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 (창해, 2000)

* 노성두 외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 :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들》 (아트북스, 2005)

* 김성진 엮음 《인물로 보는 서양미술사 : 바르비종 미술》 (서림당, 2016)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는 ‘농민 화가’로 알려질 정도로 농민 생활을 즐겨 그렸다. 『만종』『이삭줍기』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명작으로 꼽힌다. 밀레는 파리 교외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에 정착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농민의 삶과 노동의 신성함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아주 평화스럽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밀레가 『이삭줍기』를 선보였을 때 극성스러운 비평가들은 확대 해석을 하면서까지 비난했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올랭피아』를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했던 보수적인 평론가 폴 드 생 빅토르(Paul de Saint- Victor)는 그림 속 여인들을 ‘빈곤을 관장하는 세 여신’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림 속에서 민중 폭동의 분위기를 감지했다면서 떠벌리기도 했다. 밀레와 비평가들의 악연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보수주의(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시대, 즉 왕정복고 체제를 지향하는 세력), 사회주의 진영의 비평가들은 『이삭줍기』 이전에 완성된 『씨 뿌리는 사람』을 놓고 저마다의 해석과 반응을 보였다. 보수주의자들은 농부를 ‘폭동을 일으키는 건달’의 모습이라고 해석했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밀레를 ‘진정한 사회주의자’라고 옹호했다. 그러나 정작 밀레는 정치에 무관심했고, 그림에 정치적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넣지 않았다.

 

 

 

 

 

 

 

 

 

 

 

 

 

 

 

 

* 알프레드 상시에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곰, 2014)

 

 

 

밀레의 그림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비난하는 상황을 참을 수 없었던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는 밀레 전기(傳記) 집필 작업에 착수했다. 상시에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이다. 그는 밀레뿐만 아니라 바르비종파에 속하는 화가들도 옹호했다. 상시에가 쓴 밀레 전기는 밀레의 삶과 예술 세계가 집약된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시에는 전기를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미술사가 폴 망츠(Paul Mantz)는 상시에가 남긴 초고와 각종 자료를 참고하여 전기를 완성했다.

 

상시에는 농촌을 주제로 한 밀레의 그림들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밀레가 바르비종에 정착하기 이전에 파리에서 그린 초기작들을 상시에는 ‘새로운 화풍’이라고 크게 칭찬했다. 밀레 전기 번역본인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곰, 2014)를 처음부터 10장까지 읽어보면(11장부터 폴 망츠가 집필했음) 밀레의 그림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상시에의 의견을 단 하나라도 찾아볼 수 없다. 상시에는 전기를 통해 밀레를 ‘명실상부한 농촌화가’로 알리려고 했다. 밀레 전기 번역본에 보면 상시에를 ‘미술사가, 미술평론가’라고 소개했는데, 사실 상시에는 전문적으로 미술 평론을 썼던 사람이 아니라 밀레와 바르비종파 그림을 좋아하는 수집가다. 그의 원래 직업은 관료였다. 밀레와 바르비종파 그림들을 가치를 알아볼 정도로 상시에가 훌륭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상시에는 ‘미술과 자본’의 밀접한 관계를 파악한 화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하는 밀레와 바르비종파 그림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밀레와 테오도르 루소(Théodore Rousseau) 전기를 썼다.

 

루소는 밀레와 친분을 맺은 바르비종파 화가이다. 그는 여러 번 살롱전(Salon de Paris)에 그림을 출품했으나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래서 동료 화가들은 그를 ‘낙선 대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상시에는 ‘뜰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뜨지 못하는’ 밀레와 루소의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사람들은 밀레가 소박한 농촌 풍경을 좋아해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즐겼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밀레는 고단하고 궁핍한 상황 속에서 그림을 그렸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활비를 아껴가면서 생활했다. 밀레는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믿을 만한 친구에게만 표현했고, 경제적으로 힘들 때마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보게, 제발 내 그림으로 돈 좀 융통해보게나. 값을 따지지 말고 팔아보게. 100프랑이든, 50프랑이든 정 안 되면 30프랑이라도 보내주게.”

 

(밀레가 상시에에게 보낸 편지 일부,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165쪽)

 

 

상시에는 밀레를 돕기 위해 파리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수집가들을 만나 그림을 팔았다. 밀레의 궁핍한 처지를 잘 알고 있던 상시에는 자본의 논리를 순순히 따랐다. 상시에의 노력은 끝내 빛을 보게 되었다. 밀레 사후에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기 시작했고, 소박한 농촌 풍경을 묘사한 밀레의 그림은 자본을 가진 자들이 선호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다.

 

상시에는 밀레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밀레는 없었다. 물론, 밀레를 도와주고 지지해준 상시에의 활약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점이 몇 가지 있다. 상시에의 전기는 밀레를 ‘농촌 화가’라는 인식에 갇히게 했다. 실제로 상시에는 밀레의 농촌 그림이 수집가들이 선호하는 그림이라는 걸 알고, 밀레에게 농촌 그림을 그려 달라고 재촉했다. 밀레의 또 다른 작품들(특히 판화)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밀레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화가’로 오해할 수 있다. 상시에는 밀레 전기 머리글에 ‘아무것도 지어내거나 꾸미지 않았다’고 썼다. 글쎄, 독자는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밀레 전기를 다시 읽었을 때 예전에 썼던 리뷰도 봤다. 나는 2014년에 작성한 밀레 전기 번역본 리뷰에서 이 책을 ‘밀레의 그림을 홍보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라고 썼다.

 

 

※ [파리의 미생, 밀레] (2014년 11월 30일)

http://blog.aladin.co.kr/haesung/7238764

 

 

최근 밀레 전기와 밀레의 예술 세계를 객관적으로 소개한 책들을 동시에 읽고 난 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밀레 전기는 밀레의 그림을 홍보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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