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귀신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유령과 귀신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두 단어의 의미에 약간은 차이가 있다. 국립국어원의 설명[1]에 따르면 귀신은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 넋’, ‘사람에게 화()와 복()을 내려주는 신령이다. 유령은 죽은 사람의 혼령’, ‘죽은 사람의 혼령이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 ‘이름뿐이고 실제는 없는 것이다. ‘신령으로서의 귀신은 무속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상숭배의 대상이 되는 조상신을 제외하고 온갖 잡귀와 잡신은 어르거나 달래고 혹은 위협해서 축출해야 하는 존재이다. 기독교가 보는 유령은 일반적인 귀신 개념과는 다르다. 기독교인들은 신과 대립하는 악마, 마귀를 유령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성령의 힘을 받은 기독교인은 몸에 깃들인 악령을 퇴치하는 엑소시스트(exorcist)로 활동하기도 했다.

 

 

 

 

 

 

 

 

 

 

 

 

 

 

 

 

 

 

* 로저 클라크 유령의 자연사(글항아리, 2017)

 

 

 

피터 언더우드(Peter Underwood)라는 영국의 고스트 헌터(ghost hunter)는 유령을 여덟 가지 존재로 분류했다.[2]

 

 

1) 엘리멘탈(elemental)

2)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3) 전통적 유령

4) 역사적 유령

5) 정신적 각인의 구현

6) 위기유령 또는 생사유령

7) 타임 슬립(time slip)

8) 생자의 유령

 

 

엘리멘탈은 묘지를 떠도는 유령이다. 폴터가이스트는 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나 비명이 들리거나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거나 파괴되는 현상이다. 여기서 잠깐,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상식 하나를 알려주겠다. 폴터가이스트는 독일어인데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독일 종교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이다.[3] 전통적 유령은 죽은 자의 혼령이다. 전통적 유령은 살아있는 자의 존재를 인식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들과의 영매(channeling, 귀신과의 대화)가 가능하다. 역사적 유령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의 혼령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백악관에 출몰했다는 링컨(Abraham Lincoln)의 유령이다. 링컨의 영부인은 링컨의 유령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 정신적 각인의 구현정신적 에너지가 특정한 장소, 특정한 날짜에 방출되어, 극단적 상태의 정신이 심령 존재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위기유령 또는 생사유령은 가까운 지인이 죽음 또는 생명의 고비를 넘기고 있는 순간에 그들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는 현상이다. 타임 슬립(시간 여행)은 어떤 이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는 현상이다. 타임 슬립을 통해 만난 과거의 사람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땐 이미 죽은 자들이며 그들의 정체는 유령이라 할 수 있다.

 

 

 

 

 

 

 

 

 

 

 

 

 

 

 

 

 

 

* 최기숙 처녀귀신(문학동네, 2010)

 

 

 

우리나라 귀신은 딱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남자 귀신과 여자 귀신.[4] 전설 또는 야담에 등장하는 남자 귀신은 조상신에 속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자 귀신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후손들은 집안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상신을 기리기 위한 제사를 지낸다. 여자 귀신은 한 맺힌 존재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사랑의 배신을 맛보거나 심지어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위협을 당한 여성은 죽어서 원귀(冤鬼)’가 된다. 여자 귀신은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품으면서 구천을 떠돌기만 한다. 그래서 여자 귀신은 자신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구원의 대상 앞에 나타나는데, 대부분 관직이 높은 사대부들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모습은 남성의 능력을 부각하는, ‘남성을 위한 클리셰이다.

 

 

 

 

 

 

 

 

 

 

 

 

 

 

 

 

 

*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나래북, 2014)

* 다니엘 디포 빌 부인의 망령(현인, 2014, e-Book)

 

 

 

한국의 여자 귀신은 죽어서야 자신들의 억울함을 전달할 수 있는 을 가진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대상은 남성으로 한정되었다. 여자 귀신의 호소를 이해하고, 그녀를 도와주는 남성의 모습은 현실의 남성의 우월함을 강조할 뿐이다. 이런 젠더 구조가 고착되면서 여자 귀신은 원한이 서린 무시무시한 존재’, 즉 오늘날의 처녀 귀신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므로 여자 귀신이 살아있는 여성앞에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는 설정의 공포소설(또는 유령 이야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다니엘 디포(Daniel Defoe)빌 부인의 망령페미니즘 관점으로 분석할 가치가 있는 글이다. 이 이야기의 서사 구조는 단순하다. 선량한 버그레이브 부인 앞에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빌 부인의 영혼이 등장한다. 버그레이브 부인은 오랜만에 만난 빌 부인을 반갑게 맞이하고, 그녀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다. 살아있는 자와 유령이 너무나도 차분하게 대화하는 장면이 이채롭다. 혹자는 이 장면이 지루하거나 유령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여성의 대화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받은 여성들이 연대하는 자매애(sisterhood)’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여성은 공통으로 남성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 바그레이브 부인은 품행이 바르지 못한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한다. 그래서 빌 부인의 영혼은 남편에게 괴롭힘당하는 바그레이브 부인을 염려하고, 그런 남편을 미치광이라고 부른다.

 

 

버그레이브 부인이 빌 부인에게 차를 마시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마셔도 상관은 없지만 그 미치광이(버그레이브 부인의 남편을 말한다)가 네 그릇을 깨뜨려버리지는 않았니?”라고 말했다. [5]

 

 

빌 부인의 남동생은 버그레이브 부인의 영매 체험을 미치광이의 잠꼬대라고 비난한다. 남성은 유령을 목격하는 여성에서 나타나는 감정 상태, 공포이성이 부족한 여성들의 특성으로 치부했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성적인 남성은 항상 감정이 절제된 상태를 지향했고,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 세계를 거부했다. 그러나 버그레이브 부인은 차분하게 친구의 유령을 맞이했고, 자신이 만났던 친구의 정체를 뒤늦게 확인했을 때도 매우 놀라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버그레이브 부인은 영혼을 목격한 이성적인 존재이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남성들이 버그레이브 부인을 비난할수록 그녀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버그레이브 부인과 빌 부인의 유령은 남성들이 가로막은 현실적 장벽에 잠시나마 벗어나 환상의 경로속에서 여성으로서의 존재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대화로 풀어냈다.

 

여자 귀신이 발화자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권력을 가졌고, 지혜로운 남성 앞에 등장했다. 여자 귀신의 한을 풀어준 남성은 명예를 얻었다. 어렸을 때 나는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남성이 지혜로운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여자 귀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태도와 행동들은 남성의 영웅 심리가 반영되어 있을 뿐, ‘여성 문제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다. 이야기 속 권력자 남성들은 여자 귀신 앞에서도 지배적 위치를 강조하기 위해 남성성을 수행하고 있었다.

 

 

 

 

 

 

 

 

 

 

 

 

 

 

 

 

 

* 유민석 메갈리아의 반란(봄알람, 2016)

 

 

 

나는 유령과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성으로부터 억압받은 여성이 죽어서 남성을 복수한다거나 페미니스트 귀신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살아있을 때 말해야 한다. 여성을 침묵시켜 온 여성 혐오에 대항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 편견 등을 물리치려면 남성 화자의 권력을 모방하여 저항의 언어를 발산해야 한다. 메갈리아의 미러링(mirroring)여성 혐오에 질식된 여성들이 벼랑 끝에서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6]이다. 그 비명의 숨은 의도를 이해하는 남성들은 얼마나 될까? 다만 미러링 대상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성소수자, 반 페미니즘과 무관한 인물일 경우, 또 다른 혐오와 사회 불신을 양산한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소모적인 갈등만 조장하는 혐오와 사회 불신이야말로 귀신과 유령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다.

 

 

 

 

 

[1] [‘귀신유령의 차이] 네이버 국어사전-우리말 바로 쓰기

[2] 유령의 자연사29~32

[3] 같은 책, 118

[4] 처녀귀신22~23

[5] 빌 부인의 망령22

[6] 메갈리아의 반란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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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12-1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의 자연사> 누가 리뷰 안 해주나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까였어요. 췟.

한국귀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스트레이트해요. 옆나라 일본만 해도 상상초월 많잖아요. 귀신도 국민성, 상상력 반영 같기도 하고. <한국의 숨은 귀신을 찾아서>가 필요해요.

페미니스트 귀신이라니! 심각한 말씀 중에 죄송한데 넘 흥미로운 소잽니다!

cyrus 2017-12-18 17:13   좋아요 1 | URL
조금 지루한 내용이 있긴 한데, 그래도 읽어볼 만합니다. 유령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생각과 반응들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 귀신을 주제로 한 <처녀귀신>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귀신’은 소설에 나오는 존재입니다. 이제는 살아있는 페미니스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

2017-12-18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7:30   좋아요 2 | URL
남자 귀신은 후손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덕담을 해주거나 쓴소리를 해주는 역할이라면 여자 귀신은 자신의 원한을 호소하기 위해 살벌하게 등장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남자 귀신은 착한 귀신, 여자 귀신은 나쁜 귀신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요. 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마고 할멈은 신령한 존재였는데, 어느 지역에서는 악령으로 알려졌어요. 남성 중심의 유교 사상에 밀려서 무속신앙 속 여신들은 잡귀로 인식된 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쳐녀귀신 재미있겠는데요. 전 이런 책이 재미가 있더군요..찜해놯습니다..

cyrus 2017-12-19 09:02   좋아요 0 | URL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곰발님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

표맥(漂麥) 2017-12-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달걀귀신은 남자귀신인가요? ^^

cyrus 2017-12-19 09:56   좋아요 1 | URL
어려운 질문이군요. 제 생각에는 여성 달걀귀신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달걀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의 패턴은 똑같아요. 남자가 밤길을 혼자 지나가는데, 여인의 뒷모습을 발견합니다. 남자가 말 걸자, 뒤돌아본 여인의 정체는 눈, 코, 입이 없는 달걀귀신이었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12-19 09:36   좋아요 2 | URL
남자귀신이라면 역시 몽달귀신이죠..-_-: 달걀귀신의 남성형은 들어본 바 없습니다. 한국의 귀신체계에서 나름 남녀성차별이 없는 건 총각귀신/처녀귀신 같네요...둘 다 못 가보고 죽은 귀신...-_-:

cyrus 2017-12-19 09:59   좋아요 0 | URL
To. t-guest님 / 남성형, 여성형 귀신 및 유령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

감은빛 2017-12-1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글 읽으니 저 책들 다 읽은 기분이네요. ^^

[유령의 자연사] 보고 저런 책도 다 있네 생각했는데, 벌써 읽으셨군요.

[처녀귀신]이 더 재밌겠네요. ^^

cyrus 2017-12-19 17:52   좋아요 0 | URL
<처녀귀신>에 익숙한 고전 문학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에 내용이 쉽고,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