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 공간, 시간, 운동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숀 캐럴 지음, 김영태 옮김, 이상재 북디자이너 / 바다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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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묘비명은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만든 것이다. 포프는 뉴턴을 과학의 교황(Pope)으로 칭송했다.



Nature and nature’s laws lay hid in night;

God said, “Let Newton be!” and all was light.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에 싸여 있다.

하느님께서 뉴턴이 있으라!” 하시자 모든 것이 밝아졌다.



뉴턴은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스펙트럼을 만들었다. 빛은 여러 가지 색이 혼합된 가시광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뉴턴은 공간, 시간, 운동에 관한 법칙들을 정립했다뉴턴의 운동법칙(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은 물체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행성운동까지 정확히 설명했다.


뉴턴이 남긴 말은 묘비명보다 제일 유명하다. 거인의 어깨라는 표현이 더 많이 알려진 뉴턴의 명언은 사실 중세 철학자가 제일 먼저 한 말이라고 한다.[주1]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lders of Giants.”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에게 어깨를 내어준 거인은 뉴턴이 태어나기 전에 활동한 과학자다. 누군가는 거인의 정체가 데카르트(Descartes)라고 주장한다뉴턴은 대학생 때 남긴 노트에 제일 친한 친구를 언급했다.



“Amicus Plato, amicus Aristoteles, magis amica veritas.”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내 친구지만, 최고의 친구는 진리다.”

 


대부분 사람은 뉴턴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과 함께 위대한 과학자로 거론한다. 이 때문에 뉴턴의 성취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천재성이 발현된 결과로 알려졌다. 그래서 우리는 뉴턴의 운동법칙보다 땅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보자마자 중력의 실체를 발견한 뉴턴의 경험담을 더 기억한다. 뉴턴의 지인은 말년의 뉴턴이 사과와 관련된 일화를 들려줬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해당 주장 진위는 불분명하다.


뉴턴을 신이 내린 과학의 교황, 또는 천재로 바라보지 말자. 과학은 가설을 세운 다음에 검증을 거쳐서 진리의 탑을 세우는 학문이다. 이 진리의 탑에 맞지 않는 또 다른 가설이 진리로 확증되면 과학자들은 공든 탑을 무너뜨려야 한다. 과학이 발전하려면 검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따라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라도 절대로 교황으로 칭송하면 안 된다과학자의 권위가 강력해지면 검증을 거부한다. 이러면 다른 가설을 제시하는 분위기가 형성할 수 없다


뉴턴의 친한 친구인 진리,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오르려고 했던 거인은 수학과 관련이 있다. 데카르트는 좌표를 도입한 수학자다. 뉴턴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미적분을 고안했다과학의 역사를 살펴볼 때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은 수리적인 도구를 많이 이용했다. 그들이 많이 즐겨 쓴 수리적 도구는 방정식이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숀 캐럴(Sean M. Carroll)의 물리학 강의 3부작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The Biggest Ideas in the Universe)’ 1공간, 시간, 운동(Space, Time, and Motion)은 뉴턴역학과 아인슈타인의 (특수, 일반)상대론이론 등의 고전물리학 법칙들을 탄생하게 만든 방정식을 소개한다대부분 이론물리학 분야 책은 깔끔하게 정리된 법칙만 보여주는 결과를 알려준다. 하지만 공간, 시간, 운동은 법칙이 만들어지고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필자와 같은 과학 비전공 독자는 결과만 보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므로 수학의 언어인 방정식이 동원되면서 가설이 이론으로 발전되는 검증 과정을 읽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걱정하지 마시라. 저자는 독자들에게 방정식을 풀어보라고 과제를 내주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으면 넘어가도 좋다. 그 대신에 방정식의 역할은 꼭 알아두자. 방정식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을 좀 더 간결한 형태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수리적 도구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위대한 생각인 이유는 뉴턴역학의 중요 개념인 절대 시간절대 공간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설명할 때 언급되는 법칙이 질량(M)-에너지(E) 등가원리다. 이것을 수학의 언어로 표현하면 ‘E=MC2’.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 방정식은 원자력, 원자폭탄, 원자력 발전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수학에 완전히 눈길을 주지 않았으면 상대성이론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리만 기하학(Riemannian geometry)을 공부했다. 똑똑한 아인슈타인이 수학을 공부했다는 표현이 낯설게 보일 것이다. 놀랍게도 사실이다


유클리드 기하학(Euclidean geometry)은 평면 위에 있는 점과 선으로 공리를 증명한다. 무조건 평면이어야 한다. 리만 기하학은 말 안장 또는 감자칩(프링글스)처럼 생긴 구부러진 곡면을 다룬다. 그래서 리만 기하학을 비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익숙했고, 당시 리만 기하학은 소수의 수학자들만 이해할 수 있었던 생소한 수리적 도구였다. 처음에 아인슈타인도 시공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혼란스러운 아인슈타인에 도움을 준 사람은 동료 물리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였다. 아인슈타인에게 수학을 가르친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와 마르셀 그로스만(Marcel Grossmann)아인슈타인의 머릿속에 흐릿하게 맴돌던 시공간 개념이 태어나도록 도운 산파였다. 곡면과 곡선도 수리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인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물리적인 가 아니라 구부러진 시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공간시간운동에 소개된 모든 방정식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저자는 생각보다 미적분의 기본 개념들이 이해하기 쉽다(50~51)’고 했다계산하는 일에 능숙하지 못한 필자는 여전히 미적분이 어렵다수학을 깊이 공부해 본 독자라면 어느 정도 친근감이 있겠지만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접근하기 힘들 수 있다하지만 수학보다 제일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에서 다룬 공간, 시간, 운동이다공간시간운동은 일상적으로 친숙한 용어이지만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설명하기 어렵다따라서 수학은 우리 눈이 볼 수 없는 공간시간운동이 무엇인지 보여주게 만드는 실용성을 갖춘 렌즈다수학자들은 이 렌즈를 갈고 깎아서 방정식을 만들었다공간, 시간, 운동을 다 읽고 난 후에 거인의 어깨’를 요렇게 바꿔 쓰고 싶었다.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수학자의 어깨 위에 서서 그가 만든 방정식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주1] 12세기 프랑스의 스콜라 철학자 샤르트르의 베르나르(Bernard of Chartres)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dwarves perched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서 말하는 거인은 고대인, 난쟁이는 현대인을 뜻한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합본 154쪽)에 윌리엄 수도사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를 언급한.


 

 “그래요, 우리는 난쟁이들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는 난쟁이는 난쟁이되, 거인의 무등을 탄 난쟁이랍니다. 우리는 작지만, 그래도 때로는 거인들보다 더 먼 곳을 내다보기도 한답니다.”


  



* 54

 




 하위헌스는 원운동이 가능하도록 돌에 주어야 할 구심력의 양을 계산하는 공식을 유도했습니다(또 그는 빛의 파동이론을 제안했고, 진자시계를 발명했으며, 토성의 위상[주2]인 타이탄을 발견했습니다. 모두 그가 자신의 전성기일 때 한 일들입니다).

 

[주2] 위성(衛星)’의 오자.





* 78

 




 아이작 뉴턴이 자신의 법칙들을 발표한 이후, 기본적인 물리계에 대한 수많은 법칙이 제안되었습니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에 관한 일련의 방정식을 제시했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의 곡률에 관한 방정식을 제안했습니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파동함수에 관한 방정식을 제안했고, 다른 많은 제안이 뒤를 따랐습니다. 이들 모두가 가진 공통점은 모두가 미분 방정식입니다. 즉 어떤 대상을 기술하든 상관없이 이들 방정식은 도함수(시간에 대한 도함수, 또 흔하게는 공간에 대한 도함수)포함하고 있다고[주3] 것입니다. 이 때문에 물리학 연구에서는 미적분이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주3] 있다는의 오자.





* 245

 




 마침내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시공간 자체의 곡률을 표현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귀중한 깨달음이지만, 이것을 적절한 방정식들의 집합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실질적인 물리학 이론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런 방정식들은 기하학, 특히 리만 기하학(Riemanian geometry)[주4]에서 나올 것입니다.

 

[주4] 알파벳 ‘n’이 빠졌다. 독일의 수학자 리만의 알파벳 철자는 ‘Rieman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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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01-24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게 읽다가 방정식 얘기가 나오는 순간 흥미가 식어 버렸어요. 수학이라니! 저는 읽지 못할 책일것 같아요. 과거의 철학자들은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수학자이기도 했죠. 제가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는 과학자는 수학을 못 했던 다윈 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cyrus 2024-01-27 20:53   좋아요 0 | URL
솔직히 수학 분야의 책을 읽을 때 계산하는 방식을 설명한 내용을 과감히 건너뜁니다. 학창 시절에 답이 나올 때까지 수학 문제를 풀곤 했는데, 화장실 가는 것을 거를 정도로 계속 자리에 앉아서 수학 문제를 풀었어요. 하지만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수능 수리 영역에서 고득점을 못 받았고요. 그래서 계산하는 일이 즐겁지 않아요. ㅎㅎㅎ
 
시간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 - 세계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알려주는 시간에 대한 10가지 이야기
콜린 스튜어트 지음, 김노경 옮김, 지웅배 감수 / 미래의창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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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자네들 가운데 아무도 이분을 알지 못한다는 것 잘 알아 두게.”

 

(플라톤, 향연216c~d, 강철웅 옮김, 아카넷, 2020년)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양자역학과 전기역학을 통합한 양자전기역학을 정립한 미국의 물리학자다. 1965년에 파인먼은 양자전기역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물리학을 배우는 대학생들에게 양자역학에 대해 농담 섞인 진담을 남겼다.



I think it is safe to say that no one understands 

quantum mechanics.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인즉슨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데다가 확률에 기반한 양자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양자역학처럼 과학자들이 설명하기 곤란하게 만드는 과학 용어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고대 로마의 교부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과학자들보다 먼저 시간의 불가사의한 실체를 인정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을 때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설명하려 하면 모르겠다.



시간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 서문은 시간을 잘 모른다고 밝힌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책은 물리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다룬다이 책을 쓴 과학 해설자(science communicator) 콜린 스튜어트(Collin Stuart)는 시간을 과학계의 가장 오래된 불가사의라고 소개한다. 그는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시간은 과학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임을 알려준다. 시간에 관한 무지를 정직하게 고백한 저자의 태도는 학생들에게 양자역학의 기기묘묘함을 알리고 싶은 파인먼의 심정과 같다.


우리는 1년은 365일로 이루어져 있다고 배웠다. 그렇지만 왜 1년이 365일이 된 이유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루의 길이는 달과 지구 사이에 생긴 중력의 영향에 따라 달라진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바닷물을 밀거나 끌어당기는 조석 현상을 일으킨다. 달의 중력을 가까이서 받는 바다의 해수면은 높아진다


바다는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얼음이 있는 혜성이 지구에 내려와서 바다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면서 거대한 얼음이 녹아 물이 된 것이다. 혜성이 아니라 물이 있는 소행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중력의 영향으로 여러 개의 소행성이 부딪히면서 우리가 아는 태양계 행성들이 생겼다. 물이 있는 소행성과 물기가 전혀 없는 건조한 소행성이 충돌하면서 생긴 태양계 행성이 지구다


바다는 달의 중력이 가까이 올 때마다 자신의 고향이 우주임을 확신했다. 우주가 그리운 바다는 달의 중력이 내민 손을 잡고선 놓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도는(자전) 지구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바다가 떠나면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행성이 되고 만다. 지구의 자전 방향은 달의 반대쪽이다. 달이 바다를 당기면, 지구가 달이 있는 쪽으로 기울어진 물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달과 지구 사이에 바다가 끼이면 지구 자전 속도는 느려지고, 하루 길이가 늘어난다. 바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달과 지구 눈치를 보면서 지내왔다. 양쪽에서 자꾸 당길 때마다 엄청 아팠을 텐데 바다는 달과 지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바다가 떠날까, 남을까 고민할 때마다 하루 길이는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다. 지금도 하루 길이가 100년마다 0.0017초씩 길어지고 있다고 한다.


시간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은 분량이 얇은 책이다. 하지만 얇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시계 안에 갇힌 시간을 부숴버리는 도끼와 같은 책이다. 시계 안에 갇힌 시계는 과거, 현재, 미래순으로 안정적으로 흐른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시간의 복잡한 특성을 알려준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 안에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있다고 생각했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개념을 블록 우주(block universe)’라고 부른다. 이곳에 시간은 존재한다. 다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완전히 없애고 싶어 한다그들에게 시간은 복잡하게 묶여 있어서 풀기 어려운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다양자역학만큼 까다로운 시간을 없애면 시간의 실체에 대한 오래된 난제가 단번에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입문서를 잘 쓰는 저자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방대한 내용을 선별하고 요약한다. 하지만 글 쓰는 과정에서 개념이나 이론에 대한 설명을 절반 정도 생략해야 한다. 

 



* 24쪽


 원자는 매우 작다. 대서양 전체의 물을 뜨는 데 필요한 티스푼의 개수보다 물 한 티스푼 속에 들어 있는 원자 수가 더 많다. 원자를 머릿속에 그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태양계의 축소판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가운데에 있는 핵은 태양과 비슷하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맴돌 듯이 전자는 핵을 맴돌고 있다.



저자는 원자 모형을 태양계 구조로 빗대어 설명한다. 저자는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가 제안한 원자 모형을 참고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좋다. 하지만 지금은 원자를 설명할 때 러더퍼드 원자 모형을 보여주지 않는다실제로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처럼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면 뉴턴 고전 역학과 전자기학으로 원자가 안정적인 형태로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왜냐하면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돌면서 전자기파가 나오기 때문이다전자는 궤도를 이탈하면서 원자핵 쪽으로 향하고정면으로 충돌한다.[주1] 러더퍼드 원자 모형은 양자역학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전에 나온 것이다오늘날 원자 모형은 양자역학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 모형에 핵 주변의 전자가 도는 궤도가 없다. 오직 전자가 존재할 확률만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자 모델을 오비탈(orbital)’이라고 한다.




* 26쪽


 윤초로 두 시간 체계를 조정하지 않고 계속 두면 언젠가는 한밤중에도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는 황당한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지구 자전 운동은 안정적이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구 자전 운동이 느려지면 시간 길이가 달라진다. 이러면 표준 시계의 시간과 맞지 않게 된다. 이런 오차를 줄이려면 1초를 늘리는 윤초를 도입해야 한다저자는 윤초가 없으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만 설명한다. 하지만 윤초가 있어도 문제가 생긴다. 2012년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이 윤초를 추가하자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됐다. 컴퓨터와 정보통신업계는 윤초로 인해 생기는 디지털 재난을 방지하려면 윤초를 폐지해야 한다고 줄곧 목소리를 냈다.[주2]  


작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도량형총회에서 2035년까지 윤초를 폐지하기로 결정되었다(윤초 폐지를 유일하게 반대한 국가가 러시아다). 그리고 올해 12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열린 세계전파통신회의에서 2035년까지 윤초를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주3] 



* 45

 

 태양 다음으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4.2광년 떨어져 있다. 빛이 우리와 프록시마 센타우리 사이의 40km나 되는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4.2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별과 우주에 관심이 많은 천문학도라면 프록시마 센타우리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미흡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프록시마 센타우리 근처에 빛나는 또 하나의 별, 알파 센타우리(Alpha Centauri)를 언급하지 않았다. 알파 센타우리 또한 태양과 가까운 별이다.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60만 년에 한 바퀴씩 알파 센타우리 주변을 돌고 있다.[주4]




* 85

 




 그러나 파달카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시속 27,500km로 지구를 돌고 있는 궤도 전초 기지인 미르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879일 동안 지상에 있는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시공간을 돌진했다.



미르 국제 우주 정거장의 오자. 미르(Мир, Mir)는 러시아어로 평화를 뜻한다.






[1] 참고문헌마쓰바라 다카히코이인호 옮김 물리학은 처음인데요수식과 도표 없이 들여다보는 물리학의 세계》 (행성B, 2018년)

 


[2] <윤초, 2035년까지 폐지된다“IT 기업에게 희소식”> 이정현 기자, 지디넷코리아, 20221121일 입력.

 


[주3] <들쑥날쑥 지구 자전 속도표준시 끼워 맞추던 윤초사라지나> 홍석재 기자, 한겨레, 20231213일 입력, 14일 수정.



[주4] 참고문헌: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유영미 옮김 100개의 별, 우주를 말하다: 불가해한 우주의 실체, 인류의 열망에 대하여(갈매나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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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파리
에리카 맥앨리스터 지음, 이동훈 옮김 / 마리앤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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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안 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아니요, 아직까진‥….” 그가 말했다. 김 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날 수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날 수 있는 것으로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안에 잡아 본 적이 있으세요?”

 “가만 계셔 보세요.” 그는 안경 속에서 나를 멀거니 바라보며 잠시 동안 표정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없어요, 파리밖에는‥….”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중에서

무진기행(민음사, 2007), 43-



2024년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겨울을 대구에서 지내는 나. 서른다섯 살짜리 대구 출신인 나는 위대한 파리라는 책을 다 읽었을 때 갑자기 할 말이 생겼다. 마음속으로 파리에게 감사하고 나서 하고 싶은 얘기를 시작한다.[주1]

 

여러분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내 질문을 마주친 여러분은 너무 황당해서 퍼뜩 대답하지 못한다. 말문이 막힌 여러분의 머리 주변에 물음표들이 ? ?’ 거리며 날아다닌다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김 형이 선술집에서 군참새 안주를 집으면서 말했던 파리. 조만간 2024년을 대구에서 만나게 되는 내가 방금 말한 파리. 이 파리는 모두 곤충이다2024년은 파리의 해다. ! 방금 말한 파리는 곤충은 아니고 프랑스의 수도다. 내년 올림픽 개최지는 파리(Paris). 전 세계 사람들이 축제의 도시로 몰려 들어오면, 날아다니는 파리도 파리행 인간의 몸을 타고 건너온다말장난 같이 들린다고? 웃자고 한 말이 아니다. 파리는 지구상에서 적응력이 뛰어난 생명체다. 파리는 어디에나 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건 물론이고, 미국의 도시 파리(Paris)[2]에도 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안 형이 되어 내게 최 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렇게 대답한 이유는? 파리는 어디든지 살 수 있으니까. 놀랍게도 파리는 바다에서도 산다. 바다에 서식하는 파리는 단 네 종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사는 파리의 생존력은 인간 입장에서 바라보면 달갑지 않다. 파리가 우리만 보면 졸졸 따라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나면 반드시 피해야 할 파리도 있다. 얼굴파리는 인간 눈과 코에 나오는 분비물을 먹는다. 눈치코치 없는 얼굴파리가 인간의 눈과 코를 접시로 삼아서 식사에 열중하면 자신의 몸속에 있는 병균을 흘린다채식 파리목에 속한 과실파리와 혹파리 유충은 식물 뿌리를 먹으면서 자란다. 유충으로 인해 뿌리가 많이 손상되면 식물의 수명은 짧아진다.


무시무시한 몇몇 녀석이 날아다닌다고 해서 파리를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곤충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파리가 없으면 자연은 엉망진창이 되고, 지구가 살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파리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꿀벌처럼 꽃가루를 먹으면서 살아가는 파리가 있다. 꽃 찾으러 부지런하게 날아다니는 이들 덕분에 꽃들의 수분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열매가 맺어진다.


부식성 파리목에 속한 파리는 작은 청소부. 부식성(腐食性)은 사체나 썩은 고기를 먹는 생물의 식성을 뜻한다. 하지만 부식성 파리목은 말라 죽은 식물과 썩은 낙엽도 좋아한다. 부식성 파리목이 없으면 썩지 못해서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사체와 죽은 식물이 즐비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구는 거대한 쓰레기장이 된다.


위대한 파리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파리의 다양한 생활상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파리의 매력에 푹 빠진, 파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책에 파리뿐만 아니라 파리의 친척 모기도 등장한다. 모기는 밤이 되면 피를 훔쳐 먹고, 잠을 깨우게 만드는 성가신 녀석이다. 그런데 모든 모기가 피만 먹으면서 사는 건 아니다. 수컷 모기는 꽃가루를 먹는 채식주의자다. 암컷 모기도 꽃가루를 좋아하는데, 산란하기 전에 피를 섭취한다. 핏속에 있는 단백질은 모기알을 발달시키는 영양분이다. 우리의 소중한 피를 먹을 수밖에 없는 모기의 사정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기도 사랑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다.

 

알면 사랑한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자주 강조하는 말이다. 이 단순한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자. 알지 못하면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 없는 감정으로 나와 다른 존재를 대하면 그 관계 속엔 편견과 증오만이 남아 있다. 사랑까지 바라지 않는다. 일단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잘 알지 못하면서 다른 존재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 등을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 파리를 사랑하는 위대한 파리의 저자는 지금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파리들이 많다면서 행복한 불만을 드러낸다. 파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면 사랑한다.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파리가 있다는 사실만은 꼭 알아 두자.






[주1] 서평 첫 두 문장은 서울 1964년 겨울』 속 문장 일부를 빌려서 섞어 쓴 것이다모든 인용문의 출처는 무진기행(민음사).

 


*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중략)

 

* 그는 내가 스물다섯 살짜리 시골 출신, 고등학교를 나오고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하고 나서 군대에 갔다가 임질에 한 번 걸려 본 적이 있고 (중략)

 

* 나는 새카맣게 구워진 군참새를 집을 때 할 말이 생겼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군참새에게 감사하고 나서 얘기를 시작했다.

 


[2] 미국 아칸소주 로건 카운티(Logan County)에 있는 도시.






<cyrus의 주석>



   

* 166, 173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검정파리과의 검정파리 중 일부 종은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사체도 탐지할 수 있다. 무려 16킬로미터 떨어진 사체를 찾아온 일도 있다.

 하와이에서 일하는 법의곤충학자인 매디슨 리 고프(M. Lee Goff) 박사[3]는 파리들의 이동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는 것도 알아냈다. 불과 10분 만에 온 사례도 있다. 파리는 그만큼 신속하며 또 그래야 한다. 부패하는 사체는 그 속성상 상태가 계속 변하는 식량 자원일뿐더러 다양한 성장 과정의 다양한 곤충 종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식량 자원이기 때문이다. (중략)

 당시 고프는 의약품, 특히 코카인이 구더기의 성장에 주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책 기소하는 파리(A fly for the Prosecution)[3]에서, 실험용 토끼에서 코카인을 부여하기 투여하기 위해 동물보호 및 사용위원회에 출원했던 얘기, 그리고 합법적으로 코카인을 구매하기 위해 겪었던 일들을 매우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3] M. 리 고프의 책 기소하는 파리파리가 잡은 범인(황적준 옮김, 해바라기, 2002)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으나 절판되었다.





* 363~364

 

 영국의 연구자 데이브 굴슨(Dave Goulson)[주4]과 동료들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80년이 되면 기후 변화로 인해 집파리 개체수가 2005년의 244퍼센트로 늘어날 거라고 한다. 파리를 좋아하는 나에게도 너무 많은 수다. 기후 변화의 구체적 양상과 그것이 인간과 환경에 줄 영향을 완벽히 점칠 수는 없다. 그러나 파리의 삶에도 영향을 줄 것은 확실하다.



[4] 데이브 굴슨은 기후 변화로 인해 곤충이 멸종되는 현상을 우려하는 곤충학자다. 그는 자신의 책 침묵의 지구: 당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가장 작은 종말들(이한음 옮김, 까치, 2022)에서 곤충 멸종이 지구의 풍요로운 환경을 파괴하는 지름길임을 경고한다. 굴슨은 벌 연구 권위자로 유명한데,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이준균 옮김, 자연과생태, 2016년, 절판)도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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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1-21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프랑스 파리에 관한 도서로 생각하고 그냥 패스했는데.ㅠㅠ 소개글 감사하게 읽었어요.

페넬로페 2023-11-2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면 사랑하게 된다지만
그래도 어쩐지 곤충 파리를 사랑하기에는~~
음, 흠흠 ㅎㅎ

새파랑 2023-11-21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아다니는 파리군요. 저는 프랑스 파리를 생각했습니다 ㅋㅋ

파리를 사랑할 수 있다니 좀 신기하긴 합니다~!!

초란공 2023-11-22 18:05   좋아요 0 | URL
우연히 <달과 6펜스>를 들춰보다가 이런 대목이 나와서 새파랑님 생각이 났습니다. 소설의 화자가 부인과 아들을 버리고 떠난 스트릭랜드를 만나러 갔다가 스트릭랜드를 만나서 “파리를 잘 아십니까?” 이렇게 묻더라고요. ㅋㅋㅋ cyrus님은 “그럼요!”라고 대답하셨을듯 ㅋ

짜라투스트라 2023-11-2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다양한 파리도 있군요^^

서니데이 2023-11-22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태계에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파리랑 모기 싫어요.
이제 추워졌으니 내년까지는 자주 보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인데.^^;
cyrus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은빛 2023-11-22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는 아무래도 사랑까지 하기는 어렵죠. 날파리류라고 흔히 부르는 작은 날붙이들은 그래도 크게 귀찮지는 않은데, 파리는 그 날개짓 소리와 크기가 있어서 아무래도 거슬리는 건 사실입니다.

저는 거미는 좋아하는 편입니다. 거미가 모기를 비롯해 작은 벌레들을 해결해주니 좋아할 수 밖에 없죠. 저는 집안 구석 구석 거미집을 발견해도 잘 제거하지 않고 놔둡니다. 거미를 직접 잡는 일도 없구요.

예전에 생태전문 잡지사에 일할 때 들었는데, 우리나라에 곤충 연구자가 많지 않은데, 특히 파리 연구자는 거의 없다고 하더라구요.

순수한 생물학으로서 파리 연구보다도 범죄 수사를 위한 파리 연구가 더 활발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눈부신 심연 - 깊은 바다에 숨겨진 생물들, 지구, 인간에 관하여
헬렌 스케일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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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바다의 표면이 고요하다고 해서 깊은 곳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요슈타인 가아더, 소피의 세계: 소설로 읽는 철학(합본, 장영은 옮김, 현암사, 2015) 중에서, 448쪽 - 



인명사전을 펼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은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이다.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구 소련의 우주인이다. 1961412일 가가린이 탄 우주선 보스토크 11시간 29분 만에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가가린은 눈동자 속으로 들어온 지구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평생 단 한 번으로 남게 될 지구와의 눈맞춤을 이렇게 술회했다.



 “우주는 매우 어두웠지만 지구는 푸르렀습니다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거대한 지구는 가가린의 기억 속에 푹 박혔다1990년 미국이 쏘아 올린 우주선 보이저 1가 우주 한가운데서 유유히 움직이는 지구를 촬영했다. 그 사진을 본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검은색 종이에 살짝 찍어놓은 점처럼 보이는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렀다.


우주는 지구 밖에만 있는 건 아니다. 지구는 아주 오래된 우주를 품고 있다. 지구가 품고 있는 이 우주는 보는 사람에 따라 푸르게 보일 수 있고, 어둡게 보일 수도 있다지구에 있는 검푸른 우주의 정체는 바로 심해다대부분 사람은 우주에 외계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다. 거대하면서도 텅 빈 우주에 인간 이외에 생명체가 살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바다 깊숙한 곳에 있는 우주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 특히 심해어의 생김새는 마치 외계 생명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독특하다. 간혹 심해어가 바다의 표면에 나타나서 인간의 손에 포획되거나 이미 죽은 상태로 해변에 발견되면 정체불명의 괴물로 오해하기 쉽다.


미국의 소설가 H. P.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공포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라고 말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보면 두려움을 느낀다. 우주와 심해는 우리에게 호기심과 공포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그렇지만 호기심이 공포를 억누르고 관심 어린 눈길을 천천히 넓히면 거대하고도 어두운 미지의 세계 속에 있는 눈부신 빛 한 줄기를 볼 수 있다눈부신 심연》은 검푸른색에 가려진 심해 속의 밝은 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심해 탐사선과 같은 책이다심해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지만,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심해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이 책에 탑승하면 된다. 종이로 만든 심해 탐사선으로 심해를 탐험하면 심해의 엄청난 수압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의의 사고를 피할 수 있다. 


심해는 아주 고요한 검푸른색으로만 채워진 깊숙한 우주가 아니다. 눈부실 정도로 알록달록한 우주다. 심해 생물들은 발광 기관을 가지고 있다. 빛이 없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심해 생물은 반딧불이처럼 스스로 빛을 낸다. 그들의 몸에서 나는 빛은 청색과 녹색이 섞여 있다. 알록달록 빛나는 심해 생물들로 가득한 심해는 어둡지 않다. 그곳에 각양각색 빛나는 생명이 명확하게 보인다


심해는 최초의 생명체가 태어나고 자랐던 아주 오래된 요람이기도 하다. 세포는 모든 생명체의 시작점이다. 원시 세포는 엄청 뜨거운 물을 마구 뿜어대는 열수구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지금도 열수구 주변에 진귀한 심해 생물들이 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학명이 없는 미지의 생물들도 있다.


호기심이 공포심보다 많으면 심해는 더 이상 낯설고 두려운 우주로 보이지 않는다. 심해의 수심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심해에 처치 곤란한 쓰레기와 핵폐기물을 버리자고 제안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가 소중히 품고 있는 우주이자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태어난 뜨거운 요람에 쓰레기를 버리자고? 인간은 공룡과 곤충보다 늦게 나타난 동물인데도 이기적이다. 심해를 검푸른 광산으로 여기는 국가와 기업들은 철, , 아연, 코발트 같은 광물을 채굴하는 사업을 계획한다. 인간의 탐욕스러운 손길이 우주뿐만 아니라 심해까지 뻗을 기세다. 심해가 자원이 풍부한 광산으로 알려지면 심해 생물의 보금자리는 파괴된다. 집을 잃은 심해 생물은 살기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가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알록달록한 생명 다양성의 보고인 심해가 쓰레기장 혹은 광산이 되면 그곳은 빛나는 생명 한 점조차 볼 수 없는 침묵의 우주가 될 것이다.


생명을 키우는 요람이 된 심해는 느릿느릿 흔들거린다. 바닷속 뜨거운 요람을 빠르게 흔들고 싶은 인간의 손은 필요 없다. 심해는 자신의 속도에 맞춰 움직였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 지금도 심해는 뜨겁고, 살아있는 존재들을 위해 천천히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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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책> ‘하루 10분 벽돌 책 함께 읽기’ 프로젝트의 네 번째 책은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의 소설 소피의 세계








사진 출처: <일글책> 인스타그램





첫 번째 벽돌 책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장미의 이름(교보문고 한정 판매 디 에센셜 2, 열린책들, 2022)이었다. 나는 첫 번째 벽돌 책 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완독 성공했다. 두 번째 벽돌 책은 단테(Dante)신곡(열린책들, 2022), 세 번째 벽돌 책은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총 균 쇠(김영사, 2023)였다. 두 번째, 세 번째 읽기 프로젝트는 참여하지 않았다.

 

소피의 세계철학사를 서간 형식으로 쉽게 풀어 쓴 소설, 철학을 처음 접해보기 시작한 독자들이 많이 추천받는 책이다.



















* [대구 책방 <일글책> ‘하루 10분 벽돌 책 함께 읽기프로젝트 네 번째 책] 요슈타인 가아더, 장영은 옮김 소피의 세계(현암사, 2015)

 

* 브라이언 클레그, 박은진 옮김 산만한 건 설탕을 먹어서 그래: 과학의 50가지 거짓말(드루, 2023)




소피의 세계에 과학자 갈릴레이뉴턴의 업적이 언급되는데, 뉴턴에 대한 내용에 당연히 그 유명한 뉴턴의 사과일화도 나온다.



 “뉴턴은 이러한 인력(중력)이 보편적이라는 점을 강조했어. 다시 말해 어디에서나, 천체들 사이에서도 인력이 작용한다는 거야. 어느 날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가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고 해. 그는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달도 사과를 당기는 힘과 똑같은 힘에 의해 지구로 끌어당겨지며 영원히 지구 둘레를 도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


(308쪽)

 


뉴턴의 사과일화는 약간 과장된 신화다. 뉴턴과 친분이 있는 윌리엄 스터클리(William Stukeley)라는 의사가 쓴 뉴턴 전기(다른 책에서는 스터클리의 회고록이라고 되어 있다)에 따르면 뉴턴과 스터클리가 대화를 나누다가 중력의 영향을 받은 사과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로 뉴턴은 사과나무에 가서 그곳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자기 눈앞에 우연히 떨어진 사과 한 알을 보자마자 중력의 실체를 단번에 발견했다고 보기 어렵다. 과학 이론과 법칙이 성립되는 과정은 우리에게 알려진 일화와 다르게 극적이지 않다. 가설이 반증 불가능이라는 결론으로 만장일치할 때까지 계속 검증되어야 한다.


소피의 세계의 주인공 소피 아문센(Sophie Amundsen)는 매일 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편지를 받는다. 소피에게 편지를 보내는 철학 선생 알베르토 크녹스(Alberto Knox) 철학에 한층 다가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준다. 그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철학적 질문들을 하면 된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어도 과학은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검증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 짐 알칼릴리, 김성훈 옮김 과학의 기쁨: 세상을 구할 과학자의 8가지 생각법(윌북, 2023)




영국의 과학 해설자 짐 알-칼릴리(Jim Al-Khalili)는 과학의 기쁨 서문에서 과학이 성공적으로 발전하려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의지를 전문 용어로 표현하면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cepticism)과학적 회의주의는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초자연 현상과 유사 과학을 비판하기 위한 태도다




















* 마이클 셔머, 이효석 옮김 《스켑틱: 회의주의자의 사고법(바다출판, 2020년)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서문, 이상헌 옮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촛불(사이언스북스, 2022년)


* 칼 세이건, 홍승효 옮김 브로카의 뇌: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사이언스북스, 2020년)




가장 유명한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지만, 과학적 회의주의의 선구자(과학적 회의주의자들에게는 지적 스승으로 추앙받는)는 칼 세이건(Carl Sagan)이다. 대부분 독자는 세이건을 코스모스의 저자로, 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과학 해설자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유사 과학을 비판하는 일에 앞장섰던 그의 생전 활동을 인상 깊게 본 독자는 세이건이 만든 헛소리 탐지 장치를 먼저 떠올린다


















* [스페셜 에디션]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공저, 이민아 옮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디플롯, 2023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공동 저자인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버네사 우즈(Vanessa Woods)는 책 뒷부분에 실린 감사의 말에 회의적 태도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과학에서 이견과 논쟁이란 건강하고도 신나는 일이다. 반론이 연구의 동력이 되어 진리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비약적으로 진전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진리를 찾고자 하는 과학자가 의지해야 할 것은 회의적 태도와 실증적 토론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구판, 감사의 말, 302~303)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질문을 던지고, 관찰하고 실험하고 토론하려는 의지가 있다. 과학의 궁극적 목표는 완전무결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수정하는 일이다.






※ 《과학의 기쁨정오표



* 36~38





 과학이 다양한 집단에 의해 소속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과학적 지식의 특정 역영에 관한 합의가 쌓일 때, 우리는 그 객관성과 진실성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역영 영역





* 114






아이슈타인 아인슈타인





* 135

 





 음모론에 빠진 사람 대부분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합리적인 분별력이 있는 사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은 단지 타인의 공포, 불안, 소외감을 먹고 사는 자들에게 현혹되었을 뿐입니다. 특히나 위기의 시기에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 시기는 의심을 씨앗을 심고 온갖 거짓 아이디어를 부채질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죠.



의심을 씨앗을 심고 → 의심의 씨앗을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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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1-06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고, 하루 10분으로 벽돌책 어느 세월에...
그리고 소피의 세계 10분만 읽기 어려울 걸? 넘 재밌어서.
너라면 앉아서 다 읽는다고 할걸? ㅋ
이 책 처음 읽기 시작할 때가 생각나는군.
이 책으로 철학에 관심 좀 생길까 했더니 이 나이 먹도록 철학은 영 친해지질...ㅠ
그래도 네가 요책을 읽는다고하니 반갑구먼.ㅋㅋ

cyrus 2023-11-20 06:16   좋아요 0 | URL
지금 <소피의 세계> 3부 절반 정도까지 읽었어요. 얼른 다 읽고 <소피의 세계> 서평 쓰려고요.. ㅎㅎㅎ

얄라알라 2023-11-17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다들 <총 균 쇠> 중 ‘총‘만 읽었다 농담하시는 그 책...저도 진짜 힘들게 읽었는데
저런 방식으로 보증금(?)까지 걸고 자극받으며 읽으면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겠네요^ ^

페크pek0501 2023-11-17 14:59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 님, 정말 웃기십니다. 총만 읽었다는 표현 때문에 막 웃었습니다. 저도 총균쇠를 갖고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안 읽었어요. 저걸, 언제 읽나? 하고 있죠.
저도 일단 총만 읽어 둬야겠습니다.ㅋㅋ

cyrus 2023-11-20 06:17   좋아요 3 | URL
책 완독 인증을 하루 빠지지 않고 올리면 책방지기가 주는 특별한 선물을 받을 수 있어요. ^^

페크pek0501 2023-11-17 15: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타가 많네요. 출판사에는 꼼꼼히 교정 보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해요...

cyrus 2023-11-20 06:23   좋아요 1 | URL
자신이 쓴 책에 오타가 너무 많으면 글을 열심히 고쳐 쓴 저자 입장에서는 허무함과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질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