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 신해철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 중에서 -






오늘 진행되는 니체(Nietzsche) 읽기 모임을 위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줄여서 차라투스트라’)를 오랜만에 펼쳤다. 11년 만에 다시 읽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김인순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열린책들, 2015)


*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이번에 읽은 번역본은 열린책들 판본이다11년 전에 읽은 책은 펭귄클래식 판본인데, 그때도 읽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읽었다지금도 11년 전의 읽기 모임을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발제를 맡았기 때문이다.


당시 읽기 모임에 관한 기록이 알라딘 블로그에 있다. 읽기 모임 날짜는 2011312, 그날도 토요일이었다! 20대의 나는 발제를 준비하느라 니체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가며 읽었다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책만 잔뜩 빌렸지 제대로 읽지 않았다. 어떻게든 발제문을 잘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앞섰고, 니체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의 내용을 발췌했다내 기준으로 괜찮은 내용을 모아 짜깁기한 셈이다허술하게 발제문, 아니 발췌문을 만들었으니 모인 진행이 미숙했다. 모임 후기도 썼는데, 이 글에 발제문이 수록되어 있다니체의 철학을 간략하게 정리한 발제문이라기보다는 니체의 생애를 요약 정리한 글이다글이 허접하다. 내용이 너무 뻔한데다가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면서 접한 니체 철학에 대한 내 견해가 단 한 줄도 없었다니체를 만난 20대의 내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과거의 나를 볼 수 없어서 슬프면서도 부끄럽다그때 책을 읽었을 때 나를 잊어버린 걸까, 아니면 지적 허영심이 강해서 책을 제대로 읽은 나를 잃어버린 걸까?


읽기 모임을 하기 5일 전에 쓴 글에 나는 이렇게 썼다. 늘 그랬지만, 과거에 쓴 글은 비문에다가 띄어쓰기가 엉망이다.



 만약에 니체의 사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니체의 다른 책들도 섭렵하고 싶다. 단순히 독서 모임 발제를 위한 수박 겉핥기식 독서보다는 깊이 있으며 나의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거쳐야[주] 할 어려운 공부라는 마음으로 독서하고 싶은 것이다. 혼자서 어려운 고전을 공부한다는 게 무모한 일이지만 스스로 즐긴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P.S 

 이 책들 이외에도 니체의 사상에 대해서 읽어볼만한 책들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주] 성장을 위해 거쳐야라고 써야 한다.



이 글을 쓰고 10년 후에 나는 본격적으로 니체의 다른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작년 5월에 시작한 니체의 저서 열 권을 읽는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어떤 변화를 겪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세창출판사, 2019)


* 프리드리히 니체, 강영계 옮김 30% 원서 발췌, 선악의 저편: 미래 철학의 서곡(지만지, 2020)


프리드리히 니체박찬국 옮김 선악의 저편》 (아카넷, 2018)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도덕의 계보(아카넷, 2021)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우상의 황혼(아카넷, 2015)

 

 


첫 번째 책은 이 사람을 보라니체가 자신의 생애와 철학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쓴 마지막 책이다이어서 읽은 책은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이다코로나19 재유행으로 인해 우상의 황혼을 마지막으로 읽기 모임이 중단되었다. 만약에 읽기 모임이 계속 진행되었으면 올해 여름에 읽기 모임 마지막 책인 차라투스트라를 완독했을 것이다. 오랜 휴식기를 마치고 차라투스트라로 읽기 모임이 다시 시작된다.


철학에 무지했던 20대의 나는 추신으로 니체와 관련된 책을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20대의 싸군(싸이러스 군)! 네가 정말로 니체 철학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이 사람을 보라부터 먼저 읽어. 차라투스트라》는 나중에 읽어당부하건대, 제발 시간에 쫓기듯이 책을 급하게 읽지 마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아침놀(책세상, 2004)




니체는 글을 느리게 쓰는 편이야. 그래서 아침놀 서문에서 자신의 책을 느린 가락의 친구라고 했어. 니체의 친구들을 읽으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해. 깊이 생각하면서, 섬세한 손과 눈으로, 천천히, 깊이, 전후를 고려하면서(아침놀)’ 읽어야 해. 그러면 니체를 잘 읽을 수 있을 거야.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2-10-08 10: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잘 알려진 철학자의 책 앞에서는 일단 읽어내고 싶다는 허영심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진정한 욕구가 항상 경합하는것 같아요. 저도 늘 허영심에 자리를 내줬는데 남은 삶은 니체,프로이트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사이러스님 응원합니다!

cyrus 2022-10-09 11:5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책 읽는 저의 20대는 무슨 책이든 열심히 읽으려는 의욕이 넘쳤고 내가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것을 뽐내고 싶었어요. ㅎㅎㅎ

stella.K 2022-10-08 10: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읽고는 싸군이 가을을 타는가 보구만 했더니 니체 옹 얘기였구만. 11년만이라니 감회가 새롭겠어. 열심히 잘 해 봐.😊

cyrus 2022-10-09 11:56   좋아요 3 | URL
올해 연말에 니체와 관련된 글이 많이 나올 거예요. ^^

얄라알라 2022-10-08 18: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항상 탄복하면서 cyrus님의 정교한 거름망 읽기 흔적을 따라가는데요.
본인의 11년 전 글에서도 고칠 부분을 찾아내셨네요...

신체능력이나 암기력(?) 등등 많은 부분에서 나이가 들수록 후퇴 흔적을 보는데
사람이 쓰는 글만큼은 그렇지 않을 수 있겠구나

희망을 가져봐야겠습니다^^

cyrus 2022-10-09 11:58   좋아요 3 | URL
글을 다 쓰면 태그를 반드시 남겨요. 그러면 태그를 통해서 예전에 쓴 글을 확인할 수 있어요. 20대에 쓴 글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고, 부끄럽고, 슬프고, 신기하고, 아무튼 여러 감정이 듭니다. ^^;;

mini74 2022-10-08 21: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공부라는 마음으로 독서하고 싶은 것이다 란 사이러스님 마음가짐 참 좋고 배우고 싶습니다. ㅎㅎ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 고맙습니다 ~

cyrus 2022-10-09 11:59   좋아요 3 | URL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

새파랑 2022-10-09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초딩때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듣고 니체랑 고흐를 처음으로 알았습니다만 니체는 감히 읽을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ㅋ

cyrus 2022-10-09 16:44   좋아요 3 | URL
어른도 어려워하는 니체인데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워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2-10-12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
읽다 만 책이 도덕의 계보 등 여러권 있습니다.
니체전집 보고 뿌듯해만 하고 있죠!^^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두 번째 읽기 모임(2022723, 카페 스몰토크) 후기


















[레드스타킹 7월에 읽은 책] 

* 임소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 (민음사, 2022)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두 번째 읽기 모임이 한 주 연기되는 바람에 독서 분량이 늘어났어요. 원래 읽어야 할 범위는 4~6장이었어요. 여기에 세 장이 더 추가되어 9장까지 읽어야 했습니다. 4장은 한때 과학이 주목하지 못한 태반의 역할을 중심으로 임신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5장은 임신과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6장은 난자 냉동 기술의 실태와 한계를 소개합니다. 7장과 8장은 여성 차별을 조장하는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 기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논합니다. 9장은 진화론을 옹호하면서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비판해온 페미니스트 진화론자들의 업적을 보여줍니다.

















* 찰스 로버트 다윈, 장대익 옮김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9)

* 찰스 로버트 다윈, 김관선 옮김 종의 기원(한길사, 2014)

* 장바티스트 드 파나피외 가볍게 꺼내 읽는 찰스 다윈(북스힐, 2020)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들고 다니기 편한 책이라서 저는 틈만 나면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어요. 계속 읽어 보니 아쉬운 대목이 한두 개 보였어요. 저자는 9장에서 진화론에 호의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라는 통념을 반박하기 위해 ‘1세대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를 언급합니다(134~136). 1세대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는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저서 종의 기원에 나온 진화론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 편은 신이 7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고, 최초의 인간 아담(Adam)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은 외로운 아담을 위해 그의 갈비뼈로 최초의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름 없는 여자는 선악과를 먹은 죄로 아담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나기 직전에 아담은 여자에게 하와(Ḥawwāh)’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하와는 생명을 뜻하는 히브리어입니다유럽인들은 세상과 인간을 신의 창조물로 보는 성경 속 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오래된 믿음을 뒤흔들어놓은 책이 바로 종의 기원입니다다윈은 이 책에서 인간과 동물이 하나의 조상 종에게 나와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면서 설명합니다.


종의 기원을 읽은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을,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성경의 권위에 맞설 수 있는 지적 무기로 받아들였습니다프랑스의 페미니스트 클레망스 루아예(Clémence Royer)는 종의 기원》을 자국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루아예는 진화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진화론에 열광한 남성 지식인들처럼 진화를 진보와 같은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4월에 읽은 책]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공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디플롯, 2021)

 

* 다니엘 S. 밀로, 이충호 옮김 굿 이너프: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다산사이언스, 2021)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2009)

















* 앤 커, 톰 셰익스피어 공저, 김도현 옮김 《장애와 유전자 정치: 우생학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 (그린비, 2021)


* 김호연 《유전의 정치학: 강제 불임에서 나치의 대학살까지》 (단비, 2020)


* [품절] 앙드레 피쇼 《우생학: 유전학의 숨겨진 역사》 (아침이슬, 2009)





다윈이 생각한 진화는 모든 종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종은 다른 종과 협력하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공진화). 그는 자연이 점점 더 좋아지는 쪽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루아예를 비롯한 일부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강한 자만 살아남도록’ 작동된다고 믿었습니다. 다윈의 의도와 완전히 다른 적자생존 진화론을 강조하면서 사회 전체에 적응하려고 했습니다. 진화에 잘 적응한 강한 자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거죠. 그들은 진화에 적응하지 못해 밀려난 존재를 ‘신체적으로 약하고 열등한 자’로 규정했습니다. 그런 존재의 등장을 막거나 제거하는 사회 정책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진화의 개념을 오용한 진화론자들은 우생학 전파에 동참했습니다.


루아예는 우생학적 관점으로 종의 기원을 해석했고, 자신만의 견해를 종의 기원프랑스어 번역본에 추가했습니다. 다윈은 루아예가 번역한 종의 기원을 읽다가 크게 실망했습니다. 루아예는 우생학과 관련된 구절과 참고문헌이 삭제된 2판 번역본을 내놓았지만, 다윈의 분노를 달래지 못했습니다. 다윈은 다른 프랑스인 번역가에게 종의 기원번역을 맡겼습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의 저자 임소연여성이 진화론의 오랜 친구이자 비판자’였다고 주장합니다(134쪽). 글쎄요, 저는 우생학에 열광한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의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읽기 모임에 꾸준히 참석한 분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책의 한계가 하나둘씩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저자가 각 장의 글에서 다룬 주제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서 아쉽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책은 총 열두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열두 편의 글은 원래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아무래도 지면상 한계 때문에 저자가 길게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저자는 과학은 여성의 친구임을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글에서 드러난 저자의 태도가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가르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느껴졌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과학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방대한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한 책이긴 합니다만, 이 책 한 권만 읽고 주제를 갈무리할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다루지 못한 내용이 남아 있거든요. 따라서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비판적인 읽기가 필요한 책이기도 합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족 2022-07-25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슨 인 케미스트리,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뭔가 과학에 대한 우상화,가 느껴졌어요^^;;

cyrus 2022-08-01 08:45   좋아요 0 | URL
별족님이 언급한 그 책, 제가 좋아하는 책일 수 있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이란 까야 할 게 많은 책입니다. ^^

별족 2022-08-01 09:29   좋아요 0 | URL
음, 이 책은, 음. 로맨스 소설이라서 못 읽으시지 않을까.

cyrus 2022-08-02 19:0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제가 로맨스 소설 안 읽는 거 잘 아시네요. ㅎㅎㅎ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1957년 서독에서 개발된 수면제다. 이 약을 개발한 제약 회사 그뤼넨탈(Grünenthal)은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그뤼넨탈은 수면제를 투여한 흰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 치사량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실험 결과에 흡족한 제약 회사는 인체에 해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계산부인과학회에 참석한 어느 산부인과 의사는 수면제가 입덧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산부인과 의사들은 입덧이 심한 임신부에게 탈리도마이드를 처방했다.

 

제약 회사의 안이한 판단으로 인해 탈리도마이드는 부작용이 없는 약으로 알려진 채 전 세계에 판매되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세계산부인과학회에서 처음 보고된 수면제의 또 다른 효과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들은 회의적인 의심을 하지 않았고, 철저한 과학적 검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결국 제약 회사와 산부인과 의사들이 예상하지 못한 수면제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산모에게서 팔다리가 짧거나 아예 없는 신생아들이 태어났다.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 일본 등에서도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을 겪은 신생아들이 태어난 사실이 알려졌다. 그뤼넨탈은 처음에 수면제의 부작용을 부인했으나 1961년에 판매 금지 및 수입 중단을 결정했다.

















* 막달레나 허기타이 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 직접 만나서 들은 여성 과학자들의 생생하고 특별한 도전 이야기(해나무, 2019)





유럽이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으로 진통을 겪고 있을 때, 미국에서 단 17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근무한 프랜시스 올덤 켈시(Frances Kathleen Oldham Kelsey)는 탈리도마이드가 임산부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 대다수 의학자와 산부인과 의사는 태반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태반이 모체와 태아 사이에 있는 장벽이라고 생각했다. 장벽과 같은 태반은 모체로부터 오는 위험물질을 통과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태반은 태아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서 임산부는 의약품을 복용해도 괜찮다고 믿었다.


하지만 켈시는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유행한 태반의 잘못된 통념을 반박하는 실험을 했다. 그녀는 태반이 모체와 태아 모두를 위한 영양분을 교환하는 통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위험물질 역시 태반을 통과할 수 있다. 태반의 기능을 잘 알았던 켈시는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을 의심했다. 그리고 탈리도마이드의 안전성을 확실히 밝히기 위해 수면제를 수입 제조하는 미국 제약 회사에 임상 실험 결과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 FDA의 일부 고위층 인사와 그들에게 로비를 펼친 제약 회사는 켈시를 압박했다. 그러나 켈시는 반복된 실험을 통한 검증을 중시하는 회의주의적 자세로 일관했고, 판매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이 공로로 J. K. 케네디(J. F. Kennedy)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은 약리학자인 켈시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 로얼드 호프만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까치, 2018)




탈리도마이드 사건또는 그뤼넨탈 스캔들로 알려진 탈리도마이드 부작용 사례는 과학자의 윤리적 및 사회적 책임을 강조할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과학적 재난이다. 폴란드 출신의 미국 화학자 로얼드 호프만(Roald Hoffmann)은 화학의 양면성을 균형 있게 서술한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The Same and Not the Same, 1995)라는 책에서 탈리도마이드 사건의 경과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하면서 분석한다. 탈리도마이드는 의약품이기 전에 화학 물질이다. 호프만은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과학 윤리가 명백하게 깨진 사례로 평가한다. 그는 또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이 있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로 검증을 소홀히 한 당시 엉터리 과학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 사건은 탈리도마이드에 노출된 신생아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에 뛰어든 과학자들에게도 커다란 후유증을 안겨주었다. 호프만은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로 신약 개발에 필요한 창조성이 짓눌러버렸다고 지적한다.


















[레드스타킹 7월에 읽은 책] 

임소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여성과 과학 탐구》 (민음사, 2022)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쓴 과학기술학자 임소연은 여성을 몰이해한 과학을 비판하기 위해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언급한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기점으로 태반은 장벽이라는 통념이 깨지기 시작했고, 과학자들은 태반의 실질적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로얼드 호프만과 임소연처럼 대부분 과학 전문 저술가는 의약품의 부작용을 외면한 과학의 문제점을 강조하기 위해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예시로 든다이러한 서술 방식에 문제점이 있다독자들은 탈리도마이드에 관한 또 다른 진실을 보지 못한다탈리도마이드가 FDA 승인을 거쳐 혈액암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 정진호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질병과 맞서 싸워온 인류의 열망과 과학(푸른숲, 2017)


* 박종현 과학을 쉽게 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평범한 일상 변화하는 사회 속 유쾌한 과학(북적임, 2020)





탈리도마이드는 혈관 생성을 억제한다. 태아의 몸에 혈관이 생겨야 팔다리가 형성된다. 태아는 신체 부위가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소를 혈관으로 공급받는다. 탈리도마이드에 노출되면 몸속에 혈관이 생기지 않게 되고, 신체 부위가 자라지 않는다암세포는 직접 혈관을 만들어 영양소를 흡수한다. 이러면 혈관 주변에 암 덩어리가 생긴다. 탈리도마이드는 혈관 생성을 막을 뿐만 아니라 암세포 활동까지도 억제한다.


브라질에서는 탈리도마이드가 한센병(나병) 환자의 통증을 줄이는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그로 인해 브라질에서도 팔다리 없는 신생아가 태어나는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탈리도마이드를 한센병 치료제로 쓰는 남미와 아프리카에 약품의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임산부에게 처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남성에게 피임을 권장하기도 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에 대한 분석과 한때 금지 약물이었던 탈리도마이드가 한센병과 암 치료제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설명한 저자의 책이 많지 않다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과학을 쉽게 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 두 권의 책을 쓴 저자는 탈리도마이드의 새로운 효과를 언급했다. 찾아보면 더 나올 수 있다.


과학을 쉽게 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의 저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을 응용해서 새로 개발된 항암제 레날리도마이드(lenalidomide)를 소개한다. 레날리도마이드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로 사용된다. 저자는 레날리도마이드가 다른 약과 같이 먹으면 다발성 골수종 치료 성공률이 올라간다고 주장한다(195). 사실 레날리도마이드도 부작용의 위험성이 크다. 당연히 임산부에게 처방하면 안 된다. 게다가 레날리도마이드를 적혈구 조혈(적혈구를 만들어내는 것) 촉진제나 심장약을 함께 투여하면 부작용이 일어난다.[주] 


과학을 쉽게 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래, 문제 있다! 독자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지 않은 채 과학을 너무 쉽게 쓰면 안 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저자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과학적 검증이 좀 더 필요해 보이는 실험 결과나 유사 과학을 확실한 정보인 것처럼 전달하는 블로거와 다를 바가 없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다룬 글에 또 하나의 공통된 문제점이 있다. 팔다리 없는 신생아의 몸을 찍은 사진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로얼드 호프만은 자신의 책에 사진 대신에 팔다리 없는 아기가 그려진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의 그림을 실었다팔다리 없는 사람은 장애인이다. 비장애인 저자는 팔다리 없는 아기를 피해자의 틀에 가둬 놓는다. 여기에 기형아라는 단어를 여러 번 붙인다. 장애인의 몸은 의약품의 부작용이 낳은 사건의 심각성과 부실한 과학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마다 책과 인터넷에서 전시된다(인터넷에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로 검색하면 관련 사진이 나온다). 장애인 사진을 동원하면서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설명하는 글쓰기 방식 속에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남아 있다. 장애인은 건강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은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편견이이런 편견은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글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러면서 그 글을 읽는 독자의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부실한 과학이 초래한 최악의 사례로만 언급되어야 하는 주제가 아니다. 여기에 과학적 회의주의(프랜시스 켈시)과학자의 사회적 책임(로얼드 호프만), 여성을 몰이해한 과학 비판하기(임소연), 동물권(탈리도마이드 개발을 위해 실험실에서 죽어간 흰쥐는 몇 마리일까?), 장애학(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해 태어난 장애인은 정말 불행한가? 그들이 건강하지 않다고 해서 낙태시켜야 하는가?) 등과 관련된 주제가 섞여 있다.





 

[] 네이버 <약학 용어 사전> 레날리도마이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817200&cid=59913&categoryId=59913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7-2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탈리도마이드 사건 ebs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동물실험이 정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들로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부모에게 아이들을 빼앗아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강제수용당하기도 했더라고요. 이렇게 언급된 책들 소개에 연관된 주제들까지! 참 좋습니다 *^^*

cyrus 2022-07-24 15:47   좋아요 1 | URL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장님들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보기 쉬운 사례입니다. 예전에 저는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만 알고 있었고, 이 약이 암 치료제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

윤희권 2023-07-2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윤희권 2023-07-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녀 화학도서 찾아보다 읽게되었습니다.

윤희권 2023-07-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어제 교보문고 매장에서 책을 사고 결제했는데, 판매원이 계산대 밑에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나는 판매원이 내게 줄 할인 쿠폰을 찾고 있는 거로 생각했다. 판매원이 계산대 밑에서 찾은 건 홍삼 녹용 진액이었다. 책을 사면 주는 사은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받은 것은 마음에 든다. 홍삼 녹용 진액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 매리케이 윌머스 서평의 언어: 런던 리뷰 오브 북스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의 읽고 쓰는 삶(돌베개, 2022)

 

* 안나 카타리나 샤프너 자기계발 수업: 인류의 성장 열망이 이끌어낸 열 가지 핵심 주제(디플롯, 2022)

 

* 캐럴린 머천트 인류세의 인문학: 기후변화 시대에서 지속가능성의 시대로(동아시아, 2022)

 

* 이윤희 불편한 시선: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아날로그, 2022)

 

* 존 캐리 시의 역사: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소소의책, 2022)

 

* 뉴필로소퍼 2022 19: 사랑이 두려운 시대의 사랑법(바다출판사, 2022)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새파랑 2022-07-10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ㅋ 책보다 사은품이 더 비싼거 아닌가요? ㅎㅎ
혹시 독서광 cyrus님에게 마음이 있어서 판매원의 개인적 선물이 아닐까요? ^^

cyrus 2022-07-10 13:58   좋아요 2 | URL
사심이 들어간 선물은 절대로 아니에요.. ㅎㅎㅎ

기억의집 2022-07-10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한통으로 주네요. 사은품이 쌈박합니다!!! 어제 저도 우리집 보양으로 흑삼인가 뭔가 샀거든요~ 책값을 보니… 한통 정도는 받을 만 하시네요!!!

cyrus 2022-07-10 13:59   좋아요 1 | URL
사진이 작게 나와서 그렇지, 안에 10개 들어있어요. 매일 먹으면 금방 다 먹어요.. ㅎㅎㅎ

stella.K 2022-07-10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첨 본다. 홍삼이라닛! 왕건지다.
근데 제목이 바뀐 거 아냐? 힘이 되는 사은품과 묵직한 책쯤으로.ㅎㅎ
대신 책을 한 10만원어치 정도는 사야하는 것 아니니?
나도 서평의 언어는 읽어보고 싶어.^^

moonnight 2022-07-15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교보문고 사랑이네요^^
 





202264일 토요일




1. 서울로 가는 KTX를 서대구역에서 탔다. 내가 탔던 기차는 서대구역에 정차해서 641분에 출발했다. 서대구역에 가기 전에 미리 주문한 마카롱 세트를 챙기려 카페 클리어에 갔다. 제이 님은 일찍 일어나 가게에 와 계셨다. 내가 아는 제이 님은 가게에 일찍 가서 일할 분이 아닌데‥… 숙성된 마카롱을 최대한 오래 냉장 보관하기 위해 제이 님은 자기 집에 있는 큰 보냉백을 챙겨왔다. 덤으로 서울 가면서 먹으라고 쿠키 한 개 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보냉백이 요긴한 아이템이 될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14번 에피소드로 이어짐).

 






2. 아슬아슬하게 출발 시간 3분 전에 서대구역에 도착해서 기차를 탔다. 예매한 자리는 특실 1인석이다.

 


3. 840분에 서울역 도착. 아주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서울에 갔던 날이 20149월이다. 무려 8년 만에 서울에 갔다. 20대 시절에 서울역 버스종합센터(버스 정거장)에서 버스 타면 10분 정도 서성거리고, 노선도를 여러 번 확인했다. 여전히 서울 버스 정거장은 낯설다. 코엑스로 가는 버스(401)를 찾느라 한참 헤맸다.

 


4. 서울에 가면 항상 버스를 탄다. 지하철을 타면 목적지에 금방 도착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버스가 편하다. 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창밖에 펼쳐진 서울 풍경을 보는 게 재미있다. 하지만 버스에 타면 방심은 금물. 환승을 하지 않더라도 버스에서 내릴 때 카드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어야 한다. 나는 교통카드 찍는 것을 깜빡 잊어버릴까 봐 머릿속에 내릴 때 교통카드 찍기를 여러 번 되뇌었다.

 


5. 서울역 버스종합센터에서 버스를 탄 지 50분 만에 코엑스에 도착했다. 코엑스 맞은편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현대자동차 사옥이 들어선다고 한다.



















부스 사진 출처: ‘서재를 탐하다 & 탐프레스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서재를 탐하다

https://www.instagram.com/bookstore_seotam/


탐프레스

https://www.instagram.com/tampress_studio/





6. 서울국제도서전은 오전 10시부터 시작했다. 주말이라서 도서전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대구 책방 서재를 탐하다의 출판 스튜디오 탐프레스(tampress)’를 운영하는 정희 쌤과 이도 쌤이 판매자 자격으로 올해 도서전에 참가했다. 두 분을 서울에서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두 분에게 마카롱 세트를 전달했고, 부스에 진열된 책 두 권을 샀다. 두 분은 고맙게도 내 가방을 맡겨주셨다.





 


7. 올해 도서전의 큐레이팅 주제는 반걸음(one small step)’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한 우리가 언젠가는 내디뎌야 하는 9가지 사회적 지점과 관련된 책들을 전시했다. 9가지 사회적 지점은 (1) 디지털 네트워크로 가속화된 불평등, (2) 한국의 불평등, (3) 청년세대, (4) 사는 공간 이야기, (5) 성차별, (6) 젠더, (7) 장애, (8) 아픈 사람들, (9) 함께 사는 지구(환경)이다. 이번 북 큐레이팅 전시회에 올해 도서전 부스에 참가하지 못한 출판사의 책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8. 도서전을 찾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부스를 둘러보다가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자기 갈 길을 가느라 바쁜 사람들 속에 갇혀 있는 상황을 목격했다. 장애인은 반걸음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도서전 진행요원들이 장애인을 안내했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그 상황을 지켜봤으면서도 못 본 척 지나간 나도 잘한 건 아니다.

 


9.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 도서전이 열린 해는 2013년이다. 그 당시에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디자인하우스출판사 직원 한 분을 직접 만났다. 올해 도서전에 디자인하우스 출판사는 부스를 운영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인 열린책들’, ‘오월의봄’, ‘바다출판사 도서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2013년 도서전에 도서상품권으로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책을 많이 사서 캐리어에 담고 했었지(아련). 그런데 이름만 들어도 아는 모 출판사 부스는 도서상품권과 문화상품권으로 책을 사지 못하는 규정을 내걸었다. 왜 그러지? 다른 출판사 부스도 그런가?








10. 출판사 부스들을 쭉 둘러보면서 다섯 권의 책을 더 구매했다(구매 도서 총 7).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선릉역 쪽으로 갔다. 걸어가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다. 선릉역으로 향하는 마을버스 강남 7을 탔다. 선릉역 주변에 최인아 책방이 있다. 처음 그곳에 가봤는데 도심 속에 있는 비밀의 서재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을 활짝 여는 순간, 천장에 닿을 만한 높이의 커다란 책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시간 남짓 그곳의 큐레이팅 방식을 눈여겨보면서도 사고 싶은 책이 있는지 살펴봤다. 네 권의 책을 샀다(구매 도서 총 11).






 


11. 밥 먹을 곳을 찾다가 우연히 이자카야 나무를 발견했다. 낮술을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12. 정희쌤과 이도쌤이 맡긴 가방을 찾으러 코엑스로 들어가기 전에 별마당 도서관에 들렀다. 역시나 그곳은 사진 맛집이었다.

 


13.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코엑스 근처 투썸플레이스에 갔다. 매장에 사람이 많아서 휴대폰 충전기가 있는 자리에 앉지 못했다. 다행히 빈 자리를 발견했다. 내 옆에 앉은 노인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 묵묵히 자기 공부에 매진하는 노인의 모습이 고고했다. 내 미래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14. 제이님이 준 보냉백 덕분에 11권의 책을 다 담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책 두세 권 더 사서 보냉백에 넣을 수 있겠는데.

 


15. 코엑스에서 서한용 님을 만났다.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알게 된 분이다. 그분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볼 때마다 나와 독서 취향이 비슷하다라는 걸 느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우린 만나자마자 책과 독서 모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16. 우리는 일식집 부타이에서 저녁을 먹었다. 벌써 입구에 손님들이 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마제소바 매운맛과 모리와세카츠를 주문해서 같이 먹었다. 음료는 진저 하이볼과 크랜베리 하이볼을 주문했다. 내가 마신 건 크랜베리 하이볼이다. 음식이 줄어드는 양이 느릴 정도로 우린 계속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나와 한용님의 공통 관심사가 하나둘씩 나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는데, 가게 영업이 종료되는 시간(830)이 다 돼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 이반 일리히 텍스트의 포도밭: 읽기에 관한 대담하고 근원적인 통찰(현암사, 2016)

 

* [절판] 에리카 배너 여우가 되어라: 마키아벨리가 전하는 강자와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17가지 삶의 원칙(책읽는수요일, 2018)




17. 우리의 대화는 내가 갔던 투썸플레이스에서 이어졌다내가 음료를 주문하고 있을 때 한용 님이 책탑 사진을 찍었다. 사실은 최인아 책방에서 산 책 중에 한용님 생일 선물이 포함되었다.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고른 게 이반 일리히의 텍스트의 포도밭이었다. 그런데 한용님은 그 책을 사서 읽었다고 했다! 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해설서인 여우가 되어라 선물로 줬다. 알라딘에 절판된 책인데 다행히 한용님은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린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11시경에 헤어졌다.

 


18. 최인아 책방 건너편에 24시간 운영하는 클럽K 찜질방’이 있다. 그곳에 디저트 카페, 전시 공간, 고급 사우나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해서 엄청나게 기대하면서 갔다. 그런데 찜질방이 있는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경비원이 영업 종료(!)했다고 알려줬다. 이럴 수가. 결국 정릉역 주변의 모텔촌에 갔고, 무인 모텔에 체크인하는 데 성공했다. 특실인데 숙박비가‥…. 그래도 푹신한 침대에 푹 잘 수 있어서 좋았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6-06 1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국제도서전 가시려고 KTX에 1박 까지 하셨군요. 좋은 사람 좋은 책방 많은 맛집 가신거 같아 부럽습니다~!!
최인아 책방은 가보고 싶네요. 사진이 완전 혹합니다 ^^ 구매하신 책탑도 멋지네요~~!!!

mini74 2022-06-06 1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바쁘셨겠어요. 11권 무거우섰겠어요 ㅎㅎ 실물을 만져보고 책을 사 본지가 정말 오래된거 같아요. 사진들로 보는 것만으로도 넘 좋네요. ㅎㅎ 포켓몬마카롱도 눈에 들어옵니다 ~~

미미 2022-06-06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국제도서전에도 가시고 종일 즐겨우셨을거 같아요! 읽는동안 좋은 기분을
전달받았습니다 클럽K찜질방은
검색해보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곳으로 보입니다^^

Meta4 2022-06-06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던 일을 겨우 하게 되어서 나름 좋구나, 그렇게 받음.

stella.K 2022-06-06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가 한풀 꺾인 게 화악 느껴지는 페이퍼다.ㅎ
오랜만에 서울 올라와서 서울 구경하는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근데 우리나라는 몇몇 군데를 빼놓고 어딜가나 비슷한 것 같아.
그래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잘 먹고 잘 지내다 간 것 같아 내 마음도
웬지 흡족한 느낌이다. 마카롱도 앙증맞고. 받으신 분이 기뻐했겠다.
귀가는 잘 했겠지?^^

yamoo 2022-06-06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도서전시회 보려고 서울로 상경하는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ㅎㅎ

페넬로페 2022-06-06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 오신 이유가 국제도서전 관람이 목적이셨군요~~
역시 책쟁이는 다르네요.
마카롱 너무 예뻐요.
보닝백이 이 예쁜 마카롱을 그대로 잘 보존한 역할인줄 알았더니 책을 담기에 넘 좋았군요^^
언제나 책을 가까이에 두고 공부하고 계시는 미래의 cyrus할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한데요^^

서니데이 2022-06-06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 국제도서전 다녀가셨군요. 매년 더워지는 시기에 했던 것 같은데, 몇 년 가지 않았더니, 잘 모르겠네요.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마카롱은 보냉백에 넣어야 할 것 같은데, 보냉백에 책은 생각 못했어요.
이번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 드시고, 좋은 시간 되셨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편안한 휴일 보내세요.^^

파이버 2022-06-06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 국제도서전 다녀오셨군요. 부럽습니다. 최인아 책방은 예전에 저도 가보았는데 정말 좋았어요. 마카롱도 너무 귀엽고 하이볼도 너무 시원하고 맛있어 보입니다^^

그레이스 2022-06-06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뉴욕은 교열중 재밌게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