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이성’을 내세워 ‘우리는 동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 후 발전된 문명이 초래한 야만성을 경험하고 난 후에는 ‘인간도 동물이다’라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했다. 인간을 동물로 격하시킨 것이다. 하지만 동물도 인간이라는 이런 관점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여전히 인간을 동물보다 우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동물만도 못한 인간’이라 발언을 할 수 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 (민음사, 2016)

 

 

고대 인도의 승려 카필라는 ‘동물만도 못한 인간’의 원조다. 그는 부처의 제자 중에 가장 총명했으나 자신보다 영리하지 못한 동료들을 만나면 ‘원숭이 대가리’, ‘닭대가리’라고 놀려댔다. 카필라는 일찍 죽고 말았는데, 업보로 100개의 동물 대가리가 달린 물고기로 환생하게 됐다. 이 괴물에 달린 100개의 머리는 생전에 카필라가 동료들에게 놀렸을 때 언급했던 모든 동물 대가리였다.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2009)

 

 

제국주의의 광풍이 휩쓸던 유럽에서는 열등한 인종을 동물로 비하하는 학문이 유행했다.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은 인간을 10개 종(種)으로 분류, 흑인을 가장 야만적인 종족으로 규정했다.

 

 

 

 

 

그는 흑인종이 원숭이에 가장 가깝다고 주장했다. 미개한 종족은 발달한 종족의 관리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견해는 나중에 나치주의자들의 인종차별 정책에 이론적 근거로 활용됐다. 헤켈은 과학의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진화(evolution)와 진보(progress)를 손잡게 했다. 그의 인류기원설은 폐기되었지만, 진화와 진보의 불편한 동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탈리아 범죄학자 체사레 롬브로소(Cesare Lombroso)는 범죄자는 원숭이에 가까운 유전자를 지녔고, 동물의 모습과 비슷한 일명 범죄형 얼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범죄자의 해부학적 특성을 과거로 퇴화하는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심지어 선천적 범죄자의 안면 현상을 넙치나 가자미 같은 물고기 형상과 비교했다.[1]

 

 

 

 

 

 

 

 

 

 

 

 

 

 

 

* 루이스 캐럴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월의봄, 2015)

* 허버트 조지 웰즈 《타임머신》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진화를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던 19세기 유럽인들은 ‘고등 계급’과 ‘하급 계급’이 있듯이 이와 비슷한 ‘고등 동물’과 ‘하등 동물’이 있다고 믿었다. 극단적인 이분법은 계급 차별의 기준이 되었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물고기와 개구리 머리를 한 두 명의 시종이 등장한다. 사실 그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물고기와 개구리에 가깝다. 허버트 조지 웰즈(Herbert George Wells)는 《타임머신》에서 지하에 사는 흉측한 종족 몰록을 ‘동굴에 사는 흰 물고기’처럼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다고 묘사했다.[2]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소설에 등장하는 80만년 후의 미래 인류 엘로이와 몰록은 19세기 당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계급을 풍자한 것이다.

 

 

 

 

 

 

 

 

 

 

 

 

 

 

 

 

 

*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전집 1》 (황금가지, 2009)

 

 

진화에 역행하는 현상, 즉 퇴행이라는 주제는 그 성격상 작가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해왔다. 특히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인스머스의 그림자』(The Shadow Over Innsmouth)생물학적 퇴행의 공포감을 잘 표현한 수작이다.

 

 

 

 

 

이 작품의 배경 인스머스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가상의 마을이다. 과거에 인스머스는 번영한 항구 마을이었으나 ‘불길한 전염병’이 덮쳐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곳으로 변했고, 외부와의 연결이 완전히 단절되었다. 이 작품에서 인스머스 주민들은 물고기 또는 양서류와 인간의 피가 섞인 혼혈인으로 묘사된다. 러브크래프트는 인스머스 주민들을 ‘진화를 거스르는 열등한 존재’로 그렸는데, 그들에 대한 공포는 작가 개인이 체험한 공포가 반영되어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앵글로색슨 족이 가장 위대한 인종으로 추켜세웠고, 흑인과 아시아인은 악랄하고 미개한 인종이라고 생각했다.

 

동물을 보면 떠올리는 혐오감은 인간의 오랜 타성이며 그 동물의 부정적 면을 또 다른 인간의 약점에 비유하는 인식 역시 인간의 오만과 편견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대한 맹렬한 욕구를 바탕 삼은 인류의 진보는 사회의 차별 ·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다윈은 진보로 둔갑한 진화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다윈의 추종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차별의 양상을 자연스러운 진화의 산물로 인식했다. 그리하여 친밀하지 못한 존재를 무섭거나 더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차별과 적개심은 다양성의 가치와 덕목을 거스르는 불순한 생각이다.

 

 

 

[1]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317쪽

[2] 허버트 조지 웰즈 《타임머신》 106쪽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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