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한 건 설탕을 먹어서 그래 - 과학의 50가지 거짓말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박은진 옮김 / 드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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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단맛이 나는 간식을 매우 좋아한다. 새벽에 책을 읽다가 졸음이 몰려오면 사탕과 젤리를 먹는다. 요즘 눈길 가는 간식이 탕후루. 한 입 먹으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지만, 사 먹어보진 않았다내 머릿속 동료인 뇌가 절제를 잘하나 보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 이 녀석 덕분에 나는 단맛의 노예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정치권이 탕후루를 즐겨 먹는 아이들의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탕후루 프랜차이즈 대표가 국정감사에 소환되었다. 국회의원들은 설탕이 많이 들어간 탕후루가 소아 당뇨와 비만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탕후루는 억울하다. 국회의원들이 진심으로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아이들이 주로 언제 설탕을 많이 섭취하는지 조사해야 한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이 설탕을 많이 먹으면 과잉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단맛은 뇌의 중추신경을 자극해 도파민을 유도한다. 도파민은 우리의 감정, 행동, 생리적 반응에 큰 영향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문제는 도파민이 너무 많이 나오면 극도의 흥분을 유발하거나 과도한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설탕을 적게 먹으면 도파민이 적게 분비되고, 과잉 행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설탕을 많이 먹으면 아이들이 지나치게 흥분한다는 주장은 속설이다. 설탕 과다 섭취와 아이들의 행동에 상관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여러 개 나왔다. 설탕은 정신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주지 않는다.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과학인 척하는 속설에 속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과학이라고 믿고 있는 주장들의 절반은 속설이거나 사실과 다른 거짓 정보다. 산만한 건 설탕을 먹어서 그래는 과학인 척하는 속설 50가지를 소개한 책이다. 책 제목은 앞서 언급된 설탕 과다 섭취를 둘러싼 대중의 오해와 관련 있다설탕 섭취가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니다.


과학 도서를 읽다 보면 심심찮게 나오는 두 개의 일화가 있다. 두 개의 일화는 과학자들의 업적으로 알려졌다뉴턴(Isaac Newton)은 땅에 떨어진 사과를 보자마자 중력의 효과를 발견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서로 다른 무게의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리는 공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을 통해 그는 두 물체가 비슷한 속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두 개의 일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일화의 출처는 뉴턴과 갈릴레이의 지인이다. 이 책에서는 피사의 사탑 공개 실험이 제삼자에 의해 언급되었다고 나온다(53쪽). ‘제삼자의 정체는 갈릴레이의 제자 빈첸초 비비아니(Vincenzo Viviani). 그는 쇠약해진 스승의 연구를 도왔으며 갈릴레이의 유고를 정리했다.


이 책의 저자는 속설이 대중문화에 의해 널리 퍼질 때 몸집을 부풀린다고 말한다. 그러면 속설과 거짓 정보는 과학과 사실로 둔갑한다. 하지만 속설이 부풀려지는 원인을 무지한 대중에게만 탓할 수 없다. 과학자와 과학 해설자도 실수하고, 착각한다. 그들의 오해가 검증 없이 널리 알려지면 속설의 몸집은 커진다.



* 50 [10장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공룡이 멸종했다]





공룡은 도마뱀과 달리 온혈 동물이었다.



온혈 동물은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능력이 있다. 반대인 냉혈 동물은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어서 외부 환경의 온도에 맞춰서 체온을 변화시킨다. 요즘은 온혈 동물, 냉혈 동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온혈 동물 대신에 정온(항온) 동물, 냉혈 동물은 변온 동물로 쓴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정온 동물 공룡가설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 가설의 한계를 지적한 과학자들은 모든 공룡이 정온 동물이 아닐 수 있다고 반박한다. 어떤 과학자는 공룡은 정온 동물과 변온 동물의 장점 모두 가진 중온성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김도윤(갈로아글 · 그림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 한빛비즈, 2019)



* 79 [18장 중세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기원전 4세기경, 플라톤이 쓴 저서에는 지구를 공에 빗대어 설명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플라톤(Plato)이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었나? 이 내용이 금시초문이라서 플라톤의 저서 티마이오스》(김유석 옮김, 아카넷, 2019년)를 확인해 봤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 공기, , 흙의 형태는 기하학적 도형이라고 주장한다. 흙은 지구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플라톤이 생각한 흙의 형태는 구가 아니라 정육면체.


저자는 자신이 인용한 학자들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출처를 언급하지 않았다책의 뒷부분에 참고문헌 목록도 없다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견해는 사실과 다른 속설로 잘못 알려질 수 있다.



* 15[2장 인간에게는 오감이 있다]

 

 인간에게 오감이 있다는 이 익숙한 개념은 고대에 처음으로 확립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미각과 촉각, 둘 다 접촉이 필요한 감각인데도 이 둘을 분리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로 우리에게 그 유명한 다섯 가지의 감각을 알려주었다. 사실 네 가지든, 다섯 가지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물질이 흙, , , 공기로 구성된다는 가설에 동의했고, 여기에 천상을 이루는 물질인 제5원소를 추가했다.

 


다섯 가지의 감각이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말한다. 감각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견해가 나오는 책은 영혼에 관하여(오지은 옮김, 아카넷, 2018).




* 66쪽 [15장 인간은 뇌가 가진 능력의 10퍼센트만 쓴다]

 




 미국의 과학자 윌리엄 제임스와 보리스 시디스는 인간은 자신의 역량만큼 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과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




* 80 [18장 중세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에라토스테네는 두 지점에서 태양의 각도 차이를 이용해 지구의 둘레를 쟀음.



에라토스테네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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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1-04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인이 집에서 탕후루를 한 번 만들어 봤대요.
일단은 시중에서 파는 정도의 비주얼을 내려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설탕이 들어갔다고 그러더라고요.
탕후루가 또 딱딱하다고~~
이빨에는 안 좋을 것 같아요.
또 문제는 아이들이 탕후루를 한 번만 사 먹는게 아니라는거죠.
설탕이 중독증세를 일으키고 아이들은 쉽게 절제가 안되거든요~~
마라탕 계속 먹어서 위경련이 일어나는 아이도 있어요 ㅠㅠ
cyrus님께서 쓰신 글이 이런 의미가 아닌데 제가 탕후루 얘기만 했네요.

cyrus 2023-11-06 06:21   좋아요 1 | URL
제 주변에 탕후루 즐겨 먹는 지인들이 없어서 탕후루 열풍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어요. 마침 페넬로페님이 제가 궁금했던 부분을 알려주셨어요. 제가 사는 동네에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서면서 주변 상가들까지도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탕후루 전문 가게에요. 퇴근할 때 탕후루 가게를 지나갔는데 사람들이 가게 앞에 줄 서 있더라고요. 그런 광경은 동네 20여 년 살면서 처음 봤어요. ^^;;

얄라알라 2023-11-17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rsona님 포스팅에 이어 cyrus님 포스팅에서도^^

문제는 탕후루야! 설탕이야! ^^;;

너덜트라는 크레이에터분이 올리신 영상에서도 탕후루가 소재더라고요
줄이 얼마나 길었으면 cyrus님께서 처음 보셨다고 하실 정도일까...

cyrus 2023-11-20 06:29   좋아요 0 | URL
탕후루 가게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동네 사람들이 먹어 보러 왔을 거예요. 번화가에 있는 탕후루 가게가 동네에 생겼으니 탕후루 좋아하는 사람은 안 갈 수가 없죠. 제가 아는 지인은 탕후루를 매일 먹어요.. ㅎㅎㅎ
 
참나무라는 우주
더글라스 탈라미 지음, 김숲 옮김 / 도서출판 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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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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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하늘 천(), /땅 지(), 검은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우주는 넓고 거칠다







한문 교본 천자문 첫 구절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 속 누런 티끌임을 알려준다. 칼 세이건(Carl Sagan)1990년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 사진을 공개하면서 창백하게 빛나는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보이는 지구를 소중히 여기자고 말했다. 거대한 세상을 압축해서 만든 1,000자의 한문을 몰라도 된다. 우주가 어떤 곳인지 알면 된다. 우주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우주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천체만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수명이 다해 작동하지 않은 인공위성과 거기서 떨어져 나온 파편)’가 널려 있다. 이 넓고 거친 우주 한가운데에 소행성을 용케 피하면서 조용히 도는 누런 티끌은 정말 소중하다.


천자문에 묘사된 우주는 실은 우리가 아는 그 우주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우주는 지구 밖 무한 세상이다. 한문으로 된 우주는 우리의 눈, , , 손과 발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하늘과 땅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뜻한다. 하늘은 뜨거운 태양 빛을 막아주는 두툼한 이불이라면, 땅은 살아있는 모든 것이 태어나고 자라는 아늑한 침대다천자문첫 구절에 나온 것처럼 지구와 우주는 이다. 하지만 집주인은 없다그런데 진화상으로 볼 때 동식물보다 늦게 나온 인간이 집주인처럼 행세한다지구와 우주는 인간이 독점하는 집이 아니다. 우주는 살아있는 모든 것의 보금자리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지금까지 지구를 여러 번 못살게 굴었던 행적을 후회한다면서도 지구를 소중하게 지켜주지 못할망정 제2의 지구를 찾고 있다.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을 과감하게 좁혀 보자. 그러면 우주는 지구 밖 무한 세계가 아닌, ‘지구 속 유한한 세계라는 걸 알 수 있다. 우주에 인간만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지구를 푸르게 하는 숲과 바다도 동물들의 집이자 우주다.


참나무라는 우주가까이 있으면서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지구 속 우주를 소개한 책이다. 참나무 한 그루는 새와 곤충들의 보금자리이자 튼튼하고 오래 가는 지구 속 우주. 이 책의 저자는 드루이드(druid)’. 드루이드는 참나무를 아는 사람(druwides, 드루이드의 어원으로 추정되는 고대 켈트 어)’이다. 드루이드가 모든 동물을 불러들이면서 소통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가진 마법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드루이드는 자연에 관심이 많고, 자연과 어울려 사는 법을 전파한 사제. 현대의 드루이드가 된 저자는 자신의 정원에 심은 참나무가 일 년 동안 자라는 내내 일어나는 또 다른 생명들의 탄생 과정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푸르른 이파리와 누런 줄기로 이루어진 참나무 우주에 작은 곤충이 살고 있다. 참나무 이파리는 애벌레의 먹을 수 있는 집이다. 그러나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꽃과 나무에 모여든 곤충을 달갑지 않은 손님으로 여긴다. 거대한 정원 주인은 작은 손님들을 향해 해충제를 뿌려서 쫓아낸다. 정원은 인공 자연이다. 하지만 인간의 손길을 거치지 않아도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정원도 곤충이 사는 우주인 셈이다. 식물을 좋아하는 반응과 식물을 소중히 여기는 반응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참나무 심기를 거부하는 정원 주인이 있다. 그들은 땅속에 단단히 박혀 쭉쭉 뻗은 참나무 뿌리가 다른 식물이 자라는 데 방해된다고 생각한다. 푸르른 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 참나무 낙엽은 정원 외관을 망치는 쓰레기로 취급받는다.


참나무 우주는 욕심이 없다. 참나무 주변에 어린나무 몇 그루를 심으면 땅속에 뿌리가 엉킨다. 서로 다른 종의 나무뿌리가 엉켜도 나무는 잘 자란다. 오히려 나무들의 뿌리가 엉키면 튼튼해진다. 태풍이 밀쳐도 뿌리째 뽑히면서 쓰러지지 않는다. ‘참나무 우주는 한결같다. 겨울이 되면 생명력이 다한 이파리는 더 이상 푸르른 빛을 내지 않는다. 참나무는 거추장스러울 수 있는 죽은 이파리를 땅에 버리지 않는다참나무 우주는 아름다움을 잃게 되는 변화, 즉 노화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2의 지구를 간절히 찾고 싶은 사람은 다중 우주설을 믿는다. 우주가 무한 세상이라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n개의 우주가 있을 수 있다는 학설이다. 하지만 다중 우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실증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지구 밖 다중 우주의 존재 여부에 관심을 쏟는 것보다 지구 속 다중 우주를 만들면 어떨까? 저자는 참나무를 많이 심으면 생태계가 회복될 수 있으며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해서 대기의 탄소가 줄어들지 않는다. 나무가 죽으면 탄소가 나온다. 참나무는 수명이 길고, 탄소를 적게 배출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참나무는 다른 종의 나무와 어울릴 줄 안다. ‘참나무 다중 우주에 참나무 우주만 있는 게 아니다. 새와 곤충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나무 우주도 있다. 숲 우주는 또 다른 숲 우주를 만든다. 못된 인간 때문에 골골대는 현재 지구의 얼굴은 창백하다. ‘창백한 푸른 점’의 푸르른 생기를 되찾아주려면 참나무 우주를 심어야 한다.






<cyrus의 주석>

 

 

* 235

 

 대부분 초식 곤충은 이파리를 갉아 먹기 보다 진액을 빨아 먹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 빨대 구조의 입을 지닌 곤충[]은 애벌레일 때는 아래턱이 발달해 단단한 식물 조직을 씹을 수 있다가 어른벌레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빨대 같은 역할[]을 하는 가느다란 철사 모양으로 변한다.

 

[] 나비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래서 꽃에서 나오는 꿀과 나무 수액을 먹으면서 사는 초식성 나비만 있는 게 아니라 배설물, 동물의 피, 심지어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잡식성 나비도 있다. 나비는 연약함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외로 나비는 오랫동안 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며 척박한 곳에서도 산다


나비의 주둥이는 빨대 구조의 입이 아니다. 나비의 주둥이에 아주 작은 구멍들이 있다. 따라서 나비는 꿀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듯이섭취한다. 나비의 주둥이는 스펀지와 같다고 보면 된다. ‘참나무 우주의 단골 거주 곤충인 나비와 나방의 다양한 삶을 알려주는 웬디 윌리엄스(Wendy Williams)나비의 언어(이세진 옮김, 그러나, 2022)참나무라는 우주와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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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원더랜드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과학으로 읽다
안세실 다가에프.아가타 리에뱅바쟁 지음, 김자연 옮김 / 애플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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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소설 앨리스 시리즈(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동물들은 독특하다. 그들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조연이다. 그래도 이상한 나라(Wonderland)’에 사는 존재답게 동물들의 외형과 행동이 범상치 않다. 양복 주머니 속에 있는 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확인하고, 굴이 있는 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는 토끼는 앨리스가 처음으로 만난 이상한 동물이다.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는 체셔 고양이(Cheshire cat)는 신출귀몰의 재주를 지녔다. 몸통만 사라지게 해서 미소 짓는 얼굴만 남게 할 수 있다. 동물들이 앨리스와 주고받으면서 나온 말장난 같은 대사는 독자들의 뇌리에 !’ 박힌 명대사가 되었다. 버섯 위에 앉아서 느긋하게 물담배를 피우는 애벌레는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는 앨리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누구냐?”

 

사이언스 원더랜드동물학자의 주석이 달린 <앨리스>’.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의 프랑스 출신 동물학자다. 두 사람은 앨리스 시리즈를 동물학, 생물학, 생태학으로 독해한다. 수학자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가 써서 유명해진 주석 달린 앨리스와 같다고 해서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된다. 사이언스 원더랜드주석 달린 앨리스처럼 어마어마한 개수의 주석이 본문에 주렁주렁 달린 벽돌 책이 아니다. 사이언스 원더랜드는 독자들을 배려할 줄 아는 친절한 책이다. 마틴 가드너의 책을 참고했지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았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마틴 가드너의 주석은 단 한 개뿐이다. 사이언스 원더랜드에 달린 주석은 독자가 생소하게 여길 수 있는 생물학 관련 용어의 의미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애벌레는 입이 없다. 따라서 입으로 숨 쉬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애벌레는 입으로 물담배를 피운다! 공동 저자는 사소한 옥에 티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원래 직업이 과학자인 공동 저자는 앨리스 시리즈에 등장한 동물들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분석한다. 고양이의 미소는 이상한 나라에서만 가능한 신체적 현상이 아니다. 고양이도 인간처럼 입술을 움직이고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고양이 미소를 제대로 보기 힘들다. 고양이의 입술 가장자리는 털로 뒤덮여 있다. 고양이의 미묘한 미소는 고양이 집사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손과 팔이 달린 도도(Dodo) 는 물에 젖은 동물들을 위해 달리기 경기와 유사한 코커스 경주(Caucus Race)’를 제안한다. 도도 새는 코커스 경주에 참여하면 몸을 금방 마를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몇몇 동물은 달리지 않아도 된다. 가마우지는 물에 젖은 날개를 활짝 펴서 햇볕을 쬔다.

 

현실에 나올 법한 동물이 아닌 환상 동물또한 이 책을 쓴 저자들의 분석 대상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오는 난해한 시 <재버워키>(Jabberwocky)에 수수께끼 같은 동물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저자들은 <재버워키>의 이상한 동물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허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이상한 동물들도 알고 보면 현실 속 동물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생겼다.

 

생태학은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요즘 생태학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용어가 생물 다양성이다. 지구의 모든 생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만약에 어떤 생물 종이 멸종되면, 그들과 협력하면서 지내온 다른 생물 종도 절멸 위기에 처한다.가짜 거북이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동물 중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기괴한 모습의 가짜 거북이는 실제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거북이 수프와 관련이 있다. 거북이 수프가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 음식으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거북이가 인간의 손에 희생당했다. 거북이 수프가 중산층들에게도 알려지자, 식용 거북이의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 요리사들은 거북이 대신에 송아지 머리를 통째로 넣은 일명 가짜 거북이 수프를 선보였다. 지금은 거북이 수프를 즐겨 먹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환경 오염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거북의 서식지가 줄어들게 되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거북 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린 굴들을 속여서 잡아먹은 바다코끼리는 소설 속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이다. 하지만 현실 속 바다코끼리는 북극곰과 같은 처지에 있다.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온도는 계속 높아지면 빙하가 녹는다. 빙하는 바다코끼리의 서식지다. 빙하가 많이 사라지면 바다코끼리가 다른 빙하로 이주하는 거리가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바다코끼리는 먹이를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주를 포기하고 먹이가 전혀 없는 빙하에 계속 머무는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이상해지면 지구도 이상해진다. 유럽의 여름은 예전보다 더 뜨겁다. 따뜻해진 바닷물은 지난주에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의 영향력을 높여줬다. ‘이상 기후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색해진 현실이다. 간간이 일어났던 이상 기후 현상은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는 일상 기후가 되어 버렸다. 이상해진 지구는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그런데도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은 태평하게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믿는다. 심지어 지구온난화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Oh my, curiouser and curiouser!(더더 이상해져, 더더 이상해진다고!) [주1]





[주1] “curiouser and curiouser!”


케이크를 먹고 몸집이 거대해진 앨리스가 한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장(Pool of Tears)의 첫 문장이다. 번역문 출처는 이소연이 옮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120이다.

 





<cyrus의 주석>



* 74


 1958년에 그림을 그린 머빈 피크[주2]는 새의 형태로 밴더스내치를 표현했는데, 이 새는 팀 버튼의 접접새와 상당히 닮았다.



[2]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최용준 옮김, 2009년)는 머빈 피크(Mervyn Peake)의 삽화가 실린 번역본이다. 밴더스내치(Bandersnatch)’는 캐럴의 시 <재버워키>에 나오는 괴물이다. 머빈 피크는 <재버워커>가 언급된 거울 나라의 앨리스삽화도 제작했는데, 열린책들 번역본에 수록되어 있다(169쪽 삽화 참조).





* 172


 찰스 다윈1859년에 발표한 종의 기원에서 설명한 것처럼, 작가 역시 공통된 조상을 가진 인간과 다른 종의 동물 사이의 연속성에 영감을 받았던 것일까? 단정하기 어렵다. [주3]



[3] 코커스 경주에 참여한 동물 중 원숭이가 있다. 캐럴은 땅속 나라의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원본)에 직접 원숭이를 그려 넣었다. 본문에 언급되지 않은 원숭이의 등장은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진화론을 둘러싼 대중의 반응을 반영했다는 것이 앨리스 연구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캐럴이 진화론을 믿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마틴 가드너는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캐럴은 다윈의 든든한 지지자인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Thomas Huxley)의 제자가 쓴 종의 기원을 읽었다. 그는 일기에 그 책을 무엇보다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책이라고 평했다. 캐럴은 자연선택만으로 세상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으며 하느님의 창조력과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참고문헌: 마틴 가드너, 승영조 옮김, ALICE IN WONDERLAND: 앨리스출간 150주년 기념 디럭스 에디션》, 꽃피는책, 2023년, 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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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4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소개에서 이 책 보면서 재밌는 기획이네 하고 지나쳤는데 내용도 좋아보이네요. 좋은 책 담아갑니다. ^^

cyrus 2023-08-15 15:18   좋아요 1 | URL
책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청소년에게 권장할 만한 과학책이에요. ^^
 
강박에 빠진 뇌 - 신경학적 불균형이 만들어낸 멈출 수 없는 불안
제프리 슈워츠 지음, 이은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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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기벽(奇癖): 남달리 기이한 버릇


기벽(嗜癖): 한쪽에 치우쳐서 즐기는 버릇


기벽(氣癖): 자부심이 많아서 남에게 지거나 굽히지 않으려는 성질





킁킁. 새 책을 사면 제일 먼저 종이 냄새를 맡는다. 책의 띠지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양장본 커버가 없으면 허전하다. 책을 읽다가 특정 단어에 확 꽂히면 생각이 많아진다. 특정 단어를 골똘히 분석하기 시작하면 다음 장으로 넘기지 못한다. 일단 읽고 있던 책을 덮는다. 특정 단어를 알기 위해 도움이 되는 다른 책을 찾아본다. 오역으로 생각되는 문장을 발견하면 책 읽기를 멈추고, 그 문장의 원문을 찾는다. 책의 귀퉁이가 접혀 있으면 바로 편다. 책이 냄비 받침대로 쓰이는 것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이런 괴팍스러운 성미를 모두 가진 사람이 있다? 그래, 바로 나다. 책 앞에서 예민해지고, 책 읽을 때 강박행동을 보이는 내 모습들이다. 이 모든 행동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버릇(奇癖)이다. 과거에는 이런 행동을 병적인 행동이나 병증으로 취급했다. 이상한 기벽(, 버릇 벽)’(병들어 기댈 녁)’(물리칠 벽)’이 합쳐진 한자다. ‘의 또 다른 뜻은 적취(積聚)’. 적취란 몸 안에 쌓인 기가 너무 많이 쌓여 덩어리가 생겨서 아픈 병을 의미한다. 좀처럼 고치기 힘든 기벽은 몸과 정신을 집어삼키는 괴물이다. 기벽이 있는 사람은 쓸모없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답답해하고 불안감을 느낀다. 이때 보이지 않는 괴물이 옆에서 속삭인다. 이렇게 안 하면 넌 살 수 없어. 당장 해!”


책만 보면 내게 간섭하고 조종하는 괴물과 함께 산 지 어언 13년이 되었다독서와 글 쓰는 일에만 매달리는 기벽(嗜癖)도 함께 살고 있다. 나쁜 기벽의 입김이 너무 세서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나는 이 괴물들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 싶어서 강박에 빠진 뇌: 신경학적 불균형이 만들어낸 멈출 수 없는 불안 만났다. 제일 먼저 책 뒤편에 있는 <강박사고 및 강박행동 점검표>를 펼쳤다점검표는 총 27개의 문항으로 되어 있다. 예상대로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강박사고가/강박행동이 있을 수 있다라는 결과가 나왔다강박사고는 원치 않는데도 계속 떠올라 괴로움을 주는 생각이다. 강박사고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과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강박행동이라 한다. 예를 들어 자신 주변에 세균이 너무 많아서 질병에 걸릴 거라고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면 강박사고에 해당한다. 비현실적인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손 씻는 일에 집착하면 강박행동이다.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 강박 병증 환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을 괴롭히고 무참히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면 강박장애가 된다.


강박에 빠진 뇌의 저자 제프리 슈워츠(Jeffrey Schwartz)는 강박장애를 아주 탐욕스러워서 만족할 줄 모르는 괴물로 비유한다. 강박장애 환자는 이 괴물의 정체를 모른다자해하는 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괴물에 뜯어먹힌 채 생활한 지 오래될수록 자존감은 낮아진다. 자존감이 너무 낮아지면 삶은 텅텅 비어 있고 야위어진다. 가벼워진 삶은 자기 비하의 늪에 한 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살려는 의지가 남아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괴물의 진짜 정체를 알고 나면 확실히 가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가 아니라 가 문제다. 뇌는 때때로 우리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메시지를 전달받은 여러 신체 기관은 뇌의 잘못된 명령만 믿고 작동한다. 착시 현상에 속는 우리의 반응은 뇌의 속임수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가벼운 오작동에 속한다. 하지만 강박장애는 너무 자주 일어나고, 너무 오래 방치하면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위험한 오작동이다.


강박장애는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 괴물이 아니다. 뇌가 잘못 보낸 괴물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자기 주도 행동 치료 4단계 중 첫 번째 단계는 재명명이다. 이 괴물의 정체를 확실히 알면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 너는 또 날 괴롭히려고 찾아온 강박장애야!’ 나를 괴롭히는 녀석을 알았으면 왜 나타났는지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자기 주도 행동 치료 두 번째 단계는 재귀인이다.뇌가 또 장난치려고 하는구나.’ 이 단계까지 오는 과정이 익숙해지면 강박장애 괴물이 불쑥 찾아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면 강박사고가 떠올리거나 강박행동이 나타나는 횟수가 줄어든다. 강박장애 괴물을 제압하려면 공정한 관찰자를 활용해야 한다. 공정한 관찰자는 자신의 진짜 내면을 잘 아는 존재다. ‘공정한 관찰자가 내민 손을 잡으면 강박장애 괴물과 격렬하게 싸울 때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 남들이 이해할 수 없고, 나를 괴롭혔던 강박장애가 뇌에 생긴 화학적 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의 실체를 확인했으면 진짜 나의 모습, 내가 진정 원하는 감정과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여기서부터 내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재 초점 단계에 시작된다. 마지막 단계인 재평가에 도달하면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 내 삶에 불필요한 것임을 인식한다.


강박장애가 만든 기벽(奇癖)’기벽(氣癖)’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강박장애 환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기벽(氣癖)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있어야 할 기벽자부심이 많아서 남에게 지거나 굽히지 않으려는 성질이다. 좋은 기벽이 있으면 삶의 의지와 의욕이 강해진다. ‘공정한 관찰자는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 또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강박장애 괴물과의 싸움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그 녀석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강박장애를 포함한 모든 질병을 완전히 치유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이 비대해지면 강박사고로 변할 수 있다. 죽일 수 없어도 절대 질 수 없다는 의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의지가 없으면 강박장애 괴물에 먹히고, 진짜 내 모습은 사라진다. 기벽이 충만하면 뇌의 악랄한 장난질을 멈출 수 있다. 내 삶의 가치를 높여주는 건설적인 행동을 하면 뇌를 고칠 수 있다. 뇌를 바꾸면 진짜 나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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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23-07-10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물성을 먼저 어루만지고 정좌하여 읽는 제 습관이 보여 미소를 띠게 됩니다. 재밌게 읽고 갑니다~

cyrus 2023-07-11 23:32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책과 관련된 제 기벽을 스스로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오히려 즐기는 편입니다. ^^
 
나노화학 - 10억 분의 1미터에서 찾은 현대 과학의 신세계
장홍제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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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어린 시절에 반복하다시피 읽은 책이 교양 과학 만화책 시리즈. 그 시리즈 첫 번째 책의 주제가 인체였다. 그런데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인체의 신비였던가? 출판사 이름은 기억난다. 삼성당이다. 무자비하게 흘러간 시간이 책 제목을 지웠다. 그 책에 임시로 제목을 붙인다면 인체 탐험이다. 그렇게 제목을 정한 이유는 SF에 나올 법한 줄거리 때문이다. <인체 탐험>의 등장인물은 흰 수염의 의학 박사와 그를 따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다. 의학 박사는 발명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다. 비행기와 흡사한 잠수함을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버튼 하나 누르면 잠수함 크기를 줄일 수 있다. 박사와 아이들은 확 줄어든 잠수함을 타고 어떤 남자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세 사람이 탄 잠수함은 남자 몸속 구석구석 누빈다. 남자는 자신의 몸속에 아주 작은 잠수함이 들어갔는지 모른 채 살아있는 교본이 된다. 박사는 몸속에 거주하는 세포와 세균이 하는 일과 몸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리 현상의 원인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준다. 잠수함이 남자의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이 가관인데, 남자가 재채기하는 순간 콧구멍을 통해 탈출한다. 만화가는 이 황당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콧구멍으로 빠져나온 잠수함을 콧물과 코딱지가 잔뜩 묻혀 있는 상태로 묘사했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지만, 박사와 아이들은 모험심과 앎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그들은 다시 잠수함을 타고 그 남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과학 수업을 재개한다. 

 

지금까지 내가 요약한 <인체 탐험> 줄거리는 100% 정확하지 않다. <인체 탐험> 줄거리는 나의 뇌가 조그마한 기억 조각들을 열심히 주워 모아 제멋대로 편집하고 각색한 것이다. 사람이 잠수함을 타고 몸 내부 곳곳을 여행하는 설정은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 이상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아져 버린 잠수함을 나노 기술로 만들 수 있다나노(nano)’는 소인(小人)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만화에 묘사된 소인들이 탄 잠수함은 인간의 몸에 들어가 병균을 퇴치하는 초미세 의료용 나노로봇으로 실현되었다


나노는 말 그대로 아주 작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노 세계는 아주 작은 세계를 의미하게 된다. 아주 작은 세계를 이해하려면 제일 먼저 원자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노 기술은 최소 1mm부터 최대 1,000nm(나노미터) 크기의 원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일어난 화학 반응을 응용하는 기술이다화학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저자가 쓴 나노 화학나노 기술의 현주소와 미래를 과학 지식과 곁들어서 풀어 쓴 책이다책 제목에 화학이 들어가 있지만, 나노 기술의 학문적 배경에 물리학도 포함된다원자나 분자 같은 미시 물질을 다루는 나노 기술에 양자역학이 적용된다원자는 모든 물질의 기본단위다. 물리학과 화학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실체를 밝혀내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학문이다.


우리는 나노 세계를 눈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없다. 그래서 아주 작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 우리 삶에 얼마나 이로운지 알지 못한다나노 세계의 물질, 즉 나노입자는 작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나노입자 크기가 작아지면 물질의 특성 자체가 달라지고, 같은 나노입자들끼리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화학 반응 속도가 빨라진다나노 물질들끼리 조합하면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응용한 나노 기술은 실생활에 유용한 생성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나노 기술의 실현 전망이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다. 현실적인 과제들이 산적하다. 나노 물질의 잠재적인 독성을 검증해야 한다. 그래핀(graphene)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나노 물질이다. ‘꿈의 신소재라는 수식어가 붙여질 정도로 디스플레이 · 반도체 · 태양전지 · 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된다. 그러나 언론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그래핀이 완전한 상용화가 이루어지려면 다소 시간이 걸린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생소하고 어려운 과학 용어나 이론을 과학 비전공자들을 위해 좀 더 쉽게 설명하는 전문가다. 나노 화학의 저자는 화학 전문 커뮤니케이터다. 저자는 자신의 본업을 살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학 상식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특히 화학 반응의 경로와 촉매를 등산으로 비유해서 설명한 대목(280~282)은 압권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은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반드시 있어야 할 자질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책에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내용들이 있다. 책 내용에 주석으로 단 내 의견 역시 사실과 다르거나 틀릴 수 있다.



* 24~25

 

 오늘날 모든 전자기기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전기(electricity)는 전자의 흐름으로 설명된다. 지금은 화석연료나 태양광, 지열, 조력 등 온갖 원천에서 전기를 얻으려고 발전이 이루어지지만, 전기의 확인과 관찰은 폭풍우 속에서 하늘에 연을 띄워 벼락에서 전기를 포집했다는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에 의해 처음 이뤄진다. [1]

 


[1] 프랭클린보다 훨씬 먼저 전기의 성질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과학자는 윌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 1544~1603). 그는 자석을 이용한 실험을 진행하면서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자석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1600년에 발표된 길버트의 저서 자석에 관하여에서 호박(琥珀)으로 마찰을 일으켜서 생기는 정전기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길버트는 정전기가 호박에서 나온 힘이라 생각했고, 호박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electricity’로 명명했다. 자석에 관하여자석 이야기(서해문집, 1995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으나 절판되었다.




* 163


 현재 통용되는 원자의 모형을 만들어내고 양자역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던 에르빈 슈뢰딩거[2][생략]

 


[2] 양자역학을 언급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사실 닐스 보어(Niels Bohr)코펜하겐 해석에서 드러난 양자역학의 허점을 비판하기 위해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실험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다르게 죽어 있고 동시에 살아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양자역학에서만 가능한 중첩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사고실험으로 알려지게 된다고양이 한 마리가 유명해지는 바람에 생전에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슈뢰딩거는 오늘날 양자역학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로도 평가받는다. 슈뢰딩거 본인은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겠지만.




* 181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남아 있으나[3]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냈던 프랜시스 크릭은 사실 이보다 더 거대한 발견을 이룩했다.

 


[3] 노벨상 수상과 관련한 약간의 논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논란이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X선을 이용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의 연구 자료를 참고한 왓슨과 크릭이 이중나선 구조 연구 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먼저 발표하는 바람에 그녀의 업적이 묻혀버렸다. 브렌다 매독스의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양문, 2004, 절판) 하워드 마르켈의 생명의 비밀: 차별과 욕망에 파묻힌 진실(늘봄, 2023)은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생애와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로서의 업적을 소개한 책이다.




* 190

 

 영화 속 장면처럼 뜨거운 열을 폭발시켜 모든 것을 태우는 광열 치료나 피라냐 떼 같은 라디칼을 풀어 주위의 모든 걸 먹어버리도록 만드는[4] 광역학 치료가 탄생했다.



[4] 공포영화에 묘사된 피라냐는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공격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뜯어먹는 난폭한 물고기다. 하지만 피라냐의 공격성과 먹성이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어 있다. 피라냐는 죽은 물고기의 살도 먹는다. 피라냐 떼에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들이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다. (참고문헌: 매트 브라운, 개가 보는 세상이 흑백이라고?: 동물 상식 바로잡기, 동녘, 2023, 피라냐가 사람을 물어뜯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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