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무법자 -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케이트 본스타인 지음, 조은혜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영화 <마징가 Z>에 나오는 아수라 백작은 반은 남자, 반은 여자 얼굴을 가진 악당이다. (그녀)의 모습은 자웅동체에 가깝다. 아수라 백작은 상황에 따라 유리한 얼굴을 들이민다. 자웅동체는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 태어난 헤르마프로디토스. 플라톤향연에서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언급한 자웅동체를 인용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태초에 인간의 성()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였다고 한다. 여자와 남자, 그리고 이 둘이 합쳐진 자웅동체. 가장 완벽한 인간의 원형인 자웅동체는 신의 질투를 받아 반으로 분리된다.

 

강한 남자’, ‘예쁜 여자젠더 이분법(Binary gender) 사회가 만들어낸 전통적인 성적 규범이다. 이 사회에서 예쁜 남자강한 여자는 괴물 취급을 받았다. 고정된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조하는 성적 규범이 무너지면서 남성 같은 여성’, ‘여성 같은 남성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해 자유롭고 열린 사고로 양성(兩性)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성이나 여성에 갇혀 있기보다는 필요하다면 다른 성의 장점을 받아들여 인생을 더욱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이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트랜스섹슈얼과 트랜스젠더(Transgender).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여성학 및 퀴어 이론(Queer theory)에서는 두 단어의 의미를 구분한다. 트랜스섹슈얼은 성전환을 위한 의료 조치를 받고 싶은 사람 혹은 의료 조치를 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흔히 수술을 통해 완전히 성전환한 사람을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의료 조치를 받지 않고 생물학적 성별을 거부하는 사람도 트랜스젠더에 포함된다. 이런 사람들은 이성의 옷을 입는 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로 지내기도 한다.

 

이성애자가 많은 사회에서 게이, 레즈비언을 비롯한 성 소수자들에게는 수많은 편견이 뒤따른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성 소수자들은 조심스레 벽장에 나온다. 그들은 조금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 소수자들에게 그 선택은 어떤 의미일까. 미국 성 소수자 운동을 주도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자 MTF 트랜스젠더(male-to female transgender,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성 정체성은 여성인 사람)케이트 본스타인젠더 무법자(바다출판사, 2015)는 독자들을 향해 도발적으로 묻는다. “왜 성 소수자는 남성’, ‘여성이라는 젠더 체제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가?” 또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왜 사람들은 젠더 체제를 포기하지 못할까?”

 

그녀는 젠더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젠더 무법자(Gender Outlaw)’가 되라고 말한다. 젠더 무법자는 젠더 없는 삶을 산다. 젠더 무법자는 남성또는 여성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틀에 박힌 젠더 이분법에 억지로 맞추지 않는다. 젠더 무법자의 성 정체성은 유동적이다.

 

 

젠더 유동성은 자신이 무얼 하는지 인식하면서 길든 짧든, 어떤 변화를 겪든 간에 자유롭게 한 성별 아니면 무한한 젠더 중 여럿이 될 수 있는 능력이다. 젠더 유동성은 젠더의 규칙이나 경계 따위를 모른다. (92)

 

 

젠더 체제의 경직성은 성 소수자의 다양한 관계 맺기를 부정하고,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의 결합만을 인정하는 문화의 편협함은 성 소수자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그녀는 젠더 없는 삶을 인정하지 않고 한쪽 성별(남성)이 또 다른 성별(여성)을 억압하는 젠더 체제를 저격한다. 특히 남성 특권은 젠더 체제를 지탱해주는 교활한 권력이다. 남성이 이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한다면 남성과 여성 간의 불균형한 역학 관계가 무너진다. 젠더 체제를 비판하는 저자의 입장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을 탐구하여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 자체를 전복하려는 급진적 페미니즘과 닿아 있다.

 

젠더 무법자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나온 퀴어 이론의 고전이지만, 개인의 젠더 선택을 지지하고, 젠더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유희적 특성을 가진 대안으로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을 내세운 저자의 입장은 지금 봐도 급진적이다. 그래서 트랜스섹슈얼을 비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권리보다 성 소수자 권리 신장에 더 초점을 맞춘 본스타인의 여성 운동을 비판한다.[1] 그들의 공세에 맞서는 본스타인은 트랜스섹슈얼의 여성 운동을 배제하는 페미니스트를 젠더 체제를 유지하는 데 얽매인 분리주의자라고 응수한다. 젠더 무법자7장은 본스타인이 직접 쓴 퀴어 연극작품 숨겨진 아, 젠더이다.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개인의 권리나 능력이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권리는 젠더 체제에 익숙한 이성애자가 독점한 것이 아니다.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역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으며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누군가를 사랑할 권리가 있다. 젠더 이분법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체제라고 믿는 사람들, LGBT비정상적인 변태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1] 쉴라 제프리스 래디컬 페미니즘(열다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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