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작자 미상, 최낙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1001-10]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 국내 번역본 표기는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은 너무 배가 고파서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갇힌다. 그는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서 도둑질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죗값을 치러야 했다. 가석방된 첫날 밤 장발장은 어느 신부의 집에 묵는다. 밤중에 그 집에서 은그릇을 훔쳐 달아난다. 형사 자베르에게 잡혀 교회에 끌려왔을 때 신부는 “내가 은촛대까지 주었는데 왜 은그릇만 가지고 갔느냐?”고 반문했다. 장발장은 신부의 말에 감동해 회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결국 19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장발장의 세상에 대한 분노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굶주림은 사람의 인격을 비참하게 망가뜨린다. 훔친 행위는 부도덕이지만, 굶주림 때문에 도둑질한 것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자구책으로 볼 수 있다. 벽초 홍명희가 처음으로 《레 미제라블》을 소개하면서 제목을 ‘너, 참 불쌍타’로 지었다. 장발장은 빵을 훔친 절도범이지만, 프랑스 혁명 직후의 혼란기에 사회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는 비참한 인물이다.

 

 

 

 

 

사실 장발장이 나오기 아주 오래 전에 굶주림을 못 이겨 부도덕한 행동을 일삼은 또 한 사람이 있다. 1554년 스페인에 발간된 작자 미상의 피카레스크 소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Lazarillo de Tormes)》의 주인공 라사로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는 라사로의 실명. 라사로는 애칭) 피카레스크 소설은 16~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기법으로 불량배나 건달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대 사회상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라사로는 하층 계급 집안에 태어난 소년이다. 어린 나이에 벌써 손버릇이 나빠 도둑질을 하기 시작한다. 라자로의 부모는 빈곤한 형편 탓에 아들을 먹여 살리기 힘들었고, 소년은 장님의 보호 하에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장님은 사기꾼이었다. 사람을 속이면서 돈을 구걸하고, 모은 돈으로 마련한 기름진 음식과 감미로운 포도주를 자기 혼자만 즐긴다. 지독한 구두쇠라서 라사로에게 자신이 먹는 음식의 반도 되지 않은 양을 준다. 그래서 장님이 먹고 마시는 것들을 맛보려고 속임수를 꾸민다.

 

 

 

 

 

 

두 눈이 보이지 않은 장님의 약점을 이용, 포도주가 담긴 항아리에 빨대를 대고 마신다. 하지만 장님은 라사로의 수법을 알아챘는지 손으로 항아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품속으로 밀착시킨 채 포도주를 마신다. 라사로는 항아리 밑바닥에 빨대가 관통할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을 뚫어놓는다. 그는 구멍에 새어 나오는 포도주를 마시지만, 속임수는 금방 탄로 나고 만다. 단단히 화가 난 장님은 라사로의 얼굴 정면에 항아리를 힘껏 던질 정도로 가혹하게 혼을 낸다.

 

 

 

 

 

라사로는 더 이상 인성이 최악인 장님과 함께 살 수 없어서 혼자서 살아가기로 한다. 그는 자신을 괴롭힌 장님에게 통쾌한 복수를 날리는 심정으로 골탕 먹이고 달아난다. 그 이후로 라사로는 신부, 수도사, 면죄부를 판매하는 포교사, 화가 등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그가 처한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라사로가 장님을 버리고 떠난 후에 만난 신부는 장님보다 사악한 인물이었다. 기독교의 일곱 가지 죄악 중 하나가 탐식이다. 그런데 이 신부란 놈은 본인 입으로 탐식이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점심과 저녁에 고기만 먹는다. 심지어 장님처럼 라사로에게 고기 한 점도 주지 않는다. 라사로가 네 번째로 만난 수도사는 수도원 일에 관심 없고, 그저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한다. 면죄부 포교사는 면죄부 판매의 악습을 버리지 못한 구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면죄부 판매 행위를 ‘신의 뜻’으로 포장했고, 면죄부를 사들인 사람들은 포교사의 속임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라사로는 비열하고, 부도덕한 수단을 동원하면서 살아가는 나쁜 놈들을 관찰하면서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기독교 성직자들은 종교적 윤리를 지키지 않는 위선적인 인물로 등장하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가 금서 도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는 오로지 선한 방법으로 현실을 극복하는 영웅의 눈부신 활약을 그리지 않는다. 라사로는 보잘것없는 주인공이다. 게다가 장발장처럼 생존을 위해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현실을 마주보고 인식하는 계기와 과정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장발장은 신부의 자비심으로 선악에 눈을 뜨면서 점차 순화되지만, 라사로는 자신보다 더 나쁜 놈들을 만나면서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실의 냉정한 이면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그러면서 궁핍한 상황을 타개하는 자신만의 생존력을 터득한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를 읽은 독자들은 주인공이 장님을 속이고, 골탕 먹이는 행동을 비난하지 못한다. 라사로는 굶주림의 고통이 근본적인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독자들은 안다. 배고픔은 우리의 몸이 생존을 위해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라사로보다 ‘더 나쁜 놈’인 장님이 주인공의 복수에 당하는 장면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특히 ‘가장 나쁜 놈’인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은 추락한 종교의 권위를 희화화한다. 라사로는 종교의 힘에 벗어나 현세를 중시하는 민중들의 정신이 반영된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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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9-26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반데니소비치,수용소의 하루에도 아침과 점심 각10분, 저녁5분,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이다~란 글이 있어요
굶주림은 인간을 가장 초라하게 만드는
천형의 하나임을 공감합니다.

cyrus 2016-09-27 12:25   좋아요 0 | URL
`배고픔`을 주제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솔제니친의 노잼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yureka01 2016-09-26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더더 나쁜 놈들이 가식적인 놈들이죠..앞에서는 좋은 말 늘어 놓다가 뒤로는 온통 굳은 일저지르는 이중성이거든요..

cyrus 2016-09-27 12:26   좋아요 1 | URL
서울 한폭판에 있는 국회 닭장 속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나쁘죠.

아무 2016-09-2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명희 선생이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ㅎㅎ
왜 최고의 명장면인지는 그림만 봐도 알 것 같습니다..^^

cyrus 2016-09-27 12:29   좋아요 0 | URL
십 년 전에 스펀지에서 레 미제라블 번역명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방송을 봤어요. ^^

transient-guest 2016-09-27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사로..`가 한국어 번역본이 있네요. 전 98-99년엔가 3학기 분량의 유럽지성사를 들으면서 읽었어요. 마지막에 장님거지한테 한 방 먹이는 장면의 묘사가 압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ㅎ

cyrus 2016-09-27 12:30   좋아요 1 | URL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알고 계시는군요. 이런 순간이 제일 기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