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경제학 - 경제는 실제로 어떻게 성장하는가
스티븐 S. 코언.J. 브래드퍼드 들롱 지음, 정시몬 옮김 / 부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미국의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따라 소득분배가 악화하다가 선진국이 되면 분배가 개선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견해는 쿠즈네츠 가설’, ‘쿠즈네츠 곡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가설과 달리 80년대 이래 선진국들의 소득 불평등은 심화했다. 일반적으로 성장과 분배는 서로 상충관계에 있다. 이에 따라 정책 선택이 딜레마에 빠진다. 지나친 소득 불평등은 사회통합을 저해함으로써 경제성장력을 떨어뜨린다. 가진 자가 더 많은 경제적 기회와 교육 등 혜택을 누림으로써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경제성장론자들은 고도성장의 과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저소득층에게까지 전파되는 이른바 낙수(trickle down) 효과를 믿는다. 이명박 · 박근혜 정부에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할 때 내세운 논거도 대체로 낙수 효과다. 통계 지표상으로 본 우리 경제의 모습은 성장률과 서민의 삶이 따로 놀고 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비틀려 있다. 대기업의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가 체감하는 경제적 파이는 커지지 않았다. 경제성장론자들이 반복하면서 말하던 그 잘난 낙수 효과를 기다리다가 아예 목이 타 죽을 지경이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짓누르고 있다라는 논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성장과 분배는 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그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 각국을 비교한 연구들은 정치체제와 역사적 배경, 권력 관계 등이 소득분배에 결정적이지만, 성장과 분배 간에 밀접한 관계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성장과 분배는 어느 하나만을 따로 떼어내 추구할 수 없다. 성장을 무시한 채 분배만 추구하면 경제력이 이를 뒤따르지 못할 것이고, 분배 문제를 방치하고는 성장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경제학은 경제학적인 측면에서의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과 미국 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분배를 통한 내수창출과 성장을 추구하는 구체적인경제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보이지 않는 손. 너무나도 유명한 고전주의 경제학의 명제이다. 스미스가 생각한 시장경제란 모든 주체가 이기심에 따라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영위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정의의 법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면서 이익을 추구한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 질서는 스스로 조정된다고 보았다.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교통 · 교육 등 공공 재공급으로 한정했다. 스미스의 후계자들은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는 작은 정부론을 옹호한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미국 건국의 핵심인물 중 한 명으로 제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가 내세우는 최고 가치는 자유였고,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또 다른 미국 건국의 핵심 인물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그가 지향하는 경제 노선은 제퍼슨의 생각과 달랐다. 그는 강한 중앙정부를 표방하는 연방주의자(federalist)였고, 국립은행의 창설, 보호관세의 설립 등 제조업을 중시한 재무정책을 펼쳤다. 해밀턴의 경제 노선은 이후 미국이 세계 최고 제조업국가로서 지위를 완전히 굳힌 1945년까지 130여 년간 미국 경제정책의 기조를 이루었다.

 

1920년대 말 세계 대공황 속에서 민주당의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 시작한 뉴딜 정책(New Deal Policy)은 근세 미국의 진보적인 경제정책의 시초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으며 미국 내 진보세력의 정책 방향을 받혀주는 사상적 받침이 돼왔다. 미국 역사상 좌우의 이념논쟁이 가장 격렬한 경제 노선이 뉴딜정책이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개념에서 볼 때 뉴딜 정책은 사회주의적 혁명이다. 자유방임주의, 이것이 자본주의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맞아 루스벨트는 정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굶어 죽든 잘 먹고 잘살든, 그때까지는 개인의 문제에 속한 삶의 문제를 국가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민주당은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으로 이어지는 20년 연속 집권(루스벨트는 4선 내리 당선한 유일무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에 성공했다. 보수 우파 성향의 공화당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Eisenhower)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집권하는 데 성공했고, 민주당의 유산을 지우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보수 강경 분위기에 휩쓸리는 대신 합리적 보수로서 중심을 잡았고, 민주당 정권의 사회복지, 경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다.

 

해밀턴, 루스벨트, 아이젠하워는 특정 이념에 의지하는 대신, 국민 친화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정책을 내세웠다. 미국은 현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재설계를 감행했다. 따라서 경제정책을 이념의 잣대로 봐선 곤란하다. 당파를 둘러싼 소모적인 갈등 구도를 만들기보다 현실적인 경제정책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여아가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야 한다. 어느 경제 전문 일간지에 실린 현실의 경제학서평[1]은 이 책이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서평 작성자는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친 듯하다. 서평 제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제성장론자들이 시장보다 정부라는 문구만 보고 책을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을 진보주의자들이 환영할 책이라고 보는 것은 오산이다. 현실의 경제학합리적 보수’, ‘합리적 진보를 지향하는 정치인, 경제학자, 독자들이 모두 필독해야 할 책이다.

 

 

 

창조 경제는 이었다...

정치 경력, 그 사람인생까지 이 되었다...

 

 

 

현실의 경제학의 공동 저자(스티븐 J. 코언, 브래드퍼드 펄롱)정부의 역할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그들이 더 강조한 것은 구체적인 경제 정책 수립이다. 자신들을 진짜 보수’, ‘진짜 진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대선주자가 되면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즉 실질적인 민생해법을 내놓기보다는 공허한 공약만 남발한다. 표심만 노린 말장난에 가까운 경제정책은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비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창조경제이다. 쉬운 말만 반복하는 앵무새처럼 창조경제를 말하고 다닌 지도자의 머리가 텅 비어 있는 탓에 경제정책도 속이 텅 비어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3대 불가사의전설의 동물로 알려진 애인,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도 생기지 않는 내 집그리고 정의(定意/正義)가 없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창조 경제.

 

 

성공적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나라에서 경제 정책은 이념적이지 않고 실용적이었으며,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었다. [2]

 

 

이 문장은 현실의 경제학서론의 첫 문장이다. 두 저자는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한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앞에 내세웠다. 고등학교 수준의 경제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문장을 보면, 창조 경제’는 실패했고, 헛된 구호였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여전히 창조 경제는 훌륭했으며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으면 지금도 성공할 수 있었던 국가 정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정신승리에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이 암울하다. 이런 사람들이 경제 전문가 또는 정치인이 되면 국민들만 고생하는 건 시간문제다.

 

 

 

 

[1]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국이 됐나? 시장보다 정부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서울경제, 20171212)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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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8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6:20   좋아요 1 | URL
대기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서민들에게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복지비용마저 아깝다고 생각해요. 이명박근혜 정부동안 보수들이 선호할만한 경제정책, 다 나왔습니다. 역효과가 있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진보가 내세우는 경제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문제는 보수, 진보가 추구하는 경제정책이 거의 비슷비슷해서 포퓰리즘으로 빠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17-12-18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6:2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대통령도 미국처럼 4년 연임제가 가능하다면 친일파 청산 작업을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대선에도 여권이 집권하면 친일파 청산 작업을 추진해볼 수 있겠지만, 반대로 야당이 집권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sprenown 2017-12-1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론적인 얘기겠지만, 성장과 분배.이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는 어려울 거예요. 현경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가치판단 해야할 문제겠지만 이제는 불평등 개선을 위해 분배정책에 더 힘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cyrus 2017-12-18 16:32   좋아요 1 | URL
네, 지금은 분배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배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면 정부가 피드백을 해야 합니다. 괜히 억지로 밀고 나가다간 복지 예산이 아깝습니다. 피드백 없는 복지 정책은 복지 정책을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입니다. 문제점이 노출되면 복지 정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