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나무의 추억 민음의 시 61
박진형 지음 / 민음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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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형 시인은 현재 대구시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도서출판 만인사 대표이기도 하다. 만인사는 유병찬님(a.k.a yureka01)의 《소리 없는 빛의 노래》를 펴낸 곳이다. 박진형 시인은 198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1994년 첫 시집 《몸나무의 추억》을 발간했다. 시집을 펴낸 출판사는 민음사다. ‘몸나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집의 제목이 눈에 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봄나무’로 착각할 수 있다.

 

우리는 가지가 꺾였거나 말라 죽은 나무를 보면 ‘죽은 거나 다름없는 무생물’로 규정한다. 그렇지만 죽었다고 생각한 나무의 생명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나무는 여전히 버섯이나 박테리아와 반응하면서 분해를 통해 흙으로 돌아가는 나름의 길을 계속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 생태계 순환에 기여하는 나무의 모습은 생명의 힘을, 그 궁극의 힘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그런 사람이다.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일, 절창 끝에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기억하는 일. 그런 작업이 시인의 몫이다.

 

 

 

나는 꽃 피는 몸나무이다

한 번도 꽃 피지 않은

몸나무의 추억이다

 

새로 어린 나무를 옮겨 심은 뒤

물을 뿌리며 나도 꽃 피던 몸나무인가

딱딱한 껍질을 초록 이빨로 깨물어

연한 기쁨의 상처를 만드는

나무는 즐거울거야. 내 몸도 덩달아

 

잎 밀어낼거야. 수돗물에서

외눈박이 도깨비들이 투당탕

튀어나온다, 없는 손마다 페놀방망이

수은방망이 납방망이 카드뮴방망이를 들고

닫힌 집들의 창자를 요란스레

두들기도 다니는

 

몸이 가렵다, 부스럼딱지가 숭숭 돋고

손톱이 할퀴고 간 꽃 진 자리마다

희디흰 거품 피가 묻어난다

마음의 문고리를 흔드는

한때 꽃 피던 몸나무의 시절은

육각수(六角水)의 집인가

 

무지막지한 시간에 시간(屍姦)당한

쿵쾅 도깨비가 뛰어다니는

봄에도…… 꽃 피지 않은…… 몸나무는

꿈꾸는 힘으로 버팅긴다

 

(『몸나무의 추억』 28~29쪽)

 

 

 

고통과 절망 뒤에는 회복력과 희망이 생기는 법. 나무의 생명력은 인간의 손길보다 훨씬 빠르다. 몸나무의 껍질에 생긴 상처에는 희디흰 수액이 아닌 푸르른 생명력이 흘러나온다. 상처에 새살이 돋듯 ‘기쁨의 상처’는 싱그러운 꽃으로 덮인다. 푸릇푸릇한 잎새가 자라는 데 방해하는 페놀, 수은, 납 등은 나무의 생명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페놀 방망이’는 대구 · 경북 지역민들에게 물 오염에 대한 트라우마를 심은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의미한다. 오염된 수돗물은 생명력이 없는 죽은 물이다. 죽은 물을 흡수해 독소가 축적된 몸나무는 생명력을 잃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많은 군중을 넘어 가장 바깥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자아, 즉 나무를 응시했던 시인은 절망을 느끼되 굴복하지 않는다. 몸나무는 꽃을 피웠던 추억을 되살려 생의 맥박이 끊어지지 않도록 버틴다. 고통의 시간이 오히려 강인한 생명력을 촉발한다.

 

시집의 추천사를 쓴 이하석 시인은 박진형 시인을 가리켜 ‘식물적 상상력의 시인’으로 소개했다. 박진형 시인의 식물적 상상력은 지나치게 관념적이지 않다. 식물적 상상력은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풍요롭게 하는 회복제이다. 시인은 상상력으로서의 생명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나무와 같은 친숙한 자연의 소재들을 선택했다. 『돌배나무는 불구가 아니다』에서 돌배나무를 친친 감싼 철사는 나무의 생명력을 서서히 파괴한다. 돌배나무를 기르는 김씨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숨쉬기 어려운 통증이 엄습한다. 김 씨가 체험하는 식물적 상상력은 파괴적인 충동이 아니다. 김 씨는 자연마저 파괴해버리는 폭력이 인간성마저 파괴하는 것들임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가 기르는

돌배나무는 베란다에 혼자 나가

가을비에 흠씬 두들겨 맞았다

철사에 온몸에 감긴 채

잎과 꽃을 지우고

거짓말처럼 탐스런 돌배 두어 개

허공에 매달아 두었다

 

자라지 않는 몸을 하고

행상에서 돌아온 김씨는

날마다 우우 고함을 지른다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어싶어싶어

목청껏 소리를 질러도

발음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때로 생각난 듯

철사에 친친 몸이 감긴

나무에게 희망의 소다수를 뿌리며

 

나는 불구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가난에 막무가내로 결박당한

돌배나무일 뿐이야, 하고

김씨는 중얼거린다

 

(『돌배나무는 불구가 아니다』 32~33쪽)

 

 

 

비록 입 안에서만 겉도는 혼잣말이 되었지만, 김 씨는 폭력과 억압으로 인해 인간성이 결박당한 시대 속에서 희망을 외치려고 한다. 인간성 회복을 호소하는 김씨의 목소리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정신을 생각하겠다는 결연한 자세이다. [1]

 

무성한 잎새와 과실을 달고도 끄떡없었던 나무들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 가을에 접어들면 허룩한 잎새는 무거운 듯 떨군다. 그렇지만 그 뻣뻣해진 나무속에 우리가 볼 수 없는, 초록의 추억만큼은 남아 있다. 그 초록의 추억은 분명하다. 그것은 생명력이다. 그리고 재생의 꿈을 간직한 희망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나무의 몸을 투시한 박진형 시인은 살아있는 존재가 느끼는 아름다움 슬픔까지 환히 들여다보는 명징한 시를 썼다. 섬뜩한 한강의 식물적 상상력과 차원이 다른 따뜻한 박진형의 식물적 상상력을 느껴보시라. 시선집으로 나온 《길은 헐렁한 자루 같다》(만인사, 2014년)에 《몸나무의 추억》에 모아놓은 시가 있다.

 

 

 

[1]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있는 구절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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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2 17:27   좋아요 1 | URL
제가 말했던 시집이 이 책입니다.. ㅎㅎㅎ

저야 영광입니다. 시인의 처녀시집에 친필 사인을 받고 싶어요. ^^

2017-01-12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2 17:53   좋아요 1 | URL
만인사에서 펴낸 시집도 같이 챙겨야겠습니다. ^^

yureka01 2017-01-12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부분 대구지역의 시인들이죠...아마 시리즈로 50권이 넘은 걸로 압니다.^^..50권 시집이라면 엄청 많은 분량이라서 저도 몇권 밖에 없어요.ㅎㅎㅎ 다 모으기는 것은 문학지망생정도면 ..봐야할지도요 ^^ ㅋ

cyrus 2017-01-12 18:01   좋아요 1 | URL
제가 자주 찾는 서부도서관에 ‘향토문학관‘이 있어요. 대구 경북 출신 문인들의 책이 많습니다. 구하기 힘든 옛날 책도 있어요. ^^

낭만인생 2017-01-13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어찌 이리 좋습니다. 혹시 오십 넘으신 건 아니죠?

cyrus 2017-01-13 09:29   좋아요 0 | URL
올해 서른입니다. 제 글보다는 시가 더 좋습니다. ^^
 
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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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지망생들은 문학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기성 문인들도 마찬가지다. 문단 내의 추문이 잇따른 이 상황 속에 문학에 대한 확고한 자의식을 지니지 못한다면, 문학을 하는 행위의 소중한 의미를 망각하기에 십상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문인에게 자신의 글쓰기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는 행위는 더할 나위 없이 의미 있는 작업이리라. 대부분 뛰어난 문인들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정교한 자의식과 진솔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한 확고한 자의식이 실종된 시인에게서 탁월한 시가 나올 수 없다. 나는 김용택의 오래 한 생각을 읽으면서, 문학과 시의 근원적 의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느날이었다.

산 아래

물가에 앉아 생각하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있겠지만,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고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사랑의 아픔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바람의 괴로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오래 하였다.

 

(오래 한 생각, 울고 들어온 너에게20)    

    

 

문학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숙명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투명하게 성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시인이나 문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용택은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 사랑을 모르나보다같은 시는 엄밀한 자기 성찰의 표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쓸 때는 정신없어.

써놓고 읽어보면

내가 어떻게 이런 시를 썼지?

놀라다가, 며칠 후에 읽어보면

정말 싫다. 사는 것까지 싫어

당장 땅속으로 푹 꺼져버리거나

아무도 안 보는 산 뒤에 가서

천년을 얼어 있는 바위를 보듬고

얼어 죽고 싶다.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르나보다.

 

(사랑을 모르나보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69)

 

 

난해한 시를 읽으면 정말 싫다. 시인들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 이런 시를 썼지?”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시인과 독자 사이의 본원적인 교감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는 데는 사회적인 환경의 변화도 있지만, 시인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즉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할 시가 쓸데없이 어려워지는 이유를 시인도 잠시 펜을 내려놓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난해한 시는 대체로 자폐성이 있다. 그 시를 쓴 시인은 마음을 꽉 닫아놓고 나는 나대로 이렇게 쓸 거야라고 생각하는 자폐성이 있다. 시는 몇 마디 말로 이루어진 가장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문학적 대화이다. 시도 다른 말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대화이다. 시인이 힘 있고 감동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대화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오는 시를 쓸 수 있다. 이는 시인들이 짊어져야 할 숙명적인 책임이다.

 

김용택의 시는 담백하고 착하다. 화려한 기교와 인공조미료가 가미된 듯 문장을 요란하게 꾸미고 멋 부리기를 하는 시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거짓 없고 꾸밈없는 글쓰기를 지향해온 시인답게 열두 번째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는 순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시는 천진하고 순박한 자연을 그대로 닮았다. 시인은 꽃 한 송이로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감동을 안겨주고, 깊은 깨달음을 준다.

 

 

내가

저기 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저기 꽃이 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꽃을 보라고

다시 말했다.

 

(시인, 울고 들어온 너에게25)

 

 

시를 읽는 것은 시인과 서로 대화가 돼서 알아들을 때 재미있게 느껴진다. 시인 혼자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시보다는 서로 대화가 될 수 있는 시를 읽는 게 편하다. 간혹 가벼운 시마저 어렵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다. 그럴 때 이게 시냐?’, ‘이런 시를 쓰고 다니는 시인이 누구냐?’라고 묻기 전에 한 번 더 읽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말을 듣기 위해 좀 더 바싹 다가앉아야 한다. 이렇게 해도 요즘에 나온 시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시집 읽기를 그만두는 것이 좋다. 시의 난해성 앞에서 절대로 좌절하지 마시라. 그런 시들은 거친 생각을 도정(搗精)하지 않고, 언어를 다듬지 않은 공허한 문자 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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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4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4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4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4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11-24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도 많이 어렵지 않아서 저도, 김용택 시인을 좋아합니다.^^

cyrus 2016-11-25 09:10   좋아요 0 | URL
쉽게 읽을 수 있는 시가 시험 문제지에서 보면 어렵게 느껴질까요? 아이들이 시를 문제지에서만 보게 되니까 시가 어렵다는 편견을 가지게 됩니다. ^^;;

단발머리 2016-11-25 09: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희 집 아이도 시 분석을 그렇게 싫어하더라구요~~ 먼저 충분히 느껴야하는데 ㅠㅠ

2016-11-24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5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6-11-25 0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자가 쉽게 이해한다고 시인이 시를 쓸 때 정말로 ‘쉽게 쓰여진 시‘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cyrus 2016-11-25 09:14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인들은 서재 밖으로 나와서 독자들과 자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독자들이 선호하는 시가 뭔지 직접 알 수 있잖아요. ^^
 
이연주 시전집 - 1953-1992
이연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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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났군요.” 올해 들어 기형도의 시집을 자주 꺼내 든다. 김현의 해설을 잠깐 펼친다.

 

기형도의 리얼리즘의 요체는 현실적인 것(-개인적인 것-역사적인 것)에서 시적인 것을 이끌어내, 추함으로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 시적인 것이라는 것을, 아니 차라리 시적인 것이란 없고, 있는 것은 현실적인 것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흙탕에서 황금을 빚어내는 연금술사가 아니라, 진흙탕을 진흙탕이라고 고통스럽게 말하는 현실주의자이다.

 

(김현, 《입 속의 검은 잎》 해설 152~153쪽)

 

이어 검은색 표지의 《이연주 시전집》을 꺼내 든다. 김현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1990년대적 변용을 이 시집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연주의 세계는 한층 극단적으로 조정된 이미지의 대비, ‘구역질’이라고 일컬을만한 비틀림과 부조화의 잔인성을 드러낸다. 이연주는 어둠을 '어둠'이라고 고통스럽게 말하는 현실주의자이다.

 

 

바람난 에미가 도망치고 애비가 땅을 치고 울고

 

애비가 섰다판에서 날을 세고
그 애비의 아이가
애비를 찾아 섰다판 방문을 두드리고

 

본드 마신 누이가 찢어진 속옷을 뒤집어 입고
지하상가 쓰레기장 옆에서
면도날로 팔목을 긋고

 

세 살 난 막내가 절룩, 절룩 자라가고
에미 애비와 누이의 일들을 거침없이 이해하고

 

오늘,
밤마다 도시가 하나씩 함몰되고, 나는
등불에서
등심지를 싹둑, 싹둑 잘라내고

 

 

(이연주 「가족사진」, 26쪽)

 

 

그녀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한 마디의 주제라 할 수 있을 '죽음'은 이렇게 자신도 잘 기억하지 못했던 유년시절부터 공기처럼 주위에 있었던 셈이다. 왜 죽음일까. 그것은 수수께끼 같은 삶의 의미를 해독하려는 시인의 몸짓일 것이다. 죽음을 통해 거꾸로 삶을 보는 방법이다. 우리는 흔히 90년대를 지금보다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었다. 절망의 구석도 많았고 그것을 헤집고 나서지 못한 젊은이들도 많았다. 자꾸만 물질로 기우는 의식들. 그래서일까. 당시의 부조리한 현실은 그 자체가 일종의 테러리즘이었다. 이연주는 이를 박차고 나가기가 힘들었을까. 그의 시는 내내 이런 구석들을 철저하게 파헤쳐 있다.

 

 

이제, 용기 있는 이별 앞에
석유는 준비되었느냐?
성냥이 찬이슬에 젖어버리진 않았겠지?
노숙하는 이의 쓰라린 밤잠을 불러오너라
우리 함께,
다 같이 나도 말이지
 
살아 남아 슬프지 않은 나라,
옳거니, 기쁜 일이다, 가자.

 

 

(이연주 「방화범」 중에서, 50쪽)

 

 

마치 자기 죽음을 예고라도 하는 듯한 구절들이 엄숙하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을 파괴하는 완숙함. 읽을수록 시인의 단호한 어조가 사납게 느껴진다. 시인은 어둠의 저편에서 내뿜는 죽음의 습기를 지켜보는 자이다. 「매음녀 6」은 어머니를 매개로 두터운 망각의 지층 속으로 사라질 뻔한 자아와 죽음을 응시한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젖이 없어 울으셨다.
어머니 숨 거두시며
마음 착한 남자, 등짝 맞대 살으라 이르셨다.
나는 부둣가에서
선술집 문짝에 내걸린 초라한 등불 곁에서
매발톱 손톱을 키워 도회지로 흘러왔다.
눈 붙이면 꿈속에서 어머니
이 버러지 같은 년아,
아침까지 흑흑 느껴 우신다.
내 심장 차가운 핏톨, 썩은 물 흐르는 소리.
나는 살 속 깊은 데서 손톱을 꺼내
무덤을 더 깊이 판다.
하나의 몫을 치르기 위해 삶이 있다면
맨몸으로 던지는 돌 앞에 서서 사는
이 몫의 삶은......
희미한 전등불 꺼질 듯 끄물거린다.

 

 

(이연주 「매음녀 6」, 46쪽)

 

 

시인은 죽음으로 끝난 어머니의 삶을 대신 이어가려는 어느 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한 인간의 죽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불확실하지만, ‘희미한 전등불 꺼질 듯 끄물거린다’에서 볼 수 있듯이 벼랑 끝에서 시인의 몸을 던져버리는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이연주 시인이 말하는 죽음은 이런 개인적 죽음의 응시만은 아니다. 90년대는 도시의 빌딩이나 인간, 어느 쪽도 순수함을 간직하지 못하고, 더럽혀진 욕망에 노출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새로운 세상을 앞둔 세기말이 다가오는 이 시대에 적어도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죽음이라는 주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 시인은 상실감에 주저앉거나 탈속과 초월의 세계로 숨어들기보다 혼곤한 정신을 깨우는 절규를 노래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다. 그녀는 가슴에 끓어오르는 격정을 머뭇거리지 않고 단숨에 토해내고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상처받고 찢기면서 마음의 쓸쓸함을 견디려는 시인의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다.

 

시인은 쓸쓸한 삶의 풍경 속에서 희망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희망이란 가정일 뿐이며 이 세상 바깥은 온통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세상에 없는 그녀를 사람들이 더욱 잊지 못하는 것은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뒤흔드는 허무와 절망에서 솟음치는 진실한 회한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시를 쓰는 행위는 불가능에 이르는 도정(道程)이고 따라서 그 자체가 지긋지긋한 죽음의 과정이다. 이연주의 시는 그 죽음의 도정의 기록이다. 지상에서의 삶의 헛됨과 추악함을 우의적으로 보여주는 그녀의 시가 밝은 면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불편한 구석이 분명 있다. 그렇지만 이미 시커먼 욕망으로 지배되어 시궁창이나 다름없는 이 세상을 생각한다면 그녀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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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11-08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전에 < 속죄양, 유다 > 에 대해서 평점 별 4를 부과했는데..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연주의 고통과 남성 시인이 자기 연민에 빠져서 징징거리는 것을 혼동한 까닭입니다.
비교가 안 되죠.. 사실은. 이 시집 저도 곧 조만간 살 계획입니다만.... 좋은 시집을 농간 측에서 출간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cyrus 2016-11-09 14:00   좋아요 0 | URL
시인의 남동생 분과 생전에 시인이 활동했던 문학 동인지 소속 회원들이 아니었으면 시전집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시인의 재능이 제대로 활짝 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yureka01 2016-11-08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장바구니 넣도록 하겠습니다...아픔의 언어가 곳곳에 베어져 있어요..면도날처럼...

cyrus 2016-11-09 14:00   좋아요 0 | URL
기형도 시집만 계속 팠던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이연주 시인이 재평가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동네 한 바퀴 솔시선(솔의 시인) 19
하재일 지음 / 솔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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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힘과 나무의 무시무시한(?) 성장 본능이 합치면 신기한 현상이 연출된다. 나무는 자전거를 자신의 몸속으로 삼켜버린다. 목륜일체(木輪一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여 년은 필요하다. 자전거가 땅에 쓰러지지 않고 나무 옆에 서 있었던 것도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이 자전거는 나무 곁에서 서서 주인을 기다렸을 것이다. 주인이 보고 싶어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숲에서 서성였을까? 나무는 외로운 자전거의 마음을 알았는지 천천히 보듬어 안아줬다.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나무껍질에 자전거의 설렘과 기다림, 그리고 사랑이 있다.

 

 

 

사랑이란 서로 다른 생각이 어둠으로 잠겨 있는 것

 

성당 진입로 담장 아래 자전거가 자물통이 채워진 채
은행나무에 꼼짝없이 강아지로 묶여 있듯이

 

자전거의 주인은 품이 크고 속이 깊은 나무를 믿고
쇠줄을 채워 놓은 채 쏜살같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자기들끼리 길가에 버려져 바람의 결에 노숙하는데
위치를 벗어나 야반도주라도 할 생각은 없는 것일까

 

간혹 지나가는 행인이 술에 취해 발길질을 해도
맨몸으로 부둥켜안고 있어야 날마다 쓰러지지 않는다

 

내가 배회하던 밤, 달빛으로 서로에게 이불을 덮어주면
불편한 거리의 사랑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무와 자전거의 결합이 상처뿐인 생이 아니라
둘의 맹세인 옹이로 변해 잎은 푸르러지는 것이다

 

(『자전거는 푸르다』, 18쪽)

 

 

 

나무는 썩어가면서 죽어가고, 자전거는 녹이 슨다. 시간의 절대적인 힘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껴안은 나무와 자전거는 여전히 건재하다. 둘의 맹세는 서로를 지탱해주는 영양분이 된다.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사랑의 힘 때문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지루할수록 시간만 더디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기다리는 내내 괴로울 뿐이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의미로 채워진다면, 어느덧 시간이 흘러 새로운 상대방과 함께하는 사랑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자전거의 조용한 변화는 기다림 뒤에 온 것이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기다림이다. 『자전거는 푸르다』는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시다. 길고 아픈 기다림일수록 아름답다.

 

이성적인 잣대에 적응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고단한 현실에 대한 강박관념에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이 애매모호한 일에 직면하면 인내심이 부족해진다. 자신이 만든 울타리를 스스로 넘어서지 못해 혼자 쓸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구석에 박힌 돌이 차돌이다
사람도 구석에 박힌 인간이 독종이다
너도 그런 구석에 머무르고 있느냐
조물주도 몸의 구석은 거웃이나 비늘을 입혀 보호하잖니
세상의 구석에 박혀 있다고 서운해 하지 마라
바람이 불면 언젠가 넓은 대양으로 나갈 수 있단다
모처럼 땀을 흘리며 밭일을 도와드렸더니

 

엄니께서 대뜸 하시는 말씀
애비야, 너도 그런 살가운 구석이 있었남?

 

(『구석』 중에서, 60~61쪽)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구석에 박힌 돌’처럼 숨어 있다. 세상과 담쌓은 채 구석에 오래 머무르면 무력감과 자기 비하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들은 자신을 살갑게 대해주는 타인을 ‘굴러들어온 돌’로 여긴다. 이것이 바로 행복으로의 통로를 가로막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서늘한 세상에 나와 타인을 연결해 주는 소통의 창이 열려면 부드러운 살가운 구석이 있어야 한다.

 

살가운 구석이 전혀 없고, 타인과 세상에 무관심하다 보면 기다림이 주는 행복한 설렘과 기대감까지도 함께 사라진다.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고 없어진 뒤에야 이 슬픈 사실을 알아차린다. 배려의 마음도 아주 소중하다. 이기적인 동기든, 연민과 자비의 심정이든 타인에게 주는 마음은, 행복이야말로 나눌수록 커진다는 이상한 산수를 실감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감성으로 가득 찬 유년의 수많은 기억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비로소 찾아온다. 나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삶에는 언제나 진하고 아름다운 감동이 있다. 그 따사로운 감동의 여운이 『동네 한 바퀴』에 남아 있다. 

 

 

 

 따끈따끈하고 쫀득쫀득한 강원도 찰옥수수가 왔어요. 맛있는 술빵이 왔어요. 동네 한 바퀴, 부지런히 도는 트럭 한 대. 꽁무니 따라가며 동네 한 바퀴 천천히 도는 내 발걸음. 사람들은 한 명도 모이지 않고 봄밤에 꽃망울 부푸는 벚나무들만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네.

 

 꽃나무 아래엔 온종일 홀로 거리를 지킨 빨간 우체통. 오늘 입에 넣은 건 어느 불량한 길손이 던져 준, 피다 버린 꽁초 한 대뿐. 그래도 이웃이 좋아 주소를 옮길 수 없네.

 

 환하게 꽃 핀 알전구 매달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동네 한 바퀴, 두 바퀴로 이어지는 트럭 한 대. 벚꽃보다 지름길을 알고 먼저 왔네. 목련보다 먼저 달려왔네. 아직 일러 꽃은 불을 켜지 않았고 봄이 오는 밤길을 환하게 비추며 지나가는 트럭 한 대. 오늘 판 거라곤 겨우 해질녘 꼬부랑 할머니가 팔아 준 술빵 한 봉지. 누구나 편안한 물컹대는 밤인데.

 

 나 홀로 천천히 걸어보는 동네 한 바퀴, 서서히 길들이 어둠 속에 잠겨가네.

 

(『동네 한 바퀴』, 110쪽)

 

 

 

우리 사회에는 이웃에 대한 배려가 많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나만 좋으면 된다는 이기심이 늘어났다. 이런 암울한 세상 탓에 우리 사회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남을 배려하고 사랑한다면 다툼이 적어질 텐데, 참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진 많은 욕망을 죽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편하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 자고 싶은 마음, 더 많이 갖고 싶은 마음 등 사람이 살면서 일어나는 많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큰 성취를 이루려면 작고 소박한 것들로 채워지는 시간도 사랑해야 한다. 이처럼 사랑의 감정은 쓸모없고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차가우면서 고달픈 이성적인 세상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난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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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0-10 16: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사진을 보니 `아폴로와 다프네` 조각상이 떠오르네요..ㅋ 「변신 이야기」의 테마가 이런 신기한 현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cyrus 2016-10-10 17:47   좋아요 1 | URL
정말 탁월한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니 인간의 식물성 모티프의 원조는 다프네인 것 같습니다. ^^

또 봄. 2016-10-10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좋지만 글 제목이 제일 좋군요.

cyrus 2016-10-10 17:48   좋아요 0 | URL
제 글보다 시가 더 좋습니다. 제가 인용한 세 편의 시 이외에도 좋은 시가 더 있습니다. ^^

yureka01 2016-10-10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시를 부르게 됩니다. ㄷㄷㄷ

cyrus 2016-10-10 17:50   좋아요 1 | URL
‘자전거를 푸른다’를 읽으면서 자전거 먹는 나무 사진이 제일 먼저 생각났습니다. 시인은 제가 찾은 사진을 봤을까요? 시 덕분에 옛날에 봤던 사진 한 장을 찾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자전거 먹는 나무에 대한 감동적인 사연이 있는데, 이게 과연 진짜로 있었던 일인지 의심이 듭니다. ^^;;

AgalmA 2016-10-10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요즘은 동네 꼬마들이 찌링찌링 자전거 벨을 울리며 지나가는 풍경이 사라진 거 같아요. 그 조그만 자전거엔 또 뒷자리가 있어서 옹기종기 타고 있는 앙증맞은 이쁜 모습도 있었는데, 같이 사라져서 아쉽습니다. 요즘은 어린이용 슈퍼카 문화도 있더군요ㅎ;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세상을 탐험하는 경험 제겐 참 좋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학습 노동에 시달리니....

cyrus 2016-10-10 19:46   좋아요 0 | URL
자전거로 등교하는 아이들도 많지 않을 겁니다. 요즘은 버스나 부모님 자가용에 탑승해서 등교하니까요. 예전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 장소가 사라지고 있어요. 만화방, 오락실, 비디오 대여점.

또 봄. 2016-10-10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시보다도 사랑이에요. T.T

cyrus 2016-10-10 19:47   좋아요 0 | URL
사람을 만나면서 느끼는 감정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하죠. 저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

책한엄마 2016-10-10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사람이 그리워 지게 만드는 글 한 편 입니다.

cyrus 2016-10-10 19:49   좋아요 1 | URL
제 탓인지 아니면 세월 탓인지 좋은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친했던 사람들 생각하면 그리운 반 서러움 반 복잡미묘한 감정이 생깁니다. ^^;;

비로그인 2016-10-25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기심보다 사랑이 넘치는 따스한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의 한 구절이다. 이때 시인이 말한 질투는 부질없는 짝사랑이요, ‘나의 힘이란 헛된 열망을 품은 어리석은 용기이다. 시인이 그렇게나 미친 듯이 찾고 싶었던 사랑은 젊은 날의 상처 같은 기억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기형도가 스스로 내적 상처를 분석하여 거기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한 시인이라고 평했다. [참고1] 역량이 부족한 시인은 자신의 감정적 상처를 과장되게 표현한다. 김현은 그런 시인들을 힘겨운 감상의 망토라고 표현했다. 이 구절은 기형도의 또 다른 시 비가 2 붉은 달(입 속의 검은 잎수록)에 있다. 기형도는 거추장스러운 감상의 망토를 벗어내는 데 성공했다.

 

시인 여림(본명 여영진)질투는 나의 힘같은 시를 읽고 무슨 느낌이 들었을까? 시 속에 있는 나의 생이 마치 자신의 자화상처럼 여겼을 것이다. 빨간 망토는 기형도를 오마주한 시가 분명하다.

 

 

빨간망토가 들어온다.

기형도는 어디에 있는 섬인가요

망연자실한 나를 버리고 빨간

망토는 유유히 망토 자락을 날리며 사라진다.

 

기형도는 어디에 쓰는 칼인가요

기형도는 무엇에 쓰는 지도인가요

 

그렇다

이 지상에 없는 너는

찾을 수 없는 섬이었고

써힐[참고2] 수 없는 칼이었고

나침반을 들고서도 찾을 수 없는 지도였다.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꽃처럼

호랑이 발톱같은 가시 네 개를 보여 주며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말했을 뿐.

 

(여림 빨간 망토,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150)

 

 

빨간 망토는 시인의 분신이다. 여림은 자기 자신을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쓰고 있는 시인으로 여긴다. ‘빨간 망토를 쓴 시인은 자신에게 영감을 준 기형도를 찾으려고 한다. 허나 이 지상에 없는시인을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나를 포함해서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기형도의 시를 내가 좋아하는 시에 포함해 요란하게 소개한다. 하지만 기형도의 시는 어두컴컴하고 차갑다. 자기 연민이 점철된 서늘한 문장은 예민한 자의식이 아니고서는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정서다. 망토 자락을 날린 채 기형도를 찾아 헤매는 여림은 좋은 시인이 아닌 상태다. 그가 지금까지 써왔던 시들은 호랑이 발톱 같은 가시 네 개를 보여 주며내적 상처를 과장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여림은 어설픈 망토를 벗고, ‘기형도같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헛된 열망이 있었다. 그렇지만 여림은 자신이 쓴 것들이 오로지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림의 질투는 시인으로서의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무기다.

 

여림은 끝끝내 질투를 힘으로 변용시켜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벗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시를 써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기형도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운명 속에 살다가 떠났지만, 여림은 운명에 대한 사랑을 충실히 느꼈다.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아모르 파티’(Amore Fati). 운명에 대한 사랑이란 단순히 체념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내 운명이라면 당당히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어떤 고난이 닥쳤을 때 이게 내 운명이야.’라며 체념하는 것과 이것이 내 운명이라면 나라도 사랑하겠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여림은 어디에 쓰는 칼무엇에 쓰는 지도를 찾지 못했지만, ‘시원한 그늘이 드리우는 수풀()’이 되었다. ‘빨간 망토를 쓴 여영진에서 망토를 벗은 시인 여림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극적인 순간이다. 이 환희의 순간을 담담하게 노래한 시가 마음속의 나무.

 

 

혼자 히죽히죽 웃음을 흘릴 때가 있다.

, 내가 살아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불현듯 이

그제서야 혼자 깨어 있다는 뜻모를 우울함에 젖어서 말이다.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자신의 치장하지 않은 내면세계와 정면으로 마주 앉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단서도 붙이지 않고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마음.

살아오면서 마음밭에 어떤 시를 뿌리고 어떤 열매를 맺어 왔을까.

아니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되어 그들의 곤한 몸을 편히 쉬게 했을까.

모두가 잠든 사이,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은 넓고 지순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그 맑고 지순한 영혼의 물소리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고

노래를 한다.

삶이 답답하고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 어두울수록 그의 노래는 더욱 깊이를 더한다.

 

(여림 마음속의 나무중에서,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79~80)

    

    

 

혼자 깨어 있는 나무의 모습은 차라투스트라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긍정하는 삶의 지혜를 찾으려 평생을 헤맨 존재였다.

 

 

 

 

 

 

 

 

 

 

 

 

 

 

 

 

 

 

 

 

시인은 차라투스트라처럼 비탄과 불행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 앉아 바라보는 삶의 긍정을 꿈꾼다. 운명애는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창조하는 삶의 태도다. 운명애는 시인에게 스스로 보편적 의미를 부여하게끔 하였다. 여림은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했다. [참고3] 여림의 시는 고단한 일상에 눌려 있던 독자들의 영혼을 깨운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님들, 이제부터 기형도가 어디 있는지 찾지 말자. 여림이 어디에 있는 나무()인지 물어보자. 그가 어디에 있다고? 찾기 쉽다. 신기하게도 기형도의 시 속에 여림과 닮은 존재가 있다. 그는 살아 있다. 그는 노래를 부른다.

 

 

나무가 서 있다. 자라는 나무가 서 있다. 나무가 혼자 서 있다. 조용한 나무가 혼자 서 있다. 아니다. 잎을 달고 서 있다. 나무가 바람을 기다린다. 자유롭게 춤추기를 기다린다. 나무가 우수수 웃을 채비를 한다. 천천히 피부를 닦는다. 노래를 부른다.

 

나는 살아 있다. 해영(解永)의 강과 얼음산 속을 오가며 살아 있다.

 

(기형도 . . 바람 속에서중에서, 기형도 전집142)

    

 

    

 

 

[참고1] 김현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입 속의 검은 잎137

[참고2] 시집에 실린 원문에는 '써힐'로 인쇄되어 있다. 문맥상으로 봐서는 '썩힐 수 없는'으로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쇄 오자인지 아닌지 해당 출판사에게 직접 메일로 보내서 확인할 예정이다.  

[참고3] 여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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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08-30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 데나 펼쳐도 마음에 드는 시집 찾기가 쉽지 않은데, <입 속의 검은 잎>은 제게 그런 시집 중 하나입니다. 아직 다 읽진 못하고 군데군데 읽은 상태지만.. 아모르 파티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데요.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도 생각나고..ㅎㅎ

cyrus 2016-08-31 16:21   좋아요 0 | URL
생각날 때마다 읽고 싶고, 읽을 때 마다 느낌이 다른 시집이 좋은 것 같습니다. ^^

yureka01 2016-08-30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자에 들어 시집 리뷰로는 느낌이 푹 절여지는 기분....기형도 전집과 일전에 소개해준 여림의 유고시집 읽다 말다 또 읽다말다...흐물흐물해지더라구요....이달의 리뷰당선작 추가요^^.

cyrus 2016-08-31 16:22   좋아요 1 | URL
잘 쓴 글이라고 칭찬하면 반대 결과가 나오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이번 달은 당선작에 안 뽑힐 것 같군요. ㅎㅎㅎ

또 봄. 2016-08-31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림 유고 전집을 받긴 했는데, 선뜻 못 읽겠어요.
집에 있는 술이 모자랄까봐요. --;;

cyrus 2016-08-31 16:23   좋아요 0 | URL
시집은 생각날 때마다 읽으면 됩니다. ^^

yamoo 2016-09-01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강 망토.....하니 빨강 망토 차차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욤?? 흐미~

그나저나 저도 저 기형도 전집 갖고 있어요. 생각 날 때 가끔 펴서 몇 페이지 읽는데, 시가 참으로 좋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아, 제가 잘 읽는 거였군요. 생각날 때마다 가끔씩 펴 읽으니...ㅎㅎ

cyrus 2016-09-01 13:18   좋아요 0 | URL
`빨간 망토`하면 그림형제 우화가 먼저 떠올려야 하는데, 이제는 만화가 생각납니다. 차차 유명하죠. ㅎㅎㅎ

기형도 전집에 있는 미발표 시가 엄청 좋았습니다. 기형도 전집을 사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