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낭만 - 19세기 화가는 무엇을 그렸을까?
정진국 지음 / 깊은나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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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22, 나폴레옹 1(Napoléon I)의 대관식이 열렸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동원됐다. 대관식 장면을 꼼꼼히 지켜보고, 하객들의 얼굴과 장신구도 일일이 확인한 끝에 1년이 넘어서야 그림을 완성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을 이렇게 해서 우리도 볼 수 있게 됐다. 황제는 대관식이 끝난 후 다비드에게 최고의 화가라는 영예를 수여했고, 다비드는 그의 그림을 통해 나폴레옹을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으로 만들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을 선전하는 데 관심이 많았고, 특히 미술을 잘 이용했다. 당시 그림은 현실의 인물을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였다. ‘나폴레옹 영웅 만들기의 주역은 물론 다비드이다. 그러나 주연에 가까운 조연도 있었다. 그가 바로 궁내부대신 탈레랑(Talleyrand)이다. 탈레랑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격변기에 활약한 탁월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다. 그는 코르시카(Corsica island)의 하급 장교인 나폴레옹을 왕좌에 앉히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다비드와 탈레랑. 이 두 사람은 한때 프랑스 혁명의 지지자였고, 나폴레옹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그들은 권력의 곁에 착 달라붙을 줄 아는 처세의 달인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권력의 앞잡이가 된 미술이 좋은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제국과 낭만(깊은나무, 2017)을 참고해도 좋다. 미술작품은 지배자들의 정치적 권력을 그대로 반영한다. 권력의 장식품이 된 그림은 시각적인 정치 선전 도구이다. 이런 그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고,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권력을 미화한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 숨겨진 사실을 읽어낼 수 있다. 제국과 낭만은 화가들이 주목했던 18~19세기 유럽의 모순과 부조리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자유와 평등의 정신이 반혁명 분위기와 정부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으로 서서히 퍼져 나갔다. 시민들은 왕권의 몰락으로 점차 무너져 내리는 현재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상상 속의 미래 사이의 간격으로 인하여 불안하기도 하였으나, 그들 내부에는 새로운 문화의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구체제를 그리워하는 권력자들은 보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준비했고, 시민들은 급속히 보수화되고 있었다. 혁명과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급속히 확산됐다. 보수적인 소시민들은 전쟁의 고통을 잊기 위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선호했다. 문화사에서 이른바 비더마이어 시대(Biedermeier Zeit)가 열린 것이다.

 

한편 유럽인들은 바다 건너세계에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바다 건너에 있는 유럽의 식민지는 관광지로 전락했다. 식민지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문화를 향유하는 풍토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문화재들을 약탈했다. 프랑스인과 영국인 들은 각각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을 인류문화의 보고라고 치켜세우지만, 과거 문화재 약탈행위를 합리화하는 변명일 뿐이다. 유럽 정부는 이집트, 인도, 아프리카 대륙 등 식민지 정벌에 나설 때마다 종군화가를 반드시 파견했다. 종군화가는 식민지를 정복하는 군인들의 용감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의 이국적 풍경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종군화가의 이국적인 그림은 유럽인들에게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환상을 심어주었고,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행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더마이어 시대,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급속한 팽창으로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모든 면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황금기를 구가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터지게 될 제1차 세계대전을 생각한다면, 유럽의 아름다운 시대는 부풀려진 풍요의 열정에 도취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시대였다. 19세기의 풍요는 새로운 차원의 예술과 문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풍요로운 시대의 이면에는 개인을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검열이 행해졌다. 정복의 야욕을 부추기는 제국주의의 향수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무색무취의 전운(戰雲)에 대해 둔감하게 만든다. 제국주의의 풍요에 도취할수록 전쟁의 위험성은 자신과 별개 문제로 간주한다. 제국과 낭만에 나오는 비더마이어 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배부른 자의 권태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시대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서 칙칙해진 세상을 좋게 보려고 애썼다. 시대를 미화한 그림 속에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 상실감을 숨기려는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름다운 시대의 맨얼굴은 결국 공허의 시대였다.

 

 

 

 

 

Trivia

 

* 이 책에 수록된 도판 목록은 있으나 정작 제일 중요한 색인이 없다.

 

* 105쪽에 빈 회의(나폴레옹 실각 이후 유럽 질서 재편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회의)를 이끈 오스트리아 정치가를 메테르니히(Metternich) 왕자라고 적혀 있다. 메테르니히는 왕족 출신이 아니다. 저자는 왜 그를 왕자라고 불렀을까.

 

* 217: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프로스트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 “만찬 자리는 정책을 선전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문인들이 단골 초대손님이었고 페니실린으로 인류를 구한 파스퇴르 박사도 단골이었다.” (223)

페니실린을 발견한 사람은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한 공로로 1945년에 노벨 생리 · 의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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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8-1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 좋아요 후 감상입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제국주의 본질을 숨길 수가 있나요 그래.

cyrus 2017-08-19 17:2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레삭매냐님이 읽었던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가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제국과 낭만》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