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와 자본주의》 3장 제목은 ‘식민화와 가정주부화’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식민화’‘가정주부화’가 3장의 핵심 내용입니다. ‘가정주부화’의 의미는 앞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장 ‘혼자’ 읽기』 편에 언급된 적이 있어요. ‘가정주부화’를 설명한 내용을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처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 아래서 가사노동의 역할을 분석하면서였다. 이 운동은 198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하는 돌봄 노동과 양육이 남성 임금을 보조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축적에도 기여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게다가 여성을 가정주부로 규정함으로서, 내 방식으로 말하면 ‘가정주부화’함으로써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무급 노동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고, 국민총생산에도 기록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것, 즉 ‘공짜’로 여겨졌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가져온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성이 임금노동은 남성, 이른바 부양책임자를 보충하는 것으로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개정판 서문, 20쪽)

 

 

3장에서는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부르주아지(bourgeoisie) 백인 여성이 ‘가정주부화’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읽지 않은 책]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문예출판사, 2017)

 

 

 

‘가정주부화’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의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사치와 자본주의》(문예출판사, 2017)를 참고합니다. 제가 좀바르트의 책을 읽지 않은 관계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가정주부화’에 대한 미즈의 주장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은 가부장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르주아 여성을 ‘가정주부’로 길들이려고 했으며 이 과정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가 맞물려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이 부르주아 여성들만 착취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식민지 여성’‘프롤레타리아 여성’도 착취 대상이었습니다.

 

 

 

 

 

 

 

 

 

 

 

 

 

 

 

 

 

 

* 주경철 《대항해 시대》(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 [품절] 올라우다 에퀴아노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해례원, 2013)

 

 

 

‘자본가’의 위치에 선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은 식민지 정복을 통해서 자본의 축적 이익을 증대시키려고 했습니다. 상공업 또는 무역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새로운 시민계급의 등장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할 것만 같은 시대에 항상 눈부신 빛만 있는 건 아니죠. 자본가 대부분은 공정한 시장 경쟁을 무시한 채 노예노동과 강제 노동으로 이익을 늘렸습니다. 미즈는 큰 자본 축적이 이루어진 16~17세기 유럽의 특정 시기를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일어난 시기로 보았습니다.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 탐험가와 무역가들은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무기를 이용해 식민지를 정복하고 약탈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탐험가들은 식민지를 노리는 ‘사냥꾼’이 되어 ‘자연’에 속하는 식민지와 식민지인들을 손쉽게 정복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식민지인을 ‘문명화가 될 존재’로 바라봤고, 식민지 여성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 올라우다 에퀴아노(Olaudah Equiano)는 1789년에 펴낸 자서전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해례원, 2013)를 통해 백인에게 학대받고 멸시당하며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인 노예제 본성을 비판했습니다. 이 책에 식민지 여성을 잔혹한 방식으로 대하는 백인 남성의 행동을 묘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라티오, 2014)

* 리처드 D. 앨틱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아카넷, 2011)

* 정진희 엮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책갈피, 2015)

* [No Image] 아우구스트 베벨 《여성론》(까치, 1990)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기계의 발명과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양식의 기계화, 공업화로 산업혁명이 전개됐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영국은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세계의 공장’으로서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황금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자본가들은 여전히 ‘자본의 원시적 축적’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쓴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라티오, 2014)은 공장에 일하는 노동계층의 비참한 삶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책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발산하는 빛이 화려한 만큼, 그림자 또한 어둡고 깊었습니다.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던 것이지요. 1857년에 발생한 경제 대공황은 ‘낙관적 진보’를 믿었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게 적잖이 충격을 줬습니다. 대공황을 시작으로 경제가 위축되었고, 빈민층이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이때 마르크스, 엥겔스 등이 자본가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인 아우구스트 베벨, 클라라 체트킨 등의 사회주의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여권 신장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2장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깠던(…) 미즈는 3장에서 베벨과 체트킨이 주장한 여성해방론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은 엥겔스와 함께 당시로는 여성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적 이론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이들로 꼽히지만, 이들 역시 노동계급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아내와 어머니를 가진 제대로 된 가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벨은 여성의 고용을 줄여서 어머니가 자녀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파괴를 안타까워했다. 베벨은 성별노동분업의 변화나 가사노동을 남성과 공유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여성은 주로 어머니였다.

이는 체트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프롤레타리아 반페미니즘’에 대해 싸웠지만, 그녀 역시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노동자로 보기보다는 아내이자 어머니로 보았다.

  맑스,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체트킨은 자본주의가 남녀 사이에서 착취의 평등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부르주아 페미니즘처럼 남성에 맞서서 싸울 수 없으며, 남성과 함께 자본가 계급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사민당 내에서는 아주 긍정적인 반향을 낳았다.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와 아내로 보는 부르주아적 생각이다. (3장 241~242쪽)

 

 

고전적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미즈의 주장은 ‘팩트 폭력’에 가깝습니다. 베벨은 산업화의 영향으로 여성의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봤고, 가족이 해체하는 현상을 걱정했습니다. 체트킨은 노동해방을 달성하기 위해선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참여를 동참했는데요, 그녀는 노동해방 운동에 동참하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프롤레타리아 남성의 아내’이자 ‘다음 프롤레타리아 세대를 가르치는 어머니’ 역할로 한정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해방 투쟁은 부르주아 여성처럼 자기 계급의 남성에 맞서 싸우는 투쟁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전체 자본가 계급에 맞서 자기 계급 남성과 공동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자유로운 시장 경쟁 참여를 방해하는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기 계급 남성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돌려주고 영원히 보장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궁극적 목표는 남성과의 자유경쟁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지배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클라라 체트킨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함께해야만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66쪽)

 

 

 사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어머니와 아내의 의무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 선전의 과제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위해 이 과제를 전보다 더 잘 해 낼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가족의 상황이 좋을수록, 여성이 가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할수록, 더 잘 투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의 교육자 · 양육자 구실을 더 잘할수록 자녀를 더 잘 의식화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 자녀들이 우리 세대의 뒤를 이어 기꺼이 열정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해방에 헌신하며 계속 싸워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의 프롤레타리아가 “내 아내!”라고 말할 때 그는 마음속으로 “내 이상의 동지이며 투쟁의 전우이며 미래에 투쟁할 내 아이들의 어머니”라고 덧붙이게 될 것입니다. 남편과 자녀를 계급의식으로 채우는 수많은 어머니와 아내는 이 대회에 참가한 여성 동지들만큼이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클라라 체트킨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함께해야만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72쪽)

 

 

 

미즈는 여성을 ‘아내’와 ‘어머니’로 보는 체트킨의 인식이 그녀가 비판했던 자유주의 부르주아 페미니스트의 생각과 같다고 비판합니다. 따라서 마르크시즘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축적 과정에서 ‘가정주부’가 되는 여성의 문제를 보지 못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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