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 수양 미셸 푸코 미공개 선집 1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외 옮김 / 동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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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탐구한다. 그러나 급격한 세태의 변화 속에서 인문학은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학문적 힘을 잃어가고 있다. 프랑스는 모든 학문을 철학으로 대접한다. ·고교에서 철학 과목을 가르치고 대학입학을 위해선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를 치러야 한다. 여기서 출제되는 철학 문제는 그 격조와 높은 수준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으며 그해 국민적 관심사가 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런 흐름과 여전히 동떨어져 있다. 아직도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주류다. 자율적, 비판적 사고 훈련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 의견과 주장은 넘쳐나지만 음미할 만한 깊은 글은 보기 힘들다.

 

성역과 금기 없는 비판과 치열한 논쟁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요소들이다. 비판의식은 정확한 논점과 논리의 바탕 위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대화 가능성마저 잃어버린 채 극단으로만 치닫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들으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무기의 선명도만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게 크고 높은 목소리들만이 득세하게 된 데에는 지식인의 침묵이 주범이라고 하지만, 그 침묵을 만들어낸 풍토 또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실은 자꾸 대답을, 아니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사회발전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한다. 그들이 사회의 각종 문제에 대처하고,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집단화해서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들은 지식권력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전문적 지식이 집권자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된 경우가 많았고, 집권자들을 등에 업고 형성된 일부 지식인 집단이 부당한 물리적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되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각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지식인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들이 사회의 여타 권력과 결탁하지 않고 긴장 관계를 이루며 공존할 때 사회는 이들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합리적 논의를 거쳐 발전한다.

 

자기 뜻에 따라 타자의 행동을 통제하는 직간접적 힘을 권력이라고 할 때 지식이 직접 권력 주의라는 옷을 입게 된다. 권력 주의는 통치를 공고하기 위한 기술이다. 권력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복종하거나 권력을 휘둘러 남을 억누르려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미셸 푸코는 1978년에 진행된 강연(비판이란 무엇인가)에서 통치받지 않기 위한 기술’, 비판적 태도의 의미를 재정립하여 그 필요성을 강조한다. 푸코가 정의한 비판적 태도는 물리적 권력에 저항함으로써 대중들의 힘을 통해 반사적인 대항권력을 형성하는 방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푸코의 권력 개념은 국가 권력이나 특정한 무엇으로 환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푸코는 현대인이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온통 결박되어 있어서 스스로 자신을 규율하기에 이른다고 봤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일상적인 권력은 통치 체제에 순응하게 한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자유롭지 않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 미세한 권력의 영향력에 길들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스스로 교정해야 한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아테네의 델포이 신전 대리석 벽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글귀를 떠올리면 된다. 이 글귀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알아서 자만에 빠지는 것을 피하도록 해주는 계몽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푸코는 이 글귀의 의미가 과대평가되는 바람에 정작 자기 배려(돌봄)’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자기 배려는 자신을 사유하는 존재로서 간주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자산과 관계된 타인, 더 나아가 사회 전체를 분석하는 것이다. 플라톤이나 명상록의 저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의 고대 그리스 · 로마 철학자들은 자신의 실체를 인식하고, 성찰해 자신을 수양하는 실천적 자세를 추구했다.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려면 엄격한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 자기 수양은 비판의 기능, 투쟁의 기능이 있다. 내가 배운 지식이 잘못되었으면 인정하고, 폐기해야 한다. 또 우리를 위협하거나 억압하는 권력에 평생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투쟁의 힘을 길러야 한다.

 

푸코의 비판적 태도자기 수양개념은 진실 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각하는 힘이다. 푸코는 자기 수양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소개했다. 자기 수양을 위한 글쓰기는 자신을 혹독하게 다스릴 수 있는 성찰의 글쓰기다. 자기 수양이 결여된 글은 변명으로 변질한다. 민주주의는 부단한 자기비판과 수정을 거칠 때 살아남는다. 도덕도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정직성진실 된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다. 정직성과 진실 된 삶은 자기 인생을 떳떳하게 사는 데 관련이 있다.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만이 비판할 자격이 있다.

 

 

 

 

* 도대체 무슨 말일까??

 

눈이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눈 속에서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 안에서 하지만 타자의 눈의 형태하에서 그런데 거기서 타자의 눈동자 내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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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18 1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민들이 국가 권력을 바꿔 본 나라....네 철학의 힘이죠...
철학을 자신을 돌아보게 하죠...

박사모에서 철학이 발견되기 힘든 이유기도 하죠..

cyrus 2017-01-19 13:1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박사모는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아무 2017-01-18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리정치>에서 푸코의 자기 수양을 언급한 부분이 있는 거 같아 찾아보니 여기서는 ˝자아 기술˝이라고 번역한 것 같아요. 출처가 같은 책인지는 모르겠지만..(미주가 영어가 아니라 전 해석할 수 없습니다ㅠ) 성역과 금기 없는 비판이라는 대목이 심상치 않게 보입니다..

cyrus 2017-01-19 13:13   좋아요 1 | URL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푸코 강연집이 꽤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올해에도 미공개 선집 두 권이 나올 예정입니다. <심리정치>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

시이소오 2017-01-18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시다니
사이러스님은 정말 꾸준히 읽고 쓰십니다. ^^

이 리뷰를 읽으니 선물해주신 책 빨리 읽고 싶어요 ^^

cyrus 2017-01-19 13:15   좋아요 0 | URL
1월 초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분량이 얇아서 만만히 봤는데, 생각보다 읽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천천히 읽고, 관심 있는 내용을 반복해서 읽으니까 대충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

[그장소] 2017-01-18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표 ㅡ 눈부처 ㅡ라고 흔히 표현하는 상태
타인의 눈동자에 자신의 눈동자가 비치는 조건 ㅡ 마주보기 ㅡ그걸 말하는거 아닌가요?
일테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 ...랄까? ㅎㅎ

cyrus 2017-01-19 13:1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이해했어요. 사실 제가 이해가 되지 않은 문장이라고 말한 것이 ˝자기 자신 안에서 하지만 타자의 눈에 형태 하에서 그런데 거기서 타자의 눈동자 내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였어요. 문장 안에 ‘하지만‘과 ‘그런데‘가 같이 있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

[그장소] 2017-01-19 15:56   좋아요 0 | URL
하지만 ㅡ이 접속사 하지만이 아닌 , 하는 ㅡ행위의 동사 , 로 연결된게 아닐까 ..그렇게 읽으면 ? ㅎㅎㅎ

박람강기 2017-01-1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시권력을 극복하려는 푸코의 마지막 자구책이었죠..현대에서도 곱씹어볼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cyrus 2017-01-19 13:19   좋아요 0 | URL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생각하면 이 책이 나오길 정말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치받지 않기 위한 기술’이라는 개념이 언급된 내용이 좋았습니다.

2017-01-18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9 13:25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에 접한 소식에 실망했습니다. 증거가 널려 있는데도 죄로 인정하지 않는 결과가 반복된다면 기업인의 도의적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가 없습니다.

우민(愚民)ngs01 2017-01-19 13:38   좋아요 0 | URL
사법부의 독립이 중요하지만 개혁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판증하는 기각판결이었습니다. 제3자인 외국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동안 지적했던 기득권 엘리트들의 부패 카르텔을 없애지 않는한
대한민국의 부패는
반복될 것입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조판사에 대한 인신공격과 박사모의 지지선언을 보니
같은 사실 상황으로 극단적인 이분적 논리에 빠져 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진실을 조작 호도하는 세력은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입니다.

oren 2017-01-18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스로 인용해 주신 대목의 핵심은, 제 판단으로는, 결국 ① ‘자기 자신 안에서‘ ② 하지만 ‘타자의 눈동자 내에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 대목을 보면서 저는 미셀 푸코의 주장이 아담 스미스가 말했던 ‘가슴 속의 동거인‘과도 얼핏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 *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

그것은 이성(理性), 천성(天性),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처럼 수치(羞恥)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정당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방관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 방관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不正)의 추악성, 우리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우리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253쪽)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cyrus 2017-01-19 13:28   좋아요 2 | URL
oren님이 푸코의 책을 읽어보시면 정말 마음에 드실 겁니다. 자기 수양 개념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정신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명상록>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qualia 2017-01-19 13: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박스 안의 인용문은 비문인 듯합니다. 너무 원문에 얽매여 번역을 서툴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략 그 뜻이 무엇인지 감은 옵니다만, 철학적 저작은 문구 하나하나, 글자 하나하나가 정밀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해서 약간 어긋나게 독해하고 번역하면 원뜻에서 빗나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집니다. 저 번역문에 해당하는 원문을 아래에 옮겨놓겠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Et cette connaissance, cette connaissance ontologique de soi en tant qu‘âme, elle se fait, au moins dans certains textes et en particulier dans l‘Alcibiade, sous la forme de la contemplation, de la contemplation de l‘âme par elle-même, avec la fameuse métaphore de l‘œil : comment est-ce que l‘œil peut se voir lui-même ? La réponse est apparemment très simple et, en fait, elle est très compliquée, car l‘œil, pour se voir lui-même, Platon ne dit pas : il suffit qu‘il se regarde dans un miroir; il faut qu‘il regarde dans un autre œil, c‘est-à-dire dans lui-même, mais pourtant dans lui-même sous la forme de l‘œil de l‘autre, et là, dans la pupille de l‘œil de l‘autre, il va se voir lui-même, car la pupille sert de miroir. Et de la même façon l‘âme, se contemplant elle-même dans une autre âme ou dans l‘élément divin de l‘autre âme qui est comme sa pupille, se verra elle-même et se reconnaîtra comme élément divin 24.

cyrus 2017-01-19 13:30   좋아요 1 | URL
제가 밑줄 친 문장이 어설프게 느껴졌습니다. 원문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북프리쿠키 2017-01-20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공간에 의견과 주장은 넘쳐나지만 음미할 만한 ‘깊은 글’은 보기 힘들다˝

무척 공감가는 부분입니다.
그저 센스있는 말장난이 대접을 받는 공간이죠.

싸이러스님이 읽는 책은 아직 제가 읽어보기엔 엄두가 안나네요..ㅠ
언젠가는 저도 내공이 쌓이면 따라가겠습니다 ㅎㅎ

cyrus 2017-01-20 11:59   좋아요 1 | URL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처럼 각 잡고 너무 진지한 글은 재미없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제가 예전에 쓴 글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