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최측의농간출판사로부터 신간 출간 소식을 받았다. 국문학자 양주동 선생(1903~1977)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가 완역본으로 복간되었다. 범우사가 낸 문고판은 발췌본이다. ‘최측의농간출판사는 1960년에 나온 이 수필집과 양주동 전집 4(동국대학교출판부, 1995)에 실린 문주반생기를 비교 · 검토하여 읽기 쉬운 말로 새롭게 다듬었다. 초판(영인본)의 느낌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1,996개의 각주를 달았다고 한다.

 

 

 

 

 

 

 

 

 

 

 

 

 

 

 

 

 

양주동 선생은 신라 향가 연구에 큰 획을 그은 국문학자다. 그는 시인, 수필가, 비평가 등 여러 방면에서 이름을 떨쳤고, 스스로 국보 1라고 말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한 천재였다. 선생은 애주가로도 유명하다. 10(!) 때 처음으로 술의 맛에 눈을 떴다고 한다…‥. 술과 관련된 일화가 많은데, 문주반생기2부의 제목이 이다. 혹자는 이 책을 읽어야 술에 대한 예의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이 책을 음주기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수필집 제목을 풀이하면 '시(詩), 문(文), 술을 중심으로 하여 보잘 것 없는 나의 반생'이라는 의미가 된다. 복간을 계기로 문학인으로서의 양주동이 재조명되길 바라본다.

 

 

 

 

 

 

 

 

필자는 양주동 선생의 글을 접해보지 않았고, 선생이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한 사실을 그저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서재에 양주동 선생이 감수한 책 한 권을 보관하고 있다. 이 책 덕분에 양주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1986년에 나온 표준 국어대사전이다. 그런데 이 사전은 개정증보판이다. 양주동 선생은 1977년에 작고했고, 이미 오래전부터 선생이 감수한 국어대사전이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양주동 국어대사전을 검색하면 70년대에 나온 국어사전을 공개한 글을 볼 수 있다. 6, 70년대에 양주동 선생과 더불어 국어사전 편찬자로 유명한 분이 이희승(1896~1989) 선생이다. 이희승 선생은 1961년에 국어대사전을 편찬했다. 현재까지도 개정증보판이 나오고 있는 국어사전이다. 그렇다 보니 지금은 양주동 국어대사전보다 이희승 국어대사전이 더 많이 알려졌다. 양주동 국어대사전을 상세히 설명한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양주동 국어대사전 초판이 정확히 언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1986년 출간 당시 국어대사전의 정가는 25,000이다. 그때 당시 물가 기준을 생각하면 이 국어대사전 가격은 고가이다. 80년대에 라면값은 100, 소줏값은 200, 짜장면값은 500이었다. 짜장면 50그릇을 실컷 먹을 수 있는 돈이면 국어대사전 한 권 구입할 수 있다. 이 사전이 나왔을 때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1986, 이 해에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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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2-13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까지 가지고 계십니까......역시.

cyrus 2017-12-13 17:46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 국어사전이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됐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직접 산 게 아니에요.. ^^;;

2017-12-13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3 17:47   좋아요 0 | URL
그때 대학생이셨군요. ㅎㅎㅎ

stella.K 2017-12-13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문주반생기! 거 유명한데.
나도 들어보기만 하고 읽어보진 못했다.
양주동 박사 나 어렸을 때만해도 간간히 TV에도
나오고 했는데. 입담 좋기로 유명했지.
물론 난 그때 너무 어려서 무슨 말 하는지도 몰랐고.
암튼 읽고 싶네.ㅋ

cyrus 2017-12-13 17:49   좋아요 0 | URL
정말인가요? 어렸을 때 보셨으면서 기억 안 나는 척하신 거 아니죠? ㅎㅎㅎ 예전에 어느 알라디너가 제게 이 책을 추천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분 닉네임이 기억나지 않아요. ^^;;

stella.K 2017-12-13 18:1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너나 나나 왜 그런다냐...ㅠㅠ
누군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일 것 같다.
이책 요즘 사람은 거의 모를 거야.
양주동 박사는 우리 언니가 더 잘 알았지.
언니도 그런 걸 알 나이는 아닌데
중학교 들어가서 국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니까
옛날에 본 기억은 나고 뭐 그랬겠지.
근데 난 그분 어슴츠레하게 기억 나.ㅋ

cyrus 2017-12-13 18:13   좋아요 1 | URL
확실하지 않지만, 그 분이 ‘노이에자이트‘님일 거예요. 서재 활동 초창기에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이었죠. 그 분을 만나지 못했으면 옛날 책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거예요. ^^

2017-12-13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3 17:52   좋아요 0 | URL
술이 너무 좋아서 능력을 더 발휘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작가가 많아요.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재능을 파괴합니다.
 

 

 

어제 transient-guest님이 홈즈를 ‘사격의 달인’으로 소개한 글을 본 적이 있다고 말씀했다. transient-guest님은 글의 출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transient-guest님의 추억(?)을 소환하고 싶어서 어제 밤중에 오래된 책들을 따로 보관한 방에 들어갔다.

 

 

[지능훈련 뤼뺑이냐 홈즈냐 (With 동서문화사)] (2017년 5월 15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9339604

 

 

내가 찾고 싶은 책은 1984년에 나온 ‘동서문화사 홈즈 전집’이었다. 먼지를 이불 삼아 잠들고 있던 동서문화사 홈즈 전집을 지난 5월에 깨운 적이 있어서 책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빨강글자 수수께끼》. 이 책은 홈즈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진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를 번역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왓슨은 홈즈의 능력을 쭉 나열한 목록을 직접 만들어 공개한다. 인용한 번역문은 문예춘추사(박상은 번역) 판본을 참고했다.

 

 

 

<셜록 홈즈의 지식 범위표>

 

1. 문학 지식 : 없음.

 

2. 철학 지식 : 없음.

 

3. 천문학 지식 : 없음.

 

4. 정치학 지식 : 약간 있음.

 

5. 식물학 지식 : 한쪽으로 치우쳐 있음. 벨라도나, 아편 등과 같은 독약은 잘 알지만 원예에는 무지함.

 

6. 지질학 지식 : 실용적인 지식은 있지만 한계가 있음. 여러 종류의 토양이 가진 차이점을 한눈에 알아봄. 산책에서 돌아온 그가 바지에 묻은 진흙을 보이면서, 색과 점성 등으로 미루어 보아 런던의 어느 지구에서 묻은 것이라고 일러 준 적 있음.

 

7. 화학 지식 : 해박함.

 

8. 해부학 지식 : 정확하지만 체계적이지는 못함.

 

9. 범죄 사건에 관한 지식 : 매우 자세하게 알고 있음. 금세기에 벌어진 중범죄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

 

10. 바이올린 연구 실력 : 수준급.

 

11. 운동 실력 : 봉술, 권투, 검술이 뛰어남.

 

12. 영국 법률 지식 : 꽤 실용적으로 알고 있음.

 

 

 

이 내용만 가지고 홈즈의 능력을 단정하긴 이르다. 코난 도일이 홈즈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설정 구멍’을 여러 군데 남긴 바람에 이 목록 내용이 무용하게 되었다. 《진홍색 연구》 편에서 홈즈는 태양계의 구조와 지동설이 뭔지 모르는 사람으로 나온다. 왓슨은 홈즈의 무식함에 깜짝 놀란다.

 

 

홈즈의 지식이 놀라울 만큼 무지도 놀라웠다. 현대 문학이나 철학, 정치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사상가인 토머스 칼라일의 말을 인용하자 홈즈는 칼라일이 누구며 무슨 일을 한 사람인지 진지하게 물었다. 우연히 홈즈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태양계의 구성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의 놀라움은 정점을 찍었다. 19세기를 사는 문명인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다니! 너무나도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진홍색 연구》 중에서, 박상은 역)

 

 

홈즈는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아니면 잊어버리는 특이한 사고 습관이 있다. 그는 천문학이 자신이 먹고 사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홍색 연구》 이후 시간이 흐른 뒤에 홈즈는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보인다. 《셜록 홈즈의 회상》에 수록된 『그리스어 통역관(The Greek Interpreter)』 편에 보면 홈즈는 황도(黃道, 천구에서 태양이 지나는 경로) 경사도가 달리지는 원인을 주제로 왓슨과 대화를 나눈다.

 

 

어느 여름날 저녁, 차를 마신 후였다. 두서없이 산만하게 흘러가던 대화는, 골프채 얘기에서 황도의 기울기가 변하는 이유로 넘어갔다가, 이윽고 격세유전과 재능의 유전 문제에 이르렀다. 개인의 독특한 재능은 순전히 조상 덕인가, 아니면 초기 학습에 좌우되는가, 이것이 논의의 핵심이었다. (현대문학 주석판, 309~310쪽)

 

 

홈즈가 칼라일을 모른다고 해서 문학 지식이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 가끔  홈즈는 대화 도중에 호라티우스, 하피즈(14세기 이란에 활동한 신비주의 시인), 셰익스피어의 대사 등을 인용했으며 사건 현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 페트라르카 시집을 읽었다.

 

《빨강글자 수수께끼》의 번역을 맡았고, 해설을 쓴 조용만 씨는 홈즈를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인간’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원작에 있어야 할 왓슨의 목록을 ‘작품 해설’로 옮겼는데, 조용만 씨 자신이 홈즈를 평가하는 식으로 썼다. 게다가 원작에 없는 내용까지 첨가했다. 이러한 편집 방식은 원작을 무시하고, 독자를 속이는 일이다.

 

자, 이제 조 씨와 출판사가 각색한 ‘홈즈의 지식 범위표’를 이 자리에 공개한다. 내가 앞서 소개했던 (원전에 충실한) ‘홈즈의 지식 범위표’와 비교하면서 동서문화사의 ‘창조 번역’을 본다면 웃음이 터질 것이다.

 

 

 

1. 문학 지식 : 없다.

 

2. 철학 지식 : 없다.

 

3. 천문학 지식 : 없다.

 

4. 정치학 지식 : 조금 있다.

 

5. 식물학 지식 : 어느 종류에 대해선 자세하나 어느 종류에 대해선 전혀 없다. 아편 따위 독극물은 잘 알지만, 원예는 전혀 모른다.

 

6. 지질학 지식 : 실제적인 지식은 있지만 한정되어 있다. 한눈에 여러 종류의 흙을 가려 낼 수는 있다.

 

7. 화학 지식 : 아주 깊다.

 

8. 해부학 지식 : 아주 깊다.

 

9. 음악 : 바이올린을 아주 잘 켠다.

 

10. 운동 : 권투, 봉술, 검술, 유도를 잘한다.

 

11. 법률 : 영국 법률을 아주 잘 알며, 영국에서 일어난 큰 범죄는 거의 다 알고 있다.

 

 

12. 그 밖의 재능 :

 

① 피스톨 : 5미터 앞에 있는 트럼프의 하트를 맞출 수 있다.

 

② 자전거 : 1시간에 50km, 2시간에 90km를 달릴 수 있다.

 

③ 연기 : 죽어가는 환자, 욕심쟁이 연기를 특히 잘 한다.

④ 변장 : 어떤 나라, 어떤 직업의 사람으로도 변장할 수 있다.

 

⑤ 최면술 : ‘안심하십시오’, 이 한 마디면 상대방을 푹 잠들게 할 수 있다.

 

⑥ 재주 : 땅 위 20m의 높이의 지붕 위에서도 태연히 걸어 다닐 수 있다.

 

⑦ 암호 해독 : 어떤 암호든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똑같은 방식으로 암호를 만들 수도 있다.

 

⑧ 미행 : 달리는 마차에 올라타 함께 가기도 한다.

 

 

 

13. 홈즈의 초능력 :

 

① 시력 : 2.0, 밤에도 부엉이처럼 멀리까지 본다.

 

② 청력 : 소리를 가려듣는 능력이 뛰어나다. 한 번 들은 발자국 소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성별, 나이, 지위 등을 알아맞힌다.

 

③ 후각 : 마치 개처럼 예민하다. 약품이나 사람 냄새를 특히 잘 맡는다.

 

④ 완력 : 세 사람 만큼의 힘을 지녔다. 굵은 쇠막대기를 구부리기도 하고 펴기도 한다.

⑤ 주력 : 100미터를 11초에 띈다. 마라톤도 문제없다.

 

⑥ 체력 : 사흘 동안 밤낮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추리할 수 있다. 독한 담배를 계속 10개비나 태워도 거뜬하다.

 

⑦ 기억력 : 10여 년 전 신문의 작은 기사까지도 외고 있다.

 

⑧ 관찰력 : 현장을 흘끗 보기만 하고서도 전체의 모습을 자질구레한 점까지 머릿속에 그린다.

 

⑨ 방향 감각 : 눈을 가리고 런던 시내를 달려도 그곳의 이름을 맞출 수 있다.

 

 

동서문화사의 ‘홈즈의 지식 범위표’ 12번, 13번 항목은 원작에 없는 내용이다. 잘 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능력이 있고, 원작으로 확인 불가능한 능력도 있다.

 

확실히 홈즈는 연기와 변장의 달인이다. 『보헤미아 스캔들』(A Scandal in Bohemia, 《셜록 홈즈의 모험》 수록) 편, 『빈사의 탐정』(Dying Detective,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수록) 편은 홈즈가 연기 · 변장 실력을 유감없이 펼치는 작품이다. 홈즈의 암호 해독 실력은 『글로리아 스콧 호』(Gloria Scott, 《셜록 홈즈의 회상》 수록) 편, 『춤추는 사람』(Dancing Men, 《셜록 홈즈의 귀환》 수록)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피스톨 사격 능력, 최면술은 원작과 현실을 초월한 과장된 내용이다. 어렸을 땐 홈즈가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가끔은 이런 ‘창작 번역’이 독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줄 때가 있다. 허울뿐인 구호로 그친 ‘창조 경제’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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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8-0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홈즈는 실존인물은 아니죠? 그런데 설정이 어떻게 실제 인물보다 더 디테일하네요..ㅎㅎㅎㅎ

cyrus 2017-08-04 19:42   좋아요 0 | URL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재미있는 내용을 썼는지 궁금합니다. ^^;;

transient-guest 2017-08-04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저 12-1을 기억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습니다. 권총은 지금도 명중률이 꽤 낮고 상당한 훈련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당시의 피스톨이면 아마 6연발 리볼버였을 것 같은데요 (1896년이라고 나옵니다) 5미터에서 떨어진 곳의 트럼프 카드의 하트를 뚫는 건 상당한 실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cyrus 2017-08-04 19:44   좋아요 0 | URL
홈즈 주석판에 보면 홈즈와 왓슨이 가지고 있는 권총이 무엇인지 분석한 글이 있습니다. 왓슨이 가진 총이 리볼버일 겁니다. ^^

transient-guest 2017-08-05 03:09   좋아요 1 | URL
1896년은 알맹이는 쏙 빼고 썼네요. 찾아보니 처음으로 탄창식 권총이 나온 때가 1896년이라고 나오더라구요. 그것도 지금같이 탄창을 갈아끼는 것이 아니고 미리 총알을 밀어넣고 연사가 가능한 수준. 그 얘길 하려다가 밑도끝도 없는 1896...ㅎㅎㅎ
 
세계고전삽화백과 1
유병용 엮음 / 민성사 / 1993년 1월
평점 :
절판


 

 

 

인류는 문명 이래 지식의 통합을 꿈꿔 왔다. 특히 계몽시대 지식인들은 자신만만했다. 그들은 우주 전부를 담은 백과사전을 만들려 했다. 모든 것을 하나하나 알아내 책에 적다 보면 결국 세상 전부를 움켜쥘 수 있을 것이다. 디드로(Diderot), 달랑베르(d’Alembert) 등이 중심이 된 150여 명의 백과전서파의 야심에 찬 목표였다. 우리나라도 백과사전을 편찬한 역사가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는 조선 시대 최고의 백과사전으로 꼽힌다. 이 책은 실학이 발흥했던 영조 때 처음 편찬돼 고종 때 총 25050책으로 완성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백과사전 편찬의 맥이 끊겼다. 지금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종이 백과사전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세계 고전삽화 백과(민성사, 1993)는 백과전서 도판 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1851년 독일에 출간된 <과학, 문학 그리고 예술 백과사전>을 옮긴 것이다. 비록 21세기와 거리가 먼 지식이 절반이지만, 종이의 빈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채워진 도판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 도판 중심의 백과사전답게 판형이 크다. 이 책에 흥미로운 볼거리들로 가득하다. 도판을 설명하는 본문 내용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아서 삭제되었다. 그러므로 독자는 거대한 백과사전 앞에 부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도판으로 구성된 지식의 정원을 한가로이 산책하는 기분이 떠오를 만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세계 고전삽화 백과1권은 수학과 천문학’, ‘자연과학’, ‘기술’, ‘건축항목의 도판이, 세계 고전삽화 백과2권은 역사와 인종학’, ‘군사과학과 해군과학’, ‘조선학(造船學)’, ‘신화와 종교의식’, ‘예술항목의 도판이 수록되었다.

 

 

 

 

 

1권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도판(17)은 한국 과학사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이다. 크고 아름다운 첨성대의 위용을 보라.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독일의 백과사전 첫 번째 도판으로 한국의 문화유산이 나온 것은 정말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원래 독일의 백과사전에 조선과 관련된 항목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공개될 원작의 도판과 비교해 보면 선의 묘사가 차이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만든 국내 출판사가 디자인 도안 자료집을 펴내기도 했다. 아마도 출판사가 우리나라와 관련된 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추가했을 거로 짐작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출판사와 편저자가 딱 봐도 엉성한 티가 나는 도판을 추가한 것에 대한 부연 설명 없이 책의 맨 첫 장에 배치하는 건 억지스럽다.

 

 

 

 

 

 

 

 

 

 

 

 

 

 

 

 

 

 

 

 

 

 

 

※ 《세계 고전삽화 백과 2리뷰

 (설명 내용은 없고,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haesung/942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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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6-2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NATOMY OF THE BONES
ANATOMY OF THE BRAIN AND NERVES.. 매력적인데요..

cyrus 2017-06-30 18:41   좋아요 0 | URL
제가 올린 사진들의 크기가 크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
 
세계고전삽화백과 2
유병용 엮음 / 민성사 / 1993년 1월
평점 :
절판


 

 

 

※ 《세계 고전삽화 백과 1리뷰

 

http://blog.aladin.co.kr/haesung/9424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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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6-2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군요. 출판사 멋대로 한국 관련 자료 집어넣은 것은 좀 옥의 티가 아닌가 싶습니다. ㅎㅎ

cyrus 2017-06-29 18:52   좋아요 0 | URL
직접 보면 원작에 없는 도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출판사가 머리말을 통해 알려줬더라면 한국 관련 도판을 추가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성학사전
빈 성과학연구소 / 강천 / 1996년 9월
평점 :
품절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성(, sex)에 대한 화두는 언제나 뜨겁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흔히 성을 쑥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한자의 성(, 성 성)은 마음(, 마음 심)과 몸(, 날 생)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성을 뜻하는 한자는 정신과 육체의 합일을 의미한다. 성이란 단순한 성행동이나 육체적인 성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정신과 함께 결합하여야 하는 생명 그 자체다. 왜곡된 성 의식을 조장하는 음란물의 영향 때문에 성은 외설이라는 이름으로 무시되었다.

 

 

 

 

 

빈 성과학 연구소가 1928년부터 1931년까지 4년간 편찬한 성학 사전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문명과 함께해 온 성의 모습을 담아낸 이색적인 출판물이다. 성학 사전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문화사편을 시작으로 일 년마다 후속편이 나왔다. 2문학 · 미술, 3성 과학, 4보충편 순으로 완성되었다. 성학 사전집필진 중에 유명한 사람이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1957). 라이히는 처음으로 오르가슴(orgasm) 개념을 제시한 정신분석학자다. 1부를 구성하는 항목 수는 총 943. 국내 번역본은 1부를 번역한 것이다. 번역본은 236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역자가 무작위로 선정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서 수위 높은 내용의 항목과 도판 일부가 제외되었다. 항목 배열은 가나다순으로 되어 있다.

 

 

 

 

 

 

 

화보와 도판은 각국의 성 문화를 보여주는 그림, 사진, 조각품 등으로 꾸며졌다. 90년대식 책이 늘 그래왔듯이 성학 사전도 처음에 천연색 화보로 시작해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제일 중요한 본문부터는 흑백 화보가 나온다. 표현 수위 때문인지 사진 속에 있는 남근을 블러(blur) 형태로 처리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만든 걸작 다비드의 남근도 블러 처리를 피하지 못했다. 블러 처리의 기준이 모호하다. 도판 중에는 남근 모양으로 된 부적이 있는데, 그것은 블러 처리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보와 도판이 다소 낯 뜨겁게 보일 수도 있지만, 외설적인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성이 인류의 생활에 직결된 자연스러운 행위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들이다. 이를 꼭꼭 숨기고 금기로 여기다 보니 외설스럽게 여겨질 뿐이다.

 

하나의 문명, 문화로서 성을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성학 사전편찬은 위대한 작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20세기 초 유럽인들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이 있으며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도 있다.

 

교황 요한 23세의 비서가 스위스 온천장에서 이탈리아로 보낸 편지에 재미있는 것이 씌어져 있다. 그중에 온천장에서 여행을 좋아하는 방탕아를 그린 문구가 실려 있다.

 

"석녀에게는 온천이 제일 좋아요. 온천만으로는 안 돼도 낯선 손님이 아이를 생기게 해주니까요."

 

이 글은 상당히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불임여성은 온천에 가는 것이 가장 좋다.

 

(<목욕> 항목, 108)

    

 

목욕항목을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항목 작성자는 성적 유머를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문신> 항목에서는 바디페인팅을 어리석은 유행이라고 소개했다. 이처럼 어떤 항목에는 작성자의 주관적인 생각 및 판단이 개입된 내용이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 민족의 성 풍속 및 문화를 조악하고 낙후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또, 그들을 가리킬 때 미개 민족이란 단어를 자주 썼다.

    

 

둔부 입맞춤은 많은 아시아 종족 사이에서는 복종의 표시로 행해진다.

 

(<둔부 입맞춤> 항목, 75)

    

 

둔부 입맞춤을 하는 아시아 종족이 누구일까. 이 문장에 문제가 있다. ‘많은 아시아 종족이라는 표현이 눈에 걸린다. 이 표현 때문에 둔부 입맞춤이 아시아 전체에 통용되는 풍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성학 사전》은 서구 제국주의 시선으로 비서구인들의 성을 미개한 수준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 백과사전에 호텐토트(Hottentot)으로 알려진 코이(Khoi) 족 관련 내용도 있다. 사전에 따르면 호텐토트족 여성의 거대한 엉덩이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호텐토트족 여성들이 엉덩이에 유아를 태운 채 가사 일을 보느라 엉덩이가 압박과 자극을 받아 점점 커지게 됐다고 한다. 신빙성이 부족한 설명이다. 유럽인들은 호텐토트족을 인간이 아닌 하등동물로 취급했고, 그들을 사로잡아 동물처럼 구경하고 성적으로 착취했다. 성 백과사전 집필진들은 호텐토트족 여성을 관찰하는 대로 묘사했다.

 

과연 성학 사전을 뛰어넘는 성 백과사전이 나올 수 있을까. 종이로 인쇄된 브리태니커(Britannica)’를 볼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 지식에 목마른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위키피디아(Wikipedia)로 향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자유롭게 항목 작성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걱정이다. 출처가 불명확하고 미심쩍은 성 관련 정보가 얼마든지 공개될 수 있고, 검색에 익숙한 아이들이 잘못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성 백과사전을 만들려고 해도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집필 활동 착수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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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1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막의 <섹스사전>도 재밌더라구요ㅎ
제가 갖고 있는 <성문화 보고서 1,2>도 아주 괜찮더이다~

저도 성학사전이 매우 탐나는군요!ㅎ

cyrus 2017-06-20 08:13   좋아요 0 | URL
야무님이 가지고 계신 책들이 더 좋아보입니다. ^^

페크pek0501 2017-06-1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 전쯤, 야한 소설이라며 <채털리부인의 사랑>을 구입했는데 아직도 읽지 않았습니다.
읽어야겠어요...

cyrus 2017-06-20 08:13   좋아요 0 | URL
저도 로렌스의 소설을 안 읽어봤어요. ^^;;

alummii 2017-06-2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런 백과사전이 다 있다니 ..한번 보고싶네요..ㅎㅎㅎ

cyrus 2017-06-24 12:56   좋아요 0 | URL
엽기적이고 특이한 내용이 있습니다만,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