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와 고기 뷔페에서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통풍 걱정은 잠시 제쳐놓고, 배 터지도록 먹고 마셨습니다. 친구와 대화를 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소재가 직장 뒷담화입니다. 친구는 직장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특히 제일 불만이 많았던 것이 일요일 출근이었습니다. 친구는 지난주부터 일요일에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이틀 전인 일요일에도 출근했다고 합니다. 친구의 직장은 원래 주6일제였습니다. 그런데 연말이 다가오면서 작업량이 갑자기 늘어났고, 푹 쉬어야 할 일요일에도 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친구는 회사가 평소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이유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직원들이 주말 촛불 집회에 가는 걸 막으려고 회사 윗선이 직원들을 주말에도 일하게 시키는 것 같다.”

 

저는 처음에 친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냥 가벼운 농담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친구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니는 회사가 SK의 협력 업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SK 회장은 국정특위 청문회에 출석하여 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80억 원의 기금 출연 요구를 받았으나 사업 계획 내용이 부적절해서 지원을 거부했다고 밝혔습니다. SK재벌도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라는 논란에 피할 수 없습니다. 재벌 입장에서는 임직원들이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임직원들마저 촛불 집회 열기에 동참하게 되면,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낮아질 우려가 있으니까요.

    

 

 

 

 

오늘 점심 이후에 Theodora님이 서재에 공유한 보도문을 접했습니다. 그 보도문 내용에 따르면 이마트가 대통령 하야 배지를 단 직원에게 징계를 내리려고 했습니다. 이마트 노조는 이 사실을 공개했고, 이마트 측은 하야 배지를 유니폼에서 떼어 달라고 요청한 것일 뿐 징계를 주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직원 개인의 정치적 의견은 존중하지만, 근무 중에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회사 전체의 입장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측과 노조 측, 양자 입장을 살펴보면서 갈등이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분석해봤습니다. 사측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직원의 배치 착용으로 인해 회사 이미지가 악영향을 받을 거로 생각했을 겁니다. 최근에 홈플러스 매장 직원들이 하야 배지를 착용한 것을 비난하는 글이 홈플러스 고객센터에 올라온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측은 배지를 착용한 직원의 등장에 예민하게 생각했고, 징계를 내리겠다고 언급한 관리파트장이 회사 직원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회사 불이익을 감수하라고 말한 게 노조 측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원인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직원에게 근무 중 배지를 착용하면 안 된다는 회사 내 규칙을 언급하고, 일차적으로 주의를 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사측은 회사 규정 내용을 언급했고, 해당 직원이 그 사실을 확인하며 배지를 떼어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해당 직원은 관리파트장의 말이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마치 회사가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사측이 해명한 것처럼 근무 중 배치 부착이 불가능하다면 직원들이 근무 중에 사랑의 열매배지도 착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월호 리본 배지도 달지 못합니다. 과거에 사측이 사랑의 열매 배지, 세월호 리본 배지, 심지어 박근혜 배지를 착용한 직원에게 단 한 번도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면, 대통령 하야 배지 착용 직원에게 징계를 준다고 언급한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직원 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든 하야 배지를 착용한 채 근무한다고 해서 매출에 악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박근혜 지지율 5%가 하야 배지 착용한 직원이 일하는 매장을 비난하고, 불매 운동을 벌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사모나 샤이 박근혜를 제외한 사람들은 이번 국정농단의 심각성을 깊이 깨닫고 있으며, 박근혜가 대통령직에 물러나 죗값을 받도록 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마트는 고작 5%에 불과한 지지율의 위력이 무서웠거나 아니면 그 5%의 지지율이 자신들 매출에 기여하는 콘크리트 구매율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하야 배지 착용을 제한한 이마트를 친박기업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이마트가 불명예스러운 오명에 벗어나려면 박근혜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착용한 직원을 발견하는 즉시, 징계를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마트는 친박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떼어내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박근혜 배지를 착용하면서 일하는 직원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을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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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6 21:06   좋아요 2 | URL
제가 다니는 직장은 대학교 내 사무실이라서 교수들과 자주 만나는 일이 많습니다. 당연히 정치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 않고, 일부러 피합니다. 대학교가 경북 지역에 있다보니 교수 대부분이 친박 꼰대입니다. 그분들은 박근혜 정치가 엉망인 걸 알면서도 야당을 믿지 못한 건지 아니면 혼란스러운 정국이 두려워서인지 촛불 집회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입니다.

stella.K 2016-12-06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지 말아야 할 일들을 버젓이 자행하는구나.
하여간 있는 것들이 더 치사하다니까.
지금 순실이 때문에 국가 신용도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하는데 최순실 때문에 이게 뭔가 싶다.
애국을 해도 부족할 판에 그 일당들은 나라도 팔아먹겠다 싶어.ㅠ

cyrus 2016-12-06 21:11   좋아요 0 | URL
세월호가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뉴스를 봤어요. 솔직히 이런 사람을 끝까지 지켜야 할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박사모와 자칭 보수 친박 세력들은 노답입니다. 그들이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어요.

:Dora 2016-12-06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4월 총선 투표 전까지 세월호 뱃지 다는 게 쉽지 않았었죠. 경복궁에서는 씨씨티비로 뱃지를 단 입장객을 감시까지 했었다네요. 촛불집회 이후 모든 게 점점 달라지고 있는 걸 체감합니다. 그들이 뻔뻔하게 나오거나 은근슬쩍 말을 바꿀수록 촛불은 더 타오를 듯 합니다.

cyrus 2016-12-06 21:29   좋아요 1 | URL
제 주변에 박근혜, 새누리당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대구에도 평일 집회가 열릴 정도로 박근혜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Conan 2016-12-08 15: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구나 춘천같이 과거에 여당의 성지로 여겨졌던 도시들이 최근에 오히려 탄핵요구에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느껴지는 배신감의 크기가 큰 것 이겠지요~

cyrus 2016-12-08 16:15   좋아요 1 | URL
저는 대구 토박인데도, 항상 1번만 바라보는 대구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보통 대구 사람들이 정치적 입장에 대한 변화를 많이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이번 박근혜 게이트 계기로 대구 사람들이 정신 차렸으면 좋겠어요. 내년 대선 때 1번 찍으면 진짜.. 정말 답이 없는 지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