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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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종이에 허무와 슬픔이 흠뻑 배어있다. 그 종이 속에 두 여자가 있다. 그녀들의 삶은 하얗다. ‘나’는 일상을 매일 쥐어짜는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린다. 그녀에겐 태어나 두 시간 만에 죽게 된 언니가 있다. 따뜻한 어머니 품속 같은 흰 배내옷은 곧 싸늘한 수의가 된다. ‘나’는 얼굴이 흰 조그만 언니를 떠올리며 이 세상의 ‘흰 것’들을 하나씩 건져내기 시작한다. 65개의 조각 글은 한 편의 비가(悲歌)다. 흰색 톤의 ‘나’는 비현실적이면서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자꾸만 마음이 끌린다. 어떻게 보면 《흰》은 행동의 모호함과 혼란에 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행동이 순수함을 향한 몸부림인지, 아니면 단순한 욕망의 표출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사람들이 살아가며 일상적으로 겪는 고뇌를 표현한 것인지 규정하기 힘든 장면이 잇따라 등장하기 때문이다.

 

흰색이 검은색보다 언제나 순수하고, 하얀 눈처럼 순수함을 상징한다는 식으로 그려졌다면 이 소설은 도식적이고 심심해졌을 것이다. 우울, 희열, 평안을 오가면서 흰 것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은 기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한강의 글은 불편하고 때론 괴롭지만, 소설 속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흰 것에 대해 마음껏 상상한다. ‘나’는 흰 것의 상징과 은유로 근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금만 벗어나도 과장스럽게 보였을 ‘나’의 글쓰기를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작가가 형이상학적 소재를 세심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흰 것에서 ‘죽음’을 대면한다.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가 죽은 자리에 태어난 ‘나’는 불현듯 죽음과 가까워지는 순간을 느낀다. 문득 자신을 덮칠 듯한 거대한 무색 공포, 즉 ‘죽음’에 몸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다. 죽음처럼 완전히 혼자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죽음’이라는 상처가 그의 이름과 생일에 낙인찍혀버린 반 고흐처럼 말이다. ‘나’는 오랜 고통의 영향으로 ‘피 흐르는 눈’[주1]을 가졌다. 그 눈으로 들여다본 마음의 심연은 엑스레이 사진처럼 해골만 남은 채 텅 비어 있다. 마음의 심연이 붉게(살과 근육) 보이지 않는다. [주2]

 

 

그보다 오래전,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그녀는 뼈들의 다양한 이름에 매혹되었다. 복사뼈와 무릎뼈, 쇄골과 늑골, 가슴뼈와 빗장뼈, 인간이 살과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흰 뼈’ 중에서, 89쪽)

 

 

생각도 고통도 없는 해골이 된다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하지만 기막히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흰 뼈’라는 제목의 글은 마치 삶의 유한성을 일깨우는 ‘바니타스(Vanitas)’ 회화 속 해골을 연상시킨다. 다소 우울하지만, ‘나’가 자신의 엑스레인 사진을 보는 행위는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한 과정’에 참여했음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화된 바니타스를 탐구하는 것이다. 바니타스의 구현은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에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의미를 찾지 않으면 무의미한 일상에 반복되는 헛됨에 사로잡힐 수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가 보는 것들은 진실일까? 허상일까? 진실이라 믿고 있었던 것들이 거짓으로 밝혀졌거나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은 현실이 진실임이 드러날 때가 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다 진실은 아니다. 과연 검은색만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듯한 꺼림칙한 기분을 주는 색깔일까. 한강은 각인된 인상에 비롯된 허상을 좇는 독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흰색에도 ‘덧없는 삶’,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이면의 진실을 감추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몸 그 자체 속에 들어 있는 해골이다. 우리가 몸속에 있는 해골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죽음’이라는 진실을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살아간다. 해골을 소재로 한 글은 독자에게 자신의 진실한 내면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입김>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나’가 차가운 겨울 입술에서 피어나오는 흰 입김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입김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생명의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어느 추워진 아침 입술에서 처음으로 흰 입김이 새어나오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 차가운 공기가 캄캄한 허파 속으로 밀려들어와, 체온으로 덮혀져 하얀 날숨이 된다.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입김’ 전문, 89쪽)

 

 

65개의 글 전체에 슬픔과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가운 죽음과 따뜻한 삶 사이에서 삶 쪽으로 퍼져나가는 소중한 기적도 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확연한 증거이자 흔적이다. 비록 입김 또한 삶이 덧없다는 것을 뜻하는 바니타스 상징으로 볼 수 있지만, 따뜻한 입김의 조그만 조각도 누군가의 몸속으로 전달되어 생명의 날숨이 되어주는 소중한 매개체다. 따라서 이 글 속에서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삶을 갈망하는 욕망도 얼핏 읽을 수 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흰》을 읽으면 무의식 속에 방치했던 기억들이 재생되고 숙연해진다. 《흰》에서 여러 종류의 사유를 발견할 수 있지만, 유독 많이 보이는 것은 삶이라는 의미와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극대화된 허무이자 절대적인 죽음의 앞에서 절망하지만, 근본적인 회의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죽지 마라. 제발’ 이 독백은 어찌 보면 하나뿐인 생명력이 회복하기를 원하는 간절한 외침이 아니었을까. 한강은 형용하기가 어려웠고, 두려웠을 소재를 곱씹어서 65개의 글로 종이 위에 토해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잠깐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한강 작가가 고맙다.

 

 

 

 

※ 주1) 한강의 시 「피 흐르는 눈」 1연 1행 (‘나는 피 흐르는 눈을 가졌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52쪽)

 

※ 주2) 한강의 시 「피 흐르는 눈」 5연 1행 (‘마음의 심연이 붉게 보이지 않는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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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6-06-27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페이퍼입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6-06-28 11:35   좋아요 1 | URL
별 말씀을요. 책에 대한 제 개인적 느낌만 적었을 뿐입니다.

빠르릉 2016-06-27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