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bboom.naver.com/board/get.nhn?boardNo=9&postNo=2336870&entrance=

 

 


누군가가 나를 쫓아오는 꿈을 꾸면 이상하게 내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 안 되는 분은 링크의 GIF 파일을 보면 된다. 파일 속 주인공이 어떻게 달리는지 보시라. 양다리를 흐느적거리면서 걸어간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꿈속에서 빠르게 달리는 일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힘껏 달리고 싶어도 양다리에 모래주머니가 달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꿈도 악몽에 속한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꿈, 특히 자신이 생각하는 악몽에서 영감을 받아 공포소설을 썼다. 그 작품들 중 하나가 <데이곤(Dagon)>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진흙 개펄 한가운데에 누워 있다. 두려움에 빠진 주인공은 진흙 개펄에 빠져나오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기어간다. 그렇게 해서 주인공이 발견한 것은 좌초된 보트이다.

 

 

 

 

 

 

 

 

 

 

 

 

 

 

 

 

 

 

 

 

일반적으로 소설이나 영화 배경으로 나오는 진흙 수렁은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거나 무시무시한 곳 혹은 괴생명체가 사는 것으로 전해지는 장소로 설정된다. 코난 도일의 장편소설《바스커빌 가의 개》는 음침한 황무지가 펼쳐진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마을 주민들은 황무지의 진흙 늪지대를 금단의 장소로 여긴다. 이곳에 한 번 빠지면 살아남기 힘들고, 진흙 늪지대 부근에 정체불명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 어떤 독자가 진흙 개펄에 빠진 <데이곤>의 주인공이 보트로 향하는 과정이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가 보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흙 수렁에 빠지면 이동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동하는 과정에서 체력이 고갈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수렁에 헤어 나오지 못하면 아사(餓死)에 이를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데이곤을 옹호하며>라는 글을 써서 독자가 의문을 제기한 묘사에 대해 해명했다.

 

“화자는 진흙 속에 반쯤 몸이 잠겨 있지만, 기어서 갈 수 있습니다! 기어가는 끔찍한 과정이 전부 생생한 꿈으로 남아 있어서 잘 압니다. 아직도 그 끈적끈적한 진흙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걸요!” (《러브크래프트 전집 1》 발췌 인용)

 

러브크래프트는 악몽 같은 순간을 그대로 묘사했을 뿐이다. 그도 꿈속에서 자신의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불쾌한 경험이 겪었을 것이다. 악몽을 경험하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눈앞에 악몽과 같은 상황을 겪는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는다. 독자들이 우스갯소리로 ‘무서우면 도망치지 왜 그걸 끝까지 지켜보고 있느냐?’고 지적할 정도다. 이러한 클리셰가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한계로 보고 있지만, 러브크래프트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끔찍한 공포에 지배당한 인간의 감정을 실감 나게 표현한 것으로 옹호하고 싶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무작정 달리는 꿈 다음으로 가장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갑자기 아래로 추락하는 꿈이다.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본 적이 없는데도 그 꿈을 꾸고 나면 진짜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

 

 

 

 

 

 

 

 

 

 

 

 

 

 

 

 

 

토끼를 쫓던 앨리스가 아주 깊숙한 우물 바닥 아래로 한없이 추락하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일이다.

 

토끼 굴은 똑바로 뻗어 있는 게 꼭 수평 갱도 같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푹 하고 길이 꺼졌다. 하도 불시에 닥친 일이라 앨리스는 뭐라도 붙잡거나 저항해 추락하지 않도록 해볼 틈이 없었다. 이윽고 앨리스는 자신이 아주 깊은 우물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7쪽)

 

 

인간은 현실의 진흙 구덩이 속에서 뒹굴고 다투면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소설가는 좀 특별하면서도 다르다. 소설가는 이 세계 너머에, 또는 그 안쪽 깊이에 이 세계와 다른, 혹은 똑같을 수도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것은 꿈꾸기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12-21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몰되는 일..보통 중독성이 심한 것들.도박..도벽...음주...지독한 섹스..마약...다 진흙에 한번 빠지면 자력으로 나오기가 무척 어려운 것들이죠....

cyrus 2016-12-22 08:58   좋아요 2 | URL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 마약, 음주, 섹스에 탐닉하기 쉬운데 오히려 마 음에 공허감을 유발할 뿐입니다. 그래서 중독 증세에 시달리면 정신적으로 더 피폐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