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수학 - 최소한의 수식으로 이해하는
스토 야스시 지음, 전종훈 옮김, 강성주 감수 / 플루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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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천체물리학자 우주에 관심이 많은 물리학자. 천체(天體)우주에 살고 있는 행성, 항성, 성단, 성운 등을 아우르는 용어. 사실 천체물리학자를 천문학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천문학자 심채경이 쓴 책 제목처럼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이 보는 것은 별이 움직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법칙이다.


일본의 천체물리학자 스토 야스시(須藤 靖)는 우주를 보지 않는다. 그는 우주에 깊이 스며든 수학을 본다. 야스시는 우주가 수식과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그가 쓴 우주의 수학오랫동안 우주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수학 법칙들을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과 수학이 있다고 믿는 파에 속한다. 기호로만 이루어진 수식이 저자의 눈에는 아름답게 빛난다


대부분 물리학자와 수학자는 설명하기 복잡한 자연 현상을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한 방정식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하지만 수학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수식이 낯설다. 이런 사람들은 수학으로 가득한 우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믿고 있는 수학-우주론이 우주를 설명하는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은 독자에게 우주가 법칙과 수학의 지배를 받을 리 없다는 파를 계속 지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저자는 솔직하다. 자신도 어려운 수식을 보면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의 겸손한 태도는 수학이 싫어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즐거움조차 포기할 것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랜다저자는 수식이 도출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우주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수식만 알려준다. 물리학자는 수식으로 법칙을 표현한다. 법칙이 우주는 이렇다라는 형태로 된 문장이라면, 수식은 그 문장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글자다글자 한두 개 빠지면 읽을 수 없는 어색한 문장이 되듯이, 수식이 없으면 법칙을 오롯이 설명할 수 없다.


우주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법칙은 크게 세 가지다. ‘1 법칙’, ‘2 법칙’, ‘3 법칙으로 알려진 케플러(Johannes Kepler) 법칙은 행성이 움직이는 경로인 궤도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뉴턴(Isaac Newton)은 자신이 발견한 운동법칙(물체의 질량과 가속도의 곱은 그 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같다)과 케플러 제3 법칙을 결합하여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다. 만유인력은 중력을 뜻한다. 사실 만유인력은 뉴턴 역학을 다룬 외국 서적을 접한 일본 학자들이 ‘universal gravity’를 한자로 번역해서 나온 단어다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질량을 가진 물질이 중력을 발생시켜, 시공간이 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곡면을 이용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영감을 얻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한다케플러, 뉴턴, 아인슈타인은 수학의 도움을 받아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한 우주의 법칙들을 이해했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천문학자들은 맨눈으로 밤하늘을 관측했다. 하지만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은 맨눈으로 볼 수 없다. 천문학자는 우주 어딘가에 숨어 있는 법칙을 보고 싶어 한다. 시력이 좋은 눈을 가진 천문학자가 매일 밤하늘을 관측해도 우주가 꼭꼭 숨긴 법칙을 찾지 못한다. 법칙을 발견하려면 눈은 밤하늘을 바라보되 머리로 생각하면서 우주에 물어봐야 한다. 우주를 향해 법칙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질문하고, 우주가 천문학자에게 알려준 법칙과 관련한 단서를 분석하려면 수학이라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우주가 수학을 잘 아는 존재라면 천문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수학을 모르는 천문학자는 날 보려고 하지 마!






<cyrus의 주석>




* 69

 

 1609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당시 발명된 망원경을 처음으로 천체 관측에 사용했습니다.[1] 이전의 천문학자나 철학자들은 맨눈으로 천체를 관측해야만 했죠.

 

[1] 영국의 천문학자 토머스 해리엇(Thomas Harriot, 1560?~1621)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보다 4개월 먼저(정확한 날짜는 1609726)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했고, 달의 표면을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남겼다. 하지만 해리엇은 달 그림을 발표하지 않았고, 갈릴레오는 1610년에 자신이 직접 그린 달 그림을 발표했다.


[참고문헌 1] 로베르타 J. M. 올슨 & 제이 M. 파사쇼프, 곽영직 옮김

COSMOS 우주에 깃든 예술, 북스힐, 2021

 

[참고문헌 2마이클 벤슨, 지웅배 옮김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 롤러코스터, 2024






* 153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세계지도는 지구 표면을 평면으로 펼친 지도입니다. 하지만 지구는 실제로는 구형이어서[2] 완벽하게 평면으로 펼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차원 평면으로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죠.





[2] 지구는 완전한 구형이 아니다. 적도 지방이 부푼 타원체다. 따라서 지구는 찌그러진 형태라서 지역마다 중력의 강도가 다르다. (출처: [‘지구는 더 이상 둥글지 않다?’ 사진 공개맞을까 틀릴까] 매일경제, 201142일 입력)





* 203

 

 2019410일 천문학 역사에서 중요한 날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날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공통 연구팀이 타원은하 M87[3]의 중심에 위치한 초거대 블랙홀의 첫 이미지를, 전 세계에 있는 전파망원경에 연결해 촬영했습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다른 표현으로,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의 경계를 말합니다.


[3] M87처녀자리에 있는 타원은하. 처녀자리 A 은하라고도 부른다. ‘M’‘Messier’의 약자, 천체 목록을 만든 프랑스의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Charles Messier)에서 따왔다.





* 참고 문헌 237쪽





 매튜 스탠리, 아인슈타인의 전쟁: 상대성이론은 어떻게 국가주의를 극복했는가?, 국내 미출간. [주4]


[주4] 아인슈타인의 전쟁: 상대성이론은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했나(김영서 옮김, 브론스테인, 2020)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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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4-05 0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우주가 보고 싶은데, 수학실력이 부족해서 지금은 안되겟어요.ㅠㅠ

cyrus 2024-04-05 06:33   좋아요 0 | URL
저도 수학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고등학생 때 수학능력시험 수리 영역 점수를 잘 받으려고 정말 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문과인데도 수학 성적 올리는 데 노력했죠. 그렇게 2년 공부해서 수학능력시험 때 받은 수리 영역 점수가 27점이었어요.. ㅋㅋㅋㅋ 그때부터 제가 수학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어요... ㅋㅋㅋ 그래도 수학을 책으로 보는 건 좋아해요. 수학 관련 도서에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
 
죽음의 집 이안재 희곡선 1
윤영선.윤성호 지음 / 책공장 이안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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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집은 가까이, 죽음의 집은 더 가까이.




<죽음의 집>은 2007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윤영선 극작가의 미발표 희곡이다. 2012년에 낭독 공연에서 대본 일부가 낭독되면서 <죽음의 집초고가 처음으로 극장 무대의 조명을 받았다. <죽음의 집초고를 확인한 극작가 겸 연출가 윤성호가 작가 노트를 단서 삼아 쓰이지 않은 이야기를 새로 썼다. <죽음의 집대본의 1부는 고인의 초고이며 2부는 윤성호가 쓴 것이다죽은 자가 쓴 글과 ‘살아있는 자가 쓴 글이 포개진 희곡, 즉 미완성과 완성이 뒤엉킨 <죽음의 집>은 2017년 윤영선 극작가의 10주기 추모 페스티벌에 초연되었다. 2020년 제41회 서울연극제에 공연된 <죽음의 집>은 희곡상(윤영선윤성호)과 연출상(윤성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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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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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 세 번째 선정 도서





태양은 지구를 향해 빛을 흩뿌리면서 다닌다. 낮에 열정적으로 일한 태양은 제대로 쉬고 싶다. 태양은 숙면을 위해 어두운 이불을 푹 덮는다. 태양이 잠들기 시작하면 자고 있던 달이 잠에서 깨어난다. 달은 잠잘 때 덮고 있던 푸른 이불을 갠다. 태양은 자고 있어도 계속 빛을 뿜어낸다. 태양 빛은 매우 강렬해서 어두운 이불을 뚫고 나올 정도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태양 빛은 못생긴 달을 위한 조명이 되어준다. 태양 빛을 받지 못한 달은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다. 달의 반쪽 부분에 태양 빛을 받으면 반달이 된다. 태양 빛이 달을 감싸 안으면 보름달이 된다. 밤이 되면 태양 빛으로 화장한 달의 얼굴이 나타난다. 중력에 몸을 맡긴 달은 지구 주변을 돈다. 하지만 달은 자신의 뒷모습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불자가 덕망이 높은 승려를 만나러 직접 찾아왔다. 불자는 승려에게 가르침을 청했으나 승려는 자신도 글을 모른다면서 거절했다. 헛걸음한 불자가 실망감을 드러내자, 승려는 불자에게 달을 보라면서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면서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불자를 나무랐다. 어리석은 불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눈이 쏠려 제대로 봐야 할 달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달을 잘 보는 승려도 달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승려는 달의 앞모습만 쳐다봤기 때문이다. 승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달의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달의 얼굴이다.


항상 태양 빛을 받아서 생기가 넘치는 앞모습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사실 뒷모습도 살아있다. 뒷모습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그렇지만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은 앞모습에 있다. 눈 하나만 뒤에 달려 있으면 좋으련만. 뒷모습이 아쉬워한다. 하지만 세상은 뒷모습의 소원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얼굴에 있어야 할 눈이 뒤통수에 있으면 세상은 앞모습을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한다. 한쪽 눈만 있는 얼굴은 매력이 없다. 비난이 두려운 앞모습은 한쪽 눈을 절대로 뺏기고 싶지 않다뒷모습은 할 말이 많은데, 말을 할 수 없다. 하필이면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입이 얼굴에 있다. 뒷모습은 냄새를 맡고 싶다. 그런데 한 번 열면 쉬지 않는 입 바로 위에 냄새 맡는 코가 달려 있다. , , 입이 앞쪽에 몰려 있다.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는 세간의 빛을 잘 받지 못해 시들시들해진 뒷모습을 향해 카메라를 비춘 사진작가다. 그는 뒷모습이 살아있다는 진실을 확인했다.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에 어깨가 축 처져 있던 뒷모습이 부바의 카메라가 반가워서 어깨를 들썩인다. 뒷모습을 찍은 부바의 카메라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바로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 뒷모습이 부바의 밝은 방(Camera Lucida)’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도 살아 있다면서 온갖 동작으로 표현한다.


부바의 카메라 루시다에 찍힌 뒷모습은 찬란하지 않다. 나무 쟁기를 짊어진 인도의 어느 농부와 앙상한 소 두 마리의 뒷모습, 양손에 물뿌리개를 들고 정원을 걷는 정원사의 뒷모습, 허리를 구부리면서 산책하는 할머니의 뒷모습,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길바닥에 깔린 파리의 거리. 작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는 파리의 거리가 찍힌 사진을 보면서 글을 썼는데, 이 글에 등 뒤에서 본 파리라는 제목을 달았다. 사진 한가운데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에펠탑(Tour Eiffel)이 희미하게 보인다. 밤이 되면 아름다워지는 철의 여인(La Dame de Fer)’ 에펠탑에 현혹된 사람들은 낮이 되면 나타나는 더러운 진실을 보지 못한다. 쓰레기통에 담지 못한 더러운 진실이 여기저기에 방치된 거리는 도시의 지저분한 뒷모습이다.


뒷모습은 세련되지 않으며 하찮다. 그렇지만 카메라에 찍히면 사진을 보는 감상자의 눈과 마음을 찌르는 위력을 가진다. 에두아르 부바의 카메라가 주목한 뒷모습에 생기가 돋는 푼크툼(punctum)’이 있다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자신의 책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에서 푼크툼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푼크툼은 원래 찌름또는 작은 구멍을 뜻하는 단어다. 바르트는 푼크툼이 있는 사진이 자신을 찌르고,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고 했다바늘로 피부를 찌르면 아프듯이 사진 속 푼크툼은 감상자의 눈과 마음을 콕 찔러 아프게 만든다.


화려하지 않은 뒷모습은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 따라서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부바는 화려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앞모습에 전혀 관심이 없다. 앞모습을 찍은 사진에 푼크툼이 없어서 시시하다. 반면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가슴이 뛴다. 뒷모습이 살아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사진은 감상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감상자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바라볼 때 푼크툼을 만난다.


사진 속 뒷모습은 조용하다. 뒷모습은 말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어도 꾹 참는다. 앞모습은 제 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사람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과시할 수 있거든. 이렇듯 앞모습을 찍은 사진에 익숙한 사람은 과묵한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낯설어서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말이 없는 뒷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사진에서 푼크툼을 찾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다. 사막 한가운데에 푼크툼이라는 바늘을 찾는 일이랄까바르트는 사진의 매력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로 모험을 골랐다. 푼크툼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고, 특별한 의미가 없다. 사진 속 뒷모습을 보면서 해석하지 않는 순간부터 감상자는 자신만의 푼크툼을 찾아 나선다. 이때부터 화려하지 않은 모험이 시작된다푼크툼이 있는 사진은 감상자를 찔러댈 뿐만 아니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살아있는 감상자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늘이 진 삶의 일부라든가 사람들 앞에 보여주면 부끄러운 치부를 숨기지 않는다. 자신이 진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줄 안다사진의 푼크툼을 찾는 모험은 어렵지 않다. 마음이 솔직하지 못하거나 외면을 멋지게 꾸미는 일을 좋아하는 성격이 모험을 어렵게 만든다.


카메라 루시다와 함께 만든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집 뒷모습자신의 진솔한 마음과 모습을 만나게 해주는 거울이다. 뒷모습만 보여주는 거울에 아름다움을 찾지 마시라. 그 대신에 우리가 찾아야 할 푼크툼이 있다. 푼크툼은 우리에게 진실하게 살아 보라면서 힘껏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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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 과학의 ‘아버지’들을 추방하고 직접 찾아나선
레이철 E. 그로스 지음, 제효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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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가는 책방들을 운영하는 분들 대부분은 여성이다. 그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책방에 이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책방에 이 책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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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03-19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임신한 와이프를 둔 남자나, 애기아빠들이 읽어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cyrus 2024-03-20 06:29   좋아요 1 | URL
결혼할 마음이 없는 남자도 읽었으면 좋겠어요. ^^
 
버자이너 - 과학의 ‘아버지’들을 추방하고 직접 찾아나선
레이철 E. 그로스 지음, 제효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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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아이고, 저게 뭐야? 망측해라.”


, 쟤한테 비린내가 나.”


왜 자꾸 싸돌아다니는 거야. 제발 좀 가만히 있어.”



V는 오늘도 입을 꾹 닫는다. 큰맘 먹고 말해보려고 하지만,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한다너무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V의 이름은 ()’, 영어 이름은 버자이너(Vagina). 그런데 V는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지 않는다. XY들도 V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이름을 알면서도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그들은 V를 마주 보는 것도,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부끄러워한다. 웃긴 건 XY들끼리 모여 있으면 언제 부끄러워했냐는 듯이 V를 속되게 부른다.


V를 대하는 XY의 태도는 이중적이다V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XY이지만, 사실 그들은 V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XY가 좋아하는 V는 무조건 깨끗한 상태여야 한다반면 지저분한 V를 만나면 더럽다고 말하면서 욕지거리를 퍼붓는다V에게 이상한 냄새가 나면, V가 문란하게 살아왔다고 수군거린다


XYV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다. 똑똑한 XY는 본인 스스로 불가사의한 V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라고 생각한다의학자들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V의 자궁이 모든 병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진화론자들의 아버지 다윈(Charles Robert Darwin)XY의 지능이 V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다. 심리학자들의 아버지 프로이트(Sigmund Freud)V페니스가 없는 작은 존재로 인식했다프로이트는 몸집도, 정신도 작은 V가 건강해지려면 커다란 페니스가 달린 XY를 만나라고 권장했다XY를 물려받은 아버지의, XY를 물려받은 아버지의, XY를 물려받은 아버지들은 V를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XY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V를 아이 낳는 존재’로만 봤다하지만 XY는 V의 몸속에 태아가 어떻게 생기는지 모른다.


오랫동안 입을 다문 V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맴돈다. 나는 누굴까? 왜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거지? 나도 이름이 있는데, 사람들 앞에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그 와중에 XYV를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 V는 XY의 무지와 편견이 만든 세상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이때 V는 결심한다. 어떻게든 입을 열자, 난 혼자가 아니야, 나랑 똑같은 신세인 V를 만나보자V는 조용하고, 항상 가만히 있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V는 끊임없이 움직인다질 속에 엄청난 양의 미생물이 떼 지어서 모여 살고 있다. 이 미생물들은 외부에서 오는 물질이나 세균을 방어한다. 따라서 질은 몸의 첫 번째 방어선이다. 만약 방어선이 무너져서 미생물 생태계가 흐트러지면 세균성 질염을 일으키는 미생물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그래서 세균성 질염이 생기면 질에서 비린내가 난다. 하지만 세균성 질염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질을 자주 씻는다거나 항생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오히려 질 건강이 더 나빠진다대부분 사람은 정자가 난자의 두꺼운 표면을 뚫는 힘이 강해서 난자를 향해 돌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자의 힘은 생각보다 약하다. 난자의 도움 없이는 수정할 수 없다


버자이너는 혼자가 아니다. 제각기 다른 생김새의 VV를 만나면 ‘W’가 되고, 비로소 다양한 여성(Woman)의 몸을 제대로 말할 수 있다건강한 여성의 몸’, ‘날씬한 여성의 몸’, ‘임신할 수 있는 생물학적 여성의 몸은 여성의 몸을 획일적으로 보게 만든다. 이러면 장애인 여성의 몸, 자궁이 없는 여성의 몸, 난임 여성의 몸은 비정상적이고, 가치 없는 몸이 된다.


버자이너와 늑대는 공통점이 있다. 오랫동안 오해와 편견에 시달렸다. ‘외로운 늑대라는 부정적 의미의 표현 때문에 사람들은 늑대가 동료들과 연대하면서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버자이너는 번식과 출산을 위한 신체 기관으로 여겼다버자이너와 늑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적개심은 잔인한 대학살로 이어졌다. 질 모양이 이상한 여성은 마녀로 몰렸으며, 늑대는 공격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사냥꾼들의 손에 희생당했다버자이너에게 어울리는 새로운 이름은 버자이너 울프(Vagina Wolf)’버자이너 울프는 더 많이 말해야 한다. 민망하다는 이유만으로 입을 다물어선 안 된다. 질의 침묵이 너무 길어지면 질을 둘러싼 무지는 엄청나게 두꺼워진다두꺼운 무지를 뚫고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찾으려면 계속 말로 두드리면서 생각하고, 탐구해야 한다.






<cyrus의 주석>



* 32





 프랑스 수상[주1]을 열한 번이나 지낸 아리스티드 브리앙(Aristide Briand)을 비롯하여 유럽 전역의 고위급 남성들과 열정적인 연애를 이어갔다.


[원문]


 Then She embarked on a series of passionate affairs with high-ranking men across the Continent, including Aristide Briand, the eleven-times prime minister of France.

 


[1] 프랑스는 이원집정부제 국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President of the French Republic)과 국회가 선출한 총리(prime minister of the French Republic)가 프랑스 정부를 이끈다. 대통령이 국가 원수에 해당한다. 현재 프랑스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이며, 총리는 가브리엘 아탈(Gabriel Attal)이다. 따라서 수상이 아니라 총리로 번역해야 한다.





* 378쪽 옮긴이 주





 1800년대 말[주2]에 활동한 미국의 화가. 모더니즘 회화의 선구자로 불리며 자신만의 꽃 사물화를 완성했다.

 


[2]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에 대한 주석이다. 오키프는 1887년에 태어나 1986년에 세상을 떠났다. ‘1800년대1800~1809년까지의 기간이며 넓게 보면 19세기(1800~1899년)에 해당한다. 1800년대 말에 활동한 오키프는 너무 어리고 화가가 되기 전이다. ‘20세기에 활동한이라고 고쳐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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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3-14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늑대를 연구해 봐야겠군. 이책 표지가 맘에 안 들어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책값이라도 싸면 좋겠는데 넘 비싸. ㅠ

cyrus 2024-03-18 02:57   좋아요 1 | URL
늑대의 생태계를 소개한 책 한 권 가지고 있긴 한데, 절판됐어요. 생각보다 늑대를 조명한 책들이 많지 않아요. 안 사더라도 읽어보면 좋아요. 참고로 저 이 책 북펀딩에 참여했어요. 책 안에 북펀딩에 참여한 분들의 이름이 적힌 카드가 있는데, 거기에 제 이름 있어요. ^^

추풍오장원 2024-03-16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총리와 수상은 같은 뜻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틀린 번역이라기보다는 수상이 요새 잘 쓰이지 않는 직위명인것 같네요...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같은 통치구조하고는 별 상관 없는 것 같군요.

cyrus 2024-03-18 03:03   좋아요 1 | URL
‘프랑스 총리’라는 표현이 많이 보여서 아무래도 ‘수상’보다는 ‘총리’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총리’가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라고 해서 꼭 그 단어만 써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요. 사실 처음에 주석을 달기 전에 수상과 총리는 크게 차이가 없는 직함이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

추풍오장원 2024-03-18 11:46   좋아요 1 | URL
이젠 ‘수상‘이라는 직위명은 거의 쓰지 않는것 같네요 ㅎㅎ
너무 권위적인 표현이라고 여겨서 그런건지 우리나라 총리랑 일치시키려고 그런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