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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겨레고전문학선집 10
정철.박인로.윤선도 지음, 김하명 옮김 / 보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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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관동별곡'을 배우는 시간

내 친구 중에 재수생 한 명 있다. 수능시험까지 남은 날이 100대로 들어서게 되어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도서관이나 독서실을 찾아가 열심히 수능 공부를 하고 있다.  

그 친구가 우리 집 근처 동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서 점심식사를 같이할 겸하여   

주말에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수능 공부를 하면서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나의 질문을 듣자마자 마치 이 말은 꼭 나에게 말하고 싶었다는 듯 대답하였다. 

요즘 언어 영역에서 비문학과 고전 시가에서 점수를 까먹어서 걱정된다고 토로하였다. 

비문학은 언어 영역에서 점수 받기가 가장 어려운 내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필이면 고전문학 중에 시가를 어려워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시험 지문으로 등장하는  

시가 속의 한자어와 고어(古語)들을 해독하는데 시간을 허비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언어 영역에서 출제 가능성이 높으며 아주 중요한 고전 시가들을 계속 보고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어도 정작 시험 문제를 풀 때 교과서나 EBS 교재에서
배우지 못했던 시가가 등장하면 난감하다고 한다. 내 친구의 심정, 이해가 간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지금 수능 공부를 하고 있는 수험생들도 그런 생각을 가질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전 시가를 공부하면서 제일 짜증나게 만들었던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친구는 정철의 <관동별곡>이라고 말했다.

관동별곡..... 나도 이 유명한 시가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시간에 <관동별곡> 전문을 배우게 되었다. 그 때가 송강 정철의
작품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작품에 대한 첫 만남으로 두근거려야 할  

문학 시간에 <관동별곡>의 시간만은 지루함과 피곤함이 몰려오는 시간이었다.  

확실하지 않지만 교과서에 등재되어 있던 <관동별곡> 전문이 총 6페이지 정도 걸쳐서  

되어있는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전문이 길다는 것이다. 그리고 6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던  한문과 고어들은 학생들에게 수면을 불러오기에 충분하였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문학 선생님이었는데 <관동별곡>을 담임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배웠다.
우리 반 남학생 절반은 담임선생님의 <관동별곡> 수업 시간에 대놓고 엎드려 자거나
눈 감고 졸고 있는 사람이 많았던 장면이 떠올린다. 나는 그 때 수면 욕구를 참아내며
억지로 수업에 경청하였지만 지금은 <관동별곡>에 대해서 딱히 떠올리는 것도 없고,
다시 그 <관동별곡>의 시간은 생각하기가 싫어진다. 
 

 

 

 긴장감 가득했던 50분 동안의 문학 시간

정철 선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은 윤선도의 작품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윤선도라고 하면 제일 떠오르는 작품은 바로 <어부사시사>이다. <어부사시사>의  

내용에서 풍기는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 것도 있고, 이 작품도 예전의 학창  

시절을 또 한번 떠올려주기도 한다. 이 때 <어부사시사>를 배웠던 문학 시간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웠는데 우연하게도 이 때 수업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나중에 3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으로 만나게 되었다. 교과서 속의  

<어부사시사>가 <청산별곡>,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한 단원 안에 구성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특별 과제로 이 세 가지 작품을 모두 외우라고 하셨다. 

리고 정확히 다음 주 첫 시간에 외운 것을 무작위 테스트한다고 자신이 낸 과제를  

힘주어 강조하셨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고등학교 때보다 공부하기가 편했고 

성적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던  학생의 때가 아직까지 남아있었던 걸까?
나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과제에 아연실색하였다. 앞으로 테스트하는 날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시간은 많게 보였지만 여러 가지 과목들의 과제들에 파묻혀 사는 
우리들에게는 5일은 짧은 시간이었다. 안 외운다고 해서 안 걸린다는 보장은 없다.
선생님이 지적하는 학생은 선생님이 이 작품 한 편 낭송해보라고 하면 선생님과 학생들  

앞에서 낭송하는 것이다. 만약 못하게 되면 그 대가로 선생님의 잔소리와 회초리질이었다. 

그리고 수행평가 태도 점수에 감점이라는 이제 막 입시전쟁에 뛰어든 우리들에게  

무시무시한 패널티가 주어졌다. 나는 틈만 나면 작품들을 외우고 외웠다.  

<진달래꽃>은 이전에 마야의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쉽게 외워졌지만  

<청산별곡>과 <어부사시사>는 외우기 쉽지 않았다. 평소에 쓰이지 않은 고어와  

한자말이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다 외웠어도 중간에 고어와 한자말 한 두 개가 틀리곤 하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완벽히 숙지하도록 노력하였다.

D-day 문학 시간.

선생님이 교실 문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교실 전체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다 외우고 있었지만 내가 걸리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였다.
50분의 시간동안 그렇게 긴장된 것은 처음이었다. 반 학생 전체 42명이었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내가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만약 완벽히 외운 학생들만 걸리게  

된다면 50분 시간동안에 반 학생 모두 다 선생님 앞에서 암송을 하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운 좋게도 나는 다행히 걸리지 않았다. 8명의 친구들이 불행하게도  

선생님의 사랑의 체벌과 태도 점수 감점을 받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이들이 암송을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어부사시사>와 <청산별곡>이었다. 그 때 선생님은 참으로  

지능적이었다. 맨 먼저 쉬운 <진달래꽃>을 시켰다가 성공하면 이번에 고전문학 한 편  

외우라고 하였다. <진달래꽃>을 제대로 암송했다고 해도 고전문학에서 막히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결국 선택받은 8명은 고전작품 하나 때문에 그들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문학 시간이 되고 말았다.  

지금 <어부사시사>를 외우라고 하면 암송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 때의 긴장감이  

가득했던 문학 시간 덕분에 고전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우리나라 고전문학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옛 우리말과  

한국적 정서, 그리고 고전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기 위하여 암송 과제를  

부여했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선생님의 뜻 깊은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정작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고전에 관심을 가지자는 것이다. 선생님은 수많은 교사
생활동안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들이 자기 나라의 고전문학을 어려워하고  

고전문학이 단지 입시 성적을 위해서 배워야하는 글로 여겨지는 것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시조 한 편에 담아낸 자연의 변화

<어부사시사>는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어부의 생활과 경치를 읊은 작품이다.  

자연 속에서 소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느끼는 감흥과 정취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경치 속에서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각 계절마다 출항에서 귀항까지의  

어부의 일과를 시간 순서로 나타내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한 편의 어부의 일생을 보는 것  

같다. 문학 시간에 배운 교과서 속 <어부사시사>는 각 사계절마다 한 편씩만 등재되어  

있다. 간혹 학생들이 이 작품을 배우면 <어부사시사>는 교과서에 나온 4수가 전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울텐데 <어부사시사>는 총 40수, 한 계절마다 10수씩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에게는 <어부사시사> 원문이 수록되어 있어서 사계절의 변화를 표현한
다양한 문장들을 볼 수 있다. 봄을 나타내는 춘사에는 봄 아침에 어부들이 배를 띄어
강촌을 떠나 고기 잡는 광경을, 여름을 나타내는 하사에는 소박한 어부의 생활을,
가을을 나타내는 추사에는 풍요로운 계절에 느끼는 흥취와 자연에의 몰입을,
마지막 겨울을 나타내는 동사에는 눈이 쌓인 겨울 산의 풍경을 바라보는 한가로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외울 수 없다고 해도 이 작품 한 번
읽으면 후렴구는 기억에 남게 된다. 모든 작품의 중장과 종장 사이에는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라는 여음이 있다. 이 여음은 뱃노래의 여음에도 사용하는데
노 젓는 소리의 의성어이다. <어부사시사> 속의 어부의 생활을 상상해보면
‘지국총’은 바다 위의 배가 움직이는 소리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로 만든 배를 노를 저어가면서 움직이면 찌그덕거리는 소리가 나게 된다.
참고로 나는 ‘지국총’이라는 후렴구의 단어를 배가 움직이는 소리로 상상하여
쉽게 외웠다. 그리고 ‘어사와’는 배를 저으면서 어부들이 내는 ‘어영차’라고 외치는
소리를 차음한 것이다. 후렴구를 통해서 자연을 사랑했던 작가의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애국심을 노래한 노익장 박인로

3인 3색의 유명 시조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책들을 읽으면서 이 세 작가들에 대해  

나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정철은 자연을 노래하고 있지만 결국은 임금에 대한 충성을 

표현한 작품들이라서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작품이다. 그리고 무수히 

등장하는 한자어는 작품 읽기를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윤선도의 작품에서도  

정철과 비슷한 충신파의 작가이지만 그나마 <어부사시사>만은 순수 자연만을 노래하고  

있어서 언제든지 또 읽어도 거북스럽지가 않다.
박인로 역시 충신파이지만 이 두 사람과 비교하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정철과 윤선도와 비교하면 그의 가사들은 감상적이지가 않다.
특히 <선상탄>에는 임진왜란 종결 이후, 왜적에 대한 비분강개(悲憤慷慨)와  

나라의 태평성대에 대한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선상탄>을 쓴 지 400여 년이  

지났지만 작품 속에는 박인로의 호쾌하고 결의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본사 6수에는 비록 늙은 몸이지만 손빈이나 제갈공명과 비교하면 몸이 성하니  

왜구가 전혀 두렵지 않다는 무인(武人)의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

  분하게 여기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장한 기운은 늙어 가면서  

  더욱 씩씩하다마는,
  조그마한 이 몸이 병중에 있어서,   

  분함을 씻고 가슴에 맺힌 원한을 푸는 것이 어려울 듯하건마는,
  그러나 죽은 제갈도 살아 있는 중달을 멀리 쫓고,
  발이 없는 손빈도 그 발을 자른 방연을 잡았는데,
  하물며 이 몸은 손과 발이 갖추어 있고
  목숨도 있으니,
  쥐나 개 같은 왜구를 조금이라도 두려워하겠느냐? 

  [원문]
   慷慨(강개) 계운 壯氣(장기) 老當益壯(노당익장) 다마,
   됴고마 이 몸이 病中(병중)에 드러시니.
   雪憤伸寃(설분신원)이 어려올 듯 하건마는, 
  
그러나 死諸葛(사제갈)도 生仲達(생중달)을 멀리 좃고,
   발 업슨 孫臏(손빈)도 龐涓(방연)을 잡아거든,
   하믈며 이 몸은 手足(수족)이 가자 잇고
   命脈(명맥)이 이어시니, 
   鼠竊狗偸(시절구투)을 저그나 저흘소냐. 
 

                                     - 박인로『선상탄(船上嘆)』본사 6수 전문 -

 

작품의 흠이라고 말하면 이 작품 역시 한문 투의 문장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국의 고사(故事)들을 인용하고 있어서 처음 읽게 되면 어려움이 느낄 것이다.
하지만 한문과 고사들이 있어서 작가의 애국심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선상탄>만으로도 박인로를 단순히 충신파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독락당>과 <소유정가>에는 명승지에 대한 경치를 찬양했고 <노계가>과 <누항사>에는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이상적 삶을 노래하면서도 궁핍하고 누추한 현실에서 오는  

갈등과 괴로움을 사실적으로 노래하였다. 그래서 그가 남긴 시가들의 내용과 주제는  

다양하다. 시가 이외에도 시조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자연 예찬부터 시작해서  

사회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인상 깊은 점은 유명  

명승지를 보고 난 후 느꼈던 통찰을 시조로 잘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암 28경’을  

그린 작품 중 하나인 ‘구인봉(九仞峯)’에는 작가는 구인봉이라는 산봉우리를 빗대어  

학문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말하고 있다.

  높고 큰 구인봉이 여러 산 중에 빼어나구나.
  아랫 사람에게 배우는 공부 과정이 산을 쌓는 것 같건마는
  이제 산 쌓기는 맨 마지막에 실패를 하는 것이오.

  [원문]
   巍巍(외외)한 구인봉이 중산 중에 수이코야
   下學 功程(하학 공정)이 이 산 하기 갈건마는
   어찌타 이제 위산은 功虧一簣(공휴일궤) 하는 게오 
 

                                                           - 박인로『구인봉(九仞峯)』전문 -

책에는 원문 그대로 쓰여 있어서 밑의 주석을 이용하여 우리말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의 해석은 조금은 어설프면서 빈약하다. 하지만 두 번째 구절에는
사람이 공부하는 과정은 산을 쌓는 과정과 동등하게 표현하면서
만약에 공부를 게을리하게 되면 전에 배웠던 것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평생 쌓았던 산이 마지막에 무너지게 되어 실패하게 됨을 역설하고 있다.
즉, 항상 공부의 처음과 끝을 잘 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공부하라는 뜻이다. 
 

 

 

 난 벌써 그 감정을 이미 느끼고 있었어

사실 고전시가와 시조가 주는 자연에 대한 특유의 감정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전문학을 즐겨 읽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많이 읽는 사람들은(읽고 싶은 의도는  

없겠지만) 수험생들일 것이다. 이번 리뷰가 너무 감상적으로 기울어져서 자칫 세 명의  

대가(大家)들이 남긴 작품들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거 같다.  

정철에 대한 소개가 부족한데 그렇다고 정철의 작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철보다는 윤선도와 박인로의 작품에 더 많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정철의 작품이 쉽게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족한 문장력으로 세 명의 문학적 특징들을 간략히 압축한 점도 있고,  

이들의 작품 제재가 다양해서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문장력을  

키우기 위한 연습을 꾸준히 노력해야겠다.

마지막까지 나의 재수생 친구를 소개하면서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이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재수생 친구는 4년 만에 언어 영역을 공부하면서 4년 전 공부했을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그 감정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언어 문제집에 나오는 작품들의 지문을 계속 보고나니 그 작품에 빠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문학적 감정이라고 생각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감명 있게 읽었던 시가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친구 말을 듣고 웃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난 벌써 그 감정을 이미 느끼고 있었어. 이 친구야.’ 
 

그러고는 그 친구에게 수능시험을 다 치고 나면 문학 작품을 읽어보도록 권유하였다.
사실 이 녀석은 독서와 담을 쌓고 지내고 있었다. 그와 만난 지 7년째 되어서
그 녀석의 성격을 꿰뚫고 있는 나로서는 그가 느끼고 있는 문학적 감정은 일시적일뿐이며, 

수능시험 끝나고 나면 공부 때문에 제대로 놀지 못했던 지나간 세월들의 한(恨)을  

푼답시고  정신없이 놀 것이다. 그리고 독서는 안중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지금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전국의 수험생들 중에서도
수많은 문학 작품들을 교과서와 교재들을 통해 접하면서 조금이라도 문학적 감정들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능시험이 끝나고 그 감정의 분위기를 이어서 독서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2년과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수험생들이 11월 18일에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내 재수생 친구도 이번에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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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4
김시습 지음, 이지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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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있고, 금오신화는 없다?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을 찾기 위해서 모 사이트의 블로그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어느 블로그에 서울대 권장도서 목록 발견하였다.
역시 좋은 대학교는 뭔가 다른 거 같다. 서울대 소속의 권위 있는 교수들이 모여서
총 100권의 도서들을 동, 서양 문학과 과학, 사상 등으로 분류하였다. 권장도서  

목록 작성 취지는 대학생들의 다양한 분야를 읽게 하는 독서 활동을 증진시키는  것과  

더불어 동, 서양 고전을 읽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목록에 선정된 100권의  

도서들 대부분은 사람들이 많이 읽지는 않지만 제목과 저자만 들어도 아는 고전들로  

선정되어 있다. 그런데 목록을 훑어보니 실망감이 조금 느껴졌다.
정말로 서울대 교수님들이 심사숙고 끝에 논의를 하여 우리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목록을 만든 건지 의문이 들었다. 100권의 도서들 중 서양에서 출간된 도서가 
많이 차지하였다. 그리고 분야로는 서양 문학, 그 다음에는 서양 사상이었다.
사실 동, 서양 지성사를 통틀어 비교를 하면 서양의 지성이 역사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 것은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과 더불어 균형적으로 선정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고전이라고 하면 질겁을 하는 판에 우리나라의 고전들도  

안 읽는 것도 당연지사다. 무엇보다도 권장도서 목록에 대해서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문학 분야의 권장도서였다. 내 생각이지만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국어 수업 시간 중에 제일 싫어할 때가 고전시가를 배울 때일 것이다.  

요즘 잘 쓰이지 않는 암호 같은 옛 말을 해석하는 것이 고역일 것이다.  

선생님들은 직접 시들을 우리말로 해석하고 제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열심히 그 뜻을 설명해줘도 학생들은 딴청을 피우거나 너무 졸린 나머지
두 눈은 내려앉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시가가 다 어렵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작품성이 갖추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옛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한국적인  

멋이 깃들어진 한시들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 한시들을 쉽게 우리말로 풀어낸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는데 원문인 한자와 함께 뜻을 배치하여 읽기가 쉽다.  

그런데 권장도서에는 대충 ‘고전시가전집’이라고만 되어 있다.  

도대체 어떤 고전시가전집을 말하는 것인가. 인터넷 도서에 '고전시가전집'이라고 

검색만 쳐도 관련도서만 수십 권 이상 나오는데.....

딱 제목만 봐도 읽고 싶어지는 생각이 안 들게 된다.
고전 산문에는 고작 5권(연암산문집, 춘향전, 구운몽, 한중록, 청구야담)밖에 없다.
고전 소설이 고작 2편 밖에 없다. 나머지는 수필과 이야기 모음집이다.
아쉬운 것은 그 작품의 이름이 목록에 없었다는 점이다.
목록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있었지만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없었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전문가 및 신문이나 교육 단체에서 선정하는 추천 도서 목록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 목록의 단점이라면 도서 선정 기준이 선정 단체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정작 유명 단체와 전문가의 추천도서를 읽고 싶다면 되도록 다양한 단체와 분야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도서를 균형적으로 읽는 것이 좋다. 
 

 

 소설이야? 한시야? 
 

학창 시절의 문학 시간에 직접적으로 김시습의 작품에 대해서 공부한 적은 없다.
당시 학교에서 배우고 있던 교과서에도 없었으며 따로 보충 시간에 부교재로 사용하는
문학 문제집에서나마 <금오신화>에 수록되어 있는 ‘만복사저포기’만 접하였다.
주인공 양생이 부처님 앞에서 주사위 내기에 이겨서 소원으로 여자를 얻게 되는 내용은
나뿐만 아니라 교실에 있던 남학생들의 부러움을 사게 만든 장면이었다.  

평소에 신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그 당시 그리스 로마 신화에 푹 빠져 있어서
<금오신화>라는 제목만 봐도 나머지 4편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최근에 ‘민음사 문학 전집 읽기’라는 거대한 독서 목표를 실천을 하고 있는 중이라서
이번 기회에 <금오신화>를 읽게 되었다.

<금오신화>가 중국의 <전등신화>를 본뜬 것이라고 국문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전등신화>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김시습이 단순히 <전등신화>를 모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신화의 등장인물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통한  

능력을 소유한 초인들이다. 중국 신화의 허구적인 전개 방식을 읽다보면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편으로는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금오신화>도 신화의 전형적인 특징인 허구성을 갖추고 있지만  

중국 신화와 비교하면 전혀 과장스럽지가 않다. 5편 모두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들이 조합되어 있다. 제목은 신화이지만 내용면으로는 고전  

소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금오신화> 작품들 모두 학식을 갖춘 재주 있는 남자  

주인공과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재자가인(才子佳人)적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 구성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고전 소설 주인공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중간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한시들은 <금오신화>만의 색다른 구성이다.
다른 고전 소설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서 내용 중간에 
한시나 노래가사가 나온다. 모든 고전 소설들과 비교하면 <금오신화> 내용의
절반은 한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황하게 이어지는 고전 소설의 문체를 읽다보면
지루한 감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금오신화>의 한시들은 독자들에게 보다 쉽게  

전개 상황과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함으로써 지루한 감 없이 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김시습은 어렸을 때부터 한시에 타고난 재능을 보인 신동이라고 한다.
소설 속 한시들은 천재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훌륭한 내용 전개를 갖춘  

소설과  아름다운 한시가 절묘하게 결합된 고전 문학사상 보기 드문 걸작이다. 
 

 

 5인 5색,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  

 

<금오신화>는 서로 관계가 없는 '~생' 이름을 가진 남자 주인공들의 이야기이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먼저 <만복사저포기>는 앞에서 언급을 했듯이
양생이라는 남자가 부처님과의 주사위 내기에 이겨서 아리따운 여인을 얻게 되지만
사실 여인은 귀신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실망한 양생은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약초를 캐러 간 후 소식이 끊겼다는 이야기이다. <이생규장전>은 ‘주인공 이생이 담  

넘어 엿보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작품도 <만복사저포기>의 전개와 조금 유사하다.  

이생은 담 넘어 양반집 처녀 최랑에 보고 한 눈에 반해 사랑하게 된다. 양쪽 집안의  

부모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극복하고 혼인을 맺게 되지만, 홍건적의 난으로  

인하여 양가의 부모는 물론 부인 최랑마저 살해되고 만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생은  

최랑의 죽음에 슬퍼하지만 이생 앞에 최랑이 환생하여 나타난다. 그리고 이 둘은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최랑은 이승의 인연이 다했다고 말하며 사라지게 되어 그 뒤로  

이생은 시름시름 앓다가 병을 얻어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취유부벽정기>는 주인공  

홍생이 평양의 부벽루에서 자연의 흥취를 즐기고 있다가 기자의 후예라고 말하는  

선녀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밤새도록 그들은 시로 화답하여 놀았으나,
새벽이 되자 옥황상제의 엄명이라고 하여 선녀는 하늘로 돌아간다. 그 후로 홍생은  

그녀를 못 잊어서 병에 걸리게 되고 그도 다른 작품의 남자 주인공처럼 꿈에서  

죽음의 계시를 받고 곧 그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은  

설명한 세 작품과 다른 전개의 작품이다.
<남염부주지>는 염라국, <용궁부연록>은 용궁을 배경으로 하는 사회 비판 소설이다.  

이 두 주인공은 꿈 속에서 각각 염라국인 남염부와 용궁의 왕들을 만나 사회 현실에 대해 

대담을 펼친다. 꿈에서 깬 뒤 그들은 꿈 속 별세계가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맞이할 죽음을 두려움없이 받아들여 그곳에서  

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다섯 편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공통점은 벼슬에 오를 정도의 학식을 갖추어 있으나
부당한 사회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일명 재야인사들이다. 김시습도  

작품 속 남자 주인공들처럼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불만으로 벼슬길을 사양한다. 이런 작품들은 ‘방외인(方外人) 문학’이라고 한다.  

방외인이란 세상 바깥에 있는 인간들, 즉 아웃사이더를 말한다. 벼슬에 관심이 없으며  

기존의 권위와 규범을 지키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김시습 본인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펼치지 못한 불행한 인생을 살다 갔지만 아웃사이더의 기질과
시각으로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되어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고전 문학 체제가  

구축될 수 있었다.  

  

 <금오신화>에 김시습이 있다?

<금오신화>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방랑 생활을 하는 도중에 쓴 작품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김시습은 승려  

신분으로 전국을 방랑하였다. 김시습을 포함한 기존 사회에 반발하여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여섯 명의 선비들은 생육신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부당한 사회를 타파하기  

위해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끝내 사형을 당한 여섯 명의 신하들은 사육신이라고 한다.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통해 세조의 시대를 은근히 조롱하였다. 그리고 벼슬길을  

사양함으로써 끝까지 절개를 지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평가하면 우리는  

생육신보다 사육신을 절개를 지킨 충신들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세조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육신이라고 하면,  

생육신은 살아 있으면서 귀머거리나 소경인 채, 또는 방성통곡하거나 김시습처럼 두문불출하여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키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서 소극적인 삶을 선택하였다.
김시습은 직접적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마저도 말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방랑이라는 사회 도피적인 자신의 모습에 대해 사육신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 걸까?   반역자들이었기 때문에 사형당한 사육신의 시신들을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시습이 직접 시신들을 수습하여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생육신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면서 얻게 된 죄책감을 풀기 위해
자신이 직접 사육신의 넋을 기리려고 했을 것이다. 어쩌면 김시습은 <이생규장전>의  

이생을 통해 그 죄책감을 평생 잊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홍건적의 무리들이 침입을  

하였을 때 이생 자신만은 살아남고, 최랑과 양가 집안사람들이 죽게 된다.  

독자들에게는 이생이 사랑하는 최랑을 버리고 자신만 살아남는 장면에 대해서 수긍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생의 행동은 자신이 살아남는 것에 급급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지 못하는 대장부답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작품 속의 화자는
잔혹한 장면을 간략하면서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 이생에 대한 일체의 비난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이생이 작가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생의 행동은  

옳지 못하지만 환생한 최랑의 영혼과 만나게 되면서 최랑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이생은 최랑이 살해당했던 곳으로 가서 자신이 직접 최랑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를  

치르게 한다. 부당한 사회 권력 앞에서 작아지는 김시습은 자신의 모습을 작품 속  

이생을 통하여 사죄의 마음을 표현하고 사육신들의 넋을 기리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금오신화> 
 

국문학사적으로 소설의 발달 과정을 보게 되면 <금오신화>에 이르러 소설이라는  

문학 양식이 확립되었으며 그 이후 고전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소설을 꼽으라면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 등  

누구나 다 읽었으며 알고 있는 작품들이다. <금오신화>는 이들 작품보다 먼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대부분 작자 미상인 고전 소설이 많은 반면에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몇 안 되는 작가의 이름이 분명하게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가 알려진 고전 소설은 <홍길동전>(허균 작)과 <구운몽>, 

<사씨남정기>(이상 김만중 작), 그리고 연암 박지원의 소설들 밖에 없다.
<금오신화>가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음에 불구하고 다른 작품들로 인하여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불명예스럽게도 서울대 권장도서 축에도 끼지 못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소설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금오신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 유사한 플롯이 눈에 띈다. 
 

 

 <금오신화>의 영향을 받은 유명 고전 소설들

<남염부주지>의 결말에는 꿈속에서 염라국인 남주부에 갔다 온 박생은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사회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이상향인  

남염부로 가서 염왕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남염부의 왕인 박생은 현실 세계에서는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있던 제한적인 인물이었다.
허균의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도 박생과 흡사하다. 신분 차별과 부당한 사회  

현실 속에서 자신이 비범한 능력을 펼치치 못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그 곳의 왕이 된다. 허 균 역시 사회 개혁을 꿈꾸지만 결국에는  

반역 음모로 인해 처형당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두 작품 다 사회 개혁에 대한 작가의  

좌절을 소설 속 이상향으로 도피함으로써 자기 위안을 삼고 있다.

<이생규장전>최랑은 이생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표현한 끝에  
양가 집안 부모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생과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인해 이생과 최랑 부부와 양가 집안사람들이 도망치는 도중에
이생만 살아남고 최랑은 그 자리에서 정절을 지키려다가 결국 도적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최랑처럼 계급 차이를 벗어난 사랑을 하였으며 정절형 인물이라면 춘향이 밖에 없다.
기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춘향은 사대부 집안의 아들인 이몽룡과 자유로운 연애를 한다.
그리고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하게 되어 온갖 고초를 받고 옥에  

가두게 된다. 최랑과 춘향을 통하여 봉건사회의 도덕률을 파괴한 남녀 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용궁부연록>은 주인공 한생이 꿈속에서 용궁에 갖다오는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인간이  

용궁에 갖다오는 작품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심청전>이다. 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용궁, 옥황상제, 선녀는 선(仙) 사상에 등장하는 배경이다.  

그리고 <용궁부연록> 이외에도 나머지 네 작품 속에서도 전체적으로  

유교, 불교, 선 사상이 혼합되어  반영하고 있다. <심청전>도 내용을 살펴보면  

유, 불, 선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심청은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뜰 수 있게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삼백 석을 얻으려면 인당수에  

뛰어들어야 한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여 인당수에 뛰어들게 된다.  

심청의 희생을 통해 조선의 유교 사회에 강조하는 효의 덕목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 앞으로 사주를 하면 신통력으로 눈을 뜰 수 있다는  

말하는 장면에서는 불교적 사상이 드러나고 있다. 

 

 <TV 고전 문학관>이 방영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우리나라 사람들 고전은 잘 안 읽어도 고전을 패러디한 영화나 드라마는 잘 본다.
최근에 개봉했던 <방자전>은 <춘향전>의 등장인물들을 색다르면서도 파격적인 해석을 

시도하여 적지 않은 관객 수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제 슬슬 여름이 시작되면 항상  

TV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전통 귀신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납량특집 드라마  

<구미호>이다. 이번 작품에는 <구미호>의 기본 포맷을 유지하고 있으나 구미호의  

딸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게 되어 방송 전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시도는 좋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던 고전들이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에만 해석의 시도는 해서는 안 된다.  

<금오신화>도 <춘향전>과 <구미호>처럼 귀신과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며  

남녀 간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의 감정과 풍속을 묘사하고 있어서 드라마로 만들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요즘 심야 시간에 90년대에 방영했던 <TV 문학관>이 방영되고  

있다. <신 TV 문학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작년 12월 말에 이문열 원작 <사람의 아들>  

방영 이후로 올해에는 새로운 드라마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마도 또 한 편의 현대  

소설을 각색하여 드라마화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인데 이번 기회에 

<TV 고전 문학관>으로 새롭게 방영하면 어떨까? 역사적인 첫 화는 <금오신화>로  

말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고전을 읽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감도 가져본다.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목록]이 있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henda?Redirect=Log&logNo=108096549 

* '서울대 권장도서' 라고 검색창에 치게 되면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음  

 

관련도서 

<권장도서 해제집>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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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 - 이규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3
이규보 지음, 김하라 편역 / 돌베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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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와 이의 죽음

이규보. 그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학생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작문 교과서이던가,  

한 페이지를 자리잡고 있던 <슬견설(蝨犬說)>이라는 수필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이규보의 지인(知人)이 개가 사람한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봤는데 가엾었더라는 것이다.
그러자 이규보도 아주 조그만 이도 불태워 죽고 있는 게 가엾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의 머리털에 기생하여 피를 뽑는 해충이다.
그런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사람의 손에 의해 죽는 이를 가엾게 여기는 것은 듣는 입장에서는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이규보는 지인에게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논리 있게 설명한다. 
 

 당신의 열 손가락을 한 번 깨물어 보시구려.
 어디 엄지손가락만 아프고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디까?
 한 몸에 있는 것이라면 크고 작은 마디 하나하나에 모두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똑같이 아픈 것이지요. 하물며 하늘로부터
 제각각 숨과 기(氣)를 부여받은 존재로서, 어느 것은 죽음을 싫어하고
 어느 것은 죽음을 좋아할 리가 있겠소?  

 

정말 훌륭한 비유이다.
그리고 논리 전개도 뛰어나다.
하나의 사물(正)에서 부정(反)을 발견하고, 다시 이 부정론을
보다 높은 새로운 사고(合)로 만드는 변증법적 전개를 사용하고 있다.
그의 길지 않은 문장에도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생명체가 크던 작던 다 살려고 하는 생명력이 있으며
더 넓게 말하자면,  

하나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사물과 현상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비록 짧은 문장이지만 이 글의 전개 방식과 교훈이 인상 깊었고,
그 이후로 이규보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생활의 발견

비록 선집이지만 이 책에 소개된
<슬견설> 이외에도 시와 산문들은 참신한 발상과 의미 있는 교훈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 글은 자신이 겪은 생활 속에서 깨달음을 나타나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난 글이지만,  

그의 글들은 기업들이 원하는 경영술을 보기도 하고
사회 현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풍족한 삶을 위한 처세술로 읽기에도 유용하다.

그가 쓴 시의 내용 중에서는
항상 글을 쓸 때 없어서는 안 될 벼루와 몽당 붓에게
공(功)을 인정하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같이 하자는 의리를 보이기 한다.
(p 48. <몽당 붓> & p 254. <조그만 벼루>)
보잘 것 없는 사물일지라도 한 가지라도 유용한 능력이 있으면
인정을 해주는 그의 포용력은
요즘 유명 기업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정(情)을 강조하는 노사관계의 성격을 띄고 있다.
단순히 직원을 ‘회사를 위해 일을 하는 기계’ 가 아닌
‘회사를 위해 일하면서도 가족 같은 임원’ 의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가족이라도, 아니면 친구, 심지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
자신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었다면 칭찬을 해라.
나 자신도 상대방에게 칭찬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은 칭찬을 듣고 나면 마음 속에 있던 고래가 기쁜 마음에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다.

그의 산문 중에는 <온실에 반대한다>(괴토실설 壞土室說, p 172)라는 글이 있다.
이규보는 자신의 자식들이 겨울에도 식물이 자라날 수 있게 온실을 만든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온실을 만드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슬리는 행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자식에게 온실을 허물어뜨리라고 말하고,
만약 자기의 말을 어기면 혼내줄 것이라는 엄한 아버지로써 비춰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중요시하는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즘 전 세계에서 불고 있는 친(親) 환경적인 사회의 기본적인 코드가 비슷하다.
그리고 이규보의 자식이 만든 온실
한창 떠들썩하고 있는 ‘4대 강 사업’ 과 똑같이 느껴진다.
4대 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4대 강 사업으로 인해
환경 오염을 물론 사람의 손을 거치치 않은 순수한 자연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말한다.
만약 이규보가 살아 있다면 그도 4대 강 사업을 반대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슬견설>처럼 하나의 현상을 비유하여 올바른 삶의 방식을 제시한 수필이 많다.
<집을 수리하고 나서>(이옥설 理屋說, p 174)에는 제목 그대로
집을 수리하면서 느낀 것을 쓴 것이다.
이규보의 집은 세 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두 칸은 비가 새나 고치지 못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칸에도 비가 새게 되어 한꺼번에 집을 수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비가 샌 지 오래 된 두 칸은
집을 구성하고 있는 서까래, 기둥, 들보가 썩어서 못 쓰게 되어  

새로운 재료에 많은 돈이 들었다.
반면, 최근에 비가 새고 있는 한 칸의 기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아직 쓸 만 했었다.
결국,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치 않은 결과에 대해서 성찰하게 되는데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번의 잘못을 해도 다시 쓸 수 있는 기둥처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결(結)에는 포괄적으로 ‘나라의 정치’ 도 이와 마찬가지임을 말하면서
당시 민심과 국정에 대한 고려 정치인들의 수수방관(袖手傍觀)적 태도를 꼬집기도 한다. 
 

 

  

 고려의 모럴리스트(Moralist)

그의 글들은 도덕적인 내용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호인 백운거사(白雲居士)가 ‘흰 구름에 사는 선비’ 라는 뜻을 보여주고 있듯이
자연을 사랑했으며 그 감정들을 아끼지 않고 글로 표현했다.
그리고 <슬견설>에서 나온 생명 존중 사상은
작은 해충 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항상 타고 다니던 말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한다.(p 144, <말의 죽음>)
그는 어떻게 보면
고려의 모럴리스트(Moralist)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도덕적 가치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글로
자신뿐만 아니라 당대의 주위 사람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현자(賢者)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출판계에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 많은 처세술 도서에는 분명 좋은 책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많은 책들 중에 가치가 있고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을 찾기가
백사장에 바늘 찾기이다.
넓은 서점에서 그런 책을 찾는 것은 오히려 시간낭비일뿐이다.
차라리 우리나라 옛 위인들의 옛 글을 읽는 것이 났다.
옛 선인들의 글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들의 관록(貫祿)이 묻어나 있다.
그리고 읽는 사람 맥 빠지게 사례의 장괄설을 펼치다가 마지막에 결론짓는  

요즘의 처세술 도서보다는
참신한 비유와 사례로 콕 집어 말하는 옛 선인들의 글 속에서
우리가 알기를 원하는 처세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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