀신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후손들은 집안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상신을 기리기 위한 제사를 지낸다. 여자 귀신은 한 맺힌 존재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사랑의 배신을 맛보거나 심지어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위협을 당한 여성은 죽어서 원귀(冤鬼)’가 된다. 여자 귀신은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품으면서 구천을 떠돌기만 한다. 그래서 여자 귀신은 자신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구원의 대상 앞에 나타나는데, 대부분 관직이 높은 사대부들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모습은 남성의 능력을 부각하는, ‘남성을 위한 클리셰이다.

 

 

 

 

 

 

 

 

 

 

 

 

 

 

 

 

 

*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나래북, 2014)

* 다니엘 디포 빌 부인의 망령(현인, 2014, e-Book)

 

 

 

한국의 여자 귀신은 죽어서야 자신들의 억울함을 전달할 수 있는 을 가진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대상은 남성으로 한정되었다. 여자 귀신의 호소를 이해하고, 그녀를 도와주는 남성의 모습은 현실의 남성의 우월함을 강조할 뿐이다. 이런 젠더 구조가 고착되면서 여자 귀신은 원한이 서린 무시무시한 존재’, 즉 오늘날의 처녀 귀신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므로 여자 귀신이 살아있는 여성앞에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는 설정의 공포소설(또는 유령 이야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다니엘 디포(Daniel Defoe)빌 부인의 망령페미니즘 관점으로 분석할 가치가 있는 글이다. 이 이야기의 서사 구조는 단순하다. 선량한 버그레이브 부인 앞에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빌 부인의 영혼이 등장한다. 버그레이브 부인은 오랜만에 만난 빌 부인을 반갑게 맞이하고, 그녀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다. 살아있는 자와 유령이 너무나도 차분하게 대화하는 장면이 이채롭다. 혹자는 이 장면이 지루하거나 유령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여성의 대화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받은 여성들이 연대하는 자매애(sisterhood)’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여성은 공통으로 남성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 바그레이브 부인은 품행이 바르지 못한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한다. 그래서 빌 부인의 영혼은 남편에게 괴롭힘당하는 바그레이브 부인을 염려하고, 그런 남편을 미치광이라고 부른다.

 

 

버그레이브 부인이 빌 부인에게 차를 마시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마셔도 상관은 없지만 그 미치광이(버그레이브 부인의 남편을 말한다)가 네 그릇을 깨뜨려버리지는 않았니?”라고 말했다. [5]

 

 

빌 부인의 남동생은 버그레이브 부인의 영매 체험을 미치광이의 잠꼬대라고 비난한다. 남성은 유령을 목격하는 여성에서 나타나는 감정 상태, 공포이성이 부족한 여성들의 특성으로 치부했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성적인 남성은 항상 감정이 절제된 상태를 지향했고,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 세계를 거부했다. 그러나 버그레이브 부인은 차분하게 친구의 유령을 맞이했고, 자신이 만났던 친구의 정체를 뒤늦게 확인했을 때도 매우 놀라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버그레이브 부인은 영혼을 목격한 이성적인 존재이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남성들이 버그레이브 부인을 비난할수록 그녀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버그레이브 부인과 빌 부인의 유령은 남성들이 가로막은 현실적 장벽에 잠시나마 벗어나 환상의 경로속에서 여성으로서의 존재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대화로 풀어냈다.

 

여자 귀신이 발화자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권력을 가졌고, 지혜로운 남성 앞에 등장했다. 여자 귀신의 한을 풀어준 남성은 명예를 얻었다. 어렸을 때 나는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남성이 지혜로운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여자 귀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태도와 행동들은 남성의 영웅 심리가 반영되어 있을 뿐, ‘여성 문제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다. 이야기 속 권력자 남성들은 여자 귀신 앞에서도 지배적 위치를 강조하기 위해 남성성을 수행하고 있었다.

 

 

 

 

 

 

 

 

 

 

 

 

 

 

 

 

 

* 유민석 메갈리아의 반란(봄알람, 2016)

 

 

 

나는 유령과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성으로부터 억압받은 여성이 죽어서 남성을 복수한다거나 페미니스트 귀신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살아있을 때 말해야 한다. 여성을 침묵시켜 온 여성 혐오에 대항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 편견 등을 물리치려면 남성 화자의 권력을 모방하여 저항의 언어를 발산해야 한다. 메갈리아의 미러링(mirroring)여성 혐오에 질식된 여성들이 벼랑 끝에서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6]이다. 그 비명의 숨은 의도를 이해하는 남성들은 얼마나 될까? 다만 미러링 대상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성소수자, 반 페미니즘과 무관한 인물일 경우, 또 다른 혐오와 사회 불신을 양산한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소모적인 갈등만 조장하는 혐오와 사회 불신이야말로 귀신과 유령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다.

 

 

 

 

 

[1] [‘귀신유령의 차이] 네이버 국어사전-우리말 바로 쓰기

[2] 유령의 자연사29~32

[3] 같은 책, 118

[4] 처녀귀신22~23

[5] 빌 부인의 망령22

[6] 메갈리아의 반란81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7-12-1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의 자연사> 누가 리뷰 안 해주나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까였어요. 췟.

한국귀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스트레이트해요. 옆나라 일본만 해도 상상초월 많잖아요. 귀신도 국민성, 상상력 반영 같기도 하고. <한국의 숨은 귀신을 찾아서>가 필요해요.

페미니스트 귀신이라니! 심각한 말씀 중에 죄송한데 넘 흥미로운 소잽니다!

cyrus 2017-12-18 17:13   좋아요 1 | URL
조금 지루한 내용이 있긴 한데, 그래도 읽어볼 만합니다. 유령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생각과 반응들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 귀신을 주제로 한 <처녀귀신>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귀신’은 소설에 나오는 존재입니다. 이제는 살아있는 페미니스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

2017-12-18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7:30   좋아요 2 | URL
남자 귀신은 후손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덕담을 해주거나 쓴소리를 해주는 역할이라면 여자 귀신은 자신의 원한을 호소하기 위해 살벌하게 등장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남자 귀신은 착한 귀신, 여자 귀신은 나쁜 귀신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요. 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마고 할멈은 신령한 존재였는데, 어느 지역에서는 악령으로 알려졌어요. 남성 중심의 유교 사상에 밀려서 무속신앙 속 여신들은 잡귀로 인식된 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쳐녀귀신 재미있겠는데요. 전 이런 책이 재미가 있더군요..찜해놯습니다..

cyrus 2017-12-19 09:02   좋아요 0 | URL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곰발님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

표맥(漂麥) 2017-12-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달걀귀신은 남자귀신인가요? ^^

cyrus 2017-12-19 09:56   좋아요 1 | URL
어려운 질문이군요. 제 생각에는 여성 달걀귀신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달걀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의 패턴은 똑같아요. 남자가 밤길을 혼자 지나가는데, 여인의 뒷모습을 발견합니다. 남자가 말 걸자, 뒤돌아본 여인의 정체는 눈, 코, 입이 없는 달걀귀신이었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12-19 09:36   좋아요 2 | URL
남자귀신이라면 역시 몽달귀신이죠..-_-: 달걀귀신의 남성형은 들어본 바 없습니다. 한국의 귀신체계에서 나름 남녀성차별이 없는 건 총각귀신/처녀귀신 같네요...둘 다 못 가보고 죽은 귀신...-_-:

cyrus 2017-12-19 09:59   좋아요 0 | URL
To. t-guest님 / 남성형, 여성형 귀신 및 유령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

감은빛 2017-12-1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글 읽으니 저 책들 다 읽은 기분이네요. ^^

[유령의 자연사] 보고 저런 책도 다 있네 생각했는데, 벌써 읽으셨군요.

[처녀귀신]이 더 재밌겠네요. ^^

cyrus 2017-12-19 17:52   좋아요 0 | URL
<처녀귀신>에 익숙한 고전 문학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에 내용이 쉽고, 재미있습니다. ^^
 
현실의 경제학 - 경제는 실제로 어떻게 성장하는가
스티븐 S. 코언.J. 브래드퍼드 들롱 지음, 정시몬 옮김 / 부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미국의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따라 소득분배가 악화하다가 선진국이 되면 분배가 개선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견해는 쿠즈네츠 가설’, ‘쿠즈네츠 곡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가설과 달리 80년대 이래 선진국들의 소득 불평등은 심화했다. 일반적으로 성장과 분배는 서로 상충관계에 있다. 이에 따라 정책 선택이 딜레마에 빠진다. 지나친 소득 불평등은 사회통합을 저해함으로써 경제성장력을 떨어뜨린다. 가진 자가 더 많은 경제적 기회와 교육 등 혜택을 누림으로써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경제성장론자들은 고도성장의 과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저소득층에게까지 전파되는 이른바 낙수(trickle down) 효과를 믿는다. 이명박 · 박근혜 정부에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할 때 내세운 논거도 대체로 낙수 효과다. 통계 지표상으로 본 우리 경제의 모습은 성장률과 서민의 삶이 따로 놀고 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비틀려 있다. 대기업의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가 체감하는 경제적 파이는 커지지 않았다. 경제성장론자들이 반복하면서 말하던 그 잘난 낙수 효과를 기다리다가 아예 목이 타 죽을 지경이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짓누르고 있다라는 논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성장과 분배는 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그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 각국을 비교한 연구들은 정치체제와 역사적 배경, 권력 관계 등이 소득분배에 결정적이지만, 성장과 분배 간에 밀접한 관계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성장과 분배는 어느 하나만을 따로 떼어내 추구할 수 없다. 성장을 무시한 채 분배만 추구하면 경제력이 이를 뒤따르지 못할 것이고, 분배 문제를 방치하고는 성장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경제학은 경제학적인 측면에서의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과 미국 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분배를 통한 내수창출과 성장을 추구하는 구체적인경제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보이지 않는 손. 너무나도 유명한 고전주의 경제학의 명제이다. 스미스가 생각한 시장경제란 모든 주체가 이기심에 따라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영위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정의의 법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면서 이익을 추구한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 질서는 스스로 조정된다고 보았다.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교통 · 교육 등 공공 재공급으로 한정했다. 스미스의 후계자들은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는 작은 정부론을 옹호한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미국 건국의 핵심인물 중 한 명으로 제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가 내세우는 최고 가치는 자유였고,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또 다른 미국 건국의 핵심 인물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그가 지향하는 경제 노선은 제퍼슨의 생각과 달랐다. 그는 강한 중앙정부를 표방하는 연방주의자(federalist)였고, 국립은행의 창설, 보호관세의 설립 등 제조업을 중시한 재무정책을 펼쳤다. 해밀턴의 경제 노선은 이후 미국이 세계 최고 제조업국가로서 지위를 완전히 굳힌 1945년까지 130여 년간 미국 경제정책의 기조를 이루었다.

 

1920년대 말 세계 대공황 속에서 민주당의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 시작한 뉴딜 정책(New Deal Policy)은 근세 미국의 진보적인 경제정책의 시초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으며 미국 내 진보세력의 정책 방향을 받혀주는 사상적 받침이 돼왔다. 미국 역사상 좌우의 이념논쟁이 가장 격렬한 경제 노선이 뉴딜정책이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개념에서 볼 때 뉴딜 정책은 사회주의적 혁명이다. 자유방임주의, 이것이 자본주의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맞아 루스벨트는 정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굶어 죽든 잘 먹고 잘살든, 그때까지는 개인의 문제에 속한 삶의 문제를 국가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민주당은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으로 이어지는 20년 연속 집권(루스벨트는 4선 내리 당선한 유일무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에 성공했다. 보수 우파 성향의 공화당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Eisenhower)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집권하는 데 성공했고, 민주당의 유산을 지우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보수 강경 분위기에 휩쓸리는 대신 합리적 보수로서 중심을 잡았고, 민주당 정권의 사회복지, 경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다.

 

해밀턴, 루스벨트, 아이젠하워는 특정 이념에 의지하는 대신, 국민 친화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정책을 내세웠다. 미국은 현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재설계를 감행했다. 따라서 경제정책을 이념의 잣대로 봐선 곤란하다. 당파를 둘러싼 소모적인 갈등 구도를 만들기보다 현실적인 경제정책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여아가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야 한다. 어느 경제 전문 일간지에 실린 현실의 경제학서평[1]은 이 책이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서평 작성자는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친 듯하다. 서평 제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제성장론자들이 시장보다 정부라는 문구만 보고 책을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을 진보주의자들이 환영할 책이라고 보는 것은 오산이다. 현실의 경제학합리적 보수’, ‘합리적 진보를 지향하는 정치인, 경제학자, 독자들이 모두 필독해야 할 책이다.

 

 

 

창조 경제는 이었다...

정치 경력, 그 사람인생까지 이 되었다...

 

 

 

현실의 경제학의 공동 저자(스티븐 J. 코언, 브래드퍼드 펄롱)정부의 역할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그들이 더 강조한 것은 구체적인 경제 정책 수립이다. 자신들을 진짜 보수’, ‘진짜 진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대선주자가 되면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즉 실질적인 민생해법을 내놓기보다는 공허한 공약만 남발한다. 표심만 노린 말장난에 가까운 경제정책은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비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창조경제이다. 쉬운 말만 반복하는 앵무새처럼 창조경제를 말하고 다닌 지도자의 머리가 텅 비어 있는 탓에 경제정책도 속이 텅 비어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3대 불가사의전설의 동물로 알려진 애인,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도 생기지 않는 내 집그리고 정의(定意/正義)가 없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창조 경제.

 

 

성공적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나라에서 경제 정책은 이념적이지 않고 실용적이었으며,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었다. [2]

 

 

이 문장은 현실의 경제학서론의 첫 문장이다. 두 저자는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한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앞에 내세웠다. 고등학교 수준의 경제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문장을 보면, 창조 경제’는 실패했고, 헛된 구호였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여전히 창조 경제는 훌륭했으며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으면 지금도 성공할 수 있었던 국가 정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정신승리에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이 암울하다. 이런 사람들이 경제 전문가 또는 정치인이 되면 국민들만 고생하는 건 시간문제다.

 

 

 

 

[1]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국이 됐나? 시장보다 정부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서울경제, 20171212)

 

[2] 13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18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6:20   좋아요 1 | URL
대기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서민들에게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복지비용마저 아깝다고 생각해요. 이명박근혜 정부동안 보수들이 선호할만한 경제정책, 다 나왔습니다. 역효과가 있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진보가 내세우는 경제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문제는 보수, 진보가 추구하는 경제정책이 거의 비슷비슷해서 포퓰리즘으로 빠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17-12-18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6:2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대통령도 미국처럼 4년 연임제가 가능하다면 친일파 청산 작업을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대선에도 여권이 집권하면 친일파 청산 작업을 추진해볼 수 있겠지만, 반대로 야당이 집권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sprenown 2017-12-1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론적인 얘기겠지만, 성장과 분배.이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는 어려울 거예요. 현경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가치판단 해야할 문제겠지만 이제는 불평등 개선을 위해 분배정책에 더 힘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cyrus 2017-12-18 16:32   좋아요 1 | URL
네, 지금은 분배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배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면 정부가 피드백을 해야 합니다. 괜히 억지로 밀고 나가다간 복지 예산이 아깝습니다. 피드백 없는 복지 정책은 복지 정책을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입니다. 문제점이 노출되면 복지 정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집니다.
 
사진, 말 없는 시
유병용 지음 / 사진예술사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사진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화가였다. 애초에 사진과 미술은 한 몸이었다. 카메라로 실물과 똑같은 모습을 재현할 수 있게 되면서 화가들은 손에 쥔 붓을 내려놓았다. 심심해진 화가들은 과감한 시도를 했다. 이후 사실적 묘사를 포기하는 현대미술이 등장했다. 아울러 기록의 도구로만 머물 것 같았던 사진도 점차 예술적 표현을 시도했다. 사진과 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설치 사진, 회화적 사진, 연출 사진, 합성사진 등은 사진 매체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미래에 이미지를 읽어낼 수 없는 사람이 문맹자라고 했다. 예전에는 글씨로 정보가 전달되었다면, 미래에는 정보전달의 도구가 사진과 같은 시각 이미지로 점점 바뀐다는 의미다. 벤야민의 예언은 정확했다.

 

미술과 문학은 전통적으로 유대가 깊다. 상대 장르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교유(交遊)도 많았다. 그러나 사진과 문학의 관계의 끈은 느슨한 편이다. 유병용사진, 말 없는 시는 사진과 문학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상징적인 사진집이다. 많은 사람은 시를 통해 삶의 영양분을 얻는다. 팍팍한 세상을 살아갈 때, 시 한 구절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되어주기도 한다. 한 장의 사진도 그 어떤 이야기보다 울림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사진과 시의 만남은 깊은 감동과 진한 여운을 배가시키는 행복한 결합이다.

 

 

 

 

 

 

 

사진을 너무 쉽게 찍으면 감동이 떨어진다. 사진작가는 대상물에서 감동해야 사진 속에 특별한 메시지가 형상화된다. 사진의 빛의 예술이다. 사진작가는 빛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른다. 빛은 시간이므로 사진은 시간과 싸우며 획득되는 장르다. 사진작가는 빛과 시간이 합일되는 지점에서 셔터를 누른다. 유병용의 사진에는 빛과 시간이 빚어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상에 대한 정성 없이는 그 찰나의 흔적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 유병용은 일상 곳곳에서 수많은 눈길과 손길, 발자국이 닿은 사물 및 장소를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사진 속 일상의 오브제들은 삶의 매 순간들이 지나칠 수 없는 운명임을 보여준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업을 생활사진이라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에 잡힌 한순간 한 공간도 운명적인 인연이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평범하다. 그러나 사진에서 선뜻 눈을 떼지 못하고 사진에 덧붙여 둔 글에 마음이 아련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평범한 일상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병용의 사진은 무언 시(無言 詩)’. 무언 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단어다. 그렇지만 그의 사진에는 분명 말 없는 시가 있다. ‘말이 있는 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다. ‘말 있는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같은 시를 보아도 읽을 때의 감정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학창 시절에 시를 해석하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시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느낌을 억누른다. 이들은 시에 들어있는 의 보편적인 해석에 기계적으로 반응한다. ‘말 없는 시공부할 때 보는 시가 아니다. 그래서 사진집에 있는 시는 순수문학의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 시는 작가가 원하는 해석으로 감상할 필요가 없다. 무언 시는 읽는 독자 스스로 마음에 깊은 감동이 되어야 가치가 있다. 무언 시에는 예술성을 부여받은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가 생활하면서 쓰는 평범한 말이 있다. 무언 시는 사진과 만나면 죽은 시가 아니라 살아있는 시가 된다.

 

사진과 시의 만남은 우리 독자들의 시각적 환경을 풍요롭게 한다. 사진은 독자의 눈을 정화해주고, 시는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사진, 말 없는 시는 보고 즐기면 된다. 좋은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유병용의 사진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진솔하게 담아 우리 가까이에 끌어다 주고 있다. 사진 한 장, 글 한 줄에 이끌려 읽다 보면 때론 지루해 뛰쳐나가고 싶을 때도 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였던지 새삼스레 돌아보게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13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4 17:24   좋아요 0 | URL
아직 멀었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보는 법에 대해 공부해야겠어요. ^^

짜라투스트라 2017-12-1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살아 있는 사진이 된다는 말이군요 ㅎㅎㅎ

cyrus 2017-12-14 17:26   좋아요 0 | URL
사진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작품에 ‘이름’이 있듯이 사진 작품에도 이름이 있어요. ^^
 

 

 

 

 

 

 

 

 

 

 

 

 

 

 

 

 

 

 

 

 

어제 최측의농간출판사로부터 신간 출간 소식을 받았다. 국문학자 양주동 선생(1903~1977)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가 완역본으로 복간되었다. 범우사가 낸 문고판은 발췌본이다. ‘최측의농간출판사는 1960년에 나온 이 수필집과 양주동 전집 4(동국대학교출판부, 1995)에 실린 문주반생기를 비교 · 검토하여 읽기 쉬운 말로 새롭게 다듬었다. 초판(영인본)의 느낌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1,996개의 각주를 달았다고 한다.

 

 

 

 

 

 

 

 

 

 

 

 

 

 

 

 

 

양주동 선생은 신라 향가 연구에 큰 획을 그은 국문학자다. 그는 시인, 수필가, 비평가 등 여러 방면에서 이름을 떨쳤고, 스스로 국보 1라고 말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한 천재였다. 선생은 애주가로도 유명하다. 10(!) 때 처음으로 술의 맛에 눈을 떴다고 한다…‥. 술과 관련된 일화가 많은데, 문주반생기2부의 제목이 이다. 혹자는 이 책을 읽어야 술에 대한 예의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이 책을 음주기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수필집 제목을 풀이하면 '시(詩), 문(文), 술을 중심으로 하여 보잘 것 없는 나의 반생'이라는 의미가 된다. 복간을 계기로 문학인으로서의 양주동이 재조명되길 바라본다.

 

 

 

 

 

 

 

 

필자는 양주동 선생의 글을 접해보지 않았고, 선생이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한 사실을 그저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서재에 양주동 선생이 감수한 책 한 권을 보관하고 있다. 이 책 덕분에 양주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1986년에 나온 표준 국어대사전이다. 그런데 이 사전은 개정증보판이다. 양주동 선생은 1977년에 작고했고, 이미 오래전부터 선생이 감수한 국어대사전이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양주동 국어대사전을 검색하면 70년대에 나온 국어사전을 공개한 글을 볼 수 있다. 6, 70년대에 양주동 선생과 더불어 국어사전 편찬자로 유명한 분이 이희승(1896~1989) 선생이다. 이희승 선생은 1961년에 국어대사전을 편찬했다. 현재까지도 개정증보판이 나오고 있는 국어사전이다. 그렇다 보니 지금은 양주동 국어대사전보다 이희승 국어대사전이 더 많이 알려졌다. 양주동 국어대사전을 상세히 설명한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양주동 국어대사전 초판이 정확히 언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1986년 출간 당시 국어대사전의 정가는 25,000이다. 그때 당시 물가 기준을 생각하면 이 국어대사전 가격은 고가이다. 80년대에 라면값은 100, 소줏값은 200, 짜장면값은 500이었다. 짜장면 50그릇을 실컷 먹을 수 있는 돈이면 국어대사전 한 권 구입할 수 있다. 이 사전이 나왔을 때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1986, 이 해에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7-12-13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까지 가지고 계십니까......역시.

cyrus 2017-12-13 17:46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 국어사전이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됐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직접 산 게 아니에요.. ^^;;

2017-12-13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3 17:47   좋아요 0 | URL
그때 대학생이셨군요. ㅎㅎㅎ

stella.K 2017-12-13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문주반생기! 거 유명한데.
나도 들어보기만 하고 읽어보진 못했다.
양주동 박사 나 어렸을 때만해도 간간히 TV에도
나오고 했는데. 입담 좋기로 유명했지.
물론 난 그때 너무 어려서 무슨 말 하는지도 몰랐고.
암튼 읽고 싶네.ㅋ

cyrus 2017-12-13 17:49   좋아요 0 | URL
정말인가요? 어렸을 때 보셨으면서 기억 안 나는 척하신 거 아니죠? ㅎㅎㅎ 예전에 어느 알라디너가 제게 이 책을 추천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분 닉네임이 기억나지 않아요. ^^;;

stella.K 2017-12-13 18:1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너나 나나 왜 그런다냐...ㅠㅠ
누군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일 것 같다.
이책 요즘 사람은 거의 모를 거야.
양주동 박사는 우리 언니가 더 잘 알았지.
언니도 그런 걸 알 나이는 아닌데
중학교 들어가서 국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니까
옛날에 본 기억은 나고 뭐 그랬겠지.
근데 난 그분 어슴츠레하게 기억 나.ㅋ

cyrus 2017-12-13 18:13   좋아요 1 | URL
확실하지 않지만, 그 분이 ‘노이에자이트‘님일 거예요. 서재 활동 초창기에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이었죠. 그 분을 만나지 못했으면 옛날 책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거예요. ^^

2017-12-13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3 17:52   좋아요 0 | URL
술이 너무 좋아서 능력을 더 발휘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작가가 많아요.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재능을 파괴합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81 | 182 | 183 | 184 | 18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