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와이어스  「핀란드 인」 1969년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텅 빈 공간에 외로이 앉거나 서서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시선을 보내고 있는 부동의 인물이 앤드루 와이어스(1917~2009)의 그림이 지닌 공통된 표상이다. 「핀란드 인」도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에 속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포착한 듯한 세세한 인물의 표정과 자태, 잠시 일손을 멈추고 있는 순간의 꾸미지 않은 차림새와 용모, 자연스러움이 눈에 잡힐 만큼 선연히 그려진 극세필의 필치에서 인물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벗겨진 이마와 민머리, 귀밑의 짧은 흰 머리칼 몇 올과 하얀 눈썹,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굴곡을 이룬 주름살, 그을린 피부 빛과 반점, 저 멀리 아득한 곳을 향해 주시하고 있는 시선,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젖어 있는 눈빛. 화폭 속의 '고독'이 가슴으로 밀려온다. 주시하고 있는 저 시선의 아득함, 건조한 공기와 투명한 빛, 텅 빈 공간의 고요, 꾸밈없는 황량한 분위기 속의 인물은 미국의 풍광과 땅의 표정에 다름없는 이미지이다.

 

 

 

 

앤드루 와이어스  「Field Hand」 1985년

 

 

와이어스는 펜실베이니아 주 채즈퍼드에서 출생한 후 평생 동안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자기 고향마을의 하찮은 정경과 인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아보며 낱낱이 그려 왔다. 그는 미국의 정경과 일상생활을 사실적인 화법으로 묘사하여 땅을 터하고 사는 삶의 가치를 주장하고 지킨 ‘미국 정경주의’ 화가답게, 특히 지방주의 그룹의 대표 작가로서의 삶을 실천하였다. 지방의 작은 도시나 마을을 찬미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향수어린 욕구에서, 미국 중서부와 서남부지방의 삶과 풍경을 주로 그렸다. 

 

건조한 공기, 따가운 햇살,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의 아득하고 아득한 인적 없는 땅. 그 주체할 수 없는 광막함을 바라보면서 이 지상에 보잘 것 없이 존재하는 한 외로운 나그네로서의 '고독'이 가슴 저리게 느껴진다. ‘아득함’과 ‘덧없음’. 이 교차되는 가운데 피어오르는 명징한 ‘고독함’이야말로 와이어스가 그림으로 말하고자 한 메시지라고 보고 싶다.

 

 

 

 

 

앤드루 와이어스  「Wind from the Sea」 1947년

 

 

그 한없이 투명한 명징함으로 하여 마침내 작가는 허공과 같은 무아(無我)가 되고 무화(無化)된 나머지 온통 전체를 포용하여 그 자체로 될 수밖에 없는, 둘이 아닌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만나는 이웃사람들의 평소의 모습들, 허물어진 농막, 버려진 하찮은 물건, 빈 들녘, 바람결에 일렁이는 창문의 커튼 등 그야말로 존재하는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분신으로, 작품의 소재가 된다.

 

그는 자신이 전통적인 의미의 사실주의자임을 부정하고 평소에 ‘나는 내 생각대로 그리는 순수한 추상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림 속의 인물은 그의 마을에 있는 이웃사람으로 핀란드에서 온 이민자인 조지 에릭숀이다. 한 때는 필라델피아의 조선소에서 일을 한 적이 있고 채석장에서 석공으로 오래 일했으며 지붕에서 떨어져 등을 다친 뒤부터 일을 못하고 있지만 대단히 강건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늦게 결혼하여 이 작품을 그릴 당시 열다섯 살의 예쁜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은 와이어스 작품의 모델이 되어 인물과 누드화까지 그리게 해주었다.

 

 

               

 

 

우연하게도 이 핀란드 인의 얼굴 위로 영화 <가을의 전설>에 나오는 인디언 원스텝이 떠올랐다. 그가 지켜보고 회상한 미국 서부 몬타나 주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 러드로우 일가의 파란만장한 가족사.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에 대한 장대한 스케일의 드라마. 특히 슬프고도 장엄한 영화 OST인 James Horner의 'Off to War'가 와이어스의 그림과 묘하게 어울린다. 그 음악의 흐름 속에서 아득함과 덧없음과 고독함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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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지옥편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실제 일어났던 정략결혼을 배경으로 한 비극의 주인공은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프란체스카는 라벤나의 귀족 귀도 다 폴렌타의 딸이다. 그녀는 첫눈에 반한 말라테스타 가문의 차남 파올로를 연모하면서도 두 가문의 이익을 원하는 어른들의 속임수에 의해 리미니의 귀족 잔초토 말라텐스타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잔초토는 불구의 몸(추남인데다가 절름발이)이었고, 그래서 결혼식장에 동생 파올로를 내보냈는데 신부 프란체스카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앵그르 「파올로와 프란체스코」 1819년

 

 

형수와 시동생이 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오랜 시간 애써 숨기고 있었다. 키스 장면이 묘사된 책을 우연히 함께 읽다 자석처럼 이끌린 단 한 번의 키스로 사랑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잔초토에게 발각되어 두 사람은 죽음을 당하였다. 그 이후 간음한 죄로 비참하게 살해되어 애욕의 죄를 범한 영혼들이 형벌을 받는 지옥의 제2원(신곡 속의 지옥은 9층으로 나뉘어졌는데 각 층은 죄질에 따라 구별된다)의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떠돌게 된다.

 

 

 

 

 

아리 쉐퍼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에 나타난 파올로와 프란체스코의 영혼」 1855년

 

사랑은 우리를 하나의 죽음으로 이끌었지요.

(단테 『신곡』 지옥편 5곡, 민음사, 55쪽)

 

 

망령들의 애절한 사연을 들은 단테는 이 지극한 사랑에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끼며 절절하고 비길 데 없는 시구절로 기구한 연인들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이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문학, 음악, 회화 등의 소재가 되었다.

 

 

 

 

 

오귀스트 로댕 「키스」 1889년경 

 

 

그중에서도 조각가 로댕의 작품 ‘키스’는 긴 시간 지켜만 보던 연인들이 첫 키스를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는 순간을, 대담한 움직임과 표현적인 감각을 통해 주변 공간마저 빛이 넘치듯 묘사했다. ‘영혼과 영혼은 연인의 입술 위에서 만난다’는 말을 이 이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진실이라고 수없이 다짐하는 말보다도 더 많은 마음을 보여주는 감추어진 표정 같은 이 낭만적인 로댕의 작품 ‘키스’는 우리가 지나온 청춘의 신기루 같았던 시간의 흔적 속, 아찔한 현기증 같았던 첫사랑, 첫 키스. 그 기억의 실체화이다.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났다 커지고 괴롭히다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 질병처럼 다루기 힘든 열병이었던 첫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때로는 지우지 못할 상흔으로 남아 있게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청춘은 사랑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풍화작용 속에서 우리는 세상과 부딪히면서 그 강렬한 사랑의 울림들은 잠잠해진다. 프란체스코와 파올로의 사랑이 절절히 마음에 와 닿았던 시절은 가고 사랑의 이야기들은 이제 마치 다른 세상을 엿보는 것처럼 낯설며 영화나 문학이라는 오래된 코드를 통해서만이 말할 수 있는 비실제적인 것이 되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시들하다. 마음속에 간직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고스란히 빈집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주받은 혼령이 되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떠돌고 있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은 슬픔이자 축복이며, 만나려는 갈망과 만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서로 입술을 맞대고 있는 로댕의 ‘키스’는 되돌려 받을 수 없다면 훔쳐보기라도 하고 싶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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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누구에게 예속되는 삶보다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유를 박탈당했을 때는 용감하게 이에 맞설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

 

부당한 세상에 용감하게 붓으로 맞선 이가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화가 중 하나가 오노레 도미에(1808~1879)였다. 그는 시사만화가로 출발했으니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도미에는 오늘로 치면 만평에 해당하는 풍자적인 석판화를 무려 4000여 점 시사 잡지에 기고했는데, 지금 보아도 재미있고 촌철살인인 것들이 많다. 그의 작품들에는 탐욕스러운 정치가들, 비싼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폼 잡고 싶어 하는 소시민, 옆에 선 남성을 튕겨낼 정도로 부풀린 드레스를 입은 부르주아 여성 등 다양한 인물군상이 풍자의 대상으로 등장하곤 한다.

 

 

 

 

오노레 도미에  『가르강튀아』 1831년

 

 

그 중에서도 도미에가 즐겨 그린 것은 당시의 국왕 루이 필립이다. 필립을 희화화한 대표적인 풍자만화 작품이 『가르강튀아』이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소설에 나오는 거대한 거인 가르강튀아로 그려진 인물은 바로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립이다. 그림 오른쪽부터 보면 백성들이 힘겹게 모은 돈을 통에 넣고 있다. 이렇게 모아진 백성들의 재산을 국왕이 자신의 긴 혀를 통해 꿀꺽꿀꺽 삼키고 있다. 그리고 필립의 의자 밑으로는 그의 배설물이 상장과 훈장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 그림 때문에 도미에는 감옥까지 갔다 왔다. 사실 루이 필립은 스스로가 혁명으로 왕위에 옹립된 만큼 처음에는 언론 출판의 자유에 우호적인 정책을 폈고 자신에 대한 풍자에도 관대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미에의 풍자화만큼은 그를 격분케 했다는데, 그를 너무 뚱뚱하게 묘사한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도미에를 고발했고, 도미에는 6개월 징역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도미에는 끄떡없이 신랄한 시사만화를 계속해서 그렸다. 이는 당시 사회 지배 계급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당시 1830년 7월 혁명 이후 샤를 10세가 타도되어 왕좌에서 물러나고 루이 필립이 등극했으나 그 또한 자유주의 정책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귀족과 노동자 계층 간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마침내 1848년 2월에 다시 혁명이 일어났다. 루이 필립은 영국으로 망명했고 보통선거 제도가 도입돼 노동자와 농민 계층의 남성도 선거권을 가지게 됐다.

 

도미에의 풍자만화는 무지한 시민 계층들을 격분시켰으며 이를 계기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해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했다. 시사만평은 권위를 조롱하며 결국 공권력을 움직여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큰 기여했던 것이다. 만약 도미에와 같이 국왕의 행세를 공공연히 비판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프랑스의 자유민주주의 시대는 늦게 열렸을 지도 모른다. 한 사회에 발전과 개혁이 있으려면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자유롭게 민중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환경에서 모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선진사회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 현재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치에 관해서는 방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나 몰라라’하는 태도는 국가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수의 정치인들만 정치에 참여하는 사회는 부패되기 십상이다.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 힘쓰기는커녕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왜곡된 진실을 전달하고 있는 행태를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정치인들은 배려심을 기르고 관용을 베풀며 사회적 약자와 소외세력들을 보호해야 하고 시민들은 국가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좀 더 크게 낼 필요가 있다. 오노레가 풍자만화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여 사회적 개혁을 가져왔듯이 우리 모두 나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좀 더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때론 칭찬도 하고 비판도 하며 한 마음 한 뜻으로 공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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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영웅은 팜므 파탈을 좋아해

 

 

 

 

 

 

 

 

 

 

 

 

 

 

남자는 생존경쟁에서 이겨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낼 정도로 강하지만 남자에게도 약점은 있다. 바로 아름다운 여인이다.

 

역사를 보면 미인에게 빠져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파괴하는 영웅이 많이 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그 여자가 사랑할 가치가 없다 해도 남자는 한 번 사랑에 빠져들면 자기 자신을 끝도 없는 나락 속으로 던져 넣는다. 영웅은 미인과의 밀월이 끝나는 순간 모든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이 예상하지 않았던 삶의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소진시켜 버릴망정 미인에게서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적장을 이기기 위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성을 보내 유혹함으로써 싸움에서 이길 수도 있다. 계략이 필요한 것은 전쟁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렇다. 미인계를 쓰면 실패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인계는 최고의 싸움 기술이다.

 

남자라는 속성은 언제든지 시도 때도 없이 미인을 사랑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남자는 시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미인을 보면 생식본능에 의해 유혹하고 싶어 하고 여자는 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남자의 외모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고 남자의 능력을 사랑한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달랑 정자 한 개이기 때문에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정자만 받으면 생존에서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도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것이다.

 

 

 

 Scene #2  사랑을 위해 남자의 목을 친 살로메

 

 

 

 

 

 

 

 

 

 

 

 

 

 

 

 

 

팜므 파탈의 대표적인 인물인 살로메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헤롯왕의 의붓딸이다. 살로메는 헤롯왕이 베푸는 만찬에서 매혹적인 춤을 추고 그 춤에 반한 헤롯왕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한다.

 

 

 

 

오브리 비어즐리  「절정」 1894년

 

하지만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삽화가 오브리 비어즐리는 성서의 이야기를 에로틱하면서도 더 잔혹하게 탈바꿈시켰다. 희곡 《살로메》에서는 살로메가 세례 요한을 사랑하지만 세례 요한은 그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복수심에 불탄 살로메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헤롯왕을 유혹하고 그 대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비어즐리가 묘사한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목을 들고 사랑의 절정을 느끼고 있다. 사랑할 수 없다면 그를 죽여 영원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집념이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지만 신약성서 그 어디를 뒤져보아도 ‘살로메’란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성서에는 다만 ‘헤로디아의 딸’이라고만 나와 있으며 실제 내용도 일반적인 문학 작품들과 다르다. 성서에는, 요한의 처형을 사주한 것은 살로메가 아닌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다. 헤로디아는 당시 요한이 남편과 이혼하고 그 이복형과 재혼한 자신을 비난한 데 앙심을 품고 딸을 내세워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적혀 있다.

 

 

 

 

 

귀스타브 모로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 1876년

 

 

와일드 이전에도 살로메는 여러 예술가들의 관능적인 경외의 대상이었다. 루벤스, 뒤러, 모로와 같은 화가들이 그녀의 자태를 화폭에 표현하고자 노력했고, 플로베르, 하이네, 말라르메 등은 글로써 그녀가 저지른 치명적인 유혹을 증명하고자 했다.

 

 

 

 

파블로 피카소  「살로메」 1905년

 

현대미술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피카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가 오페라로 초연되었던 1905년에 피카소는 자신의 친구이자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살로메의 춤을 데생으로 묘사했다. 피카소가 그린 살로메는 수원 문화의 전당에서 열리는 피카소 재단 설립 25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에 가면 볼 수 있다. (6월 18일까지 전시)

 

 

 

 

 

 

 

 

 

 

 

 

 

 

 

 

세례 요한이 다시 한 번 웃을 수만 있다면
임금님 이 소녀는 세라핀보다 더 아리땁게 춤을 추겠어요
어머니 말씀해 주세요 백작부인의 옷을 입고
태자를 옆에 두고 어이 그리 슬퍼하시는지

 

(중략)

 

우리 모두 함께 가요 저기 오점배열(五點排列) 나무 아래로
임금님의 귀여운 광대여 울음을 거두어라
네 인두(人頭) 지팡이 던져 두고 이 머리를 받들고 춤을 추어라
손대지 마세요 어머니 그의 이마는 벌써 차갑습니다

 

임금님이 앞장을 서주시고 창병들이여 뒤따라 걸어오라
우리는 구덩이를 파고 그를 거기 묻으리라
우리는 꽃을 심고 둥글게 둥글레 춤을 추리라

 

(아폴리네르  ‘살로메’ 중에서 / 『알코올』열린책들, 107쪽)

 

 

비록 채색되지 않은 미완의 스케치로 남아 있으나 피카소는 살로메를 더욱 외설적인 요부로 묘사했다. 오히려 귀스타브 모로가 묘사한 살로메의 춤이 정적이며 고요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와일드의 묘사대로 모로의 살로메는 속살이 비치는 화려하고 투명한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으면서 춤을 추는 스트립쇼를 헤롯왕 앞에서 선보인다.

 

반면 피카소의 살로메는 헤롯 왕과 헤로디아가 보는 앞에서 완전히 알몸이 되어 춤을 춘다.  다리를 훤히 들어 올리는 동작으로 보아 살로메는 격정적인 자신의 춤에 무아지경에 이른 것 같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남편을 유혹하는 듯한 딸의 춤이 못마땅한 나머지 고개를 돌리고 만다.

 

 

 

 

앙리 툴루즈 드 로트렉  「잔 아브릴」 1893년 

 

 

살로메의 동작은 얼핏 프랑스의 춤 캉캉이 연상된다. 다리를 높이 차올리며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리라. 아폴리네르와 피카소는 살로메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살로메의 시대적 배경을 벗어난 것이다. 유대 왕국에 ‘백작부인’, ‘광대’가 있을 수가 없다. 아직은 화려하면서도 퇴폐적인 세기말의 미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피카소의 살로메는 로트렉이 즐겨 그렸던 캉캉 춤을 추는 술집 여자와 비슷하다. 로트렉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제 막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기 위해서 무명의 젊은 피카소가 파리에 정착했을 때 로트렉의 그림을 연구하기도 했다. 

 

피카소는 살로메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표현된 살로메의 춤과 목이 잘린 요한의 이미지를 한 컷에 담았다. 그래도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언 춤을 추고 있는 살로메다. 자신이 광기에 미쳐 집착했던 요한의 목이 쟁반에 담아 있는데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오직 춤에 도취되어 있을 뿐이다.

 

이후 여러 작가 및 화가들의 입을 거친 이 처형 사건에서 ‘살로메’라는 이름은 당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제푸스의 저서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요제푸스조차 요한의 처형에는 살로메나 헤로디아나 모두 관계가 없으며 다만 민중의 폭동을 우려한 헤로데 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어쨌거나 이는 당시 민중의 지도자였던 요한이 집권자의 손에 처형된 정치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집권자의 아내와 딸이 아름다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요한은 정치적인 희생물이 아닌 여성의 관능적인 매혹과 편집증적인 욕망에 의한 희생양으로 탈바꿈되어버리고 말았다.

 

실상 살로메(Salome)는 유태계 여성 사이에서 흔한 이름 중 하나이다.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샬롬’(Salome)이란 단어가 자신에게 매혹되지 않는 남자의 목을 베어 잔인하게 복수를 하는 팜므 파탈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 자체가 실은 아이러니인 셈이다.

 

 

 

 Scene #3  복수를 위해 남자의 목을 친 아르테미시아

 

 

 

 

 

 

 

 

 

 

오늘날에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팜므 파탈’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뛰어넘는 매혹적이면서도 잔인한 팜므 파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도 피를 부를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살로메의 향기가 느껴지는 캐릭터를 고르라면 최근 개봉한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의 에바 그린일 것이다.

 

 

 

 

영화는 전작처럼 목이 뽑히고 팔이 잘리는 섬뜩한 장면들이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에바 그린만 보인다. 그녀가 분한 페르시아의 속국, 카리아의 여왕 아르테미시아는 의붓아버지에게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만큼이나 아찔하고 도발적이다. 그녀가 왕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적군의 목을 양손에 들고 선물로 바치는 장면 또한 살로메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유혹적인 몸매와 고혹적인 눈빛을 가졌지만 적을 희롱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의 목을 따 입을 맞춘다. 망설임 없는 에바 그린의 연기력은 독이 든 성배 같은 아르테미시아의 팜므 파탈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수많은 페르시아 함대를 지휘하는 카리스마 있는 여장군이면서도 크세르크세스를 잔혹함의 끝을 보여주는 복수의 화신으로 만든다. 그리고 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미인계를 쓰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특히 아르테미시아가 적장인 그리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를 유혹하려고 전투신을 방불케 하는 정사신은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다. 상대를 전투에서 굴복시키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격렬한 섹스에다가 에바 그린의 팬 서비스(?)을 볼 수 있으니까.

 

 

 

 

다리우스 3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를 테미스토클레스가 죽였다면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 거라고 영화에서는 살라미스 해전의 서막을 언급했지만, 아르테미시아가 없었다면 순진한 페르시아 왕자는 크세르크세스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르테미시스의 광기가 살로메의 그 광기와 차이점이 있다면 크세르크세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군에게 목숨을 잃은 가족의 복수를 위한 것이다. 아르테미시스는 어린 시절, 자신이 보는 눈앞에서 가족이 그리스 병사들에게 잔인하게 몰살당했고, 포로가 되어 강제로 성적 노리개가 되어 빈사 상태로 길바닥에 버려지게 된다.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남자로 가득한 세상에 맞서고 지배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끝내 페르시아 함대의 지휘관에 오르게 된다.

 

아름다운 여자에게 가장 약한 존재는 남자다.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사랑하고 싶은 본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와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여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과 맞설 수 없었다. 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세상을 쥐고 흔드는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교미 후에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처럼 남자에게 치명적인 독을 내뿜는 팜므 파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르테미시아와 살로메처럼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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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문외한이라 해도 피카소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의 부와 명예를 다 누리면서도 장수까지 한 그였지만 그 역시 무명화가로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이 시기를 ‘청색 시대’(1901~1904)라고 부른다.

 

1901년 당시 20세의 피카소는 가난했다. 돈을 벌지 못해 차가운 빵으로 연명했고 얼음장 같은 단칸방에서 살아야 했다. 가까운 친구 카사헤마스가 죽자 피카소는 자신도 제대로 먹지 못해 눈이 멀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파블로 피카소 「인생」 1903년

 

 

‘청색 시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인생」은 젊은 예술가의 차갑고도 깊은 절망감이 느껴진다. 벽에 그린, 마치 웅크리고 앉은 인물은 고독과 절망, 아이를 어르는 어머니는 탄생과 모성, 연인(남자의 얼굴은 죽은 친구 카사헤마스)은 육체적 사랑을 상징한다. 사랑, 결혼 그리고 생명의 탄생. 인생의 황금 같은 순간들이 실은 고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색 시대로 세상을 보면 인생은 하나도 아름다울 것이 없고 절망과 불행의 연속으로만 느껴지게 돼 있다. 청춘의 고통과 우울함, 복병처럼 찾아든 가난과 향수병, 미래의 불안으로 영혼과 캔버스를 온통 어두운 청색으로만 염색했다. 그야말로 무기력했던 청춘의 ‘청색 시대’였다.

 

그러나 인생에서 그 궁극적 과제가 생존이고 생존은 고통과 고난을 수반하는 것이다.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은 어쩌면 우울한 시대에 자라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피카소도 그랬다. 1905년에 자신의 그림이 인정을 받고,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피카소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그의 그림에선 푸른색이 사라지고 화려한 붉은색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피카소의 ‘장밋빛 시대’라고 부른다.

 

 

 

 

 

 

 

 

 

 

 

 

 

 

 

인생의 무게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이들의 어깨를 공평하게 짓누른다. 하지만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젊은 날이 삶 가운데 특별히 빛나는 시간이라는 미신도 설득력을 얻는다.

 

 

 

 

라이언 맥긴리 「Somewhere Place」 2011년

 

 

누가 청춘을 반짝 빛나는 순간이라고 했던가. 맥긴리의 「Somewhere Place」에서 청춘은 영원하다. 피카소의 「인생」의 연인은 공허한 초점으로 예정된 인생의 고통을 기다린다면, 맥긴리의 연인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딘가에 있을 인생의 기쁨과 환희의 순간들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내일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사진 속 비춰 내려오는 따사로운 장밋빛이 있어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 아마 우리가 나아가는 길도 그렇지 않을까. 인생을 살다 보면 청색 시대를 겪을 수밖에 없다. 거기서 절망하지 않고 노력하며 내일은 더 나은 날이 온다는 희망을 품은 사람만이 장밋빛 시대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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