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두 명의 여성과 세 명의 남성이 어느 한적한 곳에 모여 식사한다. 특이하게도 두 명의 여성은 윗옷을 벗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활동한 초현실주의자들이다사진 제목은 소풍이다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무쟁(Mougins)이라는 도시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왼쪽에 있는 사람은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와 그의 연인 마리아 벤츠(Maria Benz)그녀는 곡예사로 일하다가 엘뤼아르를 만나 모델로 활동했다본명보다 누쉬(Nusch)’라는 별명이 알려져 있다오른쪽에 영국의 화가 롤런드 펜로즈(Roland Penrose)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모델 아드리엔 아디’ 피델린(Adrienne ‘Ady’ Fidelin)이 있다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 사진작가로 활동한 리 밀러(Lee Miller)그녀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초상 사진을 주로 찍었다.
















* 알랭 드 보통 불안(은행나무, 2011)




리 밀러의 사진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불안에 실려 있다. 사진 제목이 풀밭 위의 아침 식사로 되어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 나오는 옷 입은 남성과 상반신을 드러낸 여성들을 따라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사진의 구도는 마네의 그림과 흡사하다. 소풍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사진은 여러 점이 있다. 윗옷을 벗은 채 소풍을 즐기는 리 밀러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있다.


초현실주의자는 세상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예술가다. 초현실주의자 대다수는 남성이다. 이들은 기성 사회의 도덕적 가치와 규범에 저항하는 에로틱한 욕망의 힘에 주목했다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에로티시즘과 연애를 이성의 억압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혁명의 과정으로 인식했다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지향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도 성 해방 운동에 동참했다. 하지만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이 실질적으로 누린 자유는 한정되었다.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여성 초현실주의자를 창작 활동에 영감을 주는 모델이자 뮤즈(muse)로 여겼다. 그들은 또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실현해주는 보조적이고 수동적인 아이 같은 여성(femme-enfant)’을 선호했다.


리 밀러의 사진만 보고, 여성 초현실주의자를 성에 개방적인 여성이라든가 연애 지상주의자로 규정해선 안 된다. ‘아이 같은 여성이미지는 남성 초현실주의들의 창작 활동을 도와주고, 그들의 성적 욕망에 순순히 응해주는 비현실적인 존재이다.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남성 초현실주의자가 허락한 자유와 예술에 동의하지 않았다그녀들은 아이 같은 여성’, ‘뮤즈’, ‘남성 예술가의 아내이자 연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했으며 자신을 예술가로 인식하면서 살아왔다.

 



















* 데즈먼드 모리스, 이한음 옮김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을유문화사, 2021)

 

* 소피 들라생 달리의 연인 갈라: 광기 어린 사랑과 예술혼(마로니에북스, 2008)

 

* 도미니크 보나 세 예술가의 연인: 엘뤼아르. 에른스트. 달리, 그리고 갈라(한길아트, 2000)





동물학자로 잘 알려진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초현실주의자들과 친분이 있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가 쓴 책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은 초현실주의자들의 특이한 연애사를 보여준다초현실주의자들의 연애는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별나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는 절친한 동료인 엘뤼아르의 아내 갈라(Gala)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녀와 함께 잠적하기도 했다. 갈라는 엘뤼아르와 이혼하고(얼마 지나지 않아 엘뤼아르는 마리아 벤츠와 결혼했다) 달리와 함께 살았다. 갈라는 엘뤼아르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함께 동거하기도 했는데, 에른스트는 피카소(Pablo Picasso) 못지않게 여성 편력이 심한 화가이다. 그는 여성 초현실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성과 사귀기도 했다.


모리스의 책에 따르면 에른스트가 마리 베르트 오런키(Marie-Berthe Aurenche)[주1]라는 십 대 소녀와 연애를 하자, 이 사실을 안 소녀의 부모가 에른스트를 고발했다. 하지만 에른스트는 부모의 반대를 무시한 채 그녀와 함께 도주했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런데 에른스트의 애정 행각에 소녀의 부모만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롤런드 펜로즈의 아내였던 발랑틴 부에(Valentine Boué)는 에로티시즘과 이성애에 초점을 맞춘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여성관에 반대한 초현실주의자. 그녀는 에른스트를 독선적인 성차별주의자라고 비난했고, 에른스트와 친한 롤런드가 못마땅했다발랑틴은 에른스트와 오런키의 연애에 반대했으며 소녀의 보호자로 자처했다.

















* 파이돈 편집부, 리베카 모릴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을유문화사, 2020)

 

* 휘트니 채드윅 뮤즈에서 예술가로: 이제는 역사가 된 초현실주의의 여성들(아트북스, 2019)

 

* [No Image, 절판] 휘트니 채드윅 쉬르섹슈얼리티: 초현실주의와 여성 예술가들 1924~47(동문선, 1992)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은 남성 초현실주의자의 업적에 가려진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삶과 우정을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업적을 발굴한 미술사가 휘트니 채드윅(Whitney Chadwick)뮤즈에서 예술가로는 모리스가 지나친 부분을 보완해준다1992년에 쉬르섹슈얼리티: 초현실주의와 여성 예술가들 1924~47라는 책이 번역되어 출간된 적이 있다. 뮤즈에서 예술가로쉬르섹슈얼리티의 증보판이다. 사실 쉬르섹슈얼리티는 원제와 거리가 먼 제목이며 정식 용어가 아니다. 책의 역자가 임의로 정한 제목이다. 번역본에 오자가 상당히 많다.


여성 예술가 인명사전인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에서 이름만 언급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리 밀러, 소피 토이버(Sophie Taeuber-Arp)[주2], 케이 세이지(Kay Sage)이 포함되어 있다

 



[1] 뮤즈에서 예술가로》에 표기된 이름은 마리 베르트 오랑슈.


[2]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에 표기된 이름은 소피 토이베르 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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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친 - 예술가의 친구, 개 문화사
수지 그린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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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개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반려동물이다이제는 인간과 함께 사는 개를 가족 구성원’으로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인류의 조상은 사냥에 함께 나선 용맹스러운 가족 일원인 개를 기억하기 위해 그의 모습을 벽화에 남겼다. 개와 함께 살았던 예술가들은 개의 모습이 담긴 초상화를 그렸다. 어떤 화가는 개와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이처럼 개가 등장한 예술작품은 아주 오래전부터 맺어지기 시작한 인간과 개의 친밀한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개를 가족이 아닌 애완동물로 여긴 인간은 특정 품종의 개를 개량했다. 우리가 귀엽다고 느껴지는 개의 생김새는 인위적인 개량을 거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그려진 개의 초상화는 인간에 의해 개량되기 전 개의 생김새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史料). 이런 시각적 자료를 그저 개를 너무 좋아하는 화가가 남긴 희귀한 작품으로만 볼 수 없다. 


나의 절친(Dogs in Art)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그리고 동서양 예술가들이 묘사한 개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애견인이라 자부하는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화집이 아니다저자는 개가 예술작품의 엑스트라에서 당당히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적 변화의 과정을 주목한다개를 소중하게 여긴 예술가들은 개를 말 못 하는 동물이 아닌 몸짓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인류의 친구이자 가족으로 생각했다. 개의 초상화나 조각 작품 속에 소중한 존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반영되어 있다.


걸작의 기준을 깐깐하게 보는 평론가의 눈에는 예술작품 속의 개가 미물로 보일 것이다. 미술사의 한쪽을 장식하는 거장이 만들었다고 해도 평론가들은 미물의 모습을 묘사한 거장의 작품을 외면한다하지만 개를 유달리 좋아하는 예술가들은 그런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은 개가 등장하는 특별한 걸작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예술가들은 미물이 아닌 자신만의 소중한 보물’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보게 될 후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랐을 수 있다. 그들은 죽어서도 자신의 보물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 친구이자 가족을 봐주세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죠?”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24





골리아 갈리아(Gallia)



[주1] 갈리아 인은 현재 프랑스와 벨기에 일대,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 살았던 민족이다. (Gaul)이라는 이명도 있다. ‘Gallia’의 한글 표기명은 갈리아.

  




* 275

 

 개는 보나르가 칸에 고립되기 전부터 마르트와 함께 사는 집에서 빠져나갈 많은 이유와 핑계를 찾아주었다. 산책을 데리고 나갔고, 산책하러 나가 카페에서 가까운 친구들을 만났다. 알프레드 자리(보나르는 자리의 희곡 속 괴물 같은 주인공 페르 우부[2]의 모습을 드로잉으로 100여 점을 그렸다)도 그중 한 친구였다.

 


[2] 프랑스어 발음에 따른 한글 표기명은 위뷔또는 위비.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의 희곡 제목은 ‘Ubu roi’다. 위뷔 왕(동문선, 2003)’위비 왕(연극과인간, 2003)’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페르(Père)는 아버지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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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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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털 없는 원숭이(문예춘추사, 2020)를 쓴 영국의 동물학자다털 없는 원숭이는 인간을 뜻한다. 모리스는 이 책에서 인간이 지구상 가장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친척인 영장류처럼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해온 동물로 규정한다모리스의 또 다른 직업은 화가다. 초현실주의자들과 친분을 맺은 모리스는 동료 예술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림들을 그렸다. 1948년에 초현실주의적 그림들을 전시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은 동물을 관찰하는 동물학자가 아닌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한 화가들을 지켜본 최후의 초현실주의자의 입장에서 쓴 책이다초현실주의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로 프랑스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24년에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초현실주의 선언(미메시스, 2012)을 발표하여 과거와 결별하는 예술 사조의 등장을 알렸다. 브르통이 주도하여 결성된 초현실주의 예술가 집단은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면서 살았던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저마다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다.


은밀한 매력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서른 두 명의 초현실주의자들의 사생활을 보여주고 있다초현실주의자들은 자유와 예술과 사랑을 동시에 지향한 예술가였다. 이들 대부분은 자유 연애를 선호했으며 동료 예술가의 아내와 사귀거나 동침하는 것에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차례 전쟁을 겪은 초현실주의자들은 사랑과 자유만이 암울한 현실에 짓눌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기행을 일삼은 초현실주의자들은 때론 경솔하고 무례하게 비치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일상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초현실주의자들 중에 여성은 총 다섯 명이다하지만 책 속에 엑스트라 급으로 나오는 여성 초현실주의자들도 주목해야 한다모리스는 서론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을 분류하면서 회화와 조각 작품을 남기지 않은 초현실주의자와 초현실주의 사진가를 제외했다고 밝혔다. 그렇다 보니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의 아내 누쉬(Nusch), 피카소(Pablo Picasso)가 사귄 여인 중 한 사람인 도라 마르(Dora Maar), 리 밀러(Lee Miller)에 대한 언급이 적다. 도라 마르와 리 밀러는 사진작가다. 두 사람 모두 동료 초현실주의자들의 초상 사진을 찍었다. 특히 리 밀러는 종군 사진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아무래도 지면의 제약 때문인지 모리스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활동한 소피 토이버(Sophie Taeuber-Arp), 발렌틴 위고(Valentine Hugo), 자클린 랑바(Jacqueline Lamb), 케이 세이지(Kay Sage)를 비중 있게 소개하지 않았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초현실주의적 작품들을 남긴 화가인데다 자클린 랑바와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 책에 그녀의 이름만 잠깐 나올 뿐이다. 실제로 칼로는 자신을 초현실주의자로 규정한 브르통 면전에서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래도 칼로가 초현실주의자와 교류를 맺은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360

 

 한 친구[]가 미술 모델이자 피카소의 또 다른 상대인 제르맹 피쇼에게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연애가 잘 풀리지 않자, 상심한 그는 결국 혼잡한 식당에서 제르맹을 총으로 쏘았다.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고 착각한 그는 자기 머리에 총을 겨누고 쏘았다. 그는 그날 밤에 사망했다.



[주] 젊은 시절 피카소의 죽은 친구는 카사헤마스(Carles Casagemas). 카사헤마스는 발기부전을 앓고 있었고, 제르맹 피쇼(Germaine Pichot)와의 연애가 잘 되지 않자 우울증을 앓았다. 1901년 제르맹을 포함한 몇몇 친구들이 모인 저녁 식사 중에 카사헤마스는 제르맹에게 자신과 결혼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제르맹이 거절하자 카사헤마스는 그녀를 향해 총을 쐈다. 다행히 총알은 빗나갔고, 카사헤마스는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피카소는 죽은 친구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으며 1904년까지 어두운 청색 위주로 그림을 그렸다. 뛰어난 초기 걸작들이 나온 시기(1901~1904년)를 청색 시대라고 부른다.





* 407







롤론드 펜로즈 롤런드 펜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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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2 2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현실주의라니 왠지 제 취항일거 같은데 그림에는 전문지식이 제로여서 😅
저 그림은 글을보니 좀 섬뜩하네요 ㅡㅡ

cyrus 2021-09-03 21:49   좋아요 1 | URL
몽환적이면서 조금은 으스스한 분위기가 나는 초현실주의 그림을 좋아해요. 그래서 마그리트와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을 가장 좋아해요. 초현실주의 그림은 해석할 필요 없어요. 그림을 보고 느끼면 돼요.. ㅎㅎㅎ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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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체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외국 문학에 대한 관심의 범위가 넓은 독자라면 체코를 대표하는 또 다른 작가로 카렐 차페크(Karel Capek)를 언급할 것이다체코의 유명한 음악가는 드보르자크(Dvořák)스메타나(Smetana). 그렇다면 체코의 유명한 화가는 누굴까? 동화 작가로도 활동한 삽화가 요제프 라다(Josef Lada)는 체코인이 사랑하는 화가이지만,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한 가지 사실을 덧붙이자면, 카렐 차페크의 형 요제프 차페크는 화가 겸 삽화가다. 요제프는 카렐의 책에 실린 삽화를 그렸다)세계적으로 유명하면서도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체코의 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그동안 무하는 화가 또는 예술가가 아닌 장식 미술가’, ‘포스터 제작자로 알려졌다그는 프랑스의 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가 출연한 연극들의 포스터를 제작해 유명해졌다파리의 대중은 우아한 모습으로 포스터에 그려진 인기 배우에 열광했다. 무하가 묘사한 여성은 고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여기에 간결한 곡선과 화려한 무늬를 더해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하의 장식 디자인19세기 말 파리에서 유행한 예술 양식인 아르누보(Art Nouveau) 운동에 힘입어 큰 인기를 끌었다사실 무하가 아르누보 운동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하의 장식 예술은 아르누보 양식의 흔한 소재 중 하나인 구불구불한 덩굴처럼 뻗어 나가 장신구와 실내 장식품에까지 확장되었다하지만 아르누보 열풍이 식으면서 무하의 장식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줄어들었고, 그의 작품들은 순수 미술을 선호하는 미술사가로부터 외면을 받았다포스터가 워낙 유명해서 무하는 당대의 유행을 잘 따른 장식 예술가나 디자이너로만 알려졌다. 그렇다 보니 그가 장식 미술가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화가로 활동했고, 말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역사화를 제작한 사실은 주목받지 못했다.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식 예술가로서의 무하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박물관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예술을 일상으로 스며들게 만든 화가 무하의 재능에 주목한다세기말의 유럽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예술 그 자체를 최우선의 가치로 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했다. 그렇지만 무하는 사람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으며 대중의 취향을 반영한 그림과 디자인을 제작했다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대중, 특히 무하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그의 그림에 한 눈에 반하는 순간 좋아하게 된다. 이미 무하의 그림을 좋아하고 있었던 마니아들은 무하가 널리 알려진 추세에 기분이 좋아서 무하호!(Mucha+좋을 호 )’를 외치고 싶을 것이다. 무하는 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고국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았다. 체코로 돌아온 그는 계속 창착열을 발산했으며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은 슬라브 서사시제작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겼다.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2012년에 출간된 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의 개정판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17년에 매혹적인 선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알폰스 무하라는 책을 펴냈는데 직접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이번에 나온 책과 비슷해 보인다그런데 개정판답지 않게 오류와 어색한 문장이 있다. 책의 주제와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저자가 구판의 문장을 손보지 않고, 책 제목과 표지만 바꾼 채 그대로 출판했다면 책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 55


 그는 파리에 와서야 비로소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베를렌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1886장 모레아(Jean Moréas) 발표한 상징주의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나비파(Les Nabis, 형제애라는 히브리어에서 유래)를 형성한 보나르(Pierre Bonnard), 드니(Maurice Denis), 랑송(Pail Ranson)과 같은 젊은 화가들과의 교류는 신비주의적이며, 비의적인 관심을 고조시켜, 원래 초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무하의 작품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게 된다.

 

 

장 모레아가 발표한 상징주의장 모레아스가 발표한 상징주의 선언이라고 써야 한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모레아스는 1886년에 상징주의 선언(Le Symbolisme)<피가로>에 기고하면서 상징주의의 예술적 정의를 처음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나비파나비(Nabi)’예언자를 뜻하는 히브리어다. ‘Pail’‘Paul()’의 오자.

 


 

* 172

 

 무하의 보석 디자인은 간소하고 기능적이기보다는 복잡하고 화려하고 이국적이다. 그는 보석 디자인은 보석 자체의 세공보다는 상아나 색깔이 있는 보석과 돌, 에나멜, 혹은 직접 그린 그림 등의 다양한 재료를 금테에 둘러 좀 더 복잡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데 주목했다. 그것은 새로운 보석 디자인의 개념이었다.

 

 

보석 디자인은이라는 표현을 삭제해야 문장이 자연스러워진다.

 


 

* 294

 

 1866 장 모레아의 상징주의 선언 이후 젊은 세대들은 말라르메와 보들레르, 베를렌과 빌리에 드 릴아당의 시에 열광했고 다들 집단 신경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냉소주의와 비관주의에 빠져들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상징주의 선언이 발표된 해는 1886이다.

 

 


* 319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동백꽃 부인의 마르그리트는 퇴폐를 상징하는 자유분방한 미인이었고 [중략]

 

 

몬테크리스토 백작, 삼총사를 쓴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도 작가다. 동백() 아가씨로 번역되기도 하는 춘희를 썼는데, 아버지와 아들 모두 이름이 같다. 그래서 아버지 뒤마를 뒤마 페레(Alexandre Dumas père)’ 또는 () 뒤마, 아들 뒤마를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또는 () 뒤마로 표기한다. ‘대 뒤마소 뒤마는 일본식 표기다. 춘희’는 원작의 일본어 제목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삼총사의 작가를 알렉상드르 뒤마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춘희의 작가 이름을 뒤마 피스라고 표기해야 한다. 그리고 춘희의 우리말 제목은 동백꽃 부인이 아니라 동백꽃 아가씨. 파리 사교계에 동백꽃 아가씨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마르그리트는 자신을 후원하는 귀족들을 애인으로 만났을 뿐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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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17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저도 읽었는데 지적해주신 부분 하나도 모르고 읽었어요. ㅠ.ㅠ
무하의 그림 스타일이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책의 서술 자체도 그렇게 공감이 가지는 않더라구요. 그랟 무하의 그림을 한꺼번에 엄청 많이 도판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좋았던 거 같아요.

cyrus 2021-05-19 20:38   좋아요 0 | URL
저도 무하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지만(말년에 그가 그린 역사화는 그냥 묻히기 아까운 걸작이라고 생각해요), 예전부터 재평가를 받기 시작한 화가인데다가 국내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 - 대한민국 1호 도슨트가 안내하는 짜릿한 미술사 여행
김찬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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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미술 입문자는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한다. 그들은 미술이라는 이상한 세계에서 헤매는 앨리스(Alice)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앨리스는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웃는 체셔 고양이(Cheshire cat)를 만난다. 그녀는 고양이에게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소연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중에서, 182

 


앨리스: 죄송하지만 제가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체셔 고양이: 그건 네가 어디에 가고 싶은 건지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앨리스: 어디든지 저는 별로 상관없어요.


체셔 고양이: 그러면 어느 길을 가든 문제없어.




앨리스와 체셔 고양이의 대화는 독자에게 자유와 용기, 모험을 독려하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과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그림을 보고 즐길 수 있다. 그림을 보는 것은 눈으로 캔버스에 들어가 모험을 하듯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행위다. 14년 차 전시 해설가가 쓴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미술에 관심 있는 애호가나 미술에 다가서고 싶은 입문자를 위한 교양서. 저자는 이상한 미술 세계의 앨리스들에게 편안하게 그림을 감상하라고 권한다.



* 29

 

 미술관에서 작품을 안내하거나 강단에서 미술 관련 강의를 하다 보면 미술사 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질문을 받곤 합니다. 이 질문에 저는 한결같이 답변하죠. 어디든 상관없으니, 좋아하는 데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저자는 미술을 좋아하는 만큼’ 그림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동안 미술 입문자들은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구절을 만나면 기가 죽었다. 미술사를 알아야 그림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저자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트 내비게이션이 된 저자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인상주의, 야수파, 입체주의, 개념미술, 현대미술을 안내한다인상주의는 미술을 본격적으로 이해하는 데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미술사조다. 그렇지만 그림을 볼 용기가 있으면 저자의 안내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미술 세계를 모험하는 일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에서 시작하면 된다.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은 미술이 무엇인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에게 유용한 책이. 하지만 부족한 점도 있다. 이 책에 언급된 여성 예술가는 총 여섯 명이다.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신디 셔먼(Cindy Sherman), 니키 리(Nikki S. Lee),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세라 루커스(Sarah Lucas). 저자가 비중 있게 소개한 예술가는 신디 셔먼과 니키 리다. 나머지 네 명은 이름만 언급되었다. 호기심이 많은 독자와 미술 애호가는 그들이 누군지 알아보려고 한다그러나 대다수는 전시 해설가의 안내에 열중하기 때문에 예술가 이름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예술가 약력이 없는 저자의 안내가 아쉽다. 이름만 언급된 남성 예술가들도 있다. 책에 이름만 나온 예술가들이 누군지 간략히 알려주는 주석이나 인명사전 형식의 부록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저자는 1911년에 일어난 모나리자도난 사건에 대한 비화를 알려주는데, 그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절도 용의자로 지목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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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20세기 천재 예술가로 이름난 파블로 피카소가 용의자 중 하나로 지목되었기에 언론에서도 대대적인 보도가 이어지며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비서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훔친 이베리아 조각상을 아폴리네르의 친구였던 피카소에게 팔았고, 이러한 이력이 발각되면서 피카소가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던 거죠.

 사건 발생 28개월 만에 이탈리아 출신의 빈센초 페루자가 진범으로 밝혀졌고 <모나리자>는 다시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피카소 역시 누명을 벗게 되었고요.



이 이야기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 빠졌다. 실제로 모나리자도난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피카소와 아폴리네르였다. 피카소는 용의자로 의심만 받고 금방 풀려났지만, 아폴리네르는 부당한 판결을 받아 억울하게 6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다행히 그도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언론은 아폴리네르를 불법 체류자라고 주장하는 악의적인 기사를 냈으며, 실제로 파리 경시청은 아폴리네르의 추방을 논의하기도 했다아폴리네르는 비서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인생이 한 번 꼬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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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21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는 있지만 더 좋아하게 되려면 역시 선생님들의 안내가 필요하더라구요. ^^ 그래서 이런 책들이 끊임없이 출판되는 거겠죠.

cyrus 2021-03-24 10:10   좋아요 0 | URL
미술 입문자가 자전거를 처음 타기 시작한 아이라면, 도슨트는 그 아이를 도와주는 부모와 같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도슨트의 안내에 의지해야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미술이 점점 좋아지면 혼자서 즐길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