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 - 신자유주의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누가복음 23:44)

 

 

 

세월이 지나면 경제를 이끌어가는 사상도 변한다. 경제학이 학문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던 300년 전의 중심 사상은 시장 자유주의였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만 한다면 필요 이상으로 생산이 늘어나는 일도 없어지고, 당연히 심각한 불황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시장 지상주의를 믿던 경제학이 치명적인 일격을 맞았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쏟아져 나와 가격이 내려갔지만 기대와 달리 소비가 늘어나지 않았다. 공황의 여파로 이미 소비자의 구매력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었고, 시장도 전혀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유례없는 경제 공황 앞에 모든 국가는 저마다의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은 시장의 기능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때 시장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 정부의 역할이었다. 정부가 경제 각 부분을 적절히 통제하면 심각한 경기 침체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힘도 한계를 드러냈다. 정부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시장 지상주의를 그 바탕으로 한다. 정부는 완전 방임 상태를 추구한다. 소득 재분배는 물론, 복지 정책도 정부의 역할에서 배제된다. 다시 시장에 대한 믿음이 부활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주목받으면서 시장이 부활했지만, 어두운 그림자도 남겼다. 대표적인 문제가 빈곤불평등이다.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되자, 이것을 가지지 못한 집단은 절대적인 가난에 시달렸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가장 바람직한 경제사상으로 행세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앞잡이들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경제 강대국들이 자유무역 중심의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해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개발도상국들이 이 원리를 따라야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과연 옳은 것인가.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바로 이런 상식과 통념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허구적 위상을 폭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상처받은 자본주의를 치유하고자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시장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을 치밀하게 해부하면서 신자유주의 찬양론의 문제점을 드러내 보여준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자유무역 중심의 시장경제 원리를 채택해서 경제가 좋아진 선진국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 신자유주의의 앞잡이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경제 강대국 중 하나인 미국은 건국 초기 시절에 자국 기업을 보호했고,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다.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산업육성을 위해서는 보호무역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치산업을 보호하고자 관세장벽을 쌓아 올리고, 각종 산업 보조금 제도를 도입했다. 장차 성장 잠재력은 있지만, 지금 당장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니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보호해줄 필요가 있는 산업이 유치산업이다. 경쟁력이 갖추어진 다음에 자유무역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해밀턴의 유치산업 보호론의 핵심이다. 이 이론은 18세기 당시 유럽보다 산업 분야의 국제경쟁력이 뒤처지고, 자본을 수입해야 했던 미국의 입장을 철저히 반영한 것이다.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성공한 나라는 미국뿐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창시자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을 포함한 여타 선진국들도 지금은 후진국들에 자유무역과 외국인 투자 개방을 설교하고 있지만, 그들이 후진국이었을 때는 보호무역을 하고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다. 그런데 보호무역주의를 이끌었던 미국이 20세기 중반 이후 패권을 잡자 자유무역주의의 전도사가 됐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산파역을 했다. 세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잇달아 맺었다. 장 교수는 개발도상국들에 다가가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장점을 설파하는 선진국을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비유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한 남자를 도와주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는 신자유주의라는 강력한 무기를 내세워 개발도상국의 경제 자유화를 요구한 사악한 삼총사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나온 지 벌써 십 년이나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극복을 이유로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 없이 도입했다. 국유화와 복지정책은 무조건 나쁘고, 민영화와 무한 경쟁사회는 무조건 좋다는 인식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경제 강대국(미국)을 주축으로 한 자유 시장 교리가 오랫동안 지배해 온 탓이다. 장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10주년 특별판 서문에서 신자유주의는 아직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의 앞잡이이자 희생자로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에서는 이 책을 비판하는 자유 지상주의자들의 견해가 있었고, 놀랍게도 반미, 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불온 도서로 지정된 적도 있다. 이 책에 찬사를 보내든 비난을 하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사회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흐름 한가운데에 있으며,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이 거침없는 흐름에 너무 무감각한 것이 문제이다.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에 철저히 순응한 개인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면서 타인으로부터 고립되는 비참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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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9-06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 정부에서 새롭게 다시 나왔네요. ^^
예전 정부에서 대표적 불온서로 낙인 찍힌 책....^^ 그나마 세상이 약간 좋아진 듯 합니다. ^^

cyrus 2018-09-07 19:43   좋아요 1 | URL
80년대에는 금서를 숨어서 몰래 읽었다면 요즘은 ‘금서목록=베스트셀러‘입니다. 장 교수의 책은 금서로 지정된 이후에 더 많이 팔렸죠. ^^
 
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
댄 애리얼리 외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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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과연 사람들은 언제나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행동을 할까?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항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경제인(Homo economicus)이라 가정해왔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공짜로 생긴 돈을 한 번에 탕진할까? 왜 현금보다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할 때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는 것일까? 많은 경제학자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에서 어떤 합리성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경제는 개개인의 행동 집합체지만, 종잡을 수 없고 정답도 없다. 인간은 꼭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비이성적 인간, Homo irrationalis) 인간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 역시 반드시 합리적이지는 않다. 심지어 경제학자들도 실제 소비생활에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소비하고, 지출하고, 투자하고, 저축하고, 돈을 빌릴 때 어떻게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을 내리는지를 설명한다.

 

MIT미디어랩의 행동경제학 전공 교수이자,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연구원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경제 주체는 늘 합리적인 존재’라는 기존 경제학의 대전제에 관한 근본적 회의감을 논리적이고 참신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는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다양한 책을 발간해 행동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였다. 이번에 나온 책은 ‘돈 잘 쓰는 법’에 관한 것이다. 제목만 봐도 흥미롭지 않은가. 《부의 감각》(청림출판, 2018)은 풍부한 사례와 실험들을 통해 사람들 대부분이 잘못된 지출 습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인간이 얼마나 충동적이며,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돈을 쓰는지 귀신같이 잡아낸다.

 

어떤 일을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할 다른 일의 경제적 이득을 경제학에선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고 한다. 합리적인 경제인은 기회비용을 따져 행동한다고 경제학 교과서는 설명한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은 늘 기회비용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돈을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잘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돈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분파’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돈을 쓰고, 과거에 돈을 썼던 일에 후회하면서 힘들게 살아간다. 인간의 ‘소비’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부의 감각》은 돈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그 상황에 작동되는 10가지 힘을 설명한다. 이 10가지 힘은 일상 속에 겪게 되는 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 서평에서는 간략하게 4가지만 언급하겠다.

 

인간은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면, 편익과 가격을 비교해 자신에게 가장 많은 편익을 주는 상품을 구매한다. 만약 할인된 가격의 상품이 있으면 소비자는 그 제품의 정상가격을 비교하여 소비를 할지 말지 결정한다. 이처럼 비교하기 쉬운 대상을 서로 비교하며 선택을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심리적 편향(상대성 편향)의 한 종류다. 즉, 인간은 선택의 대상을 비교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교하기 쉬운 대상만 비교한다. 가격할인은 소비자의 선택 판단 과정을 단순화시켜버린다.

 

기업들이 재무제표에서 각 계정을 통해 돈을 관리하고 운용하듯이 인간도 마음속에 회계장부를 두고 돈을 관리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회계’라고 부른다. 돈이 어디서 나오고, 어디에 저축돼 있으며,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돈을 다르게 생각한다. 심리적 회계는 저축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저축하려면 급여에서 일부를 미리 떼놓으면 된다. 지출을 다 마친 뒤에 남는 돈을 저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적 회계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심리적 회계는 때로는 불리하게, 때로는 유리하게 작동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똑같이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쓰는 순간부터 심리적 회계를 은연중에 가정한다. 돈의 가치는 다 같은데도 일해서 번 돈은 생활비로 쓰고, 공짜로 받은 돈은 유흥비로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적 회계가 인간을 통제하게 되면 돈을 각각 다른 지갑에 넣고 지갑마다 다른 규칙을 적용하면서 쓸려고 한다.

 

인간의 비합리적 소비는 자기 과신에서도 온다.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가 기준점이 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닻 내림 효과)라고 한다. 자신의 판단 능력을 과대평가하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뿐만 아니라 기회비용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소유효과(endowment effect)는 자신이 가진 물건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 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물에 강한 애착을 느낄 때 생긴다.

 

저자는 비합리적인 소비 행동에도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사람은 돈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이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헛되이 쓰는 실수를 줄일 수 있을까. 소비를 합리적으로 잘하는 것은 그만큼 소비 과정에서 신중한 의사결정 능력이 필요하다. 필요와 욕구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최종 구매 결정 이전에 기회비용에 대한 고려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품을 구매하기 전에 그 상품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본인에게 얼마나 주어지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부의 감각》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너무나도 쉽게 돈을 쓰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한마디로 인간의 소비 행위의 이면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책 제목만 보고, 행동경제학의 권위자가 ‘부자 되는 법’을 알려줬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제목에 대한 과신은 금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자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돈을 똑똑하게 쓴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전보다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 돈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즐겁게 살고 싶으면 돈을 쓰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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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8-07 18:23   좋아요 0 | URL
책을 사고난 뒤에 후회할 때가 있어요. 중고매장에 책을 사고나면 며칠 뒤에 진짜 읽고 싶은 책이 매장에 있어요. 그래서 책 살 때마다 돈을 펑펑 쓰게 돼요.. ㅎㅎㅎ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0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이비에스다큐영화제에서 거짓말에 관한 다큐에 출연하신 거 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도 인상적이었는데(거짓말의 기제에 대한 거였는데 거기서도 인간은 비합리적 존재임을 강조했던 거 같아요) 이 책도 굉장히 읽고 싶네요. 이런 비합리의 바닥에는 손해를 보기 싫다, 쾌락을 중시하겠다는 나름의 합리적(?)규칙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구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8-08-07 18:24   좋아요 1 | URL
메모수첩님이 언급하신 내용은《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책에 나올 거예요. 이 책도 흥미진진합니다. ^^
 
노동의 미래 - 디지털 혁명 시대, 일자리와 부의 미래에 대한 분석서
라이언 아벤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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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주변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다. 세계의 어느 국가도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컫는 디지털 혁명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인공지능의 확산 등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은 경제는 물론 의식구조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몰아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누가 먼저 어떻게 적응하고, 더 나아가 주도권을 쥐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시류를 잘 타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하게 될 문제다. 디지털 혁명이 우리 사회에 미칠 효과에 대해서는 낙관과 비관으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분명한 전망을 내리기가 힘들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지적했듯이 첨단 과학기술 시대의 도래로 세계 노동력의 단지 5%만 필요하게 되는 시대가 현실이 된다면 그 이후의 혼란은 충분히 예상된다.

 

<이코노미스트> 수석 편집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라이언 아벤트(Ryan Avent)《노동의 미래》(민음사, 2018)라는 책에서 밝지만은 않은 미래의 부와 노동환경을 전망한다. 산업혁명은 대혼란과 오류, 일자리의 감소 등을 수반한다. 이런 혼란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기술기반 경제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디지털 혁명이 19세기 산업혁명의 발전 과정처럼 흡사하게 진행될 거로 주장한다. 산업혁명 이후 전통적인 경제에서는 노동 · 원료 등 요소 투입량의 차이에 의해서 경제적 격차가 발생했지만, 디지털 경제에서는 ‘희소성이 높은 자원’, 즉 경제적 가치가 놓은 기술 소유의 차이가 소득 격차를 급격히 증대시켜 부의 양극화를 가져온다. 소규모의 기업이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 발전에 많은 투자를 할 것이고, 경제시장에서 ‘승자 그룹’이 되어 부를 축적하게 된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19세기 산업혁명에 비견되는 정보혁명이 산업구조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지식사회의 서막이라고 진단했다. 농업혁명의 시대에는 자기 힘으로 물건 하나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어도 비옥한 토지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부를 창출할 수 있었겠지만, 디지털 경제에서는 자신의 지식과 정보 능력이 없으면 더 이상의 부를 창출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부를 유지하기도 힘들게 된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만 있으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많은 사업기회를 발견할 수가 있다. 하지만 ‘노동력 과잉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면 고도로 숙련된 소수의 지식근로자만 일을 수행하고, 수많은 노동자는 저임금을 받거나 일자리를 잃는다. 아벤트는 자동화세계화,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의 생산성 향상으로 노동력 과잉의 시대가 온다면 노동력의 경제적 · 정치적 영향력은 낮아지고, 희소성 높은 자원의 소유주들은 막대한 부를 독점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디지털 혁명이 조성하는 노동력 과잉에 따른 경쟁 및 갈등소득 분배의 불균형 문제는 향후 풀어야 할 전 지구적 차원의 도전 과제다. 저자는 전 세계의 일반적인 숙련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향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류는 이미 과거 산업혁명을 통해 깨달은 경험이 있다. 혼란스러운 정치적 변화를 겪은 뒤에야 인간의 삶을 보다 개선하는 진보적인 사회운동이 전개되었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도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재분배를 논의하는 장이 형성될 것이라면서 저자는 낙관적으로 예측한다. 그런데 실물경제의 침체로 하루하루를 답답하게 살아가는 ‘서민’ 독자 입장에선 전문가의 낙관이 속 터지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우리 사회의 주변부는 변화를 요구하지만, 핵심으로 갈수록 고여 있는 물 같다. 부를 독점하는 소수의 권력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만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기회균등, 공정한 경쟁, 공평한 분배와 같은 얘기는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이들의 응석쯤으로 비친다. 디지털 혁명 시대가 코앞에 있는데도 자신이나 자녀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 Trivia

 

 

 

 

책 앞날개 저자 소개 문구에 보면 ‘수적 편집자’라고 표기된 오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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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29 18:24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보면 저자는 기계가 일자리를 대신하는 시대에 노동단체의 교섭권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아무래도 일자리 뺏긴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많아지면 노동조합들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 같습니다.
 
선택 가능한 미래
비벡 와드와.알렉스 솔크에 지음, 차백만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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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이 되든 비관이 되든, 분명한 사실은 인공지능과 로봇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침투해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기술의 발달로 영향받게 될 것이고, 이와 같은 상황은 커다란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초인공지능(super intelligence)이 금방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아직도 대부분 과학자, 철학자는 이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로봇에 인공지능을 부여하는 일은 인류 발전의 마지막 관문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을 잘만 이용한다면 우리 생활은 더 편리해질 수 있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하듯이, 인공지능 기술에도 그림자가 어려 있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과 같은 미래 비관론자들은 기계 자동화의 확산과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인해 사람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회사와 공장들이 속속 세워지리라 전망한다. 리프킨이 주장했듯이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이 된다면, 그 이후의 혼란은 충분히 예상된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의 불만은 사회적 불안 요소로 남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력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인공지능 연구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을 비롯한 일부 과학자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심대한 사회적 불안과 위험한 결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개인정보가 더 혹은 덜 보호될 수 있고, 인간이 호모 데우스(Homo Deus, 신이 된 인간) 혹은 기계의 노예처럼 살게 될 수도 있다. 급격히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를 생각해볼 때 미래는 현재로서 상상 너머의 무엇일지 모른다. 미래학자 비벡 와드와(Vivek Wadhwa)는 기술 변화를 중심으로 ‘영화 같은 미래’에 다가선다. 저자는 수년간 진행해온 미래기술세미나에서 논의된 새로운 기술을 토대로 미래를 전망한다. 미래예측은 단순하게 낙관론 또는 비관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문제점을 열거하고 그에 대한 잠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미래를 분석하는 방식이 《선택 가능한 미래》의 특징이다. 기술의 진보가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꿔놓는 한편,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선택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신기술이 사회와 인류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 이 기술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혜택을 가져다주는가? (형평성)

2. 이 기술에 내재된 위험과 보상은 무엇인가? (위험성)

3. 이 기술은 인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가? (자율성)

 

 

 

나는 이 세 가지 기준을 ‘와드와 테스트(Wadhwa test)’라고 부르고 싶다. 이 단어는 컴퓨터가 인공지능을 갖추었는지 판별하는 시험인 ‘튜링 테스트(Turing test)’에서 따왔다. 와드와 테스트는 인공지능의 실용성과 위험성을 판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쉽게도 인공지능, 로봇, 구글이 개발한 무인자동차, 드론, 맞춤형 의료 서비스 등은 와드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어주는 중대한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소유하고 그것을 통해 생산력을 극대화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더욱 가난하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우선 고임금과 저임금에 따른 노동시장 분리는 심화하며, 성 격차에 따른 불평등도 심화한다. 나는 인공지능의 등장이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낙관적인 저자의 전망에 동의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공지능 발전으로 인한 부의 편중을 대비해야 한다.

 

과거 의료서비스는 일반적으로 병이 발생한 이후에 이를 치료해주는 ‘사후적 서비스’였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맞춤형 관리를 통해 발병을 사전에 진단하고 예방하는 ‘선제적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환자가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면 인공지능은 환자의 유전자 정보, 건강 상태 등 전문적이면서도 개인화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이 병에 걸리기 전에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필요한 의료서비스가 고객에게 다가오는 시대가 온다. 하지만 우려되는 요소도 없지 않다. 개인의 신체 관련 정보가 자칫 오용되기라도 하면 ‘디지털 빅 브라더’로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 수단으로 전락할 여지도 없지 않다. 또 해커들이 의료 기록을 조작하는 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면 인공지능의 오진(誤診)이 생길 수 있다. 저자는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인공지능 서비스의 부작용을 예방하려면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할 각종 보안 기술과 법적 제도가 선결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밖에도 그는 ‘유전자 기술 개발’, 드론의 무기 상용화 등의 사례를 들면서 신기술이 가져다 줄 위험과 문제점을 분석한다.

 

 

“어떤 미래에서 살게 될지는 결국 우리 선택에 달렸다.”

 

(19쪽)

 

 

저자는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자신만의 미래 전망을 세우며 적극적으로 대처해보라고 제안한다. 그는 미래를 전망하면서 ‘희망’과 ‘위험’이란 양면을 동시에 읽어낸다. 결국, 미래는 문제점과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있으며 가능하면 문제점은 피하고 가능성을 이용한다면 우리의 일상이 훨씬 나아질 수 있다. 신기술에 대한 거부감을 느껴 기술 발전을 부정적으로만 보거나 불안에 떨면서 살아갈 수 없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의 수평선 너머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발견, 새로운 사건들이 웅크리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영화 같은 미래’를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신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적절하게 이용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찬란한 유토피아가 아닌 <매드맥스>의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지식, 즉 앞으로 등장하게 될 신기술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예측하려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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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30 16:47   좋아요 1 | URL
신기하죠? 쥘 베른의 소설에 보면 거의 반쯤은 미래를 예견한 묘사들이 나와요. ^^

psyche 2018-01-31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인자동차는 와드와 테스트에서 어떤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는지 궁금해요. 미국은 차가 없으면 꼼짝도 할수없다보니 앞도 잘 안보이고, 반사반응도 너무 느리신 노인들도 운전을 하시거든요. 다른건 몰라도 무인 자동차는 내가 노인이 되기전에 상용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cyrus 2018-01-31 10:37   좋아요 0 | URL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되려면 일단 까다로운 법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됩니다. 무인 자동차가 사람보다 정확한 운전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고가 안 일어난다고 확신할 수 없어요. 무인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켜 인명 피해가 발생하게 되면 법적인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무인 자동차에 장착된 시스템은 해커들의 표적이 될 확률이 높아요.

psyche 2018-02-02 14:00   좋아요 0 | URL
법적인 문제는 새롭게 법을 만들고 그렇게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해커에 대해서는 생각못했네요. 그건 좀 무서운걸요.
 
땅과 집값의 경제학 - 우리 삶의 불평등, 그 시작은 땅과 집에서 비롯되었다
조시 라이언-콜린스.토비 로이드.로리 맥팔렌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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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가 날갯짓하면 다음날 미국 워싱턴 상공에 거대한 폭풍이 생긴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z)는 예측 불가능한 연쇄반응의 결과를 나비효과로 표현하면서 카오스 이론을 만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나비의 날갯짓과 폭풍이 아무 관계없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혀 쉽지 않은 변화가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은 인생사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땅과 집을 소유한 사람(‘사유재산권을 가진 자’, ‘주택소유자’, ‘토지소유자’ 등으로 다양하게 부를 수 있다. 고전주의 경제학에서는 개인이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땅과 그 위에 세워진 집을 개인의 재산으로 본다. 이 글에서는 집과 땅을 소유한 사람을 ‘토지소유자’로 부르겠다)이 늘어나는 현상과 청년 실업률 증가. 이 양자의 현상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업률 증가는 토지소유자 증가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부동산 증여와 투기, 2008년에 터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인 미국의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 1% 소수 기득권에 소득이 몰린 불평등 현상 등은 땅을 독점하는 토지소유자들이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지나친 ‘지대 추구 행위’의 나비효과로 볼 수 있다.

 

영국 출신 경제학자 3인이 공동으로 집필한 《땅과 집값의 경제학》(사이, 2017)은 토지소유자들만이 혜택을 점유하는 비효율적인 지대 추구 행위의 폐해를 보여준다. 우리가 늘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서민들은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살림살이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일까. 부자들은 뭘 했기에 재산을 축적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 《땅과 집값의 경제학》 속에 있다. 근면하고 검소한 서민들이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부동산 부자들이 지대 추구 행위를 해오면서 사회적 부를 끊임없이 획득했기 때문이다.

 

사유재산권은 이윤 추구를 강조하는 자유 시장경제의 기본 조건이다. 이윤추구에 대비되는 개념이 지대 추구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대란 기회비용을 초과하는 수익을 가리킨다. 이윤은 부가가치의 창출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지대와 구별된다. 지대는 인구 증가, 산업 발달,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으로 토지의 가치가 증가하는 데서 발생한다. 강남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지대가 높아지면 지가(地價)도 상승한다. 현실적으로 지대의 형성과 정치 권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토지소유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부가 계속 나오는 ‘화수분’ 같은 땅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행사한다. 땅은 처음부터 주어진 자연이기 때문에 단지 토지 등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생산에 기여한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토지소유자들이 지대를 수취하는 것은 그 지대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의와 공평에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부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십중팔구는 땅과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부자들이다.

 

그런데 자유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땅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토지소유자가 몽땅 얻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지대 추구 행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입장은 ‘신고전 경제학’에 가깝다. 신고전 경제학은 시장 만능주의를 표방하는 경제학파다. 그런데 시장경제가 알아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라고 믿었던 학자와 관료들은 지대 행위가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들은 ‘교과서 속 시장경제’의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고, 정치적 · 사회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땅의 경제적 기능’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주류 경제학’이라는 자부심에 눈이 먼 신고전 경제학파는 지대 행위에서 비롯된 불평등 문제에 대응하는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장 근본적인 생산수단인 땅이 기득권층에 의하여 독과점이 된다면 땅 이용의 대가인 지대를 불로소득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세월이 갈수록 더 높아진다. 이러면 서민들의 소득과의 격차는 확대되어 갈 수밖에 없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는데 소득을 얻는다면 시장경제의 원리가 아니다. 《땅과 집값의 경제학》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근거로 토지불로소득을 사유화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비판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사유재산제를 비판한다고 해서 사유재산제를 지향하는 시장경제를 깡그리 부정하는 ‘좌편향 책’이 절대로 아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헨리 조지(Henry Georgy)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면서도 토지에서 나오는 이득의 사유화에 반대했다.

 

헨리 조지는 ‘지대 행위의 덫’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지대 소득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무겁게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헨리 조지의 대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적 주장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지대 추구 행위의 문제점을 외면한 채 헨리 조지의 대안이 ‘사회주의’에 가깝다는 궤변을 내세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지대 행위의 덫’을 치울 생각이 없다. 토지불로소득을 토지소유자가 독식하는 체제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의 주거의 자유가 침해된다. 지상자유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자유’란 ‘땅과 집을 소유한 사람들의 자유’인 것일까. 실업자와 구직 청년들이 집값, 땅값이 높은 지역에 있는 일을 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땅과 집만 가지고 있으면 장땡으로 아는 세상 풍조는 한탕주의 환상을 부추긴다. 이대로 두면 ‘도덕과 인간’이 무의미한 비정상적 시장경제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 ‘옮긴이의 말’, ‘참고 문헌’, ‘색인’이 없다. 경제학 서적치고는 구성이 허접하다. 이 책의 역자는 심리학을 전공한 ‘바른번역’ 소속이다. 만약 이 책을 경제학 전공 역자가 맡았으면 영국 경제학자 3인의 주장을 보충 설명하는 해제(解題)가 딸린 수준 있는 경제학 서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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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9 08:27   좋아요 0 | URL
토지 공개념이 헨리 조지가 주장한 대안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토지가격 상승에 대한 문제점은 잘 드러나지 않고, 주류경제학자들이 (의도적으로) 놓치는 문제점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8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리 조지가 자유주의자였군요. 몰랐습니다. 전 당근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cyrus 2018-01-19 08:29   좋아요 2 | URL
예전에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헨리 조지의 사상이 잘못 알려졌어요. 진보주의자들이 헨리 조지를 재평가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이 헨리 조지를 외면하는 상황이라서 헨리 조지의 사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사회주의자로 오해하기 쉬워요.

transient-guest 2018-01-19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곳에서 발견되는 땅문제와 사회/부의 불균형을 보면 고려나 조선시대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특정계층이 모든 토지를 점유하고 갈수록 자영농민의 숫자가 사라져서 결국 세금을 내고 국가의 근간이 되는 중산층이 사라지면서 국가도 쇠락한 상관관계를 많이 이야기하는데요, 요즘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땅은 국가소유로, 건물소유주는 이 땅을 길더라도 특정한 시간을 두고 개인이 임차하는 형식으로, 그리고 불로소득에 대한 높은 세금을 매겨야 하는데,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부자라서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cyrus 2018-01-19 08: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지역이기주의, 부동산 투기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토지소유자들의 권력 사유화입니다. 그들이 부를 축적하면 자연스럽게 권력도 따라오게 됩니다. 그들은 기득권층이 되어 자신들이 불리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반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