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태도 - 꾸준히 잘 쓰기 위해 다져야 할 몸과 마음의 기본기
에릭 메이젤 지음, 노지양 옮김 / 심플라이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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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없는지 조언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글을 쓰면 된다. 시간을 탓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글쓰기 습관을 들인다면 시간은 되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써 시간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홀로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능력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어느덧 좌절의 감정으로 옮겨가고 글쓰기가 문득 두렵고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이 공포를 극복하려는 이들에게 에릭 메이젤(Eric Maisel)글쓰기의 태도는 좋은 길라잡이다.

 

이 책은 글을 잘 쓰기 위한 사람을 위한 책이 절대로 아니다. 가끔 글을 쓰는 사람 또는 직접 글을 써보려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문장 표현력을 높이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글을 쓸 때 갖춰야 할 태도를 알려준다. 작가는 글 쓰는 일에 집중한 만큼 작품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특히 글 쓰는 태도를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글쓰기 활동의 질과 양이 달라진다.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성공하는 습관 제1 법칙으로 자기 주도성을 꼽았다. 주도적 인간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한 가치를 토대로 선택하고 행동한다. 주변 여건이나 분위기 탓을 하지 않는다. 이 원리는 글쓰기 행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을 쓰기 위해서도 능동적인 태도는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습관은 단기간에 기르기 어렵다. 평소에 꾸준히 자신의 생활 습관과 글 쓰는 태도를 점검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규칙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일단 글을 쓰려면 제일 먼저 창작에 적합한 내면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면의 공간이란 자아, 즉 나 자신을 말한다. 일상인의 자아를 훌훌 털어버리고 창작자의 자아를 찾아야 한다. ‘일상인의 자아는 글을 쓸 겨를 없이 일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온갖 핑계를 대며 글쓰기를 거부한다. 창작자의 자아를 갖춰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작가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목적의식을 가지라는 뜻이다. ‘창작자가 되기로 한다면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 된다.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있으면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다. 글이 잘 써지는 공간이 많을수록 좋다. 집은 혼자 사는 창작자에게 꼭 맞는 글쓰기 공간이다. 그러나 가족과 같이 사는 창작자에게 개인 공간은 그림의 떡이다. 개인 공간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 찾아야 하거나 아니면 만들어야 한다. 글쓰기 공간은 외부인이 들어와서는 안 될 창작자의 자아의 은신처다.

 

이 책은 작가라면 한 번쯤 겪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작가의 삶을 알 수 있고, 무엇보다 창작자로서의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묘한 공통점과 함께 자기 자신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글을 많이 써본 작가들도 자신감에서 좌절의 단계를 끊임없이 반복 순환하는 과정을 가진다. 어느 날은 창작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찼다가 또 그 다음 날은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면서 자괴감을 느낀다. 좌절감이 오래가면 슬럼프를 겪게 되는데 그럴 때 글쓰기의 태도를 읽으면 된다.

 

잡념과 게으름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글쓰기를 미루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축 처진 창작자의 자아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쓰기는 잠시 멈추고 자신의 감정을 먼저 관찰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글을 쓰는 데 방해하는 불필요한 감정들을 버린다. 마음을 싹 비우고 나면 어떤 글을 써야할지 스스로 질문해보자. 글쓰기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알면, 그것들에 잘 대처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

 

보통 사람이 글을 쓸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문장력보다 추진력이다. 글쓰기에 몰입하게 되면 쾌락과 고통 사이의 경계도 없어지게 된다. 마라톤 선수들이 느끼는 러닝 하이(running high)의 순간을 맞이한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거리를 조금씩 늘려 가며 훈련하면 누구나 1km는 거뜬히 달릴 수 있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려면 일단 글을 꾸준히 써봐야 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를 어렵게 느낀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글을 쓰는 습관으로 극복될 수 있다. 글쓰기의 태도는 슬럼프 단계에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무언가 쓰려고 했다면 정말 하고자 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쓸 시간에 차라리 내가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쓰는 게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남들이 뭐라 하건 상관없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글로 표현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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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5-1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닝 하이라. 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 꼭 그런 지점이 있긴 하지.
처음 얼마간은 정말 잘 써져. 그러다 어느 정도가면
조금 느슨해지지. 그러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대부분 그 지점에서 포기하는 것 같아.
그걸 돌파하면 또 완만하게 써질 텐데 말이야.
나도 그래서 엎은 글도 많지.

글쓰기 방법을 찾아 가는 건 중요한 것 같은데
알라딘에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
잘 쓰면 보상을 받기도 하잖아.
하지만 긴 글은 쓸 수 없다는 것. 책에 관한 글만
쓴다는 건 단점이긴 하지.
어쨌든 글 쓰기의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가는 건
중요하다고 봐.

cyrus 2019-05-15 18:16   좋아요 0 | URL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이라면 슬럼프는 반드시 찾아오는 것 같아요. 저도 크고 작은 슬럼프가 찾아와요. 책만 읽고 싶어지거나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알라딘이 망하거나 제가 글쓰기를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아마도 제가 죽어야 글쓰기 행위가 중단될 것 같습니다) 책에 관한 글만 쓰려고 해요. 여기 알라딘에 맨 처음 글 쓸 때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생각은 없어요. 그냥 제 글쓰기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해요. ‘꾸준함의 대명사’인 야구 선수 박한이처럼 글을 쓰고 싶어요. 꾸준하게 책에 관한 글을 쓰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

stella.K 2019-05-15 19:15   좋아요 0 | URL
ㅎㅎ 좋은 생각인데 난 왠지 니가 그러느라 장가는 안 가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좋은 사람 있으면 열심히 연애도 하고 그래라.
책은 평생 읽을 수 있지만 연애는 안 그럴 수도 있어.ㅋㅋ

그런데 박한이란 야구 선수가 있었냐?
첨 들어보네. 하긴 내가 그쪽으론 문외한이라...
 
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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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기, 쓰기, 고치기. 누구나 알고 있는 글쓰기의 세 단계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깊게 한 후에 쓸 수 있고, 여러 번 지웠다가 다시 쓸 수도 있다. 말을 할 때도 이 세 단계를 지켜야 한다. 생각하기, 말하기, 고치기. 이 말하기 단계에서 가장 쉬운 것이 말하기고, 가장 어려운 것이 고치기다. 고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말은 엎어진 물과 같다. 말 한번 잘못하면 끝이다. 잘못 나온 말은 수십 마디의 변명으로도 고치기 어렵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땐 정말 신중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도 잘할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동진, 김영하, 김겨울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책 읽기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꽤 많은 청취자/시청자/독자들과 소통한다. 게다가 그들의 입심 또한 범상치 않아 재미있게, 유쾌하게 책을 소개한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책 많이 읽고, 글 잘 쓰는 똑똑한 사람도 무지에 근거한 발언이나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경솔한 발언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만,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무언가 생각나는 것을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흐르는 물이 어딘가에 막힌 것처럼 술술 나오지 못할 때가 많다. 생각나는 대로 더듬더듬 힘겹게 말하고 나면, 얼굴이 화근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발음도 좋지 않다.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내 발음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는데,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갑자기 흔들린다. 그야말로 ‘마음 지진’이다. 그럴 때 급히 대화를 매듭지어버린다.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려한 언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쓸데없이 긴장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래서 대화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싶어서 작년부터 독서 모임에 나가게 됐다. 1년 동안 두 개의 독서 모임에 나가면서 확실히 알았다. 내가 너무 책에 파묻혀 살았구나. 이러니 말주변이 없었어.

 

말을 잘 하지 못하더라도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내 인생의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다가오는 말들’을 경청하는 사람이 되는 것. 독서 모임에 나가기 전에 ‘경청하는 태도’를 잊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자가 최면을 걸듯이 여러 번 다짐을 했다. 마침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을 읽게 되었고, 경청의 세 단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었다. 듣기, 생각하기, 고치기.

 

 

 타인의 말은 나를 찌르고 흔든다. 사고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렇게 몸에 자리 잡고 나가지 않는 말들이 쌓이고 숙성되고 연결되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남의 말을 듣는 훈련이 조금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내가 편견이 많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어도 이 모양인가 싶어 자주 부끄러웠다. 하지만 편견, 무지, 둔감함은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건 아니었다. 결핍보다 과잉이 늘 문제다. 타인의 말은 내 판단을 내려놓아야 온전히 들리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 7~8쪽)

 

 

말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 생각이 많아진다. 상대방에게 말하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고, 그것을 어떻게 능숙하게 표현해야 할지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두뇌를 완전 가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두뇌를 너무 빨리 작동하면 정확하지 않은 지식의 파편, 또는 편견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 잡다한 생각으로 꽉 채운 말 한마디는 겉으론 화려하게 보일지 몰라도, 청자의 마음을 울리는 힘은 부족하다. 오히려 ‘청자를 울리는’ 해로운 말이 될 수 있다. 나나 상대방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 말 한마디를 꺼내려고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게 낫다. 내게 다가오는 상대방의 말 또한 나를 아프게 하는 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독소’ 같은 편견들을 제거해주는 따끔한 해독 주사가 되기도 한다. 해독 주사 같은 말이 내 두뇌를 찌르고 나면, 몇 번의 진통을 거치면서 생각한다. 그게 바로 은유 작가가 말한 ‘사고를 원점으로 돌리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편견을 발견하게 되고, 성숙한 ‘나’로 단단히 준비할 수 있도록 편견에 저항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경청의 마지막 단계 ‘고치기’다.

 

제대로 경청하는 사람이 되려면 ‘확신에 찬 사람(19쪽)’이 되지 않아야 한다. 편견이 쌓이고 자기 확신 단계에 들면 오만이 생긴다. 오만은 ‘다가오는 말’을 원천 봉쇄하는 방어막이 되거나 때론 상대방을 제압하는 위력이 되기도 한다. ‘네가 생각한 건 틀렸어’ ‘어딜 감히 내 말에 태클을 걸어?’ 이런 식으로 강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모든 답이 자기에게서 나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은유 작가는 40대 후반이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두려워해야 할 나이라고 말하는데, ‘젊은 꼰대’가 늘어나는 요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아집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책을 많이 읽고, SNS나 블로그에서 글을 쓰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글쓰기의 세 단계를 이행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혼자서 ‘생각하고, 쓰고, 고치는 일’이 가능하냐는 점이다.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은유 작가의 글을 읽고 난 이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글쓴이가 자신의 글에 ‘다가오는 말들’을 경청하지 않은 채 글을 쓰고 고친다면, 과연 그 글이 제대로 쓰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평소에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글 쓸 때도 남의 의견을 잘 듣는다. 이 사람은 무지와 편견으로 살아온 ‘나’를 재발견하고, 삶과 사회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글을 쓴다. 그리고 상대방(독자)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글을 쓴다. 내 글을 읽게 될 독자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면서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일단 ‘다가오는 말’을 잘 듣고 마음으로 흡수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한다. 그러면 ‘나를 위한 글쓰기’는 ‘남을 위한 글쓰기’로 승화한다.

 

혼자서 책 읽고, 글을 쓰는 일은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게 ‘다가오는 말들’이 없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글쓰기가 반복되는 일상은 온전히 ‘나’를 위한 공부가 될 수 없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만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말했다. 좋은 말이긴 하나, 책에 파묻혀 사면서 글쓰기에 몰두하는 외로운 일상도 좋다고 볼 수 없다. 낯선 존재와 마주하면서 낯선 말을 접해보지 않으면 머리에 가시가 돋는다. 그 가시는 내 정신을 빈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남을 위협하는 언어라는 무기가 되곤 한다. 머릿속에 가시가 생기지 않으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낯선 존재의 말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부딪칠 수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공간 안에서 ‘무지로 인한 긴장과 혼돈의 시간을 치르면서(278쪽)’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들어 혼자서 책 읽는 것보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과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이 좋게 느껴진다. 모임 분위기가 즐거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 삶, 성격, 정체성, 신념)(과, 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공부하면서 느끼는 ‘긴장감’이 좋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공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쭉 그렇게 공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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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4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 모임, 좋은 공부 방법인 것 같습니다. 함께 읽은 텍스트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요. 편견 깨기... 확실히 독학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9-04-17 13:38   좋아요 0 | URL
내 글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없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글만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죠. 솔직히 말해서 요즘 들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에 회의감을 느낍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도 그들과 직접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좋게 느껴집니다.
 
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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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가들은 서재 얘기든 책에 대한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들이 좋아하는 책에 특별한 특징이 있다. 애서가가 쓴 책은 또 다른 어떤 책에 대한 입맛을 돋운다. 《서재를 떠나보내며》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킨다. 고구마 줄기처럼 꼬리를 물고 나오는 ‘책 속의 책들’은 《신곡》, 《돈키호테》 같은 서양 문학의 알토란들이다.

 

책방 점원에서 시작해서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장 자리까지 오른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은 자신만의 도서관을 만든 애서가이다. 학창 시절부터 망겔의 꿈은 도서관 사서였다. 작가가 되고 책을 모으다 보니 어느 사이에 책장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결국 프랑스 루아르강 계곡에 3만 5천여 권의 책이 소장된 개인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듯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망겔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면서 개인 도서관에 있던 책들을 떠나보냈다. 《서재를 떠나보내며》는 해체를 맞이하는 개인 도서관에 보내는 일종의 송별사(送別辭)다.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서재 속에 죽은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죽은 사람들’이란 책을 남긴 저자들의 정신이다. 결국 서재는 책들의 공동묘지이고, 서재를 애지중지 관리하는 애서가는 묘지기다. 그러나 프랑스에 있는 서재를 떠나보낸 망겔 입장에서는 사르트르의 비유가 우울하게 느껴질 것이다. 서재의 해체는 곧 ‘서재의 죽음’, ‘기약 없는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싸는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책을 한 권 한 권 서가에서 빼내고, 그 책을 종이 수의 속에 집어넣는 것은 우울하고 사색적인 행위로 마치 오래도록 지속되는 작별 인사 같은 것이다. (60쪽)

 

 

서재에 잠든 ‘죽은 사람들’을 지켜본 묘지기가 공동묘지 하나가 사라져가는(죽어가는) 모습까지 봐야 한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에게 서재는 온전히 나에 대한 ‘자서전’이며, ‘나’라는 존재의 일부이다. 서재는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책을 꽂을 수 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공공 소유물이다. 도서관 책에 밑줄을 긋거나 필기를 하면서 읽을 수 없다. 그러나 개인 서재에 꽂힌 책은 개인 소유물이다. 망겔은 책을 빌려주는 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개인 서재를 잃은 것에 대한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나는 책은 나의 소유물이고 또 나라는 사람의 일부라고 느낀다. 나는 책을 빌려주는 것을 귀찮아한다. 나는 책을 빌려준다는 것은 절도를 유혹하는 행위라 믿는다. 나의 서재는 나라는 사람을 에워싸고 또 반영하는 온전히 사적인 공간인 것이다. (17~18쪽)

 

 나는 늘 공공 도서관을 사랑했지만 한 가지 모순은 고백해두어야겠다. 나는 도서관에서 글을 쓰거나 일을 하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조급한 나는 원하는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빌려 온 책의 여백에 필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도 너무 싫다. 책에서 어떤 놀랍고 진귀한 것을 발견했는데 그 책을 도서관에 다시 반납해야 하는 것도 싫다. 나는 탐욕스러운 약탈자처럼 내가 다 읽은 책이 나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28~29쪽)

 

 

서재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 망겔은 국립 도서관장이 된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염두해서 그런지 책의 후반부에 국립 도서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운영하고 싶은 국립 도서관은 누구나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보금자리 같은 곳이다. 망겔에게 서재와 도서관은 개인과 사회 전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글의 영감과 간접경험을 얻는 곳이기도 하고, 때론 번잡한 삶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안식의 장소였다. 책 속에 담긴 방대한 인류 정신의 원형을 기억하게 만들고, 활자와 세상을 향해 더 열린 상상력을 갖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서재는 삶의 기록이며, 독서편력의 역사이다. 다소곳하게 책이 놓인 서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따스해진다. 서재는 우리의 마음에 활력을 불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천국이다. 책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서재야말로 보르헤스(Borges)가 원했던 ‘천국의 도서관’이 아니었을까.

 

 

 

 

※ Trivia

 

2쇄를 찍을 때 다음과 같은 오자들을 교정해야 한다.

 

28쪽에 안나 슈웰(Anna Sewell)의 사망 연도가 ‘1978년’으로 되어 있다. 그녀는 1878년에 세상을 떠났다. 52쪽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작가 이름을 ‘마르셀 푸르스트’라고 표기되어 있다. 176쪽 옮긴이 주에 ‘프루스트’로 적혀 있는 걸로 봐선 52쪽의 ‘푸르스트’는 인쇄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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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22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8~29쪽)의 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cyrus 2018-08-23 16:54   좋아요 1 | URL
망겔의 책을 다 읽고 도서관에 반납했을 때 기분이 이상했어요.. ㅎㅎㅎ
 
어떻게 일할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곽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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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것을 털어놓는 행위다. 모든 것을 거짓 없이 쏟아내는 이 행위는 진실로 귀결되는 인간의 솔직한 언어이다. 이런 면에서 고백의 언어로 채워진 현직 임상 외과 의사 아툴 가완디(Atul Gawande)의 글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독자들의 가슴에 새겨진다.

 

 

 한때는 의사로서 가장 힘든 싸움이 기술을 터득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비록 일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려는 찰나 실패를 겪고 좌절하곤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업무가 주는 긴장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끔 지칠 대로 너덜너덜해지기는 해도 말이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의사라는 직업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능력 안의 일과 능력 밖의 일을 아는 것이다. [주1]

 

 

‘전문 의료인’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그의 솔직함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그 솔직함이 의사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인 의사도 위험과 책임이 따르는 일에 고뇌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웅진지식하우스, 2018)는 전문 의사가 쓴 자성록이다. 가완디는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수술실에서 화약 냄새나는 야전병원까지 넘나들면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의료현장 사례를 되돌아보면서 최선의 의료 행위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그 행위에 합당한 의료인의 역할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한다.

 

출판사가 새롭게 붙인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제목보다는 원제(Better: A Surgeon’s Notes on Performance)가 책의 핵심을 보여주는 명확한 표현이다. 책의 원제에 들어있는 단어 ‘Performance’는 ‘의사 일을 하면서 얻는 성과’보다는 ‘개인과 사회에 작용하여 그것들을 변혁시키는 실행’을 의미한다.

 

저자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동녘사이언스, 2003)에서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모험’이라고 했다. 또 의학을 ‘목숨을 건 외줄 타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목숨을 건 모험이 없으면 의학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목숨을 건 외줄 타기’를 하는 의사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변혁의 목소리는 언제나 실천이 함께 하지 않으면 속이 비어있는 말로만 남는다. 삶 안에서 구체적 실행이 이루어지는 만큼 세상은 변할 수 있다. 저자는 손 씻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의사들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병원 감염관리팀 사례를 들려주면서 의사들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실천’을 강조한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만 하도록 진화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문제 해결 과정을 단순화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성실함’의 미덕을 가볍게 여긴다. 그렇지만 저자는 최악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성실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 속에 인생의 진리가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란 없다. 사람이 하는 곳에는 반드시 실패가 생기므로 사람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찾아내어 변화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개선은 우리에게 주어진 ‘끝없는 노동’[주2]이다. 실패를 받아들여 개인 및 사회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노력은 성실한 태도에서 나온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질주하듯이 살아가는 삶에서 잠시 멈춰 설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현재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주1] 아툴 가완디 지음, 곽미경 옮김, 《어떻게 일할 것인가》, 웅진지식하우스, pp. 190.

 

[주2] 같은 책, p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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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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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대충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공들여서 읽는다. 그들은 단 한 번 밖에 읽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Jean Paul)의 말이다. 그가 하려는 말은 알겠는데 내 독서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서 책을 과식하는 편이다. 관심 가는 책이나 감동을 많이 주는 책에는 무의식적으로도 손이 먼저 간다. 읽고 또 읽을 때마다 번번이 새로운 깨달음과 감동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기는 이러한 정서적 반응은 책과 마음이 전기가 통하듯 강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감정의 동기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마음에 위로와 감동을 주는 책은 꼭 소설만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진실이 담긴 수필을 읽고 감동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수필은 감동을 주는 삶의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일상적이고 진부한 ‘일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보는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수필이 나오는 이유는 글쓴이들이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쉬운 글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수필은 자기 고백적 글쓰기다. 자기 고백적 글쓰기는 경험을 의미화하고 객관화함으로써 경험과 자신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글쓴이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느끼는 독자들의 반응, 즉 감정이다.

 

괴롭거나 부끄러운 일일수록 망각과 ‘추억 보정’에 기대어 잊어버리고 싶을 텐데 굳이 글쓰기로 풀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치유를 목적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감정의 덩어리를 재료 삼아 글을 써서 견딜 만한 수준의 내용으로 다듬는다. 내게 이런 의미가 있었다는 식으로 해석하게 되면 한결 그 일을 돌아보는 게 쉬워진다. 따라서 자기 고백적 글쓰기, 즉 수필은 아픔의 상처를 다른 느낌으로 재생한다는 뜻에서, 덧난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연고’가 될 수 있다.

 

 

 “안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수몰민으로 대도시에 버려진 채 십 대와 청춘을 버겁게 앓았다. 그 시절의 트라우마가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 아픈 어제가 모여 꽃핀 오늘로 거듭나는, 치유로서의 글쓰기에 매혹을 느낀다.”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작가 소개중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잔잔하게 가슴 저미게 했던 느낌들을 차분한 글로 풀어내 첫 번째 수필집을 펴낸 소설가 김살로메. 그녀는 치유로서의 글쓰기, 자기 고백적 글쓰기에 깊은 관심이 있다. 그런 관심에 부응한 책이 바로 이 첫 번째 수필집이다. 그녀는 삶의 흔적을 찾듯 끼적거렸던 글들을 오롯이 담아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아시아, 2018)이란 수필집을 펴냈다. 김살로메의 수필은 특별히 화려한 문체를 자랑하거나 하지 않는다. 내용도 특별할 게 없다. 그저 일상의 세목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인데, 그 잔잔함이 요즘같이 과장되고 억지수를 써야만 겨우 존재를 인정받는 세태에서 오히려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일천 글자 분량의 수필은 소중한 일상을 엮은 마음의 동화 같은 글이다. 마음속 동화이기 때문에 흘러가 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다. 너무 바쁜 일상 때문에 잊고 살아온 너와의 관계에 대하여 소중했던 가치를 일깨워준다. 『엄마의 재봉틀』은 스치듯 사라진 일상 속 미세한 풍경을 되살린 글이다. 쉼 없이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는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가 된다.

 

 

 엄마가 남긴 베갯잇, 방석, 이불보 등 다양한 소품들을 보면서 재봉틀을 돌리고 돌리던, 굳은살 밴 엄마 뒤꿈치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바늘 자국이 지나간 엄마 오른손 검지의 상처를 떠올리며 당신 노동의 숭고함을 되뇌는 것도 잊지 않겠지. (엄마의 재봉틀23)

 

 

많은 이들이 자신을 미워하거나 타인을 미워하면서 산다. 어린 시절 글쓴이는 재봉틀 소리를 싫어했고, 그것을 쉼 없이 돌리는 엄마의 삶을 ‘동조 없는 연민’[*]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 글쓴이는 치유로서의 글쓰기를 통해 부끄러운 기억을 억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눈앞에 그대로 펼쳐놓고 실체를 확인한다. 『엄마의 재봉틀』은 글쓴이의 마음뿐만 아니라 소중한 추억이 깃든 엄마의 물건을 보듬고 쓰다듬는 치유력을 지닌다.

 

김살로메는 경륜을 찬미하는 목소리가 드센 이 시대에 새삼 ‘진정한 어른 되기’를 고민하는 작가이다. 『꼰대라는 말』, 『시청과 견문』은 ‘어른 되기의 어려움’에 대한 수필이다. 글쓴이의 표현에 따르면 ‘시청(視聽)은 흘깃 보는 것이고, ‘견문(見聞)은 제대로 보고 듣는 것이다. 꼰대는 제대로 보고 들은 것이 없으면서도 ‘견문’했다고 큰소리친다. 그리고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젊은 세대를 가르치려고 한다. 꼰대는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어른은 시간이 지난다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는 과정의 결과로 얻어지는 칭호이다. 수필집에는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작가의 내적 성찰이 돋보이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큰 것, 강한 것, 힘센 것, 자극적인 것이 세상의 중심에서 위압하는 이 시대에 김살로메는 작은 것, 소박한 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이야기한다. 독자는 그녀의 수필집에서 마치 진흙 속의 연꽃처럼 성찰과 마음의 다스림을 실천하는 한 사람의 성숙한 어른을 만난다.

 

독자는 교리적인 글에서보다는 정서에 호소하는 글에 감동한다. 문학에서의 감동이란 내면을 두드리는 언어의 힘에서 나온다. 일천 글자로 채워진 소박한 수필에 인간적 애정을 가지고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은 소박한 경수필만 모은 책이 아니다. 그 속에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면서 그 가운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글쓴이의 지혜가 있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생각했던 것을 얼마나 더 절실하고 강도 높게 살펴보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삶과 존재를 어떻게 바꾸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요즘은 반성과 성찰이라는 감정 상태가 아예 없어서 사유를 거부하는 꼰대들도 글을 쓴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이 땅에는 순수한 영혼을 향한 지향을 일상에 잊지 않고 글을 쓰는 김살로메가 있기에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 엄마의 재봉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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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6-1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글쓴이의 지혜,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cyrus 2018-06-18 16:43   좋아요 0 | URL
스쳐 지나갈 법한 평범한 일상을 주제로 삼아 간결하게 글을 쓴 살로메님의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프레이야님처럼 살로메님도 리뷰집이나 영화 리뷰집 한 권 내시면 좋겠어요. ^^

페크pek0501 2018-06-16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열 번 누르고 싶은 리뷰입니다. 잘 쓰셨다고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cyrus 2018-06-18 16:46   좋아요 0 | URL
수필집에 보면 ‘문장 털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이 있어요. 이 글에서 살로메님이 깃털로 치장하듯이 화려한 수사가 장식된 글보다는 알짜배기 문장만 남은 글이 더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런 무색, 무취의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실패했습니다.. ^^;;

sprenown 2018-06-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없이 끄적거린다고 해서 모두 ‘글‘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리뷰 네요^^. 반성합니다!

cyrus 2018-06-18 16:51   좋아요 0 | URL
매일 틈만 나면 배설되는 문장들과 과시용 사진을 보고 싶지 않아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멀리 했어요. 짧은 글도 좋은 건 아니에요. 글이 길든 짧든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은 진짜 ‘알맹이’가 있어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2018-06-16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8 16:54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1000자 이내의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글을 쓰면서 수필집의 매력을 한 가지만 소개하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서니데이 2018-06-16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았어요. 간결하게 오래 공들여 쓴 느낌이 들었어요.
cyrus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오늘은 더운 토요일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8-06-18 16:59   좋아요 1 | URL
뛰어난 소설, 수필을 두루 쓸 줄 아는 작가는 흔치 않아요.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글을 쓴 작가도 소설의 분량보다 적은 경수필을 쓰기 어려워 할 것입니다. 독자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명확히 담겨 있는 경수필을 쓰는 것도 꾸준한 노력 아니면 쓰기 힘든 일입니다. ^^

2018-06-17 0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8 17:02   좋아요 1 | URL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취향과 유행을 이해하려면 독서모임에 참석해야 합니다. 20대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젊은) 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ㅎㅎㅎ 20대들이 공유하는 문화를 모르면 꼰대가 되기 쉬워요. 꼰대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든요.

프레이야 2018-06-1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들인 사진도 엄마의 재봉틀이 가장 좋았어요^^ 저는.

cyrus 2018-06-18 17:05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적재적소에 배치된 사진들이 글의 가치를 높여주었습니다. 수필집에 사진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