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의 리뷰를 확인할 때 100자평을 거른다. 한줄 평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줄 평이든 100자평이든 짧은 리뷰 중에는 ‘평(評)’으로 보기 힘든 것이 있다. 책을 읽지 않고, 책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100자평에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마티 루티의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동녘사이언스, 2017)에 낮은 별점을 준 100자평은 실소를 자아낸다.

 

 

 

 

 

 

 

 

 

 

 

 

 

 

* 앨런 S. 밀러, 가나자와 사토시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웅진지식하우스, 2008)

 

 

어떤 100자평 작성자는 책에 별점 한 개를 줬다. 그 사람은 아주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과학적 사실의 좋은 점은 당신이 동의하든 안 하든 사실이라는 점이다.’ 진화심리학 분야에서 나오는 연구 결과들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학자들이 진화심리학 분야의 연구 결과들을 가지고 입씨름하는 것은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일이다. 진화심리학 연구 결과를 비판하는 학자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한 가지 콕 집어 말하자면 가설을 지지할만한 증거가 불충분하기 위해서 비판한다. 연구 결과는 어떤 현상을 탐구하면서 확인하게 된 관찰 결과일 뿐이다. 가설을 재검증하는 절차를 통해 최종적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함부로 ‘사실’로 결론지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진화심리학자들도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 신중해진다.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웅진지식하우스, 2008)를 펴낸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책이 관찰 결과를 기술(記述) · 설명하고 있을 뿐이며 자신들은 관찰 결과로부터 어떤 결과나 결론도 끌어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학에는 ‘당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1]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2009)

 

 

과학자이든 페미니스트이든 신뢰할만한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나오면, 진화심리학의 연구 결과도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가설을 동의하지 못해 거부할 수도 있다. 진화심리학이 가장 많이 받는 비판 거리 중 하나가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점이다. 진화심리학을 비판할 때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생물학적 결정론을 옹호한다고 해서 그들을 불순한 동기로 이론을 정당화하는 ‘나쁜 놈’으로 몰아세우지 말 것.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에드워드 오즈번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의 사회생물학을 정면으로 비판한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진화생물학과 사회생물학의 공통점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 깊숙이 자리하는 인간 본성의 실체를 밝히는 분야이다. 굴드는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비판하면서도 그를 차별을 유도하는 악의 세력으로 험담하지 않았다. 굴드가 사회생물학의 등장을 우려한 진짜 이유는 사회생물학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상황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보수성이 강한 학자나 정치인이 진화심리학 가설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기성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진화심리학 가설이 주는 불편함을 못 느낀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자가 풍만한 가슴의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흡족할 만한 여러 가지 가설을 내세웠다.

 

첫 번째 가설. 풍만하게 느껴지는 무거운 가슴은 작은 가슴에 비해 나이가 들수록 ‘처진 가슴’으로 변하기 쉽다. 남자는 여자의 가슴을 눈으로 보고, 여자의 나이를 판별할 수 있다. 젊은 여성은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남자는 가슴이 풍만한 젊은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프랭크 말로위의 주장,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참고)

 

 

 

 

 

 

 

 

 

 

 

 

 

 

 

 

* 플로렌스 윌리엄스 《가슴 이야기》 (Mid, 2014)

 

 

두 번째 가설. 남자는 젊고, 건강하고, 임신 가능성이 높은 여자를 배우자로 선택한다. 그래서 남자는 가슴 형태를 건강한 배우자를 찾기 위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여성의 가슴은 남성에게 잠재적인 배우자임을 알려주는 정보를 제공하는 신호이다. 첫 번째 가설과 일맥상통하다. (바너비 딕슨과 앨런 딕슨의 주장, 《가슴 이야기》 참고)

 

 

 

 

 

 

 

 

 

 

 

 

 

 

 

 

* 데즈먼드 모리스 《털없는 원숭이》 (문예춘추사, 2011)

* 데즈먼드 모리스 《벌거벗은 여자》 (휴먼앤북스, 2004)

 

 

 

마지막 가설. 앞서 언급한 두 개의 가설에 비해 오래된 것이다. 올해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의 《털없는 원숭이》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으로 (또 한 번) 언급해본다. 여자의 가슴은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성적 신호이다. 자신의 주장이 비판받게 되자 모리스는 2004년에 출간한 《벌거벗은 여자》에 여자의 가슴은 양육(모유 수유)과 성(性), 두 가지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 나탈리 앤지어 《여자, 내밀한 몸의 정체》 (문예출판사, 2016)

 

 

남자가 여성의 가슴을 선호하는 것에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이를 진화의 관점으로 남자들의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젊은 여성이 큰 가슴을 가진다고 주장했고, 모리스는 가장 완벽한 반구 모양의 가슴이 완성되는 여성의 나이를 25세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통으로 여성이 점점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서 가슴 형태가 처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이 놓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임신기(姙娠期)와 수유 기간이 되면 원래 가슴 형태와 상관없이 무조건 가슴이 커진다. 임신한 작은 가슴의 여성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작은 가슴의 여성이 남성의 배우자 선택에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 가슴 크기로 나이를 판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25세 여성 모두가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의 가설대로 여성의 가슴이 남자들을 위한 신체적 신호가 되어야 한다면, 가슴의 크기가 거의 같아야 한다. 나탈리 앤지어(Natalie Angier)는 처진 가슴을 나이 든 여성과 연관 짓는 주장에 반대한다. 젊은 나이에 가슴이 처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가설 모두 여성 가슴의 필요성을 오로지 남성의 기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가슴은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진화한 신체 부위이다. 물론, 수유 목적으로 가슴이 발달했다는 주장 또한 가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세 가지 가설을 마치 설득력 있는 사실인 것처럼 믿는 경우이다. 이를 비판하면서 양육 기능으로서의 가슴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를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남성들은 그런 비판 입장을 페미니스트의 분노로 생각한다. 이렇다 보니 가설을 검증할 기회가 축소되고,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못하는 깊숙한 도그마(Dogma)의 함정에 빠져버린다.

 

이 글의 결론을 내리자면, 여성이 가슴이 생긴 이유와 남성이 풍만한 가슴을 선호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줄 이론은 없다. 앞에서 설명한 이론들은 ‘과학적 지식에 입각한 추측’, 즉 과학적 가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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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페미니즘 서에 대한 신경증적 반응들 혹은 별점 테러
    from 마음―몸―시공간 Mind―Body―Spacetime 2017-03-22 09:59 
    마티 루티의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동녘사이언스, 2017)에 별점 테러 혹은 ‘100자평’ 테러를 저지르는 분들 논조를 보면 아주 단정적이고, 독단적이고, 훈계조이고, 혹은 꽤 전투적입니다. 아마도 제가 추측하기에 이들 과격주의자(?)들은 대부분 이덕하 씨가 운영하는 《진화 심리학 카페》(http://cafe.naver.com/evopsy2014)에서 온 분들 같습니다. 이덕하 씨의 페미니즘에 대한 전투적이고 과격한 견해에 영향을
 
 
2017-03-21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22 11:36   좋아요 0 | URL
‘어엽다’가 ‘어렵다+귀엽다’가 합친 말입니까? ㅎㅎㅎ

마립간 2017-03-22 0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다시 꼼꼼히 읽고 숙고해야겠지만, 진화론에 대한 비판( 예를 들면 창조론)과 진화심리학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다른지 얼른 납득이되지 않는군요.

cyrus 2017-03-22 11:39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은 제 글을 보고 특별한 생각을 하셨군요. 제가 이제 막 진화론을 공부하기 시작한 터라 계속 관련서적들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7-03-22 19:10   좋아요 0 | URL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마립간 2017-03-2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개의 문장을 제 페이퍼에 인용합니다.

cyrus 2017-03-22 11:40   좋아요 0 | URL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